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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의 빅뱅, 제로존 이론(?)
이랜드 사태 등 비정규직 투쟁으로 정신없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지난 8월 <과학동아>도 아닌 <신동아>는 과학 역사상 엄청난(?) 특종을 발굴했다. “한국 재야 과학자의 제로존 이론, 세계 과학사 새로 쓴다!”는 제목으로 “길이, 온도, 질량, 시간의 무차원화… 소립자에서 우주까지 대통합”한다는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이 잡지는 제로존 이론을 “바벨탑 이전의 세계로 복원"하고 "인류 역사에 빅뱅 초래"할 만하며, "노벨상 0 순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추어(그들은 ‘재야’ 과학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과학자 양동봉씨(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장)에 따르면, 제로존 이론으로 질량(㎏), 시간(초), 길이(m) 등 7개 기본단위를 숫자로 변환해 모두 통일시킬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차원이 다른 숫자로 바꾸어 더하거나 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과학이론을 숫자로 통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기도 한 피타고라스를 연상케 한다.
이 이론에 대한 지지층도 만만치 않다. 전 KIST(한국과학기술 연구원) 부원장이자 단국대 부총장(전기전자공학)인 오명환 교수는 “양원장의 발견은 (중략) 물리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고, 제주대 교수 이현주 교수(원자핵 공학)는 “기존 패러다임의 중대한 전환을 초래할 것이다. 노벨물리학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서울대의 문병로 교수(컴퓨터공학부)는 “그가 발견한 방법은 매우 신기하고 놀랍다.” 한국생산기술 연구원 이상목박사는 “산업적 가치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실험하지 않고도 결과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활동의 90%는 사라지고 진짜 필요한 실험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경제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아울러 정보, 컴퓨터, 재료, 소립자, 생체공학 등에 끼칠 영향은 ‘엽기적’일 것이란 표현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지지자들의 발언은 더 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지지 발언이 이쯤 되면 제로존 이론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왠지 줄기세포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제로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 중에 물리학자는 한명도 없다.
물리학계에서는 사태 진압에 나섰다. 한국물리학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제로존이론'을 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양 원장과 그의 지지자에게 3차례에 걸쳐 논문 제출을 요청했으나 논문을 받지 못했“으며, 양 원장이 논문을 투고한 '유러피언 피지컬 저널 C'의 편집자로부터 논문 수준이 심사에 회부하지 못할 정도로 낮아 편집자가 즉각 `게재 불가(reject)' 판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제로존 이론과 인터넷
양 원장 측은, 물리학계가 검증을 위해 논문 제출을 요구했을 때, “유럽 물리학회지에서 현재까지도 심사 중인 논문을 공개한다는 것은 논문심사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어느 나라에서든 심사 중인 논문을 심사종료 전에 물리학회 등을 통하여 미리 공개한 사례는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들 중 많은 수는 논문지에 발표하기 전에 인터넷 arXiv(http://arxiv.org)에 올려 토론하고 논쟁한다. 때로는 arXiv에 올려 많은 비판을 받고 논문지에 실리기 전에 스스로 철회하기도 한다. arXiv의 특성상 표절이나 거짓 데이터를 올리기 힘들다. 인터넷에 올라온 논문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해서 오랜 시간 동안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조작된 데이터를 올렸다가는 그 흔적이 두고두고 남기 때문에 좁은 과학기술계에 살아남기 힘들다.
양 원장 측은 재야(?) 과학자답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류에 대한 저항에서 찾기도 한다. 주류 과학계는 그물망처럼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기존 이론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다. 주류이론에 도전하는 경우 논문지에 실리지 못하거나 왕따 당하기 쉽다. 양 원장 측도 같은 이유로 물리학계의 논문 검증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밀주의는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은 해결책을 주기도 한다. 한 예로 양자역학 전문가인 Shahriar Afshar 박사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을 부정하는 실험 방법을 제안한 바 있다. 보어는 음악에서의 바흐와 같이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입지적인 존재이다.
빛은 입자적 특성(국소영역에 모여 있는 특성)과 파동적 특성(전 공간에 퍼져있는 특성)이 모두 관측된다. 상보성 이론이란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모순적 특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 상보성 이론에 반하는 이론이란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실험에 관한 것이다. 참고로 자연 변증법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상보성 이론에 반대하고 있다. 자연 변증법에 따르면 모순은 물질 내부에서 발생하고,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관측되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주장은 좌파 내에서 맑스의 이윤율저하의 경향에 반대하는 규모로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Shahriar Afshar 박사는 자신의 논문과 제세한 실험 결과를 웹 블로거에 올려 공개토론을 제안하였고 (http://irims.org/blog/index.php/questions), 이를 통해 오히려 주류 과학계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사건들이 반복될까?
양원장 측은 그들의 이론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표준 & 원천기술 국가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고, 21세기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논문지보다 신동아에 먼저 발표한 이유 역시 해외 유명 학술지에 제출된 “논문의 게재 승인을 계속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쳐 핵심 정보가 관련 외국학자들에게 유출되는 위험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러한 종류의 사건들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200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김현탁 박사팀이 노벨상을 수상 가능성이 높은 금속 절연체 이론을 개발했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술로 1천억 달러(한화 약 100조원)로 추정되는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장 보도였음이 드러났다. 30조 이상의 국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측된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도 또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유지가 발견되면 누가 빨리 점유하느냐 경쟁을 해야 한다. 배타적 소유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안정적인 소유권이 확보될 때 까지 비밀스럽게 작업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이미 인류의 공동자산이 아닌 한 국가 혹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배타적 소유가 확보될 때까지 숨기는 풍토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는 제로존 이론의 아류를 반복 생산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에 투자 받지 못하는 현 과학 기술계의 현실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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