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말을 줄일까??

요즘 말을 너무 많이 하나? 라는 생각이 끝에는 곧바로 

말을 줄이면, 이런 생각을 덜 하게 될까??라는 생각이 이어진다. 또 이어지기가 무섭게 

근데 말을 왜 줄여야 하지?라는 물음이 되돌아온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말을 줄이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내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 침묵으로 일관했고, 이를 극복해보자 노력한 결과 난 수 많은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많은 생각들을 말로 쏟아내려는 것을 극복해야 하는 또다른 노력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내가 한물 갔다고 생각할 때

내가 한 물 갔다고 생각할 때, 그렇다 나는 내가 꽤 잘 나갔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두고 꽤나 재수없어 하는데, 고백컨대 그 누구는 내 주변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는 사실 별로 고려하지 않는다.

 

내 전성기 구분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구분되는 경우, 그러니깐 다분히 변명적이지만 사실 내가 꽤 잘 나가고 안 나가고는 내 스스로 정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어이쒸 구차하다. 결국 나는 주변의 재수없어함을 나름 고려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튼 각설하고, 내가 꽤 이성에게서 관심을 끄는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뭐 다들 이 때를 그리워하지만, 나의 그리움이 그 시기에 꽂혀 있다기 보다, 요즘 내가 한 물 갔다고 생각할 때는 이와 다른 맥을 갖는다.

 

내가 한 물 갔다고 생각할 때는 여전할 줄 알았던 이성의 관심이 똑 끊겼을 때가 아니라 아무나 들이댈 때다. 그 아무나의 기준이 외모나 나이 등을 외적 조건일 때 몇몇 인간들은 잘못된 기준이라고 따져물을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그래 나 그런 인간이다"라고 항변하고 싶은 심정은 '같은 일반부라고 다같은 일반부는 아닌거 아닌가'라는 말로 모두다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밝히건대 이번 경우는 이른바 헌팅의 사례에서만 접근하겠다.^^)

 

내 고등학생 때는 그래도 한두어살 많은, 교복입은 타 학교 학생이었다. 대학생일 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두어살 많은 선배이거나, 대여섯살 많은 일반인이었겠지. 그들의 관심 표명은 이런 방식다. "저...기요..시간있으세요??", "저.....기요....남자친구....있으세요?" 내가 이런 말 하기 참 쑥쓰럽고, 이렇게 접근하는 남자들의 꿍꿍이가 뭔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 때는 나름 로맨틱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마다 나는 샷다마우스정신으로 일관했다. 이유는 사실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라서인데, 가슴이 떨리도록 첫 눈에 내 스탈이여도 도망가고 싶게 내 스탈이 아닌 경우에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게 다 샷다마우스정신이 있어서였다.

 

 "아니요"라는 대답이나 남자친구 여부에 대한 대답 등 거절을 표해도 남자들은 더욱 들이대는 까닭이다. 물론 다 그렇다고 할 수 없고, 그런 태도 때문에 이적지 제대로 남자를 사귀어보지 못했다면 그냥 내 팔자려니 생각하겠다.    

 

일반인이 된 나는 이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에게 관심을 기대할 수 없지만, 다 같은 일반부가 아니지 않은가!! 

 

며칠전 지하철 시청역, 표를 끊고 누가 뒤에서 "저기요"하고 부르더란 말이다. 그 '저기요'라는 말에 왜 내가 뒤돌아봤는지는 나역시 곧바로 후회했으므로 설명하지 않겠다.

 

"여기서 프라자호텔은 어느 쪽으로 나가나요?" 40대 중반에서 후반정도로 보이는 약간 머리 숱이 없으신 아저씨, 이들은 수법은 아주 저열하다. 그리고 솔직하지 못하다. 꼭 말을 하게 만든다. 짜증.

 

내 얼굴은 착하게 말한다고 해도 성의없어 보인다. 40대 중반을 넘어가면 이 얼굴이 소용이 없는 모양이다. "예,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되요"

 

"아니요. 프라자호텔 별관이요" 이때부터 구질구질해지기 시작했다.

"(별관이 있던가) 여튼 이쪽으로 나가 보세요"

 

"아니요. 프라자호텔 별관을 가려는데..."

그때 샷다마우스정신이 떠올랐다. 그제서야..우쒸.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니깐 그제서야 명함을 내밀면서 연락하란다. 왜??

도대체 니가 원하는게 뭐야!!

 

몇 달전 어떤 인간이 떠올랐다. 국방부 취재갔을 당시였는데, 당시의 나의 옷차림을 설명하게되면 꼭 내 탓에 그런 인간이 꼬였다는 논리에 넘어가게 될테니 생략하고, 그 인간은 약 40대초중반으로 보였으며 셔츠를 반쯤 풀어해치고 나에게 다가왔다. 

 

더운 여름 짜증난 탓도 있지만, 그 당시에도 나의 샷다마우스정신은 계속 되었다. 그때 되돌아온 말은 "벙어리인가봐"였다. 나 참.

 

이런 편협한 구분에 대해서 항의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래도 푯말을 등에다 꼽고 다녀야 할 모양이다.

 

40대 접근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분노를 감추지 않는 기자들

부쩍 언론노조가 주최하는 기자회견을 많이 다닌다. 참여정부 들어 대언론 대응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언론 내부에서 사측과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언론들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 싶다.

 

시민의신문은 시민사회의 뜻을 모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린 상태고, 시사저널은 어제(6일) 금창태 사장의 긴급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또다시 쟁점이 진실공방으로 맞춰져가고 있는 모양이다.

 

이를 취재하는 마음은 남다르다. 취재원을 만나는 만큼 기자들을 접하는 기회도 많고, 첫 취재에 임했을 때만해도 타 기자들의 모양새를 흉내내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그들에게 느꼈던 바는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을 법한 '냉철함', '절제됨' 등 좀처럼 분노하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건조하고 어쩌면 지루한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운동방향과 이념을 떠나 최근 노동자로, 투쟁가로 만나는 기자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지만 새롭고 신선하다.

 

6일 금창태 사장의 긴급기자회견장, 곳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그 때는 몰랐지만, 시사저널 기자들이자 조합원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는다. 헛웃음을 난발하거나, 심지어 기자회견문을 그 자리에서 보란 듯 찢기도 한다. 그리고 참담해했으며, 배신감에 부들부들 떤다.

 

즉시 반박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정리된 글로 만나던 그들은 여과없이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말로 각자의 분노를 표출한다. 재밌는 것은 결국 지면으로 실어질 때는 어떻게 실릴지 모르겠으나, 지향과 관계없이 이를 취재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암묵적 연대가 느껴진다는 것.

 

구분은 어렵다. 그들은 과거의 삼성관련 기사를 실을 때 사측과 매번 마찰을 빗었다고 한다. 인쇄소에서 기사 삭제라는 사건으로 발발되었지만, 조합원이었을 때는 물론이고 직장폐쇄 이전 혹은 그 훨씬 이전부터 불려졌을 기자였을 때도 활동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사태 발발 230일째, 전면 파업 돌입 약 20여일, 기자들의 분노가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 그들도 그리고 우리들도.

 

'기자인가 (미디어)활동가인가'라는 외부의 애매모호한 기준과 함께 흔들리는 자기규정 속에서 고민했던 나는 결국 답은 찾지 못했지만 아니 않았지만, 왠지 앞으로는 분명치 않은 정의 때문에 고민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찹싸알떠억 메밀묵

요즘은 '사람소리'를 듣기 어려운데, 그 하나가 밤에 출출할 때 멀리서 울려오는 "찹싸알떠억~메밀일묵" 소리다.

 

내가 이 소리를 들은 것이 약 2번 되는데, 한번은 선릉역 살 때니까 약 6살가량, 또 한번은 일원동 연립주택 2층 살 때니깐 97,8년 고2 정도가 되겠다. 그때 들었을 때도 '야 저 소리 정말 오랫만에 듣는다'고 생각했으니 그 당시 만도 오래된 소리 중 하나였을 뿐더러 주변에 편의점 등 굳이 찾아오는 야식이 아니더라도 찾아다니며 야식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그날은 굳이 이층에서 창문을 열고 '아저씨, 찹쌀떡 주세요' 하고 엄마랑 2천원어치 그닥 즐기지 않는 '추억의 찹쌀떡떡떡'하며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여전히 의문, 찹쌀떡과 메밀묵은 왜 늘 함께 다니는 거지? 공통점이라고는 세글자라는 것, 둘다 곡류라는 것 뿐인데 말야)

 

지역마다 억양이 다르다고 한다. 내가 살던 강남에는 '찹'에 한박자 '싸알'로 한박자 반 그다음에 '떠억'을 간결하게 처리하면서 한박자 반 그리고 숨 안쉬고 반박자 씩 '메밀묵~'이었다.

'세탁'은 요즘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도 종종 듣는데, 많이 늘어진다. '세에에탁악악악'

 

사실 내가 젤로 좋아하던 소리는 '소금이요 소금'이었다. 이는 신당동 외할머니댁에 가면 많이 들었는데, 식당을 하시던 외할머니댁의 이른바 식당 골목을 리어카로 누비며 목을 약간 누른 소리로 '소금이요소그음~'하면 할머니가 나가서 한두어대박씩 사곤했다. 소금을 팔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취권에 나오는 도사같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제 오랜만에 유사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전달력은 예전과 같지 않다. 전달력이 떨어진다. '오~방~떡~'인지 '오~개~떡~'인지 우선 분명히 들리지 않았고, 목소리의 무게감도 예전만 못했다. 그렇더라도 반갑다. 간간히 들려오는 차소리며 오토바이 소리와 섞여 들려오며 멀어져가는데 '소음'을 상쇄하는 느낌마저 든다.

 

'근데 먹고싶을 땐 어떻게 부르지? 휴대폰을 해서 배달을 시켜야 하나' 

아파트에선 좀처럼 사람 만나는게 쉽지가 않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치, 인간없음

내 주변의 대다수는 부인하겠지만, 나는 의외로 "마음이 여려서 큰 인물이 되긴 힘들겠다"는 이야기를 아주 가끔씩 듣는다. 그들의 또 대부분은 '인생 좀 살았다', '세상 좀 안다'고 하는 중년의 남성들. 그러니깐 관상학적으로 내 까푸러진 눈에서 눈물이 많거나 인정에 흔들리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고 고로 눈물 많고 인정에 약한 인간은 통계적으로 큰 인물, 그러니깐 헤게모니 싸움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야기겠다. 아주 거칠게 이어붙이자면.

 

관상이던 사주던간에 귀뜸으로 잘 듣지 않는, 아니 사실 관상이던 사주던간에 내 성에 안차서 그닥 귀뜸으로 듣고 싶지 않아하는 나로써는 퍽이나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뒤구녕으로는 슬쩍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은 30%의 불안과 60%의 권력욕, 10%의 부인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굴욕감에서 온다.

 

이후 즉각적으로 연상에 돌입하는데, 이는 주로 아주 왜곡된 방식이다.  

'그래 조희주는 애초에 될 놈이 아니었나!', '지난 번에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지던 지니는 될 놈이인게지'..... 

 

요즘 자주보는 '하얀거탑'이라는 드라마도 연상의 꼬리를 문다. 장안에 화제라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은 딱 하나, 바로 '정치'.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드는 한가지 이유는 선악구도의 맥락이 없다는 것이다. 외과과장 자리에 눈이 멀어 갖가지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 장준혁이란 인물이 딱히 '악'한 인물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실력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노민국이란 인물이 그렇다고 '선'한 캐릭도 아니다. 권력에는 관심이 없고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휴머니티를 발휘하는 유일한 캐릭인 '최도영'은 이 드라마의 라인에서 벗어나 있다.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지, 뭐 또 메세지가 없을 수도 있지만, 종국에 권력을 잡는 인간이 '선'으로 분류되는 '주몽'이나 '대조영' 같은 드라마보다 시대적 가까움 만큼이나 현실에 근접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곡된 방식의 연상은 생각보다 방향을 완전히 왜곡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정치'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으로 들어간다면 또 사회과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인문과학적으로 정치경제학적으로다가 개념은 무수히 다양해지겠지만, 필자가 무식한 지라 그저 사전적 의미로만 해석한다면, '(인류를) 바르게 이끈다(다스린다)'는 '정치'에는 필연적으로 인류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제 100일!

 

요즘 서준이는 자신의 주먹을 쳐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오래 보지는 않습니다. 주먹을 눈 높이정도로 들어서 약 5초간 쳐다봅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이 정도되면 주먹에 힘이 빠지나 봅니다. 슬슬 머리 뒤쪽으로 주먹이 넘어가지요. 눈은 미처 따라가지 못합니다.  덕분인지 요즘 부쩍 초점을 잘 맞춥니다. 사람 눈도 잘 쳐다보고..

이제 곧 100일입니다. 언니말로는 키나 몸무게, 자라는 속도 등 평균수준이라고 하네요. 간간히 농반진반으로 '우리 서준이 천재가 되려나봐' 라는 말을 던지곤 하는데, 제 보기엔 그러한 기대는 일찌감치 버린 것으로 보여 다행입니다. 

그래도 제 보기엔 얼굴은 '장동건' 수준으로 보이는데 말이죠 ^^

 

요즘에는 색색깔 모빌을 오래보고 웃기도 합니다. 센 색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뭐든 필요한 것을 사갈 때 알록달록한 색깔이 촌스러워 제가 보기 좋아하는 색깔로 고르는데, 이제 부터는 서준이의 '입맛'을 고려해야 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도 서준이는 먹고 잡니다. 싸기도 하고 간간히 주먹도 보겠지요. 100일 지나면 엄마들은 조금 편해진다는데, 언니는 이제부터 걱정 시작이랍니다.

이런 언니에게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도 고마워해"라고 얘기하는 것도 육아의 경험이 없는 속편한 이모의 알맹이 없는 이야기라는 것도 슬슬 알아갑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투쟁!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투쟁!!

참고로 이 친구의 관계를 밝히자면, 조희주 씨의 손자이지요.

안 닮았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치'와 '눈치' 사이

사회생활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눈치'에 이어지는 '정치'다.

어줍잖게 말수는 늘어가고, 이 정도 멘트는 날려줘도 되겠다는 싶은 '눈치'가 들어 입 밖으로 뭔가를 내뱉기 시작하는 순간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와 '눈치' 사이?

그건 '존재감 상실'은 아닐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현재 코스, 위기감

6일 민주노동당노동조합 출범. 창립총회부터 출범식에 이르기까지의 총 3시간여의 시간동안 나는 적잖은 소외감(?)을 맛보아야 했다.

 

그것이 아무리 취재였더라도 두루두루 목격되었던 그들의 얼굴 속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또 내가 맛보지 못한 '뭔가 해냈다'는 가슴떨림과 성취감이 감추려해도 감춰지지 않아 반쯤 통제된(?) 기쁨 아니 그를 넘어선 희열, 감격, 들이 여기저기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합의된 바 없는(?) 공동의 감정이 공유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조직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이유는 달라도 나도 조만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기대도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단계적 순차가 있다면 현재의 감정은 위기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카를 소개합니다~

 

요즘 신경쓰고 있는 놈입니다.

고작 70여일 된 놈인데 보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계획이 있다'고 하셨다는데 여튼 사람노릇할 때까지의 계획은 없으셨나 봅니다.

이쁘긴 한데...

육아에 대한 철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