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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을 읽다가

지젝의 책을 읽다가 지젝을 읽기위해서는 라깡을 기본적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라깡의 책을 뒤적거리다가 라깡을 읽기 위해서는 프로이트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프로이트를 읽기위해선... 아차!!! 이게 바로 기표가 끝없이 미끄러지는 것인가?

 

어쨌거나 기표의 끝없는 미끄러짐에 몸을 맡겼다간 죽도밥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프로이트의 책에서 멈추기로 했다. 옛날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샀었다는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휴가기간 동안 시골 집에 간 김에 집 안 창고에 고이 처박아 두었던 책들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뒤지기를 30분 여, 난 나에게 정신분석학에 관련된 서적이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무턱대고 사다가 쌓아놓기만 한 책이 10여 권 되었다.    

 

십 여권의 책을 꺼내놓고 어느 것을 먼저 읽을 지 고민했다. 끝없이 미끄러지는 기표연쇄 속에서 한 군데 누빔점에 기표를 정박시키듯이 난 프로이트의 <늑대인간>을 꺼내 들었다. 대학 다닐 적에 빠지지 않고 강의를 꼬박꼬박 챙겨들었던 김선생님의 추천서적이기에 선뜻 손이 갔다. 결국 난 학교라는 제도에 의해 누벼지고 만 것일까...

 

아무튼 집어든 책이니 그래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늑대인간>에 펼쳐진 사례들을 읽기 시작했다. 시골 집의 유난히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흐릿한 불빛 아래,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싸늘한 방의 냉기를 느끼며 혼자 <늑대인간>을 읽자니 소름이 돋아 견딜 수가 없었다. <늑대인간>을 읽고 있으면 꼭 X-file이나 믿거나 말거나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차근차근 설명하다보면 상상치도 못했던 이유들을 찾아내는데, 그 이유들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난 밝은 날 다 시 꺼내 보기로 마음 먹고 책을 덮었다. 성격 상 무서운 영화도 잘 못보는데, 그런 상황을 견뎌낼 만할 배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밝은 날 다시 꺼내 읽어보니 상당히 인상깊은 구절들이 있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겠지만 겁만 먹지 않는다면 항상 의미있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들은 그들의 성애(性愛)의 생활에서 그토록 멋지고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는지 놀랍다. 그리고 어떤 때는 사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혹은 그런 순간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자신을 완전히 기만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지나갈 수가 있는지 놀랍다...

 

 

우리가 심한 우울증에 걸린 소녀나 여자에게 우울증에 빠지게 된 원인이 될 만한 일이 있었나 물어보면 어떤 사람에게 감정을 조금 느꼈었지만 포기해야 되었기 때문에 곧 잊어버렸던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쉽게 견디어 낸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포기한 것이 심각한 정신장애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순간순간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어느 틈엔가 우리의 몸과 마음 어느 곳에든 새겨진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난 이성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충분히 통제하고 있다고 판단하지만 그것은 오만에 불과하다. 항상 난 무엇인가 잊어버리고, 잊어버린 그 무엇인가로 인해 매번 놀라움에 빠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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