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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영국사회와 노동계급 ─ 사회사적 개관 | 제삼노총 정책기획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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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호-157-184-논문-이영석,_현대_영국의_노동계급.hwp
 

현대 영국사회와 노동계급 ─ 사회사적 개관*

이  영  석**1)


1. 머리말

2. 번영의 시대와 노동의 변화

1) 경제성장의 두 측면

2) 노동계급의 생활수준과 정체성 변화

3. 노동조합과 정치

4. 장기불황과 신보수주의 개혁

5. 음울한 풍경화


1. 머리말


1945년 이후 영국의 쇠퇴는 세계체제 중심국가의 전락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은 아시아-아프리카를 휩쓴 탈식민지화 운동으로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었다. 전후 ‘번영의 시대’에 영국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고 생활수준도 높아졌지만, 그것은 독일․프랑스와 같은 경쟁국들의 번영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진 것이었다. 특히 1차 석유위기와 더불어 시작된 장기불황은 영국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이 시기에 노동계급 또한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전후의 경제성장과 사회복지제도의 확대로 노동계급은 이전보다도 더 안정된 고용과 높은 생활수준을 누렸다. 노동계급은 아직도 작업장에서 그들만의 관행과 조직노동운동을 유지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잃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양차대전 사이에 진행된 것으로서, 주거․보건․교육 여건의 향상과 더불어 심화되었다. 그들의 여가 또한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성격보다는 소비사회의 일반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한편 번영의 시대에는 정부와 전국적인 노동자조직 사이에 집단교섭과 정책결정의 합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이 생산성의 정치는 일종의 코포라티즘(corporatism) 체제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북유럽이나 독일의 제도에 비해서 더 취약한 것이었다 특히 노사교섭은 1960년대 중엽 이래 집단협상 대신에 개별 작업장에서 직장위원(shop steward)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번영의 시대에 노동계급이 누렸던 직업의 안정과 단체교섭력은 장기불황 및 보수당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급속하게 약화되었다. 대처 정권 아래서 노동자들은 높은 실업과 생활수준 악화를 겪었다. 보수당 정부는 일련의 노동입법을 통해서 전통적으로 자원주의(voluntarism)에 토대를 두고 발전해온 노동조합을 약화시켰다. 조직노동운동의 전망은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불투명해졌다. 영국의 노동계급은 1980년대 이래 ‘효율성’과 ‘생산성’의 구호 아래 거의 모든 기업에서 진행중인 노동과정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2차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영국 노동계급의 변화를 개관하는 데 목적을 둔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적지 않은 위험을 수반한다. 이 시기의 노동사 분야는 19세기에 비해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편적인 주제들에 대한 개별 연구가 있기는 하지만, 에릭 홉킨스(Eric Hopkins)의 최근 저술1)을 제외하면 노동계급의 사회사라고 할 수 있는 종합적인 작업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이 글에서는 홉킨스의 저술을 토대로 하면서 최근의 경제사 연구와 사회조사 결과, 그리고 산업관계론(industrial rela-tions) 분야의 성과들을 참조하여 기술할 수밖에 없다. 이 글에서는 가능한 한 각 시기별로 노동계급에게 나타난 변화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측면들을 중심으로 살피려고 한다.



2. 번영의 시대와 노동의 변화


1) 경제성장의 두 측면


1945년에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계획경제와 고용 창출, 이자율 인하, 수출촉진정책 등 일련의 경제정책을 통하여 경제부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시 정부는 ‘수출이냐 아니면 죽음이냐’라는 구호를 내세울 만큼 수출을 장려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사회복지제도를 확대하였다. 노동당 정부의 경제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1951년에 노동당의 뒤를 이어 집권한 보수당 정부 또한 이전의 노동당 집권기에 이루어진 여러 경제정책을 이어받고 국민보험과 의료보험을 기본축으로 하는 사회복지제도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1950년대에 널리 쓰인 ‘버츠켈리즘(Butskellism)’이라는 말은 당시 경제정책 면에서 두 당의 차이가 별로 없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2)

1950~60년대 영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지속적인 성장이다. ‘성장’은 그 시대의 구호였다. 이 시기 경제성장의 원인에 관해서는 대체적인 합의가 있다. 우선 영국은 전쟁의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와 함께 전후 복구계획, 기계 및 생산설비의 현대화, 미국의 자본 투자, 공공지출 증가 등은 성장에 유리한 여건을 만들었다.3) 1948~60년 사이에 연평균 산업생산 증가율은 3.7%를 넘었는데, 이것은 20세기 전반에 비해서 훨씬 더 높은 수준이었다. 물론 양차대전 사이에 크게 위축된 전통적 수출산업(제철․제강 섬유․조선․석탄 등)이 다시 성장한 것은 아니다. 이들 분야의 생산은 1950년대 이후에 계속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화학․정유․전기․자동차 분야는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졌으며, 이와 관련된 가스․전기․수도․식음료․담배 분야의 생산이 급증하였다.

<표 1)> 선진 공업국의 GDP․노동생산성․산업생산 증가율  %

 

국내총생산

노동생산성

산업생산

국가

1950~73

1973~84

1950~73

1973~84

1960~73

1973~85

영국

3.0

1.1

3.2

2.4

3.0

0.6

프랑스

5.1

2.2

5.1

3.4

5.9

1.0

독일

5.9

1.7

6.0

3.0

5.5

1.1

미국

3.7

2.3

2.5

1.0

4.9

2.3

일본

9.4

3.8

7.7

3.2

12.6

3.4

자료: Kirby, “Economic Record,” p. 13에서 재작성.

그러나 전후 영국 경제의 성장은 다른 산업국가들의 성장률과 비교할 때에는 매우 낮게 나타난다. <표 1>은 1950~60년대에 영국의 국내총생산․산업생산․노동생산성 증가율이 프랑스․독일․미국․일본 등 경쟁국들의 증가율보다 낮은 수준임을 보여준다. 영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과정에서 1950년대야말로 중요한 시기인 것처럼 보인다. 이 시기에 유럽 주요국가들의 경제부흥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이다. 1950~60년대에 영국인들의 생활수준은 이전에 비해서 급속하게 높아졌는데, 노동계급 또한 전반적으로 높은 소비생활을 누렸다. 영국인들의 소비 증가는 국내 생산물보다는 값싼 수입품에 의존한 것이었다. 대다수 영국인들은 그들의 번영의 이면에 쇠퇴가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은 ‘풍요의 사회’에만 집착하였다.

경제사가들은 1950~60년대 영국 경제의 상대적 쇠퇴과정을 검토하면서 제조업의 지속적인 위축과 정부의 통화정책을 주목한다. 우선 제조업의 쇠퇴는 다른 산업국가들에 비해서 두드러졌다.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영국의 공업생산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4%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비중은 1975~7년에 평균 9.1%, 1980년대에는 5%로 하락한다.4) 물론 이 시기에 서비스 분야는 상대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경제활동의 무게중심이 2차 산업에서 3차 산업으로 급속하게 이동한 결과인가? 1960년대 이래 선진 산업국가에서 서비스 분야의 팽창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어떤 연구자들은 이러한 서비스 혁명을 탈산업사회의 불가피한 변화로 파악한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제조업의 쇠퇴를 서비스 혁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는 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영국은 이전부터 오랫동안 국제금융 및 기업 서비스 분야에서 비교우위의 이점을 누려왔다. 1960년대 이래 서비스 부문의 팽창은 영국 제조업의 쇠퇴에 따라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이다.

다음으로, 영국 정부의 통화정책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일반적으로 전후 여러 나라들의 경제정책은 케인즈적인 수요관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의 경우도 사회보장의 확대와 주택 건설 등 공공부문의 지출 증대를 통하여 수요를 확대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력한 통화긴축, 즉 디플레이션 정책을 유지하였다. 그 까닭은 1950~60년대 보수당 정부가 국제수지 균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입 증가로 국제수지가 불균형 상태에 빠지면 곧바로 통화량을 감축하였고, 불균형 상태가 개선되면 통화공급을 늘렸다. 이러한 일관성 없는 경제정책은 금융자본의 이해를 반영한 결과라는 비판이 있다. 국제수지 균형을 위해 금융제재의 강화와 약화를 되풀이하는 이와 같은 조치는 흔히 ‘스톱 앤드 고(stop and go)’ 정책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이야말로 1950년대에 영국의 국내산업이 경쟁력과 기술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5)


2) 노동계급의 생활수준과 정체성 변화


제조업 분야의 고용인구가 감소한 것은 공업 자체의 쇠퇴를 나타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생산공정의 자동화와 자동제어 시스템의 도입에 따른 변화를 반영한다. 이미 1954년 공장감독관 보고서는 공장의 자동화 과정을 언급하면서 ‘컴퓨터’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6) 이러한 자동화 추세는 주로 대단위 작업장에서 이루어졌다. 기술혁신이 급속하게 이루어진 새로운 전기․자동차․식음료 분야의 경우 특히 ‘포디즘(Fordism)’과 같은 대량생산체제가 널리 자리잡았다. 자동화와 전자제어 추세는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한 작업장에서 두드러졌다. 포디즘 아래서 작업의 단순화와 반복이 과연 어느 정도 노동자들의 스트레스를 증가시켰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전의 위험하고 불량한 작업환경과 포디즘의 역기능을 비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번영의 시대에 전반적으로 작업환경이 좋아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 추세는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전통적인 수출산업과 건축업의 경우 그 개선의 정도는 보잘 것이 없었다. 1960년대에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일련의 공장법7)이 제정된 것은 역설적으로 작업장의 위험이 산업분야에 따라 상존하였음을 보여준다.

시드니 폴라드(Sidney Pollard)의 추계에 따르면, 1970년의 주당 실질임금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1950~75년 사이에 노동자들의 임금지수는 63.5에서 115.8로 높아졌다.8) 이와 같은 번영은 지속적인 성장의 결과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까지 그 성장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고용 안정과 복지제도의 확충 때문이었다. 우선 이 시기에 실업률은 이례적으로 낮았다. 1950년대에 1.5%, 1960년대에도 2%를 조금 넘어서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9) 다음으로, 사회보장제도의 기본 틀은 전후 노동당 집권기에 의해서 세워졌다. 노동당 정부는 집권 다음해에 국민보험법(The National Insurance Act)을 개정하고 국민보건의료법(The National Health Service Act)을 제정함으로써 사회보장의 획기적인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개혁은 이미 1942년에 간행된 이른바 ‘베버리지 보고서’(Social Insurance and Allied Services)가 제시한 사회보장의 청사진을 구체화한 조치였다.

생활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노동계급의 주거환경 및 건강상태도 개선되었다. 우선 노동계급을 비롯한 서민주택 건설은 전후 노동당 정부의 우선적인 시책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1930년대에도 공공주택 건설이 대규모로 이루어진 바 있다. 노동당은 1945년 선거에서 ‘서민에게 집을’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집권과 더불어 대대적인 주택건설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정책은 의료보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건장관 어나이런 베번(Aneurin Bevan)이 입안하였다. 그는 주택공급을 원활히 하고 집세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련의 입법10)을 추진함과 동시에 주택 400만 호 건설이라는 야심에 찬 계획을 세웠다. 노동당 집권기의 주택공급 물량은 대략 97만 호로 추정된다. 원래 계획에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압박이 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베번의 주택정책은 의료보험의 경우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주택공급 정책은 1950년대 보수당 정부에 그대로 계승되었으며, 장기적으로는 노동계급의 주거환경을 크게 바꾸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11)

1950~60년대 주택공급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시기의 주택공급정책은 지방정부와 민간회사의 주택건설을 지원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초기에는 지방정부에서 건설한 공영주택의 비중이 컸으나, 점차로 민영주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12) 이것은 지방행정당국이 점차로 주택부지를 공급하고, 민간 건설업자가 주택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유도한 결과이다. 또한 보수당 정부는 공영주택의 세입자가 임대주택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금융상의 지원책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공영주택의 경우도 임대는 단기간의 형태이고 장기적으로는 개인이 분할 상환의 방법으로 매입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편 주택의 규모나 형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것은 주택보급률과 같은 양적 변화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에 기존의 서민주택을 대신하여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모델들은 이전의 주택에 비해 거실을 넓히고 주방과 욕실을 개량한 형태였다. 새로운 공영주택단지는 석탄․전기․가스를 이용한 개별 난방식에서 중앙난방식으로 바뀌었다.

노동자들의 건강상태도 이전보다 나아졌다. 그것은 생활수준과 주거환경의 향상, 의료보험제도, 노동시간 단축, 가족원 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계급 가정의 식생활에 변화가 일었던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음에도 빈곤층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론상으로는 이 시기에 빈곤선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극소수여야만 했다. 1899년과 1936년에 뒤이어 1950년에 세 번째로 요크의 빈민층을 조사한 시봄 라운트리(B. Seebohm Rowntree)는 이제 실업이 더 이상 빈곤의 기본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조사에서, 빈곤을 낳은 중요한 요인은 노령, 질병, 가장의 죽음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13) 피터 타운전드(Peter Townsend)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68년 당시 빈곤층이 전체 가구의 7.1%, 인구의 6.1%였다. 그러나 빈곤선을 오르내리는 불안정한 계층은 전체 가구의 23.8%, 인구의 21.8%였다.14) 1950~60년대에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졌음에도 빈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1950~60년대에 노동계급의 정체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노동계급의 정체성은 다른 사회세력과 그들 스스로를 구분할 만한 집단적 자의식과, 그리고 그 의식에서 비롯하는 고유의 문화형태 및 조직운동의 존재에서 찾아야 한다. 19세기 이래 영국의 노동계급은 어떤 형태이건 스스로 집단적 자의식을 쌓았고, 작업장과 사회에서 그들 고유의 관행과 문화를 나타냈으며, 조직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회세력과의 경계가 약해지고, 시민사회의 일부로 편입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 단초는 이미 양차대전 사이에 나타났는데, 번영의 시대야말로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노동계급의 정체성 변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소득 수준 향상과 교육의 영향을 주목해야 한다.

소득 수준의 변화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향상이 다른 사회세력과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갔는가 여부이다. 이를 실증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과 다른 사회세력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국민소득 가운데 각 집단들이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를 서로 비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별 소득 분포를 통해서 추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것 또한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통계치를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소득 불균형의 추이는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 연구자들은 소득배분의 문제를 다룰 때에 10% 단위로 소득분포층을 세분하여 이들 집단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서로 비교한다. <표 2>는 소득분포에서 상위 10%의 집단과 하위 20%에 해당하는 집단의 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를 살핀 것이다. 두 집단의 소득격차가 점차로 좁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과세전보다 과세 후에 상위 10% 집단의 비중이 더 낮아졌고, 하위 20% 집단의 비중은 더 높아졌다. 지니계수 또한 소득 불균형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번영의 시기에 전반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서 노동계급과 다른 사회세력의 소득 격차는 좁혀지는 추세를 보여준다. 특히 정부의 조세정책으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표 2)> 계층별 국민소득 추이  %

 

과세 전 소득

과세 후 소득

구분

1949

1964

1973-4

1949

1964

1973-4

상위 10% 계층

33.1

29.4

26.8

27.1

25.9

23.5

하위 20% 계층

5.4

5.3

5.2

-

6.5

7.5

지니 계수

-

39.8

37.0

35.5

36.6

32.8

자료: Pollard, Development of the British Economy, pp. 316-17에서 작성.

다음으로 교육은 노동계급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노동계급 출신들에게서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이 활발하게 나타났는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정교한 실증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 다만 교육제도의 변화에 따라 노동계급 출신에게 중등교육이나 고등교육의 기회가 더 개방되었는가 여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960년대에 영국 정부는 교육 기회의 확대에 관심을 기울였다. 정부는 교육을 복지국가의 주요 내용으로 인식하였으며, 18~9세까지 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층의 비율이 높아졌다. 전후에 영국은 의무교육 연한을 중등학교까지 늘리면서 공립중등학교를 세 범주로 나누어 운영하였다. 대학 진학을 위주로 하는 전통적인 문법학교, 직업교육 중심의 기술학교, 그리고 두 특징을 아울러 지닌 현대식 중학교(종합학교)가 그것이다.15) 1960년대에 영국 교육당국은 전통적인 문법학교의 특권적 지위를 없애고 현대식 중학교를 육성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것은 일반 서민에게까지 고등교육의 기회를 넓히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1960년대에 정부는 노동계급 자녀에 대한 고등교육 기회의 확대를 강조하였고, 기존의 31개 대학 이외에 더 많은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워리크, 요크, 브라이튼 등 지방도시에 ‘신대학’이 세워졌으며 이밖에 기술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고등교육기관도 증설되었다. 이 결과 1946~72년 사이에 대학 신입생은 1만 8,866명에서 6만 4,963명으로 늘었다.16) 그렇다면 노동계급 자녀들에게도 다른 사회집단에 못지 않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개방되었는가. 대학정원의 증가는 오히려 중간계급 출신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더 많이 제공했을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노동계급 자녀의 대학 진학이 늘었다고 하더라도 그 진학률은 중간계급의 경우에 비해 훨씬 더 낮았다는 것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1943~52년 사이에 태어난 노동계급 자녀 가운데 3.1%만이 대학에 진학한 반면, 전문직․행정직․관리직․감독직 가정 출신 학생들은 26.4%가 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1932~42년 사이에 출생한 노동계급 자녀의 대학진학률이 2.3%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완만하게 증가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17) 그러나 전반적으로 1960년대에 노동계급 자녀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더 넓어졌던 것은 분명하다. 

노동계급의 정체성 문제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일에 대한 태도의 변화이다. 사실 번영의 시대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이전의 관행과 규범이 이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을 주도한 것은 물론 중간계급이었겠지만, 그러한 분위기는 노동계급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노동자들에게 일은 우선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으면 낟알을 거두지 못하리라”는 성서의 구절은 오랫동안 서민의 숙명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일은 그 자체로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졌다. 특히 숙련노동자들은 오랜 훈련을 통해서 얻은 기술과 숙련에 자부심을 가졌다. 그들은 노동과정에서 자신의 정서와 가치를 반영하는 ‘규제적 관례’를 만드는 데 관심을 기울였고 그 관례들을 통하여 집단적 정체성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자동화와 전자제어방식이 주류를 이룰수록 작업은 좀더 단순하게 변하고 노동자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없다. 1960년대에 이루어진 여러 사회조사 결과들은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보여준다.18) 예컨대 1960년대 후반 루턴(Luton)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작업을 도구적 맥락에서만 바라보았다.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는 수단으로만 인식할 뿐 작업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들은 가정생활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고 집안 가꾸기와 가족간의 관계를 중시하였다. 이전의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수준도 중요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일의 성격도 소중한 것이었다. 이에 비해 루턴 노동자들, 특히 미숙련공들은 작업의 특성이나 분위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작업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노동과정과 관련이 없는 다른 요인들, 즉 고용주의 태도, 작업규율, 동료와의 친교, 노동조합의 지원 등에 좌우될 뿐이었다. 1972년 북동부 대규모 화학공업단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사회조사 결과도 비슷한 변화를 보여준다. 노동자들이 좋게 여기는 직업의 척도는 아직도 보수, 직업의 안정성, 기업복지, 작업조건 등의 차례로 나타났다. 보수와 직업의 안정성이 중시된 것은 물론 예상한 결과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직종(또는 일)의 성격과 그에 대한 흥미는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1960년대 영국 사회는 결혼과 성 관계의 패턴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혼전 동거, 이혼, 성 개방 풍조 등은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 현상이었고 이것은 노동계급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성 해방은 이러한 분위기와 맞물려 있었다. 성 개방 풍조와 함께 여성의 의상도 노브라, 미니스커트, 나일론 스타킹 등 새로운 외관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추세들 가운데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여성 취업자의 증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쟁기에도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가정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여성의 이미지는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채 빨래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그 이미지는 직장에서 맞벌이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여성의 취업 증가는 성장기의 노동력 부족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하는 데에는 내구소비재 보급, 가사노동의 감소, 피임 또는 임신중절의 확산 등도 영향을 미쳤다.

노동계급의 여가 또한 탈계급화 현상을 반영한다. 1970년 런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는 사회집단별로 여가 패턴의 차이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긴 주말에 어떻게 시간을 소비하는가. 집안에서는 텔레비전 시청, 자녀와의 놀이, 집안 가꾸기, 자동차 닦기 등의 차례였다. 집 바깥에서는 자동차 드라이브, 팝하우스 출입, 산책, 외식, 교회 예배 등이 상위 목록에 올랐다. 여가 패턴은 대체로 직업에 따른 차이를 나타내지 않았다. 다만 몇 가지 예외가 있었는데, 외식과 교회 예배의 경우 중간계급의 선호도가 노동계급보다 더 높았다.19) 여가와 문화에서 탈계급적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청년문화는 기성세대와 단절현상을 보여주는데, 젊은이들의 새로운 여가와 문화는 탈계급적 성격을 지녔다. 청년문화의 단절성은 이미 1950년대 의상의 변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몸에 달라붙는 자켓과 바지는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 앨런 실리토(Allan Sillitoe)의 ꡔ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ꡕ(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1958)은 주말을 술과 섹스로 탐닉하는 젊은 노동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20)

지금까지 노동계급의 정체성의 변화와 관련된 몇 가지 현상들을 살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구분선이 무너지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두 계급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중요한 것은 19세기 이래 노동계급의 역사에서 경험-집단적 자의식-조직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 그 고유의 패턴이 약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노동자조직과 노동운동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집단적 자의식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제도로서, 그 제도의 관행에 힘입어 작동할 뿐이었다. 루턴의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조사에서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의 의무와 원칙에 충실한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21)



3. 노동조합과 정치


번영의 시대에 노동조합과 작업장의 정치는 어떠했는가. 영국의 노동조합은 19세기에는 대체로 직종노조 또는 산업별노조의 형태였으나, 20세기에 이르러 일반노조로 변모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일반노조란 직업, 산업, 숙련/미숙련의 명확한 구분이 없음을 뜻한다. 오늘날에도 의료․교육․소방 등 사회서비스 분야의 직업별노조나 탄광과 같은 산별노조가 존속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일반노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일반노조 내부에는 몇 가지 직업과 산업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직업별 또는 산업별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60~70년대는 노동조합의 힘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던 시기이다. 우선 이 시기에 노동조합은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1950~75년 사이에 노조원은 270만 명 이상 증가하였다. 특히 조합원 수가 절정에 이르렀던 1979년의 노조조직률은 55%를 넘어섰다.22) 이러한 팽창의 배경으로는 특히 많은 노동조합이 클로즈드 숍의 원칙을 견지했다는 점과, 그리고 1960년대에는 화이트칼러 노동조합23)이 성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이 시기 노동조합의 주목할 만한 변화는 대규모 노동조합으로의 통합 추세이다. 25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거느린 대규모 노동조합은 1968년 9개, 1979년에 11개에 이르고 있다. 노동조합평의회(TUC) 산하의 이러한 거대노조는 파업이나 집단협상 또는 정부와의 교섭에서 커다란 위력을 발휘하였다. 특히 1970년대 노동당 정부 아래서 노조는 정부와의 교섭에서 노조에 유리한 일련의 입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24)

이 시기에 노동조합은 정부와의 교섭을 중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노동당 정부의 임금억제정책에 반발하여 대립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이 시기의 파업은 대부분 임금과 관련된 것이었다. 노조는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임금을 억제하려는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으로 파업을 이용하였다. 당시 정부는 임금 인상과 인플레이션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하려면 임금을 동결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였고, 노조는 노동자만의 고통 감수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노조는 그들의 임금 유지를 위해서 집단의 힘을 행사하는 길을 택했다.25) 그러나 거대노조와 노동조합평의회에서 활동하는 노조지도자의 영향력 증대는 다른 사회집단에게 달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임금정책을 둘러싸고 노조와 교섭해온 정부는 물론이고, 전문직업인을 비롯하여 중간계급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조활동 자체를 혐오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무모한 파업, 피켓팅의 폭력, 조합내 분쟁 등을 다룬 텔레비전 연속물이나 영화 또한 ‘영국병’이라는 말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노조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었다.26)

1960년대 이래 정부는 노조활동을 제약하고 노조의 힘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윌슨 내각 당시 노동부장관 바브러 캐슬(Barbara Castle)이 간행한 정부백서 ꡔ투쟁을 대신해서ꡕ(In Place of Strife)(1968)는 노조의 비정상적인 활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이 백서는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을 제한하기 위해 파업 전 냉각기와 찬반 비밀투표를 선행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안은 그후 보수당 정부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1971년의 산업관계법(The Industrial Relations Act)은 1968년 정부백서의 제안대로 파업 이전에 냉각기를 가진 후, 전국산업법정(NIRC)에 대해 필요한 경우 노조에 파업 여부를 묻는 비밀투표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물론 이 법은 노조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다음 노동당 정부 아래서 폐기되었다. 그러나 노조는 법을 없애는 대신, 정부와의 교섭에서 임금의 자발적 억제에 동의하는 ‘사회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70년대 노동조합과 정부의 관계를 일종의 ‘코포라티즘’ 체제로 파악하려는 견해가 있다.27) 일반적으로 코포라티즘 체제는 자본과 노동의 독점적(또는 전국적) 조직이 국가의 매개를 거쳐서 그들 사이의 이해를 조정하는 비의회적 방식, 달리 말하면 국가․자본․노동간의 정책형성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28)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전형적인 사례는 영국보다는 오히려 북유럽과 독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전국적 수준의 노사협상에 의해서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별 또는 전국적 차원의 강력한 노조조직, 전국 수준의 단체교섭, 안정된 노사관계를 필요로 한다. 영국의 경우는 오히려 ‘취약한 담합구조’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산업노조보다 일반노조가 지배적이고, 노동조합평의회와 같은 전국적인 노조조직이 개별 노조를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미약하며, 정부도 필요한 경우에만 이들 전국조직과 교섭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가 있음에도 번영의 시대의 영국 사회를 코포라티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이 시기에 국가와 노동 사이의 협의구조가 존속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1970년대 초반에 노동당 정부는 노사정 협의기구를 강화하고 있다.29)

복지국가의 모델을 따른 영국에서 코포라티즘 체제가 취약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연구자들은 전국적 수준의 자본가 조직이 발전하지 않았고 TUC의 대표성이 약했으며 전국적인 교섭도 주로 정부-노조의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을 지적한다.30) 여기에서 노조활동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TUC의 대표성 문제이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TUC가 산하 노조에 대해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TUC 산하의 거대노조와 개별 작업장노조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사실 1960년대 이래 영국의 노사협상은 집단교섭보다는 개별 사업장 단위의 협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급노조의 통제력이 강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경향은 ‘직장위원’의 역할 증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 점이야말로 영국 노조활동의 또 다른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직장위원의 역할 증대는 어떻게 가능했는가. 사실 1950년대 후반까지 직장위원은 사회문제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들의 성채가 굳어진 곳에서도 그들의 지위는 매우 수세적인 것이었다.31) 당시에는 공장감독관, 고용주, 노조지도자들 대부분이 직장위원을 노조 안의 사적 기구로 간주하였다. 그것은 공식적으로는 노조의 위계구조와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위원제도는 자발적인 발전, 직접 민주주의 방식, 공식적 노동조합 조직으로부터의 독립성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것은 기존 산업관계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도전”이자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의 씨앗”인 셈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이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직장위원은 “불만을 경감하는 관리적 기능”을 가진 사람이었다.32) 그들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온건한 영향력을 지녔으며, 노사관계에서 자극제라기보다는 윤활유와 같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직장위원을 중심으로 하는 비공식적 교섭의 중요성을 간파한 것은 1968년 도노번 위원회(The Donovan Commission)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는 영국 노사관계가 산업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공식적 관계와 개별 작업장에서 전개되는 비공식적 관계로 이원화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식적 제도는 “그 조합원에 대하여 그들의 결정을 지시할 수 있는 전 산업에 걸친 조직”을 상정한다. 그러나 비공식적 제도는 “개별 회사 경영자의 폭넓은 자율성과 산업노동자 집단의 힘”에 의존한다.33) 그리하여 작업장의 비공식적 노사관계를 오히려 공식적인 것으로 인정할 것을 권유한다. “직장위원을 말썽꾸러기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들에게서 가끔 말썽이 일어나지만, 좀더 일반적으로는 질서의 지지자로서 조합원에게 억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34) 보고서는 규제적 관례를 없애고 영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도 직장위원제도를 공식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다.35)

직장위원제도의 발전과 더불어 영국의 단체교섭 형태는 커다란 변화를 겪는다. 사실 2차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의 단체교섭은 노동조합과 산업의 고용주 대표가 참여하는 전국 수준의 산업별 교섭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부터 전국적 수준보다는 지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단체교섭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이와 함께 직장위원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 작업장 노조가 노사교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 시기에 노조지부의 교섭은 개별 작업장, 기업, 지역 단위의 세 가지 형태가 병렬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직장위원은 공식적인 제도로 인정받게 되었다. 직장위원은 조합원의 선거로 뽑힌 개별 작업장 노조의 대리인으로서, 고용주는 이들의 작업을 면제하고 사무실을 제공하였다. 1970년대에는 이 무급 직장위원이 노조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4. 장기불황과 신보수주의 개혁


1차 석유위기 이래 장기 침체에 빠진 영국 경제는 1978~79년에 다시 석유위기를 겪으면서 파국으로 치달았다. 파운드화의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1973~77년간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16%에 이르렀다.36) 이후 영국 경제는 두 가지 특징적인 면모를 나타낸다. 첫째, 전국적으로 제조업의 위축과 탈공업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둘째, 장기불황에 따라 실업자가 급증하고 이와 함께 전반적으로 생활수준이 떨어졌다.

먼저 제조업의 위축을 검토하기로 한다. 1차 석유위기 이후의 불황기에 제조업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었다. 1973~79년 사이에 산업 전체 생산 증가율은 1.5%, 제조업 분야의 생산 증가율은 -0.7%였다. 1979~88년 사이에도 산업 전체 생산 증가율은 2.1%였지만, 제조업은 0.8%에 지나지 않았다.37) 다른 통계들도 제조업의 쇠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1981~85년 사이에 자동차 생산량은 25% 줄었고 섬유공업의 경우 1979~81년간에 26%나 감소하였다. 공산품 수출입은 1984년경 수입액이 수출액을 초과했다.38) 제조업의 쇠퇴는 고용자 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1984~88년 사이에 영국(북아일랜드 제외) 전체 산업분야의 고용규모는 2.9% 증가한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는 제조업에서 6.1% 감소한 대신, 서비스업 분야에서 8.6% 증가한 결과이다. 제조업의 경우 지역별로 보면 스코틀랜드(-11.9%), 런던(-11%), 북서부(-10.5%), 요크셔(-8.6%) 등이 평균 감소율보다 높았다. 다만, 이스트 앙글리아만이 그 증가율이 12.1%에 이르는데, 이것은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39) 또 다른 고용통계에 따르면, 1984~7년 사이에 전체 산업 분야의 고용인구는 42만 5,000명(2%)이 늘었다. 이에 비해서 제조업은 21만 9,000명(4%)이 감소한다. 전체 고용규모 증가분은 서비스업에서 79만 3,000명(6%)이 늘어난 데 힘입은 것이다.40) 또 금세기 말까지 고용규모 변화에 대한 추정치는 더욱 더 비관적이다. 1989~2000년 사이에 제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고용자 수가 감소한다는 전망이다. 감소율은 광업 -25%, 전기․가스․수도 -25%, 식음료 및 연초 -19%, 섬유 -19%, 기계․자동차 -15%, 금속 -14%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화학 분야만이 감소율이 비교적 낮은 편인데, -2%로 나타나고 있다.41) 요컨대, 1970~80년대 영국 경제의 장기불황은 무엇보다도 제조업의 쇠퇴에서 비롯한 것이다. 물론 금융, 정보․통신, 공공서비스 분야가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탈산업화의 맥락에서 영국 제조업의 위축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

<표 3)> 실업자수와 실업률, 1960~88

시 기

실업자수(만명)

실업률(%)

1951-64

38

1.5

1964-73

58

2.3

1973-79

115

4.4

1979-88

281

10.3

자료: Feinstein, “Success and Failure,” p. 101.

제조업의 급속한 쇠퇴는 곧바로 실업자의 증가와 표리관계를 이룬다. <표 3>은 번영의 시대와 1970~80년대의 실업 상태를 비교한 것이다. 1980년대에 연평균 실업률은 10%를 상회한다. 특히 1883~86년경에는 실업자 수가 3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것은 대공황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42) 보수당 정부의 구조조정과 개혁으로 경제상황이 좀더 나아졌다고 평가받는 1990년대에도 고실업 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43)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제조업이 급속하게 쇠퇴한 지역과 일치한다. 1920~30년대에 실업자들은 섬유․석탄․제철․제강․조선 등 전통적인 수출산업에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1970~80년대에도 이런 산업분야는 다른 직종보다 그 쇠퇴의 정도가 더 심했다. 1984년의 경우 북부(18.1%), 북서부(16%), 미들랜드 서부(15.2%), 요크셔(14.3%) 등의 실업률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들 지역은 전통적인 수출산업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그 반면에 서비스업이 발전한 동남부와 이스트 앙글리아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44) 1996년의 통계에서도 전국 평균(7.8%) 이상인 지역은 북부(10.1%), 북서부(8.4%), 요크셔(8.4%), 스코틀랜드(8.1%), 웨일즈(8.4%) 등이었다.45)

1980년대의 실업자들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는 대공황기의 경우와 비슷한 특징을 보여준다. 우선 연령에 따라 실업률은 차이가 있다. 고령자와 청소년층의 실업률이 높은 편이다. 특히 노년층 실업자의 50%는 장기실업 상태에 있었다. 그 반면에 20~24세 연령층의 실업자 가운데 장기실업자는 20% 수준에 머물렀다. 미숙련노동층과 전문인력 사이의 격차도 크게 나타났다. 미숙련층의 실업률은 전문직종 종사자의 5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46)

경제불황기에 일할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982년의 한 사회조사는 실업자들의 태도에 관하여 몇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47) 면접자의 19%는 실직 후에 스스로 비참하거나 불행해졌다고 응답하였다. 17%의 면접자는 불안하고 성미가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참고 인내한다는 응답자는 15%, 아직 용기가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13%였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1930년대의 현상과 대조적인 면이 있었다. 그 시대의 실업자들에게는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침대, 공공도서관, 영화관이야말로 그들이 주로 시간을 보내는 장소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의 경우 여성은 오전에 50% 이상이 집안일이나 상점 쇼핑으로 시간을 때웠다. 그 시간대에 남자들은 집안에 있거나(20%), 상점에 들리곤 했다(20%). 오후가 되면 여성은 가사일․요리․친구 방문․사교․쇼핑․구직활동․텔레비전 시청으로, 남성은 대부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 조사결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동적이고 다양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쨌든 200~300만 명에 이르는 실업자들은 일찍이 산업혁명기에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간파했던 두 국민, 다시 말하면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특권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문제가 좀더 심각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1979년에 집권한 보수당 정부는 당면한 경제불황과 고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다. 대처 내각의 개혁의 본질은 경제주체들을 좀더 시장원리에 내맡김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었다. 보수당은 선거에서 특히 산업관계의 전반적인 개혁을 구호로 내걸었다. 이것은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노사관계를 시장원리에 충실하게 만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개혁은 당연히 이익집단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는데, 대처 내각은 국가의 재흥, 생산성과 효율성의 제고 등의 수사를 동원하여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고 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수사는 ‘빅토리아적 가치’이다. 이러한 수사는 영국인들의 복고적인 분위기에 호소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빅토리아적가치의 핵심을 이루는 ‘자조(self-help)’야말로 제도개혁의 정신에 걸맞는 것으로 여겨졌다.

대처 내각은 먼저 일련의 노동입법을 통하여 노조활동을 억압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1980년, 82년, 88년, 89년, 90년 등 5차례에 걸쳐서 개정된 고용법(The Employment Act), 1984년의 노동조합법(The Trade Union Act), 1992년의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법(The Trade Union and Labour Relations Act), 그리고 1993년의 노조개혁 및 고용권한법(The Trade Union Reform and Employment Rights Act) 등이 대표적인 입법이다. 이들 입법은 궁극적으로 노조의 파업을 억제하고 노조활동을 축소시키며 노동시장 자체를 유연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항들로 이루어졌고 점차로 그 내용이 강화되었다.48)

보수당 정부의 노동입법은 대체로 세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들 입법은 노조활동의 제약에 목적을 두고 있다. 피켓팅 제한, 2차 단체행동 금지, 파업 불참자에 대한 노조의 제재 불법화, 단체행동에 피해를 입은 시민의 소송권 등이 이에 해당한다(1980, 1992년 법). 둘째, 노조 운영방식의 개혁도 새 노동입법의 중요한 목적이다. 선거에 의한 노조간부 선출 의무화, 단체행동의 적법한 절차 준수, 노조 재정운영에 대한 감사기구, 직장위원의 작업면제 축소, 조합비의 원천공제방식 금지, 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비밀투표, 입사 전 클로즈드 숍 금지 등이 그 주된 내용이다(1982, 84, 88, 90년 법). 셋째, 새 노동입법은 노동시장에서 고용보호제도 및 규정을 철폐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임금위원회를 폐지한 것이 그 대표적인 보기이다(1992년 법). 원래 이 위원회는 노조조직률이 낮은 직종이나 산업분야의 최저임금을 정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1993년 노조개혁 및 고용권법에 의해서 26개 직종의 임금위원회를 폐지함으로써 비정규적인 노동력 또는 파트타임 노동력을 충원하는 길을 넓혔다.

이와 같이 보수당 정부의 노동정책은 산업 효율성 증대와 국제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시장경쟁을 되살리고 통화긴축을 지속하며 기업연합을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이제 이전과는 달리 정책결정과정에서 노조의 참여는 제도적으로 배제되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976~79년간에 TUC와 정부의 협의내용이 정책에 반영된 비율은 40%였다. 그러나 보수당 정부 아래서 그 비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49)

보수당 정부의 이러한 노동정책에 노동조합이 저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반발은 1984년 전후 최대의 광부 파업으로 폭발하였다. 당시 전국탄광노조 위원장인 아서 스카길(Arthur Scargill)은 생산을 줄이고 고용인력을 2만 명 줄이려는 국영탄광의 결정에 반발하여 비밀투표 없이 파업을 결정하였다. 다음해 봄까지 이르는 52주에 걸친 장기간의 파업은 결국 광부들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이 밖에 1986년 ꡔ더 타임즈ꡕ지 인쇄공들의 과격한 파업도 결국 새 경영주인 러퍼트 머독(Rupert Murdock)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신문은 인쇄공들의 독점권을 없앤 후에 완전한 전자인쇄 설비로 제작되었다. 그것은 한 시대의 종국을 뜻하는 인상적인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동의 숙련과 노동의 집단적 힘이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시장원리에 굴복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18년간의 보수당 집권기에 영국의 조직노동운동은 쇠퇴의 길에 들어섰고, 노동조합도 위축되었다. 노동조합은 1979년에 노조원 1,344만 7,000명, 조직률 55.4%를 정점으로 그 이후 계속 위축되고 있다. 1995년의 경우 조합원 727만 5,000명, 조직률 32.1%에 지나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이래 노동자 파업 또한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1991~95년 사이에 노동자 1,000명당 파업손실일수는 24일인데 이것은 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다.50) 이와 같이 조직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이 쇠퇴한 것은 정부의 반노조정책과 일련의 노동입법의 영향 때문이다. 이밖에도 고용방식의 변화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파트타임 노동자의 증가가 그것이다. 오늘날 파트타임 노동자는 전체 노동력의 25%에 이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의 노동조합은 좀더 거대한 규모로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생존의 차원에서 진행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거대노조는 대부분 활력을 잃고 있다. 이보다는 오히려 각 작업장의 직장위원이 더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실정이다.



5. 음울한 풍경화


노동에 미래가 있는가. 영국의 노동계급은 이중의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선 번영의 시대에 그들은 점차로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잃기 시작했다. 조직노동운동도 그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전개되기보다는 기존의 관행으로 움직였다.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타성화는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다음으로 영국의 노동계급은 18년간의 보수당 집권기에 일련의 억압적인 노동입법에 의해 그 대부분의 활력을 잃었다. 원래 자원주의적 노사관계의 관행에 의존했던 노동조합은 국가의 억압을 받으면서 무력하게 변했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넘어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었지만, 신보수주의 개혁과 함께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조직노동운동은 앞으로 오랫동안 이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할 것이다. 노동시장, 노동과정, 기업조직 등 생산과 관련된 모든 영역들이 유연화 과정을 밟고 있고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노동시장 및 노동과정의 유연화는 노조의 참여 없이 거의 일방적으로 추진되었다. 이제 기업들은 작업장 노사관계에서도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인적자원관리(HRM)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서 유연화 과정을 급속하게 추진한 영국은 일시적으로 경제 회복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실 영국의 거대기업들의 일부는 구조조정, 생산과정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힘입어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노동을 인적자원관리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한 장기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릴 수 없다.

오늘날 영국의 기업사회에서는 이른바 ‘유연한 회사(flexible firm)’의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이 모델의 중심노동자는 고임금과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받는다. 그들은 숙련된 매니저․디자이너․판매담당․숙련기술자로 구성된다. 그들은 고용주의 목표와 자신의 목표를 일치시킨다. 그들은 유연한 기능의 소유자이다. 달리 말하면 기술변화와 새로운 작업조직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중심노동자는 개별적인 지위와 보수체계를 가진다. 그들 주위에 회사에 직접 고용되는 제1 주변집단이 포진한다. 그들은 서기, 감독, 집합적인 작업에 필요한 반숙련 노동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외부는 제2의 주변집단인 파트타임 노동자와 단기계약자들이 둘러싸고 있다.51)

이것은 음울하고 비관적인 풍경화이다. 그리고 이 음울한 풍경화는 비단 영국의 노동계급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술혁신과 정보통신혁명이 가속화하면서, 어느 나라에서나 노동의 유연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소수의 중심노동자와 다수의 주변노동자로 분화하는 이러한 상황은 노동의 위축과 함께 전통적인 노동의 개념 또한 바꾸고 있다. 이 비관적인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이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과제이다.


/Abstract/


British Society and the Working Classes since 1945: A Social-Historical Survey


Lee, Young-Suk


This article examines how the British working classes have changed since the Second World War. Between 1950 and 1970, the British people experienced continuous economic growth and enjoyed a high standard of living. But the rate of British economic growth was not as high as in rival countries.

Economic growth and the extension of the social welfare system especially in the 1950s and 1960s enabled the British working classes to enjoy sustained employment and a higher standard of living than pre-war generations. In the process they lost their self-identity. This tendency which had appeared already between the two world wars, was accelerated by the improvement of housing, health and education systems in the 1960s.

We can see a general mood of respect for negotiation and policy making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trade unions in this affluent age. The politics of productivity meant a system of corporatism. But it is said that the British system of corporatism was weaker than that of West Germany or northern European countries. Negotiation between capital and labour was conducted not so much through national organizations as through shop stewards in each workshop. 

The sustained employment and negotiating power, which the working classes had acquired in this affluent age, declined rapidly in the 1970s. This was called “the age of the long slump.” The working classes experienced high unemployment and a declining standard of living. The conservative government attacked the traditional trade unions which had developed themselves on the basis of voluntarism. The possibilities of an organized labour movement became obscure to workers. British workers could not cope with the new trends of flexibilization in labour processes and labour markets which companies have been promoting under the name of ‘productivity’ or ‘efficiency’ since the 1980s.

 
제삼노총(cadline)

한국민주노동조합총동맹 창립준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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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셋이 작서 요령

 

 

유학 준비 과정 중에 가장 힘들고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학업계획서(Statement of Purpose)의 작성입니다. 대체로 1.000 단어라는 한정된 지면에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어려운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학점, 토플, GRE의 열세를 만회하고 Admission/Rejection의 당락을 바꿀 수 있는 부분이 바로 SOP랍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유학생들이 가장 소홀하게 다루었던 부분도 바로 에세이 부분입니다. 미국의 대학원 applicant들의 경우 native-speaker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3명 이상의 동료학생, 교수 등에게서 comment를 받고 또 작성하는 데 2-3달의 시간을 보냅니다. 토플이나 지알이가 완료되는 10월, 늦어도 11월부터는 학업계획서 작성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음의 요령을 바탕으로 좋은 SOP 작성하셔서 꼭 합격하시길 바랍니다.

들어가며: 학업계획서(statement of purpose, personal statement, sop)가 모예요?

Princeton 대학의 대학원 진학 관련 홈페이지 들어가보면, 입학 지원 서류 requirement란에서 personal statement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The third page of the application form has been left blank for your personal statement. The statement should not exceed 1,000 words, and it should describe your academic and career plans as they relate to the department to which you are applying."

보다 자세하게 Chicago 대학의 통계학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The short essay provides you an opportunity to tell us what interests you about Statistics, what your goals are, and what you hope to accomplish in your graduate studies. There is no need to tell us more about your grades, test scores, and course work in your essay -- your transcript and other support material will already have given us this information. Instead, you should use it to provide information about you that is not apparent from your transcript, such as extracurricular projects you may have done, work experience you may have had, and so on. If you have done graduate work elsewhere, your statement should include your reasons for wanting to change institutions or degree programs. We consider this part of your statements essential if you have completed more than two years of graduate study at other institutions.

위의 글들이 잘 표현하고 있듯이, 학업계획서는 academic and career plans을 지원하는 학과와 관련하여 작성하는 것입니다. 학교에 따라 autobiography등을 요구하는 학교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personal statement라 함은 statement of purpose와 동일한 것이고, 자신이 대학원에 진학하는 동기,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간략히 서술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대학원 진학용 학업계획서를 작성한다는 것은 curriculum vitae나 성적표, 토플, 지알이 성적에서 객관적으로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자신의 경력을 다시 한 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반드시 이 대학원, 학과에서 이 교수와 이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가 그리고 이 공부를 마치고 난 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 그간 자신이 했던 공부를 흥미롭고, 진지하게 서술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에 대해서는 유학을 준비하시는 여려분들이 모두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학업계획서를 멋지게 쓰느냐 하는 것이겠죠? 다음의 팁을 잘 숙지하셔서 좋은 글 작성하시기 바랍니다.

학업계획서 이렇게 쓰면 짤로 합격!!!!

1. 구관이 명관이다?

- 에세이 작성에 대한 여러 요령 읽어봐도 감이 잘 안 잡히죠? 많은 샘플들을 읽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공 불문하고 일단 쭉 읽으세요.20개도 좋고 30개도 좋습니다. 쭉 읽다 보면 왠만한 가닥이 잡히고,반복되는 구절들이 눈에 보일 겁니다. 기존에 한국 유학준비생들이 작성한 학업계획서는 대체로 식상하고 그게 그거라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샘플을 통해서도 이렇게 하면 별로 좋지 않구나 하는 타산지석을 삼을 수는 있겠죠?

아래의 링크에 들어가시면 미국학생과 한국학생이 작성한 학업계획서에 대한 미국 대학원 입학 사정관들의 코멘트가 있습니다. 샘플을 읽으신 후, 코멘트를 보시면 어떤 글이 어떤면에서 좋고, 어떤 글이 어떤 면에서 부족하구나 하는 점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ssay A : Women's studies by an American female student

1. Comment 1
2. Comment 2

Essay B : Environmental Engineering by a Korean male student

1. Comment 1
2. Comment 2


2. 제목을 잘 보라. 학업성취서가 아니라 학업계획서임을...

- 시험 볼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하죠? 문제를 제대로 읽고,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글로 잘 써봤자, 출제자의 맘에 들지 않는다면 말짱 헛 일 입니다. 학업계획서는 말 그대로, 학업계획서 입니다. 과거에 내가 한국에서 이만큼 준비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은 추천서에 들어갈 얘기이지 학업계획서에 들어갈 얘기는 아닙니다. 또 내가 이런 상을 받았고, 이러저러한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도 Curriculum Vitae에 쓰셔야 합니다. 자신의 학업계획에 관련된 사례, 활동만 학업계획서에 들어가야 합니다.

3.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

- 1000 자라는 한정된 지면이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 있고 들어가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략 다음의 5가지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a. 이 분야를 공부하게 된 동기: 구체적이고 특수한 예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에서나 어릴때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왜 분야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게 됐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서술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b. 지금까지 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준비한 사항: 중학교, 고등학교는 될 수 있는 한 쓰지 않는게 좋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했던 것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것저것 주저리 주저리 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된 내용을 기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클 활동이나 그밖의 과외 활동은 직접적으로 주제와 관련되지 않는한 쓰지 않는게 좋습니다.

c. 구체적인 학업 계획: 자세하게 구체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이미 한물 지나간 것을 연구하는 것은 아닌지 반드시 각 분야의 현재 학계 동향이 어떤지 사전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d. 왜 반드시 이 학교, 이 교수여야 하나: 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교수에 대한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이 교수의 현재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또한 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가능하면 현지 학교의 대학원생이나 교수와 컨택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쉽지는 않고, 위험성도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입니다.

e. 내가 이 공부를 통해 어떠한 학문적 기여를 할 수 있나?: 한국에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또 학문 전체적으로는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나? 추상적인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4. 가장 중요한 원칙은?

- 어떤 글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학업계획서 작성에 있어서 특히나 중요한 것이 일관성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각 요소가 하나로 일관성있게 통일된 주제로 표현되어야지 따로따로 놀면 아무리 좋은 예라도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또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결정한 다음에 이를 보충하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글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 또 하나 중요한 원칙은 Detail, specificity, 그리고 concrete examples입니다. 이 세가지 원칙이 눈에 확띄는 에세이를 만들어줍니다.

5. 영어로 바로 작성하라.

- 한글과 영어는 확실히 다릅니다. 영어 작문의 기본적인 원칙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근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살짝 감춰서 얘기하고, 또 맨 나중에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학업계획서는 그러면 안됩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두괄식으로 바로 얘기하고, 잘 안되겠지만 영어로 바로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많은 샘플을 읽어보시면 반복되는 구절, 멋진 구절이 있습니다. 창조적인 모방을 하세요.

- 또 하나 영어 작문에 기본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문장 구성에 변화를 줘라, 수동태 문장은 좋지 않다. 간결해야 한다, 등등의 주옥같은(?) 원칙들이 그것인데, 아래의 링크를 통해서 기본적인 영작 공부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www.bartleby.com 으로 가셔서 우측 Reference 메뉴에서 Strunk's Style을 보시기 바랍니다. 미국 학생들의 필독서, 그 유명한 William Strunk Jr., E.B. White의 The Elements of Style입니다.

6. 읽고, 코멘트 받고, 읽고, 코멘트 받고

- 초안이 작성되면 누구라도 좋습니다. 읽어달라고 부탁하세요. 대학원선배, 학과 교수님, 추천서 작성하시는 분, 맛있는 것 사드려 가며 한 번 읽어주실 것을 부탁하세요. 글은 많이 읽고 고치면 고칠수록좋아집니다.

7. Native-Speaker의 교정을 받으라.

- 이제 마지막 단계입니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봐도, 그리고 학과 교수님이 봐도 발견할 수 없는 실수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미국인에게 교정을 받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석.박사 과정 지원서를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 대학 다니다만 사람들에게 부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글은 자신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나아집니다.

** 에세이 작성에 관한 몇 가지 유용한 싸이트를 아래에 링크해 놓았습니다. 시간
나실때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1. Graduate School Essays by Christopher T. Hank

http://www.rpi.edu/dept/llc/writecenter/web/gradapp.html

2. Recommendations and Essays

http://www.bucknell.edu/About_Bucknell/Offices_Resources/Career_Development_Center/
Students/Graduate_School/Recommendations_and_Essays.html

3. Insights about Admission Essays

http://www.west.net/~stewart/ps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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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 Rarities US Capitol 80

ForsíðaSaga The BeatlesPlötur The BeatlesLög The BeatlesMyndir af The BeatlesKvikmyndir The BeatlesVinsældarlistar The Beatles
 

 

RARITIES There probably have been more words written about the Beatles and more discussions of their music than any other musical group in history. Every aspect of their recorded legacy has been dissected, examined and catalogued by collectors, many of whom speciallize in stydying the Beatles. This has led to The Beatles Rarities album, a compilation of tracks that for one reason or another are considered rare in the US. Most of these tunes are familiar to Beatles fans, but the versions presented here are not the same versions that are currently available on Capitol or United Artists albums. All of these versions have been released before by Capitol/EMI somwhere in the world, but most of them either haven't over been released in US or they are no longer available. This album has been designed not only for the discriminationg collector, but also for the average fan. Half the fun of these recordings is comparing them to the "standard" versions. As with any collection of songs, many "rare" possibilities had to be left off for lack of space, but the ones included here were chosen because either collectors have searched for them for years or because musically these versions have something "strange" about them to any listener who is familiar with the more common versions. Enjoy!

 


Produced by: George Martin
Compiled and Annotated by: Randall Davis
Researched by: Ron Furmanek and Walter Podrazik
Cover by: E. Marquez, Roy Kohara and Rick Wolin-Semple
Label: Capitol SHAL-12060


Love Me Do (version one) {McCartney/Lennon} (2:22)
When the Beatles began recording for EMI, Ringo hadn't been with the group very long so producer George Martin hired backup drummer Andy White "just in case". During one of their first sessions they cut this tune twice, once with Ringo drumming and again with the other drummer and Ringo relegated to tambourine. The first version was released on the British single originally (and surfaced occasionally such as on the Canadian single), but when the album came out it contained the take with the tambourine which has become the common version around the world. Over the years the master tapes containing the first version disappeared so this track was taken from a record and cleaned up as much as possible although a few "pops" remain.

Misery {Lennon/McCartney} (1:46)
In the early Sixties when The Beatles were becoming stars around the world, their singles and albums were released by several different labels. Albums from one country seldom resembled those from another. This led to several mix-ups over the years. This song, first released in England in March, 1963, was only released by Capitol in the U.S. once - on the very short-lived Starline single (and that was mono).
There's A Place {Lennon} (1:47)
This song has the same history as "Misery". This is the first time it has appeared on a Capitol album in the U.S. and it is believed to be the first time it has appeared in stereo in the U.S.

Sie Liebt Dich {Lennon/McCartney/Nicolas/Montague} (2:16)
The Beatles honed their musicianship and became a real group in the opening years of the Sixties by playing in the raunchy clubs of Hamburg, West Germany. They learned to speak the language, met longtime cohorts such as Klaus Voormann and felt a certain affinity with the country. A few years later their career skyrocketed and EMI easily persuaded them to re-cut the vocal tracks of two of their first big hits - "I Want To Hold Your Hand" and "She Loves You" - in German for release specifically in that country. Although the first tune has been on the Something New album for years, until Rarities "She Loves You" sung in German had never been released by Capitol in the U.S. The song, once released here as a low-quality single on a small label, has been out of print for years and has never been released in the U.S. in stereo until now.
And I Love Her {McCartney/Lennon} (2:36)
There are two common versions of this song - one with Paul's voice mostly by itself and the other with Paul's voice overdubbed. However, on the German Something New album the song appeared (with the overdubbing) unedited since the guitar riff at the end of the song is repeated six times rather than four times. That extremely rare version is offered here.

Help! {Lennon/McCartney} (2:16)
There are two versions, each with a different lead vocal. The single version is more rare than the album version so it has been included here. In addition, a "cleaner" British version was used.

I'm Only Sleeping {Lennon} (2:59)
There are two different stereo mixes of this song. The version that has been on the English Revolver album since 1966 is considerably different than the American version. The British version was chosen for Rarities because verses were rearranged and strange guitar sounds inserted.

I Am The Walrus {Lennon} (4:32)
Capitol has recreated a new version of this song by combining the two rarest versions. Previously there were at least three versions. The shortest one is the most common in the U.S. because it appears on the stereo album. The other two versions both have something extra in them. The Capitol U.S. single has a few extra beats in the middle of the song right after the words "I'm crying" but before the words "Yellow matter custard". The stereo version from England has the intro riff repeated six times instead of four. Now these two oddities have been edited together for the first time.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on every stereo version of this song ever released the song becomes "fake stereo" almost exactly two minutes into the tune with the bass predominantly on one channel and the highs on the other.

 

Penny Lane {McCartney/Lennon} (3:00)
One of the rarest versions of any Beatles song was only released in mono to radio stations in the U.S. and Canada. It was "Penny Lane" with an extra horn riff at the very end of the song which was later trimmed off every version ever offered for sale. In addition, "Penny Lane" has never been released in the U.S. in true stereo (believe it or not). Capitol has taken a stereo version of the song and tagged on the rare final notes which, collectors might argue, actually creates yet another version of this classic tune.

Helter Skelter {McCartney} (3:58)
Strange as it may seem, The Beatles and George Martin remixed many of their albums for mono rather than simply combining the stereo mix onto one track. Some of the songs have noticeable differences, but the later records such as the "White Album" were released in the U.S. in stereo only. One of the songs from that album, "Helter Skelter", is changed considerably on the mono version included here. The vocals are much louder, laughing is heard at the beginning, "beeping" sounds are scattered through the song and the drumming at the end is different. When the song fades out at the end, it doesn't come back like on the stereo version so you don't hear the classic Lennon [Starr로 정정함] statement: "I've got blisters on my fingers".
Don't Pass Me By {Starkey} (3:45)
Another strange mono mix from the "White Album", this version is especially different than the stereo towards the end. Note the changes in the violin and vocal sounds. Ringo's voice also seems to be at a higher pitch than on the stereo version. Although there wasn't room for them as part of this package, there are other songs off the same mono album with differences, notably "Piggies" and "Blackbird" which both contain "animal" sounds that are somewhat changed.
The Inner Light {Harrison} (2:32)
This song has only been released as the flip side of the "Lady Madonna" single and has never been on any U.S. album. There is no known stereo version of this obscure India-influenced George Harrison tune featuring sitar. The lyrics were "inspired" by a Japanese poem.

Across The Universe (version one) {Lennon} (3:44)
This version has never been released in the U.S. before. This is the original version that was almost released as a single in 1968 ("Lady Madonna" was chosen instead), but ended up being given to an all-star charity album called No One's Gonna Change Our World which benefited the World Wildlife Fund. Later, when Phil Spector fiddled with hours of rough tapes that became the Let It Be album, he took this song, removed the bird sound effects, added strings and generally changed the sound and feel of it.
Lizzie Bravo and Gayleen Pease - falsetto background vocals (on "Nothing's going to change my world")

You Know My Name (Look Up The Number) {Lennon} (4:17)
This lengthy obscure track has never before been released on a U.S. album; it only appeared as the flip side of the "Let It Be" single. There is no known stereo version of this of-the-wall ditty which is full of The Beatles own special brand of humor. Unlike most of their recordings, this tune resembles the crazy ramblings on their Christmas records which were only released to members of their fan club during the Sixties.
Brain Jones - saxophone

Sgt. Pepper Inner Groove (0:02)
Not actually a song, this is merely several seconds of a high-frequency note at about 18 kilocycles per second (inaudible to humans but dogs can hear it), along with some laughing and gibberish that appeared as the tail end of the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album in other countries, but was never released before in the U.S. Paul suggested it for the benefit of people who had a turntable that didn't shut off. The needle would go around and around in the groove without shutting off, and some gibberish in that groove was deemed better than hiss. Recording these two seconds of gibberish took a full night, from 7 p.m. to 3 a.m., more than half the time it took to record the Beatles entire first album.

 


 

From Me to You

All My Loving [Germany hi-hat intro]

And I Love Her [Germany one-track vocal]

A Hard Day's Night

I'm Down

Get Back

Let It Be

 

 

 

Love Me Do [Version one] (2:22)


Misery (1:46)


There's a Place (1:47)


From Me to You


Sie Liebt Dich (2:16)


Komm, Gib Mir Deine Hand


All My Loving [hi-hat intro]


And I Love Her (2:36)


Help! (2:16)


I'm Down


I'm Only Sleeping (2:59)


Strawberry Fields Forever


Penny Lane (3:00)


I am the Walrus (4:32)


Helter Skelter (3:58)


Don't Pass Me By (3:45)

 

 

A Hard Day's Night


Can't Buy Me Love (2:15)


I Should Have Known Better (2:45)


Paperback Writer (2:19)


Rain (3:02)

 

 

Lady Madonna (2:18)


Revolution (3:24)


Hey Jude (7:09)


Old Brown Shoe (3:18)


Don't Let Me Down (3:35)


The Ballad of John and Yoko (3:00)

 

 

The Inner Light (2:32)


Across the Universe [Version One] (3:44)


You Know My Name (Look up the Number) (4:17)

 

 

Let It Be


Get Back


Sgt. Pepper Inner Groove (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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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진단] KTX &quot;여&quot;승무원, 정규직 왜 요구한대?

[전격진단] KTX "여"승무원, 정규직 왜 요구한대?

2006.4.28. (금)
딴지 편집국


한명숙 총리지명자의 임명식이 있던 지난 4월 20일, KTX 승무원 노조원들이 국회에서 밤샘농성한 끝에 경찰에 전원 연행됐더랬다. 명망 있는 여권운동가 출신의, 건국 최초 여성총리가 임명장 받는 날, 여성노동자들 대거 연행이라니.

한 총리한테 유감이 특별히 있는 것은 아니나, 화합의 카리스마라는 둥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이 어쨌다는 둥 재래언론의 취임 축하 세레머니와 글품께나 판다는 각종 여성 인사들이 바쳐대는 헌가가 짜증났던 참이었다. 이유없이 괜히 꼬셨다.

어쨌거나. 그와는 별개로 본 기자, 따라가 꼭 돕고 싶다는 본지 남기자들을 물리치고, 별러왔던 KTX 승무원노조를 만나러 갔다.
 



철도공사 노동조합 산하 KTX 승무원지부의 민세원 지부장을 만나기로 한 날은 4월 26일 7시. 서울역 플랫폼이 훤히 보이는, 철도공사 서울지역본부 앞 마당에 그녀들은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었다.

그런데 민 지부장이 바빴다. 어서 착오가 생겼는지 인터뷰하기로 한 시간에 일정이 잡혔다는 거다. 국회 농성 때 연행된 조합원 일부가 불구속 입건 되면서 당사자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 그래서 변호사 불러 설명회를 연단다.

지부장이 참석해야 하는 자리인지라 그녀는 인사 몇 마디 나눈 뒤 급히 사라지고. 할 수 없이 집행부 사무실로 쓰이는 천막 안에 앉아 다소곳이 기다리면서, KTX 승무원지부 강혜련 총무부장과 철도노조 송호준 조직국장의 감시어린 눈길을 인내하던 즈음..


딴: 저기.. 지금 농성은 얼마나 된 겁니까?
강혜련 총무부장(이하 강): 농성은 57일째구요, 저희가 출무정지 당한 지는 60일째입니다.

딴: 출무정지라 함은..
강: 사복투쟁 후 승무를 정지당한 것을 말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두 달 못탔죠. KTX 바라보기만 하고...

딴: 많이 안타까우시겠어요.
강: 많이 눈물이 나죠. 바로 옆에 KTX 지나가면 울컥하죠.

딴: 지난 2월 25일 KTX 승무원들이 사복근무 들어가 탑승을 거부당할 때 새마을호 여승무원들도 사복 입는 준법투쟁 들어가서 이슈가 됐죠?

강: 예. 맞습니다. 다 준법투쟁을 들어갔는데, 새마을 승무원은 첫날 다 태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만 왜 못타냐 했더니 그 다음날 (새마을 승무원들을) 대기를 시켰어요. 그쪽에서는 임금이 나가는 대기 상황.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죠. 새마을도 안 태운다, KTX 승무원 뭐라고 하지 마라.. 그러나 그분들은 임금 다 받으셨구요, 저희는 다 전원.. 그날 임금에 해당하는 것 못 받았습니다.

딴: 새마을호 승무원들도 계약직이신거죠?
강: 철도공사의 직고용직이시구요, 저희는 철도공사 외주의 비정규직이었구요.

딴: KTX 승무원들도 철도유통에서 계약직이신거구요.
강: 그렇죠. 1년 단위로. 그런데 그 중에서 (정규직을) 시켜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철도청에서 공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너희는 정규직이 될 거다.. 라고 말했기 때문에 저희는 믿었고 기다렸습니다.

딴: 일종의 구두계약이라 보시는 건데, 유통 쪽에서는 뭐라고 주장하는가요.
강: 유통 쪽에서는 그런 식으로 한 적 없다 오리발 내놓죠.

딴: 철도유통 쪽은 지금 여기 계시는 분들과 계약을 파기한 건가요?
강: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계약해지죠. 승무사업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딴: 그럼 일종의 사업 철수고, 다른 회사식으로 치자면, 직장폐쇄군요. 그렇게 되면 사업권이 관광레저 쪽으로 인수되면서 기존 승무원들과의 계약관계도 자유롭게 된 셈이 되네요. 레저 쪽이나 유통 쪽이나.

강: 네. 저희는 중간에 붕 뜬 상황이죠.

딴: 지금 점거농성 참가인원은 얼마나 됩니까?
강: 290명.

딴: 거의 전원이라고 보면 되나요?
강: 그렇죠. 가정이 너무 힘들거나 결혼해서 남편이 반대한 친구들은 거의 퇴사했구요.

딴: 조합원 평균연령이 어떻게 되나요?
강: 스물 여섯 살 정도가 되죠.

딴: 생각보다는 연령이 높은 편인 거 같네요.

강: 저희가 스물 세 살에 대학 졸업하고 들어오잖아요. 그러구 2년이 흘렀으니까 스물 다섯 살, 여섯 살.. 후배들은 나이가 어린데 저희가 좀 나이가 많네요. 하하하..

딴: 사회적인 첫 출발이고 또 대단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하셨고. 공부만 하시고 자기 꿈만 좇던 분들이 처음으로 노동쟁의라는 상황을 맞게 됐는데, 어떠셨나요. 처음 이런 상황을 직면했을 때.. 시행착오도 많았을 테고..

강: 저는 솔직히 파업이 이런 건 줄 몰랐습니다. (웃음) 우리가 나서는 게 아니라, 누가 와서 지도하고 뭐뭐 하라고 하면 앉아서 노동가요 부르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 어디 가서 저희 상황을 알리거나, 그런 거 몰랐죠. 그런데 파업에 들어와서 보니까 저희가 주체예요. 그분들은 연대해주시고 도와주시는 겁니다. 저희가 나서지 않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거고. 느낀 건 그거예요. 저희가 목소리 내지 않았으면 이 싸움 여기까지 올 수 없었고. 그리고 저희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규직과 함께 했다는 거예요.

딴: 철도노조와..

강: 예. 철도노조 정규직 분들이 같이 한 것이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진다고 봐요. 저희가 60일을 (농성) 하는 데에, 인적 물적으로 다 도와주시는 게 철도노조이시잖아요. 그 분들의 기반 덕분이라고 봅니다.

딴: 초짜들인데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웃음) 그런데 철도노조에 어떻게 가입될 수 있었나요. 동일 사업장 내 정규직-비정규직 관계도 아니고, 서로 다른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인데 어떻게 지부가 될 수 있었는지..

강: 노동조합 심의 하는 곳에서 정식으로 허락 받고, 저희가 찬반 투표해서 들어간 거죠.

딴: 잘 이해가 안되는데, 관계기관의 인가가 나왔단 말인가요?
강: 예.

딴: 그래서 지금 철도노조 내 KTX 승무원 지부라. 뭐 그런 관계면, 철도노조가 도와주시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 하는 거네요. (웃음)

암만해도 서류상 다른 기업과 계약한 노동자 조합이 또다른 단위노조의 지부가 되는 게 이해가 안갔다. 해서 철도노조 측에 물어보려 했으나 송호준 조직국장 조직국장은 어느 새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강: 그런데 저희는 솔직히 다른 사업장과 비교해봤을 때, 굉장히 축복받은 지부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저희가 싸우려고 노력해도 정규직이 외면하면 굉장히 힘든 싸움이잖아요. 저희는 노조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도와줄 수 있을까 굉장히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노동자가 되고 파업을 하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분명히 저희는 여기서 승리하면 또다른 연대를 할 겁니다.

딴: 그게 투쟁의 경험이겠죠.

강: 네. 그 느낌을 알겠어요. 어떻게 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고, 이게 진정한 길이란 것도 알겠어요. 여기 들어와서 최악의 상태에 다다르다 보니까, 사람이 얼마나 작은 행복을 몰랐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많이 배웠어요.

딴: 지금 지부장이 수배 중이라고 하던데요.

강: 지부장님하고 부산지부장, 대의원 등 총 3명 체포영장 떨어졌구요. 저희 집행부 12명은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딴: 어떤 혐의로 그렇게 됐나요?
강: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불법파업, 업무방해.. 뻔하죠 뭐.

딴: 저번에 어머님들이 농성장 방문하셨다던데 어떠셨어요? 눈물바다가 됐을 거 같은데요.

강: 저희가 한달에 한 번 집에 가는 거 빼고는 못 갔어요. 엄마들이 저희 이렇게 사는 거 보시고 막 우셨어요. 고이고이 키운 딸들이 땅바닥에서 너무나 태연하게 "엄마 왔어?" 그러니까 울컥하셨죠. 엄마가 우니까 저희도 많이 눈물을 흘렸죠.

그런데 하루 있다 가신 분들이 그러시는 거예요. 딱 앉아보시더니, "괜찮네, 살기가." (웃음) 그리고 두 번째 오신 엄마들이, "찔찔 짜리 마라. 니네가 뭘 잘못했니? 니네는 정당한 요구를 하는 거니까 찔찔 짜지 마라"..

딴: 오오~
강: 그래서 안 울려고 해요.

 송호준 국장 등장

딴: 아, 오셨군요. 하나만 여쭤볼게요. 어떻게 사업장이 다른 회사들이 한 노조의 지부가 될 수 있죠?

송호준 국장(이하 송): 그건 선견지명이 있어서죠.
딴: 예? 법률적으로도 인가가 난 건가요?

송: 예전에 홍익회 노동조합이 철도노조 산하 지방본부였어요. 그러니까 철도노조가 기업별노조이긴 하지만, 역사적으로 산별의 체계를 일정부분 가지고 있었습니다. 철도노동조합연맹이라는 조직에 철도 관련 산업 노동조합이 다 들어갔었어요. 철도노동조합, 홍익회노동조합, 향우산업노동조합...

딴: 철도청 시절의 이야기인가요?

송: 예. 그러고나서 철도청 소속만 철도노동조합을 구성만 했다가, 철도노동조합연맹이 깨지는 과정에서 홍익회 노동조합이 산하 지방본부로 들어왔었어요. 엄격하게 얘기하면 기업별노조 체계에서 불가능한 일 아니냐 얘기할 수 있는데, 노동조합의 역사성 속에서 그런 일들이 이미 현실적으로 이루어져왔었구요. 지금 보더라도 철도노조 산하에 KTX 뿐 아니라 철도매점 지부가 또 있어요. 거기는 특수고용직이라서 법률적 혜택이 있는 거죠.

딴: 이게 승인이 난 건가요?

송: 저희 규약에 보면 철도관련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 한다고 딱 되어 있어요. 철도공사 및 철도공사 산하 기관의 노동자 등으로 포괄적으로 되어있어서 규약상으로 봐서 별 문제가 없구요. 그 다음에 기업별 노조에서 소속을 달리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역사성과 관련해서 이미 해결이 되어있고.

딴: 잘 따져가다 보면 사측에서 클레임을 걸 수도 있겠네요?

송: 그럴 수 있죠. 유권해석의 여지가 있는 거니까. 그러나 철도노동조합이 흘러왔던 역사성이 있기 때문에.. 물론 법률적인 문제제기를 걸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관례화 되어왔던 것이기 때문에, 노동부에서도 그것을 일부러 시비 걸 생각이 없었던 거구, 저희도 규약상 큰 문제 없으니까 조합원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이런 식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그것도 외주위탁노동자가 한 노조 안에 살림을 꾸렸단다.

딴: 회유의 액션은 없나요.

강: 무수히 많이 하죠. 심지어는 복귀한 친구들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똑같은 레파토리로 이야기하죠. 저희 집행부, 민세원 지부장님은 민주노총에 자리가 있다, 너희 속고 있는 거다, 여기 이 사람들 민주노총에 자리 있기 때문에 다 글루 간다.. 민주노총이 저희 안 받아줍니다. 저희 한 지부일 뿐인데.. 말이 안되는 회유정책을 하고, 똑같은 레파토리를 하더라구요. 저희 같은 경우 해고통지 7번은 받았습니다.

딴: 지금 전원이 복귀 안 할 경우, KTX 운영에 차질이 있는 거지요?

강: 지금 복귀한 사람이 62명 있구요, 그 숫자가 새마을 승무원 포함하고, 원래 KTX 있다가 전에 그만 뒀다가 다시 입사한 사람들까지 해서 그 인원이죠.

딴: 그 62명이 이제 생긴 거구 전에는 승무원이 아예 없이 운영된 건가요?

강: 그렇죠. 고객님들이 정당한 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못 받고 있죠. 그 책임은 철도공사가 져야죠. 서비스요금을 돌려주던가 하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딴: 탑승 거부당했던 사복투쟁 때 몇 명이나 참여하셨어요?

강: 전원이요.

딴: 옛날 6,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쟁의를 되돌아봐도 그런데,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노동조합의 응집력이라는 게 장난 아니게 크더라는 거죠. KTX 같은 경우에도 그런 여성성이 많이 느껴져요, 사실은.

강: 이러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희 연대해주시는 분들 중에. 여기 비정규직이고, 외주에 여성노동자들도 한다구, 왜 우리는 못 나서냐구.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분 좋더라구요. 한편으로는 저희를 무시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저희를 약하게 본 거잖아요. 저희 승무원들에게 '여'자가 붙잖아요. 한편으로 많이 장점이죠. 다른 파업장을 그렇게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가정적이고 금방 안정이 되요. 해서 자기만의 취미활동--십자수나 코바늘뜨기도 하고, 토익 공부도 하는 등 못한 공부도 하기 때문에..

딴: 이러다 여기 정드시겠어요.

강: 하하하.. 한달에 한번 애들을 보냈는데, 집에 갔다가 연락을 해서 서로 만난대요. 24시간을 붙어있으니까.. 식구들이 그러잖아요. 안 좋은 점도 보이고 하면서 정도 들고. 동지한테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아요.

KTX 애들이 왜 파업을 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저희가 막무가내 때 쓰는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비난을 하잖아요, 항공사노조들이 연봉 8천 이상 받으면서 왜 그렇게 연봉 많이 받으면서 파업을 하느냐.. 그런데 너무나 작은 영세업체들은 파업을 해봤자 언론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파업을 해보니까.

저희가 그랬어요. 우리는 8천도 아니고 2천도 안되는데 왜 나왔을까.. 여자, 여자.. 여자라서 그런다고.. (웃음)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사회는 아이러니한 게 많아요. 만약 남성 동지들이 이렇게 파업을 했으면 알려진 곳이 얼마나 될까. 지금 KTX 승무원들이 파업하는 것은 전국민이 아실 거예요. 물론 아직도 해? 이러시겠지만.. (웃음)

딴: 철도공사의 승무원들은 모두 여자들인가요?

강: 철도 새마을 승무원들 중에서 3명의 남자 승무원이 있는데, 승무원 업무보다는 차장의 개념이 더 강한 거 같아요. 검표나 방송, 영접이라든지 위주로..

딴: 그럼 그 세 분을 빼고는 모두가 여성인 거네요.
강: 예.

딴: 왜 그럴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 왜 그럴까요? 지금까지 봤을 때는, 새마을 승무원 여성 뽑았을 때 굉장히 고용하기 편했을 겁니다. 계약직 해서 편했으니까 외주 주면 더 편하겠구나.. 더 말을 못하겠구나 뽑아놨습니다. 그래서 여성들로만 구성됐고, 나이제한 분명히 있었구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만 26살 넘어가면 안됐고, 경력자에 한해 서른 몇 살까지 뽑았는데, 저희 지부장님이 뽑히신 거구요.

그니까 나이 어린 애 뽑아놓으면 분명히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희는 이미 공부했어요. (웃음) 배웠습니다. 그래서 너무 똑똑한 애들 뽑아놨다구.. 그 말을 하는 거예요. 철도공사는 여성을 너무 쉽게 본 거죠. 여성을 쉽게 보고 비정규직 만들면 얘네는 찍 소리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거죠.

딴: 1명의 승무장과 3명의 승무원들로 들어간다고 알고 있는데, 다른 나라들 같은 경우는 어떻나요.

강: JR, 신간센이요. 거기도 승무원은 외주예요. 각자 다른 홈에서, 열차 안에서 만나요. 팀장님하고 브리핑 안 하구요. 반면 저희는 승무사무소가 한 건물의 왼쪽 오른쪽에 있지만, 미팅룸에서 브리핑을 합니다. 팀장님하고. 오늘은 어떻게어떻게 일을 합시다. 오늘은 영접 누구누구 합니다. 특실 담당승무원 준비하십시오. 오늘도 '안전' 하고 갑시다. 몇 분 뒤에 보겠습니다. 지시하면 안되잖아요. 지시하세요.

딴: 지시하면 왜 안 되죠?

강: 그럼 불법 파견이 되잖아요. 외주위탁은 감독만 할 수 있고, 그 장소에서 업무지시를 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여러 고용형태 중에는 '파견근로'와 '외주위탁'이 있다.

파견근로는 인력업체에 고용된 노동자가 인력업체와 계약맺은 사업장에 투입되는 경우를 말한다. 인력업체는 단지 인력 브로커리지만 할 뿐, 파견근로자의 업무지시 및 관리감독은 투입된 사업장이 맡는다. 즉, 인력업체에서 보내준 노동자를 데리고 내가 이것저것 시키고 또 못하면 가르쳐주고 하는 것이 파견근로라는 노동형태.

파견근로는 브로커가 낀 인간매매적 속성 탓에 법률에 의해 사용범위가 제한되어 있다. 동일한 파견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해당 노동자는 파견사업장이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된다(이것이 고용의제다).

외주위탁은 인력 도급(아웃소싱)제다. 특정한 일거리 전체를 외부 업체에 위탁(하청)해, 위탁 업체가 고용한 직원들만으로 약정한 노동이 이루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전산팀을 새로 구성하지 않고 외부업체에 전산업무를 몽땅 위탁하는 경우. 그래서 원청업체는 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직접적인 업무지시나 지휘감독을 하지 않는다. 이 모두가 하청업체의 몫.

KTX의 경우, 철도공사는 승무원사업을 철도유통에 외주위탁했다. 그렇다면 승무원들을 지휘관리하는 곳도 철도유통이어야 한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정직원인 승무팀장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지시감독받고 교육까지 받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이 맞다면, 철도유통은 승무업무와 하등 관련이 없고, 모든 업무적인 지휘지시는 철도공사 직원에게 받는데, 승무원임금의 30%는 철도유통이 가져가는 거다. 브로커가 낀 전형적인 파견근로다. 그런데 승무원은 파견근로가 허락되지 않는 노동분야이므로 불법파견근로가 된다.

딴: 불법파견근로가 아니라 합법적인 외주위탁이라면 업무지시와 관리를 할 인력도 철도유통 소속이어야 한다는 거죠?

강: 그렇죠. 근데 한 열차에서 (철도노조 정규직인) 팀장님하고 일하면, 지시 안 받고 일할 수가 없어요. 또 저희가 규정 같은 것은 실제적으로는 열차팀장님들한테 배웠어요. 배울 수 있는 루트가 (유통쪽에는) 없잖아요. 저희가 승무 끝나고 식당에서 팀장님들이 철도법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게 시정조치라는 게 있는데요. 외주를 줬기 때문에 팀장에게 시정조치권한이 있는 건데, 그 내용이 문제가 되고 있어요. 어떻게 나왔냐면, 예를 들어 "이 사람은 방송을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하라고 했으나 제대로 못했음". 그 자리에서 다시 하라고 했다고 하잖아요. 열차 안에서 지시할 수 없는데 지시를 한 게 나온 거죠. 그냥 "방송 못했음" "교육 요망" 이라고 해야 하는데, 다시 하라고 했다는 지시가 기록된 거죠.

 그러는 사이 민세원 지부장이 돌아왔다.

딴: (민지부장에게) 잘 끝나셨나요?
민: 예. 우리 혜련이가 말씀 잘 드렸죠?

딴: 예, 그러셨어요.
민: (저희 생각은) 다 똑같아요.

딴: 57일 동안의 장기 파업투쟁을 이끌어오셨는데 아주 의례적인 멘트나 먼저 하나 날려주시죠. (웃음)

민: 아휴 그런 게 어딨어요.
딴: 그래도 한 말씀.

민: 조합원을 정말 잘 둔 거 같아요. 투지와 의지와 근성이.. 정당한 것을 놓고 절대 무릎 꿇지 않겠다는 근성과 끈기가 다들 대단해서 이 투쟁이 이길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가겠다 이런 의지가 다들 강고하기 때문에.. 조합원을 잘 뒀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딴: 진짜 의례적이군요. (웃음)

민: 아니 정말. 며칠 전에 팔씨름대회, 체육대회를 했어요. 그 팔씨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사소한 거고, 너무 힘들면 대충 하다가 질 수도 있는 건데, 4분 5분 이렇게 끝까지 다 하더라구요. 그런 모습들에서 근성을 봤죠. 참 대단하다.. 괜히 여기까지 투쟁한 게 아니구나 생각을 했죠.

딴: 여성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상징성이 크다고 봅니다. 한총리 임명 당시 국회 농성이나, 어머니들 농성장 방문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이자 여성노동자의 싸움, 둘 중 어디에 좀더 가중치를 둘 수 있을까요.

민: 비정규직은 다 똑같죠. KTX 승무원 같은 경우엔 비정규직이면서 하청노동자라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건데..

딴: 거기다 여성이기도 하구요.
민: 그렇죠. 그런데 비정규직이면 남성 여성 다 똑같은 것이고, 비정규직 내에서 성차별은 없는 것 같아요.

딴: 그렇게 보세요?

민: 예. 실제적으로 그런 거 같습니다. 더 보태지는 내용이 있을 뿐이죠. 여성들에게는 보건휴가니 출산휴가니 이런 것들, 남성들에게 없는 사항들이 더 생겨나는 것뿐이지..

딴: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구요?

민: 아니요, 아니요. 그게 아니고, 혜택을 못 받는 항목이 늘어나는 거죠. 보건휴가도 불법적으로 안 주고, 출산휴가도 법에 보장된 것밖에 안주니까. 저희는 승무원이기 때문에 법이 보장한 것만 가지고 안되거든요. 만삭을 하고도 KTX를 타야한다는 얘기니까. 정리하자면, 여성이기 때문에 더 불합리한 건수가 많이 생기는 건 있을 지라도 비정규직 내에서는 남녀 성차별은 없는 거 같아요.

딴: 57일 동안 파업농성을 하며 여성이라는 아이콘이 효과적인 수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여성성이란 코드를.

민: 오랜 파업을 하는데 여성이라서 득 본 것은 없구요.

딴: 효과적으로 밖으로 알리기 위한..

민: 그거는 이미 파업을 하기 이전에 저희가 KTX 여승무원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어요. 사용자가, 공사가 KTX 여승무원으로 띄워나서, 이미 저희는 그 여성성으로 대두됐고 알려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가 원하지 않아도 저희의 파업투쟁이나 이런 것들이 주목을 받았죠.

이철 사장 자신이 직접 저희를 "비정규직의 꽃"으로 말했단 말이예요. 본인이. 이철 사장이. 저희는 그렇게 생각 안하는데 본인이 그렇게 표현을 해주더라구요.

딴: 하하하하..

민: 그거는 저희가 원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만들어준 거라고 생각하구요. 그럼 그렇게 만들어준 조건 내에서, 힘도 권력도 아무 것도 없는 저희가 이 부당함을 어떻게 깨야 하느냐 라고 했을 때, 전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이용해야겠죠. 근데 그거(국회농성과 한총리)는 우연의 일치였던 거 같아요. 민우회 출신의 여성 총리가 될 줄 누가 알았겠으며..

딴: 국회 사정하고는 관계없이 그냥 거기 가려고 했던 날이었나요?

민: 아, 토론회를 (국회 헌정기념관에) 잡았었구요. 저희가 민우회에서 기자회견도 열었고, 성명서나 의견서도 발표했습니다. 민우회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저희 주장에 힘을 실어주셨는데.. 총리가 민우회 회장 출신이고, 최초 여성 총리고 해서, 정말 상식적으로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관심도 있을 줄 알았는데..

이미 열우당과 총리실에 면담을 신청했는데 문전박대를 당했고. 그때 갔을 때는 절박했기 때문에 간 거예요. 절박하다 우리, 관심 가져달라 해서 간 거고.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고.

딴: 몇 시간 농성하신 건가요?
민: 24시간이죠.

딴: 그러다 공권력이 투입됐을 때 심정이 어떠셨나요?
민: 전 그 자리에 없었고..

딴: 아, 수배 중이셔서..
민: 거기 80명 정도 있었어요.

딴: 한명숙 총리가 임명되던 날 그런 충돌이 있었고..

민: 그건 저희도 사실 몰랐어요. 총리 임명과 매치시키지는 못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돼서.. 원래 국회에 발만 들이면 바로 연행이라고 하던데, 총리 본인이 임명 첫날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 하루 더 미루고 저희를 찬 대리석 바닥에서 밤새 떨게 하고.. 그 다음에 그래도 안 나가니까 연행을 한 거 같은데... 휴..

딴: 어떤.. 기대가 있으신가요, 앞으로?

민: 여성총리라서 기대가 있다기 보다는, 저희의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총리로서, 또 여성단체의 수장이었던 사람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최소한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모른 척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딴: 민주노동당에 방문했을 때 한총리가 KTX 승무원 농성에 대해서 언급했다고 하던데, 어떻게 평가하세요.

민: 뭉뚱그린, 추상적인 이야기였던 거 같아요. 알아보겠다 하는 정도의..
딴: 실망하셨나요?

민: 아니요. 그래도 예전에는 전혀 말도 없었고 알지도 못하는 상황보다는 훨씬 발전한 거죠.

딴: 사실 대단한 거죠. 보통 스타노조의 쟁의만이 이슈가 되는데 총리가 야당에 인사 간 자리에서 이 얘기가 회자될 정도면 그 농성이 굉장히 효과적이었다고 봅니다. 아까 듣자하니 KTX 승무원 평균 연령이 26세라구요.

민: 아니에요, 27세 정도 될텐데? (웃음)

딴: 그런데 그 평균연령을 훨씬 넘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자기소개를 좀 해주시죠.

민: 경력직으로 들어와서 제가 나이가 많고, 대한항공에서 5년 동안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중간에 또 다른 직장 생활도 하다가 여기에 오게 됐죠. 항공사 경력으로 들어왔습니다.

딴: 입사경쟁률도 장난 아니었고,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여기 오시기 전과 현실이 굉장히 괴리가 컸을 것 같은데요. 그 심정은 일반조합원과 다르지 않을 것 같구요.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그 단상을 말씀해 주시죠.

연신 자신감 있고 다부진 어투로 답변하던 그녀가 잠시 침묵한 유일한 순간이었다. 그간의 회한이 밀려오는 듯 했다. 미안했다, 질문이.

민: 철도공사와 같이 회사를 운영하는 곳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정부기관이나 공기업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됐나 싶어서 배신감을 많이 느꼈구요. 세금을 내는 국민으로서 치가 떨리고, 솔직히 분노를 금할 수가 없어요. 그 분노와 배신감 때문에라도..

KTX 승무원 운영이나 KTX 운영이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숫자놀음에 원래 가지고 있는 비젼이나 가치와 존재가치, 어떤 중요도조차도 말살시켜 버리고, 인권마저도 묵살해 버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거죠. 그런 모든 것들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 대학 졸업하고 처음에 꿈과 희망만을 가지고 시작했던 친구들이 1년만에 2년만에 좌절을 겪고 자부심도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반드시 제대로 KTX 승무원으로 일하는 모습을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더 하게 된 거 같습니다. 공사는 정말.. 아직도 되먹지 않은 조직이지만.. (웃음)

공사가 좋아서가 아니라 KTX를 운영하는 곳이 공사고, 저희는 KTX 승무원이 되고 싶어 입사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최소한 기본적인 조건이 공사 정규직이라는 거죠. KTX의 승무원으로서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면서,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업무수행도 하고, 일한 만큼 대가도 받고, 인간으로서 인정받으면서 최소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는 거죠.

딴: 일각의 질타들. 다들 철도유통하고 계약한 거 다 알고 있었으면서,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철도유통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왜 원청업체인 공사와의 계약을 요구하느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별개의 기업이잖아요, 일단은?

민: 별개의 기업이었다면, 공사로 보내달라는 얘기가 안나왔죠.

딴: 실질적인 것말고, 법리적으로는 그렇죠.

민: 저희가 법리적인 것을, 대학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는데.. 위탁이라는 거 자체를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어요? 삼 사십대 오십대 분들도 위탁이라는 거 잘 모르시거든요? 위탁이라는 게, 자기가 겪기 전에는 잘 모르고. 재단법인 홍익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무도 몰랐고, 명시했다는 것만으로 면피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명시한 것이지 저희가 인지한 건 아니에요. 명시하고 설명을 했어야죠.

저희가 홍익회 소속이어서 철도청하고는 무관하게 이런 식으로 근무하게 될 것을 알았으면 아무도 입사하지 않았을 거구요. 거기에 대해서 명시했으니까 모든 책임 없다는 것은 사용자의 논리인 거고. 그리고 1년 단위 계약직이라는 것도, 그럼 KTX 여승무원인 이상 죽을 때까지 계약직일 거다 알면서 입사한 사람은 없어요. 1년 이후에 인정받으면 정규직 될 것이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한 거고, 그것을 뒷받침하게끔 이미 사용자가 설명도 하고, 주지도 시켜줬고, 언론에 보도도 했고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근무 했습니다.

일상 생활하는 일반국민들이 얼마나 법리적인 해석을 적용하며 사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그건 말이 안되는 거죠. 실질적인 사용자를 생각하는 거지, 법리적인 사용자를 평소에 생각할 만한...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딴: 사측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이 싸움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민: 공사 정규직화가 목표구요.

딴: 직접계약도 말씀하시던데.

민: 위탁되어서도 안 된다는 거구,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이어서도 안된다는 거죠. 그 둘 중에서 뭔가를 선택하라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을 하구요. 먼저 더 중요한 부분이,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뿐 아니라 하청업체 노동자의 인권유린이나 임금착취가 못지 않게 심각하다는 거예요.

철도공사 방침에 의하면 모든 철도노동자를 위탁하겠다는 거고, 그게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위탁으로 인한 장점을 활용하겠다는 거니까, 위탁 방침을 철회하라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죠. 그런데 솔직히 뭐를 먼저 선택하라는 거는 맞지 않다고 봐요.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딴: 직접계약과 정규직..

민: 예.

딴: 정규직이 가장 상위의 목표인 건가요?

민: 정규직이라고 하면 보통 임금보전이나 고용안정 보장이 되는 걸 말하는데요. 지금 정규직이라 표현되는 자리에는 그렇지 않은 정규직이 너무 많아요. 무늬만 정규직인 곳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 단어 하나로는 표현될 수 없구요. 공사 직소속의 정규직이 되어야만이 제대로 풀린 거라 보고..

자회사 정규직 운운하면서 무늬만 정규직인 것도 정규직인 것처럼 호도하곤 하는데, 그래서 일단 직고용이 더 중요하다라고 저희가 얘기를 하고 있는 건데, 어쨌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하거나, 뭐가 먼저이거나를 얘기하는 거는 맞지 않다고 봐요.
 

4월 26일자로 57일 째인 KTX "여"승무원들의 파업농성. 동지며 연대란 말을 일상어처럼 쓰며, 처음 겪는 노동쟁의를 의연하고도 발랄하게 잘 꾸려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인한 실행력이고 단결력이겠다만, 자매애가 있어 그녀들은 서로를 더 탄탄히 묶는 게 아닐까 하는 극히 주관적인 견해를 꼭 밝혀야겠다. 공교롭게도 본 기자는, 마지막까지 대오를 지킨 건 여자 혹은 여자들이었던 경우를 더 많이 봤기 때문이다.

아무튼 딸들은 육칠팔구십년대를 지나 현재까지도, 어디선가 계속 깨어나고 일어서는 일들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KTX 승무사업의 외주노동자들을 둘러싼 사태는 복잡다단하다. 승무노동의 범위를 두고 고객안전이냐 서비스냐 등으로 논쟁이 오가기도 하고, 또 이에 따라 승무노동자의 고용이 직접고용이어야 한다, 외주 줘도 괜찮다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게다가 철도유통이 포기한 사업권을 KTX 관광레저가 인수하면서, 다 망해가는 관광레저에 대한 특혜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그러나 쟁점의 핵심은, 철도공사와 철도유통, 그리고 KTX 승무원, 이 삼자 간의 관계 정의에 있다. 원청업체-하도급업체-하도급고용인이냐, 아니면 사업주-브로커-노동자냐 하는.

전자라면, KTX 승무원들이 땡깡을 부리는 거고, 후자라면 대한민국 공기업과 그 자회사가 불법행위를 한 거다. 승무원들은 후자가 맞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60여 일의 파업점거농성에 들어갔고, 그 결과, 7번의 해고통지를 받았으며, 3명이 수배, 12명이 피고소고발을 당했다.

누군가 제 밥그릇을 깰 때, 보통은 이렇게 말한다. 니가 배가 불렀구나. 그런데 밥그릇 깨지면 벌까지 받아야 하는데도 밥그릇을 깰 때에는, 이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다. 해고와 각종 송사 및 관재수를 각오하고 파업까지 갈 때에는 그만한 이유와 당위가 있다. 대한민국이, 농땡이 부리려고 파업해도 될 만큼 졸라 살기 좋은 나라는, 유감스럽게도 아직 아니기 때문이다.

승무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미 그녀들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 노동자다. 불법파견근로가 발각되면 파견근로자는 해당사업장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고용의제'에 따른 것이다(이 고용의제는 그러나 지난 2월 국회 환노위가 상정한 비정규직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고용의무로 바뀌게 된다. 고용의무는 직고용 간주가 아니라 직고용해야 한다의 의미로, 고용의제보다 낮은 수준의 규정이다).

여당에서 철도유통 정규직으로 중재하려던 게 씨알도 안 먹힌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들 입장에서는 불법파견근로이므로 일단 공사 직고용이 전제된 것이고, 이에 덧붙여 고용조건이 보다 안정된 정규직을 요구하고 있는 거니까. 공사 정규직 전환은 입사 때 철도공사와 철도유통에서 누누히 강조한 바라 했다. 근로계약서엔 물론 없다.

아무튼지 이런 전차로 그녀들은 철도공사 정규직을 요구하고 있다.

* * *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500만을 넘은 지 오래다. 전체 임노동자의 40%에 육박하는 수치다. 열 명 중 네 명이 비정규직이란 얘긴데, 그렇다고 나머지 여섯 명이 고용불안에서 자유롭냐면 또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귀하는 어디쯤 위치하시는가.

귀하의 밥그릇, 오늘만큼은 건재하신가.
 

 

- 시포
(shepoor@ddanzi.com)

고용의제 적용 못 받습니다.
잠자는공주 | 2006-04-29 오전 11:44:48
739회 조회 | 0점
승무원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미 그녀들은 철도공사의 직접고용 노동자다. 불법파견근로가 발각되면 파견근로자는 해당사업장에 직접고용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고용의제'에 따른 것이다(이 고용의제는 그러나 지난 2월 국회 환노위가 상정한 비정규직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고용의무로 바뀌게 된다. 고용의무는 직고용 간주가 아니라 직고용해야 한다의 의미로, 고용의제보다 낮은 수준의 규정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 오해가 발생합니다..
현행 파견법에서 고용의제가 적용되는 경우는 합법파견일 경우 뿐입니다.(26개 업종)
불법 파견일 경우, 노동부에서는 고용의제 적용을 해야 된다는 입장이지만, 대법원은 일관되게 고용의제를 적용하지 않습니다.
즉, 현행 법 하에서도 KTX여승무원의 경우, 불법파견이라면 법률적으로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받지 못합니다.

<불법파견의 종류>
1. 파견기간 위반
2. 파견대상 의무 위반
3. 무허가 파견
4. 절대금지업무 위반

보통 얘기하는 도급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의 종류가 바로 저 위에 적어 놓은 겁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고용의제조항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대법원의 확고한 의지가 지금과 같은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물론, 개정법안 전체를 보면 그리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부분만큼은 법률적인 보호 조항을 첨가함으로써 불법파견 노동자들에 대한 법률적 보호를 시도했다고 할 수있습니다.
-> 1,2,3번일 경우 2년 경과시 고용의무 적용
-> 4번일 경우, 즉시 고용의무 적용(한나라당이 맘변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긴 했습니다만)
-> 고용의무 불이행시 과태료 부과(3천만 원 이하)

KTX여승무원들의 투쟁을 응원합니다만, 이왕이면,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런 부분은 좀더 정확하게 알아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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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라도 사투리, 그 찰진 맛좀 볼텨?&quot;

 

즌라도 사투리, 그 찰진 맛좀 볼텨?"
[서평] 전라도 사투리 실감나게 소개한 <전라도 우리 탯말>
텍스트만보기   안소민(bori1219) 기자   
▲ <전라도 우리 탯말> 겉그림
ⓒ 소금나무
그간 탯말(사투리)의 중요성이나 활용을 적극 주장하는 책들은 많이 나왔으나 정작 그것 자체의 모양과 쓰임에 대해서 근접한 책은 드물었다. 기껏해야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 정도가 될까. 간혹 생소한 탯말이라도 마주치게 되면 해당 지역 토박이들이나 주위 어른들에게 물어보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그저 감으로 지레짐작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탯말의 뜻과 의미를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변변한 길라잡이 하나 없었던 게 우리네 현실.

이러한 분위기에 이번에 출간된 <전라도 우리 탯말>은 전라도 탯말에 궁금증을 가졌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더없이 좋은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탯말을 연구하는 모임인 '탯말두레' 회원들이 지난 1년여동안 발품을 들이면서 모은 전라도의 주옥같은 탯말이 하나의 결실로 태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에서만 존재하는 죽은 언어로서가 아닌 실생활에서 부대끼고 팔딱팔딱 살아숨쉬는 생명력있는 언어로서의 탯말 모음집인 것이다. 봄날 산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이름도 없고 화려하지 않지만 원시적 순수함을 가득 품은 들꽃을 하나하나 거두는 마음으로 전라도 탯말을 수집했을 저자의 정성어린 노고가 그대로 가슴에 전달되는 책이기도 하다.

즌라도 사투리요? 일단 한번 맛보시랑께요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이 참 재미있다. 전라도 탯말의 성격과 특징, 발달이나 변천사와 같이 어렵고 머리 아픈 이론은 건너뛰고 곧바로 한상 가득 푸짐한 잔칫상을 벌려놓듯 전라도 탯말의 성찬을 '턱허니' 보여준다. 일단 맛부터 보라는 것이다. 말맛은 직접 말하고 읽어보아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입말일 때야 더 말할나위 없다. 이 책은 따라서 소리 내어 읽어야 제 맛이다.

제1장 '문학 작품속의 우리 탯말'에서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우뚝 솟은 두 작품,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의 <혼불>에서 전라도 탯말이 어떻게 쓰였고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그 외 전라도 맛 말이 구성지게 드러난 김영랑 시인의 작품 몇 편과 차범석의 '옥단어'에 나타난 전라도 탯말을 통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작품의 읽는 기쁨을 한층 더 해준다.

2장 '탯말 예화'는 전라도 한 시골마을에서 일어날 법한 소박하고 재미있는 풍경을 드라마 형식으로 꾸민 것이다. 걸쭉하고 구수한 전라도 탯말로 쓰인 이 단락은 반드시 소리 내어 장단과 고저를 알맞게 구사하며 읽어야한다. 그 밑에는 전라도 탯말에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부가로 설명을 해놓았다.

여기에 중간중간 전라도 탯말의 특징도 함께 소개해놓았다. 음운현상과 같은 언어학적 특성이야 그만두고 전체적인 특징을 크게 잘라보면 '강조'(허벌나게, 겁나게, 징허게, 환장하게, 당최 등)의 표현의 다양성과 걸쭉한 입담 표현이 그 대표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3장 '탯말 독해'에서는 일상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잊혀져가는 탯말들을 발굴해내어 소개했다. '독해'라는 작업이 꼭 필요할 만큼 생소하고 낯선 낱말들이 많다. 전라도 토박이인 기자가 읽어보아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 그러나 몇 십 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이 흔하게 쓰던 우리말이다.

술취해서 아모에게나 개기던 짓꺼리가 개덕도 안나냐
(독해) -> 술취해서 아무에게나 시비 걸던 짓거리가 생각도 안나냐

공거래 장시가 고벵이에 앙근 포리를 쫓고 있다
(독해> -> 소의 내장과 뼈의 장사가 소 무릎뼈에 앉은 파리를 쫓고 있다

쪼깐 해찰하믄 져태있는 것도 돔바간에 징해서 못살긋소
(독해) ->조금 정신 팔면 곁에 있는 것도 훔쳐가니까 징그러워서 못살겠소


이쯤이면 아무리 전라도 토박이라도 독해가 필요한 지경이다. 4장 '탯말 사전'에는 이러한 탯말 초보자를 위한 전라도 탯말이 ㄱ,ㄴ,ㄷ 순서로 등재되어있다. 가끔 모르는 전라도 탯말을 마주했을 때 찾아보기도 쉽고 그냥 책읽듯 한번 쭉 훑어내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싶다.

탯말, 우리 말살이의 원천

책을 다 읽고나서 독자는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왜, 뭣 때문에 이렇게 고집스럽게 탯말을 보존해야 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탯말'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이 책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책뒤에' 잘 나타나 있다.

'탯말'이란 단어는 우리 '탯말두레'가 만든 신조어로서 각 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언, 이른바 어머니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듣고 배우며 사용해온 사투리를 말한다. 따라서 이 방언이야말로 그 지방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혼이 담겨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고향이 정해지며 그 뱃속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시는 고향의 말을 듣고 자란다. 따라서 탯줄을 달고 배우기 시작한 말, 그것이 탯말이다. 고향의 언어이자 어머니의 언어인 것이다.(329쪽)

KBS <해피투게더 프랜즈>란 프로그램이 있다. 연예인들의 어릴 적 친구들을 찾는 것인데 방송에선 한결같이 표준어를 쓰던 연예인들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구수한 사투리를 사용한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푸근하게 만든다.

비단 그뿐이랴.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절로 나오는 사투리는 멀고 힘든 나그네 길에서 돌아와 제 집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탯말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한 힘이며 그것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 까닭이 아닐까.

"유난히 구성지고 표현이 풍부한 전라도 탯말"
[인터뷰] 탯말두레 간사 박원석

이 책은 '탯말두레'의 회원 5명이 주축이 되어 쓴 것이지만 더욱 엄밀히 말한다면 오늘도 전라도 시골 한곳을 묵묵히 지키는 순박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탯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누리꾼(네티즌)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제보와 가르침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은 그 비중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을 쓴 5인의 지은이는 한새암('탯말두레' 회장), 조희범(시인), 최병두(시인), 박원석(방송작가), 문틈 (시인)이다. 이중 탯말두레의 간사직을 맡고 있는 박원석씨와 인터뷰를 했다.

- 왜 하필 전라도인가?
ⓒ 박원석
"우선 이 책을 쓴 저자들이 모두 전라도 출신이다.(웃음) 또한 전라도는 탯말의 고향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감성이 유난히 뛰어난데 이는 판소리나 그 밖의 노동요나 문학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가사문학이 태동한 곳도 전라도다.

그러나 무엇보다 전라도 탯말이 한때 우리 현대사에서 왜곡되고 은폐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전라도의 아름답고 서정적인 탯말이 점차 애써 잊혀지고 자취를 감추게 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러나 각 지방의 탯말을 연구하고 발굴하는 과정에서 그것은 비단 전라도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다."

- 자료수집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어떤 방법으로 취재를 했나?
"전라도의 판소리와 민요는 물론, 토박이말 사전과 여러 인터넷 사이트나 홈페이지, 블로그 등을 오가며 정리를 했지만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수시로 광주와 목포, 화순 등지를 오가며 나이 드신 어른들을 만나 수집했고 향우회와 동창회 등 고향사람들과 만나 자리를 함께하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 내 고향이 전남 보성인데 보성과 벌교, 해남은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그 언어가 전부 다르다. 이러한 미묘하고 세세한 차이를 네티즌들이 지적해주었고 또 나도 미처 모르고 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미처 발굴하지 못한 탯말을 수집하는 작업에도 누리꾼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 이러한 시도가 자칫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시대역행적이라는 우려는 없는지?
"작은 나라에서 탯말이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다고 마뜩해할 지 모르지만 지역특산물이 특산품으로 사랑받는 것처럼 탯말 또한 그런 맥락에서도 이해되고 존중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방언'이니 '사투리'니 하는 것은 중앙 집권적 사고체계의 소산이다. 서울말은 표준어이고 그 밖의 말은 사투리라는 사고를 전화시켜야 할 때다."

-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경상도 탯말을 위한 책을 준비 중이다. 그를 위해 경상북도 안동과 대구, 밀양 등지의 탯말과 문화를 연구 중이다. 특히 안동의 제례문화는 제주 사투리와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기에 충분한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경상도 뿐 아니라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탯말에 대한 책도 준비할 예정이다.

또한 5월 9일에는 표준어 일변도의 음운정책에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신청할 예정이다. 그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우리 민족의 숨결과 얼이 담겨있는 탯말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한편 우리의 언어생활이 보다 풍성해지길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라도 우리 탯말/ 한새암, 최병두, 조희범, 박원석, 문틈 지음/ 도서출판 소금나무/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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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지 의식·제도’ 해소가 복지국가 첫걸음

초딩들은 반복지 의식 하면 뭔소린지 갸우뚱할꺼다.

결국에 복지 증세라고 하면 경끼를 일으킨다.

 

 

 

‘반복지 의식·제도’ 해소가 복지국가 첫걸음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⑫ 복지사회, 꿈이 아니라 대안이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기획연재 : 선진대안포럼 대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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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현재, 한국 진보개혁세력 내부에는 하나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사회적 공공성’이 참 선진사회의 미래를 보증할 핵심 가치라는 판단이 그것이다. 이를 국가·사회·경제의 차원에서 표현하는 것이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의 이상이다.

유럽 등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복지국가가 보편타당한 가치로 자리잡았다. 80년대 이후 복지 시스템의 몇몇 가지를 쳐내는 일이 있었지만, 그 무성한 숲은 여전히 굳건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 맞는 복지의 묘목을 마련해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은 1부 ‘대안을 향한 성찰’의 마지막 토론회에서 이 화두를 잡았다.

지난달 22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고세훈 고려대 교수, 김연명 중앙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이일영 한신대 교수, 홍성태 상지대 교수,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소장 등이 참여했다. 토론회 전문은 <인터넷 한겨레>(www.hani.co.kr)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재계·관계·언론·노동운동까지 반대세력 이뤄
복지경험 확대·정치적 리더십으로 난관 넘어야

한국 사회에서 ‘복지국가’ 또는 ‘복지사회’는 대단히 현실감없는 개념이다. 전혀 다른 별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진다.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강력한 ‘반(反) 복지의 덫’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이 덫의 실체를 파악해 해체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 작업이 복지사회의 이상을 구체적 대안으로 바꾸는 일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가 이를 가장 힘주어 말했다. 반복지 의식과 반복지 제도가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람들은 반복지 의식이 강하다. 심지어 적극적으로 복지를 혐오하기도 한다. 이렇다 할 복지의 전통도 없고,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을 받았다는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복지국가 실현을 경계하는 의식이 이미 한국인의 심리구조 밑바닥에 내면화됐다는 이야기다.

‘반복지의 정서’는 복지를 혐오하게 만든 어떤 제도의 결과물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는 “한국이 복지사회로 진입하는 것을 가로막는 강고한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반복지 사회에서 거대한 이득을 취하는 세력들이 연대해 ‘반복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복지는 기껏해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시혜라거나, 심지어 ‘빨갱이들의 사상과 가치’라는 오해와 거부가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모든 사회 성원에게 인간다운 삶을 제공하는 것이 복지라는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가려졌거나 잊혀졌다.




사회적 공공성에 대한 불신을 불러온 국가의 무능력도 여기에 한 몫하고 있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위로부터의 발전을 기획한 것 말고는 별다른 경험이 없는 (한국의) 국가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빼앗아 부패에 탕진하는 ‘가렴주구’의 이미지가 국가와 관료사회 전반에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그 의구심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데이터센터 소장은 “사회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능력이 필요한데 이 부문이 너무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관료기능이 취약해 예산을 확보해도 이를 제대로 쓰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관료사회의 ‘반복지성’은 서구 복지국가와 뚜렷히 대비된다. 서구 복지국가의 경우,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이 복지 시스템의 충실한 대변자이자 집행자다. 반면 한국의 관료집단은 “오히려 반복지적 성향이 강하다.”(고세훈 교수)

가장 뼈있는 지적은 이런 ‘반복지의 덫’에 노동운동 또한 갇혀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노동운동이 임금투쟁에 덧붙여 생색내는 식으로 복지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자원을 동원하는 데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홍성태 교수도 “힘있는 노조가 복지문제에 관심있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짚었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는 “복지국가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사회적 타협을 가능케 할 이해 당사자간 교정기구가 한국에는 없다”며 “이런 타협을 위한 문화와 정치제도도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사회의 거대한 반복지의 덫이 서로의 발목을 조이고 있다. 고세훈 교수는 “낙후된 복지의식이 반복지적 정치제도로 이어진다”며 “복지를 정치권에 요구하지 않는 국민이 다수인 한, 정치권도 복지를 위한 제도를 만들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 덫을 푸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복지의 경험을 계속 확대하는 것이다. 전병유 소장은 “기초생활보장제도만 해도 이런 혜택을 난생 처음 겪어 봤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런 사람들이 새로운 복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복지제도를 지지하는 문화적 기반이 된다”고 말했다. 저변의 복지문화를 질적으로 끌어올릴 정치적 리더십도 중요하다. 고세훈 교수는 “노동운동이 한없이 취약한 현 상태에서 이들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 수는 없다”며 “복지제도를 앞장서 확충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미국이냐 스웨덴이냐’
한국 ‘미래모델’ 공론화 시작을

“작은 미국이냐 큰 스웨덴이냐.”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이 질문을 공세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대중적 구호 차원에서라도 ‘우리는 리틀 아메리카보다 빅 스웨덴을 원한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경제모델은 크게 보아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 유럽대륙식 복지 모델, 북유럽식 복지 모델 등이다. 참석자들은 이 가운데 유럽 대륙식 복지모델이 최근 몇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복지 모델을 비판할 때 종종 인용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유럽대륙식 모델은 현재 ‘전환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제 남은 것은 영미식 모델과 북유럽식 모델인데, 이들은 그 나름대로 진화해왔다”고 말했다. 세계화의 파고 속에 이 두 모델이 살아남는 방식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신정완 교수는 이 작동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영미식은 개인과 기업이 각자 알아서 세계화에 적응하라고 말한다. 북유럽식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도를 변화시킨다.” 이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것을 택할지에 대해 사회적 공론을 형성해 나가자는 게 참석자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해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유럽대륙식 모델과 북유럽식 모델을 ‘고용과 복지의 연계’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유럽대륙식 강중국 모델은 고용 자체가 복지다. 고용만 돼 있으면 모든 혜택을 받는다. 반면 북유럽식 강소국 모델은 노동시장에서 탈락해도 사회적 보장이 이뤄진다. 지금 한국은 고용과 복지가 너무 잘 연결돼 있다. 삼성에 입사하면 모든 걸 얻지만 쫓겨나는 순간 모든 걸 잃는다.” 신정완 교수도 “유럽대륙식에 비해 북유럽식은 모든 경제지표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작은 미국의 시민이 될 것인지, 큰 스웨덴의 시민이 될 것인지, 한국 국민들이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미래 경쟁’을 진보개혁세력이 먼저 주창하고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안수찬 기자

“서구 복지모델 위기론은 넌센스”

“유럽 복지체계는 뿌리깊은 문화…본질적 후퇴·변화 불가능”

서구 복지모델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데올로기도 ‘반복지의 덫’에서 중요한 노릇을 하고 있다. 서구 유럽 국가 스스로 복지모델을 폐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게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들고 나오는 주장이다.

‘넌센스’라고 참석자들은 되받았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유용성이 폐기됐다는 것은 과장된 주장”이라며 “지금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도적 변화는 세계화에 대응해 기존 복지제도의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인간의 잠재력을 개발하고 사회의 총자원을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체제를 잘 갖춘 사회인데, 이런 일반 원리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고세훈 고려대 교수도 “유럽국가들의 사민주의적 복지체제는 경제적 수준을 넘어 이미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며 “그 곳에서 복지는 이미 중산층을 포용한 포괄적 체계로서 그 본질적 후퇴나 위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논란의 핵심은 복지국가의 이상을 한국에 적용하는 게 ‘시대착오적’이라는 보수세력의 공세에 있다. 그래서 서구 복지모델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다분히 한국적 현상이다. 고세훈 교수는 “복지국가 위기론은 그 이론의 근거 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한국에 적용하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후퇴시키려야 후퇴시킬만한’ 복지제도 자체가 거의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한국 복지의 문제는 ‘과잉’이 아니라 ‘절대적 과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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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강금실·오세훈 말 바꾸기식 정책공약 남발”

 

김종철 “강금실·오세훈 말 바꾸기식 정책공약 남발”
8일 기자회견 열고 “강북 살리기 정책, 공약과 다른 주장 펼쳐” 비판
입력 :2006-05-08 17:59:00   김세옥 (okokida@dailyseop.com)기자
▲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강금실(열린우리당) 오세훈(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자신들의 주요 정책공약 가운데 하나인 ‘신도심 세계도시 서울플랜’과 ‘뉴타운 50개 건설’ 공약과 관련해, 8일 김종철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 측으로부터 “말 바꾸기식 정책공약 남발”이란 공격을 받았다.

강금실·오세훈 후보가 지난 5일 SBS 서울시장 초청 토론회에서 자신이 발표했던 정책공약과 다른 주장을 펼쳐 유권자들이 혼란을 겪게 됐다는 것.

김종철 후보캠프의 정호진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 브리핑을 진행하고 “지난달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주택) 공급확대를 위해 적어도 50군데까지 뉴타운 사업지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오 후보가 지난 5일 토론회에선 ‘해당 공약은 50개를 전제로 한 광역화의 의미였다’고 말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오 후보는 경제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강북상권 부활 프로젝트’ 공약을 발표하며 “이명박 서울시장이 현재 추진 중인 26개 뉴타운 개발에 더해 24개의 뉴타운을 추가로 건설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해당 공약은 그러나 어떤 지역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성이 뒤따르지 않아 타당 후보들로부터 선심성 공약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정 대변인은 “(SBS 토론 후 확인해 보니) 오 후보의 홈페이지에서 후보 본인 명의로 게재된 ‘뉴타운 최소 50군데 이상 확대’ 글은 어느 틈에 슬그머니 내려져 있었다”며 “오 후보는 뉴타운 50개 확대 공약을 철회한 것인지, 말 바꾸기 행태를 보인 것인지 유권자들 앞에 명확히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어 “매니페스토 운동 서약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서울시민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강금실, 스스로의 정책자료 부정”

김 후보 측은 강금실 후보에 대해서도 “용산 지역에 16만호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면서 대부분이 11평일 것이며 25평 미만이 70%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수치”라며 “서울시민들은 지금 강 후보의 발표내용인 진실인지 헷갈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 측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강 후보가 밝힌 25평 미만의 아파트 호수와 비율이 일치하지 않다는 점.

정 대변인은 “강 후보가 토론회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11평이 대부분이고 25평 미만이 70%인 반면, 언론에 공개한 용산 신도심 플랜에선 총 16만호 중 11평이 2만호로 12.5%에 그칠 뿐 아니라 25평 미만도 8만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5만평 미만의 아파트는 50%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강 후보가 지난달 중순 발표한 ‘신도심 세계도시 서울플랜’에 따르면 미군기지와 용산 가족공원 일대에 공급될 아파트 16만호 중 11평형과 17평형, 24평형은 각각 2만3000호, 2만호, 4만400호 등으로 총 8만3천400호에 그친다.

정 대변인은 “토론회 당일 박주선 민주당 후보가 수치에 대한 잘못을 지적했음에도 강 후보는 잘못된 발언에 대한 정정은 고사하고 박 후보가 잘못 얘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자신이 밝힌 정책 자료를 부정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유권자를 우롱하는 말 바꾸기식 정책 남발이 아니면 도대체 이를 뭐라고 해야 하냐”고 따져 물었다.

정 대변인은 “정책선거가 본격화 되고 있는 시점에 준비 안된 후보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준비 부족이 원인인지, 선심성 공약 남발의 습관인지, 서울시민을 무시하는 행동인지 (유권자들이)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3억∼4억 빚더미 고소득자 vs 재테크 실패한 22억 부자
[검증-정책] 강금실-오세훈 후보 관훈토론회... 누가 서민? "공약으로 말하겠다"
텍스트만보기   박형숙·이민정(xzone) 기자   
▲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는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에 참석해 첫 `맞짱토론`을 벌였다.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와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토론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8일, 열린우리당·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강금실, 오세훈 후보는 2시간 가량 열띤 정책 토론을 벌였다. 이견을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당론에 반해 같은 입장을 취한 정책도 있었다. 다만 교육, 복지 관련 토론이 생략돼 아쉬움을 남겼다.

오찬을 겸한 토론회였지만 정작 두 후보는 지난 밤 토론회 준비로 잠을 청하지 못해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강 후보는 "사실 지금도 졸립다(웃음)"며 토론회 중에도 연거푸 커피를 마셨다. 오 후보는 "지난 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 잠이 달아나는 바람에 한 시간 정도 밖에 못잤다"며 식사를 하지 못했다.

한편 주최측은 두 후보만 초청한 것에 대해 "토론의 효율적인 진행과 시민들의 관심사, 판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며 "임원들이 심사숙고한 끝에 양당 후보 초청 토론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각 세운 정책들]

▲ [시청사 이전] "시민의견 수렴해 결정" vs "비용 낭비 반대"

강금실 우선 이명박 시장이 임기 두 달을 남기고 공사를 중단한 점, 높이 평가한다. 사대문 안을 역사문화도시로 복원하겠다는 입장에서 청사 바로 옆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부적절하다.

시민단체, 문화, 건축계도 반대한다. 하지만 고집부리지 않겠다. 시장이 된다면 시민들의 의견을 다시 한번 거치겠다.

오세훈 지금 그 자리에 짓는 게 낫다. 공무원의 근무환경에도 좋지만 민원인들이 찾는 곳이 기왕이면 교통이 좋아야 한다. 옮기면 비용 낭비다.

또 강 후보가 옮기려는 용산 지역은 면적이 1만 4천평에 불과하고 자연녹지지구라 용적률이 높지 않아 용도변경을 해야 한다.

▲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노점상] "포장마차 양성화" vs "허가제는 반대"

강금실 포장마차도 관광산업화 차원에서 아름답게 꾸미고 합법적인 테두리에 두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싱가포르도 그렇게 하고 있다. 노점에서 밥 먹는 재미에, 한국적 운치를 개발하고 일정한 규격화, 위생 등을 고려하면 양성화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적 노점상을 제안하고 싶다.

오세훈 뉴욕, 파리, 런던 등은 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권리금 개념이 있어서 노점상 끼리 사고 팔 수 있다. 나중에 장애가 될 것이므로 허가제는 보류해야 한다. 다만 현재 노점상은 절대 금지 지역과 상대 금지 지역으로 나뉘는데 자릿세를 상대 금지 지역의 경우 일정한 경제적 부담을 지워 사용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 [택시 공급 과잉] "버스차선 이용해야" vs "콜 기능 활성화"

강금실 7만대 중에 2만대는 초과공급 상태다. 문제는 대중교통 수단으로 유지되면서 고급화하는 것이다. 택시 기사들은 버스전용 차선을 이용하게 해달라고 한다. 콜 기능 강화 등 수요창출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인 방향은 버스라인을 달리도록 해야 한다. 서울시는 부정적이지만 열린우리당에서는 재검토하고 있다.

오세훈 공차률이 40% 라고 한다. 현재 버스와 지하철의 대중교통 분담률은 65%에 달하지만 택시는 6.5%에 불과하다. 승용차 이용률(23%)을 5% 정도 낮추고 택시 이용률을 높이겠다. 그럴려면 GPS를 통해 콜 기능을 강화해야한다.

▲ [주택] 용산 신도심 개발 vs 뉴타운 50개 광역화

강금실 기존의 살고 있는 6만호에 10만호를 더하는 계획이다. 국제업무단지가 들어오는 것을 감안했다. 서울시에서도 '25만호 건설' 용산 구상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굉장히 적게 잡고 있다. 시와 정부와 민간이 서울의 미래 청사진을 그리자는 것이다. 참공약 비전제시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오세훈 강북 뉴타운을 현행 26개에서 50개로 확대하든지, 광역화 하겠다. 뉴타운과 뉴타운 사이에 소외된 지역까지 광역화한다는 의미다. 현재 3개를 하고 있는데 26개는 다음 시장대에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나머지는 난개발이 우려되므로 지구를 지정하자는 취지다.

▲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 동의" vs "강북 재건축도 위축돼"

강금실 개발이익환수에는 동의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강남북 지역격차가 나는 상황에서 강북 발전을 역점에 두는 것이 아닌 강남 집값의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아쉽다. 그래서 저항과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규제완화 문제는 정부 정책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강북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종합계획을 신중히 검토하겠다.

오세훈 재건축 문제가 강남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다. 집값이 오르는 게 재건축 때문만은 아니다. 강남 집값 잡자고 개발이익환수 방법을 쓰면 강북의 재건축도 위축을 받는다. 강남북 공히 주택물량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안된다. 일정하게 집값 기조가 잡히면 주택 공급 문제에 대한 대비를 위해서라도 순차적으로 재건축을 진행해야 한다.

[간격 좁힌 정책들]

▲ 강남·북 재정불균형 "공동재산세가 현실적으로 타당"

강남·북 재정 격차 해소를 위한 대안에 있어선 강금실 후보와 오세훈 후보 모두 공동재산세(재산세 일정비율을 구 재정상태에 따라 배분)가 더 타당하는 견해를 내놨다. 특히 강 후보의 경우 열린우리당의 권고적 당론인 세목교환(구 수입인 재산세와 시 수입인 담배세를 맞바꾸는 것)과 다른 입장을 보였다.

강금실 세목 교환이 합당한 측면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각 구청장들이 공동세안에 대해서 합의가 됐기 때문에 그렇게 가는 게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 강남지역 주민들 반발도 정책 결정시 고려가 되어야 하지 않냐는 것이다. 아직 최종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우리당 후보이기 때문에 열린우리당 권고적 당론에 대해서도 고려중이다.

▲ 이명박 시장 추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 반대

이명박 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노들섬의 오페라하우스에 대해선 두 후보 모두 건립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오 후보는 이명박 시장의 공약 중 폐기해야 할 것으로 이 문제를 꼽았다.

오세훈 시민들의 접근성이 중요한데, 아무리 그 근처를 다녀봐도 접근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찬성하지만 노들섬으로 하는 것은 반대다. 장소를 따로 물색해야 한다.

"지금은 실직자" - "선거 땜에 주식 매각"
[검증-재산] 강금실, 오세훈 가계부 공개

서울시장 선거에서 '서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강금실 열린우리당 후보의 '가계부'가 공개됐다. 두 후보 모두 로펌의 전현직 대표변호사 출신.

이들은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1500만원의 월수익으로 '서민후보' 자리는 내놓아야 했지만, 재산 현황은 큰 차이를 보였다.

선거에 나서며 법무법인 '지평'을 나와 현재 '실직자' 상태인 강 후보는 부채가 3~4억인 반면 법무법인 '지성'의 대표변호사인 오 후보는 16대 국회의원 당시 신고한 재산 22억에서 좀더 늘어났다.

강 후보는 대표변호사로 지낼 당시 수입에 대해 "월수입 1500만원과 연말 배당금으로 1억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반 변호사보다는 낮고, 다른 업체에 비해 높은 금액"이라며 자신을 '고소득자'라고 밝혔다.

2004년 법무부장관 재임 시절 공개된 빚 6억7000만원에 대해서는 "아직 다 갚지 못해 죄송하다"며 "로펌에서 받는 것으로 은행 대출금을 갚았지만 아직 남아있다"고 말했다. 강 후보 명의의 재산은 제주도 임야 1000평(1000만원 상당)이라고 밝혔다.

강 후보는 생활비 지출 내역을 묻는 질문에 "출마하면서 퇴직한 터라 그냥 정신없이 산다"며 "부끄럽지만 집이 없어서 언니 집에 산다, 생활비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또한 매달 몇백 만원씩 이자로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오 후보는 "(16대 국회의원 당시 신고한) 22억에서 조금 불어났다"고 고백한 뒤 "서민 후보는 아니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 수입에 대해 "파트너 변호사 4명과 '당분간 로펌을 키우는 데 전력하고, 집에 돈을 많이 가져가지 말자'고 약속했다"며 "작년과 재작년 각각 1000만원과 2000만원을 가져갔지만, 대신 연말 배당은 없었다"고 말했다.

지출 내역에 대해 "받은 금액을 아내에게 줘서 구체적인 것은 모른다"며 "아이들 둘 다 올해 대학을 가서 그동안 교육비로 꽤 많은 지출을 했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그러나 불어난 '+알파' 재산 내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재테크를 하는 족족 실패를 했다"며 "땅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심에 텃밭이 딸린 빌라를 샀지만 가격이 높지 않았고, 주식도 손해를 보고 선거 자금을 위해서 일부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자녀 교육과 재테크 실패로 지출은 많았지만, 재산은 불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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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노당펌]진상조사- 휴 헤프너

 

옆 건물이 플레이보이 본사였구나

 

   

2006. 5. 3. 수요일
남로당 진상조사위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를 꼽는다면 누가 있을까?

최대 강대국의 대통령인 부시? 아니면 재산이 많은 빌 게이츠? 아니면 절대권력의 김정일? 오, 노노...

그들은 가진 것이 많은 만큼 그에 대한 절대적 비난이나 혹은 독점적 지위로 인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여기 이 사람, [플레이보이] 최고경영자이자 수석 편집자인 휴 헤프너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러울 것이 없는 남자가 아닌가 한다.

대인의 (여자들의) 위용

왜냐, 전 미국 최고의 쭉방걸을 늘상 곁에 두고, 그들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때마다 므흣한 파티를 열어 전세계를 휘어잡는 미 연예계의 인사들과 함께 밤을 즐겨도 대놓고 뭐라 그러는 놈 없으며, 오히려 부러워 하지 않는가? 부시나 빌게이츠가 이러고 놀 수 있겠는가?

게다가 얼마전 국내에서도 플레이보이 모델을 뽑아서는, 그 선발된 모델의 누드 사진을 휴 헤프너의 저택에서 촬영했다 하지 않은가? 이렇게 휴 헤프너는 이제 그저 남의 나라 할아버지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리하야 이미 오래전 여러분의 손에 한번쯤은 거쳐갔을 미국 최대의 춘화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 대인을 오늘의 진상조사 주인공으로 모셨다.

대인의 탄생

대인은 1926년 4월 9일(포르노 스타 제나 제임슨의 생일과 같은 날이다) 일리노이즈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밤 하늘에서 별똥이 떨어지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의 부모는 네블스카에서 온 농부라고 하는데, 휴 헤프너는 전형적인 농가의 감리교인으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아이큐는 놀랍게도 152가 넘는 천재였다. 헤프너는 시카고의 초중고를 거쳐 미국 육군에 입대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동안 근무를 했다. 제대 후 대인은 일리노이즈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여기서 그의 첫부인이 되는 밀리 군(Mildred Williams)을 만나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인은 [섀프트 Shaft]라는 유머잡지를 만들었고, 잡지에 카툰을 팔아 돈을 벌었다. 그의 첫직업은 마분지 판지에 인쇄를 하거나 제작을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일이 만족스럽지 않았고 잡지업계로 진출을 하게 된다.

도색잡지 [허슬러]를 들고, 그가 일하던 [에스콰이어]의 표지모델이 되다.
(1976년 11월호)

백화점 외판원을 거쳐 남성잡지 [에스콰이어]의 카피라이터가 되지만, 1952년 그곳을 떠나 [Children's Activities]라는 출판하는 곳으로 옮긴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도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가구를 400달러에 저당잡히고, 45명의 투자자를 만나 10,000달러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호색잡지 PLAYBOY의 탄생

본래 [플레이보이]에 대한 아이디어는 헤프너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였다고 한다. 이 잡지의 이름은 애초에 [수컷파티 Stag Party]라고 지으려고 했으나 이미 [Stag Magazine]이란 잡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고심하고 있던 차에 그의 친구인 Eldon Sellers가 한량, 난봉꾼, 바람둥이를 뜻하는 [플레이보이]를 추천하여 주었고, 토끼가 동물세계의 플레이보이라고 착안하여 결국은 토끼를 상징으로 하는 [플레이보이]를 창간하게 된 것이다.

플레이보이의 창간호

그는 1953년 창간호를 만들면서 당시 [나이아가라] 스타가 되었던 마릴린먼로의 데뷔 전 누드 사진을 200달러에 입수, 표지로 장식하면서 무려 54,000부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플레이보이]는 다들 아시다시피 독특한 발행형태를 지금까지도 고수하고 있는데, 당해 월의 모델을 플레이메이트(PLAYMATE)라고 명하고, 그들의 칼라누드화보를 중간에 접어 넣음(Centerfold)으로 구매력을 이끌었다. 비디오가 나오면서 그들의 영상을 촬영하여 판매하였고, 한 해가 지나면 각 달의 플레이메이트를 모아 캘린터영상을 만들어팔았다.

그 첫 번째 센터폴드의 내력이 재밌는데, 1955년 사무실에 사환아가씨가 있었는데 헤프너가 그녀에게 누드를 한 번 찍어볼 것을 권했다. 이에 응한 그녀는 그해 6월 센터폴드로 잡지에 실리게 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Janet Pilgrim이었다(본명은 Charlene Drain).

Janet Pilgrim

또한 문제도 있었는데, 1958년 엘리자베스 앤 로버츠라는 모델의 누드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녀의 사진이 잡지에 실리고 나서 그녀의 엄마가 주정부에 체포가 되는 일이 생겼는데, 그녀의 나이가 18세가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헤프너는 그녀로부터 18세가 넘었다고 들었던 것이다. 결국 아이의 사진을 실을 수 없었다.

대인의 여인들

아까 말했듯이 그는 첫 번쨰 부인이 될 여자를 대학교에서 만났다. 그녀와의 사이에 크리스티 헤프너(현 경영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컴퓨터프로그래머인 아들 데이비드가 있다. 헤프너는 첫 번째 부인과 1949년에 결혼, 1959년에 이혼했다.

Kimberley Conrad

그후 1988년 플레이메이트 출신인 킴벌리 콘라드(Kimberley Conrad)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그후 1989년애 PMOY(PlayMate Of the Year)가 되었다.이 결혼 또한 1998년 깨졌으며, 그의 일부일처 생활은 이것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이후론 그는 결혼은 하지 않고 18~19 세 되는 그해의 플레이메이트를 불러다 집에서 지내고는 했는데, Donna Michelle, Marilyn Cole, Lillian Muller, Patti McGuire, Terri Welles, Shannon Tweed, Brande Roderick, Mary Warren, Barbi Benton, Karen Christy, Sondra Theodore, Carrie Leigh 등이 그녀들이다.

Shannon Tweed

킴벌리 콘라드와 헤어지고 나서는 18~28세의 금발 미녀들을 데리고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는데, 그는 어느 잡지에서 이랬다고 한다.

놀랍게도 말이죠... 그녀들도 원한다는 거에요. ^^

니덜도 원한다고? 사실이야? 진짜야?

이런 닝기리...

여튼, 늘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는 이 80세의 할아버지... 돈있지, 여자있지, 큰집있지... 세상천지에 부러울 게 뭐란 말이냐. ㅜ.ㅜ;;;

어떤가, 다들 부럽지 않은가?

이런 거 해보고 싶잖아!!!

* 본 기사는 남로당(www.namrodang.com)에서 제공합니다. 퍼가실 때는 출처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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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꼭짓점 댄스

히딩크 꼭짓점 댄스
2006-05-03 15:30 | VIEW : 2,163

지난 2일 네이버붐에 '월드컵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아드보카트와 히딩크의 환상 듀엣 꼭지점 댄스!!!'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입니다.

2002년 한국 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 감독과 2006년 한국 대표팀 감독인 아드보카트, 그리고 코치들이 '오~ 필승 코리아' 음악에 맞추어 '꼭짓점 댄스'를 추는 에니메이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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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7080외화

 

 

 

참고적으로 저도 제가 이 땅위에 등장한 연령상의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출생 이전(그리고 출생 직후)에 방영된 외화들까지 추적할 수 있는 능력은 없고요. 다만 제 기억력의 끝에 존재하는 추억의 TV 외화는 ‘서부를 향해 달려라’ 이오니, 여기를 제 기억의 시작점으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개구장이 천재들 (Here come the double deckers)

'멋장이 이층버스 우리 모두 타고가자~'로 시작되는 주제가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작품. 아마 당시 우리말 노래 작업을 이정선씨가 담당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주제가가 아닌 극중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까지 성우들이 부른 외화는 매우 이례적이었던 것으로…





개구쟁이 푸무클 (Meister Eder und sein Pumuckl)

애니메이션과 실사가 합성되었던 외화. MBC에서 일요일날 아침에 해서 많이 보지 못함.





게리슨 유격대 (Garrison's Gorillas)

‘배달의 기수’가 한창 방영되고 있던 1980년대 초반, KBS의 ‘전투’와 쌍벽을 이루던 MBC의 간판 전쟁 외화. 이때의 경쟁의식이 식지 않아 훗날 MBC가 ‘3840 유격대’라는 자체 제작 드라마를 만들고 뒤이어 KBS가 ‘전우’를 만들어 맞불을 놓음. 당시는 반공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던 시절이라 이런류의 외화, 드라마들이 호황을 누리던 무렵으로 ‘게리슨 유격대’의 경우 멤버들이 전문 범죄자들로 구성되었다는 점이 특이. 다만 어린 나이에도 어이가 없었던 것은 게리슨 유격대는 좀 심하게 총알을 피하는 한편, 독일군은 총알 지나간 근처에만 있어도 퍽퍽 쓰러지심(ㅡㅡ;). 갑자기 방영이 중단되었던 걸루 기억하는데, 독일 대사관에서 항의해서 조기 종영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0011 나폴레옹 솔로 (The men from U.N.C.L.E)

007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이 계신 것에 반해, 0011 나폴레옹 솔로를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아 늘 아쉬움(ㅠ.ㅜ). 토요명화에서도 특별편이 2편인가 방영이 되었었고 개인적으로 솔로보다 그의 명콤비인 러시아 요원 쿼리아킨을 더 좋아했음. ‘A 특공대’ 2기 1화에서 로버트 번(나폴레옹 솔로)이 한니발의 상관으로 부임하고 악역 보스로 쿼리아킨이 출연한 에피소드를 그래서 정말 잊을 수 없음.. ㅠ.ㅜ





공룡 시대
한 가족이 어느 동굴 급류를 타고 옛날 공룡시대로 빠져버리는 화면으로 매회 시작. 상당히 유니크한 분위기의 외화로 공룡 보다 오히려 울트라맨 같이 생긴 놈들 등장할 때 더 오싹했던 기억.






광속인간 샘 (Quantum Leap)

SBS 개국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외화. 양자 이론을 연구하던 주인공 샘이 스스로 양자 가속기 안에 들어가 과거를 들락거리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사는 내용.




그날 이후
핵폭발이 있고 주인공이 저능아를 낳았는데, 엔딩에서 그 저능아 딸이 아이를 낳다가 태아를보고 놀라는 장면이었던 걸루.






기동순찰대 (CHIPS)

어린 시절 최고 인기 외화 중 하나. 정말로 인근에서 순찰자들이 몰려오는 듯한 분위기의 주제가 음악과 오토바이 경찰에 대한 환상이 최고조에 달함. 개인적으로 에릭 에스트라다가 연기한 판치 보다 죤이 더 좋았는데, 2기에서 멤버가 교체되어 아쉬웠음.





남과 북 (North And South)

존 제이크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패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미니 시리즈. 방영 때 마다 KBS에서 광고를 엄청나게 해대서 본편보다 광고에 대한 인상이 더 깊게 맺힘. 국내에서는 속편 시리즈까지만 방영이 되었는데, 최종장이 한편 더 있는 걸루.





내 사랑 지니 (I Dream Of Jeannie)

엄청 오래된 외화로 나중에 그 우주 비행사와 지니(바바라 이든)가 결혼하면서 끝났던 걸로 가물가물 기억. ‘판타스틱4’에서 투명인간으로 출연했던 제시카 알바 주연으로 리메이크 되는 것으로 뉴스를 접함.





내 이름은 펑키 (Punky Brewster)
'
내 이름은 펑키. 모두가 나를 사랑해 우우우~'
짝짝이 신발이 패션 포인트! ㅋㅋㅋ





뉴욕 경찰 25시 (NYPD Blue)

미국에서는 12시즌인가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대히트했지만 국내에서는 조용히 방영하다 조용히 끝남. 다만 당시 멋쟁이 형사였던 데이빗 카루소가 C.S.I의 반장으로 현역 복귀! 매주 일요일 밤 너무 재밌게 보구 있음.. ^^





늑대 미녀 (She-Wolf of London)

비교적 최근에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벌써 이게 10년이 되었네요. SBS에서 개국 초기에 방영했던 외화 시리즈죠.





닥터 퀸

서부의 한마을에 새로 온 여의사와 그 마을 주민들이 나오는 이야기.
주인공(제인 시모어)이 아마도 007 본드걸 출신이었던 걸루…





달라스 (Dallas)

1970년대 미국 최고 히트 드라마. 주제가는 지금도 여러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되고 있고, 미국내 최상류층 부호들의 생활을 그려 화제가 됨. 특히 범인을 알려 주지 않은 상태로 다음 시즌 방영까지(평균 6개월) 기다리게 만들어 악명을 떨침. 하지만 국내에서는 큰 반향 일으키지 못하고 출시된 DVD도 썰렁한 반응 이어짐.





달려라 래시 (Lassie)

개가 주인공으로 나온 외화들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린 작품으로 TBC에서 최초 방영되었고 나중에 KBS에서 다른 시리즈가 방영. 원래는 작중의 개는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개인 콜리(COLLIE)종이지만, 저 작품의 영향으로 저렇게 생긴 개를 본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일단 ‘래시’라고 부르고 보는 현상 발생함.





달려라 벤지 (Benji)
개인적으로 ‘래시’보다 더 재미있게 봤건 개가 주연인 외화. 외계인 왕자와 그를 찾는 검은색 밴을 타고 다니는 악당들. SF적 설정으로 재미가 배가되었음. 과거 버전에 사용되었던 이지혜씨 주제가도 너무 좋아했던 기억.. ^^






달려라 죠 (Run, Joe, Run)

물론 ‘달려라 죠’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그건 재방 기준이고 본래는 MBC에서 ‘명견 호보’라는 제목으로 먼저 방영되었던 작품. 훈련 교관을 공격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될 운명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군견의 모험담을 그린 이른바 세퍼드판 도망자라고 할 수 있는 작품. MBC판 주제가가 참 좋았는데, ‘모두 나를 오라 해도 나는 혼자 사는 개야. 나 사귀고 싶으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 오오시이오. 호보 호보. 정다운 친구. 씩씩하고 즐거운 우리의 호보’





도망자 (The Fugitive)

요즘 세대에겐 해리슨 포드판 ‘도망자’가 더 익숙하겠지만, 그래도 ‘도망자’하면 역시 흑백 TV 시절 방영된 리차드 킴블의 ‘도망자’가 진짜죠. 매주 잡을 듯 잡을 듯 하면서 놓쳐버리는 외팔이 놈 때문에 무진장 열통 터졌던 기억이... ㅡ^ㅡ





도망자 로건 (Logan's Run)
미래를 배경으로 일정나이가 되면 사람을 속여서 죽이는데, 여길 탈출해서 다니는 우리의 로건. 이 작품을 기억하고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를 보시면 더 재미있죠.. ^^






독수리 특공 작전 (Street Hawk)

‘전격 Z 작전’과 ‘출동 에어울프’가 한창 맞짱을 뜨고 있을 무렵, 틈새를 공략해 방영된 컴퓨터 오토바이 등장 외화. 나름대로 팬층을 확보할 수 있는 매력이 있었던 작품이지만, 본래 미국에서 제작된 분량 자체가 너무 짧아(13부작) 그것으로 기억에서 잊혀져 감.





돌아온 세인트 (Return of the Saint)

어려서 너무 재미있게 매주 시청했던 외화중 하나. 물건 훔치고 머리에 후광이 달린 성자 문양을 남기고 사라지는 세인트의 활약상을 그리고 있죠. 로저 무어 주연의 ‘세인트’를 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안 오기르비가 사이먼 탬플러 역을 맡았던 속편 ‘돌아온 세인트’는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물론 1990년대에 발 킬머 주연으로 리메이크된 영화는 더더욱 확실하게 기억하고요(^^:) 본래 레슬리 차더리스의 소설을 각색한 시리즈인데, 어려서 해문 추리문고 시리즈로도 한편이 나왔었죠. 아~ 정말 다시 보고 싶은 외화... ㅠ.ㅜ





동양특급 로형사 (Martial Law)

할리우드로 간 홍금보.. ㅋㅋ





두 얼굴의 사나이 (The Incredible Hulk)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설명이 필요 없는 외화로 재작년인가 리안 감독이 최첨단 CG로 리메이크. 주인공 배너 박사 역을 맡은 빌 빅스비가 공동 연출로 참가했을 만큼 큰 애착을 가지고 만들었다고 하고, 당시 세계 보디빌딩 대회 우승자인 루 페리그노가 헐크 역을 맡아 열연(리메이크판에도 우정 출연한 걸로 암). 개인적으로도 많은 에피소드들이 기억에 남는데.. 산불 끄는 편하고 미식축구 편 등이 기억. 하지만 특히 잊지 못하는 것은 마지막에 나오는 그 피아노 엔딩곡, 너무 좋아해서 녹음기에 녹음했을 정도.





듀크 삼총사 (The Dukes of Hazzard)

그 당시 10대 소녀팬들의 절대적인 인기를 모았던 죤 슈나이더. 그리고 캐서린 바하. 국내 각종 하이틴 잡지들을 도배했던 기억. 지금은 어떤 모습들이 되어 있을지.. ^^





레니게이드 (Renegade)

1990년대 중반(주 5일제라는 것이 꿈나라 얘기 같았던 시절), MBC에서 토요일 낮 1시경에 방영하는 바람에 초딩들 외에는 보기가 매우 힘들었던 외화(그치만 기어코 시청!). 할리 타고 떠도는 리노의 모습이 참 멋있었던 외화.





레밍턴 스틸 (Remingtonsteele)

피어스 브러스넌이 007에 캐스팅되면서 더 유명해진 외화. 역시 토요일 낮에 하는 바람에 시청이 참 힘들었는데, 나중에 시간대를 옮겼던 걸루 기억. 최종화에서 레밍턴이 아버지를 찿아내고 여주인공을 들어 올린 채 계단을 올라가면서 끝난 것으로 가물가물 기억.





레이븐
‘레니게이드’ 이전에 했던 것 같은데, ‘600만불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가 할아부지 되가지고 나와서 허걱(!)했던 외화.





로보캅(?)
이거 ‘엑스 파일’ 4기인가 끝나고 막간을 이용해 잠시 방영되었던 걸루 기억력 세포 몇 마리가 오차 범위 밖에서 검색 추천어로 제시하고 있는데, 제목부터가 확실치가 않음. 암튼 비스무리한게 한 것 같음. 같은 증상으로 제목을 까먹은 외화 중에 ‘엑파’의 크라이책이 별도로 나왔던 첩보 스타일 외화가 ‘엑파’ 8시즌인가 방영 전에 잠깐 했던 것 같은데 역시 기억을 잃어버림.. ㅠ.ㅜ






립타이드 (Riptide)

3명인가의 유쾌한 녀석들이 활약하는 MBC에서 한 외화였는데, 한명은 천재에 코믹 싸이코인 '머리' 라는 이름이었고 나머지 두명 중에 한명이 맨날 코뼈가 부러지고 또 부러지고 했던 기억이 나지만.. 역시 여기까지가 기억력의 한계.





마샬의 환상여행
거의 아동용 ‘환상특급’이었던 걸루... 감독중의 한명으로 조 단테가 참여 했는데, 그래서인지 광고 할 때마다 이 부분을 방송국에서 강조!






마이애미의 두형사 (Maiami Vice)

공중파에서는 그럭저럭 방영하다 말았던 것 같은데, 요즘 추억의 외화 전문 채널 ‘시리즈 TV'에서 줄창 방영중. 현재 제이미 폭스와 콜린 페럴 주연으로 리메이크 영화 나올 예정인 듯.





말괄량이 삐삐 (Pippi Longstocking)

언제 들어도 명랑유쾌한 주제가도 잊을 수 없지만, 특유의 어조로 ‘토미~ 아니카~~’를 부르던 성우 주희씨의 목소리도 잊을 수 없는 외화. 전세계적인 히트 속에 당시 삐삐 역을 맡은 잉거 닐슨에 대한 루머가 더 화제를 모았는데, 본래 남자였다는 둥, 연기중 높은데 올라가서 떨어져 죽었다는 둥... ㅎㅎㅎ 별에 별 루머가 더 떠 돔. 참고적으로 잉거 닐슨은 지난 2000년에 ‘GRIPSHOLM’이라는 영화에 안데르손 부인 역으로 출연해 30년 이상이 지속되어 온 모든 루머들에 종지부를 찍으심!





맥가이버 (Macgyver)

국내 외화 절정기였던 1980년대 중반 그중에서도 인기 최절정에 올라있었던 외화. 아무런 무기 없이도 특유의 맨손 개인기로 문제를 해결하는 맥가이버의 활약상과 손튼 국장의 감초 연기로 많은 사람들이 시청했으며 때문에 평일 심야 시간대에서 골든타임인 주말 저녁 시간대로 이동 편성되었다. 특히 맥가이버 역을 맡은 리차드 딘 앤더슨의 헤어스타일도 당시 대인기를 누렸는데, 이발소에서 ‘맥가이버 머리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B.A 머리로 만들어 놨다는 유머가 유행했을 정도.. ㅎㅎㅎ





맥케이 (The Wizard)

정확히는 ‘마법사 맥케이’였던 것 같은데, 맥가이버의 후광 속에 방영된 일명 난장이판 맥가이버. 하지만 결정적으로 재미가 없어서 조기 종영됨.





맨하탄의 사나이 (Equalizer)

전직 첩보원 출신의 사설탐정 에드워드 아저씨의 활약 내용인데, 오프닝 장면에서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범죄 장면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잡고 당신도 이런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심야에 마지막 전철을 놓치는 거라던가, 엘리베이터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되는 상황이라던가, 자해공갈단의 함정에 빠지는 것 등등)식으로 굉장히 칙칙한 분위기로 만들려고 애썼던 작품. 의외로 많이들 기억 못하심.





머나먼 정글 (Tour of Duty)

정말 오랜만에 공중파에 방영된 밀리터리 전쟁물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킴. 롤링스톤즈의 ‘Paint it Black’을 주제라고 사용해 강한 인상을 남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600만불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가 출연한 적이 있음. 한국전 때 일등병이었고 오키나와의 자기 소대 실종자 2명중 한명이라고 자기소개... ㅋㅋㅋ





미녀와 야수 (Beauty And Beast)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린다 해밀턴 나왔던 드라마판 미녀와 야수.





미녀 삼총사 (Charlie's Angels)

최근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되면서 원작 시리즈의 주가까지 함께 오르게 된 고전 첩보물. 재클린 스미스, 파라 파셋, 케이트 잭슨을 1기 멤버로 이후 당대의 미녀 배우들이 대거 투입되며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는데, 국내에서는 1기만 방영되었던 걸루 기억. 고로 찰리의 정체를 보지 못함.. ㅠ.ㅜ





미녀 첩보원 (Scarecrow & Mrs.King)

그 옛날 ‘미녀 삼총사’ 1기에서 맹활약했던 케이트 잭슨이 전직을 못 버리고(ㅋㅋ) 유부녀가 된 뒤에도 첩보원으로 등장하는 기발한 외화로 국내 방영 제목의 네이밍 센스가 돋보이는 작품. 원제는 보시다시피 ‘허수아비와 Mrs.킹’인데, 이유는 케이트 잭슨의 상대역 브루스 박스라이트너의 암호명이 ‘허수아비’였던 걸로. KBS에서 ‘부부 탐정’ 끝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린시절부터 첩보물 무지 좋아했던 본인에게 있어서 잊혀지지 않는 외화중 하나.





미래의 묵시록 (The Stand)
MBC에서 6부작 미니시리즈로 했던 스티븐 킹 작품. 게리 시나이즈가 주연하고 케시 베이츠나 에드 해리스, 스티븐 킹이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작품. 지구 멸망 후에 사람들의 생활과 선악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스티븐 킹의 ‘다크타워’ 4권을 읽어보셨다면 이 작품이 다크타워의 전편이라는 것을 아실듯.






바야바 (Bigfoot and Wildboy)

추억의 외화를 꼽을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인지도 최강의 외화. 주인공이 바야바를 부르던 장면과 그러면 들판에서 카메라 각도 45도를 유지한 채 슬로우 모션으로 뛰어오던 바야바의 모습, 다들 기억하실 것임.





별들의 전쟁 (Buck Rogers)
냉동되어서 미래에서 부활한 젊은 아저씨의 우주 로망. 20세기의 우주비행사 버크 로저스가 25세기 지구로 귀환하여 활약하는 우주 활극. 여주인공들의 의상이 매우 섹시해서 눈을 땔 수가 없었으며(^^:) 특수효과 장면들도 당시로서는 파격적. 본래 주인공 이름과 원제(버크 로저스)가 동일했으나 방송사의 계략으로 스타워즈가 되어버린.. ㅡㅡ;






부부 탐정 (Hart to Hart)

백만장자 부부가 취미(?)로 탐정 일을 한다는 내용의 외화. 어린나리에 보기엔 좀 지나친 애정 표현이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요새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급의 장면이어서(^^::) 아무튼 돈 많은 부부가 아이도 낳지 않고 개 한 마리 키우면서 멋지게 사는 걸 보면서 왠지 부러웠던... ㅋㅋㅋ





뿌리 (Roots)

윽.. 쿤타킨테가 KKK단에게 붙둘려 엄지 발가락이 잘려 나가던 순간은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ㅠ.ㅜ





비밀의 계곡 (Secret Valley)

KBS에서 평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 되었던 추억의 캠핑 스타일 외화. 주제가가 너무 좋았는데, 호주 민요인 'Waltzing Matilda'를 우리말로 개사해서 만든 노래로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해맑은 아침이면 정답던 친구들. 지금은 뿔뿔이 흩어져.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친구들. 내 노래 소리를 들어라.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나무 속에 감추어둔 물총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려. 어스름 저녁이면 들려오던 목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겠네. 불러봐도 대답없는 친구들. 내 노래 소리를 들어라.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아무리 뒹굴어도 변치않는 계곡에 모이자 노래하자. 뛰놀자~’
*예전에는 외화들에도 참~ 고운 노랫말을 달아 주었던 것 같았는데요.. ㅠ.ㅜ





비버리힐즈의 아이들 (BEVEREY HILLS 90210)

방영 내내 정말 많은 화제를 모았던 하이틴 외화.





V

1980년대 최고 화제의 외화로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킴. 국내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모으며 특히 최초 5부작의 경우 이전까지 국내 최고 시청률이었던 ‘유리겔라 초능력쇼’의 시청률을 경신했다고 신문에 보도되었을 정도. 하지만 마이클 아이언 사이드가 가세하는 2기 시리즈의 경우 갑자기 레지스탕스물로 돌변해 명성을 깍아 먹으심. 특히 초기 5부작의 경우 국내 성우진도 도노반 역에 양지운, 다이아나 역에 주희씨가 맡아 최고의 기량을 뿜어냈지만, 2기로 넘어가면서 도노반 성우도 바뀌고 무엇보다 다이아나 역 성우를 이경자씨가 맡음에 따라 물론 표독스러운 면은 강화되었지만, 악역임에도 매력이 있었던 다이아나의 이미지가 변조됨.(참고적으로 다이아나 역을 맡은 Jane Badler는 본래 미스 아메리카 출신) 한편 V는 국내 방영 도중 무수한 루머가 나돌았는데, 특히 마지막에 모든게 도노반의 꿈이었다는 억수로 김빠지는 루머가 기승을 부림.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건 엔딩이 아니라 나중에 나오는 하나의 에피소드였는데, 국내에서 부풀려진 것이었음. 그리고 가장 황당했던 루머 중에 다이아나가 극중 생쥐를 삼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씬 찍다가 실수해서 진짜로 생쥐를 삼켰다는 악성 루머가 마구 퍼짐... ㅡㅡ;;;





블루문 특급 (Moonlighting)

브루스 윌리스의 존재를 알리게 되었던 외화.





사브리나 (Sabrina the teenage witch)

멜리사 조안 하트의 귀여운 연기가 매력 포인트였던 마법소녀 사브리나의 이야기. KBS에서 주말 오후 4~5시라는 아주아주 드러운 시간에 배정을 해주었음에도 죽어라 시청! 하지만 지멋대로 방송 중단해버려 결국 포기. 최근 케이블에서 방영중!





사랑을 찾아드립니다 (Finder of Lost Loves)
멋쟁이 사립탐정과 섹시한 처제가 한팀이 되서 의뢰인들의 사랑을 해결해주는 외화.





사랑의 가족 (Family Ties)
마이클 J 폭스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던 미국의 인기 시트콤인데 우리나라에는 꽤나 늦게 방영되었던 걸로 기억. 마이클의 실제 부인인 트레이시 폴란도 극중에 등장했고 커트니 콕스도 애인으로 나왔던 걸로.... 다시 생각해 보니 코스비 가족 끝나고 국내 방영되었던 걸로... (이런 추정의 연속이군;;;;;;;)





사랑의 유람선 (Love Boat)
어째 주제가만 생각이 나고, 장면이 별루 기억 안나는 외화.





4차원(?)
V 끝나고 했던 외화. 피라미드를 여행하던 가족이 4차원 휩싸여 겪는 모험기로 나름 분위기빨 있고 괜찮았는데, 얼마 보고 있으려니 행방이 묘연해 짐.






쌍둥이 에디슨 (Edison Twins)

남녀 이란성 쌍둥이가 나와서 과학 얘기하고 발명하고, 프로그램 끝나면 과학상식 알려주던 외화.





서부를 향해 달려라 (Wild West)

본인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외화이자, 30년이 다되도록 잊혀지지 않는 외화! TBC에서 목요일 밤 10시에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장면과 장면 사이의 전환을 정지 화면을 일러스트로 바꾼 뒤 줌 아웃 되면 그 일러스트 커트가 만화책의 한 커트가 되고, 그런 식으로 커트가 하나씩 차면서 나중에 끝날 때는 만화책 한 페이지가 완성되는 당시로선 너무나 인상적인 기법을 사용. 몇 년 전에 윌 스미스 주연으로 무진장 제작비 많이 들여서 영화(Wild Wild West)로 리메이크되었으나 원작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해 개인적으로 무지 슬퍼함.. ㅠ.ㅜ





소머즈 (The Bionic Woman)

‘600만불의 사나이’와 함께 197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외화 시리즈. 본래 ‘600만불의 사나이’에서 스티브 오스틴의 약혼자였지만 스카이다이빙 도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걸로 되어 있었는데, 당시 ABC 방송국에서 이를 흥행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녀를 바이오닉 우먼으로 되살려내 독자적인 TV 시리즈로 만든 것이죠. 그런데 당시 재미있었던 사실이 이 무렵 스티브 오스틴 역의 리 메이저스가 돌연 ‘미녀 삼총사’의 금발 미녀 파라 파셋과 실제로 결혼을 하면서 팬들 사이에서 왜 스티브 오스틴이 소머즈와 결혼하지 않고 딴 여자와 결혼하냐고 원성이 엄청나왔던 걸루... ㅋㅋㅋ 그래서인지 ‘소머즈’는 기존 인기에 동정표까지 얻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인기 급상승했던 걸루.. ^^





슈퍼맨 (Super Man)
수많은 ‘슈퍼맨’ 시리즈 중에서도 이건 SBS판 슈퍼맨. 다만 당시 성우 장세준씨가 괌 비행기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일시적으로 성우를 교체했으나) 조기 종영. 당시 크리스토퍼 리브를 비롯한 역대 슈퍼맨 관계자들이 모두 불행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해서 나옴.






슈퍼소녀 비키 (Small Wonder)

로보트 비키가 메이드(^^:) 같은 역할을 하는 내용의 외화였던거 같은데, 고장이 나면 등을 열어서 고치고 하던게 마치 외화판 ‘닥터 슬럼프’를 보는 기분이었죠.





슈퍼 소년 앤드류 (My Secret Identity)

소년들 사이에서 많은 화제가 되었던 초능력 소년 외화. 전속력 질주시 시계가 녹을 정도의 괴스피드를 자랑했죠. 주인공 제리 오코넬이 그 땐 참 멋져 보였는데, <스크림2> 보다가 이따맣게 커버린 그를 보니 순간 당황.. ㅎㅎ






슈퍼 특공대 (Misfits of Science)

어린 시절 MBC에서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함께 나오는 동명의 만화영화(원제: Superfriends)가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 몇 년 뒤 위의 히어로들은 나오지 않지만 다르지만 각기 다른 초능력자들이 함께 활약하던 실사판 ‘슈퍼 특공대’가 일요일 아침 11시 KBS에 방영이 되었죠. 자유자재로 자신의 신체를 변형 할 수 있는 Elvin, 염력의 소유자인 Gloria, 양 손에서 2만 볼트의 전기를 방출하는(그래서 물을 무지 무서워했던) Johnny B가 활약하는 외화. 너무너무 재미있었는데, 너무 빨리 끝나 버려서 무지 슬펐죠. 특히 풋풋했던 커트니 콕스가 머리 쥐어뜯으면서 염력을 쓰는 모습 정말 잊을 수 없죠.. ㅋㅋ





스타맨 (Starman)

88 서울 올림픽 개최 직전에 방영이 시작되었던 독특한 설정의 외계인 초능력자 이야기. 외계에서 온 스타맨이 사건에 이상한 구슬로 초능력을 발휘해 죽은 사람도 살리고 병도 치료하고 기적을 이룬다는 내용. 주제곡이 흐르면서 스타맨과 아들이 나란히 걸어가던 장면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 뭉클. 본래 존 카펜터의 원작 영화가 있는 것으로 알고 이후에 극장판도 만들어진 걸루 암.





스타트랙 (Star Trek)

귀가 뾰족한 스코프(레오나드 니모이 분), 커크 선장(윌리엄 섀트너 분) 정말 AFKN에서 줄창 해주는 바람에 어린시절 가장 친숙했던 외화 주인공들이었죠. 이후로도 시리즈가 무진장 만들어졌고요~





스턴트맨 (The Fall Guy)
'6백만불의 사나이'의 리 메이저스가 카우보이 스타일로 나왔던 외화. 컨트리 음악 스타일의 주제가, 그리고 악역은 잭 팔란스였던 걸루…






스파이더맨 (Spider-Man)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을 처음 본 것은 ‘세서미 스트리트’와 쌍벽을 이루던 어린이 프로 ‘일렉트릭 컴퍼니’에서 매주 연재하던 실사 만화를 통해서였고, 이후 MBC에서 본편 시리즈가 방영되어 매주 너무 재미있게 시청!





시카고 호프

의외로 재미 있었던 'ER' 스타일의 외화.





신나는 개구쟁이 (Diff'rent Strokes)

백인 가정에 입양된 두 흑인형제의 이야기. 코스비 스타일의 시트콤이었고 백인 누나였던 킴벌리가 예뻤음. 똘똘이 스머프 장유진님의 아놀드 목소리도 많이들 기억하고 계실 듯. 무하마드 알리가 특별 출연했던 편이 특히 인상에 남음.





아내는 요술쟁이 (Bewitched)
작년에 니콜 키드만 주연의 영화로 리메이크가 되었죠.






아들과 딸들 (Eight is enough)

아들과 딸들 무쟈게 나오던 외화. 일요일 오전에 시청했던 것 같은데, 우문희씨가 연기한 꼬마 니콜라스가 가장 인기. 이발소에서 엄마들이 애들 데려가서 니콜라스 스타일로 깎아 주세요 했던 기억.





아빠는 멋쟁이 (Silver Spoons)

어린 마음에 집안에다가 업소용 게임기에 진짜 타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용 기관차까지 깔아놓은 걸 보고 어떻게 돈을 벌면 저렇게 살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ㅋㅋ 영화 <챔프>로 스타덤에 올랐던 아역 배우 리키 슈로더가 출연해 인기를 모았음.





아빠 뭐하세요 (Home Improvement)

팀 알렌 주연의 가족 시트콤





아이언맨 (Cover Up)
‘에어울프’ 끝나고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패션모델 액션활극(?). ‘6백만 불의 사나이’에서 오스카 골드만 국장으로 나왔던 리처드 앤더슨이 상관으로 출연. 남자 주인공격이던 맥 하퍼가 8화만에 죽고 9화부터 잭 스트라이커라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교체되어 상당히 파격적인 설정으로 받아 들여 졌는데, 이것은 맥 하퍼의 배우가 총기 오발 사고로 실제로 사망했기 때문이란 이유를 나중에 듣고 허걱!함. 케빈 베이컨 주연의 영화 ‘풋루즈’에도 삽입된 보니 타일러의 "Holding Out for a Hero"가 주제가로 사용.






아틀란티스에서 온 사나이 (The Man from Atlantis)

손바닥에 물갈퀴가 달린 남자 ‘아쿠아맨’이 여기서 등장.





야망의 계절 (Rich Man, Poor Man)

어윈 쇼 원작의 감동의 미니 시리즈. 주인공 루디 조다쉬 역의 피터 스트라우스가 너무 멋있었던 외화. 하지만 동생 톰 조다쉬 역을 맡았던 닉 놀테가 나중에 배우로서 더 큰 인기를 누림. 국내 방영 당시 여주인공(에구 이름이 가물가물)역을 맡았던 성우 이선영씨의 명연기도 잊을 수 없음.





어느날 갑자기 (The Sixth Sense)
1970년대 후반 경에 하던 외화. 실종자의 물건을 갖고 영감을 떠올려 찾는다든지 하는 류의 작품. 이거 방송된 후에 한동안 초능력 붐이 일었남. 원제가 The Sixth Sense인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브루스 윌리스 나오는 영화 나왔을 때 나이트 샤말란이 이거 리메이크한건줄 알았으나 아니었음.




 


어메이징 스토리 (Amazing Stories)

‘환상특급’과 쌍벽을 이룬 스티븐 스필버그의 기발한 상상력이 들어간 외화. 주말의 명화에서 극장판도 방영.





에어울프 (Airwolf)

정확한 국내 방영명은 ‘출동! 에어울프’로 19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린 외화 시리즈중 하나. 소년중앙에서 ‘에어울프와 키트가 싸우면 누가이길까?’라는 특집 기사가 실렸을 정도로 당시 초미의 관심사(기사의 결론은 무승부라고 나옴;;;;;). 다만 더더욱 사람 가슴 설레게 만들어 놓고 돌아온 2기 시리즈 1화에서 폭발 사고로 도미니크 아저씨 돌아가시고 호크(쟌 마이클 빈센트)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돌연 호크의 형이 주인공으로 등장,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더니 이후로 완전 인기 추락. 어떻게 끝났는지 조차 기억 못함.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빈센트의 알콜 중독이 촬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해 2기에서 퇴장 당했다고 함.(실제로 최근까지도 음주 운전으로 사고 냈다는 류의 외신만 계속 날아들고 있음. 안타까운 말로인 듯.. ㅠ.ㅜ)





A 특공대 (A-team)

월요일 밤 10시(당시 외화 황금 시간대. 엑스파일 초기까지 이어짐)면 찾아 온 무적의 A 팀. 멤버의 진용만 보더라도 뭔가 일 저지를 것 같은 분위기가 폭발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죽이는 장면은 철저히 자제된 외화. 악당을 잡을 때도 주변에만 열나 총을 쏴서 항복을 시킨 뒤 어떻게 해서든 산 채로 생포를 해내는 대단한 능력.. --: 역시 무진장 재미있게 시청했으나 ‘0011 나폴레옹 솔로’의 로버트 번이 새로운 상관으로 부임하는 2기에서 인기가 꺽임.





엑스 파일 (X-file)

세기말 분위기가 전세계를 휘감았던 1990년대를 완전 장악한 희대의 문제작. 역대 어떤 외화들보다 두꺼운 매니아층을 형성하며 사회적 현상으로 확대되었으며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는 유행어를 만들어 냄. 국내에서는 특히 이규화(멀더 역), 서혜정(스컬리 역) 등 성우들이 스타덤에 오르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장장 9시즌에 걸쳐 KBS에서 전시즌 방영. 단 시즌과 시즌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제3의 눈’, ‘이퀄라이저’ 등의 막간 외화들도 엑파 시간대 특수를 누림(다만 당시 불어 닥친 토크쇼 바람에 눌려 10여년 이상 사수해 온 월요일 밤 10시 외화 시간대를 내준 이후, 팬들의 원성이 옴브즈맨을 폭격. 그럼에도 시간대를 되찾아오지 못했다는 점은 외화 매니아로서 무지 슬펐던 일.. ㅠ.ㅜ)





영 인디아나존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소년기를 숀 페트릭 프레너리가 연기 했던 스케일 장난 아니었던 외화 시리즈.





오토맨 (Automan)

당시 MBC 방영명이 ‘전자인간 오토맨’이었던 것 같은데, 시리즈가 방영되기 전에 ‘글로리아’로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Laura Branigan이 특별 출연했던 극장판(특별편?)이 주말의 명화에서 먼저 방영되고 이후에 고정 편성되었던 외화. 척~ 하면 뭐든지 뚝딱 만들어내는 커서의 활약은 당시 컴퓨터라는 문명의 이기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그대로 반영해 냈고 이에 따른 여러가지지 흥미로운 발상(특히 오토맨이 활약하기 위해서는 컴퓨터에 엄청난 전력이 필요해서 전력 사용량이 적은 심야에 주로 활약)들이 동원됨. 오토카는 도로 주행시 커브를 틀 때 마다 직각(!) 턴을 하는데, 이때 창문에 처밖혀 있던 동승자의 자세가 압권.. ㅋㅋㅋ 너무 짧아서 아쉬웠던 외화.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
너무 많이 접해서 즐겨 보지 않았던 외화.





외계인 메스타
어떤 외계인 왕자가 자기 네 별의 전쟁으로 지구로 피신. 그러면서 자기가 가진 초능력으로 지구인을 돕는 내용인데 기억하는 분 별로 안계심.. ㅠ.ㅜ






외계인 알프 (ALF)

캐릭터도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당시 성우 배한성씨의 독특한 어조도 함께 유행을 타서 개스 프로에서 무진장 따라 하심.





외계인 제시
무식할 정도로 힘이 센 외계인이지만 껍데기는 멀쩡한 주인공이 미국을 떠돌아 다니는 내용이었던 걸루. 역시 기억하는 분 별루 안계심.






용감한 형제 (The Hardy Boys)

두 형제가 모험중에 겪는 미스터리하고 신기한 이야기들. 원작 소설이 있었던 걸로.





우주대모험 1999 (Space 1999)

‘에드우드’로 아카데미 조연상을 수상했던 명배우 마틴 랜도의 팔팔하던 시절을 돌아 볼 수 있었던 외화. 프라모델이 무진장 팔림(헬렌 역을 맡으셨던 성우 정희선님의 목소리가 인상적)





우주전함 갤럭티카 (Battle Star Galactica)

‘스타워즈’가 극장을 때린 직후 만들어진 TV용 아류작(?)이었으나 의외의 인기 몰이. ‘스타워즈’의 촬영이 끝난 후에 할일이 없어진 특수효과 스탭들이 ‘제국의 역습’이 제작되기 전까지의 공백 기간동안 참여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음. 본편 제작은 나중에 ‘에어울프’를 만들기도 했던 도날드 벨리사리오가 했고 음악은 스튜 필립스와 글렌 A 라슨이 맡았는데, 이 두 사람은 훗날 ‘전격 Z 작전’의 그 테크노(!) 음악을 만들어 냄. 최근 리메이크되어 푸욱~ 빠지신 분들 무지 많으심.





원더우먼 (Wonder Woman)

1970년대 최고 인기 외화 시리즈중 하나. 한국어판 주제가도 공전의 유행가로 명성을 떨쳤고 심지어 김청기 감독에 의해 ‘원더공주’라는 극장 애니메이션까지 제작. 원더우먼을 연기하기 위해 태어난 배우라고 평가되고 있는 린다 카터는 1972년 미스월드 USA 1위를 수상했던 애초부터 미녀 배우로 지금 봐도 그 미모는 필적하기가 쉽지 않음!





월튼네 사람들 (The Waltons)

마지막엔 항상 큰 집에 불이 꺼지면서 서로서로에게 인사를 하면서 끝났던.. ^^





위대한 탄생 (The Greatest American Hero)

짧고 굵게 방영되어 의외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신 가슴팍에 中자 달린 얼치기 슈퍼맨 이야기. 이착륙시 보는 사람까지 마음을 조여야 했던... ㅋㅋㅋ





600만 불의 사나이 (Six Million Dollar Man)

1970년대 최고, 아니 역대 최고 인기를 누린 외화 시리즈중 하나. 어린 나이에 600만 불이 한국 돈을 얼마인지는 몰랐기 때문에 원작 네이밍의 위력은 체감할 수 없었으나, 스티브 오스틴의 피부 벗겨진 기계팔과 움직일 때 나오는 그 음향 효과는 어린 시절 너무나 큰 쇼크를 안겨줌(당시 육백만불 사나이 흉내 내려다 한강에서 뛰어 내린 소년의 죽음이 신문에 이따맣게 나옴;;;;;;).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 중에 스티브 오스틴의 짝퉁 700만불 사나이와의 대결을 잊을 수 없고, 장장 2부작으로 방영된 최강의 적 U.F.O와의 대결편 역시 지금 생각해도 설레는 장면.(다만, U.F.O편 방영 당시 집에 전기가 나가서 분개한 아버지가 한전에 항의 전화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음;;;;;;;;)





전격 대작전 (the persuaders)

한참 로저무어가 007로 주가를 올릴 때였는데, 토니 커티스랑 나와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 로저 무어는 능글능글한 영국 신사로, 토니커티스는 수다스러운 양키로 나와 상반된 두 캐릭터의 이끄는 스토리가 무지 재미있었음. 무엇보다 ‘스타스키와 허치’의 명콤비 배한성 & 양지운의 우리말 녹음으로 그 위트 있는 대사들이 더더욱 재미를 배가!





전격 제로 작전 (Avenger)

어째서 국내 방영 외화들 중엔 ‘전격’자가 들어가는 외화들이 이리도 많은지 궁금한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전격’ 외화! 3명의 첩보원이 등장했고 중절모가 트레이드 마크였던 팀장과 어린 나이에 그 섹시함에 가슴이 콩닥콩닥 뛸 수 밖에 없었던 미니스커트 여대원 포디(이름 절대 안 까먹음.. ㅡㅡV)의 매력에 매주 푹 빠짐.(아.. 정말 다시 보고 싶다.. ㅠ.ㅜ) 지난 1998년에 숀 코넬리, 랄프 와인즈, 우마 서먼 주연으로 영화가 리메이크 되었으나, 미스 캐스팅이라는 평과 함께 과거 TV 시리즈의 맛을 전혀 살리지 못하심;;;;;





전격 Z 작전(Knight Rider)

역시 왜 ‘전격’이란 말이 들어갔는지, 그리고 저 이니셜 Z는 대체 뭐를 상징하는지, 나중에 원제를 알아 버린 직후 더더욱 궁금해져 버린 1980년대 최고 인기 외화 시리즈. 이정구 & 남궁윤 명콤비의 우리말 더빙도 너무 좋았고(물론 유강진, 김성희, 안경진씨도~!), 특히 기수별로 키트걸이 바뀌어 참 흥미로웠는데 에이프럴 팬들이 대체로 많았던 가운데 그렇지만 본인은 역시 보니의 팬! 본래 가수로 알려진 주연 데이빗 핫셀 호프는 디즈니랜드 기념식에 키트를 타고 멋지게 등장해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이게 국내에 방송되어 또 한번 화제가 됨. 파이어버드 모델 체인지와 함께 신시리즈(knight rider 2000)로 넘어 가면서 대폭 강화된 터보 기능과 라이벌 골리앗의 등장 등 방영 내내 끊임없는 화제(무엇보다 ‘에어울프’와 가상 대결!)를 뿌린 최고의 외화중 하나로 ‘엑파’와 함께 DVD도 많이 팔리고 게임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오랜 기간 사랑을 받고 있음.





전쟁의 폭풍
‘에어 울프’의 잔 마이클 빈센트가 나왔던 스케일 만땅의 미니 시리즈. 군터 마일즈너가 연기가 히틀러 역은 정말 인상적! 후에 속편 ‘전쟁의 추억’도 방영 되었던 걸로.






전투 (Combat)

설명이 필요 없는 전쟁 외화의 최고전! 당시 이 외화의 영향권 속에서 ‘배달의 기수’도 덩달아 인기 상승(ㅡㅡ;). 헨리 중위, 쏜더스 중사.. 정말 추억의 이름들.. ㅠ.ㅜ 특히 이 시리즈는 훗날 명감독들을 배출해낸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로버트 알트만, 리차드 도너와 같은 유명 감독들을 비롯하여 ‘에어 울프’의 조지 패너디, ‘환상특급’의 빅 모로우, ‘맥가이버’의 폴 스탠리와 같은 인기 외화 시리즈 감독들이 모두 ‘전투’에서 배출됨. 그래서 더더욱 의미가 있음.




제3의 눈
역시 ‘엑파’ 시즌 사이 땜빵용으로 방영되었으나 의외로 재미있었던 환상특급류의 외화. 특히 ‘토탈 호러’의 샌드킹 에피를 베이스로 한 제1화, 그리고 궁극의 최종화! 녹화 테입을 고이 간직하고 있음.. ㅡㅡV






제5전선 (Mission impossible)

오리지널 시리즈에 이어 ‘돌아온 제5전선’에서도 피터 그레이브스가 팀장으로 다시 출연해 아버지가 무지 좋아하심;;;; 하지만 본인은 ‘V'에서 다이아나 역을 맡았던 제인 배들러가 나중에 합류에 더 많이 좋아하심.. ㅋㅋㅋ





제시카의 추리 극장 (Murder, She Wrote)

뭐니뭐니해도 역시 외화의 백미는 이런 추리 미스테리물. 그래서 더더욱 반가웠던 안젤라 란즈베리 주연의 인기 외화.





즐거운 캠핑
지난 1984년에 MBC에서 여름 방학 특집으로 오전 시간대에 방영했던 외화로 이후(이전?) 1차례 더 재방영 됨. 주제가를 간단히 흥얼거려 보자면, ‘오솔길 따라 산으로 갈까. 시냇물 따라 강으로 갈까. 친구들과 함께 가는 즐거운 캠핑. 즐거운 캠핑. 즐거운 캠핑. 천막 치고 불 피우고 모닥불에 밥해 먹고 밤새껏 별을 보고 라~ 라라라라 라라라~ 즐거운 우리들의 캠핑. 캠핑. 캠핑.’




지구수비대
레알 마드리드의 ‘지구 방위대’ 보다 먼저 활약하신 3명의 대원 이야기. V랑 비슷. 2명은 과학자이고 1명은 전직 군인이었던 것 같은데, 이 전직 군인 킨 케이드 역을 맡은 배우가 하이랜더 TV 시리즈의 던컨 역을 맡았던 걸루 가물가물 기억. 만화영화 지구특공대(캡틴 플래닛)와 혼동하지 마시길.





천사들의 합창 (Carrusel)

현재 SBS에서 ‘2005 천사들의 합창’이 방영중이란 이야기를 들었으나, 실제 보진 못했고 다만 아동용 외화 가뭄 시대에 저렇게 다시 수입될 정도로 과거 국내 방영시 엄청난 잔상을 남긴 외화 시리즈 중 하나. 특히 이 외화가 크게 성공한 이유로는 히메나 선생의 매력이 엄청난 비중을 차지. 많은 분들이 지금도 잊지 못하고 계심. 그리고 당시 히메나 선생의 인기를 반증하는 희대의 사건이 있었으니, 이른바 ‘히메나 선생이 출연한 XXX 비디오 사건’. 목수인 하이메(뚱보) 아버지와 히메나 선생이 XXX 비디오에 출연했다는 괴소문이 삽시간에 전국 중고교급 학교들을 강타! 직후에 청계천 XXX 비디오 판매상들이 히메나 선생 특수를 노리고 대호황(ㅡㅡ;). 하지만 사건의 진상은 미국의 썩을 업자놈들이 히메나 선생을 대충 닮은 배우를 고용해 찍은 짝퉁 비디오로 판명. 하지만 지금까지 히메나 선생 XXX 비디오 진품을 보았거나 소장하고 있다고 우기시는 인간들 아직도 꽤 많이 계심.. ㅡㅡ;;;




 

천사 조나단 (Highway To Heaven)

‘초원의 집’의 아부지(마이클 랜던) 나왔던 외화.





천재소년 두기 (Doogie Howser, M.D)

어린나이에 의사가 된 천재 소년 두기의 이야기. 마지막에 정형외과 의사가 되기로 했던 걸루. ‘스타쉽 트루퍼스’에 나왔던 친구가 이 친구 아닌지.





초원의 집 (Little House On The Prairie)

초기 서부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로라네 가족의 일상사를 그린 미국판 전원일기. 즐겨 보진 않았지만 나이를 먹으니 추억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 ㅠ.ㅜ





초인 새비지 (The Man of Bronze)

이상하게 시리즈 보다 토요명화 방영 버전이 더 강한 인상으로 남음. 특히 마지막에 새비지와 악당이 세계 각국의 모든 무술을 차례로 바꿔가며 ‘십종 격투기’ 하는 장면 재밌음!





초인 플래쉬
전기 맞은 다음에 엄청 빨라진 인간이었던 것 같은데, 과거 슈퍼 특공대 게스트로도 종종 출연. 눈 깜짝할 사이에 상대방 제압하는 번갯불 액션은 봐줄만 하지만, 그 외의 개인기가 없어서 금방 식상해짐. 다만 나중에 플래쉬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폴록스 등장할 때 조금 재미있어짐(개인기 안먹힘). 얼마 전 OCN에서 ‘도슨의 청춘일기’ 보다가 도슨의 아버지로 플래쉬가 등장해 기겁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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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파워 (Captain Power and the Soldiers of the Future)

‘파워 레인저’가 등장하기 전, 미국에서 일본의 ‘메탈 히어로 + 슈퍼 전대’ 컨셉을 가져다가 미국식으로 만든 SF 시리즈. 특히 당시로선 파격적인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적 로봇(쏘오론, 블래스터 등)들의 공격 장면 눈 돌아감. 하지만 유일한 여대원 제니퍼에 더 시선 집중(^^:). 그런데 어찌된게 AFKN 방영 버전은 선명히 기억이 나는데, 오히려 국내 방영판은 기억이 가물가물.. ㅡ^ㅡ





컴퓨터 인간 맥스 (Max Headroom)

근미래 컴퓨터 사이버 캐릭터 맥스 이야기. 네트워크 전쟁과 관련된 시대를 앞서간 작품으로 미국에서는 크게 히트했는데, 국내에서는 동일 시간대(토요일 오후 5시경)에 방영된 KBS의 ‘돌아온 제5전선’에 밀려 언제인가부터 채널을 돌려 보니 안하고 계심(이말인 즉슨 본인도 제5전선 봤다는;;;;)





컴퓨터 제로 작전 (Whiz Kids)







케빈은 12살 (The Wonder Years)

원제가 ‘The Wonder Years’로 미국에서는 5년간 방영이 되었으나 국내 제목은 12살로 못을 밖아 버려 졸지에 나이를 먹지 않는 소년이 되어 버리심. 케빈의 여자친구 위니에 많은 남성 친구들이 꽂이심.





코스비 가족 (The Cosby Show)

‘심슨’ 시리즈와 함께 미국의 양대 패밀리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인기 외화 시트콤. 국내에서도 많은 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한 시리즈.





쿵후 (Kung Fu)

소림사의 외국인 승려가 자신의 아들을 찿기 위해 텍사스로 가는 내용. ‘쿵후2’에서 현대물로 바뀌었던 듯.





타임머신 (Voyager)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은데, 주인공이 과거로 갈 수 있는 시계가 있었던 걸루 암. 여기 주인공이 나중에 ‘아이언맨’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듯.




 

타임 트랙스 (Time Trax)

2백년 후 미래에서 도망자들을 소환하기 위해 찾아온 주인공이 벌이는 모험극으로 ‘엑파’가 한창 인기를 끌고 있을 때, SBS에서 방영. 램버트 역에 박일, 셀마 역에 정희선씨의 노련한 우리말 녹음으로 부담 없이 시청할 수 있었던 외화.





타잔 (Tarzan)
무진장 많은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방영되어서 딱 잘라 소개하기 곤란.






탐정 스펜서 (Spenser: For Hire)

이것도 ‘엑파’ 막간을 이용해 또 한번 방영되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 주인공이 샘 닐하고 닮아서 그런줄 알았다가 나중에 ‘사랑의 유람선’의 선장으로 똑같은 사람이 등장하는 바람에 샐 닐이 아니고 로버트 유리크라고 알게 됨. 마지막회가 어떤 여자애가 벽장 속에 숨겨둔 인형을 꺼내는 에피였던 것으로 기억.





태권소년 어니
쿵후보이 어니의 이야기.





텍사스 레인저 (Texas Rangers)
척 노리스 아저씨랑 흑인이 나왔던 외화 시리즈.





투명인간
젊은 박사가 실수로 투명인간이 되고 고무피부에 색을 입혀서 쓰고 다니던 외화. 나중에 손목시계를 누르면 투명인간이 되었던 역대 만들어진 투명인간들중에서 가장 편리했던 걸루.. ㅋㅋ 주인공 이름이 아마 셈 케익인가 였던 걸루 어렴풋이 기억.






트윈픽스 (Twin peaks)

트윈픽스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컬트 미스테리 외화.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악마를 물리치나 결국엔 더 큰 악몽을 맞이하게 되는 소름끼치는 결말. 하지만 한주라도 빠트리면 내용 이해를 할 수 없었던.. ㅠ.ㅜ





판관 포청천

비영어권 외화로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 대만산 TV 시리즈. 국내 인기 드라마를 능가하는 시청률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높은 인기로 국내에도 초빙되어 CF까지 찍었을 정도였으며 포청천 역을 맡은 성우 노민씨의 목소리 주가도 덩달아 급상승! 포청천의 히트로 SBS에서도 곧바로 비스무리한거 사다가 틀었는데.. ‘칠협오의’였던가...





평원의 추적자 (the young riders)

열심히 봐줄려고 마음 먹자, 끝나 버린 외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The Paper Chase)
헉;; 제목만 듣고도 엄청난 압박을 받아야 했던 외화.





하이랜더 (Highlander)
이거 TV 시리즈 국내에서 방영 되었는지?





하이웨이맨(?)
SBS에서 ‘ER' 끝나고 했었거나 끝나기 전에 했던 걸루 기억. 첨단 장비가 많이 나옴.






할아버지는 멋쟁이 (Our House)

한창 예뻤던 시절의 섀넌 도허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외화. 우리나라 방영 제목이 ‘할아버지는 멋쟁이’가 된 건 ‘아빠는 멋쟁이’의 영향인 듯~





행운의 사나이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찾아서 돈을 지급해주는 2명의 복권회사 직원들의 이야기.





해상기동대 SOS (Baywatch)
‘전격 Z 작전’의 데이빗 핫셀 호프가 출연해 화제가 되었던 영화(하지만 왠지 키트가 없으니 썰렁~).






형사 스타스키와 허치 (Starsky & Hutch)

‘기동 순찰대’와 함께 2인 1조 콤비 외화 붐을 주도했던 작품. 그에 따라 당시 배역을 맡았던 양지운 & 배한성 성우 콤비도 함께 국민적 사랑을 받음. 근래에 영화로 다시 리메이크되었으나 너무 오래된 외화였기 때문인지 추억의 재생산이라는 측면보다 그냥 하나의 새로운 영화로 받아들여짐.





형사 콜롬보 (Columbo)

‘피터 포크 = 형사 콜롬보’로 대변되는 추리 수사물의 대명사와도 외화. 국내 최초 방영시 성우 최응찬씨의 원작을 능가하는 명연기로 대중들에게 깊게 각인되었으며, SBS 개국 초기 방영된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배한성씨가 최응찬씨의 목소리 연기 톤을 그대로 계승해 배역을 소화해냄! 시청자들은 이미 범인이 누구이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가운데 콜롬보 형사가 능글맞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매우 특별한 형태의 사건 전개가 이 드라마의 백미. 특히 SBS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왕년의 명배우들이 범인 역으로 특별 출연을 꽤 많이 했는데, 최종회의 범인 역을 맡은 인물이 ‘스타트랙’의 커크 선장이자 ‘긴급구조 119’의 사회자로 유명한 윌리엄 섀트너였던 걸로 기억.





스필버그의 해저특급 (Sea Quest)

잠수함나오는 외환데 스케일도 크고 재미있었는데, 시간대가 여러 번 바뀌더니 결국 사라지심. 외화 인생 30여년 동안 저런 식으로 사라져간(그래서 지금도 엔딩이 너무너무 궁금한) 외화들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지심.



 

호간의 영웅들 (Hogan's Heroes)

당시 전쟁 외화들 중에서 가장 골 때렸던 외화. 겉은 독일군 지배하의 포로수용소지만 속은 거의 미군기지. 그땐 그냥 ㅋㅋ 거리며 시청했던거 같은데 문제는 저런거(미국산 전쟁 영화)를 너무 많이 보고 자란 나머지 한동안 독일군들은 모두 바보천치 엑스트라 전문으로만 선입견이 생겨 버림;;;;;;;;;





환상 특급 (Twilight Zone)

미국 CBS에서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방영한 것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연령 상의 한계로 이것은 본적이 없음. 하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1980년대 리메이크 버전에 대한 충격만으로 원작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거의 없음.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문제의 에피소드들이 즐비한 가운데, 다음날이면 학교에서 어제의 ‘환상특급’ 이야기로 교실 안에 꽃이 피던 그 시절의 추억도 함께 간직하고 있음. 다시 그 때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외화를 챙겨 본다는 것! 국산 드라마를 한주도 빼놓지 않고 시청하다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 동반되는 일입니다.

기본적으로 국산 드라마처럼 주말에 재방송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본방을 놓칠 경우 다시 보기가 매우 힘들어 진다는 것과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면 언제라도 TV 편성표에서 사라져 버려 분명 뒷이야기가 본래 제작국에서는 만들어져 있음에도 뒷내용을 볼 수 없는 원통한 처지에 놓인다는 것.

물론 최근에는 DVD나 기타 파일 공유의 형태로 아쉬움을 해소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런 문명의 이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우리 시대 외화 매니아들의 삶은 오로지 머리 속 기억 창고에 보관해 두는 방법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치열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치열하고 필사적인 삶을 살아 온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만, 역시 저 개인의 기억력 대뇌의 용량상 제 메모리 밖에 존재하는 뭐시긴가하는 외화가 더 있을 거라 생각 됩니다.

고로, 용량을 늘려 주실 분들 언제나 제보 대환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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