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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받아본 팬레터는..

오늘 처음으로 팬레터란 것을 받아보았습니다.

충남 아산에 사시는 김모씨에게서 받은 겁니다.

'사랑한다', '결혼해달라','이 세상에 어떤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등등의 내용이 담긴 편집니다. 이유는 '아름다워서'라고 쓰여있네요. 

 

별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걸 받을 때 함께 있었던 기자들도 '조수빈 아나운서'라고 되어있었지만, 그다지 의심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KBS1TV 남북의창 조수빈 아나운서'...

 

12월 26일에 쓰여져 29일 서울시 용산구 청파동으로 배달된 이 편지의 마지막에는

'조수빈 당장 편지하세요'라고 쓰여있습니다.

 

쓴 침이 넘어가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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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이모의 육아일기(2)

육아에서 본능에 의한 것이 얼마나 있을까? 유선이 발달되는 것 이외에, 그리고 아이가 젖을 찾는 것 이외에 본능에 의한 육아를 따로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조카와 함께 하면서 학습되고 있는 나는 종종 언니에게서도 학습된 육아의 형태를 본다. 그 한가지, 아이의 청각 발달을 위해 엄마가 아기에게 하는 대화구의 언어에서다. 무뚝뚝하고 표현을 잘 안하던 언니였던 터, 아기와의 소통을 위해 눈높이를 맞춘 대화법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 또 한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이도 익숙해지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러워질려나..  

 

나는? 거의 아기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 쭉쭉, 찍찍, 뽕뽕 정도의 단발성 의성어 이외에 두세문장이 합쳐진 긴 문장을 어지간해선 잘 하지 않는다. 뭐 한다면 "아이구 똥 쌌네~", "아나줄까~?", "왜 슬포? 배고퐈?" 정도.

 

이후 내가 하는 말이 이 아이의 청각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싶다가도 아기의 플렌에 뒤쳐질까봐 어색하지만 대화를 시도해보기도 한다. 내가 언니를 봐도 그런데, 정말 내가 생각해도 나의 대화법은 무진장 어색하다.

 

아이가 자라는데도 나름 플렌이 있다고 한다. 여고시절 가정시간에 배운 육아플렌을 더듬어보면 3개월에는 목을 가누고, 6개월 이후부터는 옹알이도 하고, 생후 1년이 지나면 차차 걷기도 한다더라.

 

생후 약 20개월이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친구의 언니가 "우리 시은이가 말할 때가 됐는데, 아직 엄마정도라서 걱정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주변에 말많은 이모들과 할머니를 둔 시은이가 아직 '엄마' 이외에 말을 별로 하기 싫어하는 것을 보면 분명 시은이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심지어 생후 3,4개월 되어가는 사촌동생을 얻은 뒤로는 걷던 것도 기어다리려고 한다는 친구 하모양의 걱정으로 볼 때 아기에 따라서 그 플렌은 몇 개월 혹은 몇 십개월에 걸쳐 탄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장의 근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세상의 인식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어떤 기준에서 정해진 플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플렌에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우리 아기에게 문제가 있지 않는지 걱정하고, 조금이라도 빠르면 우리 아기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구나 하며 팔불출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른바 일반적인 정상(?)가족 안에서 육아된 아기에 맞춰진 것으로 보이는 이 육아플렌은 농아인 등 장애인의 육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짐작된다. 네이버로 검색되는 수많은 육아 관련 사이트는 하나 같이 육아에 대한 무궁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아기마다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멘트나 장애인을 위한 육아 정보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유아기를 지나 유년기, 청소년기....장년기까지 때되면 학교가고 때되면 결혼하고 때되면 아파트 사는 플렌이 기준이 되어, 특수 계층(?)을 제외한 많은 인간들이 평균에 목매며  때되면 학교가고, 때되면 결혼하고, 때되면 아파트 사는 일조차도 어려워 조급한 인간이 많아진 이 시대가 서글프지만, 게다가 그 놈의 평균은 어떤 기준에 의해 설정된 것이며 그런 플렌과 무관해질 순 없는지..부당함을 넘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 25세, 이 시대 평범한 20대 플렌에서 얼만큼 뒤쳐져 있는지 모르고 이유모를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나. "남들 다 하는 그 잘난 연애 한번 못해보고 뭐 하고 있나.."

 

"서준아, 살다보면 조금 늦게 걷고, 늦게 말하기도 한단다. 그런데 언제 걷고, 말하고는 사실 크게 상관이 없어. 언젠가는 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너에게 가능성만 있다면 걷고 말하는 것은 언제든 주변 조건과 관계 없이 가능하게 되어 있단다. 심지어 무뚝뚝하고 과묵한 이모가 있는 너도 말야. 사실 연애하는 것과 걷고 말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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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이모의 육아일기(1)

그 놈은 꼭 기저귀를 갈 때, 오줌을 싼다. 이는 몇 번 당해도 또 당한다.

그 놈의 생활 패턴은 사실 단순했다. 이 놈과 있을 때면 나의 생활도 단순해 진다.

 

그 놈의 단순한 생활 패턴을 파악해갈 즈음은 그 녀석의 기저귀를 간 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귤을 까먹던 시기와 비슷했다. 언니가 형부의 갑작스런 수술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첫 만남에서 그 놈과 나 사이에는 서로를 경계하는 팽팽한 신경전이 상존했다.

 

뭔가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잇몸을 다 드러내고 칭얼대는데, 처음에는 어찌할 바 모르고 싸늘해진 아이를 붙들고 좌절하는 나를 멀리서 지켜보는 상상을 하곤 했다. 특히 분유를 먹으면서 꿀럭꿀럭 숨넘어가는 소리를 낼 때면 그 상상은 극에 달했다. 거기다 이 놈이 눈치도 없이 분유를 먹으며 졸 때면 상상은 잠시 현실로 다가왔다가 또다시 머리로 돌아가는 아찔한 순간을 체험해야 했다. '어림 잡아 한뼘도 안되는 거리로 분유를 넘기는 게 그리도 힘들까!'

 

이 녀석이 가장 만족스러운 얼굴로 놀 때는 배도 부르고, 기저귀도 축축하지 않으면서 졸립지 않을 때다. 나에게 일정한 여유가 찾아온 것은 때 되면 배가 고프고,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저히 우유만 먹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방귀를 뀐 후, 이 녀석을 만난 이후 사용하지 않는 황금카키색 아이세도 색깔의 똥을 싸고, 졸음이 온다는 패턴에 익숙해질 때 였다.

 

이 순간 나는 로버트가 된 것 같다. '4시 30분? 밥 먹을 때가 되었군' 이 녀석은 칼 같이 1시간 30분 간격으로 밥(?)을 찾는다. 입에 들어갈 때는 실온으로 느껴질 것 같은 온도의 물 100(리터인가?), 플라스틱 티 스푼으로 깍아서 5스푼을 넣어 골고루 흔들어놓고, 분유병 젖꼭지를 바로 입에 넣어주지 않고 입 주변에다만 콕콕콕 찍어주면 제비 새끼 모양 쫙 벌린 입으로 연신 젖꼭지를 찾는 시늉을 하는데, 제법 재밌다.    

 

그런데 그러던 이 녀석이 배가 고프지도, 기저귀가 축축하지도 않으면서, 졸고 싶지도 않은데 칭얼댈 때가 있다. 내 교과서에는 없는 내용, 교과서만으로는 실전에 약하다. 아무래도 모유를 먹던 녀석이 하루종일 고무 젖꼭지만 빨았지..거기다 빈 젖꼭지라도 물고 자던 녀석이 맨 입에 놀려니 꽤나 심통이 났던 모양이다. 유선이 발달되지 않았더라도 자극을 주면 젖이 나올 수도 있다는 예전에 언니에게 들었던 믿지 못할 낭설에 나도 모르게, 내 젖꼭지라도...

 

그러나 인생은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 수 없는 법, 칭얼대는 아이를 그냥 20여분 놔뒀더니 버둥대며 혼자 잘 놀더라...근데 생후 100일이 안된 갓난 아기에게는 물고 빨고 싶은 욕구가 상당하단다. 또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공갈 젖꼭지라도 물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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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이 무서워

14일 3시 KBS 본관 앞 난데없는 난투극이 벌어진 그날, 누구나 이용하도록 개방되어 있는 시청자광장으로 진입하려던 '닫힌채널' 회원 20여명을 KBS 경비와 청원경창은 '단체행동'이라는 이유로 물리력을 동원해 출입을 저지했다.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지난 번 시청자광장 방문때도 출입을 막았다고 하니. 그 때는 4명.

 

14일 방문에는 계단에서 부터 이들의 이동을 봉쇄하려 했으니 그냥 저냥 단체행동 때문이라는 것은 변명 혹은 핑계에 불과하다.

 

그렇게 20여분의 소란 끝에 시청자서비스팀 직원이라는 사람이 모습을 비쳤다. 백발에 안경을 낀 그 사람은 나에게 전할 것을 주라거나 사장이 바빠 만날 수 없다거나 공문을 보내 미리 약속을 하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더라.

 

그래서 기자를 포함한 몇몇 닫힌채널 회원들,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공식적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물었더만, "인터넷 신문은 무서워"라며 신분 밝히기를 꺼린다. 엥? 이게 무슨 소리?

 

"KBS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인터넷 신문이 무섭다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인가요?"라고 되물었더만, "얘기하기 싫다는 의미지.."

 

대답을 회피하는 방식도 가지가지지만, 이런 어이 없는 경우란..참..아직 25년 밖에 안 살았지만 세상에는 정말 어이 없는 인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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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남과 전인권을 아시나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대학로를 찾은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심히 걱정스러웠던 것은 그 분을 만나본 사람은 알겠지만, 백기완 소장 그 자체의 어려움, 불편함에 기인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나이와 연륜을 떠나 수평적 관계에서 인터뷰를 진행해보리라 굳은 결심을 다지고 갔지만, "그래 절은 연습해왔어!! 해봐!!"라는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 뒤늦게 깨닫고 보니 자동적으로 아무런 저항 없이 꾸벅 절을, 그것도 큰 절을 하고 나서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녹음기를 재생해보니, 말시작과 끝 마다 무의식중에 배어나오는 왠 한숨이 그리도 나오던지..쩝..

 

그리고 백기완 소장을 만나기 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 무던히도 아는 척을 했던 것으로 봐서 나름 아부도 지독히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인터뷰 중간 쯤에는 어쩌다 무슨 연유로 이런 권력관계가 형성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냥저냥한 질문들을 던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책에 대해 아는 척하면서 '아부'를 마구 하던 어느 즈음, 귀가 번쩍 뜨이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은  백기완 소장의 호통 덕분이었다.

"혹자는 우리말에 대한 고집이라고도.."

"누가 그딴 소리를 해. 어떤 쌍놈의 새끼가 그런 말을 해. 참세상에서 누가 그런 소리를 해!!"

 

참세상의 이종회 대표를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 것이라고 얼핏 짐작이 되면서, 괜히 이종회 대표가 괜한 누명을 쓰게 될까 싶은 염려가 되던 순간, 나도 모르는 웃음이 그리도 나왔다. 그 순간은 이성이 살아있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감성이 지배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호탕하게 웃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 전인권을 아시나요?" "알지"

"그럼 옷만드는 김봉남은 아시나요?" "그 사람은 잘 몰라"

 

청문회 자리에서도 그토록 밝히기 싫어했던 앙드레김의 본명까지 들먹이며 그들의 존재에 대해 상기했던 까닭은 집회에서, 강연에서 봤던 백기완 소장의 독특한 외모에 대한 나의 인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전인권이 한 방송에서 "머리 스타일 다듬는데, 한시간씩 걸린다"는 말이나, 앙드레김 옷장에 같은 옷 100벌씩 걸려져 있던 것이 생각났는데, 백기완 소장 역시 1시간은 아니더라도 몇 분씩 머리를 매만지고, 검은색 '우리옷'을 몇 벌씩 옷장에 걸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곤 했다.

 

전인권에게 머리스타일이 그를 규정하는 무언가를, 앙드레김이 고집하는 하얀색 옷에서 그의 옷에 대한 철학을 나타낸다면, 백기완 소장이 온몸을 던져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쏟구치듯 내려앉은 머리모양, 하얀색 동정과 검은색 옷색의 대비가 어우러지는 '우리옷'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백기완 소장은 "내 손구락이 빚이여. 나는 그냥 그렇게 머리 빗고, 비누도 사용안해. 사람들이 냄새난다는 말을 하는데, 그게 바로 사람냄새야"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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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혼돈의 시기

분명한 건, 지금이 혼돈의 시기라는 것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길과 걸어야 하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 분명히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작은 바람에도 갈필을 잡지 못하고 주책맞게 흔들리거나, 넘지 말아야 할 산을 꾸역꾸역 어렵게 넘고 허무해하거나, 넘어가지 않을 유혹에도 쉽게 눈길을 보낸다.

 

무엇일까! 그것이.... 내가 하면 너무나 즐겁게 할 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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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휴가를 마치며..

2006년 9월 2일 6시경, 수지 길목에서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고속도로에 있는 죽전 정류장.

 

갑자기 탁한 공기가 엄습한다. 지겹도록 보았던 바다며 산이 갑자기 그리워졌던 것은 바로 코 밑으로 스며드는 이 공기 때문이었다. 2주간의 휴가가 엄밀히 말하면 오늘로 끝이다.

주일인 내일은 또 정신없이 다음날을 준비해야 하므로..

 

무엇을 정리해야 하나,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어야 할까. 또 막막한 그길을 어떻게 달려나가야 할까. 그러나 생각해보니, 들려줄 이야기가 없네..

 

아직도 대학시절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한 못난 인간인지라, 도무지 휴가를 적응하기에도 2주가 짧다는 생각이다. 푸훗.

 

아무래도 나는.....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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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달이 뜨고, 열차가 뿡뿡대는 영화관

처음의 걱정은 영화제와 무관한 것이었다. 불쾌지수를 높이는 여름의 한복판에 서서 더위야 나 잡아봐라 하는 꼴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 까닭이다.

 

예상대로 덮고 꿉꿉하고, 불과 1시간도 견디지 못하고 씻지 못해 발생하는 온갖 괴로움을 느끼면서 하루 86400초, 그 금과 같은 시간의 무게들이 갑자기 온몸으로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견디지...'바다를 지척에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인간은 아마도 나뿐이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나! 야영의 묘미, 한여름 모기 속에서도 마냥 좋았던 낭만은 너무 까막득했다. 

 

그렇게 영화제가 시작되었다. 그나마 어둠이 얼굴에 드러나 버린 짜증을 덮어주어 다행이었다.

 

어눌한 사회자의 멘트, 소소했지만 기술적 더딤..그리고 이어지는 몇 편의 영화들.

그렇게 4편의 영화가 그렇게 지나갔다. 누구의 어떤 영화를, 무슨 생각으로 보았는지 알 수 없게...

 

'저 쑥불이 모기를 정말 내쫒는건가? 최인희는 어디쯤 왔을까? 그래도 이 핵교에 댕기는 아그들은 참 좋은 곳에서 공부한다. 울타리도 없고..그네도 없고..영화제 한다고 없앴나? 저 앞에서 떠드는 꼬맹이들이 이 핵교 학상들인가! 가서 꿀밤한데 먹이고 조용히 하라구 하면 너무 야박하겠지...그래 떠들어라 얼마나 좀 쑤시겠어.......어! 별이다......달이 어제보다 뚱뚱해졌네...난 초승달이 좋은데..이곳 별들과 달은 역시 좀 밝다. 선명하고....서울은 안 그렇겠지..서울에 전화해서 자랑이나 할까..근데 저 영화감독은 왜 주인공이 자살하는 것을 결론으로 했을까? BH는 가희와의 추억의 흔적들을 지우고, 집에 간건가??............................................................................................'

 

그렇게 또다시 영화 4편이 지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영화 5편이 시작되었다. 그쯤 세우고 있던 허리에 긴장을 풀었다. 앞에 비어있던 의자도 끌어다 다리도 올려놓았다. 그리고 자주 고개를 들어 별을 보았다. 뚱뚱해진 반달도 썩 좋았다. '어 기차다. 저 사람들은 기차타고 어디가나?' 멀리서 기차가 뿡뿡 유난히 경적을 울려대며 지나간다.

 

그리고 영화제가 시작되기 전, 사회자가 남겼던 말이 떠올랐다 "정동진영화제 할 때면 비가 그렇게 많이 왔었습니다. 그때는 우산 쓰고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그래도 오늘은 비가 안와 다행이네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제, 레드카펫 위의 배우 송강호의 세련된 액션도 없고 봉준호 감독의 스텍타클한 트릭도 없지만, 별이 있고, 달이 있고, 간혹 뿡뿡대며 지나가는 기차가 있어 가슴을 적시는 영화제다.

 

단, 모기약도 꼭 챙겨야 하지만, 영화상영 중 '주사'는 좀 꿍쳐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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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풍경

강릉에 내리자마자, 낯설은 기운이 느껴졌다. 집이 아닌,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져버린 주변 풍경들이 새삼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약간의 현기증이 일기도 했다.

 

일탈이란 이름으로 종종 익숙한 그곳을 탈출하고 싶다가도 막상 낯선 어느 곳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를 생각하면..다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아득함이 드는 까닭에 이렇다할 도피의 경험이, 타지에서의 생활이 없던 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참 간단하다. 불과 3시간 버스타고 왔을 뿐인데, 이색적인 풍경을 바로 접할 수 있다니..

 

이곳은 왠지 모든게 다르다. 건물모양도, 사람들의 표정도,

아니 지나가는 강아지에게서도 이곳만의 냄새를 찾고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여하튼 눈을 띄고 보면 산이 있고, 뒤를 돌면 바다가 있는 이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갑자기 낯익음이 엄습한다. 어렴풋 꿈에서 본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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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련의 여주인공?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다.

안정한 인간관계에 더없이 불안한 나는 청승과 비련의 여주인공을 자처하고 나선다.

참...살면 얼마나 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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