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러브송

우리들은 처음으로 서로에게 매달릴 상대를 찾아낸 아이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지금은 그럴 수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제 - 終わりのないラブソング

-구리모토 카오루栗本薰 작(작가 홈피)

 

나는, 왠지, 지친 기분으로 가로 누워 있었다. 사람의 폭력이나 적의는 물론이지만, 호의나 친절도 결국 같은 식으로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내 쪽에, 그러한 것에 어떤 식으로 응해야 될지 모르는 결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붙임성 있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으며 애정이 깊지도 않다. 분명 마음이 차가운 것이다. 그것은 이미 그러한 인간이니까, 가만히 두었으면, 고독한 채로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한다.

 

가장 싫은 것은, 이러한 타입의 녀석이 결코 알수 없는 것은, 내쪽은 전혀, 조금도, 완전히, 눈꼽만치도, 성장하고 싶다, 따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었다. 나는 성장따위 하고 싶지 않다. 구조받고 싶지도 않다, 이해받고 싶지도 않고 손을 뻗어주길 원하지도 않다, 적어도 이녀석에게는. 유우스케에게 느끼고 있는, 뜨거운 연정과 모순된 초조함의 근원도 결국은 거기에 있다. ---옳은것도 옳지 않은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 인간이, 인간을 구원한다니, 대체 무슨 주제넘 은 말인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대체 누가 결정한거냐. 성장해서, 대체 어쩌란 말이야.

 

 

 

 

결말은 해피..인지 어쩐지 아직 5권이나 남았으니 알 수 없지만. 읽으면서 읽고나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나와 나의 고통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나서 온전히 치유될 수 있을까? 나는 그걸 믿었고, 그렇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단 한 명 내 끔찍함을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준 유일한 인간을 만나서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지만, 도움은 되지만, 없으면 지금보다 더 못견뎠겠지만.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지워준다는 것이 아무리 사랑하는 두 사람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저 자식은 예전에 알아차린 듯..

 

그렇더라도 소설 속에서는 너희들은 충분히 괴로웠으니까 고통이 지워졌으면 좋겠구나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괴로웠으니까. 사랑이란 것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에 나는 지금 난감하지만(암튼 그걸 왜 이제야 깨달았냐-_-?) 그- 구원이라는 것은 순간적으로만 가능하고, 나는 그건 예전부터 알았지만, 종국적인 걸 바라지 말고 그때그때 상쇄해 가자..라는 가벼운 결론. 예전에도 낸 결론.

 

예전에도 낸 결론이다. 나는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구나. 아이고오...

읽고나서 내 옛날 내 고통 나의 끔찍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하지만 역시 사랑이 있어서 행복해♡ 아니 나 말고 얘네들-_-

 

그러고보니 위에 발췌한 것은 쪼까.. 왕창 부정적일 뿐이로군아.. 핫핫핫 나는 주인공 후타바의 독백에 공감하면서도 소년의 냉소가 안타깝기만 하고..

 

아악..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생략. 나는 아직도 내 추악함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모양이다. 소설에서 둘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슴이 설레기도 했지만, 인간이란 건 놀랍구나 정말. 정말 이 생각 저 생각 상반되는 갖가지를 느끼며.. 마치 이런거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밥은 꾸역꾸역 넘어가고, 심지어 맛있기까지 한 거. 이것도 한때 나의 고통이었는데 완전 치료됐다(소설과 관계없는 얘기자나-_- 생략!)

 

 

빨리 일본어 섭렵 + 이 소설을 사서 미친듯이 읽고 싶.. 총 9권짜리 야오이=ㅁ= 굉장하다. 굉장한 작가분이다, 지금 연재하는 판타지 소설 <구인사가>한 작품만 100권이 넘었다-ㅁ-!!! 상도 많이 받고 야오이 쪽도 조금(?) 관계하고 신기한 사람이네. 한국에는 4권까지만 피투피로 돌아댕기고 더 이상은 아무도 구할 수가 없..;ㅁ; 어서 빨리 일본어를.. 흑흑 그보다 돈..-_-

서점에도 검색이 오지게 안 되어 1권 링크해둠 http://www.7andy.jp/books/detail?accd=19363718

내가 및.. 한국에도 있어 어떡해 2월에 사야겠군=ㅁ=

예스24

커헉 교보 싸다-_-;;

교보+

 

추가

서평을 검색해보면 강간으로 시작된 사랑,이라는 분류에 넣는 사람이 많은데 상황은 같아도 구성물은 전혀 다르다고 본다. 내가 강간으로 시작된 사랑류를 경멸하는 건 강간이 주는 몸의 쾌감에 취해 몸으로 강간자를 느끼고 자연스레 마음도 주는 쓰레기같은 환상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강간을 당하면서 몸은 전혀 가까워지지, 심지어 익숙해지지조차 않았고 마음은 더욱 그랬다. 다만 주위 사람들 증언;;대로 태어나 버림받은, 사랑받지 못한 고통이 닮아있다. 그걸 서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이해는 구체적이거나 서서히 오는 게 아니라 어느날 문득 아! 그런 거구나!하고 찾아오는. 아니 뭐 서서히 올 수도 있고. 그게 좀더 우주적인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책에서 후타바는 갑자기 느낀다. 사랑, 그 충만함과 괴로움, 이사람의 사랑스러움, 이사람을 사랑하는 내마음의 사랑스러움, 행복하지 않아도 상관없음 같은 거. 본래 일인칭 시점을 안좋아하는데 그건 설명된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인데, 그걸 인지하고 있는 주인공의 힘겨운 발화, 아니 그 이전에 내면세계의 거침없는 폭풍같은 게 좋았다. 사실 코노하라 나리세 작품이라고 써있어서 받았는데 한 문단만 읽어도 전혀 아니었고 훨씬 좋았다. 마음을, 아니면 고통을 도망가지 않고 훑는 작업은 <잔혹한 신이 존재한다> 이후 오랜만에 보았다. 이 소설과 잔혹신과 나를 섞어서 마구 생각이 몰아친다. 아, 암튼 강간당하다가 사랑하는 건 맞지만 강간때문에 사랑이 싹트는 쓰레기류가 아니다,라는 노파의 말쌈. 전혀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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