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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9.04~07

며칠 도쿄에 머물렀다.
도쿄는 서울보다 거리의 폭도 좁고, 건물의 높이도 낮아서 약간 아기자기한 느낌이 묻어나는 귀여운 도시였고,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많아서(일본 남자들은 다들 신기할 정도로 날씬해서 하나 같이 스키니를 입고 있었고, 소문으로만 듣던 코갸루가 아직도 거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무척 신기했다-_-;) 그냥 걸어다니기만 해도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서울과 비슷한 또 하나의 대도시였고, 안타깝게도 대도시의 문화를 향유할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는 나에게는 더욱이 그다지 좋을리는 없는 곳이었다.




9월 초인데도 끔찍하게 덥고, 게다가 하루 종일 소나기가 오락가락 하고, 급기야는 태풍까지 찾아온 도쿄에서 유일하게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던 곳은 도쿄대학의 캠퍼스 뿐이었다. 오래된 역사를 보여 주는 듯,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가 솟아 있는 캠퍼스는 울창하다는 느낌마저 주었고(아쉽게도 배터리가 없어서 사진은 찍지 못했다ㅠ.ㅠ), 게다가 개강 전인지 무척 한산했다. 그리고 캠퍼스 특유의 싼 커피와 샌드위치! 

 

굳이 도쿄대학을 찾은 것은 일본의 옛 학생운동이 지금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하지만 캠퍼스 안의 게시판에는 어떤 흥미로운 게시물도 붙어 있지 않았고-하지만 한국과는 달리 기업의 홍보물도 붙어 있지 않아서 한결 보기 좋았다-, 야스다 강당도 굳게 문이 닫힌 채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기대했던 그 무언가는 뜻 밖의 장소에서 마주칠 수 있었는데, 바로 캠퍼스의 서점이었다. 일본에서는 책이 더러워지지 않게-아니면 책 제목을 읽히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종이를 접어 커버를 만들어 씌우는데, 서점에는 여러 종류의 책 싸는 종이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우연히 점원이 내 손에 쥐어 준 종이가 바로 위의 사진. 한글어로 씌여진 문장을 읽었다면 짐작하겠지만, 저 위의 문자들은 모두 일본 헌법 제9조를 번역한 것이다(모두 13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전문은 다음과 같다.

(1)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국제평화를 진심으로 희망하며, 국제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권(國權)의 발동(發動)에 의한 전쟁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를 포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육해공군, 그리고 그 외의 어떠한 전력(戰力)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交戰權)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북 커버를 만든 곳은 도쿄대학생협 평화프로젝트로 이들은 다음과 같이 발행의 이유를 적어 놓았다. 

<전후의 식량난, 물자난을 협동의 힘으로 이겨내려고 만들어진 대학생협에는, 안심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평화가 필요하다는 이념이 지금도 숨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을 금지한 일본국 헌법 제9조는, 대학생협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찾아오는 여러  나라의 유학생들이 헌법 제9조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이 북 커버가 만들어졌습니다. 13개국의 언어로 번역된 헌법 제9조 북 커버를, 활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짧은 문장이지만 간절한 마음이 전해 오는 듯 하여 마음이 움직였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는 평화 헌법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하는 학생들도 있는 것이다. 고작 며칠, 그리고 몇 시간 머물 거면서 제법 큰 기대를 품었던 탓에,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은 마주침이었다. 

 

 

일본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도쿄 대학의 캠퍼스와 북 커버와 아사히 맥주였다. 정말로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밋밋한 나날들이었다. 한편으로는 독일행 비행기의 경유 시간이 안 맞아 들어온 것이니 괜찮지 않나 싶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이미 늦은 거 며칠 더 늦으면 어떠냐는 생각을 뒤로 물리고, 어린 시절 일본게임이나 만화를 그렇게 좋아했음에도 지금껏 한 번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한 일본에 간다는 생각에 부풀어 떠난 것인데 이건 좀 너무했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어 억지로 몸을 일으켜도 밖에서 몇 시간 못 버티고 다시 들어와 버렸던 것을 보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관광객으로서 도쿄를 헤매고 다니는데, 내가 관광객임이 왜 그리 낯설고, 또 타지에서 관광객으로 머문다는 것은 어찌나 재미없게 느껴지는지, 내가 도쿄 대학에서 옛 흔적을 찾아 헤매거나 길에서 일본 공산당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사본 것은 어떻게든 관광객과는 다른 무엇이 되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기대해도 결국 여행이라는 과정 속에서 내가 관광객일 수밖에 없다면 내게는 여행이라는 게 별로 맞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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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21>, 가라타니 고진



마르크스가 부르주아 사회의 토대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존재함을 분석한 이래 좌파적인 비판의 특징은 현상을 그 사회적-물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데 있다. 파시즘의 광기는,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전개의 한 양태이며, 여자화장실의 몰래카메라는 그저 한 남자의 정신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지배사회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구조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사회적 문제를 신비화하거나 개인화 하려는 경향에 맞서서 그것을 정치화하는 데 기여하지만 인간의 삶이 사회 환경에 의해서 결정된다거나 나아가 인간의 이성과 자유의지 역시 기표의 규칙에 따를 뿐이라는 인식은, 일어난 일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을 곤란하게 만든다. 어찌됐든 도덕적 책임이란 것은 자유에 의해서 일어난 일에만 지울 수 있다고 생각되고 있으니. '원인'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독일의 전범들은 심판을 받았고, 도촬을 한 사람도 책임을 져야만 한다. 결국, 윤리에 대한 요청이 존재하는 한 사라진 주체든. 변화된 주체든, 주체에 대한 물음은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윤리21>에서 고진은 칸트를 빌려와 이 문제를 풀어나간다.


칸트에게 있어서 자유란 이율배반적인 것이다. 한 편으로 세계의 모든 것들은 어떤 인과적인 질서 속에서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인과질서의 계열에서 벗어난 자유가 존재한다. 그리고 칸트에게 있어서 경험적 현실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법칙을 따른 행위, 즉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지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나 선행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물리적인 외적 현실 뿐만 아니라 내밀한 욕망의 층위에서까지 인과질서는 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가 존재할 수 없는 이런 곤궁에 대한 칸트의 해답은 역설적인 것인데, 그것은 인간은 오직 의무를, 그것이 의무이기 때문에 따르는 한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고진은 이 지점에서 칸트의 도덕법칙을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으로 해석하면서 개입한다. 그렇게 되면 그 의무의 준수에 대한 요구로 인해 얻어지는 자유가 역설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율배반적 세계 속에서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을 따를 수 있는 가능성을 고진은 칸트가 미적판단의 특징을 '무관심'에서 찾았다는 데서 끌어내고 있는데, 미적판단을 함에 있어서 진리나 도덕에 대한 판단이 배제되는 것처럼 도덕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진리나 아름다움에 대한 판단을 '괄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마치 자유로웠던 것처럼 판단할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입장에서 스스로 자유로운 주체이며 따라서 타자를 자유로운 주체로 대하는 행위란 무엇인가가 도출된다. 칸트는 일반적인 사고와는 다르게 공동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사용이라고 하였으며, 주체로서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사용이라고 하였는데, 왜냐하면 특정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영향받지 않고, 마치 무제약적 상태에서처럼 보편적인 행위를 하는 것이 칸트의 사고에서 주체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진에게 있어 칸트의 윤리는 단순한 개인의 의무를 다루는 윤리를 벗어나 사회의 구조와 관계까지 사유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마치 아무런 제약이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타자에 대해서 판단하라는 것은 지금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영역과 부문에 있어서 나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것이고, 따라서 윤리적 행위란 그것에 대해 책임지고 그것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21>에서 고진이 제기한 칸트론은 다음 두 가지를 축으로 하고 있다. 하나는 칸트의 정언명령에 대한 해석이며, 다른 하나는 '괄호론'이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칸트에게 있어서 갈등적인 세 개의 비판 영역을 상황에 따라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진은 "'자유로워져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은 '자유다'는 것이니까 특별히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은 고진이 다른 맥락에서 거론한 이중구속의 대표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명령에 따른 자유란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은 타율을 택하는 것이므로, 그 명령은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명령 이전에 해명되어야 하는 것은 자유란 무엇인가이다. 법칙과의 관계에서 자유란 법칙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법칙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며, 한 편 자유는 초월적 이념으로써 실천이성의 요청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 편으로는 사실로써 존재하고, 한 편으로는 요청의 대상인 자유의 역설적 위상을 고진은 '괄호'를 통해 해소하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칸트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떠받치는 현상계와 예지계의 구분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예지계라는 것은 현상계를 괄호치고서 논의되는 것에 다름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고진의 칸트는 공허한 형식주의자인 칸트나 인간의 선을 향한 의지를 요청했을 뿐인 허약한 칸트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고진은 특정한 판단을 할 때 괄호를 하거나 푸는 것은 특정한 사회적 문법에 의한 명령일 따름이라고 쓰면서, 괄호를 푸는 것의 중요성도 동시에 강조했다. 이 때 문제는 괄호의 힘을 빌려서만 존재할 수 있는 자유가 괄호 없는 세계, 즉 취미 판단과 진리 판단이 더불어 존재하는 세계에서 무엇일 수 있는가에 있다. 결국 지금 구조와 주체의 갈등이라는 곤궁 속에서 칸트가 다시 불려지고 있는 것은 구조 속에서 주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기 위함이지, 구조 속에서 주체가 어떻게 존재하기를 원해야 하는지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고진이 자신의 정치적 실천항으로써 끌어낸 생산자 협동조합의 모델은 칸트가 아니라 마르크스 또는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에서 유인할 수 밖에 없다. 고진의 논의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낀 것은 특히 이 부분에서였다. 주체와 마찬가지로, 고진이 풀었다 쳤다 하는 괄호들 속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이라는 세계 모델의 실재적/정치적 위상은 극히 불분명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가해진 종래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은 칸트가 예지계에서의 자유만을 인정할 뿐이고, 그래서 현실에서의 변혁을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고진은 현실에서의 변혁을 칸트윤리학의 실천적 요청으로써 자리매김하고 있기는 하지만 칸트 철학 내에서 '실천적 요청'이라고 하는 것은 곧 현상계에서의 법칙적 불가능성에 다름아닌 이상, 그 역시 이에 대해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윤리21>은 이론적인 것을 목표로 했다기 보다는 고진이 자신의 정치를 이해시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니 고진이 칸트로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만을 그려낸다고 하는 말은 어쩌면 그저 동어반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트랜스크리틱>을 읽어갈 표지는 세워 둔 셈이니, 나같은 얼치기가 고진의 글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단 무모함이 의미없는 일은 아니게 되기를.


덧. 이미지가 일본판인 이유는 그저 한국판 표지가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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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쫓긴 아이들>, 엘프리데 옐리넥


 

 

모두 내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현재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작가들 중에서 나에게 중요한 사람은 쿳시와 옐리넥 뿐이다. 스타일은 무척 다르지만, 이 둘은 비슷한 문제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그들이 문제삼는 것은 '인간'이라는 관념이다. 쿳시가 백인 화자와 침묵하는/할 수밖에 없는 식민지 인들을 대립시킬 때, 그리고 옐리네크가 인물에게서 개성을 박탈하고 그 자리에 삶의 그로테스크한 전형들을 위치시킬 때, 인간이라는 관념은 분열되고 해체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쿳시의 언어가 차분하고 조용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서양인들은 비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수많은 언어들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 언어들은 현실에 대한 초라한 묘사와 타자의 침묵 앞에서 언제나 실패하고-언어들은 왜곡되거나, 모순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심지어 귀에 전달되었는지, 그저 시끄러운 소리의 울림일 뿐이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의 한계를 폭로한다. 자의식이 비대해야만 하는 이유는 쿳시 자신이 예민한 지식인이기 때문이자 동시에 세상을 꿰뚫어 보는 그 데카르트적 이성이 비대하면 비대할 수록 그것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현실의 많은 것들이 같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리얼리즘으로 아파르트헤이트를 비판하며 노벨상을 수상한 남아공의 작가 나딘 고디머는 쿳시의 소설이 관념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쿳시 역시 진정한 저항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세계 그 자체의 붕괴를 겨냥할 만큼 급진적이기 때문이다. 또는 타자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세계의 붕괴까지 감수하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피해자의 입장을 다루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도망칠 구석을 주지 않는다. 대신에 독자를 분열하는 자의식을 가진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만들고, 그리하여 그 안정된 의식 세계 바깥에 억압받는, 즉 내가 억압하는 타자가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물론 이 때의 타자는 리얼리즘이 '그려내는' 타자가 아니다. 쿳시의 타자는 서술 불가능한 타자, 오직 거기에 있음만을 말할 수 있는 타자이며, 서양인의-그리고 독자의- 자의식이 스스로 모순에 부딪친다는 사실만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타자, 즉 없기 때문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타자이다.  


 

반면에 옐리네크는 너무 많이 말한다. 심지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는 단 한 마디도 할 기회를 주지 않은 채(그녀의 소설에는 따옴표를 쓴 대사나 심리의 인용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가 지독하고 끔찍하리만치 냉소적인 언어를 쏟아 낸다. 하지만 그녀 역시 쿳시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성실하게 재현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녀의 문장은 과장되고 위악적인 표현들과 다른 곳에서 따온 패러디로 가득한데,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세계를 비웃을 수 있을까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 하다. 아무런 맥락 없이 불쑥불쑥 솟아 나오는 그녀의 문장들은 일반적인 서사의 규범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서사가 결코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표현해 낸다. 소설의 서사는 한 인물의 언행과 심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 인물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자기도 눈치 채지 못하는 내밀한 욕망과 이를 포장하는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표현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화자가 사건을 전달한다는 소설의 본령에 어쩌면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글을 쓰는 옐리네크는 사회학자 같은 시선으로 이 모든 것을 포착해 낸다. 어쩌면 진부하다고 할 수 있을 옐리네크의 주제들과 지루할 수 있는 이런 서술 방식을 이채롭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주저하지 않는 냉혹함이다.
그녀는 실험을 하는 과학자처럼 환경과 인물들을 다룬다. 인물들에 대한 조금의 연민도 보이지 않고, 그들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물들이 한없이 초라해져 자신의 삶을 조율하는 이데올로기에 관통당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대신에 사회와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더 분명하게 그 존재를 드러낸다. 이런 면에서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모두 어떤 전형들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점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그녀의 소설을 루카치의 요구에 부합하는 훌륭한 리얼리즘 소설이라 평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쫓긴 아이들> 역시 이런 옐리네크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이 이야기는 삶으로부터 반란을 꾀하는 4명의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 몰락한 전 나치 장교의 집안에서 태어나 실존주의와 예술에 심취한 쌍둥이 라이너와 안나, 풍요로운 가정에서 태어나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은 소피, 사회주의 투사였던 노동자의 아들이지만 상층 계급으로의 진입만을 바라는 한스, 이 넷은 함께 범죄를 저지르는 갱을 구성한다. 그리고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린 아이들'에 대한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이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옐리네크의 다른 글들 처럼 이 소설에서도 주목받아야 할 것은 자극적인 플롯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시선 아래서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부여받는가이다. 아이들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아래 아이들을 가르는 지적, 물적 현실의 차이와 이를 포장하는 이데올로기가 폭로된다. 따라서 독자가 인물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하지 않는 서술은 오히려 옐리네크의 윤리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대신에 그녀는 브레히트가 그러했듯이, 왜 현실이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똑똑히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브레히트처럼 현실의 변화에 대해서 낙관하기 힘들어진 오늘날, 그에 걸맞는 방식으로.


 

브레히트는 실현될 공산주의를 바라보면서, 이데올로기의 외부를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91년에 오스트리아 공산당을 탈당한 옐리네크에게 현실은 그렇게 밝지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한 선택은 전통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문법을 극단에 이를 때까지 밀어부치는 것이었다. 비판의 규범조차 무시하고 모든 가치에 대해 조소와 위악적인 제스처로 일관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에 순순히 붙들리지 않고, 어떻게든 그것을 파괴하려고 하는 철저한 투쟁이라 평할 만하다. 그리고 옐리네크의 이 용감한 선택은 정치적으로 충분히 그 성과를 거둬내고 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이 그녀의 소설에 충격을 받고, 악랄한 비난을 퍼부어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녀의 글이 더 많이 번역되어 삶의 안온함에 젖어 있는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커다란 불쾌감을 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노벨상 약발이 좀 먹혀주면 좋겠는데, 요즘에는 그것도 많이 떨어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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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자기책임론: 일본의 경우

2004년 4월, 일본이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했을 때 이라크에서 5명의 일본인 자원봉사자가 납치당했다. 일본 정부는 이 납치에 대해서, 철군할 의사가 없다는 강경한 방침을 내세웠으나 다행히 이들은 이라크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납치와 관련한 일본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인질들 중에 좌파 활동가가 있었고, 이들이 모두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던 탓에 납치 초기부터 자작극이라는 설이 돌았던 것이다. 특히 산케이와 같은 보수적인 신문이 이와 같은 소문을 묘하게 조장하는 기사를 실어댔다. 사건이 발생하고부터 민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다녔던 가족들은 온갖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납치된 이들이 돌아오자 자작설은 '자기책임론'으로 바뀌었고, 피랍자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귀환한 인질들은 '다시 이라크에 들어가 재건활동을 돕고 싶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부가 유감표명을 한 것은 물론이요 비난 여론이 들끓었음도 말할 것도 없다.

'자기책임론'을 이와나미 서점에서 발행하는 시사잡지 [세계]를 통해 처음 접했을 땐, 보수화 하는 일본사회의 극단적인 면모를 봤다는 생각에 아연했었다. 3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 똑같은 논쟁을 보게 될 줄은 정말로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자기책임론'과 관련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고, 그와 관련된 책까지 출판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살펴 보는 것은 지금 한국의 논쟁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옮길 글은 일본의 비평가 아사다 아키라의 '이라크 인질문제를 둘러싼 긴급발언'(http://dw.diamond.ne.jp/yukoku_hodan/20040416/index.html)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글에서 아사다 아키라는 일본이 미국을 쫓아 파병을 감행한 것을 비판하고, 이를 위해 국민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은 국가 최대의 목적을 내팽개치는 것이라고 한 후, 자기책임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에서 자기책임론의 분출에 대해서, 
일본 사회의 전근대성이나 전체주의의 출현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자기책임론을 흥미롭게 다뤘던 서방언론도 이 일을 일본사회의 '집단주의'와 연결시킨 바 있다. 일본의 경우, 피랍자들의 가족들이 한 사과나 사회로부터의 차가운 시선은 어느 정도 '왜 사회를 시끄럽게 하느냐?'는 식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한 논쟁에서 사회계약론이 등장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자기책임론은 한 편으로 근대 군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연결시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위험한 줄 알면서 아프간에 가지 않았느냐는 말은 비정규직인 줄 알면서 취직하지 않았느냐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읽히는데 이는 결국 국가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고립된 개인의 총체로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자기책임이라는 용어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수입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라는 점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한다(일본에서는 피랍 사건보다 앞서 노숙자 자기책임론이 제기된 바 있다. 자기책임론 논의의 신자유주의적 맥락과 관련한 상세한 논의는 http://www1.odn.ne.jp/~cex38710/jikosekinin.htm 에서 읽을 수 있다). 자기책임론이 신자유주의적 사회관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은 아사다 아키라의 논의에서도 등장하는데,  그는 피랍자들에게 구출비용을 징수하자는 주장에 대해서 국가가 '민간경비회사'냐며 반문하고 있다. 자기책임론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대한 사고와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도 자기책임론이 이렇게까지 여론의 우위를 점하는 것은, 점점 확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영향일 것이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경우는 상당히 다르다. 봉사와 선교라는 목적의 차이가 존재한다. 콜린 파월의 인터뷰(원문의 일부를 여기서 읽어볼 수 있다: http://www.janjan.jp/government/0404/0404173329/1.php)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민간 차원의 봉사활동은 현지에서 봉사자들이 온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하기 때문에, 현지의 군사활동에도 도움을 주니 정부차원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모스크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일(이들이 한 것인지 다른 선교단체가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은 현지에서의 선교일행마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가 존재한다고 해서 한국이 일본보다 양심적이라고 자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초기에, 파병에 반대해 열성적인 활동을 해 왔던 사람이 납치되었다면 여론은 어땠을까? 지금처럼 국익을 논하며 피랍자들을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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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다치고, 이 일주일간, 2ch 을 중심으로 고통을 당한 3명의 인질과 가족에 대한 공격(Bashing)은 추악 그 자체였다. 우리들은 항상 그런 미디어가 있는 것도 괜찮다고 말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다. 치쿠시 테쯔야가 인터넷의 게시판은 ‘화장실 낙서’라고 말했을 때도, ‘화장실 낙서’가 뭐가 나쁘냐, 오히려 져널리즘이란 것은 그런 것으로부터 발생해 온 것이 아니냐고 했었다. 하지만 그런 장소에서는 어디까지나 마이너리티로서, 이른바 마이너리티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발언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기는커녕, 자신들이 흡사 정부고관이라도 된 것처럼 과대망상에 빠져서, 마구 ‘국익’ 따위를 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피권고가 나와 있는 이라크에 자기책임으로 갔으니까 살해당해도 어쩔 수 없다, 이만큼 국익에 손해를 입혀서 폐를 끼쳤으니까 대처비용도 부담해야만 한다, 그러기는커녕 가족이 인질해방을 위해 자위대철수를 요구하는 것은 웃기는 일에도 정도가 있다 라며, 그런 식으로 ‘자기책임’을 휘두르는 녀석이, 자신이ㅡ 발언에 ‘자기책임’을 지느냐 하면, 반론의 여지가 없는 안전지대에서 익명으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10번 이상 대피권고를 내렸는데도, 그것을 무시하고 가는 민간인까지 돌봐줘야 한다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철수권고가 나와 있어도, 현지의 사람들이 지켜주는 형태로 착실하게 부흥지원을 진행하는 NGO 도 있고, 귀중한 정보를 보내주는 프리 져널리스트도 있다. 이번 3명은 경솔한 판단으로 위험한 지역에 무심코 들어가 버렸지만, 나이브하다고 할 수는 있어도, ‘선의’에서 행동한 것이니,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애초에 국가가 시민을 보호할 때, 그것이 어떤 인간이냐는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구출비용을 청구하다니, 정부가 민간경비회사인가? 해방된 인질이 이후에도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 것에 대해, 고이즈미는 ‘이만큼 많이 정부 사람들이 자신들의 구출을 위해 침식을 잊고 노력하고 있는데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요.’라며 불쾌함을 표현했었다. 마치 이라크지원은 자위대에서 한다는 것이 국가의 의지이기 때문에, 국가의 대피권고를 무시해서 이라크에 간 민간인이 국가에 폐를 끼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라는 듯이. 하지만, 그들의 일부는 자위대 파견 전부터 이라크에서 활동을 해 왔었고, 미국이 이라크를 무정부사태에 떨어뜨려, 일본이 미국의 뒤를 쫓아 자위대를 파견했을 때야말로, 그들에게 큰 폐를 끼쳤던 셈이다. ‘그래도 이라크인이 싫어지지 않는다, 이후에도 이라크에서의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라며 그들이 알 자지라의 인터뷰에서 말한 것은, 그 지역에서 일본인이 이미지를 좋게 하는 데에 자위대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콜린 파월 국무장관조차, 일본이나 이탈리아가 자위대나 군에 대한 철수요구에 굴하지 않았던 것을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위험한 지역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자신이 감수할 위험을 이해하고 있어야만 하지만, 누구도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으면 세계는 전진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은 자위대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을 알면서 좋은 목적을 위해 이라크에 들어간 시민이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만약 인질이 되었을 때도 위험을 감수한 당신들의 잘못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물며 가족이 처음부터 ‘우선 저희 가족이 폐를 끼친 것을 사과 하고 싶다’ 라며, 오히려 지나치게 ‘일본적’이라고 할 만큼 주변 사람들을 신경 쓴 발언이 눈에 띄어, 익명으로 비방의 메일이나 편지를 받게 된 것은 정말로 최악의 사태이다. 결국, 사죄나 감사로 계속 머리를 숙이고 다닌 만큼 인질과 가족을 몰아붙이니까, 마치 전근대의 무라(村)사회이다. 아니, 인질과 가족을 일본으로 이송하는 비행기에서, 기장을 설득해서 그들이 있는 구역을 출입금지로 하고, 보도진이 드나드는 것을 금하다니, 무라(村)사회의 실내감옥(座敷牢: 미친 사람을 감금해 두기 위해 집 안에 마련해 놓은 감옥)이 아니라면, 한 세기 전 구 사회주의권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인질에게 트라우마를 만드는 것은, 유괴범 이상으로 이런 일본정부나 일본사회의 이상한 대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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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피랍: 자기책임론을 걷어버리자

지금 아프간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20명의 기독교 선교단에 대해 여론은 대체로 두 가지 수식어를 붙여주고 있다. '멍청이' 또는 '광신도'. 이 수식어들은 '자업자득이니 가서 순교하게 내버려둬라'라는 주장이나 '일단 구출하고 그 다음에 책임을 묻자'라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어느 주장이나 '자신들의 신념을 전파하기 위해 위험한 줄 알면서 간 것이니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입각해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러한 자기책임론은 기독교의 공세적인 선교정책에 평소부터 가지고 있던 반감이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들이 아프간에 간 목적이 기독교란 사실이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왜 기독교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갖고 있는 국가에 기독교를 선교하겠답시고 가서 저 꼴을 당해 국가에 피해를 끼치는가? 지금 사경을 헤매는 이들을 눈 앞에 두고 벌어지고 있는 자기책임 논쟁은 어느 정도 그들이 기독교도라는 사실에 근거해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기독교도가 아니고, 따라서 반기독교 정서에 우리가 쉽게 기댈 수 없다면 그 때도 지금처럼 쉽게 자기책임론을 말할 수 있을까?


(1) 인권이란 이름이었다면

911 테러사건 직후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며 아프간을 침공해 그들의 화려한 군사기술을 뽐내고 있을 무렵, 언론에 비친 아프간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미사일과 문을 박 차고 들어와 '빈 라덴 내놔!'라고 소리치는 미군에 의해 고통받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군이 아니라 여성에게는 교육도 못 받게 하고, 문화를 파괴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치를 자행하는 탈레반에 의해 신음하고 있었다. 차도르로 눈만 겨우 내 놓은 아프간 여성의 모습 뒤에 이어지는 미군의 미사일은 마치 억압자를 향해 내리 꽂히는 신의 망치처럼 보이지 않았는가? 아프간은 단순히 알 카에다에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간에 '인권'이라는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그랬다. 물론 그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내고 집권시킨 북부동맹은 탈레반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이들이었고, 전쟁복구가 미비한 가운데 아프간은 가난과 마약과 정치적 부패로 신음하고 있다. 

만약 피랍된 사람들이 종교인이 아니라 아프간의 여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교육사업을 벌이거나 마약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처럼 반기독교 정서가 강한 곳에서 기독교를 선교한 것에 대해 책임을 돌리고, 기독교의 공세적 선교정책을 문화 다원주의를 거스르는 몰상식한 행동이라 여긴다. 하지만 우리의 문명에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식민화된 지역에 찾아가 자신의 삶을 헌신한 백인 영웅들의 이름 또한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앞 문장은 기독교의 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피랍된 이들의 행동이 인권의 이름으로 비호받을 수 있다면 여론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인권은 기독교보다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얻고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래서 미국의 아프간 침공의 공식 이데올로기이자 한국의 파병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된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인권 사이에 명확한 위계를 매긴 채 기독교 선교라는 목적을 비판할 수 있는가?



(2) 납치가 일어난 파병이라는 현실

인권이건 신이건 상관 없이 자청해서 간 것이니 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피랍자'가 '납치'에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뭔가를 당한 사람이 그 일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왕따 당한 사람에 대해서 '저러니 왕따 당할 만 하지'라고 말하는 것 까진 이해할 수 있어도 '니가 그렇게 행동했으니 왕따 당한 건 네 책임이야'라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자업자득이니 가서 순교하게 내버려둬라'라는 말은 '왕따 당한 건 네 책임이니 선생님 귀찮게 하지 말아라'라는 말과 똑같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들이 위험한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선택한 것과 실제로 납치를 선택한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당연히 위험에 처한 국민은 국가에게 그들을 도울 것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이를 저버린다면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물론 자기책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국가가 그들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국가의 책임을 경감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국가가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 그들을 구해내지 못하더라도 국가를 비난해서는 안 되며, 국가가 요구를 수용해서 그들을 구출하더라도 이로 인해 발생한 국가의 피해를 그들에게 문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이번 피랍사건으로 국가가 어떤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인가?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된 인력이나 비용은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수행한 것이니 피해라고 볼 수는 없다. 요구를 수용했을 때 '테러에 굴복한 약한 국가'라는 이미지가 붙는 것이 피해라고들 한다. 국가 신뢰도도 떨어지거니와 한 번 굴복했으니 이를 노리고 테러범들이 계속 한국인들을 납치할 것이니 실제적으로도 테러위협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테러와 국가라고 하는 것이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추상적으로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테러범들이란 다이하드에서 존 맥클레인이 무찌르는 일당들처럼 허공 속에서 뜬금없이 쑥쑥 솟아나는 이들이며 국가는 시뮬레이션 게임의 능력치 항목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아프간과 탈레반이라는 지금 테러의 맥락 속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의 신뢰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는 자신들과 더불어 세계의 패권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끔, 적당히 이익을 쫒을 줄 알고 힘 앞에 굽힐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슬람 국가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는 더러운 욕망을 의미할 것이다. 국가의 신뢰도라는 일견 중립적인 말은 사실은 강력한 가치를 수반한 말이다. 그런 말을 입에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이 전쟁이 일어나는 맥락을 고려한 후에, 한국의 아프간 파병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하는 것인가?  

요구수용이 테러의 연쇄를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주장에는 테러범들의 구체적인 존재가 사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언제나 일관되게 행동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인권의 이름으로 침공을 정당화 하다가 전쟁에 대한 보도가 시들해지자 그를 위한 노력을 방관하는 것처럼 한국 역시 이번 테러와 다음 테러에서 취할 태도는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다음 테러'라니? 다음에 테러를 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캐나다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퀘벡사람들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다음에 또 납치 소식이 들려온다면 아마도 한국군이 침략군의 일환으로 파병되어 있는 이라크에서 일 것이다. 다음 테러가 걱정이라면, 20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테러범들에게 강경책을 펴기 보다는 더 빨리 철군을 계획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테러범들은 '악의 집단'으로 추상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다음 테러를 걱정하기 전에, 그리고 테러범들을 테러범이라고 부르기 전에 먼저 한국의 군대 파병이라는 현실을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는가?     

 

한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는 아프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국일 미국의 요구를 받아 침략군의 일원으로서 아프간에 갑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인권과 봉사의 이름으로 파병을 정당화했다. 정부의 뒤를 이어 국민들이 신앙과 봉사의 이름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아프간에 갔다. 이들이 국익을 침해했다고? 과연, 이들은 아프간이 결코 한국인들을 반기지 않는 곳이며 한국군 역시 결코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밝혀냈으니 국가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해야 하는 것은, 피랍자들에게 왜 그런 데엘 왜 갔느냐며 문책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대체 파병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고, 파병이 대체 어떤 것이었는지를 해명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번 일로 이런저런 마음 고생을 할 게 분명한 국가를 위로한답시고 피랍자들의 책임을 얘기할 게 아니라, 국가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국민을 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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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를 위하여>, 서문: 오늘 , 루이 알뛰쎄르

 

 역사. 역사는 이미 인민전선과 스페인내전 때부터 우리의 청년기를 지배하면서 전쟁 그 자체 속에서 사실들을 처절하게 교육시켰다. 역사는 우리가 태어난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역사는 부르주아 또는 쁘띠 부르주아 출신의 학생들이었던 우리들을 계급들의 존재와 계급들의 투쟁 그리고 그 관건에 의해 교육받은 사람들로 만들었아.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인 공산당에 참여하면서, 역사가 우리에게 부과한 자명성들로부터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

 

 때는 전쟁 직후였다. 우리는 당이 이끌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전투에 급작스럽게 집어던져졌다. 우리는 그때 우리의 선택을 따져봐야 했고 그 결과들을 책임져야 했다.

 

 우리의 정치적 기억 속에서 그때는 대파업들과 대중시위들의 시대, 스톡홀름 선언과 평화운동의 시대로 남아 있다. 레지스땅스로부터 솟아난 거대한 희망들이 무너졌고, 파국의 그림자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힘을 통해 냉전의 지평 속으로 후퇴시켜야만 했던, 험난하고 긴 투쟁이 시작되었던 시대였다. 우리의 철학적 기억 속에서 그때는 오류를 그 모든 서식지로부터 쫓아내던 무장한 지식인들의 시대였고, 세계를 단 하나의 칼날로 갈랐던, 예술, 문학, 철학과 과학들을 계급들의 가차없는 절단으로 갈랐던 철학자들, 정치를 자신의 저술로 삼았던, 바로 우리들이었던 저서없는 철학자들의 시대였다.

 

                                                                                        <맑스를 위하여>, 루이 알뛰쎄르, 백의, 17p 

 

 

 

 이 글은 이 논문 모음집에서 알튀세르가 비판하고 있는 대상들 중 하나인 공산당 내에서의 지적 경향, 모순들을 단일한 경제적 모순으로 환원하고 그것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겠다고 하는 헤겔주의를 겨냥하고 있다. 과학을 프롤레타리아의 과학과 부르주아의 과학으로 거칠게 구분함으로써 지적 통찰력을 마비시켰던 그 단순성이 그들이 세계를 가차없이 절단할 수 있게끔 하였던 것이다. 이 서문은 지적으로 무능했던 공산당에 가해진 알뛰쎄르의 비판의 포문을 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는 비판적인 글이 갖는 냉혹함, 가차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가슴을 뛰게 했던 거대한 옛 열정들과 흘러간 시간을 회고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알뛰쎄르는 전후 공산당 활동을 시작하면서 종교적 엄숙함과 어머니가 자신에게 투사한 이미지에 사로 잡혀 있던 유년기에서 벗어나 그의 늦은 청년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의 문장에서 전해오는 따뜻함은 강력하고 억압적인 권력에 맞서 좌절하면서 동시에 희망을 보았던 시절, 세상의 많은 것들이 자명해 보이고, 그들의 언어로부터 우리의 언어를 분리시켜내 그것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청년시절에 대한 헌사이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이, 절망과 낙관이, 단호함과 부드러움이 열정 속에서 뒤섞여 있던 시절은 알뛰쎄르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고, 투쟁하였던 모든 이들의 청년기이기도 하기에, 그의 문장은 이들 모두에 대한 헌사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문장에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듯 하다. 에티엔 발리바르는 알뛰쎄르의 장례식에서 위 문장의 일부를 인용하여 낭독하였다. 이를 통해 그는 알뛰쎄르의 죽음과 더불어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애도하였던 것이 아닐까? 아직 젊음의 한 복판에 있는 나는 이 문장을 보면 맑스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사로잡혔던,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자체를 바꿔버릴 수 있을 강력한 힘을 얻은 것만 같았던 그 느낌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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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시대>, 존 쿳시


 세상에는 많은 경계들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대개 그 작동은 대립과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간절히 경계없는 세상, 경계없는 화합의 세상을 꿈꾼다. 경계란 사실 우리 모두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며,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공포가 경계들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경계란 부차적인 것, 허구적인 것일 뿐이며 본질적인 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렇게 해서 경계는 무화되고, 그 자리에 하나의 인간이 자리를 잡지만, 빈번히 그 이름 아래 폭력과 갈등은 계속된다. 경계없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쩌면 함정일 수도 있다. 

 <철의 시대>에서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두 개의 인간관계가 그려지고 있다. 하나는 아파르트헤이트의 모순이 극에 달한 80년대 말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다 은퇴한 후 암에 걸려 죽어가는 백인 여성 엘리자베스 커런이 흑인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흑인 하녀의 아이들과 맺는 관계이며, 다른 하나는 그녀가 암 선고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차고에서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호의를 베풀게 된 흑인 부랑자와의 관계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혐오감을 느끼는 휴머니스트 커런은 자신의 삶과 사고의 경계를 허무는 이 두 관계맺음 속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한다. 

 커런은 투쟁하는 흑인 아이들, 철의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부랑자 퍼케일을 폭행하고, 학교에 불을 지르고, 어른처럼 행동하는 아이들로 커런에게 혐오감을 준다. 커런에게는 그들의 극기, 자기희생, 동지애와 같은 가치들보다 인간의 가치, 삶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다. 이 관계가 보여주는 것은 보편적 휴머니즘과 특정한 대상과 적을 갖는 정치 투쟁 사이의 갈등이다. 투쟁은 항상 보편성의 이름으로, 그리고 인간의 이름을 동반한다는 면에서 휴머니즘이 낳은 것이지만, 그것에는 또 언제나 휴머니즘을 초과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커런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며 흑인들의 투쟁 방식을 비판하지만, 결국 그들을 무참히 죽이는 것은 언제나 백인이며, 백인으로서 커런은 그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흑인들의 삶의 공간에 뛰어들었다가도 상황이 위험해지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 살인들에는 사실 커런 자신의 이름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커런이 깨닫는 것은 백인인 자신이 휴머니즘을 보편적인 가치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 휴머니즘의 보편성은 백인이라는 자신의 위치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는 것이다. 결국 휴머니즘이 설정하는 추상적 인간은 다양한 권력관계로 경계지워져 있는 세계 속에서는 무력할 따름이다. 백인들의 방화와 총격으로 흑인들이 죽어가는 이 상황을 설명해 보라며 분노해서 외치는 사람들에게 커런은 그것은 오직 '신의 언어'로만 가능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는 자신이 공모자인 구조 속에서 객관적 서술이 불가능함에 대한 시인이면서, 휴머니즘의 한계에 대한 시인이다. 휴머니즘은 위계적인 권력관계로 구획되어 있는 삶의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지 않다. 

 첫 번째 관계가 서로 이질적이고, 서로가 서로의 한계를 물고 늘어질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 비슷한 뿌리를 가지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면, 두 번째 관계는 전적인 타자성과의 조우를 형상화한다. 부랑자 퍼케일은 커런이 그에게 보인 선의를 다른 뭔가로 보답하지도 않고, 손님으로서 허용된 행동의 범위를 따르지도 않는, 교환이라는 경제원리와는 완전히 담을 쌓은 인물이다. 커런은 그에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대체로 반응하지 않고, 반응하더라도 그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이런 미지의 인물은 쿳시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포>의 프라이데이가 그렇고, <마이클 K>가 그렇다. 커런처럼 이 미지의 인물들을 만나는 백인은 언제나 그들이 뭔가를 '이야기하게' 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실패한다. 그런데 <철의 시대>는 이 관계를 조금 다르게 그려내는 듯 하다. 커런은 퍼케일이 이야기하게 하는 데 보다도, 그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자신이 그에게 다가가 자선을 베풀었다기 보다는, 그가 자신에게 다가왔다고 생각하며, 후에는 그가 자신의 생명을 거둬가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그에게 자신을 열어 보인다. 다른 소설의 화자들이 '피부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타자의 내면을 헤집으려고 한 반면에, 커런은 그 존재를 순수히 감내하려고 한다는 점이 다르다. 소설은 퍼케일과 커런의 관계에 대한 애매한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애매하긴 하지만 전적인 무반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장면. 물론 커런의 편지 형식인 이 이야기에서 퍼케일에 대한 모든 이야기, 그와의 관계에 대한 모든 평가는 커런 자신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타자, 나의 경계 밖에 있는 것과의 어떤 새로운 관계맺음의 형태, 근거 없고 계산 없는 신뢰를 보여준다.

 첫 번째 이야기가 어떤 면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경계의 확고함과 관계의 불가능성을 보여준다면, 두 번째 이야기는 경계 속에서의 관계맺음에 대한 나름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쿳시는 언제나 작동하고 있는 경계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려 대단히 조심스럽다. 경계란 내가 내가 아닌 순간에야 지워질 수 있을테고, 그 때에야 허물어졌다 할 수 있는 것일텐데, 이는 결코 낙관할 수 있는 것도, 쉽게 서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설은 경계란 성찰 없이 허물어지지 않으며, 성찰하고 있는 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성찰, 그걸 가능케 하는 공모의 구조, 이게 쿳시가 고군분투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게 섣부른 호언보다는, 최소한 솔직하다는 면에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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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는 없다

얼마 전에 이글루의 이오공감에 올라와서 꽤 많은 리플에 시달렸던 글이 하나 있었는데, 그 포스팅을 한 블로거는 '자신이 남자로 태어나서 누리고 있는 특권이 없는 것 같으니 제발 좀 알려달라'며 예의바르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한 이 무감각은 곧 타인이 받는 억압에 대한 무감각을 의미할 것이란 생각에 얄밉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름 성실하게 리플을 달았었다. 그 글은 이오공감에서 내려갔고, 그 블로거의 아이디도 잊어버렸지만, 어쨌든 새로운 예를 하나 들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당신은 밤에 동네 슈퍼로 맥주사러 갈 때, 귀신 밖에 무서워할 게 없지 않습니까? 




최근에 알게 된 지인과 그녀의 친구는 인사동을 지나쳐 종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종각과 종로3가로 이어지는  가게가 많고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 그런데 그들에게 나이트의 삐끼가 달라 붙었다. 메인스트리트와 직접 마주한 골목길 안 쪽에 있긴 하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는 않는 나이트였으니, 당연히 삐끼의 출현은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삐끼들은 팔을 잡아 끌며 그녀들을 골목 안으로 이끌었고, 안 간다고 말하고 버텼음에도 불구하고 완력으로 그들을 가게 안으로 끌고 들어가 부킹을 기다리는 방에 앉혀 놓았다. 그 와중에 그들은 사물함에 보관하겠다며 가방까지 가지고 가 버렸다. 그녀들은 너무나 황당한데다 겁이 덜컥 나서 가방을 돌려달란 말도 하지 못한 채 웨이터가 방에서 나간 틈을 타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내가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사건이 있고 난 다음날 술자리에서였다. 가방을 찾으러 가야겠다고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아직 찾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지금 같이 가자고 나섰고, 그녀들과는 얼굴과 이름 정도만 아는 사이인 나도 끓어오르는 분노와 불타는 사명감에 같이 가겠다고 따라 나섰다. 먼저 나선 사람은 남자였고, 뒤따라 나선 나도 남자였다. 그렇게 겁에 질린 두 명의 여성과 불타오른 두 명의 남자가 함께 하는 가방원정대가 자연스럽게 결성되었다.   

택시가 종로에 가까워질 수록 어제 험한 꼴을 당한 두 명은 점점 겁에 질려 갔고, 나머지 둘은 '자연스레' 원정을 이끄는 지휘관처럼 그들을 독려했다. 겁에 질린 두 사람과 그들을 돕는 두 사람, 괴로워하는 두 명의 여자와 그들을 격려하는 두 남자. 그녀들이 겁에 질려 나이트 근처의 가게에 들어가 있고, 남자들만 나이트에 찾아가긴 했지만, 어쨌든 가방은 아무런 어려움 없이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정말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약간의 갈등을 겪은 것을 빼고는.

가방을 돌려달라고 웨이터에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바깥쪽 큰 길가에서 삐끼들이 호객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길을 가는 여자들을 막아 세우고는 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그들이 싫다고 거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삐끼 하나가 여자를 들쳐 안더니 안으로 달려들어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는 질질 끌다시피 골목 안 쪽으로 끌고 들어왔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안겨 들어 오는 여자의 얼굴은 겁에 질려 있었고, 또 다른 여자는 손을 빼내려고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내가 멍해 있는 사이 다행히 삐끼들은 그녀들을 가게 문 앞에서 내려 놓았고, 다시 팔을 잡아 끌며 안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나서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려웠다. 나는 내 몸무게보다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올릴 것 같은 남자들에 둘러 쌓여서 그들이 순순히 가방을 돌려주기만을 바라는 운동부족인 약골일 뿐이었다. 뭐, 적었다시피 사건은 없었다. 나는 정말 똥줄이 탈만큼 긴장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들은 무사히 가던 길을 갔고, 가방은 되돌려 받았고, 삐끼들은 힘들어 죽겠다며 흘러내리는 땀을 쓸었다. 이렇게 가방원정대는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고, 안도하며 고마워하는 그녀들과 의기양양한 한 남자-나, 나보다 훨씬 의젓한 모습을 보였던 다른 한 남자는 어땠을까?- 다시 택시를 타고 왔던 길을 되밟아 돌아갔다. 




나는 의기양양해 하지는 않았다. 나는 출발할 때보다 더 침울해져서 그녀들의 고맙다는 말도 듣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왜 그녀들은 내게, 하필이면 가방을 뺏어간 그들과 같은 남자인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가? 만약에 내가 여자였으면, 여자로서 그녀들을 따라나섰으면, 나는 그녀들과 함께 경찰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이, 국가-아버지의 권위를 체현하는 경찰들에게. 그리고 내가 여자였다면, 아마도 그녀들과 나는 나란히 나이트 앞에 서서 두려워 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내 뒤에 숨은 그녀들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어린시절부터 무수히 주입 받아온 그 이미지, 칼이나 총을 들고, 용이나 갱들을 무찌르고 감금돼 있던 여자를 어깨에 들춰 없고 돌아오는 히어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딸들을 다른 남자들의 음험한 시선으로 보호하다가 다른 남자에게 건내주는 아버지, 자기의 부인들을 평생 지키겠다는 남편, 어머니-국가의 땅을 지키고, 우리의 누이들을 지키겠다는 군인과 너의 딸과 아내와 너희의 여자들을 강간하겠다는 그 모든 남성들 사이에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결국 그들은 같은 판 위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자는 삭제된 채로 이루어지는 그들 사이의 게임을. 고마움은 결코 내가 한 일에 합당한 대가가 아니다.

내가 어쩐지 여자가 가면 가방을 쉽게 받아오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을 따라 나섰을 때 나는 내가 그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긍정해 버린 셈이다. 모든 일은 사실 그렇게 이루어진다. 성폭행의 책임이 밤길에 밖에 있던 여성이나 그녀의 옷차림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한 편으로 밤 늦게 아슬아슬한 차림으로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 여성을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고, 그녀의 부모님은 여자가 밤길에 싸돌아 다니지 말라고 훈계를 하고, 그녀의 친구는 밤길 조심해서 돌아가라고 걱정어린 인사를 하며,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녀를 집 앞 까지 바래다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현실적으로 여성에게 밤길이 위험한 이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하게되는 행위들이고, 사회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들이다. 어쨌든 무서운 일을 당해 가방을 빼앗기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누구든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나는 내가 사실은 진짜로 의기양양해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트에는 가본 적도 없고, 여자들에게 멋진 모습 내세울 건덕지 하나 없는 내가 그 덩치들한테서 여자의 물건을 되찾아 오다니! 세상의 참상을 하나 더 목격한 사람으로서 우울해 하고 있었지만, 그 우울함도 자뻑의 효과를 고조시켰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우울과 자뻑 사이에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우리가 밤길에 귀가하는 여자친구를 바래다 줄 때, 그 행동은 단순히 필요에 대한 판단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은 그 행동의 상당부분이 여자친구를 배려하는 나의 자상함에 대한, 그리고 여자친구에게 자기의 애정을 과시했다는 사실에 대한 자긍심으로 채워지고 있지는 않을까? 과연 스스로를 여자를 품에 안고 말을 달리는 남성 구원자의 이미지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을까? 우리의 행동은 어느 정도까지는 이미지들의 작용과 효과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것이다.

결국 사회의 특정한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는 장치는 도처에서 언제나 이미 작동중이다. 내 자신이 '자연스런' 관계맺음 이라고 생각하며 한 행위들이 그 장치들에 기름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트 또한 마찬가지다. 이성이 만나서 춤을 추고, '자연스럽게' 섹슈얼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상정되는 그 곳은 이 사례가 보여주듯이 사실은 여성의 주체성은 배제된 남성들의 공간이다. (동성애 클럽은 어떨까? 그곳에서의 관계는 성차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권력관계가 어떻게 나타날까?) 모든 관계맺음(특시 성적 관계)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상정하는 바로 그 사고가 억압적 권력이 그 모습을 숨긴 채로 꿈틀댈 공간을 마련해 준다. 나는 그 공모의 사슬, (성)관계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에 우울해 한 것도 잠시, 여전히 도처에서 사랑과 관계는 진행중이다.  

(써 놓고 보니 맨 처음 생각했던 거랑 무척 다른 글이 되어버렸다. 제목과도 매치가  안 되고. 그래도 다른 마땅한 게 생각이 안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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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땅>, 존 쿳시


  글을 읽는 내내 마치 자화상을 보는 듯 하여 무척 괴로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화자, 남아프리카를 '개척'하는 18C 의 제국주의자와 베트남전에서의 미국의 심리전 전략을 입안하는 20C 의 제국주의자가 사고하는 스타일이 꼭 나의 것인 양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쿳시가 '봐라! 이게 네 사고 방식이야! 네가 바로 제국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있는 거야!'라고 얼굴에 책을 들이미는 것 같았다. 아마도 쿳시는 똑같은 말로 자신 또한 괴롭혀 가며 글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작품에서 18C 의 제국주의자의 이름은 야코부스 쿳시이다. 이 이름을 통해 그는 자신의 존재가 제국주의에 직접적으로 빚지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자 그 역사적 연관성을 넘어서서 그의 사유와 그가 존재하는 방식을 통해 스스로 제국주의와 공모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과연, 쿳시의 글을 읽는 이 세상의 그 누가 그 공모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이성이 실은 이미 광기라 하더라도 과연 누가 그 이성의 작동을 멈출 수 있겠는가?

  쿳시의 소설이 진정으로 윤리적인 이유는 자신이 그럴 수 없음을 솔직하게 시인한 채로, 이성의 내부에서 이성이 스스로의 광기를 드러내는 순간을 끈질기게 파헤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고민하고 반성해 보는 것이다. 쿳시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의 화자가 백인 남성 제국주의자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억압의 구조와 얼마만큼 공모하고 있는지를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는 고민이란 결국 진실성을 결여하기 마련이다. 이후 쿳시의 소설들은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으로, 동물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원주민과의 소통의 문제 등으로 넓어져 간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어둠의 땅> 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가능성을 얘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불가능성을 끊임없이 제시한다. 그가 <어둠의 땅> 에서 자기 자신의 문제이자 모두의 문제로서 제시했던 이성은 그 모든 문제들 속에 언제나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불가능을 형상화 해 내는 것은 그 이성의 야만을 다시 작동시키지 않으려는 최대한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섣부른 희망보다는 이런 끈질긴 반성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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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과 고세훈의 민주주의 복지국가론




 
 
 고세훈의 <복지한국, 미래는 있는가?> 와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읽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최장집의 문제의식은 한국 정치의 정치 체계가 냉전반공주의라고 하는 협소한 이념적 틀을 기반으로 구성되었고, 그 결과 사회 경제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 균열-핵심적으로는 노동과 자본이라는 계급갈등-이 정당을 통해 정치과정에 반영되지 못 한 채, 정치가 보수 엘리트들의 권력획득의 장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사회는 민주화운동을 통해 일정 정도 권위주의로부터의 체제 전화에 성공했지만, 제대로 대표되지 못한 사회의 균열은 지역감정으로 전화되어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왔으며, 재벌의 경영은 여전히 권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사회 전체적으로 이전 시대 기득권의 헤게모니가 오히려 강화되었다고 말한다. 이는 한국이 아직 절차적 민주주의의 요건 조차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합리적' 사회경제적 균열에 기반을 둔 정당이 조직되어 사회의 갈등을 폭넓게 반영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당정치의 발전과 이를 기반으로 한 국가위상의 강화가 최장집의 주장이다. 

 고세훈의 복지국가론은 최장집의 논의를 기반으로 하여 나올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적 성격을 갖고 있다. 최장집과 마찬가지로 고세훈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고 하는 기반 위에서도 국가는 독립적인 변수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세계화를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수용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의 건설을 주장한다. 이에 반해 사회투자국가론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나 "노사정 협의회" 구성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에서 복지는 기술교육에 기반한 노동 유연화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고,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동반되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의와 더불어 고세훈은 이해관계자 복지라는 모델을 제시한다.  유럽 사민주의 모델이 시장의 구조에는 큰 압력을 가하지 않은 채 국가의 민주화를 기반으로 하여 복지제도를 구축했는데, 신자유주의의 복지 위기담론에 맞서기 위해서는 시장의 민주화를 공세적으로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을 그 이해관계자인 종업원들도 경영에 참여하는 체제로 개편하고, 시장을 시장 외부에 있는 사회의 이해관계자와 매개시켜 파악하는 것이 이해관계자 복지이다(...같다-_-;). 이를 위한 실천적 방안은 최장집의 주장과 거의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실질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노동자의 이익이 정당을 통해 정치에 폭 넓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세훈의 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복지국가 발전에 대한 우파와 좌파의 접근을 분석한 것이었다. 복지국가의 발전에 대한 우파적 관점은, 복지란 경제가 발전하면서 발생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복지를 가능케 하는 힘은 경제발전이기 때문에 경제발전은 근본적으로 우선권을 갖는다. 좌파적 관점은, 복지가 자본이 축적의 위기를 겪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를 통해 마련된 장치라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자본 축적의 안정적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산물로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에 봉사하여 혁명적 전화를 늦추는 장애물이 된다. 고세훈은 좌파와 우파의 접근이 그 지향은 다르더라도, 둘 모두 복지를 기능주의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론적으로는 좌파가 복지정책을 매우 무관심하게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복지정책을 가장 강력히 지지해 온 아이러니를 지적한다. 

 뜨끔하다. 복지를 위한 투쟁은 맑스주의에서 '경제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늘 폄하되었고, 오직 그것이 정치적 이행을 위한 맹아적 투쟁이라는 조건-간단하게는 그러한 투쟁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훈련되고 하나의 계급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투쟁 속에 혁명적 전화를 위한 요소들이 뒤섞여 발전할 수 있을 때-하에서 긍정되었다. 따라서 초점은 언제나 투쟁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젠가 도래할 혁명에 맞추어져 있었고, 당연히 당면한 문제에 있어서 투쟁 이외에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것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일찍이 맑스주의의 문헌들을 통해 사고가 정향되었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각은 아닐까? 감정적으로는 한없이 잘 되길 바라면서도, 막상 맑스주의적 사고의 틀에서는 달리 보태줄 것이 없는. 

 최장집은 한국의 운동세력과 노동운동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으로 인해 유효한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내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나는 그 사고들을 감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라고 말할 생각도 없고, 최장집처럼 강력하게 '현실'과 '관념'의 세계를 구분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맑스주의 정치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현실 속에서 당면한 문제에 '유효한' 비전을 제시해 오지 못한 것은 맞는 듯 하다. 맑스주의가 학생운동의 수준에서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던 한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 속에서 맑스주의의 정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화제를 돌려서, 두 글에서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대의제에 대한 지나친 신뢰와 더불어 거리의 정치에 대한 불신이다. 두 저자는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의 갈등을 반영하는 정당체제가 설립되면 사회의 갈등은 민주주의라는 과정을 통해 조화롭게 표출되고 합의를 이뤄낼 것이라고, "과격한" 운동의 표출은 줄어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요구란 기존 대의제 정당체제가 반영할 수 있는 테두리에 국한되는 것이며, 이를 넘어서는 추구란 배제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고세훈에게는 노동과 자본 문제를 제외한 영역의 문제제기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강하게 배척 당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환경에 대한, 여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체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이 얘기하는 민주주의란 결국, 체제에 대한 근본적 비판은 수용할 수 없는 닫힌 체계가 아닌가? 최장집은 민주주의에는 수용해야만 할 "게임의 규칙"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렇겠지. 

 이와 병행하여 나타나는 문제는 사회적 갈등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범주로 환원하고, 이를 정당에 의해 대표될 수 있는 것으로 단순화 해 버린다는 것이다. 고세훈의 글을 보면  계급존재와 계급형성이라는 말을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존재한다고 상정되는 계급이라는 질료와 의식과 결합돼 실질적인 그것의 주체로의 형성이 구분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최장집에게도 나타난다. 어찌됐든 이처럼 계급구조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니만큼, 사회의 본원적 갈등은 계급을 기반으로 나타나는 경제영역의 갈등이다. 따라서 이들의 논의에는 노동의 정치화라는 대안 외에 다른 담론들에 대한 검토가 결여되어 있다. 정말로 노동 하나면 충분한가? 민주주의라는 바탕 위에서 오히려 환경과 여성이라는 담론이 기존 담론의 틀에 균열을 일으켜 전혀 새로운 갈등 상황들을 창출해 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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