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청와대 “‘낙하산 딱지 붙이기’는 한나라당 스스로 판 함정”

청와대 “‘낙하산 딱지 붙이기’는 한나라당 스스로 판 함정”
박남춘 인사수석, ‘지자체 낙하산’ 관련 “논리적 모순” 주장
입력 :2006-08-30 15:39:00   안성모 (momo@dailyseop.com)기자
‘논리적 모순에 빠진 한나라당?’

참여정부의 인사를 두고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 등 비난공세를 펼쳐온 한나라당이 소속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 논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청와대는 30일 “한나라당이 집권의지를 가진 정당이라면 <조선> <동아>의 ‘낙하산’ 딱지 붙이기에 동조하는 것이 스스로 함정을 파는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밝혔다.

박남춘 청와대 인사수석은 이날 청와대브리핑에 올린 글을 통해 “국가 운영을 위해서 대통령이 하는 인사를 부정적 의미의 ‘낙하산’으로 비난한다면 그건 앞으로 집권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이 같이 주장했다.

박 수석은 “이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면 한나라당은 ‘낙하산 인사’ 시비가 일고 있는 광역지자체장의 인사에 대해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것이 옳다”며 “서울, 부산, 경기, 경남, 강원 등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들이 인사를 철회하도록 조치해야 논리적 모순을 해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은 28일 “지자체 산하 공기업 대표와 주요간부가 낙하산 인사로 대거 채워지고 있다”며 ‘지자체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보도했다. 김태호 경남지사, 허남식 부산시장 등 이들 지자체장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언론의 ‘한나라 낙하산’ 비판 동의할 수 없어”

박 수석은 ‘지자체 낙하산 인사’ 보도에 대해 “정치적 감정만으로 따진다면 ‘그것 봐라’ 쯤으로 치부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우리 정치현실에서 ‘낙하산’이니 ‘코드’니 하는 식의 비판이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기에 비록 그 비판의 대상이 한나라당이라 하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그 동안 참여정부 인사에 대한 <조선> <동아>와 야당의 ‘코드’ 비난이 온당하지 않다고 거듭 말해왔고,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행해지는 ‘책임인사’를 코드로 호도하고 왜곡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라고 주장해왔다”며 “청와대 인사발표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코드’ ‘낙하산’이라고 보도하는 행태는 정치공세를 위한 낙인찍기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참여정부의 인사는 한 마디로 ‘개방인사’이고, 이런 뜻의 낙하산은 ‘철밥통’으로 알려진 공직사회의 경직성, 폐쇄성을 혁파하고 활력을 불어넣는 치료약”이라며 “열린 문을 통해 조직내부로 들어가서 임명권자와 정치적 책임의식을 함께 하며 국리민복에 기여하려는 것이 ‘낙하산’의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박 수석은 “언론이 비판하는 ‘한나라당의 낙하산’이 참여정부의 인사처럼 능력과 도덕성을 전제로 이뤄졌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자”며 “분명한 것은 지자체장들도 자신과 코드가 맞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구조가 필요하고, 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집권을 하게 되면 정치적 이념과 정책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등용하고 이들과 함께 국정이나 도정 운영의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정치의 현실”이라며 “이건 한나라당이 집권의지를 갖고 있다면 부인할 수 없는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정치공세보다 균형잡힌 논의가 필요”

박 수석은 “‘낙하산’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실이 개입하거나 불법 혹은 탈법적인 경우, 능력이 없는데 억지로 내려 보내는 경우인데, 참여정부는 능력과 도덕성을 전제로 시스템에 의해 투명한 인사를 하고 있고, 그런 과정의 하나가 개방인사”라며 “참여정부에는 과거 ‘소통령’ 인사 같은 밀실 인사는 결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임명 자체를 시비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는 게 박 수석의 주장이다. 그는 “임명한 이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책임윤리를 저버리지 않는지, 감시를 잘하는 것이 필요하고,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언론은 언론대로, 정당은 국회에서 국정감사 등을 통해 감시 견제하는 것이 민주사회의 책임정치 원리에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박 수석은 “한나라당은 ‘낙하산인사조사특별위원회’ 설치 같은 맹목적인 정치공세를 멈추고, 책임정치에 걸맞는 책임인사를 제도화·시스템화 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며 “무분별한 정치공세보다 균형 잡힌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낙하산은 활짝 펴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코드 인사라는 말 자체가 나오는 민주주의 의식 수준이 개탄스럽다. 코드인사,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엽관제로 관료제를 깨는게 바로 민주주의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고시 패스한 공무원들이 고위직까지 평생 공무원하자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귀족제가 아닌가? 물론 과거에는 육사 기수, 지역 중심으로 나눠 먹었다. 그러나 그건 악이다. 반면 정책 중심으로 서로 나눠 먹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이니까! 보수당이 집권한 후 노동당 인사 입각시키는 것이 말이 되나? 박끄네가 집권했을 때 좌파 입각 시키는 것을 바라는 것은 또라이 짓꺼리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개무식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공무원의 신분은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무 하위직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고위직은 당연히 민주주의적 코드인사에 따라 그 신분이 보장되지 않을 수 있다. 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노동법에 따라 부장 이하 월급쟁이의 해고는 반드시 정당한 사유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사,임원의 경우 상법에 따라 언제라도 정당한 사유없이 해임 가능한 것이 원칙이다. 우리의 상법 마인드는 간접 대의제 민주주의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사적 기업의 business judgment rule에 따라 사법 판단 안하겠다는 것은 국가적 정책 실패에 대해 단지 선거 정치적 책임을 물을 뿐 사법적 책임 묻지 않겠다는 것과 동일).

 

이렇게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전제인 코드 인사 라는 단어가 붉어지는 것은 당연히 조중동 덕분이다. 독과점 상황에서 '건전한 긴장 관계'?  개소리다. 청와대 브리핑/ 국정 브리핑 백날을 만들어봐라. 조중동 과연 이길 수 있나? 조중동 그대로 놔두고서 세종이 아니라 마지막 태종이 되겠다고 했던 노무혀니가 등신이다. 태종은 자기 혈육 형제도 쳤다.

 

 

 

낙하산은 활짝 펴져야 한다
번호 144753   글쓴이 김석수   점수 329   등록일 2006년8월24일 12시21분 대문추천 5   정책 0   아이피차단 1



요즘 언론을 보면 낙하산인사 불가타령이 단골메뉴가 된 느낌이다. 이재용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내정자에 대해 또다시 낙하산인사라며 질타를 집중시키는 대다수 언론들의 관성적 행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글쟁들이야 '꺼리'가 있으면 그 처럼 좋은 것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라가 되가는 모양을 봐가며 '글빨'들 세웠으면 하는 바람이 오늘의 주제를 잡게 된 배경이다.

물론 이런 제목을 쓰고 있는 나도 유쾌해서 쓰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이 워낙 인기가 없는데다 한국적 풍토에서 '어용글쟁이'로 몰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게다가 내가 봐도 현 정권의 인사대상자들을 보면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른 바 회전문인사로 통칭되는 대통령의 인맥풀은 좁기만 할뿐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 지나치게 고집스러운 면도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사를 대통령의 측근 몇 명이서 요리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코드인사'의 정당성을 넘어 '정실인사'로 까지 비판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청와대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소재는 된다고 본다. 왜냐면 정권을 만들 때에는 여럿이서 만들었는데 그 성과를 어느 한 부류가 독과점하는 것은 어쨌든 기분 나쁜 일이고, 그만큼 정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한 것이 정치의 원리, 권력배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인재를 널리 구하려는 노력을 기존의 관행적 노력(예를 들면 신원조회 결과 문제가 많은 인사들이 너무 많더라는 식으로 정실인사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뛰어 넘어 제대로 된 혁신적 사고와 실천능력을 가진 이(예를 들면 바가지 욕을 먹으면서도 원칙을 강력하게 고수하고 실천하는 이철 철도공사 사장 같은)들을 구한다면 대통령과 측근들이 검증한 사람들 말고도 인재는 많다고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재용 전 환경부장관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내정한 것을 두고 진보매체라 자임하는 언론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선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시대가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역사의 물결은 틀림없으며, 그래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불가결한 언론의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문명사적 한계 속에서 정권을 운용하는 집권자의 인사정책을 사사건건 낙하산으로 매도하는 것은 건강한 언론인의 자세는 아니다. 왜냐하면 인사에 대한 시시비비가 도를 넘어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정도까지 간다면 그것은 결국 반민주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학과 정치경륜을 믿고 국민이 위임한 집권자가 자신과 코드가 맞는 인사를 요직에 기용하려는 것은 국민의 뜻이며 민주정치제도를 앞서 시스템화한 서구의 기준을 보더라도 그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비록 우리 헌정사에 정통성 없는 군사정권이 정치군인 출신들을 부지기수로 정부와 산하기관에 내리꽂는 '낙하산인사'의 전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래서 낙하산인사를 척결해야 할 문화로 만든 시대적 배경이 없지는 않으나 지금의 정권은 국민적 정통성을 가진 정권이며, 따라서 노무현정권이 국민들로 승인받은 통치철학을 기저로 하여 인사를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민주정치제도를 발전시키는 방향에서 보자면 올바른 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놓쳐 자칫 시기심이 발동할 여지가 많은 야당과 거대수구언론들의 낙하산인사 공세타령을 이른바 진보개혁지라는 언론들마저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은 보기에 별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이재용 내정자가 자질과 능력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따져 묻는 것이 옳다. 그가 치과의사출신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서의 전문성에 문제가 없다는 청와대 측의 변론은 그야말로 옹색한 변론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서 환경부 장관하다가 낙선된 사람을 다시 보은인사로 앉힌다는 비판이 제대로 된 비판은 아니다.

오히려 장관을 해봤기 때문에 이런저런 정책판단과 조율능력이 검증된 인사라며 가점을 주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재용 내정자가 선거에 낙선했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점은 정쟁의 상대방들이나 지어낼 질시어린 논점일수는 있어도 건전 언론의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특정인에게 자리가 돌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일정한 권력을 준다는 뜻이고 권력을 가지지 못한 국민들, 더구나 먹고살기 어려운 서민들 관점에서는 그 자체로 시큰둥한 일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낙하산인사 공세를 펼치는 것은 정치적으로 비겁한 선동일 수 있다.

적어도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라면 인사에 있어서의 시시비비 기준은 능력과 자질이어야 하며 그 이외의 정실론(정실인사를 비판하면서 스스로 정서적 거부감을 근거로 비판하는 것도 정실비판이 아닌가)으로 비판하는 것(낙선된 사람을 왜 다시 쓰냐는 식의)은 자가당착이요 궤도이탈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울러 그렇다면 왜 공모제를 실시하느냐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는 점을 알아보자.

공모제는 널리 인재를 등용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코드인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

국민의 동의를 받은 철학의 소유자가 인사를 실시하는 데 있어서 기본은 코드인사다. 집권자의 통치철학과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는 이들이 자질과 능력 면에서 '큰 하자'없으면 우선적으로 중용되는 것이 대의민주정치의 요체요 게임의 룰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충원되는 인사들이 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집권자의 인력풀이 아닌 바깥에서 더 좋은 인사를 찾기 위해 공모제를 실시하는 것이며 이는 칭찬받을 지언정 비난의 대상이 될 제도는 아니다. 다시 말해 인사 적임자를 권력의 인력풀 안에서 먼저 찾고, 적임자가 없다는 집권자의 판단이 서면 공모제를 이용해 널리 인재를 구하는 것이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을 유지하면서 인재등용의 길을 넓혀 궁극적으로 정책수요자인 국민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드인사를 할 것이라면 왜 공모제를 하느냐고 따지는 것은 마치 모든 공직자들은 공모제를 통해서만 선발해야 한다는, 그래서 관련분야 전문가들만 공공기관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전문가 독식논리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관련분야의 전문가는 전문성이라는 빛 못지않게 잇권개입이나 이익배분에 있어서 한쪽으로 편향될 우려가 높다는 그림자도 있다는 점을 균형 있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부승진인사의 경우 전문성 못지않게 해당 조직 구성원들의 기득권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유지시킬 수 있을까 하는 기술전력도 만만치 않다는 점도 국민들은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그보다는 해당기관의 장으로서 얼마나 관리능력과 행정능력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집권자의 통치철학을 얼마나 잘 구현할 수 있는가가 최우선 기준이 되는 것이 선거를 통해 발현되는 민심에 가장 근사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이 점을 민주주의를 먼저 체득한 선진사회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그만 단체나 회사에서 보더라도 특정인에게 역할을 맡겨놓고 사사건건 시비 거는 주인(단체회원이나 사장)은 결국 그 집단의 장래를 망치는 어리석은 주인이다. 일정기간 맡겨놓고, 일정한 결과를 보고, 혹은 지향성을 봐가며 잔소리를 하더라도 해야 현명한 주인인 것이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집권자를 선택하는 것은 그에게 국민의 기관인 정부와 공공기관의 장 자리에 집권자의 철학을 구현할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라고 동의를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해당기관의 구성원(공무원이나 직원들)들이 오랜 타성에 젖어 나라의 주인인 국민알기를 우습게 알고 자신들만의 복마전을 만들어 나가는 관료주의의 극단적 폐해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은 일정기간동안의 활동결과를 놓고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지지만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은 국민에게 직접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신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사를 통해 대통령과 집권당은 국민에게 책임지는 것이다. 이것이 간단한 대의민주제의 원리다.

그런데 그렇게 내려 보낸 인사들을 낙하산 인사라며 반발하는 언론이나 노조들을 보면 이들이 과연 민주정치를 지향하는 이들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딴죽 걸기가 질시어린 딴지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도 짜증스러운데 진보매체라는 언론들마저 민주정치의 근본을 뒤집으면서까지 장사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낙하산은 활짝 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낙하산에 딴죽을 걸려면 줄이 끊어져 있다든지, 균형이 안 맞는 불량낙하산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딴지를 거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자질과 능력, 그리고 대통령의 집권철학에 어울리는지 등을 기준으로 거는 딴지라면 그 정당성이 충분하지만 선거에 떨어진 사람을 보은인사 하는 것 아니냐는 정서적 거부감을 근거로 거는 딴지라면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 김석수



IP : 221.139.80.x
점수
5 4 3 2 1 -1 -2 -3 -4 -5

[1/42]  눈팅  IP 165.229.18.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2시22분      
막가자는거 맞죠???
[2/42]  딸랑  IP 219.255.19.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2시27분      
딸랑 딸랑
힘들지? 종치기도
[3/42]  김석수 (pwkss7) IP 221.139.80.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2시29분      
눈팅/딸랑/난 낙하산에 대해선 민주주의를 기준으로 보는 확신범이요...건들지 마슈~알바님들!^^*
[4/42]  하하  IP 219.251.53.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3시03분      
김석수씨...
사실 바른말이지..
이번 이재용 인사는 너무 지나치지 않소이까?

[5/42]  김석수 (pwkss7) IP 221.139.80.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3시34분      
하하/자질과 능력면에선 나는 문제없다는 생각이고....정실이란 기준으로 보면 보는 사람마다 다를 텐데 적어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줘야 하는 언론, 특히 진보언론이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이요...그외 청와대인사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두부분에 이미 썼으니 참고하시유~
[6/42]  하하  IP 219.251.53.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3시45분      
김석수/
이재용씨가 해양수산부시절부터 충성심외에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렇게 강조 하시요..
만약에 딴나라당이 집권해서 이런 인사를 한다면?
김석수씨 견해도 지금과 같을까요?
우리 객관적으로 이야기 합시다..
[7/42]  김석수 (pwkss7) IP 221.139.80.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4시01분      
하하/딴나라당이 집권해도 내원칙은 동일하오이다. 문제라면 딴나라당이 눈앞 작은 이익을 위해 장래 큰 이익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근시안들이라는 점이죠.
[8/42]  쟁기  IP 220.86.92.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5시58분      
미국에서 대통령이 바뀌면 20,000명의 고위공무원들이 짐을 싼다. 정무직 공무원들은 대통령과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서 대통령 정책의 전도사요 정책관철을 위한 연장된 팔이다. 정부산하기관이 반발하는 것은 지들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를 빼앗기기 때문이요, 딴나라당이 반발하는 것은 국민들의 잘못된 심리를 이용하여 표를 얻자는 계산에서이다. 대통령제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랭이 너무 많은 것들이 문제다. 문제를 삼을려면 자질을 문제삼아라.
[9/42]  쟁기  IP 220.86.92.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6시01분      
이재용씨는 해양수산부하고는 상관이 없는 인물이다. 그는 대구시에서 민주화운동, 환경운동에 매진하였던 사람이고, 구청장도 했던 사람이다. 환경운동 경력은 그를 환경부장관으로 천거하는 계기가 되었다.
딴나라당이 보은인사를 들먹거려 참여정부의 운신의 폭을 좁히려는 이유는 참여정부에 상채기내고 영남의 유능한 인사들이 참여정부 쪽에 붙는 것을 막으려는 다목적포석이다. 딴나라당이 집권하면 더하면 더했지 지금보다 절대 줄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10/42]  김석수//  IP 61.39.35.x    작성일 2006년8월24일 17시16분      
이렇게 눈물나는 몸빵을 하는데도 아직도 연락이 없던가요?
더욱 피눈물나게 노력해야 될 모양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박정희의 친,인척 비리

오늘의 역사

 

박정희의 친,인척 비리
번호 145732   글쓴이 민족정기   조회 3037   점수 1118   등록일 2006년8월28일 09시58분 대문추천 28   정책 0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치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카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서프앙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 밖에 없다. 예를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서프앙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혀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없다.

홍소자랑 열린우리당 이미경의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 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먹었다

 


ⓒ 민족정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Remember 8.25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함

 

 

 

Remember 8.25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함

아이엠방짜 | 2006/08/25 08:55 | 방짜


오늘이 이오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이네요.
저는 선생님을 얼핏 알고 있습니다.
그저 책상 달력에 적어놨을 뿐입니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선생님을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
선생님이 돌아가신 다음날(2003.8.26), 오마이뉴스에 실린 박도 기자의 글.
지난 7월 대자보에 실린 초록정치연대 우석훈 정책실장의 글을 올립니다.

비가 왔다갔다...좋은 금요일 되시길...



겨레의 큰 스승, 이오덕 선생 잠드시다

오늘 어둑새벽 신문을 펼치다가 일면 기사에서 이오덕 선생님의 운명 소식을 알았다. 출근 후, 오전 수업을 마치고 곧장 무너미마을로 달려갔다.

그런데 당신이 죽으면 반드시 가족장으로 치를 것, 부고는 장례 후에 알릴 것, 일체의 부의금과 조화도 받지 말 것을 말씀과 글로 남기셨다고, 각계에서 보내온 조화마저 빈소 밖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뒤로 놓였고, 조문객들이 빈소 참배도 못하고 밖에서 서성였다. 평소 선생의 성품을 아는 분은 마지막까지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가셨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안면이 있는 자부님이 먼 곳에서 달려온 조문객들을 빈소로 안내를 해서 분향은 했으나 선생의 마지막 저승 가는 차비는 끝내 드리지도 못한 채 나왔다.

'박 선생 먼 길 오느라고 고생했어요. 내일 수업 있을 텐데 요기나 하고 어서 가세요.' 이오덕 선생님이 다정히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내일(2003년 8월 27일)이 발인인 줄 알면서도 조용히 빈소를 물러나 대원휴게소에서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선생은 한자말과 외래어, 외국어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아주 고집스레 우리말을 지키고 되살리는 일에 평생 동안 온몸을 바치셨다.

그 모습은 마치 일제 시대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만주 벌판을 누볐던 독립투사처럼 거룩하기만 하다. 하긴 총칼을 들고 제국주의자와 맞서 싸운 것만이 독립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붓을 들고 우리말과 얼을 지키는 선비도 그에 못지않은 독립투사다.

1997년 여름, 선생을 뵙고자 과천 주공 아파트로 찾아갔다. 좁은 아파트 안이 온통 책으로 가득 찼다. 부엌 밥 짓는 곳과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통로를 뺀 곳은 모두 책이었다. 큰 밥상 위에도 신문과 책들이 수북이 쌓였다.

"박 선생, 이 신문들 좀 보세요. '뾰족탑'하면 될 텐데, 하나 같이 '첨탑(尖塔)'이라고 하고 있어요. 한글만 쓴다는 <한겨레신문>조차도 그렇게 쓰고 있어요."

그 무렵 중앙청(옛 조선총독부)을 헐어내는 보도 기사에 대한 선생의 불만이었다. 선생은 모든 인쇄물을 예사로 보지 않고 꼼꼼히 보셨다. 그런 후, 잘못된 표기나 쉬운 우리말이 있는데도 굳이 어려운 한자말이나 외래어 외국어로 적은 말은 일일이 찾아서, 글쓴이나 편집자에게 낱낱이 알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이오덕 선생의 바탕 뜻은 다음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그 어떤 일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외국말과 외국 말법에서 벗어나 우리말을 살리는 일이다. 민주고 통일이고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이루는 것이 좋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3년 뒤에 이루어질 것이 20년 뒤에 이루어진다고 해서 그 민주와 통일의 바탕이 아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 아주 변질되면 그것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한번 잘못 병들어 굳어진 말은 정치로도 바로잡지 못하고 혁명도 할 수 없다.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다. 또 이 땅의 민주주의는 남의 말과 남의 글로써 창조할 것이 아니라 우리말로써 창조하고 우리말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잡스런 말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첫째는 한자말이요, 둘째는 일본말이요, 셋째는 서양말이다. 이 세 가지 바깥 말이 들어온 역사도 한자말-일본말-서양말의 차례가 되어 있는데, 한자말은 가장 오랫동안 우리말에 스며든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일본말은 한자말과 서양말을 함께 끌어들였고, 지금도 끊임없이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깊은 뿌리와 뒤엉킴을 잘 살펴야 한다. 정말 이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넋이 빠진 겨레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겠다."

내가 책을 펴내면서 선생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자 아주 꼼꼼히 읽으신 후, 여러 부분을 교정해 주셨다. 식탁→밥상,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런데도, 이따금씩→이따금, 교육이란 미명으로→교육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입장→처지, 주방→부엌, 야채→채소/남새, 획일적→판에 박은 듯이, 국민/민초→백성, 먹거리→먹을거리 ….

나는 선생이 일러주신 대로 글을 고쳐 놓고 보니 훨씬 깨끗하고 쉬웠다. 이밖에도 '~적(的)', '그녀', '및', '등', '에 있어서', '에의' 따위도 일본말의 찌꺼기라고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말로 고쳐 쓰거나 아예 못 쓰게 하셨다. 또, 서양 말법을 따른 '-었(았)었다'라는 과거 완료형 시제는 우리 말법에 없는 잘못으로 우리말의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깨트린다고 말씀하셨다.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얼굴을 붉혔다. 나는 해방 후 세대로 우리말과 글을 50여 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왔는데도 아름다운 우리말을 두고서 별 다른 생각 없이 한자말이나 외래어 일본말투, 서양 말법을 예사로 써 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녀'에 대한 선생의 보탬 말씀을 듣고는 남녀평등에 대한 높은 뜻을 읽을 수 있었다. "왜 하필 여자를 가리킬 때만 '그녀'라고 해야 합니까? 그렇다면 남자를 가리킬 때면 '그남'이라고 해야 되지요. 남녀 없이 '그'로 쓰면 됩니다."

평생을 어린이 교육에 몸 바친 선생은 '우리말 우리 글 바로 쓰기' 못지않게 사람 교육에도 깊은 생각과 뚜렷한 철학을 가지셨다.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나려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삶이 있다. 그 첫째는 일하기인데, 사람은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고, 일을 해야 사람이 된다. 일을 해야 사람다운 태도를 가지게 되고, 일을 해야 사람다운 생각을 하게 되고, 사람다운 감정을 가지게 된다. 세상의 모든 이치도 일하는 가운데서 깨치고 찾아낸 것이 가장 올바르고 확실한 앎이다. 몸과 마음의 건강도 일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다. 사람의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즐겁게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일이 즐겁고 그 일이 공부가 되려면, 그 일이 자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자연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옛날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연보다 더 큰 스승은 없었다. 사람이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따라 살면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된다.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비로소 아름답고 참된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을 배반하고 거역하면 사람은 병들고 스스로 망한다. 자연이 없는 교육은 죽음의 교육이고, 자연을 떠난 삶은 그 자체가 죽음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가난의 체험이고 가난하게 사는 것이다. 사람은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가난해야 사람다운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정을 주고받게 된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넉넉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하면 자기밖에 모르고, 게을러지고, 창조력이고 슬기고 생겨날 수가 없다.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편리하게 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다 죽어 버린다. 가난은 어렸을 때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 가난은 책으로 배울 수 없다. 가난하게 살아간 사람의 이야기를 아무리 책을 통해 읽어도 자기 스스로 굶어 보지 않고는 굶주린 사람의 마음을 몸으로 알 수는 없다. 텔레비전으로 어떤 사람들의 가난을 보았다고 해도 그것은 가난을 구경한 것밖에 안 된다.

Photo 오마이뉴스 주중식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육에는 일과 자연과 가난이 사라졌다. 이 세 가지 가운데 그 어느 한 가지만 없어도 참된 사람 교육은 될 수 없는데, 이 세 가지가 죄다 없으니 무슨 교육이 되겠는가? 지금 우리 교육은 이 세 가지를 싹 쓸어 없앤 자리에 딱딱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그 속에 아이들을 가두어 놓고는 책만 읽고 쓰고 외우고 아귀다툼을 하게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무슨 사람다운 교육이 되겠는가?"

또, 선생은 생명의 존엄성과 자연 환경에도 큰사랑을 지녔다. 과천에서 아드님이 사는 충주시 신니면 수월리(무너미) 마을로 거처를 옮긴 후 대여섯 차례 찾아뵈었다.

무너미 마을은 장호원에서 충주로 가는 길 중간쯤 오른쪽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고갯마루에는 아드님 내외가 농사를 지으면서 밥집, 우리 농산물을 파는 가게도 열고 있었다.

선생은 거기서 일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산 중턱 개울가에다 아담한 글방으로 꾸며 놓았다. 이 글방은 아드님이 아버지를 위해 손수 지었다는데 그 방안도 온통 책으로 가득 찼다. 책꽂이에는 우리말 우리 글 바로쓰기에 대한 자료와 사오십 년 전 코흘리개 제자들의 글모음을 여태 보배처럼 간직해 두었다.

처음 무너미 마을로 찾아뵈었을 때는 글방 창문 앞 오이덩굴 얘기를 하셨다. 그때 들려준 말씀이 <우리 말 우리 얼> 제16호에 실린 바 선생이 손수 그린 그림은 생략하고 글만 옮겨 본다.

자연, 이 놀라운 생명
- 우리가 무심히 먹고 있는 조그만 열매 하나에도…-

창문 앞 오이덩굴이 자꾸 뻗어 올라가는데, 나중에는 창틀 아주 위쪽까지 올라갔고, 거기 오이가 달렸다. 너무 높아 따지 못하고 두었더니 오이는 자꾸 굵어졌다. 그래도 오이는 감 따는 장대로 어찌어찌 해서 겨우 오이를 땄는데, 크게 놀랐다. 무거운 그 오이를 받쳐준 것이 받침대 나무의 옹이였던 것이다. 그 옹이가 있는 곳까지 가서 오이를 받쳐 놓았으니, 오이덩굴은 눈도 귀도 코도 입도 손도 발도 다 있고, 마음도 다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음번에 찾아뵈었을 때는 몹시 앓은 뒤라서 아무나 귀찮을 만도 한데, 멀리서 찾아온 손을 무척이나 반겨 맞았다. "요즘은 시골사람들도 어진 마음씨를 잃어가고 있어요. 아무 산에다 덫을 놓아 마구잡이로 들짐승을 잡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는가 하면, 온 들에다 농약이나 제초제를 마구 뿌려서 생명체의 씨를 말려요."

마침 밥상 위에 있는 쭉정이 강냉이 송이를 보여 주셨다.

"이 강냉이 송이가 무슨 말을 할까요? 낮에 감자 껍질, 사과 껍질 같은 걸 거름으로 버리러 뜰 앞에 나갔다가, 매화나무 옆에 지난해 다 거둔 강냉이 그루터기에 보잘 것 없이 조그만 송이 하나 있기에 주워서 까 보았더니 글쎄 죄다 쭉정이에 딱 한 알 한 개만 굵직하게 꼭 바윗덩어리, 아니, 큰 금덩어리같이 붙어 있는 것 아닙니까? 쭉정이를 대강 세어보니 115개였습니다. 죽은 알 115개가 한 개를 살려서 이렇게 엄청나게 굵은 금덩어리를 남겨 놓았습니다. 그 모진 추위에도 얼어 죽지 않고, 그렇게 굶주리던 온갖 날짐승도 차마 이 강냉이 한 알만은 먹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 사람이 조그만 이 강냉이 송이의 백 분의 일이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나는 이 강냉이 송이를 모셔 놓고, 쭉정이 수대로 백 열 다섯 번 절을 하고 나서, 그가 하는 말을 듣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말 우리 얼> 제28호

나는 이따금 사람의 말이 그리울 때면 수화기를 들고 선생의 말씀을 들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럽고 맑은 말씀이 들려왔다. 지난 설날 아침에도 전화로 세배를 올리자 훈훈하고 겸손한 사랑이 넘친 말씀이 마치 돌아가신 할아버지 말씀처럼 내 귀에 닿았다.

요즘 우리나라는 날이 갈수록 외국의 문화가 밀물처럼 덮쳐와 우리 문화가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철없는 백성들은 자식에게 제 나랏말보다 외국말을 더 먼저 가르치겠다고 부부 별거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사대사상에 빠진 학자나 관리들이 국제화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영어의 공용까지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세태에 우리는 우리말의 큰 지킴이요, 어린이 교육에 큰 버팀목을 잃었다.

외딴 산골에 묻혀 사셨던 진짜 애국자 이오덕 선생님! 부디 편안한 세상에서 명복을 누리십시오. 그리고 이승에서 못다 누린 금실지락을 저승에서는 꼭 누리십시오. 선생님이 남기신 많은 글과 말씀은 두고두고 뒷사람들이 배우고 깨칠 것입니다.

2003년 8월 26일 박도 두 번 절 올립니다.

Photo by 산처럼


공교육의 위기, 이오덕 선생을 다시 생각함

우리나라에 훌륭하신 분이 누가 있냐고 하면 소파 방정환 선생님을 꼽을 수밖에 없다. 33년을 짧게 살다가 돌아가셨지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훌륭한 말인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주시고 가셨다. 그리고 또 생각해보니까 이오덕 선생이 계셨다. 사실 우리가 다 그 그늘 밑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셈이다.

선생님이 훌륭하시고 존경하실만한 분이라고 꼽는다면 이오덕 선생님을 꼽을 수 있다. 번역투와 일본식 어투를 싹 걷어내고 우리가 요즘 보고 있는 고운 우리말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 바로 이오덕 선생님이고, 학교는 경쟁해서 이기는 곳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이 곱게 자라나는 곳이라는 것을 역설하신 분이기도 하다.

20년대에 태어나 평생을 선생님으로 살아올 뻔 하다가 전두환 시절을 만나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그만두시고, 그 후로도 줄곧 좋은 책을 쓰시다가, 우리말 살리기 운동을 말년에 하셨다. 3년 전 78세를 일기로 과천에서 돌아가셨다.

방정환 선생님이 짧고 굵게 사셨다면, 이오덕 선생은 가늘고 길게 사셨다. 50권의 책을 내셨으니까 '가늘다'고 말해도 좋은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비교하면 선생님으로서도 굵직하게 사신 편이지만, 방정환 선생님이 우리에게 남겨주고 가신 것과 비교한다면, 그래도 가는 편이다 (우리는 가늘다 못해 야들야들한 인생들이다).

100m 달리기에 손잡고 들어오라고 가르치시던 분이 과연 우리 역사에 있겠나하지만 실제로 있었다 (울면서 하는 숙제). 이오덕 선생의 가르침에 비하면 싸워서 이겨야 한다가 교육내용의 거의 전부이다시피한 요즘의 교육당국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얼마나 우리가 동원경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할 것 같다.

사랑하고 살아도 모자라는 판에 싸워서 이기라고 가르치는 것은 자본주의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천박해서 그런 것 같다. 프랑스나 스위스, 독일 하다못해 일본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미국 교육도 기본철학이나 실무지침서 같은 걸 보면 '건강한 시민'으로 국민들을 키워낸다는 말이 귀가 닳도록 적혀있다.

아이들한테 지고 들어오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자본주의라서 그런 게 절대 아니라 무식한 사회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이오덕 그 날 아래 살아오던 이 사회는 다른 선생님의 등장을 목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같이 살아가기'라는 말이 그렇게 어렵고, 아름다운 글을 쓰면서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 아이들이 쓴 글을 모아서 수 십편의 책을 엮어낸 이오덕 선생님의 책에 자신의 글이 실렸던 그 때 '그 아이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가 가끔 궁금해진다. 어떤 아이들은 아주 어려워졌을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아주 행복해졌을 것이지만, 행복해진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지금 공교육이 엉망이니까 교육도 위탁주고 선생님도 평가해서 자를 사람은 과감하게 자르자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아마 이 공무원 중에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서 자신의 동화가 책으로 출간되어 나오는 즐겁고도 황홀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건 확실해 보인다. 그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교육개혁안'이라고 덜렁덜렁 들고 다니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일이 벌어질리가 없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문제라고 신나게 방방거린다. 전교조가 문제인 것은 교육현장에서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게 문제이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리는 없을 것 같다. 박정희 때에도 교장선생님으로 잘 버티고 있던 이오덕 선생님이 전두환 때 결국 군사당국의 교육행정에 대한 간섭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섰다.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 시절까지도 잘 버티던 일선의 좋은 선생님이 노무현 시절을 버티고 이겨나가기가 못내 어려워 보인다. 교육현장의 눈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전두환이나 노무현이나 그야말로 도찐개찐이다. 경쟁과 싸움말고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고 싶어하고 배워야 할 것들은 많다. 공교육을 지지하느냐? 당연하지. 그나마도 아니라면 돈주머니 외에는 모르는 악마들이 아가리에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을 처넣어야 옳으냐?

멕시코 국립대학 1년 등록금이 1달러가 안 되는데, 대략적으로 20센트 정도 된다고 한다. 나프타 이후에 페소화 몰락과 더불어 살리나스 대통령이 '멕시코 교육 현실화'라는 명목으로 미국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리려고 했다. 당연히 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시민들은 대략난감...

1년 동안 동맹휴학을 하면서 결국 20센트짜리 멕시코의 대학 공교육의 시스템을 지켜냈다. 대학도 무너진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공교육마저도 못 지켜낸다면 무슨 수로 후대를 기약할 것인가?

일제라고 사람들은 우습게 얘기하지만 그 일본 교육을 받고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도 나오고 70년대∼80년대 그야말로 어두운 현장에서 나라를 지켜내던 사람들이 나왔다. 박정희 교육받고 전두환 교육받고 나온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했던 일들은 끔찍하지만, 그나마 노무현 교육받고 나온 사람들이 앞으로 이 사회를 장악하고 움직여나갈 시대를 생각하면 더 끔찍하다.

경영학의 시간표는 짧고, 경제학의 시간표는 그보다 조금 길지만, 교육의 시간표는 그보다 더욱 길다.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엄청나게 잘난 척하던 노무현의 교육 일정표가 그야말로 민족을 살렸던 방정환이나 주시경 아니면 이오덕 같은 분들을 키워낼 것 같은가? 내가 보기에는 만 명을 먹여 살린다고 뻥치고 사기치는 수많은 사기꾼들을 키워낼 것 같은데...

그래서 뒤늦게라도 이오덕 선생님의 글들이 더욱 소중하고, 그 인생의 의미가 깊어 보인다. 교육개혁? 등록금부터 낮춰라. 경제 망한 나라라고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멕시코도 국립대학의 1달러 미만의 대학교육 체계를 아직도 지키고 있는 나라이다. 교육개혁 한다고 등록금부터 올리는 노무현 류의 주장은 정말 우습고, 그게 맞는다고 끄덕거리면서 박수 치는 사람들도 정말 우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행성 게임도 게임&quot;이랄 땐 언제고...

사행성 게임도 게임"이랄 땐 언제고...
도박 '진흥'에 열올린 국회는 책임없나
정부 '규제' 주장에 퇴짜 놓은 문광위... 거액의 후원금까지 받아
텍스트만보기   박형숙(xzone) 기자   
개집의 종류.. 2006/08/23 오후 5:15:51
명예의 전당사고뭉치(chookk7)   조회 1627, 찬성 29, 반대 3


출처:
http://agorabbs4.media.daum.net/griffin/do/kin/read?bbsId=K150&articleId=134645

이곳에 올린것을 어떤분이 폴리티즌 사랑방에 올려 놨길래 퍼왔습니다. 하하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틀스 전작품, 디지털化 거쳐 재발매

9월과 11월,  내년 2월

'Please Please me 'With The Beatles' 'A Hard Day's Night' 'Beatles For Sale'

'Help!'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Magical Mystery Tour' 'Yellow Submarine' 'Abbey Road' 'Let It Be'

 

비틀스 전작품, 디지털化 거쳐 재발매

김원겸 기자 | 07/06 14:34 | 조회 270

이 기사의 태그

태그란?
image


비틀스의 모든 앨범이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재발매된다.

EMI뮤직코리아는 "비틀스의 모든 타이틀이 리마스터링 작업을 통해 오는 9월과 11월 그리고 내년 2월 등 모두 3회에 걸쳐 전작 재발매된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비틀스 레이블 애플 레코드는 디지털 음원 서비스를 위해 전곡을 디지털 마스터링 중이라고 발표했다. 아직 정확한 디지털 서비스의 날짜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밝힌 비틀스 전 타이틀 리마스터링 앨범 발매는 벌써부터 전세계 비틀스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EMI뮤직코리아는 "총 3회에 걸친 리마스터링 앨범에 관한 세부 리스트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63년 'Please Please me'로 데뷔한 비틀스는 1970년 해체하기까지 'With The Beatles' 'A Hard Day's Night' 'Beatles For Sale' 'Help!' 'Rubber Soul' 'Revolver'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Magical Mystery Tour' 'Yellow Submarine' 'Abbey Road' 'Let It Be' 등 수많은 앨범을 발표했다.
<사진=비틀스가 1969년 9월 발매한 'Abbey Road' 앨범 재킷표지.>



<저작권자ⓒ '리얼타임 연예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광복절 아침에 길을 묻다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

국가 사멸론 vs 국가 폐지론?

 

 

광복절 아침에 길을 묻다 “왜 지금 아나키즘인가”

[8.15 기획-아나키즘①]개인의 자유 바탕 소규모 공동체 지향 세계화 시대 대안 부상
입력 :2006-08-14 16:51:00   김세옥 (okokida@dailyseop.com)기자
세계화와 함께 그에 대한 저항 움직임이 거센 최근 몇 년간 진보진영의 학자 및 운동가들 사이에서 아나키즘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아나키즘학회가 창립돼 연구 활동이 시작됐으며, 최근 3년 동안 발간된 아나키즘 관련 서적은 지난 20년 동안 발간된 책의 수를 상회한다. 또 영화와 문학 등 예술작품에서도 아나키적 코드를 찾는 게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이처럼 아나키즘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세계화에 맞서는 소규모 공동체 운동과 자율적 공동체 지향하는 아나키즘 소통

▲ 지난 2005년 열린 3.20 반전평화집회의 풍경(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자본주의와 함께 양대 산맥처럼 세상을 떠받치고 있던 마르크스주의가 1980년대 말 붕괴하면서, 진보진영은 이를 대체할 사상으로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을 조금씩 높여오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 여김과 동시에 이를 억압하는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아나키즘은 당시 마르크스주의와 함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사상으로 각광받았다. 실제로 일제강점 당시 독립운동에 나섰던 신채호, 이회영, 박열, 김산 등의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아나키스트였다.

하지만 해방 직후 아나키즘은 겨울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권위를 부정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아나키즘이 중앙집권적인 조직력이 강한 마르크스주의와의 경쟁에서 패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에 대안이라던 마르크스주의가 결국 똑같은 작동원리로 개인을 괴롭힌다고 비판했다.

아나키즘이 겨울의 시대를 보내고 있던 가운데, 자본주의와 함께 세상에 대한 지배체제를 나눠왔던 마르크스주의가 1980년대 중반 무너지고 자본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지구를 서서히 휩쓸기 시작했다.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개발·개방논리에 따라 작동하기 시작했고 환경오염, 빈부 격차의 심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분쟁 등은 당연한 듯 뒤를 따라왔다.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1990년 이후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의 소규모의 생태운동과 대안교육운동 등의 공동체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개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한 자율적 공동체주의를 말하는 아나키즘의 이론과 생활·행동 양식은 이러한 흐름과 맞물려 저항논리로, 세계화의 대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농민 이경해 씨가 지난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제5차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서 농산물 개방 반대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강압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인 직후, 미국의 신문 <뉴욕타임즈>는 “세계화가 아나키즘을 부활시켰다”면서 아나키스트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실제로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나이키, 맥도널드 등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본주의 기구들과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계인의 저항의 현장은 물론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등에 반대하는 국제 평화집회에서도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아나키스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국내 역시 마찬가지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시위, 용산미군기지 평택이전 반대시위 현장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시민운동, 알게 모르게 아나키즘에서 이론적 근거를 찾고 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국내 시민운동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환경과 인권, 노동 등 여러 분야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과 이 같은 활동과 무관한 개인들이 모여 지난 2월 발기인 대회를 연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향한 연대(사람연대)는 ‘사람’, ‘자연’, ‘평화’를 주요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 모임에 참여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사람연대가 내세우는 가치들은 자유와 자치, 자연을 강조하고 있는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정부분 맥이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시민운동이 대놓고 아나키즘의 가치와 궤를 같이 한다고 말하진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상당히 많은 부분 이론적 근거를 그곳(아나키즘)에서 찾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이 자유주의에서 자신들의 대안을 찾는 것과 같은 맥락이란다.

고(故) 이경해 농민이 목숨을 끊은 멕시코 칸쿤에서 지난 2003년 열린 반(反)세계화 시위에 참여했던 농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흔히 노동자·농민·서민들이 잘 사는 사회를 얘기하며 거대한 자본과 싸우고, 조직적으로 대응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됐을 때 무력함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만난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스스로의 자유를 위한 즐거움을 찾아가는 일상적 행위로 여기고 있었고, 그만큼 즐거워 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나키즘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측면에서 그들이 갖는 생명력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15일 아나키스트 항일투쟁 특별기획전 개최

▲ 박열의 옥중모습 ⓒ독립기념관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이 광복 61주년을 기념해 15일부터 내달 30일까지 아나키스트 항일투쟁 관련 특별기획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아나키스트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정부기관 주최의 첫 행사로 민족주의, 사회주의 계열과 함께 일제시대 독립운동의 3대 축 가운데 하나였던 아나키즘이 정부가 없는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조장하며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폭력주의, 사회주의의 아류 등으로 취급되면서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사실상 잊혀진 채 방치된 데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전시에서 아나키즘 운동의 태동부터 국내와 일본, 중국에서 전개된 아나키즘 운동의 실상을 알아보고 , 한인 아나키즘 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피기 위해 관련한 미공개 자료 60여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선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다 발각돼 22년 동안 옥살이를 한 아나키스트 박열이 옥중에서 사용한 노트와 출옥 후 일본에서 발간한 잡지 ‘신조선’ 창간호, 그의 아내이자 일본인 여성 아나키스트였던 가네코 후미코가 간행한 잡히 ‘흑도’, ‘후토이센징’ 등이 소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채호가 대만에서 체포된 후 취조를 받았던 일본 지룽 수상 경찰서 터와 취조내용이 실린 대만일일신문의 기사 등도 전시될 예정인데, 이들 자료가 국내에서 소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밖에도 남화한인청년연맹 단원인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등이 벌인 주중일본대사 아리요시 아키라 처단 기도사건과 다물단원의 일제밀정 처단 등과 관련한 사진과 유품 등도 전시된다.

독립기념관 측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이들 아나키스트들이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제자리를 찾길 바란다”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중프라이즈 펌 : 진중권 대담 전문,&quot;우리 논쟁은 청동기 수준&quot;

글이 짤렸다. 왜일까? 모르겠다. 전문은 아래 링크

http://www.joongprise.com/bbs/view.php?id=best_1&no=2660

 

뭐 그런 익히 주지하는 내용이다. 우리에게는 형식만 있을 뿐 내용이 없다. 단지 민주주의의 형식뿐

 

원문에서 최근 독일 사형제 폐지 논쟁을 죽이는 예로 들었다. 독일에서 누군가 “누가 다른 인간에게 다른 이의 목숨을 뺏을 권리를 줬는가” 하면, “그럼 누가 다른 인간에게 인신을 구속할 권리를 줬는가” 하는 반론이 나온다.

우리 코리아의 경우. 사형제 폐지하자고 하면, “XX야, 니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 할래” 한다. 그 뒤에 봉건적인 처형 방법이 뒤따른다. 능지처참을 해야 한다, 육시를 해야 한다는 등등. 차이가 있다.

좋지 않은 일에는 ‘원인’을 찾기보다는 ‘범인’을 찾고, 좋은 일에는 ‘원인’ 대신 ‘은인’을 찾는다. 이러한 의인법 접근은 청동기시대 대표적 코드이다.

 

 

 

제목 : 진중권 대담 전문,"우리 논쟁은 청동기 수준"
한겨레   2006-08-13 15:10:11, 조회:13, 추천:1
내려받기 진중권_1.jpg ( 46.2 KB ), 받기횟수 : 0

“공적인 글쓰기 더 이상 않겠다”고 선언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 … 군중독재에 환멸, 인터넷을 철학적으로 사유하는 일에 집중할 것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2005년 여름부터 1년 동안 를 진행했던 시사평론가 진중권(43·중앙대 및 카이스트 겸임교수)씨가 최근 “공적인 글쓰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8월3일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손석희처럼 하지는 못하겠더라


“나는 썩어가고 있다. 이제 내 자신을 배려해야 한다.” 최근 저서에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도 여전한가. 공적인 글쓰기를 당분간 그만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 지금도 디프레션 상태다. 자기의 감정이나 정서를 그동안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10년 동안 글과 말을 통해 내 얘기를 했는데 지칠 때도 됐다. 방송일 하면서는 하루 4시간 정도밖에 못 잤다.

대한민국에서 논객을 한다는 게 그렇게 피곤한 일인가."


= 논객은 특정 사안에 대해 팩트를 점검한 뒤에 견해를 세워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팩트를 취합하는 과정부터가 쉽지 않다. 보도된 기사를 못 믿는 경우가 많다. 기사를 믿고 논평을 했다가 ‘물먹은’ 적이 종종 있었다. 아침에 특종하고 점심 지나면 오보로 된다. 비스마르크가 “어떤 견해든지 다른 견해와 부딪치기 전까지는 믿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기사이든 논조가 다른 신문을 볼 때까지 그 기사를 믿지 말라”고 해야 할 판이다.

기사의 신뢰성 문제뿐만 아니라 사실(팩트)과 견해를 섞어 쓰는 보도 태도가 일반화한 점도 논점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줄 것 같은데.

= 그렇다. 사실 기자들이 아무리 팩트만 전달한다고 해도 그 안에는 이미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다 견해까지 섞어 쓰는 건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기자들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사람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한다. 기자는 원래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지 간에 판단을 내릴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필수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빠질 때가 있다.

방송사가 논객을 사회자로 쓴 이유는 논객의 정체성이 도드라져 보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을 텐데 방송사의 의도를 충족시켜줬다고 보는가.

=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낼 때 내가 준비한 말들을 했다. 그러니까 오히려 인터뷰는 너무 무난하게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손석희씨처럼 하지는 못하겠더라. 질문할 때 보면 좀 무섭지 않나. (웃음) 꼭 검사가 취조하듯이 하지 않나. 나는 성격상으로도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보다는 1년 365일 내내 하루에 하나 이상의 견해를 세운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한국에서 논객을 하는 것과 다른 사회에서 논객을 하는 것이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나.

=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 살아보면서 그들은 다른 자본주의에서 살고 있다고 느꼈다. 훨씬 더 정의로우면서도 자유롭고 효율적이었다. 북유럽은 또 다르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 ‘섬’이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할 기회가 적은 편이다. 가끔 해외여행 가는 것은 비교의 기회라고 하기 힘들다. 한국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보편적인 것도 있지만, 어떤 것은 정말 특수한 것도 있다. 우리는 특정한 부정적인 면도 ‘세상이 다 그럴 거야’라고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삶을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늘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게 된다. 한국 사회가 보수적이라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외국과 접촉이 적었다는 데 있다. 최근 세사만 봐도 외국과의 접촉이 불행한 결과만을 가져왔다. 마음속의 쇄국주의는 여전하다. 내가 이런 얘기하면 또 “당신이 외국물 얼마나 먹어서 그런 얘기 하느냐”거나 “선진국 잘사는 것 누가 모르냐”고 한다.


‘노빠+박빠=황빠’에 나치를 떠올려


지금까지 대중을 설득해온 당신의 스타일은 성공적이었나.

= 내 글에 대한 반응은 항상 비슷했다. 속 시원해서 좋다거나, 격렬하게 항의하거나. 나는 글을 써도 구술성을 늘 염두에 둔다. 말하듯이 쓰는 것이다. 텍스트 문화가 가지는 비판성과 합리성에 더해 구술적 요소와 놀이 요소를 결합하려고 노력했다.

황우석 사태 때 황우석 지지자들로부터 고초를 당하지 않았나. 지방 강연회에 갔다가 감금까지 당했는데.

= 강연회 때는 이미 논문이 조작됐고, 줄기세포는 없는 것으로 확인된 뒤였기 때문에 오히려 괜찮았다. 상황을 즐길 수 있었다. 이런 일도 다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VIP가 되어서 전경들 호위를 받는 호사도 누렸다. 그런데 한창 사건이 진행될 때는 팩트가 없어서 힘들었다.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가만히 있고, 한나라당을 비판하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좋아하는 게 정석인데 이 사건에서는 그야말로 ‘노빠’와 ‘박빠’가 ‘황빠’로 뭉쳐서 한목소리를 냈다. 90%의 압도적 다수였다. 파쇼적, 나치즘적 상황이었다. 군중의 독재를 느꼈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느낌이 드니까, 말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군중 독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 성찰이 없어서다. 민주주의라는 형식은 있는데 성찰이라는 내용이 없다. 인터넷은 민주주의를 확장시킬 수도 있지만, 군중독재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 인터넷을 통한 토론과 논쟁이 처음 선보일 때, 그러니까 안티조선 운동이나 노사모 운동 초기에 인터넷 논쟁은 수준이 높았다. 예의를 지켰고, 당파적 입장을 가능한 한 인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담론’은 없고 ‘세론’만 있다. 세론에는 민중의 정서가 정직하게 녹아 있는 반면 정제돼 있지 않다. 그런데 ‘먹물’들은 세론의 영역에 안 들어온다. 대접도 못 받고 함부로 다뤄지니까. 나야 낯짝이 두꺼우니까 잘 견뎠지만, 섬세한 사람들은 못 견딘다. 담론은 사라지고 세론만이 남은 이유다. 그러니까 수준 낮은 얘기가 난무한다. 곰이 왜 나무에 올라갔을까, 노무현 때문에. (웃음) 그런 식이다. 노무현이 뭘 잘못했느냐 하는 식의 진지한 논쟁이 없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거는 없고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이야기들이 대량 유포된다. 대표적인 게 의인법이다. 좋지 않은 일에는 ‘원인’을 찾기보다는 ‘범인’을 찾고, 좋은 일에는 ‘원인’ 대신 ‘은인’을 찾는다. 청동기시대 코드다.

수준 높은 논쟁은 사회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한국 사회에는 생산적인 논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 구술문화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고 본다. 서구는 구텐베르크 혁명 이후 합리론, 경험론 등 문자문화 코드의 전통이 오래됐지만, 우리는 이제 50년이 넘었다. 감정을 억제하고 합리적 토론을 통해 생산적 결론을 내는 문화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터넷이 전면적으로 들어왔다. 인터넷은 문자문화에 비해 감정적이고 정서적이며 친교적이다. 그래서 토론 양태도 다르다. 최근 독일에서 이뤄진 사형제 폐지 논쟁을 봤다. 누군가 “누가 다른 인간에게 다른 이의 목숨을 뺏을 권리를 줬는가” 하면, “그럼 누가 다른 인간에게 인신을 구속할 권리를 줬는가” 하는 반론이 나온다. 우리 경우를 보자. 사형제 폐지하자고 하면, “XX야, 니 딸이 그런 일을 당해도 그런 말 할래” 한다. 그 뒤에 봉건적인 처형 방법이 뒤따른다. 능지처참을 해야 한다, 육시를 해야 한다는 등등. 차이가 있다.


개똥녀, 조지 오웰을 뛰어넘었다


우리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건강하게 양립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공공성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소통할 수 있고 효율성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공공성의 영역을 당파성이 장악하고 있다. 진보 역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어야 한다. 낡은 담론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마련하는 데 힘써야 한다. 여전히 농경사회 언어나 산업혁명 시대의 언어를 써서는 정의로우면서도 경쟁력 있는 사회를 꿈꿀 수 없다.

미디어 미학에 전념하겠다고 했는데.

= 3세대 미디어인 인터넷 등의 변화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진보의 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진보사관이라는 게 텍스트 문화다. 피억압자의 기억을 조직해 더 나은 세계를 후손에 물려주자, 그러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자는 논리가 진보사관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시간은 가역적이다. 텔레비전 시간 놓쳐서 못 봤더라도 인터넷 클릭하면 볼 수 있다. 현재중심적이다. 이순신, 주몽 같은 신화적이고 판타지적인 세계가 펼쳐진다. 문자문화보다 더 나아갈 수도 있지만, 후퇴할 수도 있다. ‘개똥녀 사건’을 보라. 조지 오웰 버전을 뛰어넘었다. 빅 브러더가 모두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스몰 브러더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를 보여줬다. 다른 곳에서는 안 일어나는 일이다. 이론적으로 해명할 일이 많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진중권 “인터넷 물 흐려져…초기 노사모가 좋았다”

진중권 “인터넷 물 흐려져…초기 노사모가 좋았다”
“정치평론 신뢰 잃어…노빠가 황빠된것, 초동판단 실수”
입력 :2006-07-30 13:22:00   이응탁 (et-lee@dailyseop.com)기자
‘논객’ 진중권은 이제 정치 평론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까?

한번 논쟁이 붙으면 치열하게 싸우고야 마는, 그래서 ‘싸움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진중권씨가 “앞으로 공적인 성격의 글쓰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다.

그는 최근 ‘진중권의 SBS 전망대’를 진행하던 시절 썼던 칼럼들을 묶어 책으로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썼던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들이다.

‘첩첩상식’(새움)이란 이 책은 ‘가해자’부터 ‘황우석’까지 161개 키워드로 구성돼있다. 그는 처음 책 발간을 제안 받았을 때 “이미 방송을 통해 흩어진 말들을 책으로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생명력이 짧은 말들에 ‘시간적 지속성’을 더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래서 책 서문의 제목이 ‘흩어진 말들의 무덤’이다.

26일 늦은 오후에 서울 신촌의 한 오래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맥주에 계란말이를 곁들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그는 “비행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답했다. 비행(非行)?, 비행(飛行)?

“일주일에 몇 번 화성에 내려가서 비행기를 탄다”고 말한 그는 방송 진행할 때 번 돈으로 자동차 대신 경비행기 한 대를 샀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경비행기의 이름은 ‘포르코 로소’(Porco Rosso·붉은 돼지)라고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붉은 돼지’의 그것이다.

‘까칠한’ 오프닝·클로징 멘트 사이의 ‘밋밋한’ 인터뷰…“진행의 공정성과 색깔 사이에 충돌”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지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지난 1년간의 라디오 방송 진행에 대한 자평을 부탁했다.

“초보자였죠.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논객으로서 색깔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과 방송의 공정성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정하기 힘들었죠.”

그의 방송은 앞뒤의 명확한 색깔을 가진 멘트들에 비해 정작 인터뷰는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가 인터뷰를 좀 해봤는데요, 인터뷰어가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논쟁을 걸면 피곤하더라고요. 전에도 한 인터뷰에서 그래서 ‘지금 내 의견 들으러 온 거냐, 아니면 논쟁하러 온 거냐’며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자체가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기 때문에 인터뷰 자체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들어주자는 개념으로 갔습니다.”

그는 ‘밋밋한 인터뷰’에 대해 이같이 해명하며 “판단은 청취자가 하게끔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앞뒤에 논평을 넣은 것에 대해서는 “색깔을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다”며 “논객으로서 제일 좋은 것이 칼럼 쓰듯이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거의 매일 칼럼 쓰듯 멘트를 쓰는 것에 대해 “힘들었다”고 토로하며 “전날 시사를 점검하고 그 가운데 쓸 것을 선택해서 견해를 세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답했다.

특히 그는 ‘글말’인 칼럼과 ‘입말’인 방송 멘트의 차이가 있어서 더욱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람이 글을 읽는 것과 말로 듣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글은 늘 시간을 가지고 읽지만 말은 한번 지나가면 끝이죠. 그래서 난이도에서 더 쉬워져야 하죠. 마음껏 수사학을 발휘할 수도 없고... 또 한편 청취자의 무차별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 같은 경우에는 글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저와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인데, 방송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어느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많은 부분 공유가 돼야 가능합니다.”

도올 김용옥의 막말 사고, “황당하고 아찔했다”… 강정구 교수와 논쟁 “역사관의 충돌”

‘SBS 전망대’는 생방송이다 보니 간간이 방송사고(?)도 있었다. 그 중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도올 김용옥 씨의 막말 파문이었다. 김 씨는 지난 3월 새만금 사업과 관련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표현해 물의를 일으켰었다.

“황당했죠, 그렇게 해버리니까. 어떻게 수습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요. 그런데 좀 이따가 쪽지가 하나 들어오더라고요. 마지막에 끝날 때 사과 멘트를 날리라고. 그래서 그래야 되는구나 하고 했죠. 정말 황당했습니다.”

진씨는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며 김 씨에 대해선 “퍼포먼스의 성격이 짙다”며 “김용옥 씨 경우는 삶이 반, 연극이 반인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출도 잘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그것이 대의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나쁜 것은 아니다”고 평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이외에 허태열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과의 일화도 있었다.

지난해 9월 방송 인터뷰 중 진씨는 허 전 사무총장에게 “2000년 총선 때 ‘부산의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사업 수완이 있어도 이제는 틀렸다. 앞으로 우리 딸들이 비굴하게 남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당황한 허 전 사무총장은 “그것은 시민단체에서도 ‘이것은 허태열 의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해서 낙천·낙선 대상 후보에서 빠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허 전 사무총장은 방송 후에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진씨는 “당시 그것은 사고였다”며 웃으며 답했다.

“작가가 전날 우리만 보는 게시판에 인터뷰 문항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그걸 보고 제가 질문을 하는데, 제가 문제의 질문을 추가로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대방에게는 반영이 되지 않았던 거죠. 전 그게 반영된 줄 알고 질문을 했죠. 그러다보니 그게 돌발질문이 된거죠.”

진씨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그 정도는 변명을 해내지 않느냐”며 “그 정도 변명을 들어줄려고 가볍게 한 것인데, 상대가 당황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방송 중 일화로 ‘GP 총기 난사 사건’ 때 피해를 입은 병사의 부모와 전화통화를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 부모와 통화를 하는데 말을 하지 못하시는 겁니다. 감정이 격해지니까. 거기에 저도 동조가 되고 울먹울먹 목이 메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회자는 멘트를 날려야 하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런게 기억에 남습니다. 가슴이 아프죠.”

진씨는 이외에 강정구 동국대 교수와 논쟁한 일 등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통일전쟁’이 가지는 의미는 평가적 의미와 기술적 의미 2가지가 있다”며 “평가적 의미에서는 통일은 해야 하고 그래서 전쟁은 정당하다는 의미가 있고, 기술적 의미에서는 통일을 하려고 전쟁을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 양자를 섞어놓으면서 배후에 당연히 해야 하는 전쟁이란 전제가 깔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논쟁이 서로의 역사관이 충돌한 것이라고 평했다.

“황우석 박사 독하더라”…‘추적 60분’과 ‘PD수첩’ 비교 발언 유감 표명 “내 사과 아니다”

진씨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우석 사태였다”고 책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게 황우석 사태에 대해 묻자 대뜸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라는 답부터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까 2005년 5월에 벌써 황 박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코멘트를 했더라고요. 그게 ‘생명과학과 생명윤리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었죠. 나중에 MBC ‘PD수첩’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PD수첩’을 옹호해야 했습니다. 올바른 지적을 했으니까요. 이후 이 문제가 논문 진위를 검증하는데 까지 간다고 들었을 때, 사실 안 믿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PD수첩이 논문까지 검증하려 해서 짜증난다’고 했는데, 그걸 당시 박기영 보좌관의 허위보고한다고 판단하고 논평을 했습니다. ‘사이언스’에 논문까지 통과됐는데, 그걸 검증한다는게 황당하더라고요.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걸 보니까, 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이거 잘못하면 다 작살나는구나 싶고 대책이 안서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PD수첩이 혼자 가야 한다’고 형식논리를 내세워 논평을 냈습니다.”

그는 당시를 이야기하며 사태를 길게 보고 파악할 만한 정보도 없었다면서 상당히 헷갈리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진씨는 논객이 예언자가 아니기에 드러난 사실을 가지고 논평을 해야 하는데 논문조작 여부를 판단할 ‘팩트’(fact)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폭로를 했다. 진 씨는 “그때 살았다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황우석 박사 독하더라고요. 전 그때 게임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더 끌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죽고. 저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는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보도를 접하고 나니까 이 사람 나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 씨는 지난 4월 경남 창원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감금을 당했다. 이에 앞서 진씨는 방송에서 “MBC ‘PD수첩’과 KBS ‘추적 60분’ 수준이 차이가 나도 너무나 난다”고 말했다가 이틀 후 방송에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방송 후 전화가 왔는데 첫 마디에 ‘글을 참 싸가지 없이 쓰셨네요’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고소를 하겠다는 겁니다. 사과를 하라고 하는데 사과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방송에서도 동업자 의식은 있는가 봅니다. ‘그 발언은 그쪽(KBS 추적 60분)에서 들으면 기분이 나빠할 것이다’고 ‘SBS 전망대’팀에서 말해서 ‘그럼 하나 써달라’고 해서 써준 대로 (사과문을) 읽었습니다. 내 사과는 아닙니다.”

지난 4월 감금당했을 때 어땠는지도 물었다.

“그 때는 솔직히 상황을 즐겼습니다.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는 힘들었고 이후에는 사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팩트가 있는데 어떡할거냐는 생각을 했죠. 그 때 전투경찰의 호위를 받아보는 호사(?)도 누려보고……. 강연장에는 한 스님이 들어와 목탁을 치고 있었는데, 그걸 보자니 살바도르 달리도 만들어내지 못할 그런 초현실주의적 상황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는 이른바 ‘황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아마 종교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소위 ‘노빠’와 ‘황빠’가 일정부분 겹치는 것이 국익, 애국심, 국가적 자존감이란 부분에서 겹쳐서 그런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에 대해 “‘박빠’(박근혜 지지자)가 ‘황빠’가 된 것도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노빠는 그게 아니다”라며 “‘박빠’와 ‘노빠’는 코드가 약간 다른데, 이 사람들은 초동 판단을 잘못했다”고 설명했다.

초동 판단의 실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황우석을 믿어버린 것이죠. 딱 보다가 이에 아니다 싶으면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겁니다. 그러다보니 ‘박빠’보다 더한 ‘황빠’가 된 거죠. 코드가 달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코드가 같아졌습니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정책 중에 IT, BT 육성이 있었는데, IT가 진대제라면 BT는 황우석이었죠. 그런데 이게 어그러지니까…….”

그는 “또 하나 문제가 ‘논객’이나 ‘먹물’들의 역할인데, 그 때 누군가가 몰매를 맞아도 ‘이 길로 가면 죽는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잘못됐다”며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동질화되다 보니 수정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진씨는 또 “자꾸 그러다 보니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음모론과 같이 주관적으로 무엇을 자꾸 만든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판단의 틀을 만들고 주관성의 세계에 스스로 빠졌다”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과 인터넷 문화, 옳은 이야기해도 먹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에게 ‘공적인 글쓰기를 못할 것 같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물었다.

“정치적인 글쓰기,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로서의 글쓰기를 안 한다는 겁니다. 글쓰기는 거의 10년 가까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주장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하고 나서 또 해야 되고 하는 부분에서 지칩니다. 밀린 작업도 많고요.”

그는 또 “인터넷의 물이 많이 흐려졌다”며 “옳은 이야기를 해도 먹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노사모와 안티조선 운동할 때가 인터넷 문화 전성기였다”며 “그 때 인터넷은 토론과 오락의 마당이었고, 즐거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 평론에 대해서도 “정치 평론이 신뢰를 잃은 것 아니냐”며 ‘카산드라’(Cassandra)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로,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인 아폴로에게 예언능력을 받았지만 이후 아폴로는 그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자 않자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는 트로이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트로이는 그리스군에 의해 함락됐다.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세력에 많이 이용당하는 거 같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기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매체의 입맛에 맞게 쓰고, 매체가 불러주는 대로 쓰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맥주 1병과 계란말이로 시작된 이날 인터뷰는 제육볶음으로 안주가 바뀌고 맥주 몇 병을 더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친일파 재산 환수 57년만에 재개

관심있는 것은 맨 아래 베스트 글

초딩들의 문제는 이땅에서 내 몸뗑이 귀찮은 것 피하고 편리한 것만 찾을 뿐 블란서, 독일 등 세계사적 비교가 안된다는 것

그러니 한국적 민주주의(=유신) 같은 개소리가 나오지

 

 

 

친일파 재산 환수 57년만에 재개
[SBS TV 2006-08-13 21:20]    
- 친일 반민족 행위자 400여명 우선 대상 -



<8뉴스>

<앵커>

지난 49년 반민특위 해체 이후 57년만에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이 다시 시작됩니다.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활동이 오는 18일부터 본격화됩니다.

신승이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친일재산조사위원회는 앞으로 4년에서 길게는 6년 동안 친일파 재산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국고 환수 작업을 벌입니다.

조사위는 을사오적과 정미칠적 등 명백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 400여 명의 재산을 국고 환수 우선 대상으로 정했습니다. 

[장완익/'친일재산조사위' 사무국장 : 당연히 몰수됐어야 될 재산에 대해서 오히려 우리 정부가 너무나 늦게 재산권 행사를 하는 것이라고 봐야될 것입니다.]

특정 재산이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됐다는 사실이 조사 절차를 통해 확인되면 소유권 이전등기같은 방법으로 해당 재산을 국고에 환수한다는 방침입니다.

9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과반수 출석에 다수결 방식으로 국고 귀속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조사위는 공식 출범에 앞서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과 이재극, 민영휘 후손들의 재산 네건에 대해 본격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또 송병준 후손의 땅과 지차체에서 의뢰한 서너건의 재산에 대해서도 사전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제헌국회 당시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반민특위는 큰 성과없이 1949년에 해체됐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친일파 재산환수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부 각부처가 참여하는 조사위가 구성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습니다. 

신승이 seungyee@sbs.co.kr



올 여름 폭염 "광복절 이후 한풀 꺾인다" 친일파 재산 환수 57년만에 재개
"PC 프로그램 다운로드 조심하세요" [U포터] 땅위를 가는 27t급 튜브배
SBS TV 기사목록 | 기사제공 :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블로그/카페 담기 질문하기

네티즌 의견
전체(1176) 트랙백(8)
조회   추천 작성일
  nicejisung
조선일보의 내일자 제목이 궁금한가?[307] 3349 732 08/13 22:4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