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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게 가능할까?
모택동전술의 자각능동성에 대하여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던가. 중국의 동북공정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요즘의 상황에서 중국의 기본전술인 모택동전술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해방전쟁시절 모택동은 <당면한 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 고립되어 흩어져 있는 적부터 치고 난 뒤에 모여 있는 강한 적을 친다는 등 10대 군사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먼저 작은 도시와 중간도시와 큰 농촌을 취한 다음 대도시를 취한다. 살아 있는 적의 섬멸을 목표로할 뿐 도시나 지방을 지키거나 빼앗는 것은 목표로 삼지 않는다.
적보다 절대적으로 우세한 병력을 투입하여 적을 사방에서 포위한 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섬멸 한다. 움직이면서 적을 섬멸한다. 먼저 준비하고 적군을 파악한 뒤에 전력을 다해 싸운다. 싸울 때마다 적과 아군의 전력을 비교하면서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파악하려고 힘쓴다. 용감하게 전투하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단기간 내에 쉬지 않고 잇달아 몇 차례 싸운다. 이럴 경우 피로와 연속적인 작전의 기풍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획한 적군의 병력과 적군의 장비로 아군을 최대한 보충하고 강화한다.
모택동은 처음은 쉽고 나중은 어렵다(선이후난:先易後難)고 주장하면서 먼저 적군의 약한 부분을 골라 친다고 주장했다. 모택동의 군사철학은 무장투쟁을 주요 형식으로 하는 중국혁명의 특징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철학적 기본원리를 활용하여 중국의 풍부한 군사투쟁경험을 총괄하면서 중국의 고대병법서를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집대성한 것이다. 이 때문에 모택동의 전술에는 중국적 특성이 많이 들어 있다. 군사철학의 인식론에서 모택동은 전쟁문제와 관련한 유심론과 불가지론, 형이상학론 등을 비판했다.
인식론을 중시하는 모택동의 군사철학은 전쟁의 객관법칙을 존중하고 있다. 모택동은 중국혁명전쟁의 객관적 법칙을 깊이인식하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혁명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모택동은 전쟁을 일종의 특수한 사회현상으로 보았다. 전쟁은 미혹성과 유동성, 불확정성 등의 특징을 갖는다고 생각한 그는 전쟁은 신비한 영역이 아니라 세상에서 진행되는 필연적인 운동일 뿐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그는 전쟁에는 계획성과 융통성과 주동성이 있다는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전쟁의 주동성을 강조한 모택동은 전쟁의 주도권을 쟁취하고 객관법칙에 부합하는 자각능동성을 발휘할 것을 강조한다. 사상은 주관적인 것이고 행동은 주관에서 객관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인간의 특수한 능동성인데 이런 능동성을 자각능동성이라 했다. 모택동은 전쟁에서 자각능동성이야말로 전쟁을 지도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자각능동성은 실천의 기초위에서 전쟁을 인식하고 전쟁법칙을 파악하여 전략과 전술, 전투방안과 계획을 결정하는 것으로 전쟁을 능동적으로 지도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보았다.
모택동의 자각능동성은 한국전쟁시절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중공군은 말단전사까지도 왜 자신들이 싸워야하는지 전투지에선 어떻게 싸우고 승리한 뒤에는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숙지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중공군병사들은 점령지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숙영할 때도 외양간을 이용했었다. 숙박했던 집의 청소와 잔일을 도와주는 등 선무공작에도 능숙했던 병사들이었다. 모택동전술에 대한 인식은 중요하다. 우리가 당하지 않으려면 저들의 기본전술인 모택동군사전략에 통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부장실 칸막이를 뜯어냈다.
현재의 사무실로 이사올때부터
"운동조직에서 대장이라고 따로 독방을 쓰는건 문제다"라고 주장했었지만
여의치 않았었는데, 새 집행부 들어서면서 본부장실을 없애기로 정리됐다.
상담과 소규모 회의를 위한 공간이 없어져서 불편한 점도 있긴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다시 대책을 마련하면 될 일 아닌가.
큼지막한 책상과 가죽의자, 쇼파등으로 따로 꾸며진 '임원의 방'은
더이상 우리들의 상식이어선 안될 일이다.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
어떤 사실에 두가지 이상의 가설이 있을 때 이중 가장 단순한 가설이 사실이라는 원리.
가장 단순한 것이 많은 것을 설명할 수있기에 그 관점을 주로하고 나머지 의견들은 배제하는 사고방법의 하나.
지동설 지지자들이 천동설을 부정하는 데도 사용된 듯.
중세 철학의 일반적인 원리인,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은,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ca.1285-1349)이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붙이게 된 것
오캄의 면도날은 '복잡한 의견을 불필요로 하는 원리(the principle of unnecessaty plurality)', 혹은 '불필요하게 복잡한 언명(言明)을 제시해서는 안된다'(plurality should not be posited without necessity)는 원리.
현대에서는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불필요한 가정을 늘이지 마라'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오캄의 면도날은 단순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simplicity)라고도 불려진다.
불필요하고 복잡한 물질적 존재를 제거하는데 오캄의 면도칼을 사용했다는 뜻.
많이 늦었지만
더 잊어버리기 전에
민주노총의 법률학교에서 느꼈던 소감을 정리해봐야겠다.
입학식에서 사회를 보는 동지는 참가자들에게
'서로를 동지라 호칭할 것'을 중요한 수칙으로 강조했다.
첫 강의가 끝나고 그 사회자는
"열심히 강의해주신 ㅇㅇㅇ '변호사님'께 큰 박수를 보내달라"고 주문했다.
조지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노동자계급이 장악한 도시의 첫 소감을
"그곳에선 모두가 서로를 동지라 불렀다.
나는 그 도시의 모습을 보자마자 내가 싸워서 지킬 만한 어떤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고 표현했다.
'평등세상 앞당기는 전노협' 시절부터, 아니 노동자가 불평등과 착취에 맞서 투쟁하던 그 어느 시대나 우리는 서로를 동지라 부를 것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렇기 때문에 '동지'란 표현은 남녀노소, 지식과 재산등의 차이를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존칭이라 생각했는데, '변호사님'과 우리는 '동지'일수 없다는 것인지...
"파업기간중 쟁의대책위원회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쟁대위 만들면 쟁대위 위원들 명단이 고스란히 사측에 넘어가 징계먹을게 뻔한데..."
"파업수첩에 '목숨을 걸고 싸우자'란 말좀 안쓰면 안되나. 그런 말들이 법적 분쟁에 불리한 증거로 작용하는데.."
이런 말들을 거침없이 주장한 강사도 있었다.
또 "지노위 심문회의 들어갈때 왜 투쟁조끼를 입고 들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투쟁조끼 입고 들어가면 공익위원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주고, 그로인해서 심문결과도 안좋아질 수 있는데.." 이런 주장을 하는 강사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생각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자들만이 파업수첩에 목숨걸고 싸우자는 주장을 뺄 수 도 있다고 주장할 수 있고, 투쟁조끼를 늘상 입고 다니던 자들만이 필요할때 한번쯤 벗자고 주장할 수 있는 건 아닌지.
하지만 늘 헷갈린다.
투쟁의 승리를 위해서 적의 가랑이 밑이라도 기어야 할 때도 있고, 혁명을 위해서 적의 침실로 들어가 적과도 동침할 수 있어야 한다지만, 그것이 과연 투쟁의 전술인지, 현실에의 굴종인지...
법률원에서 일하는 어느 동지는 현대자동차의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재판 질거다. 이기면 내가 담당 변호사 술사주기로 했다"고 큰소리쳤다.
물론 그가 법의 한계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민주노총의 법규사업을 담당하는 자로서 가당한 말이었을까?
차라리 "이대로 두면 재판 질거다. 법원상대로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 이번 재판을 지더라도 다시 싸울 수 있는 근거라도 만들 수 있다"고 투쟁을 조직해야 하는 것 아닐지.
주로 가방끈 긴 자들이 즐겨쓰는 말중에 하나가
'실력'이다.
한껏 치장한 문장, 난해한 어투, 쉴새없이 터져나오는 잡다한 지식들...
이런 것들이 보통 '실력있는 자'들의 악세사리이다.
논리에 맞지 않는 어눌한 표현,
허점투성이인 지식체계...
이런 것들을 그들은 쉽게 경멸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런 말을 했다.
"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고, 꾸밈이 있는 말에는 진실이 없다"
화려한 언변치고 사람의 가슴을 치는 진실이 담겨진 예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실력의 양과 질이 아니라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아닐까.
차없서 마지막날
서울역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수없이 곁에 다가와 밥좀 달라 사정하는 노숙인들의 호소를 애써 외면한다.
조금전 집회에서 노숙인 운동을 하는 동지가
노숙인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며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어야 한다고
열심히 얘기했고 그 발언에 힘차게 박수도 보냈건만
여전히 나의 삶은 집회와 생활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심장으로 가는 길이라 했던가
도시락을 꾸역꾸역 삼키며
나의 삶은, 우리의 운동은 얼마나 진실한가를 부끄럽게 되물어 보았다.
거리에서 먹는 도시락이 그리도 모래알 같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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