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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5
    '공짜' 리눅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I.(2)
    해민
  2. 2004/08/04
    힙합과 리눅스
    해민

'공짜' 리눅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I.

'공짜' 리눅스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I. 그누/리눅스(GNU Linux)는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에 포함되는데, 영어로 Free는 공짜의 의미와 자유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공짜 좋아하면 머리가 벗겨진다.'는 속담이 있지만 프로그래머가 아니고서야 리눅스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공짜‘라는 의미보다 더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적어도 필자는 그렇다. 필자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을 더 좋아 한다. 그냥 자유소프트웨어는 공짜라고 주장하고 싶지만, 많은 자본들이 리눅스를 비롯한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주장이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자본은 이윤이 남기 때문에 참여할 것이며, 이윤이 남는다는 의미는 어떤 면에서는 공짜가 아님을 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안보기관인 NSA도 보안을 이유로 리눅스에 지원하고 있다고 하니 더욱 조심스러워 진다. 1998년 오픈소스 이니셔티브(Open Source Initiative, OSI)를 창설한 에릭 레이몬드와 같은 사람들은 자유소프트웨어를 자본주의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도구로 보고 있다. 사실 에릭 레이몬드는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목적에 맞는 운동을 새롭게 시작했는데, 그것이 오픈소스 이니셔티브(OSI)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정의와 자유소프트웨어 정의 사이에 문헌상 차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자유소프트웨어는 '자유'를 오픈소스는 '생산의 효율성'을 더 강조한다. 그러한 OSI에는 자본가들을 위해 자유소프트웨어를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당근! 레이몬드는 당연히 자유소프트웨어를 공짜라는 개념과 연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이용하는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 사람들이 공짜라는 개념에 인색하다면, 자유소프트웨어가 공짜로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사실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 사람들은 자유소프트웨어의 자유를 공짜라는 의미로 사용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 소프트웨어"의 핵심은 구속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의 자유에 있는 것이지 무료라는 금전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도하는 이러한 자유의 의미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료 맥주(free beer)"가 아닌 "언론의 자유(free speech)"와 같은 예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유소프트웨어란 무엇인가?)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을 창설한 리차드 스톨만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영감을 1776년 미국 독립선언의 이상인 자유, 공동체 그리고 자발적 협동 정신에서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정신은 ‘자유 기업’과 언론의 자유 그리고 자유소프트웨어에 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스톨만은 '자유 기업'까지 언급하면서 Free는 공짜가 아니고 자유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톨만까지 이렇게 주장하니 난감할 뿐이다. 그렇다면 '자유소프트웨어=공짜'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일까? 또 그렇게 주장해서도 안되는 것일까? 또 공짜라고 주장하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면 아직 공짜의 희망을 버리지 말고 자유소프트웨어 정의부터 한번 뒤져 보도록 하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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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리눅스

힙합과 리눅스 김영식 / 정보공유연대 IPLeft yskim@jinbo.net 깊 숙한 골목, 어두운 지하실 공간,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두 대의 턴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랩, 그리고 브레이크 댄스! 이것은 힙합하면 떠오르는 광경일 것이다. 80년대에 힙합은 미국의 어느 뒷골목 한 쪽 귀퉁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고, 불과 몇 년 만에 빌보드 차트와 방송을 장악할 만큼 괴력을 발휘했다. 정규교육을 재대로 받을 기회가 없었던 미국의 빈민촌 흑인들은 음악이나 악기를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한 그들이 가장 리듬감 있는 음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그들은 악기나 오선지 없이 기존의 음악을 발췌하여 힙합 음악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기법을 ‘샘플링(sampling)’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두장의 LP판을 동시에 틀면서 원하는 부분을 연결시켜(샘플링해서) 비트를 맞추며 즐겼고, 1980년대 중반에는 디지털 샘플러가 등장하면서 힙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보통 유명 힙합 음악은 수천 개의 소리를 샘플링하여 만들어진다. 물론 샘플링이 전부가 아니다. 주요 기술에는 턴테이블에 올린 LP판의 속도를 달리하는 디제잉(DJing), 컴퓨터의 전자 사운드를 음악적으로 배치하는 미디(MIDI) 등이 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힙합을 작곡하는 사람을 작곡가라고 부르지 않고 ‘프로듀스’라고 부른다. 비극은 이들이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작됐다. 거의 모든 음악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음반사들은 힙합 그룹들을 고용하였다. 이 때부터 저작권 소송분쟁이 시작됐는데, 유명한 힙합 그룹 드 라 소울(De La Soul)도 “You Showed me”의 밴드 Turtles와 법정싸움에 휘말려 170만 달러를 배상해야 했다. 저작권은 힙합 그룹에게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음악을 둘러싼 권리에는 저작재산권과 저작인접권이 있다. 저작재산권은 말 그대로 음악에 대한 소유권이고, 저작인접권은 음악 실연자, 음반을 제작자 혹은 방송사업자 등이 갖는 권리를 말한다. 뻔뻔하게 다른 사람의 음악을 모두 표절한 사람은 한 사람의 저작재산권만 침해한 것이다. 그러나 수천 곡을 샘플링해서 만든 힙합은 수천 명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그리고 저작재산권과 저작인접권을 모두 침해한 것이 된다. 그렇다면 힙합 그룹들이 선택할 길은 몇 가지 없는 듯하다. 음원을 독점하고 있는 거대 음반사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소유권이 없는 음악만으로 샘플링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힙합음악을 그만두어야 한다. 미국 흑인 민중들의 독특한 음악 생산 방식은 저작권에 의해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을 이끌고 있는 리차드 스톨만이 한국에 왔을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마치 (저작권이라는) 지뢰밭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힙합 뮤지션들도 같은 기분일 것이다. 힙합 음악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단지 스스로 즐기기 위해 기존의 음악을 샘플링해서 새롭게 만든 것이다. 그누-리눅스(자유소프트웨어)도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서로의 프로그램을 샘플링하며 새롭게 만든 소프트웨어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필요한 것(즐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생산하는 것이다. 힙합의 자유로운 정신과 리눅스의 자유는 여기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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