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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옥~꼭 숨어라. 노동자가 보인다.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은 이제 일상 속에 필수품이 되어가고 있다. 길안내 뿐 아니라 과속 범칙금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있다. 휴대폰의 위치기반서비스(LBS: Location Base Service) 등 요즘은 GPS를 내장해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GPS는 내브스타(NAVSTAR : Navigation Satellite Timing and Ranging)라는 위성을 통해 위치를 확인한다. 이들 위성은 2만 200km의 지구 상공에 있는 6개의 원궤도에 원자모형처럼 분포되어 있다. GPS수신기로 3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정확한 시간과 거리를 측정하여 3개의 각각 다른 거리를 삼각 방법에 의하여 현 위치를 정확히 계산할 수 있다. 민간용의 경우 수평·수직 오차가 10∼15m 정도이며 속도 측정 정확도는 초당 3cm정도나 되며,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이 천리안(千里眼)의 GPS 기술은 많은 것을 찾아 준다. GPS 칩이 내장된 목걸이와 반지 등을 이용해 잃어버린 아이나, 치매 노인 그리고 애완동물을 찾아준다. 자동차, 항공기, 선박에서는 길을 찾아 주고, 생태연구를 위해 희귀동물을 추적해 주기도 한다. 심심찮게 자살을 막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또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감시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플로리다 주(2005년)와 위스콘신 주(2006년)에서 성범죄전과자 'GPS 발찌'를 채우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GPS와 같은 첨단 정보 통신 기술을 이용한 상품은 최근 들어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CCTV, 인터넷도 있고, RFID 및 IC카드도 있다. 이들 기술들은 점점 더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것을 찾고 또 감시하게 설계된다.



 

태생의 한계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발사한 내브스타(NAVSTAR : Navigation Satellite Timing and Ranging) 위성은 군사 목적이었다. 냉전이 한참인 1982년에는 핵탐지 장치를 내장했고 실제 걸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1990년대 들어 내브스타 위성 수가 24개로 늘어났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GPS 뿐만 아니라 CCTV, 몰래카메라, 전자신분증, 생체인식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인터넷도 시작은 군사 기술이었다. 1969년에 미 국방성은 알파네트(ARPANET)라는 컴퓨터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는데, 연구원들과 군납업체간의 정보공유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역시 1990년대 이후 대중화되었고 아주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었다.


잘나가는 첨단 군사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려는 이유는 냉전 종식이 주요한 원인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을 무마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첨단 기계와 같은 고정자본의 비율을 늘여왔다. 그것이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1970년대의 과학기술 혁명이었다. 그러나 고정 자본의 확대는 생산을 용이하지만 상품의 가치도 하락시켜 장기적으로 이윤율을 감소시켰다. 이로 인해 자본 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치열한 경쟁 속에 자본이 살아갈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방법이고(요즘 유행하는 말로 블루 오션(Blue ocean전략)이라한다) 나머지 하나는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Red ocean전략)이다.


인터넷, GPS 등의 첨단 정보 통신 군사 기술은 소위 블루 오션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들 첨단 술이 시장에서 성공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인터넷으로 불어온 신경제의 거품, 이어지는 나노 기술과 황우석으로 대표되는 바이오 기술의 거품만 보더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들 기술은 점점 레드 오션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런 첨단 기술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보다 확실한 고객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고객은 일반 노동자-민중, 자본가들, 그리고 국가(기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들 중 자본가와 국가는 군사기술의 특징을 매우 필요로 하는 확실한 고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은 고객의 필요(needs)에 반응한다.


첨단기술의 고객 I : 국가-정부


 국가라는 개념 자체에서 한 계급에 대한 독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누구도 완전히 민주화할 수 없다. 국가가 정보 통신 기술의 고객이 되는 경우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새로운 시장을 위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감시하기 위해서 이다.


 전형적인 모습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미국에서 볼 수 있다. 최근(2006년 10월) 부시 정부는 테러리스트 활동의 패턴을 찾기 위한다는 구실로 블로그와 E-mail에서부터 정부 문건과 보안 문건에 이러기 까지 광범위한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2001년 9·11테러 이후 소위 '애국법'을 통과시켜 미국 정부의 감시권을 인터넷으로까지 확대 시킨바 있다. 그 결과 연방수사국(FBI)은 법원명령 없이도 인터넷 사용자들의 진짜 신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미국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 : NSA)주도하에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의 국가첩보 기관에서 ‘에셜론(Echelon)’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971년부터 도입된 이 에셜런은 전 세계 전화, 이메일, 인터넷 다운로드, 위성송신 등을 포함하여 매일 30억 통신을 가로챌 수 있으며 첨단 장비를 도입해 가장 핵심적인 정보만 걸러 수집할 수 있다고 한다(http://www.echelonwatch.org/) 본래는 테러리스트들을 겨냥해서 만들어진 에셜론은 그린피스나 영국에 있는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같은 그룹들을 모니터하는데도 사용되고 있다.


일본도 지난 2003년부터 총 400억 엔(약 4천억 원)을 투자해서 `주민번호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이 제도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11자리수의 번호를 부여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의 컴퓨터와 연결해 국민정보 관리를 일원화하였다. 


정보 통신 기술이 일찍부터 뿌리 내려온 한국의 경우는 이 분야에 있어서는 선진국(?)이다. 1968년 박정희 군사 정권 때부터 손가락 10개 모두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각 개인마다 13자리의 고유번호를 할당하는 주민증 제도를 도입하였다. '간첩 색출'을 위해 도입하였다고 하지만, 이후 독제 정권에 저항하는 노동자-민중을 색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군사독제가 사라졌다는 지금 순간까지도 이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인터넷 등 정보 통신 기술을 발판으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1995년 김영삼 문민정부는 기존의 주민증 제도와 정보 통신 기술이 결합하여 노동자-민중의 개인 정보를 전자적으로 통합관리하기 위한 전자 주민 카드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이때 발표된 전자주민카드에는 주민등록증, 주민등록 등초본,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정보, 인감 및 지문 등 6개 분야 총 42개의 정보가 저장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자주민카드를 반대했던 김대중 대통령(국민의 정부)이 당선되자 이 사업은 전면 백지화 되었다.


국민의 정부 역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으로 교체하면서 또다시 10손가락 지문 날인을 강요하였고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려 하였다. 그리고 2001년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구축해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학부모와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시 도 교육청으로 이관해서 통합관리하려고 한 바 있다. 교직원 노동조합과 인권 사회단체에서 강력하게 반발하자 2003년에 교육, 학사 입(진)학 등의 분야를 분리하고 나머지 24개 영역을 NEIS로 운영하기로 합의하였다.


 참여 정부에 와서는 오히려 과거 전자주민 카드 부활을 꾀하고 있다. 노무현 참여 정부는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주민등록증 발전모델(2006년)’을 발표하면서, 현재의 주민등록증을 IC칩을 장착한 스마트카드로 전환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행되면, 지하철, 버스, 현금카드 인출기, 주민등록 등초본 발행기 그리고 병원 등 현금거래를 하거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는 모든 곳에 스마트카드 리더기가 설치될 것이다. 이 스마트카드 리드기는 중앙의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기관(예를 들어 경찰, 공무원)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특정 개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다.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될 때의 위험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가 끈질기게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이유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위험수위이거나 이 자본주의 시스템이 더 이상 노동자-민중의 안정된 생존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자본이 신기술로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안정적인 발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전자주민증의 장당 가격은 1만 원 정도이므로 2009년쯤 발급대상 인구를 4000만 명으로 보아 소요예산을 5000억 원가량으로 예측하고 있다. 신규발급과 재발급을 포함하면 해마다 200만장 정도가 새롭게 필요하므로 끊임없이 매출을 일으키는 신통한 요술방망이인 셈이다. 전자주민카드의 필요를 강하게 주장하는 곳은 한국조폐공사 컨소시엄인데 여기에 삼성에스디에스 등 대기업이 두루 참여하고 있다.


첨단기술의 고객 II : 공장-자본가


공장(작업장)은 노동자-민중들이 삶의 중요한시기를 보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장이라는 곳은 좀 이상한 특성을 가진 공간이다. 21세기에 부자 세습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하며, 중요한 의사 결정권은 한 사람, 혹은 돈을 주고 구입한 표(일명 주식)가 많은 사람에 의해 독단적으로 결정된다. 불행히도 노동자는 이러한 고약한 공장(회사)에서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자유밖에 가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자유 의지(?)'대로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상품처럼 판매해야 한다.


문제는 노동자의 노동력은 일반 상품과 같이 구매되지만, 인간과 분리할 수 없는 독특한 상품이며, 계약된 시간동안 노동량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자본가는 보다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노동력을 뽑아내고자 하지만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재충전하며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추구하고자 할 것이다. 이로 인해 공장 속에서 자본가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를 '통제'하고 '관리'할 필요성(욕구)을 느끼게 되고, 첨단 감시 기술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


2004년에 미국의 모바일 트래킹 업체인 조라(Xora)는 넥스텔 GPS폰 용 소프트웨어를 선보였다. 당시 1600여개 기업들이 이 서비스를 신청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된 적 있었다. 이 서비스는 직원이 허용구역을 벗어나 술집이나 공원 같은 제한구역으로 진입할 경우 사무실에 경고를 보내는 기능이 있다(ZDNET 2004년 10월 1일) 미국의 경우 GPS 기능이 가능한 휴대폰을 7천여 개 기업들이 구매해 수만 명의 직원들에게 제공한 것으로 밝혀졌으며(USA Today 2006년 8월), 해마다 감시 장치를 도입하는 기업들은 늘어나고 있다(표 1참조)

부문

항목

2001년

2005년

컴퓨터

웹사이트 감시

63%

76%

컴퓨터 파일감시

36%

50%

E-mail감시

47%

55%

전화

전화사용 시간 번호감시

43%

51%

 

녹음된 내용감시

12%

22%

CCTV

노동자 

15%

16%

 

 표 1. 2001년과 2005년 노동자 감시 비교. 자료:American Management Association. 2001년 435개, 2005년 526개 기업 대상

 

대규모 공장 제도가 발전하던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장인의 기질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숙련 노동자를 통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에게는 기술 숙련도만큼 상당한 권한과 작업상의 자율성이 인정되었다.


오늘날과 같이 공장이 "병영적 규율이 만들어져 이 규율이 감독 노동으로 발전한"공간이 되어 버린 것은 19세기말 테일러주의(Taylorism) 노동관리 방식과 포드 주의 생산 방식이 등장하면서 부터이다. 이때부터 소위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 관리'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은 보통 사건을 분석할 때 그 원인을 독립적인 최소단위로 나누어, 각각의 특성을 분석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원인을 그 최소단위로만 해석해 버린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위장이 나빠서 찾아온 사람에게 위장과 인간을 분리해 생각하고 다시 위장에서 박테리아균을 찾아낸다. 그리고 대응책이란 단지 그 박테리아를 없애는 일이다. 그러나 환자는 의사가 처방한 약만 먹다 간이 나빠져 다시 병원을 찾게 되거나 내성이 생긴 변형된 박테리아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과학이란 그 박테리아가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그 속에 환경적 사회적 영향은 없는지, 그리고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한 처방이 다른 장기에는 어떤 영향이 있는지 등은 복합적인 분석을 필요로 한다. 노동자의 노동을 일면적으로 분석한 테일러 주의도 마찬가지의 부작용을 낳게 된다.


테일러주의의 과학적 관리의 핵심은 구상과 실행으로 분리(소수 관리자에게로의 모든 지식과 정보의 독점)해 노동자들의 숙련을 제거하고 이 중에 구상 기능을 관리 영역에 두어 공장 관리를 재조직 하는 것이다. 여기서 숙달을 숙련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숙달은 주어진 일을 문제없이 단순 반복적으로 수행해서 몸에 익숙해진 것이고, 숙련은 변화와 이상에 대한 대처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오랜 시간 누적적으로 축적되며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말한다.


또 분리된 실행영역을 완벽하게 통제하기위해 노동자의 신체 및 도구 공구 등을 분석할 수 없을 정도까지 미세하게 분할해서 관리자들에 의해 최적의 상태로 재조직 한다. 심지어 정신까지 분석해서 노동과정에서 일체의 불필요한 낭비를 제거한다. 이를 통해 작업 순서도, 공정도, 표준 동작 및 작업 기준들이 관리자들에 의해 구축되었다. 노동자의 통제를 위해 의사 결정에 있어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노동의 광범위한 분업체계가 확립된다. 맑스의 말대로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래 공장은 보다 완벽한 통제를 위한 사용자와 노동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테일러주의의 완벽한 통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상 생산성 향상에 따른 일정 몫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주는 타협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이 타협안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테일러주의적 관리와 통제 기제들은 노동자들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고 더 이상 생산력 증가를 기대하며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팀제와 같이 '유기적' 조직과 스스로 '책임자율성' 을 갖는 통제 방식이 등장했다. 이는 노동에 있어 구상과 실행을 일정 부분 통합하고 노동자들에게 자유재량권을 일부 양도해 주고 있다. 이것을 노동자 저항에 따른 자본가들의 양보로 볼 수도 있고 또 노동자가 노동과정에 의식적인 참여를 증대하고 저항의 요소를 더욱 강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인터넷, GPS 등 정보통신 기술이 감시 기술로써 자본가들에게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상당한 통제 능력을 부여해 주고 있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전자 판옵티콘


기존의 통제 방식이 작업반장이나 감독에 의한 수동적 통제 방식이라면 정보통신 기술은 자동화된 통제 방식을 제공한다. 자동화된 통제 기술은 자본이 원하는 모든 기능을 쉽게 구현하게 한다. 우선 24시간 감시가 가능하며, 선택적으로 감시 장치를 보이게 하거나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전화, 인터넷, CCTV 등 이미 일상화된 전자 장치들을 서로 연결해서 네트워크화 하고 다시 중앙에서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부여할 수 있다.


자본가가 감시 장치를 은폐하는 경우는 보통 국가가 선진 노동자-민중을 감시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2004년에 삼성 SDI가 ‘친구 찾기‘라는 이동통신사의 위치추적 서비스를 이용해서 '일반 노조위원장' 등 6명을 감시한 사례와 같이 노조 설립을 방해하거나 기존의 민주 노조를 와해할 목적이 있을 경우에 사용한다. 이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많은 사회단체에서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사용자는 전자장비에 의한 감시기법을 도입할 때 사전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해당 노동자에게 제시해야 하고 △사용자는 감시기법을 도입할 때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법을 통해야 하며 △도입을 하더라도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사실상 이 주장은 전자 감시 장치의 도입을 오히려 합법화 시켜버리는 역할을 한다. 자본가가 감시 장치 도입할 때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하지만, 기입비밀 보호라는 명목으로 (CCTV, E-mail 및 인터넷 감시, 전화도청) 혹은 노동자들이 위험에서 방지하기 위해서(CCTV) 때로는 경영혁신 혹은 업무 성과를(ERP, 타코미터, GPS) 위해 혹은 감시 인력(관리 인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도입된다. 또 극히 제한적인 영역(?)(화장실 제외, 휴게실 제외, 노조사무실 제외)에 설치된다. 사실 인터넷과 같은 것은 제한된 영역이란 것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모든 감시 장치들은 노동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설치되고 감시하고 있음은 사전에 ‘투명하게’ 공지된다.


미국경영협회와 e폴리스학회가 2005년 발표한 '전자 모니터링과 감시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526개 기업 중 5%(25개)가 휴대폰을 모니터하기 위해, 8%(46개)가 회사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GPS를 사용하며, 약 75%는 직원들의 웹사이트 접속을, 65%는 부적절한 웹사이트로의 접속을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감시 형태도 다양해서 콘텐츠, 키보드 사용 및 시간(36%), 직원들의 컴퓨터 파일을 저장해 검토(50%), 이 메일을 저장해 검토(55%)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발신 전화 추적은 2001년도에 9% 였지만 이 보고서(2005년)에서는 51%로 급격히 증가하였다.


한국의 노동자도 이러한 감시 통제 기술에서 예외는 아니다. 지난 1998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는 노동자의 모든 행적으로 추적 감시할 수 있는 RF카드를 도입하였다. 또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DAS라는 작업관리 컴퓨터시스템을 도입하여 생산계획량에 미리 시간․분․초 단위로 책정하여 노동을 통제하였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화장실과 휴게실에 갈 때도 컴퓨터에 입력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03년 7월, <노동자감시근절연대모임>의 발표에 따르면 조사사업장(207개)의 89.9%가 감시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감시방법도 CCTV 설치, 전화 송수신 내역조회, 인터넷 사용 및 하드디스크 감시, 전자신분증 사용 등 이중삼중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레미 벤담이 19세기에 설계한 판옵티콘(Panopticon)이라는 원형 감옥은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깥쪽에는 죄수들의 방이 있고 중앙에는 감시탑이 놓여 있다. 죄수들의 방은 항상 밝게 하고 유리로 되어 있어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감시탑은 항상 어두워, 누가 감시를 하는지 심지어는 사람이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벤담의 판옵티콘은 현대 공장(작업장/회사)과 유사하다. 감옥과 같은 골방은 아니지만, 8시간 이상 공장이라는 곳에 갇혀 있다. 그곳에는 전자 감시 장치를 통해 언제나 감시받고 있고, 감시 장치들의 위치는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감시자는 정보통신 기술 뒤에 숨어 은폐되어 있어 보이지 않는다.


판옵티콘 속에 죄수들은 설사 감시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항상 감시 받고 있음을 느끼며 생활하게 된다. 항상 감시 시선을 내면화하여 감시자가 없어도 스스로를 규제하며 감시받는 것과 같이 행동한다. 공장의 전자 감시 장치에서도 역시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 설사 감시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항상 감시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감시 자체를 내면화 해버린다. 한마디로 알아서 기게 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하다. 그런데 전자 감시 장치는 실제로 24시간 작동 가능하며 지역적 한계를 초월하여 모든 행적을 자동적으로 추적할 수 있기에 판옵티콘 보다 오히려 더 엄격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감시 장치가 있기에, 자본가는 노동과정에서 구상과 실행을 통합을 허락하며 팀제, 자율책임자와 같이 노동자들에게 자유재량을 줄 수 있었다. 말하자면 공장은 자율을 가장한 '전자 판옵티콘'인 것이다.


첨단 기술을 통한 역감시-역생산의 전제조건


다양한 경로로 모여진 노동자들의 개인 정보는 자동 분류, 분석 선택되어 간단한 작업지시와 평가 보상을 위한 정보를 제공한다. 실제로 자신이 노동한 만큼의 보상을, 즉 '노동에 따른 분배'를 받고 싶어 하기에 CCTV와 같은 감시 장치 설치를 찬성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러나 감시의 목적은 노동에 대한 보상이 목적이 아니라 보다 많은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기위해 노동 강도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가장 강도 높게 노동한 노동자들의 기록은 감시카메라에 생생하게 기록되고 이를 통해 보상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순간일 뿐이고 이후 모든 노동자들에게 그 만큼의 노동은 강요한다.


이것은 '노동에 따른 분배'라는 주장에 깔려 있는 당연한 결론인지도 모른다. 노동에 따른 분배를 위해서는 그 노동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있고, 평가자는 반드시 피평가자를 감시해야 한다. 이렇듯 감시의 문제는 바로 생산의 문제(노동과정의 문제,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노동생산-감시의 악순환을 끊을 방법도 이 관계 속에 있다. 만약 자신이 매우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고 할 때, 감시 장치가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를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토론하고 그 정당성을 생산자와 이용자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 한다면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산, 계획에 참여 한다면 감시 장치나 감시자는 필요 없을 것이다. 정보 통신 기술은 감시 장치가 아니라 토론 장치 혹은 의견 수렴 장치로 개발되어 지역 간 차이와 시간적 비용을 줄여 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유토피아적라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공간에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방식으로 개발하고 발전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식의 생산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계획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예비 상품들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해 쓰레기통으로 사라지는 모습들, 이미 개발된 기술인데도 특허를 피하기 위해 2중 3중의 중복 개발하는 모습들, 수 천 원 하는 식수 문제만 해결해도 수백만 명을 살릴 수 있지만, 부유층의 질병을 치료에만 수 조원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왜곡된 기술 생산구조! 이러한 지금의 시스템 보다는 매우 효율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인터넷, GPS 등 첨단 군사 기술을 개발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거대한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것을 모두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 주도권을 쥐고 그들의 의도대로 변형 발전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의 일관된 욕구는 노동자-민중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이들 기술이 시장에서 노동자-민중의 요구를 수용할 때부터 노동자-민중을 위한 가능성을 포함하게 되며, 만약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있을 때는 그 가능성은 증폭된다.


예를 들어, 국가차원에서 혹은 공장 내 도입되는 감시 장치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첨단기술이 감시 장치로 이용될 가능성을 차단한다. 인터넷은 초기 군사 기술로 시작했으나, 상업화되기 이전에 학교와 연구소를 축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악명 높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도 초기 인터넷의 위력을 과소평가해,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인터넷을 다른 첨단기술보다 빠르게 노동자-민중들의 욕구를 수용할 수 있게 하였다.


현재 인터넷은 자본의 개입으로 상당히 왜곡된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지만, 때로는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멕시코 농민 반군 사파티스타의 사례는 정부군을 감시한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된다. 그들이 Fax를 통해 자신의 소식을 좌파 언론에 전달하면 이들 언론기관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에 전송되었다. 멕시코 정부의 허위 정보와 정부군의 유혈진압은 인터넷을 통해 고발되어 수많은 주목과 연대를 이끌어 내었다. 이러한 사례는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학교 내 교사의 폭행을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인터넷에 고발하는 학생의 역할도 주목할 만하다. (이것을 ‘역감시’라 부른다)


또 인터넷은 아직 토론과 공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생산자 스스로 필요한 기술을 생산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공동체(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도 있어 자본과 대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음악, 영화, 책 등 무차별적으로 공유하며, 요즘은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를 통해 직접 콘텐츠를 창작한다. 이를 UCC(User Created Contents)라고 한다(이것을 ‘역생산’이라 부르자). 이들의 문화는 부족하긴 하지만 분명 변화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들의 문화가 소수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성과가 인터넷 포털 자본의 이익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문화영역뿐 아니라 다른 생산의 영역에 까지 확대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본가와 국가의 감시 장치를 노동자-민중에 의한 역감시 장치로 돌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그것은 ‘현실 공간’에 자본가-국가를 규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협적인 실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이토록 위협적인 이유가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강력한 실체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사파티스타의 인터넷 역감시가 그토록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현실 공간에 투쟁의 구심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레닌이 당시 첨단 통신(?)장치인 전국적 정치신문 [이스크라]를 발간하면서 밝힌 목적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신문을 통해 "동지들 사이의 논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였고,”존재하는 차이의 깊이를 분명히 하고, 모든 각도에서 논쟁되는 문제를 토론하고, 혁명운동의 다양한 견해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과 다양한 ‘전문분야‘의 대표자들이 필연적으로 빠지는 극단과 투쟁하기 위하여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의 모든 견해들이 펼쳐지는 공개적인 논쟁"을 벌여 나갔다, 무엇보다도 그가 정치신문을 발간하려는 주요한 목적은 “공장과 도시노동자들 사이에 강고한 혁명조직을 창출하는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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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철학 III

*) 노동자와 과학철학II는 현장에서미래를 2006년 5월호(제119호)에 실려 있습니다.

 

[번역] 노동자와 과학철학 III

[출처] 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언어 철학의 막다른 골목

나는 형이상학론자들에게 스캘린(Scalinger)이 바스크 사람들에게 말했던 것을 말하고 싶어진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샹포르(Chamfort)의 <잠언과 단상>(Maximes et Pensees), ch. 7.)

1929년에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캠브리지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예전에 <논고, Tracticus>에서 밀고 나갔던 입장에서 많이 달라졌다[1]. 초기에 의존했던 논리-원자론에 대한 생각에 반대한 것이다. 그래서 초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 사이에 기묘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언어는] ‘과학적 시스템’을 대변한다는 초기 모든 주장을 거두고, 후기에 와서 그는 체계적인 사유보다는 방향감의 상실을 나타내는 연결되지 않은 문장과 느슨한 언급들에 관심을 두었다. 체계적 사유를 위해 우리는 수학 철학, 윤리, 미학 등에 사용되는 발음들을 분리해왔었다.

언어가 엄격한 원칙으로 환원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을(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접었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언어는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기에, 한줌의 선험적인 원리로 결정될 수 없다. 러셀(과 초기 <논고, Tracticus>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기저에 기호 논리학이 깔려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실, 형식논리학과 수학은 언어[를 대표하기에는] 지독히 나쁜 모델이다.

로크(Locke)는 생각을 의미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 올바른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그러한 규칙은 스스로 죽었다며 반대했다.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의 손에 있는 자(Ruler)와 같이 그것은 단지 한 줄의 단어일 뿐이다. 규칙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모른다면 사람을 강제할 수도 심지어 지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정신적인 상(image)이 언어 표현을 위한 표준(규칙)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올바르게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a) 개인의 정신적인 삶 속에서 뿜어 나오는 것은 이 사람이 혼자서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
b) 그런 ‘사적’ 언어는 결코 언어가 아니다.
c) ‘사적’ 언어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사적 언어 정의에 따르면 당사자를 제외하고 어떤 사람도 그 언어에 접근해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후기 저작에서는 해체 과정을 보여 준다. 후기 저작은 상호 관련성 없는 격언들, 일부 유용한 식견이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사실 ‘학파’가 형성될 정도는 아니다. 일부는 스스로 비트겐슈타인 주의(G.E 앤스콤, 노만 말레온 등)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들은 주로 ‘일상 언어’나, ‘상식’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를 형식 논리학적 규칙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는 언어 표현을 명확하게 할 수 있으므로 어떤 한계 내에서만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언어는 수백만 년 이상 진화되어 방대하고 풍부하게 변화된 강력한 도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를 형식논리학에서 규정된 좁은 한계내로 환원할 수 없다. 형식논리학은 극단적으로 제한된, 궁극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사고방식이다. 이 방식은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수학의 원리>에서 형식 언어로 확립하였는데, 이 논리학은 참 아니면 거짓으로 나눌 수 있는 진술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면성을 잘 보여준다. “너희는 맞으면 ‘예’, 아니면 ‘아니오’라고 답하라. 그것을 벗어나는 모든 것은 악에서 비롯된 것이다(마태복음 5:37).”

그러나 일상 언어는 이처럼 제한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좁은 세포 속에 가두려는 시도들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언어를 사용하면서 단순히 ‘예’ 혹은 ‘아니오’로만 대답하지 않는다. 질문을 하고, 명령을 하고 약속을 하거나(혹은 깨거나) 믿음을 표현한다(이러한 것은 모두 논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확실한 것만큼이나 확률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게다가 감정과 감성을 나타내고 표현하다. 이것들은 수식으로 나타낼 수 없지만 확실히 사람의 삶에 있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수학의 원리>의 전체 구성이 얼마나 임의적이며 표면적인지를, 즉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새로운 “논리학 시스템”을 개발해서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형식논리학의 근본적인 오류를 분명히 지적하고 자진해서 부닥쳐 싸울 준비를 하지 않았다. 형식논리학은 그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법칙이었다. 논리학자들 중 어떤 그룹은 배중률(A는 B가 아니다)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발전적인 모습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더욱이 동일률(A는 A다)은 그 속에서 모순율이 유도되기 때문에 그것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러셀과 함께 언어를 그의 임의적인 시스템에 강제적으로 맞추려고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 후 그는 전체적인 접근이 잘못되었고,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그의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언어는 매우 복잡한 현상이다. 그리고 언어 속에는 확실히 유사하지만 상당히 다른, 심지어는 모순되는 의미를 가진 것들도 있다. 이미 헤겔은 <논리학의 과학, The Science of Logic>에서 이것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언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현대 과학에 중요한 업무이고 정보 기술 및 “인공 지능” 연구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구를 언어의 구조에 대한 추상적인 연구로 제한 한다면, 사람의 성대에서 만들어지는 소리에 실제 내용과 의미를 부과하는 사회와 물질세계 그리고 신경계와 뇌의 작용 심리학과 생리학과 별개로 진행한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언어 연구를 순전히 문단 구조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 언어의 사회적 역사적 토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한계를 그 세계의 한계로 보았다. 이누잇족(에스키모)의 언어는 다른 언어보다 눈(snow)에 대해 더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눈과 관련된 주제에 대해 훨씬 더 정교하게 분류할 수 있다. 이들에게 눈의 종류는 사냥하는데 중요하고, 그러므로 생존과 관련이 있다. 이와 유사한 예는 모든 언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언어는 긴 기간 동안 사회적 발전의 산물이다. 언어의 내용과 형식은 반복적으로 변화되어 왔으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매우 유연하고(fluid) 복잡한 현상을 강제적으로 임의적인 ‘논리적’ 족쇄에 속박하려는 시도는 잘해야 언어를 과도하게 단순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최악의 경우 많은 철학적인 실수를 범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는 단순하고 엄격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다. 간단하고 단순해 보이는 것들이 오히려 반대로 매우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카르납(Carnap), 라이헨바흐(Reichenbach) 등에 의해 대표되는 논리 경험주의 학파는 논리 실증주의 주류 경향을 대표한다. 이것은 모든 철학을 언어의 논리적 분석, 그리고 구문론적 분석(1930년대 까지)과 의미론상 분석으로 환원해 버린다. 그리고 이들은 물질세계의 존재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실증적인 과학 언어”를 제공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객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도적인” 형태로 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파는 초기 입장에서 진보하고 있다. 철학적인 일반화논리를 버리고 특정 연구 영역에 대해 집중하면서, 논리 연구 분야에 있어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에이어(A. J. Ayer)

[‘당신에게 영광이 있어라!’ 그런데 네가 말하는 ‘영광’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하고 엘리스는 말했다. ‘아주 꽤 죽이는 말을 했다는 뜻이야’ 그런데 ‘영광’은 죽이는 말이라는 뜻은 아니잖아. 엘리스는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험프티 덤프티는 다소 경멸하는 투로 말했다. ‘내가 단어를 사용할 때, 나는 그것의 의미도 내가 선택한다는 뜻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루이스 캐롤 Lewis Carroll,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에이어(A. J. Ayer)의 글은 신-실증주의 사상가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읽힌다. 비트겐슈타인의 글은 매우 난해해 몇몇 사람들만 읽을 수 있는 반면에 에이어의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 Language, Truth and Logic (1936)>와 〈지식의 문제 The Problem of Knowledge〉(1956)는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적은 대중서이다. 에이어의 기본 가정은 ‘실증적인 과학 방법’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감각을 통해 세계를 해석한다.”는 낡은 실증주의자들의 철학을 요약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cf. 로커의 유명한 문장: “감각이 우선하지 않고서는 마음속에는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

마흐처럼 에이어의 모든 입장은 거의 표절이다. 에이어는 주관적 관념론을 거부하는 척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단지 감각-내용(sense-contents)(마흐의 감각-인상)만을 알 수 있으며 실제 세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고 한다. <지식의 문제>에서 그는 [주관적 관념론을 반대하는 척 하면서 실재로] 소위 소박한 실재론(소박한 유물론)에 반대하는 마흐의 정직하지 못한 주장을 거의 모두 반복하고 있다. 이런 속임수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러한 철학에 의해 옹호되는 ‘소박한 실재’는 필경 가장 값싼 궤변이다. 정신병자나 관념론 철학자의 제자가 아닌, 건전한 사람의 ‘소박한 실재론’이란 사물이나 환경, 세계가 우리의 감각이나 의식과 독립하여, 또 우리의 자아나 인간 일반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견해이다. 그것은 높은, 작은, 노란, 단단한 등등의 나의 감각의 단순한 복합체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굳은 확신을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동일한 경험(마흐주의자의 의미에 있어서가 아니라 일반인의 의미에 있어서)이 또한 사물이나 세계, 환경이 우리와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우리의 감각, 우리의 의식은 외적 세계의 모사에 불과하고 이러한 모사는 모사되는 것(실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은(실재, 모사되는 것) 모사하는 것(의식)과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명한 것이다. 유물론은 의식적으로 인류의 이와 같은 ‘소박한’ 믿음을 그 인식론의 기초로 삼는다.” (레닌 저작선, Vol. 14, p. 69-70.유물론과 경험 비판론 p. 70)

논리 실증주의자들의 저서들이 갖는 공통된 특징은 논리적 왜곡이 이상한 정도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식의 문제>에서도, 에이어는 [나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정신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질문에 전체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빨이 아프다고 하면 나는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는 질문과 같은 것에 집착하고 있다. 여기서 부터는 독자의 인내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사과 말을 전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누가 이빨이 아프다고 했을 때 그 존재 혹은 그들이 아프다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한 이 지겨운 이야기를] 인용하지 않고 [요약만 한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완전히 꾸며낸 일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약간의 인용을 한다.

“만약 내가 내 자신에게 아프다고 애기하면 나는 오직 나 혼자만 의식하고 있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고통스럽다는 신호를 밖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신호가 아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라고는 뜻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표현한 것 중 일부는 의미가 달리 전달되거나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게 김씨가 아프다고 애기 한다면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김씨가 고통의 신호를 보였다는 점, 그의 몸이 그렇고 그런 상태라는 점 혹은 그가 그렇고 그런 식으로 행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내가 김씨에게서 명확하게 관찰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테제[소박 실제론]에 대한 명확한 반론은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품고 있는 의미를 똑 같이 전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약 누가 나에게 아픈지를 물어 보고 내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내 대답은, 내가 이해하듯이, 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다. 나는 나의 감정 상태를 이야기 했지만 그는 단지 나의 육체적인 상태를 묻는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내 대답이 틀렸고 해도, 그는 완전히 나와 모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적당한 고통의 신호를 보여주었는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나를 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명확히 다르다.” (에이어, 앞의 책 pp. 214-5.)

이러한 정신훈련 (mental gymnastics)을 하는 이유는 에이어 스스로 그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 결국 유아론-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개념-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흐를 통해 논리 실증주의가 물질세계의 객관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론은 피해갈 수 없다. 마흐와 같이 에이어도 회의주의의 일종인 유아론에 반대하는 척 하는 핑계거리를 찾았지만 유물론(소박실재론)과 거리를 두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회의주의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만약 이 이론이 옳다면 정신과 육체 사이에 구별,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별은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 이 이론이 나타내려고 하는 그림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의 요새 내로 문을 닫아 버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요새의 높은 벽을 관찰할 수 있겠지만 그 벽을 통과할 수는 없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들 내면에 있는 어떤 것도 인식할 수 없다.” (같은 책, pp. 215-6.)

마흐와 같이 에이어는 이러한 터무니없는 결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달라질 것이 없다. 그는 실재로 철학적인 견해를 통해서 회의주의에 반대한다는 실질적인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결국 그는 ‘상식’에, 물리 세계의 존재에 대한 믿음에,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른 사람이 관찰하기 전에도 세계는 존재한다는 사실에 호소하게 된다. 이것은 그 자신의 진술에서 논리적으로 유추(연역)되지 않는다. 사실 그의 주장은 객관세계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 보다 더 일관성이 없다. 문제는 얼간이들과 얼간이들의 논리로 논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논리학과 윤리학

텔레비전이 없던 평화로운 옛날, 사람들은 공포소설을 읽곤 했다. 보통 남자 주인공은 묶여 있고 반면에 여자 주인공은 죽음보다 더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 독자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다음 장을 넘긴다. 다음 장에서 마침내 위대한 주인공은 “단번에 자유롭게 되었다”는 유명한 문구와 함께 해방된다.

윤리 철학의 영역에 왔을 때, 과학 철학은 소설속의 영응만큼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과학철학의 정신적 조상 격인 흄(Hume)은 사실(matters of fact)로부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당위적인 것, what ought to be) 결론을 유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증의 원리라는 좁은 관점으로 윤리 전체는 터무니없고 가장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철학자들은 ‘선’과 ‘악’의 정의에 대해 수 세기동안 그들의 머리를 괴롭혀 왔다. 그러나 과학철학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험적인 증명”하자는 말을 꺼내자마자 모두 정리해 버린다. 이 모두를 규칙에서 벗어나 있다(무의미하다)고 규정해 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선’에 대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위대한 철학자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칸트 헤겔에 의해 논의되어 왔고 마침내 맑스와 헤겔에 와서 윤리는 초-역사적인 카테고리(범주)가 아니라 항상 그 시대를 반영하지만 사회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기존 사회와 경제적 질서에 의해 결정되며 명확하게 계급적인 태도와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윤리의 역사적 상대성은 논리실증주의자들에게는 항상 이해할 수 없는 것(closed book)이었다. 그들에게 윤리는 사회관계와 역사적으로 결정되는 의식의 특별한 형태가 아니라 단지 언어의 문제!일 뿐이다. 극단적으로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은 수세기 동안 위대한 사상가들에게는 무거운 짐이었는데, 그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단어 분석으로 환원시켜 모든 것을 한 번에 달성하려고 하고 있다.

윤리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리고 현실 생활 속에서 무엇에 기초하는지를 묻지 않고 그들은 윤리적 판단과 조건(terms)의 정의에 대해 질문한다. 그들의 품질 증명서인 겸손을 내세우며, 새롭고 혁명적인 단어-‘메타윤리학’을 고안해 내었다. 그들은 메타윤리학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윤리학 이론이라기보다 추상적이며 형식적인(scholalstic) 개념으로 실재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개념이다. 윤리의 근원에 대한 실질적 연구는 하지 않고 그들은 끊임없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논쟁한다. 그리고 ‘선’, ‘악’, ‘악마’, ‘의무’와 같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을 통해서 윤리학을 이해하려하고 있다.

부정확한 방법은 부정확한 결론을 이끌어 낼 뿐이다. 과학철학자들은 자연 과학의 관점에서 도덕적 의미를 접근한다. 일반적으로 논리 실증주의의 임의적인 카테고리(범주)는 사실상 물리학에는 의미가 없을 뿐더러 윤리의 영역에서 훨씬 더 무의미하다. 이 방법이 만들어내는 세기적인 결과는 무엇일까? 선과 악은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결과는 자명하다. 이것들은 과학적이지 않으며 형이상학적인 가짜-개념(pseudo-concepts)이다. 이것은 자존심 강한 과학철학자들이 삿대로 더듬어서 알 수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이러한 거짓-개념이 지속적으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 그것도 사회생활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는 사실은 인류의 무지와 고집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과학철학자의 계시를 들으며, 그들 방식의 오류에 집착하고 거짓-개념에 의해 동기를 부여 받고 거짓-이슈에 대해 논쟁한다. 결국, 과학철학자들은 머리를 설레설레 젓고 그들의 연구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계시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세상에 문을 굳게 닫아 버린다.

주지하다시피 모든 가치판단을 수학과 논리학처럼 “반드시 과학의 부속물일 필요는 없다.” 더욱이 언어관례(linguistic convention)나 정의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골치 아픈 점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것은 선한 것이라 주장하고 어떤 것은 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믿음이 너무 확신에 차 있기 때문에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증명할 수 없다는 설명을 아무리 여러 번 해주어도 그들은 고집스럽게 그 믿음을 고수한다. 더욱 심한 것은 사람들이 행동하는데 있어서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매우 중요한 것까지 즉, 셔츠를 사는 일에서부터 선거에서 투표하는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과학철학에 의해 의미 없고 관련 없는 것이라고 삭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있어서 때로 아주 중요한 것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설명을 필요로 한다. 바꾸어 말하면, 단순히 문제꺼리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릴 묻고 육식 동물을 피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실증주의에서는 도덕성이 주어진 상황에서의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도둑질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은 단순히 “나는 도둑질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도덕성은 완전히 개인의 주관적인 마음 상태로 환원된다. 어떻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것도 아주 잘 변하는 대상에 대해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완전히 미스터리다. 더 미스터리한 것은 그런 집단적인 마음 상태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혹은 종족 공산주의 사회 중 어느 시기냐에 따라 어떻게 반대로 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논리 실중주의자들이 가치가 있으려면 그들이 누울 자리에 그 속에 누워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격식도 없이 논리학, 수학, 윤리학, 도덕성을 추방했기 때문에 예전 보다 훨씬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이 과정에서 종교나 형이상학도 제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들은 불가지론을 유지하였으며, 종교의 문제에 대해서는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슈화하지 않고 회피했을 뿐이다. 마치 예의바른 사람이 저녁식사 테이블에서 불쾌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불행히도 종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큰 논쟁거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 종교의 환상주의와 근본주의자들을 반대하기 때문에 불가지론은 올바른 방향으로 반보 진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하게 반보이기 때문에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방대한 영역에서 다시 낡은 난센스를 복권시키고 있다.

현재 ‘분석 철학’ 지지자들 중 일부는 아마 그들 자신을 유물론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정신과 육체의 차이와 관련된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점점 더 이론은 물리적 틀의 기준 없이 정교화 되고, 주어진 공리(axioms)로부터 연역(deduction)된다. 그 결과로 다시 이론(theorems)이 되고 수식으로 정교화 된다. 더욱 열악한 것은 사실들이 이들 이론에 강제적으로 맞추어진다는 점이다. ‘분석 철학’의 옥스퍼드학파는 철학은 ‘선험적 규율(priori discipline)’이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철학자들은 관찰하지 않더라도 분석을 위해 필요한 개념을 미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배가 ‘터지기’전까지 배를 부풀리는 이솝우화의 황소개구리처럼 ‘분석 철학’의 자부심은 터져버리고 있다. 분석철학에 호의적인 사람들은 일상 언어의 뿌리를 찾는 것으로 그리고 그것의 오용으로부터 실수를 드러내는 것으로 철학의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 대신에 그들은 단지 혼란에 혼란을 쌓아 올리고 있고 결국에는 피할 수 없는 종말로 치닫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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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되며, 전기는 <논리철학논고>로, 후기는 <철학적 탐구>가 대표한다. 초기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언어 논리가 오해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철학의 과제는 언어의 논리를 보여줌으로써 철학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오면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 중대한 잘못을 비판하고 언어의 다양성, 언어와 행위와의 관계 등에 주목하고서 언어놀이(language gam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제 언어는 더 이상 실재의 그림이라고 하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극히 다양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 파악된다.
이리하여 언어는 실재를 그리는 것으로 본 전기에 비해, 후기에는 언어와 삶의 형식의 관계로 그 축이 바뀐다. http://www.nalm.info/critics.html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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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철학 II

[‘노동자와 과학철학I’은 현장에서미래를 제113호(2005년 11월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번역]노동자와 과학철학 II

[원문]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현장에서 미래를  제119호

비엔나(Vienna) 학파

 

1차 세계대전 이후, 루돌프 카르냅(Rudolph Carnap)이 이끄는 비엔나 학파는 승리의 환호 속에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학파를 출범시켰다. 그들은 "철학은 과학적이어야 한다"고 세상에 선전하였고 이후 논리 실증주의(logical positivism)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리고 이 상표가 붙은 철학은 "과학적 방법"을 독점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철학자에게 자칭 과학 철학의 용어를 엄격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만약 그들의 교리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즉시 비과학적인 것으로 선언되고 더 심하게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선언되어 어둠 바깥으로 버려진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이빨을 갈고 으르렁거리면서 소위 과학 철학으로 다져진 최고의 지성으로 맑스, 헤겔, 프로이드,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 성 오그스틴 그리고 모든 완고한 형이상학론 대가들을 비난하고, 또 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카르냅은 지각(perception)에서 시작해서(<<세계의 논리적 구조, The Logical Structure of the World>>, 1928) 의미론(<<언어의 논리적 구문론, The Logical Syntax of Language>>, 1934),으로 간 다음에 논리학(<<의미와 필연, Meaning and Necessity>>, 1947)에서 끝을 맺고 있다.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명확하게 생각하는 것(clear thinking)"를 목적으로 1922년에 <<논리 철학 논고, Tracticus Logico-Philosophicus>>를 펴내었다[1](여기서 확실한 가정은 이전에는 명확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들의 품질 보증 마크는 상당한 겸손이라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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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논리 철학 논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철학의 목표는 사유의 논리적 명료화이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철학 연구는 본질적으로 해명으로 이루어진다. 철학의 결과는 많은 '철학 명제'가 아니라 명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유의미한 논술은 a)논리학과 수학의 형식적 문장과, b)특수과학의 사실적 명제 중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2) 사실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언표는 어떻게 그 언표를 검증할 수 있는지를 밝힐 수 있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3) 1)의 두 부류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언표는 무의미하다.

4) 도덕적·미학적·종교적 가치에 관한 모든 진술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그래서, 이 몇 줄의 문장을 기준으로 이천년 인류의 사상을 아무런 노력 없이 버려 버린다.

만약 논리 실증주의의 이 작은 틀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그냥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나 나폴레옹(Napoleon)이 치룬 모든 전쟁은 단지 아이들의 장난일 뿐이다. 또 신과 악마, 변증법적 유물론, 심리학적 분석, 플라톤(Plato)과 아리스토테레스(Aristotle)의 저서, 스피노자(Spinoza)의 저서, 성경, 코란과 토라(Tohr)[2]도 역시 모두 아무 논란 없이 버려야 할 것들이다.


히틀러(Hitler)의 집권 후 카르냅과 그의 동료들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미국에서 그들의 사상은 상당한 세력을 얻었다. 그러나 어느 곳이든 다양한 이름의 논리 실증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고 있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논리학에서 인식의 문제로 돌아섰고 마지막에는 단어와 기호(심벌)를 가지고 노는 불모지 어문학으로 끝을 맺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목적은 철학에서 형이상학을 제거하는 것이다. 뜻이 좋다고 결과까지 좋다는 법은 없다! 뒷문으로 대범하게 버린 것이 즉시 창문으로 들어와 버린 꼴이다. 그들은 관념론자들의 형이상학과 공평하고 정당하게 싸우지 않고 (이것은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인 유물론적 입장을 일관되게 받아들여야 가능한 것이다) 철학적인 핑계꺼리를 찾았다.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질문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러한 태도는 잘하면 불가지론이나 부끄러운 얼굴을 한 일관성 없는 유물론이 되거나 최악의 경우 주관적 관념론의 늪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첫 번째로 마주치는 치는 것은 극단적인 사유의 빈곤, 협소한 형식주의, 실제 내용 부제, 전체적인 전망에 대한 지적 비급함이다. 인간 사유의 진보, 특히 과학의 진보는 위대한 사상가(과학자)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사상가(과학자)들은 그 당시에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스 시대에도 뛰어난 원자론자이며 이론가들이 많았는데, 과연 그들이 당시 기술로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자론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고대 그리스의 과학철학자들도 [논리 경험주의자들처럼] 데미크리토스(Democritus)와 에피크루스(Epicurus)의 [원자론을] "의미 없는 형이상학"이라고 비난했을 지도 모른다. 


논리 실증주의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습관적으로 맑스주의가 여러 정치적 분파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가지고 비웃는다. 그러나 이 상황은 논리 실증주의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국의 옥스포드를 근거지로 무어(G. E. Moore)는 지식이론과 윤리에 대해 "실재주의적이고 상식적인" 접근하기 때문에 전형적인 영국적 경향을 대표한다.


20세기 초반에 러셀(Bertrand Russell)과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당시 팽배한 여러 종류의 사이비-헤겔주의적 관념론에 반대해서 "새로운 논리학"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1910-12에 출판했다. 이것을 뉴턴의 명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프린키피아,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의 이름을 따서 <<수학 원리, Principia Mathematica>>라고 이름 지었다. "철학의 기원은 수학자들의 성과에 달려있고, 수학자들은 초라한 논리와 주체의 오류를 정화하는 일을 한다." (러셀, <<서양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p. 783) 이런 종류의 자화자찬은 논리 실증주의 전체의 전형적인 경향이었다. 그들은 과거 엥겔스의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뒤낭(Duhring)처럼 화려한 말을 많이 했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서 진실은 머리위에 거꾸로 서 있다. 세계는 사람들의 생각들을 분석해야 이해할 수 있고, 더 심하게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를 분석해야지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이 이미 1908년에 비판한 바 있는 마흐(Mach)의 <<경험-비판론 empirio-criticism>>에서 보여준 낡은 신비주의를 또 만나게 된다. 러셀은 [철학의] 중심 주제를 물리적 대상이 우리의 감각 외부에 존재하는 지로 후퇴시켰고 왜곡시켰다[4].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관찰자는 어떤 한 점에서 그의 경험을 성명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가설로 물질세계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고 한다[4]. 그렇지 않으면 그는 물리적 대상은 감각-자료들로부터 논리적 구성을 통해 얻어진다고 주장한다[5].


언어에 대한 이러한 강박관념은 우연이 아니다. 실재(reality)가 사람들의 생각과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식인들의 뿌리 깊은 편견과 잘 일치한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예측하지 못한 사회적 변혁기 였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기에다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당시 수백만 명을 살육한 세계 대전, 러시아 혁명, 경제 위기, 영국에서의 광부들의 파업이 있었다. 그리고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에서는-단어의 의미를 담은 두꺼운 사전 편찬 작업이 있었고, "완벽한"언어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다. 엘리트적인 문법을 따지는 분위기로 후퇴하고, "원자"단위로 언어를 분해했다. 이러한 시도는 아마도 의미 없는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존재들 [즉 주변 여건들을] 모두 무시하자!. 그러면 그리스 로마시대. 중세 수도승, 비숍 버클리의(Bishop Berkeley)의 그리고 현재 자칭 과학 철학자의 회의주의만이 남을 뿐이다. 전체 철학의 역사에서 그렇게 잘못 호칭되고 가식적인 것이 또 있을까?


이들 학파 모두를 연결시켜주는 일반적인 고리가 있다. 그것은 언어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요한복음 첫 장에 "태초에 말씀(Words)이 계셨느니라"고 쓰여 있다.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이 문구를 약간 수정해서 그들의 슬로건으로 채택하고 있다: 태초뿐 아니라 중간과 마지막, 전부가 모두 단어(Words)의 문제이다!


이러한 경향은 항상 단어를 쓰고 말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편견에서 비롯된 결론일 뿐이다. 양분 없는 토양은 단지 연약한 식물만 만들어 낸다. 빈혈기 있는 환경 속에서는 피없는 철학만이 생산될 뿐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하찮고 혼란한 의미론이 철학을 대표한다고 여겨졌다. 한때 헤겔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작은 것에 만족하는 가를 통해 정신의 상실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단어와 단어들의 의미로 환원하는 것(의미론)으로는 관념론을 탈피할 수 없다. 단어는 사람의 사상을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소위 "과학적 실재주의"는 또 다르게 변장한 관념론의 복원을 의미한다. 사실 언어에 대해 집착하는 것은 물질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어떤 특정 생각들이 진실과 일치하는지를 묻지 않고 주어진 단어와 문장이 우리가 표현하고자하는 생각에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만 질문한다.


여기서 다시 풍부한 철학들이 어떻게 몇 개의 말린 빵 부스러기로 환원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철학과 과학의 특별한 분과로서 언어와 의미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10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언어와 의미로 환원하려는 시도는 솔직히 엉터리이다. 이런 공허하고 무미건조한 철학은 미국에서 길버트 라일(Gilbert Ryle),  오스틴(J. L. Austin), 스트로슨(P. F. Strawson) 등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마흐와 비교해서 유일하게 "혁신"된 것이 있다면 언어의 차원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 진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에서 한걸음 더 멀리 밀고가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어진 생각이 옳은지 그런지 묻는 대신에(다시 말하면 그것이 객관적 진실을 반영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단지 주어진 문장이 의미가 있는지 여부만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논리실증주의자에 따르면 그들 스스로 개발한 임의적인 정의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축구게임을 하는 것과 같은데, 여기서 규칙은 상대편 팀만 골을 넣을 수 있게 허용하는 그런 축구게임과 같다. 더 정확하게는 그들이 가는 데로 규칙을 정하는 그런 축구 게임과 같다. 이것은 이상한 나라 엘레스의 험프티 덤프티(Humpty Dumpty)[6]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하는 말은 정확히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모든 진술은 실험적으로 증명 가능해야한다(검정의 원칙) 그래서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표현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증명하거나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투쟁을 포함해서 철학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문제 대부분을 같은 식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것들은 "문제가 없는"것으로 선언된다. 크리켓의 규칙처럼 "심판 결정이 최종적이다[7]" 그래서 카펫 슬리퍼는 버리지 않아도 우리는 철학의 역사 전체를 버려 버린다.


"잠깐만" 강의 실 뒤쪽에서 소리친다. "잊어 버린 것 없습니까? 신(God)이나, 칼-맑스 그리고 몇 몇 악명 높은 소란꾼들을 버리는 것은 좋은데, 그렇다면 수학이 영원한 진리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도대체 유클리드 기하학을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수학의 공리는 중명하지 않고 그냥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또 논리학도 그 자체로 증명되므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양자역학에서 파동과 입자가 같다고 하는데, 파동은 파동이고(A는 A이다) 입자는 입자(not A는 not A이다)이므로 파동은 입자가 될 수 없다(A는 not A가 될 수 없다)는 형식논리학의 동일률(혹은 모순율)은 어떻게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순간 신-실증주의 강사는 시계를 보며 점심시간이므로 수업을 마친다고 말한다. 순수한 학생들에게 그는 적절한 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소위 수학하고 형식 논리학에서의 진리는 실험적으로 전혀 증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선험적인 것으로 (즉 라틴어로 "처음부터") 알려져 있고, 처음부터 참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들의 논리에 일관성이 있으려면, 맑스와 프로이드가 그들의 검정의 원칙에 맞지 않았던 것처럼 피타코라스와 유클리드도 그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유해한 형이상학이며, 논증 불가능한 난센스이며, 우리를 기만하고 있는 것으로 비난해야 할 것들 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쓰레기통에 버렸듯이 결국 형식논리학과 수학 모두도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이러한 모순을 <<논고 Tracticus>>에서는 눈속임으로 재빠르게 덮어 버린다. 사기성이 있는 보험설계사의 보험에는 항상 그들의 면책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경험적으로 논증할 수 없는] 수학의 진리는 "분석적"이라고 선언된다.(이 용어는 칸트에서 부터 훔쳐왔다)[8] 수학의 진리는 참이기는 하지만 "모든 독신자는 결혼하지 않았다"와 같이 동이 반복이다. 관련된 심벌의 사용을 기초로 한 상식적 차원의 진리(conventional truth)이다[9] . 이것은 어떤 의미라도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풀 수 없는 모순에 직면했을 때, "실질적"이며, "상식적"이며, "과학적"인 이들 신사는 망설임 없이 그들의 뒤를 덮어줄 뻔뻔스러운 계략을 펼친다는 것이다. 모든 진리는 경험 지식에서부터 나와야 한다는 교리적 주장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자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가장 최종 분석에서만 경험지식에서 부터 나온다" 사유의 역사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논리와 생명력을 갖는다. 마치 초보 마술사의 빗자루처럼.


변증법과 마찬가지로 형식논리학의 법칙은 자연에서부터 도출되어 추상화한 것이다. 이렇게 일단 중요한 일반화에 도달했는데, 모든 세대 혹은 개인이 [매번] 실제 시행착오를 거쳐 ("경험적으로") 그것을 재발견하는 것이 필요할까? 자동차 바퀴를 재발명하는 것이 필요할까? 만약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모든 지식은 직접 경험으로 부터 나오지 않은 것이 된다.


 역사적으로 진화한 사유의 형식은 어떤 것이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우리가 질문해야할 것은 이러한 사유의 형식이(변증법이나 형식 논리학이) 적절하게 객관적 세계를 반영하는지 여부이다. 다만, 과학철학자 처럼, 객관 세계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면 전체적인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분석 철학


그들이 구문(syntax)의 얽혀있는 덤불 속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진실로 부터 더욱더 멀어진다. 가장 최근의 "분석 철학자"들은 언어가 객관 세계를 반영한다는 것조차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매우 높으신 곳에 오랫동안 유영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일반 사람의 언어는 충분히 좋지 않다고 단정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이상(ideal)" 언어를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상 언어는 순수하고 정교하며 어떤 모호함도 없는 그런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언어적 분석으로 매우 유용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어 분석이 인간 사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약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현대과학의 위기와 극단적인 노동분업과 연관되어 있다. 그들이 현실세계의 출발점으로 취하고 있는 실험과 실천의 과학영역(종합명제)과 수학과 논리학과 같이 소위 "연역적'이고 "선험적"인 과학(분석 명제) 사이에 날카로운 이분법이 그러하다. 복잡한 수학적 이론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는 우주론과 이론물리의 경향은 실제세계를 설명하는데 점점 더 적합하지 않게 되고 있다.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면 논리학에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어문학적 조사와 난해한 상징(심벌)에서는 어떤 혁명도 나오지 않는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낡은 접시를 따뜻하게 데워 약간 다른 장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수학에서 빌려온 난해한 기호로 예전의 낡은 관념들을 다시 표현한다 고해서 더 확실해 지는 것은 없다. 다만, 과학적 수도승들과 "대중"들 사이에 간극만 커질 뿐이다.


"사실"만을 고집하고 "형이상학"과 종교의 머리에다 저주를 퍼부은 바로 그 사람들이 다시 과학에 신비주의적 관념을 도입하고 있다. 언어와 구문에 대한 난해한 연구, 그리고 수학적 기호의 세계를 위해 "이상"언어를 추구하는 것은 실제 세계와 점점 멀어져 가며 가장 지독한 관념론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형식논리학과 수학에서는 일련의 선험적인 규칙(공리, 이론 등등)을 세우고, 이 규칙에서부터 연역적 추론을 통해 모든 것을 유도해 낸다. 그러나 언어의 발전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실제 언어의 역사 발전에 수학적인 방식을 결코 적용할 수 없다. 언어에다 수학에서 사용하는 좁고 임의적인 변수에 적용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그 종말을 예고할 뿐이다. 문법, 어희 그리고 구문은 다른 여러 현상, 예를 들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 문화적 현상들이 극단적으로 복잡하게 상호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로서 역사적으로 진화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논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규칙은 형식논리학과 수학의 규칙과는 완전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죽은 규칙은 단어에 생명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 규칙 스스로 설명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단어와 언어에 대한 이러한 강박관념은 실제 대상 즉 물질적 진실과 더욱 멀어지게 한다. 마치 소금물로 목을 축이며 계속 목말라 하는 사람처럼 우리가 어디서 출발하더라도 다른 어떤 것, 말하자면 "A, B, C를 말할 때 의미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문구에 대해 무한히 토론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설사 명확한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단어의 의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확실히 유익한 실천이라 할지라도) 우리 손에 실제 일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정확하게는 중세 스콜라 주의자들처럼 바늘 끝에 천사 몇 명이 춤을 출 수 있을까하는 무의미한 토론만 끝없이 할 것이다.


결국 이 길은 점차적으로 주관주의(subjectivism)에 이르게 한다. 무어와 러셀에 의해 추진된 "사적 언어(private language)" 는 아주 좋은 보기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각기 개인이 "아는" 것은 객관 세계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감각, 관념과 의욕이다. 이것들은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신적인 현상이다. "알고 있는" 사물은 기본적으로 사적이며 개인적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언어의 발전에 있어 알려져 있는 모든 것에 반대된다. 언어는 사회적 현상이며 역사적으로 집단적, 협동적 생산의 요구에서 부터 나왔다. "사적" 언어라는 바로 이러한 설명에 모순된다. "원자론"의 개념을 극단적으로 확대해서 물리학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사회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사적언어를 인정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물리세계를 알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여기서 철학은 세속화되고 진부한 것으로의 치부되며 아니면 아주 세부적인 연구에만 치중한다. 이런 의미 없고 쓸데없는 이론은 언어적 철학자들이 가장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이 바로 언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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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2) 모세 율법, 모세 5경, 유대교의 율법

역주 3) 러셀은 외계의 사물과 우리의 의식을 매개하는 것이 감각자료이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실재하는 사물의 표상(表象)으로 보여지는 감각자료뿐이라고 하였다

역주 4) 러셀은 이것을 직접지(knowledge by acquaintance)라고 불렀다. 대표적으로 감각 자료(sense-data)가 있는데, 설탕을 입에 넣었을 때 느끼는 단맛, 귀를 통해 들리는 소리의 파편,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질 때의 느낌 등이 바로 우리의 직접 경험에 주어지는 감각자료들이다.

 역주 5) 러셀은 이것을 기술지(knowledge by descriptions)라 불렀다. 예를 들어 책상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은 모두 기술지에 속한다. 이들은 분명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은 대상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그 이유는 우리가 감각소여를 통해 얻은 직접지들을 토대로 그러한 대상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주 6)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벽 위에서 말하는 '달걀' 이 말은 남이 이해하든 못하든 자기가 쓰고 싶은 말만 쓴다는 뜻이다.

역주 7) 크리켓은 11명으로 구성된 두 팀이 교대로 공격과 수비를 하면서 공을 배트로 쳐서 득점을 겨루는 경기이다. 크리켓에서는 심판의 결정사항에 대해 논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중하게 한번 정도 문의하는 것 이상으로 심판에게 항의하는 것은 매우 불성실한 태도로 감독관으로부터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역주 8) 이들의 논리는 경험적인 것과 경험에 독립적인 것으로 나눈다. 경험적인 것은 반드시 검증을 통해 증명되어야 의미가 있다. 경험적인 것은 천적이고 종합적인 명제가 되는데, 이러한 문장들은 검증을 통해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경험에 독립적인 명제를 분석적인 명제라고 하는데 선천적이며 명제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 명제를 분석하는 것만으로 참, 거짓이 드러나는 문장이다.

역주 9) 분석 명제는 세계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해 줄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인식적으로 의미 있는 명제가 아니며 동어반복일 뿐이다. 우리가 논리학이나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분석적 명제는 이미 술어가 주어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확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명백하게 해명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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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위키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7호 

김영식 


 중세 봉건제가 맹위를 떨칠 때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어딘가에 대안 사회의 싹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찾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흔히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자유로운 이용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분배의 관점에서는 그리 큰 매력은 없다. 왜냐 하면 자유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셰어웨어나 프리웨어 등 자본의 통제를 받는 무료 소프트웨어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익숙할 때까지 무료로 공급하다가 익숙해질 때쯤 유료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 등을 목적으로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검색 엔진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진정한 강점은 생산자-이용자 공동체에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생산자들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하지, 시장에서 교환할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또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공동체에 기여(노동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다(접근이 허용된다). 노동한 량에 따라(혹은 기여한 양에 따라) 차등으로 분배받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는 비-시장적 관계(non-market relations)를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협동 노동을 이끌어 내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특허를 독점하고 있는 IBM 등 컴퓨터 자본이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자유소프트웨어를 그들의 기계에 적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그 만큼 자유소프트웨어가 기술적으로도 보안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자본마저도 자유소프트웨어에 기여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자유소프트웨어의 강한 흡입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신은 소프트웨어 이외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IPLeft(http://ipleft.or.kr)의 정보공유라이선스운동이 있고 열린-음악 운동 (http://jazzbond.soundhome.cz/OML.html)도 있다. 미국의 MIT대학에서는 강의 자료를 공유하자는 오픈 코스웨어 (Open-Courseware, http://ocw.mit.edu/index.html)운동을 펼치고 있고, 과학자사회에서는 과학저널에 공적 접근(open-access)을 허용하는 공공과학 전자도서관(http://www.plos.org/)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운동은 거의 모두 개별 노동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기부 받아 이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위키페디아(Wikipedia)'라는 인터넷 백과사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처럼 전 세계적으로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거대 백과사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결과 불과 4년 만에 230여년 전통 과 권위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실패한 자유백과사전 : 누페디아


 위키페디아의 이러한 성공 뒤에는 과거 누페디아(Nupedia)의 실패 경험이 있었다. 누페디아(Nupedia)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이었다. 누페디아라는 말은 자유소프트웨어를 나타내는 GNU(그누)에서 '누(NU)'와 백과사전(encyclopedia)에서 '페디아(pedia)'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누페디아는 리차드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일명 그누(GNU) 프로젝트의 정신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문서에 적용하여 권위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프로젝트)이었다.


그러나 누페디아의 경우 '오픈 라이선스'와 같은 정보 공유 라이선스를 채용하는 것 이외에 기존 출판과정과 다른 점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글을 쓰고 전문 편집인들이 평가하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은 주어졌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일단 글이 완성되면 웹상에 올라가는데 더 이상 수정되지 않는다. 누페디아는 일반적인 웹페이지처럼 '중앙'에서 기획되고 통제되었다. 소수 편집저자 몇 명의 헌신에 의존한 누페디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정신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인 전 세계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였다.


다시 시작된 자유백과사전 : 위키페디아(ko.wikipedia.org)


누페디아 운동을 딛고 위키페디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새로운 위키위키(WikiWiki)라는 웹기반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는 지난 1995년으로 당시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네티즌들이 협동해서 웹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에서 만든 웹 소프트웨어이다. 간단하게 협동으로 웹을 구성할 수 있는 '협동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월드 와이드 웹(WWW)의 개념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개념을 다시 살렸는데, 웹에서도 누구나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웹페이지의 내용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었다.


 위키위키 웹페이지를 보면 항상 [편집edit 혹은 수정]이라는 메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누구라도 웹페이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메뉴이다. 변환된 내용은 원 저자의 허락이나 다른 누구의 평가도 없이 웹페이지에 즉시 반영된다. 각각의 페이지에는 가장 최근에 바뀐 내용과 함께 그 웹페이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 history]라는 메뉴가 있다. 이것을 통해 필요하다면 다시 원상 복구할 수 있다. 참고로 위키위키는 하와이 언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이용자가 웹페이지 내용을 읽어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즉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위키위키를 기반으로 한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고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다. 위키페디아에서는 모두가 저자가 되고 편집자가 된다.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단어를 추가하고 편집/수정하는 작업은 전 세계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는 누적되었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 버그가 적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어 버그를 잡을 확률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위키페디아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 가고 있다. 백과사전의 내용 중에 발견된 실수나 빠진 부분은 즉시 교정되거나 추가된다. 모든 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이가 깊어지고 내용은 풍부해 졌다. 2005년 9월 추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 명가량이 참여하고 있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1월 현재 영어판 94만 건, 한글판 1만 9천 여 건을 비롯하여 모두 260만 건 이상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25개국 이상으로 번역 서비스되고 있다.


위키페디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컴퓨터 서브와 인터넷 연결 하드웨어는 미국 산디에고에 있는 검색엔진 회사 보미스(Bomis)의 짐보 웨일즈(Jimbo Wales)에게서 기증받았지만 지금은 비영리 재단인 위키페디아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미스에 데이터의 교환, 전력소비에 사용되는 비용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페디아의 내용은 카피레프트 저작권 가운데 하나인 GNU 자유 문서 사용 허가서로 배포된다.


역 침투


자본주이 사회에서 자라나는 대안 사회의 싹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본주의를 뒤덮어 새롭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어린 싹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밟혀죽기도 하고, 울타리 속에 갇혀 구경꺼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 자라나면서 가지치기를 당해 대안적인 성질이 퇴색해 버릴 수도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내외적으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데, 외적으로는 오픈소스운동이 등장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인 문제로는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를 운영에 몇몇 엘리트들이 지나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엘리트들의 권리는 무력으로 강탈한 것이 아니라 높은 기술력과 공동체 기여도에 따라 권위를 획득한 것으로 민주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의 불평등은 자유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몇몇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에서는 직접 선거의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데비안 리눅스 공동체)


위키페디아도 역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언제나 자유롭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글들이 질적인 수준이 다르며 허위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위 누리꾼들의 일탈행위도 무시할 수 없다.


 2005년 6월 LA타임즈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논설을 위키위키 형식으로 걸고 실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찬성과 반대의 글이 나눠져 고쳐지는 등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포르노 사진과 비속어가 난무해서 결국 닫아 버렸다. 2005년 4월에는 교황 베네틱도 사진이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황제 사진으로 바꿔치기 한 적도 있었다. 전직 언론인인 존 세이겐탈러(John Seigenthaler)는 자신이 로버트 케네디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에 관여했고, 이후 13년간 소련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132일간이나 수록돼 있었던 적도 있었다. 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정기적으로 위키페디아에 올라온 자신의 이력을 자신들에게 이롭게 관리하고 있다. 또 이 위키페디아가 자본에 위협적이라면 자본가들이 자본력을 동원해서 위키페디아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러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42개 항목에 대한 조사한 결과 위키페디아가 브리태니커만큼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2005년 12월 15일)


그러나 몇 차례 홍역을 치룬 뒤 위키페디아 운영진은 운영방식을 수정하였다. 익명의 이용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600여명의 자원 편집자들은 잘못된 내용이나 인신 공격적 내용을 찾아서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The Guardian 2005. 12. 9).


높은 수준의 대안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건 (민주적)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지배자의 역할이 아니라 자본이나 정치/문화 권력 대한 대안 장치로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보호 장치의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보다 세밀한 접근을 요구한다. 그들은 자본주이 시장관계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정보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권을 허용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권력관계(착취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치하였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도 엘리트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위키페디아 운동에서도 익명이용자들의 등록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공동체내에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물론 자유소프트웨어의 경우 소프트웨어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고, 위키페디아의 차별 역시 소수자를 위한 역차별인지 여부 대해서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위키페디아나 초기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생산과 이용 모든 면에서 차별 없는 접근권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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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과학기술로 사기 치다.

/* 결론 부분을 바빠서 아쉽게 마무리했습니다. 원래는 과학 저널의 평가 방법인

    동료심사(Peer review)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해결'

    방법중에 하나가 과학저널에 자유로운 '공적 접권'을 허용하는 방법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도 실험되고 있다는점

    그러나 거대 저널(사이언스나 네이쳐지 등)은 이러한 손쉬운 방법을 외면하고

    있고 또 외면할 수 밖에 없다는 점... 이러한 모습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막는다는 점

    등을 지적려고 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결론 부분을 완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놈의 시간!    :> */

 

과학자, 과학기술로 사기 치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116호

 

2002년 미국 벨연구소의 얀 헨드릭 쇤 박사는 네이처지와 사이언스지에 무려 4년 동안 13편의 조작된 사기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황우석 박사도 2000여개의 난자로 실험하였지만 결과는 사이언스지에 2편의 조작된 논문만을 발표하였다. 뉴욕 타임즈 (1995년 12월 20일)는 ‘연구 프로젝트와 논문을 게재하는 과학 저널(논문)이 증가할수록 실수와 조작 같은 문제가 더 악화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고 또 최근 워싱턴포스트지(2006년 01월 15일)도 작년(2005년) 미국의 연방연구윤리국(ORI)에 접수된 조작 의혹의 논문이 265건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 기술자들의 사기 논문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조작하는 이유로 미국의 칼텍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굿스타인(David Goodstein)는 다음 세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첫 번째, 성과에 대한 압박, 두 번째로 올바른 결과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즉 적절한 실험을 하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실험하지 않고 조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개별 실험들이 다른 곳에서 정밀하게 재현하기 힘든 경우로 나누고 있다.

이 세 가지 중 첫 번째 경우를 제외하면 논문 조작의 원인을 모두 과학 기술자 개인에게서 찾고 있다. 과학기술자 사회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자의 책임 문제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자칫 논문 조작의 책임을 과학자 개인에게만 전가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황우석박사 개인을 과학계에서 퇴출시킨다고 하더라도 논문 조작과 같은 과학사기 사건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자 사회가 외부 사회와 만나는 지점, 그 중에서 특히 자본과의 관계들을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은 크게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기초과학 분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응용분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응용과학 분야는 먼 미래 기술과 바로 적용이 가능한(혹은 적용한) 과학기술로 구분된다. 미래 기술의 경우 자본으로부터 상품 가능성을 끊임없이 확인받지 못하면 바로 퇴출되어 버린다. 상품 적용성이 높은(혹은 적용한) 기술의 경우는 자본의 통제아래 강하게 속박된다. 과학사기도 이와 같이 나눌 수 있다.
기초 과학 분야의 경우 ‘허위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 있을 때, 먼 미래 기술의 경우 자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할 때(‘자본을 향상 과학사기')와 상품 적용성이 높은 과학 기술이어서 자본의 직접적인 사주를 받을 때(‘자본에 의한 과학사기')로 나눌 수 있다.



허위 이데올로기

허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과학 사례로는 IQ에 대한 연구가 있다. 1921년 발표된 미국 육군의 심리 조사 보고서(PEUSA Report)에 따르면 평균 정신(지적) 연령이 이탈리아인은 11세, 폴란드인은 10.7세 흑인이 10세이고 미국 백인은 13세로 가장 월등하게 나왔다. 인종적으로도 북유럽 인종, 슬라브족, 남유럽 인종 순이었다. 이 보고서는 남부와 동부 유럽인의 이민 제한 강화 및 유태인 이민 금지를 골자로 하는 이민제한법, 출산 장려 및 억제를 핵심으로 하는 건강 복지 정책, 분리 교육을 핵심으로 하는 교육 정책의 근거가 되었다(한국교육신문 1월 21일자). 현재 IQ에 대한 연구는 과학을 빙자한 사기임이 명백히 드러났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유명한 ‘필트다운인(Piltdown Man)' 사건이 있다. 1912년 영국 서섹스(Sussex)주의 필트다운 부근에서 아마추어 화석연구가 찰스 다우슨(Charles Dawson)은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두개골뼈 두 개와 원숭이 같은 턱뼈를 “발견”했다. 영국의 고인류학자들은 즉시 이 화석이 인류의 두개골에 유인원의 턱을 가진 새로운 종에 속하는 원시인류 화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원숭이와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잃어버린 연결고리의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40년 뒤인 1953년에 이 화석은 현생 인류의 머리뼈에 오랑우탄의 턱이 끼워진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토록 오랜 시간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영국박물관에서 철저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원인은 따로 있었다. 1924년 다트(Raymond Dart) 교수에 의해 남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Australopithecus africanus)의 두개골은 실제 침팬지의 두개골처럼 작았다. 이에 비해 필트다운인은 뇌가 크고 아래턱이 발달하였다. 이 화석은 위대한 영국에서 출현한 커다란 두뇌용량을 가진 인간의 조상이라는 백인 우월주의에 적합했고 인간이 머리부터 발달한다는 관념론을 지지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2000년에 일본에도 있었다. 일본의 후지무라 신이치는 구석기 유물의 발견자로 유명했다. 그의 발견은 일본에서의 인류 거주의 역사를 70만 년 전으로 이끌 만큼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런데 땅을 파헤치기만 하면 구석기 유물을 발견하는 놀라운 황금의 손은 곧 의심받기 시작했다. 결국 이 발견은 후지무라가 몰래 유물을 땅속에 묻고 다시 발굴한 사기 사건임이 밝혀졌다.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일본에서 이러한 사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2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유골을 제시하며 최초의 인류가 중국에서 살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북한의 경우도 상원 검은 모루 유적을 100만 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남한도 단양 금굴 동물화석을 두고 70만 년 전 유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유독 일본만 후지무라 신이치의 발견 이전까지 이러한 주장을 할 만한 유적이 없었던 것이다.

좌파 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에 따르면 정보는 우리에게 "문화, 희망, 그리고 기대"라는 필터를 통해서 전달된다고 한다. 흔히 이것을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라고 하는데, 과학적 증거들이 있어서 실제 증거들에 따라서가 아니라 바라는 소망대로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이것이 진리에 대한 관심도 없이 의도적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잘못된 해석, 왜곡, 속임, 부정직, 또는 전도(perversion)된 진리라고 불린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

1989년 미국의 유타 대학의 두 화학자 폰스(Stanley Pons)와 플라이슈만(Martin Fleischmann) 교수는 자신들이 저온 핵융합에 성공했다고 (논문이 아닌) 기자회견 통해 발표하였다. 일반적으로 핵융합은 1억도 이상의 초고온이 필요한데, 상온에서도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이 발표는 인류의 에너지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 발표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황우석 박사의 경우처럼 완전한 조작 또한 아니었다. 전기분해 실험에서 상당한 열이 방출되자 이를 핵융합이 일어난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왜 유능한 중견과학자들이 성급하게 주관적인 결론을 내렸을까? 이미 상온 핵융합기술은 물리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고, 성공한 사례도 전무했기 때문에 이 기술에 대한 불신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 기술이 상품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 분야도 실현가능성면에서 불신이 높았다. 그나마 줄기세포 연구는 성체 줄기세포 연구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서로 경쟁하고 있고, 배아줄기 세포 연구는 다시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 연구와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들 중 성체 줄기 세포 연구보다 배아 줄기 세포 연구가 그나마 상업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98년에 미국 위스콘신대 제임스 톰슨 박사가 수정란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런데 수정란 배아 줄기세포의 경우 인간의 수정란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종교계의 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종교계의 반발은 윤리문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체세포 배아 줄기세포 연구자들에게 절호의 기회를 주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황우석 박사는 2004년 인간 체세포 복제를 이용해서 줄기세포를 획득했고, 2005년에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와 함께 성공률도 0.4%에서 6%를 끌어 올렸다는 ‘엄청난 성과’를 담은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곧이어 STEPI라는 과학기술 평가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 연구가 2015년에 20조원이라는 경제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할 즈음 이 모든 것이 사기였음이 드러났다.

이 두 사례는 자본에게 상품화 가능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지 못하면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없는 미래 기술에 해당한다. 만약 이러한 기술을 연구하는 과학기술자들이 비정규직(계약직)이라면 연구 성과에 대한 압력이 더욱 가중될 것이고 연구 성과를 조작하고자 하는 유혹은 커질 것이다. 또 이들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전공과 관련 있는 기업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주식을 보유하거나 창업하였다면 자신이 투자한(설립한) 회사의 미래가치(주가)를 높게 평가 받기 위해 과학적 성과를 조작하고자 할 것이다.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

1997년 미국 브라운대학의 부교수이며, ‘로드아일랜드 메모리얼 병원’에서 직업병 담당의사인 컨(David Kern) 박사는 포터킷(Pawtucket)에 있는 한 섬유회사에서 근무하다 폐질환에 걸린 노동자 두 명의 조사를 의뢰받았다. 컨 박사는 지역의 한 섬유공장으로부터 그가 병원에서 치료한 바 있는 폐질환 환자 두 명을 조사하는 일을 의뢰받았다. 그는 150명이 일하는 공장에서 같은 질환에 걸린 6명의 환자를 더 발견하였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4만 명당 한 명 꼴로 발명하는 병이기 때문에 직업병이 확실하였다. 컨 박사가 이 사실을 논문에 발표하려 하자 섬유회사는 ‘사업비밀’을 빌미로 발표를 막았지만 컨 박사는 언론에 공개하고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결국 그는 대학과 병원에서 해고되었다. 이 경우는 다행히도 과학자가 자본에 반대했기 때문에 세상에 일찍 공개된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1985년 1월 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에서 한국의 경남 온산공단 인근 주민 500여명이 카드뮴으로 인한 공해병인 ‘이타이이타이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온산 주민들은 1982년부터 팔, 다리, 허리에 심한 통증을 느끼는 증상이 크게 번지고 있다고 호소해왔었다. 공해문제연구소는 이 ‘온산병'의 원인이 공단내 비철금속 공장들의 오염물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들은 정부와 자본 편을 들었다. 과학기술자들은 너무나 뻔했던 이 병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고(않았고), 그래서 현재까지도 ‘괴질’ 혹은 ‘온산병’이라는 원인 불명의 병으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철저하게 은폐되어 과학기술자들의 원인 규명에 정부와 자본이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일부 사례는 자본의 개입을 충분하게 짐작하게 해준다.

실리콘 겔 유방 보형물은 1960년대 초 성형외과 의사에 의해 고안되었고, 1962년 다우코닝(Dow Corning)에 의해서 제품화되었다. 1980년 중반부터 후반까지 실리콘 겔 유방 보형물이 쥐(rats)에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점차 피해자가 속출함에 따라 1994년 미국의 피해 여성들은 다우코닝사(社)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실리콘 유방 수술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마요 클리닉(Mayo Clinic)과 하버드 의대에서는 실리콘 유방 이식술과 부작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들은 직 간접적으로 다우 코닝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마요 클리닉 연구 결과는 실리콘 유방 이식 수술과 자가면역질환과의 관련성 여부를 확인하기에는 너무 적은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971명의 조사 환자 중에서 이유를 밝히지 않고 149명의 환자를 배제하였으며, 또 발표 시점에 또 73명의 환자 기록을 배제하였다. 또한 유방이식술의 부작용에는 면역 질환이외에도 많은 비정형적인 질병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

하버드 의대의 연구결과에서도 유방 이식 수술을 받은 지 40.5년, 37.5년 된 여성들을 연구에 포함시켰다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 유방 이식 수술의 경우 1962년에 시작했고 그 연구 결과가 1990년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가장 오래된 경우가 28년에 해당한다. 또 이 연구에서는 유방 시술을 한지 30일 미만인 환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과학사기의 피해자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든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든 이들 두 경우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본가의 이익에 맞추어져 있고, 또 직접적인 피해는 노동자-민중에 전가된다는 점이다.

자본을 향한 과학사기는 상품화 이전에 벌어진 사건이며, 과학기술자 사회 자체적으로 해결된다. 그러나 핵융합기술과 같이 물리나 화학분야와는 달리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이 이루어지 때문에 과학사기 사건은 과학기술자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황우석 사기논문 사건에서도 보듯이 2000여개의 여성 난자를 소모되어버렸다. 그 난자 중 상당수는 불임과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와 그 가족들의 것 혹은 황우석 박사의 사기에 속아 ‘자발적’으로 기증한 것이다. 이도 모자라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더 많은 신선한 난자를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피해가 큰 것은 자본에 의한 과학사기이다. 상품에 적용된 과학기술은 자본가가 직접 투자했기 때문에 자본가는 기술의 공개여부는 물론이고 연구 결과 조작에 직접 개입한다. 이 경우 자본이 직접 과학사기를 진두지휘하기 때문에, 과학기술자 사회의 자정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과학기술자 집단과 자본이 단합할 때는 온산병과 실리콘 유방 이식 수술과 같이 이 법적 싸움으로 가거나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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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시각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참세상에 기고한 글을 일부 보충해서 [현장에서 미래를]에 제출한 것입니다. 암튼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다른 차원에서 조명해 보려고 했습니다. 글을 적으면서 고민의 핵심은 종교적 우파의 논리와 기술주의적 논리의 함정을 견지하면서 그들의 옳은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입장을 다급하게 정리하느라 빈틈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읽어 보시면 많은 의견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글의 version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아직 마지막 version이 남았습니다 */  

 

노동자의 시각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저항 주체를 중심으로 난자매매, 대리모 문제를 바라보자. Ver1.1)


김영식 / 한노정연 연구원, 과학기술자

한 차례 황우석 교수의 과학 파노라마가 노랗게 지나간 자리에, 언론은 황 교수가 ‘자발적 기증’을 받았다는 난자 이야기로 다시 물들이고 있다. 배아 줄기 세포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 중 상당수는 '자발적 기증'이라는 황 교수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그의 연구에 사용된 난자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매매한 난자였고 심지어 같은 팀 연구원의 난자까지 사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1월23일에는 한 국회의원에 의해 우리나라에 만연된 난자매매 사례들이 발표되었다.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 2곳에 개설된 7곳의 카페에서 난자 매매 의뢰 152건, 구입 의뢰 26건 등 179건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역시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었다. 이번 발표에서는 난자 매매뿐 아니라 과거 씨받이를 연상케 하는 대리모 문제도 밝혀졌다. 현재 난자를 거래하거나 대리모를 구하는 국내 인터넷 사이트는 1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이트 당 회원이 2000∼3000명인 것을 감안하면 거래 희망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임신-출산 기술(reproductive technology)

문제가 되고 있는 난자매매와 대리모는 불임부부를 위한 인공수정(체내 수정)이나 체외수정에 이용된다. 18세기 말부터 적용된 인공수정((IUI)는 자궁경부의 점액이 비정상적이거나 정자의 수가 다소 적은 경우 시행하는 방법인데, 배란기에 정자를 채취하여 여성의 자궁 내에 이를 넣어 주는 방법이다.

그리고 체외수정 및 배아이식(IVF-ET)이 있는데, 여성의 난자와 남편의 정자를 수정시킨 후 여성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이다. 이 기술로 나팔관이 폐쇄된 여성은 물론 난소가 없는 여성, 폐경기가 지난 여성도 아이를 가지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의 형태로 시작되다가 188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리모를 통해 인공수정으로 발전하였다는 보고가 있다.

여성 난자의 또 다른 사용처는 배아 복제기술이다. 배아 복제 기술에는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가 있다. 생식세포는 말 그대로 정자와 난자를 이용해서 복제하는 방법이고 체세포 복제는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서 복제하는 방법이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의 난자를 필요로 한다. 생식세포 복제는 1983년 복제생쥐 이후에 양(1986), 소(1987), 토끼(1988), 돼지(1989), 쥐(1993), 염소(1997)로 이어졌고 체세포 복제는 유명한 복제양 돌리(1997)로 부터 시작해서 소(1998), 쥐(1998), 염소(1999), 돼지(2001), 고양이(2002) 등으로 이어졌다.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역시 최초(2003년 2월. 논문 발표는 2004년 2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를 성공시켰기 때문이다. 이후 인간복제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고, 복제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크게 일었다. 그러자, 배아 복제 연구가 활로를 찾은 것(응용분야)이 치료를 목적으로 복제된 배아에서 줄기 세포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난자매매와 대리모

한국의 경우 난자 매매는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금전 거래가 아닌 난자기증은 허용하고 있다. 영국도 불임 환자가 난자 제공 여성을 스스로 데려오는 것이 가능하다. 단 ‘인간 수정 및 발생 기구(HFEA)’에 등록을 해야 한다. HFEA는 최근 자문을 하면서 정자 기증은 한 번에 50 파운드, 난자는 최고 1천 파운드 정도를 적정 보상비로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도 난자를 제공한 여성에게 돈을 주는 것은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 통상 난자 수혜자가 제공자에게 2500달러에서 1만5000달러를 지급한다. 난자 제공자를 신문 광고 등을 통해 모집할 수도 있다. 스웨덴, 뉴질랜드 등에서도 난자 제공자를 공식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크로아티아에서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는 수출할 목적으로 그의 환자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한 사례가 적발된 적이 있었다. 루마니아에서는 ‘Global Arts Clinic' 이라는 곳에서 사람들로부터 난자를 추출하여 유럽연합으로 수출한 사실이 2004년 말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대리모의 경우 영국, 이스라엘 등 10여 개국에서는 관련 법안은 없지만 대리모계약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는 한걸음 더나가 대리모를 공식적으로 등록시켜 정부가 대리모에게 일정액의 보조금을 지급해주는 방안을 검토(2001년)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불임치료 센터에서 불임 부부와 대리모의 임신, 출산 계약을 중개해 주어 상업적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경우, 영리적인 목적의 대리모 계약과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한국도 관련 법안이 없지만 대리모 출산 건수는 불임전문병원별로 한해 10여건, 전국적으로 약 100여건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2001년). 그들은 대부분 극도로 어려운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실업가정의 주부, 이혼녀, 카드빚에 찌들린 젊은 여대생들이다.

그리고 여성

초기 많은 여성운동가들은 새로운 인공수정을 비롯한 임신-출산 기술이 낙태 기술처럼 그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더 큰 선택권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여성이 임신, 출산 수유라는 생물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양육을 맡게 되었고 그래서 생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대리모와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몸 밖에서 임신과 출산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불평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독신 여성을 비롯하여 레즈비언과 게이들과 같은 성적소수자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갖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현실과 달랐다.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의 출산 능력을 대상화하고 남자의 유전자를 계승시키려는 욕망에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출산으로 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한 남자가 유전적 자손을 얻게 하는데 더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일반 의사들은 독신 여성이거나 레즈비언, 생활 보호 대상자 및 기타 좋은 부모로 판단되지 않을 때는 이 시술을 거부했다. 법원에서도 정상적이라 생각되지 않는 부모의 경우 이러한 시술이 허용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를 위해 아버지 역할을 할 사람이 없을 때, 예를 들어 레즈비언이나 독신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권리는 정자 기증자에게 주어진다.

대리모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아이에게 주려는 남성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일반적으로 아내가 불임일 때 대리모에 의존하는데, 이 경우 아버지와 아이들 간의 생물학적 관계는 높아지지만 상대적으로 어머니의 경우 가치가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은 여성을 임신과 출산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는 것을 모든 여성들만의 자연스러운 상태로 강제하고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할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더욱이 여성의 신체는 새롭고 증명되지 않은 기술에 대해 실험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생학과 인종 차별

나치는 우생학을 이용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유태인과 집시를 학살하기도 하였다. 나치보다 먼저 우생학을 적용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었다. 미국에서는 1926년에 우생학을 기초로 단종 법안이 제정되었으며 이 법안은 정신박약아, 불구자, 유전적 질병을 가진 자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강제 불임 수술을 시행하였고, 심지어 알코올 중독자나 범죄자에게도 적용하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이 법이 시행되는 기간 동안(1926-1935) 유전병, 신체부자유인, 정신박약아들에 대해 9931명을 강제로 단종 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우생학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 유전공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임신초기에 양수 검사나 초음파 검사를 통해 남자아이만을 선별한다든지, 유전적 결함이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일은 흔한 일상이 되었다. 난자매매의 경우도 상류층 대학의 여성들의 난자를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경향을 반영한다.

또 미국의 흑백간의 인종차별 문화는 임신-출산 기술에 그대로 반영된다. 흑인 여성의 경우 백인여성보다 불임률이 1.5배 높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각종 성병에 대해 치료를 못하고 있고, 영양 결핍과 출생과 낙태의 어려움 그리고 작업환경의 위험성 등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공수정의 경우 백인의 1/3 수준 정도뿐이다.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이지만 인공수정을 가장 많이 하는 부부는 고학력이며 풍요로운 백인들인 것이다.

위험성

일반적으로 여성의 난자 추출 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 과정과 유사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장기기증에 비해 훨씬 적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추출할 때, 한 번에 많이 얻기 위한 과배란 방법을 선택하는데, 이 방법은 신장 이식과 유사한 외과적 절차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여성의 난자 추출과정은 남성의 정자 추출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오히려 신장 이식 과정과 유사하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오히려 신장 추출보다 더 위험한 것이라는 주장한다.

과배란 과정에서는 난소에 다수의 난포가 생기도록 하기 위해서 자궁내막 위축제인 루프로리드 아세테이트(leuprolide acetate)를 사용한다. 이 약은 관절통에서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그리고 가슴 통증이나 메스꺼움, 우울증, 시력감퇴, 뇌하수체 기능 상실, 고혈압, 빈맥, 천식, 심장기능 장애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뼈 밀도 역시 전체 뼈에 대해 7.3% 정도 낮아진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리고 난소를 과자극해서 낭포를 만들 때, 난소가 커지거나 채액 체류와 같은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자주 발생되는 부작용으로는 난소과자극증후군(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 OHSS)이 있는데, 이것은 혈액응고 장애, 신장 손상 등의 위험이 나타난다. 이 증후군의 발생건수는 0.5-5%에 이른다. OHSS 증세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난소 자극은 폐색전증(Pulmonary Embolism), 급성 동맥폐색 (Acute arterial occlusion), 뇌졸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배아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난자를 추출할 때 체외 수정보다 윤리적 측면에서 훨씬 더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과배란에 대한 유혹이 많이 있다. 체외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는 이유는 체외수정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이고, 실패할 경우 다시 반복적으로 난자 추출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단지 실험용 난자를 많이 얻기 위해서 이다. 황우석 교수팀도 처음에 1개의 배아를 복제하기 위해서는 242개의 난자가 필요했다.

자본주의, 상품화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저항 주체가 생긴다.

이러한 임신-출산 기술의 위험성에 대한 주장은 모두 옳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에서만 본다면 임신, 출산 낙태의 문제에 대해 자연적인 것이 좋은 것으로 보는, 다시 말해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자치권과 선택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대립지점은 배아의 위상에 대한 논의로 부터 시작한다. 반대하는 측은 배아가 인간이거나 인간이 되기 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찬성하는 진영은 매우 다양한데, 배아 줄기에 사로잡혀 있는 관념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은 다양하지 않다. 이들 두 진영 모두 여성은 빠져 있다.

전형적인 맑스주의 입장도 이와 유사한데, 단순히 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이라고 가정함으로써 가족 내의 노동 분업에 대해선 본질적으로 비-착취적인 것이며 자연적인 것이라고 선험적으로 가정해 버린다.

이렇게 임신, 출산 등의 생식기술과 대리모가 모든 여성들에게 억압적이라고 주장한다면, 자신의 딸을 위해 손녀를 낳아 주는 할머니의 사례나 이타적으로 난자를 기증하거나 대리모로 자청하는 사례들을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생각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연관된 권력관계를 너무 단선적으로 보는 것이며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저항적 의미를 보지 못한다.

임신-출산 기술을 둘러싼 정치에는 분명 특별한 무엇인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새로운 임신-출산 기술로 아이를 낳기 위해서 5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정자와 난자를 생산해서 기증할 사람과 대리모 그리고 태어난 아이를 키워줄 사람이 있다. 이 경우 진짜 부모는 누구일까? 보통의 경우 아이를 키워줄 사회적 부모, 즉 임신-출산 기술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소비자가 있다는 말은 생산자가 있다는 말을 의미한다. 생산자는 곧 노동하는 노동자를 뜻한다. 난자 매매에서 여성은 난자라는 몸의 일부를 상품을 제공하기 위해 노동하고 대리모는 태아에서 출생까지 아이가 살아갈 환경과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한 노동을 한다. 이와 같이 화폐를 위해 여성은 대리모 노동을 판매하고 자신의 몸속에 생산된 난자를 상품화한다. 이러한 노동은 집창촌의 성노동자와 비교되는데 성 노동은 비생산적인 성을 상품화 하는데 비해 임신-출산과정의 노동은 기술을 통해 생산물을 상품화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성노동자 운동이 있듯이 대리모 노동자운동, 난자 생산 노동자 운동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후기 자본주의의 영향은 자연적인 영역과 생산적인 영역,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의 만리장성을 무너뜨린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으로 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적 경향을 통해서 여성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임금 노동과 마찬가지로 잉여가치를 착취당하고, 생산결과물로부터 소외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저항의 주체인 노동자의 입장에 설 때만, 배아나 태아의 생명존중을 내세우면서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적 우파진영이나 그 모든 기술에 유토피아적 전망을 제시하는 친시장주의자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난자 매매에 대한 과배란 처방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고발하고, 음성적으로 거래되어 착취당하는 대리모/난자매매 문제 그리고 임신-출산 기술에 배어 있는 우생학적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논란 속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것이 있다면 가정에서 임금을 지불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임신-출산 ‘노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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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과학 철학 I

노동자와 과학 철학 I

 

앞으로 [현자에서 미래를]에서 필자는 진화론, 우주팽창이론, 카오스 정리, 상대성원리 등 현대 과학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참고로 양자역학은 현재 노동자의 힘에 연재 중에 있다. 일반적으로 과학은 자연의 객관진리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 어떤 비판도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수사과정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결과나 DNA 분석의 결과는 결정적인 증거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 속에는 숨어있는 1인치가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과학수사의 결과인 ‘유서대필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레닌에 의해 극복된 경험주의의 부활을, 우주 빅뱅이론은 진화론으로 극복된 종교의 창조론을, 유전자연구는 나치와 함께 멸망한 우생학과 유사한 유전자 결정론을 부활시키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자본주의 속에서 격리된 섬으로 남을 수 없다. 자본주의속에서 발전한 과학은 자본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영향을 받은 과학은 자본가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것이 현대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현대 철학을 같이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은 현대과학의 흐름을 맑스주의 관점에서 잘 정리되어 있어 번역하였다. 이 글의 저자 알랜 우즈(Alan Woods)는 ‘국제 맑스주의 경향 International Marxist Tendency’이라 알려진 ‘맑스주의 인터내셔널을 위한 위원회Committee for a Marxist International’를 이끌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반항하는 이성: 맑스주의와 현대과학 Reason in Revolt: Marxism and Modern Science“이 있다. 이 글은 원문을 중심으로 이해하기 쉽게 일부 보충하고 일부 삭제하여 '수정 번역'하였다. 원문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site에서 볼 수 있다. (역자 주)

 http://easyweb.easynet.co.uk/~socappeal/philosophy/chapter6.html 


 

노동자와 과학 철학 I

 

-20세기 현대 철학

우연한 기회에 장거리 택시 안에서 철학 어쩌고..하는 책을 꺼내 들었다. 그 책을 본 택시노동자의 말은 자본주의 시대에 철학의 위상을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도에 관심 있으시군요." 이렇듯 우리시대(자본주의시대)의 철학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돌이킬 수 없는 쇠퇴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 철학에는 새롭고 의미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철학을 경멸하고 있고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무관심한 것은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여기서 극단적인 노동 분업의 파괴적인 영향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상아탑 속에 격리된 대학교수들은 노동자들이 평생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게 모호한 글을 적고 있으며 심지어 동료 학자들조차 답하기도 어렵게 글을 적고 있다. 사실 그들의 글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나마 미미하게라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동료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생계를 유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적 철학자들은 일부러 이해할 수 없게 정교하게 설계된 듯한 특수 용어나 기호에 호소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자기들만의 비밀 언어를 가지고 있어 그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고대 승려-카스트와 닮아 있다. 그러한 난해한 철학 속에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있다.  

 

오래전에 요제프 디쯔겐(Joseph Dietzgen)1)은 주류 철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항하는 방위수단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문 철학자들은 냉전시대에나 가능한 말이라고 부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맑스주의에 반대하고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투쟁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냉전시대에는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뿐이고 지금도 여전히 사실이다.


이러한 흐름에 새로운 것은 없다. 맑스주의가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상당한 힘을 발휘하면서 나타난 이후로 지배계급은 변증법적 유물론을 시작해서 모든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맑스주의 이름만 나와도 그들은 조건반사식으로 대응한다. "낡은", "과학적이 아닌", "오래전에 반증된", "형이상학"과 같이 초라하고 지루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철학의 신성한 전당에서 기피인물 취급받았던 사람은 맑스와 엥겔스뿐만이 아니었다. 불상하게도 헤겔은 한때 뛰어난 철학자의 철학자로 칭송받았지만 이후 아무도 인용하지도 배우려하지도 않는 부끄러운 침묵의 음모 속에 묻혀 버렸다. 일반적으로 직업적 철학자들의 경우 경력을 관리해주고 연구자금을 지급해 주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한 물질적 이익뿐아니라 한때 실제 세계에 대해 중요하고 심오한 것을 실제로 말하는 철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싫었을 것이다.




 

과학 철학의 주요 흐름


철학자 앙리 베리그송(Henri Bergson)이나 존 듀이(John Dewey), 조지 산타냐(George Santayana)와 화이트헤드(A. N. Whitehead)를 제외하면, 현대 서구 철학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실존주의와 관계가 있는 주관주의 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2)을 포함해서 다양한 종류의 "논리 실증주의"이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철학은 라틴 국가, 특히 프랑스에서 더 많은 반향을 일으켰고 후자는 지금까지 앵글로-색슨 지역에서 지지 받았다. 이 글에서는 후자 쪽에 더 많이 집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과학 철학을 대표한다는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미국과 영국에서 지배적인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흐름은 신-실증주의, 논리 경험주의, 경험비판론, 분석 철학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장하며 여러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이 영국과 미국에서 지배적으로 일어났지만 독일과 특히 오스트리아 철학자들에 의해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세기 전환기에 물리학자 에네스트 마흐(Ernst Mach)는 경험-비판론을 발전시켰다. 마흐는 물질세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약간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것은 원래 그 철학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철학은 20세기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이 철학은 18세기 비숍 버클리 사상에 기초하고 있으며 한마디로 새로울 것이 없는 최악의 주관적 관념론이다. 그러나 신-실증주의자들은 그들을 따로 과학적 실증주의자로 부르며 버클리가 그들의 원 저자임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비숍 버클리 사상은 근본적으로 영국의 협소한 경험주의 철학에서 나왔으며, 인간의 모든 지식은 우리의 감각으로 부터 나온다는 로커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감각-지각으로 부터 나오는데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과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확실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보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알 수 있는 모든 것은 나의 감각-지각이다.' 이러한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다다르는 결론은 이 세상에는 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유아론(solipsism, 라틴어로 solo ipsus -"I alone")이라고 한다. 물질적 세계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엥겔스는 1892년 [공상적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 Socialism Utopian and Scientific]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우리 불가지론자는 우리의 모든 지식이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받는 정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라고 그는 부연 설명한다―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사물을 지각하고 그것을 정화하게 모사할 수 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또 계속해서 불가지론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즉 사람이 사물 또는 사물의 속성에 대해 말할 때 실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사물 자체 또는 사물의 속성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사물들이 감각기관에서 일으키는 지각뿐이다.


 이 말은 확실히 논증을 통해서 반박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은 논증하기 전에 행동(실천)하고 있었다. "태초에 행동(실천)이 있었다." 인간은 행동(실천)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로 논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이미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푸딩이 맛있는지 없는지는 먹어 보면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우리가 지각하는 물체의 속성을 우리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얻은 지각이 옳은지를 정확히 시험해 볼 수 있다. 만일 그 지각이 틀렸다면 그 사물을 이용하려던 우리의 판단은 틀린 것이며, 그 사물을 이용하려는 온갖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목적을 달성한다면, 그리고 그 사물에 대해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를 갖는다면, 우리가 사물의 속성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우리 외부의 진실과 일치하고 있다는 긍정적 증거이다."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버클리의 사상을 연상케 하는 마흐의 기본적인 언급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의 감각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유물론자들은 여기에다 "세상은 나의 감각과 독립적으로(상관없이) 존재한다."는 말을 추가한다. 이런 기본적인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엄청나게 불합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내가 알 수 있는 전부는 나의 감각뿐이다. 그러므로 나 이외에 다른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기 전에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세계를 관찰하기 전에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눈을 감으면 세상은 사라진다! 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나 철학자뿐만 아니라 일부 매우 존경받는 과학자들까지도 이와 아주 유사한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다. 마흐도 유명한 물리학자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양자역학의 주류 흐름에 반발해서 '누군가 달을 보고 있을 때만 달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1981년 물리학자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은 "아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한다.


마흐의 주장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에 의해 완전히 반박되었다. 여기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물질이란 인간의 감각에 의해 주어지고, 우리의 감각에 의해 복사되고 촬영되고 모사되지만, 그것과 독립하여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를 표현하기 위한 철학적 범주이다." (Lenin, Collected Works, Vol. 14, p. 130.) 맑스와 엥겔스도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실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우리 시야의 한계를 넘어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통일성(공통점)은 물질성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두세 명의 마술사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 및 자연과학의 장구한 발전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Engels, Anti-Duhring, p. 54) 이것은 이미 헤겔도 언급한 바 있다. "일상의 언어로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에 의해 의미를 주고 감각에 의해서 외부와 닿는다."(Hegel, Logic, p. 67.)


흄과 칸트로 부터 시작해서 마흐까지 그들의 근본적인 실수는 감각을 개인(주체)과 물질세계(객체)를 분리하는 어떤 장벽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사실 감각 자체는 신경계, 뇌, 신체, 음식 등 물리적 환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감각을 신체와 같이 어떤 식으로 조직된 물질과 분리하여 독립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관념주의자들의 사유 중에서 최악이다. 그것은 과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종교와 관념론과는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사유는 사유를 하게하는 물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사유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 조직된 물질(예를 들어 신체)의 생산물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특히 자연을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우 특별한 부분이다. 주관적 관념론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다음과 같다: 만약 물리적 세계가 사람이 인식할 때만 존재한다면,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 혹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세상이 어떻게 존재했겠는가? 논리 실증주의자들은 지금까지도 그들의 논리를 비틀고 돌려 보지만 이러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만족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의식", "사유" 등을 이미 자연스럽게 주어진 그 무엇, 본래부터의 존재, 자연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의식과 자연, 사유와 존재, 사유법칙과 자연법칙이 일치하는 것을 매우 이상하게 여겨야 된다. 그렇다면 다시 도대체 사유와 의식이 무엇이고 또 어디에서 나왔는가라는 질문을 해보면 그것은 결국 인간의 두뇌의 산물이라는 것, 인간 그 자체도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또 이 환경과 더불어 발전하는 자연물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자연의 산물에 불과한 인간두뇌의 산물이 나머지 자연과 연관성에서 모순되지 않고 서로 잘 조응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ngels, Anti-Duhring, p. 44.)그리고 레닌도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직업적(주류) 철학자들에 의해 방황하지 않는 모든 과학자들을 위해 아울러 모든 유물론자들을 위해 감각은 실재로 의식과 외부 세계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통로 역할을 한다. 감각은 외부 자극 에너지를 의식적인 것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 주위의 일상 경험 속에서 그리고 수백만 번 관찰되었고 관찰되고 있다. 관념론에서는 감각을 의식과 외부세계의 연결 통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로 부터 의식을 구분하기 위한 울타리, 벽으로 보고 있다. 즉, 외부 현상의 이미지가 감각에 조응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한 존재"로 본다. (Lenin, Collected Works, Vol. 14, p. 51).


 외부 세계가 실재하는지 실재하지 않는지의 문제는 사실 철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그것은 연구를 통해서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존재 조건을 변화시키고 지배하고 다시 스스로 변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완전한 경험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이것은 맑스의 포이에르바흐의 테제 두 번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인간의 사유가 객관적 진리성을 가지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인간은 자기사유의 진리성을, 즉 현실성과 힘을, 그 생명력을 실천을 통해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천이 없이 사유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 하는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적인 문제이다". (MECW, Vol. 5, p. 3.)


헤겔주의 관념론에 대항한 경험주의


경험주의는 앵글로-색슨에 뿌리 깊은 전통이 있었지만, 19세기 후반에 영국의 대학에서 지배적인 철학은 헤겔주의였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적당히 신비주의적이며 종교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브래들리(Bradley), 맥타카드(McTaggart)와 스털링(Stirling)등 당시 주류 헤겔철학자들이 헤겔에 대해 핵심을 빼고 관념주의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스털링은 [헤겔의 비밀]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 책에 대해 레닌은 "비밀은 잘 유지 되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들 관념론자들은 헤겔 철학에서 모든 가치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신비주의적인 면만 보존하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맥타카드는 시간의 개념은 일관성이 없으므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신비주의적인 허튼 소리를 무어(G. E. Moore)나 러셀(Russell)과 같은 더 젊은 세대 철학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의 철학은 이러한 관념론적 신비주의에 대한 건강한 대응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대체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대안을 모색했지만 상당히 낡은 영국적인 것-"상식"과 "사실"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그들은 철학에서 관념주의를 청소하기위한 시도로 다시 경험주위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의 슬로건은 뉴턴의 슬로건과 같았다. "물리학, 형이상학을 두렵게 하라." 관념론자들의 잘못된 이론화 대신에 경험주의자들은 어떤 이론화작업도 선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자연과 같이 철학에서도 아무것도 없는 진공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형이상학에 대한 유일하게 살아있는 대안은 일관성 있는 유물론-변증법적 유물론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영향을 받은 이 혁명적 철학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오류를 범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헤겔 철학에서 관념주의의 장식을 벗겨버리고 합리적 핵심을 드러내었다. 아무튼 그들은 이미 완전히 극복되어 다시 볼 필요도 없는 그런 초기 관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베이컨(Bacon), 홉스(Hobbes)와 로커(Locke)에 의한 영국 경험주의 학파의 발전 계보는 이미 버클리와 흄과 함께 장기적인 하강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점차적으로 완전히 막다른 골목으로 끝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에 의해 재생 시도를 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생명력 잃었고 속류화만 가속시켰다. 경험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는 : "나는 세상을 감각을 통해 해석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자명한 이 명제에, 더 추가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은 내 감각으로 부터 독립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각은 최종적으로 모든 인간지식의 원천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많은 실수의 원천이기도 하다. 경험주의 초기에는 인간 사유에 있어서 거대한 도약을 이끌어 내었다. 과학을 지배한 종교 독제를 거부하였고 실험과 관찰에 기초한 진정한 과학적 방법의 승리를 이루어내었다. 그리고 스콜라 학파들의 무능한 관념주의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 유물론은 불완전하고 일면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유행하고 있던 기계론적 사고방식의 먹이가 되었다.


철학에서 스피노자(Spinoza), 라이프니츠(Leibniz), 칸트(Kant),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겔과 같은 관념론자들에 의해 거대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일종에 역설이다. 이 모순은 맑스와 헤겔에 의해 해결되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유물론의 과학적 방법과 변증법을 결합시켰다.


무어는 명예롭게도 헤겔 주의적 신비주의를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경험주의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신비주의도 반대하려고 노력했다. 버클리와 흄의 예는 경험주의 철학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그 종착지는 바로 주관적 관념론, 유아론(오직 "나"만 존재한다는 관념)의 혼돈속이다. 그런데 무어는 그의 논문, [판단의 본질(1899)]에서 사람의 감각에 독립해서 물리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1925년에 그의 에세이 [상식의 옹호]에서 그는 "나는 오늘 아침 밥을 먹었다(그래서 시간은 존재한다) 그리고 내 손에 연필을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외부 세계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마흐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3)가 신비주의적 난센스를 선호한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런 표면상의 논증은 키니코스학파의 디오게네스(Diogenes)가 위로 아래로 걸어서 운동의 존재를 "증명"했을 당시의 철학에서 한걸음도 전진시키지 못한 것이다. "상식"은 어떤 한계 내에서 자신의 논리를 세울 수 있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훨씬 더 심각한 실수를 초례하기도 한다. "상식"으로 지구는 평면이며 태양이 지구주의를 돈다고 할 때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아무리 애를 쓰도, 우리는 바로 주어지는 감각-지각의 세계를 훨씬 너머설 수 있는 이론적 일반화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무어는 "상식에 대한 믿음"에 호소하면서 형이상학에 대한 전쟁을 시도했지만 그의 철학은 많이 비어 있다. 왜 다른 것들 중에 꼭 이러한 상식에 호소하는가? 결국 이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편견에 사로잡힌 일상에 호소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는 현 상태에 뿌리를 둔 본질적으로 주관적 철학에 묶일 수밖에 없다.


논리 원자론(Logical Atomism)


 무어가 "상식"으로 회귀한 반면 러셀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갔다. 러셀과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근원적 구조에가 세계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분석하면 실재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언어 속에 진실의 싹은 있다는 말은 헤겔이 이미 오래전에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도 역시 좁고 일면적이므로  결국 막다른 길목에 도달한다.  


"프라이팬에 나오면 다시 불속이다" 러셀은 무어와는 다른 새로운 이론과 방법을 시도했다. 논리학을 과학적 기초위에 어떻게 올려놓을 수 있을까? 수학적 언어를 가져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젊고 뛰어난 오스트리아인 비트겐슈타인의 영향 하에 1918-19년 동안 그는 [논리 원자론의 철학] 이라는 일련의 글을 발표한다. 여기서 그는 언어의 근본적인 작용을 밝히기 위해 그리고 그것에 의해 언어가 기술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캠브리지 대학으로 옮긴 뒤 처음에는 러셀과 카르넵의 입장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후 수학과 논리학의 토대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일상 언어로 연구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철학은 언어에 대한 비판이다."라는 생각을 발전시켰다. 그가 밝힌 목적은 "언어를 수단으로 우리 지식에 주문을 걸어버리는 것에 대항하여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을 과거에 미해결된 중요한 철학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최종 해답"으로 밀고 나간다. 마치 과거에 미해결된 문제가 어떤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서 그리고 사유의 형식적 결함 때문에 발생된 것처럼, 단지 문법과 구문론을 잘 정리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지금 2천 500년 만에 처음으로 옥스포드와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위대한 사람이 갑자기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물론 맑스도 포함해서 이들과 같은 얼간이(?)들이 만들어 놓은 모든 혼란을 빠르게 정리하고 명확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논리원자론은 언어에 대한 완전히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그 이름은 당시 물리학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가장 단순한 문장을 "원자적"이라 불렀고 더 복잡한 문장을 "분자"라고 하였다. 몇몇 구문을 물리학에서 빌려온 러셀은 언어에 관한 그의 주장이 과학적 분위기가 풍기기를 바랐지만 그의 철학에서 과학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언어는 이렇게 세부를 분해해서 이해하는 "환원주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개별 부분들의 총합보다 훨씬 더 큰 복합적 총체이기 때문이다. 러셀의 접근방식은 좁고 형식주의적인 그의 철학뿐만 아니라 당시 물리학의 한계가 가지고 있는 결함까지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언어 철학의 개념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 이것은 언어에 대한 뛰어난 변증법적인 통찰력을 보인 헤겔은 물론이고 로커, 버클리 흄의 저서에서 이미 나온 것이다.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Tracticus]에서는 그들이 얼마나 언어에 대해 형이상학적으로 사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그들 스스로를 얼마나 옭아매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는 실험 과학을 통해서만 세상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책 [논고]에서는 실험과학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실제 세계와의 관계를 드러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논고]에서는 자신의 철학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들은 헤겔에게 난해함을 비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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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1828-1888 변증법적 유물론의 재구성에 노력한 맑스주의철학자이다. 변증법을 인식론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 그의 중요한 이론적 공헌이다. 독일 철학자·사회주의자·유물론자. 로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철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자로 활동하였다. 맑스·엥겔스와 관점을 달리한 독자적인 변증법적 유물론 체계에 도달했고, 특히 승려주의(僧侶主義)와 불가지론(不可知論)을 공격했다.

2) 언어철학(philosophy of language)는 언어에 대한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언어철학에서는 언어와 실재의 문제, 의미와 지칭의 문제, 의미와 진리의 문제 등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설(J.Searle)은 보다 구체적으로 언어철학의 문제들을 다음처럼 정리하고 있다. "언어철학은 언어의 일반적 특징들, 가령 의미, 지칭, 진리, 검증, 언어행위나 논리적 필연성 등을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언어철학은 철학의 어떤 주제들에 대한 이름이다."(J.Searle, ed., Philosophy od Language, p.1.) 반면에 "언어적 철학(Linguistic philosophy) 는 단어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단어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분석함으로 철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은 전통적 철학의 문제들, 가령 결정론, 회의론, 인과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세계를 기술하거나 묘사하기 위해서 우리가 언어에서 하는 분류나 구분들을 검토함으로써 세계의 어떤 특성을 탐구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적 철학은 철학적 방법에 대한 이름이다."

http://agora.co.kr/cgi-bin/ez2000/ezboard.cgi?db=sellars-p3&action=read&dbf=87&page=6&depth=2 인용

3) 하이젠베르크에 대해서는 노동자의 힘 제 88호 '아무도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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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도 배아복제 논란에 뛰어 들어가 보자.

 

노동자도 배아복제 논란에 뛰어 들어가 보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 111호

 

지난 5월 20일 서울대 황우석ㆍ문신용 교수팀과 미국 피츠버그대 제럴드 섀튼 교수팀은 18명의 여성에게서 기증받은 난자 185개로 31개의 배반포기 배아를 복제하고 여기서 11개의 복제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배아줄기세포 11개는 남성과 사춘기 전 여성, 폐경기 이후 여성 등 연구 참여자(남성 8명, 여성 3명)의 체세포를 이용한 것으로 이 중에는 3명의 난치병 환자도 포함돼 있다


이번 배아 복제의 성과는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댄스그룹 클론의 구성원인 강원래씨 와 슈퍼맨의 크리스토프 리브,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와 모하메드 알리의 파킨슨 병, 로날드 레이건의 알츠하이머(치매)나 선천적인 (제 1형) 당뇨병 등 치료약이 없어 고생하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03년 12월 마리아 생명공학 연구소의 박세필 박사팀은 인간 배아줄기 세포로 쥐의 파킨슨병 치료에 성공했고, 황우석 교수도 척수를 다친 개의 치료에 성공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 싱가포르, 이스라엘, 영국에서는 비교적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소위 좌파정권인 브라질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 지원계획을 공식 발표했으며, 스페인의 좌파 정부 역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 대한 반대 여론도 만만찮은데, 미국의 부시정권을 포함하는 종교적 우파와 그리고 일부 녹색당이 여기에 속한다. 스위스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법안이 당초 2003년 12월 의회에서 채택됐으나 가톨릭교회와 녹색당, 의료윤리단체들이 반발로 인해 국민투표에 붙여지기도 했다. 독일의 녹색당의 볼커 벡 하원 원내총무는 줄기세포 관련 정책을 바꾸는 일은 `위장한 식인(食人)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2005.06.16 연합) 이 처럼 배아복제를 둘러싸고 그 양상이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인간배아복제 ‘화려한’ 성공과 정부와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거대 제약회사의 움직임은 아직 둔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본의 욕구는 ‘돈(자본증식)’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황교수의 연구결과에서 돈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각종 반자본주의 투쟁에 지쳐 있는 우리 노동자들에게도 배아복제 문제를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배아복제란 무엇인가?


우리 몸에 세포는 크게 두 가지 종료가 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체세포가 있고 정자와 난자의 생식세포가 있다. 세포의 종류와 같이 세포 복제도 두 가지 종류 즉,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가 있다.


생식세포 복제는 정자와 난자를 이용한다.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면 세포 분열이 일어난다. 이때 분열할 때 마다 난세포 크기가 작아지므로 ‘난할’이라고 하며 이 작은 난세포를 ‘할구’라고 부른다. 복제의 핵심은 분열과정이 있는 이 할구와 수정되지 않은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것이다.

 

 

(a) 생식세포 복제

 

 

 

   (b) 체세포 복제

그림. 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

(그림 출처 : http://www.cfe.org/parkup/t_ecodemia_4/HYS.hwp)

 

만약 수정란이 8개의 할구로 분열했다고 하면, 난자 8개로 염색체가 동일한 8개의 복제 난자를 만들 수 있다. 즉, 1개의 수정란으로 8개의 일란성 쌍둥이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에 비해 체세포 복제는 수정란의 세포가 아니라 몸을 구성하는 세포(체세포)를 떼어내어 난자의 핵과 치환하는 방법을 말한다. 현재까지는 난자는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두 복제과정(생식세포 복제와 체세포 복제) 모두 여성들로 부터 새로운 난자를 제공 받아야 한다.


할구나 체세포는 핵이 제거된 난자에 주입된 후 세포융합과정을 거치고 인큐베이터에서 체외배양 과정을 거친 후 복제 난자로 성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장한 복제 난자를 대리모의 자궁에 주입해,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쳐 복제 생명체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일반 적으로 배아란 정자와 난자가 만나 결합된 후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가 마무리되는 8주까지의 수정란을 뜻한다.


복제양 돌리가 유명했던 이유는 생식세포 복제가 아니라 처음으로 체세포 복제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주목받은 이유는 역시 최초(2003년 2월(논문 발표는 2004년 2월))로 ‘인간’의 체세포 복제를 성공시켰고 복제 수정란을 4∼5일 배양한 배아(배반포기 단계)에서 ‘줄기세포’라는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배아줄기 세포와 성체 줄기 세포


줄기 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의 근간이 되는 세포로 몇 번이나 반복하여 분열할 수 있는 자기-재생산(self-renewal)기능과 여러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다분화 능력을 가진 세포로 정의된다.


식물의 줄기에서 자기-재생산과정을 거쳐 가지와 잎이 나오듯이, 배아시기에 줄기 세포는 대량으로 존재하며 자기-재생산 과정을 통해 근육, 신경, 심장 그리고 혈액 등 모든 조직과 장기로 다-분화된다. 성장 후에도 이 줄기 세포는 소량 남아 상처를 치유하는데 이용된다. 이때 배아시기에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조직과 장기로 분화될 수 있는 줄기 세포를 배아 줄기 세포라 하고 성인이 된 후 남아 있는 미량의 줄기 세포를 성체 줄기 세포라고 한다.


배아줄기 세포는 모든 장기를 재생할 수 있는 잠재 능력 때문에 ‘상품’성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 기술로써 그 능력을 통제할 수 없다. 반면 성체 줄기세포는 주로 본래 자신이 있던 조직과는 성격이 같은 세포를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그 양이 적기 때문에 ‘상품’으로 매력은 떨어진다. 그러나 특정 조직이 손상되면 치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어 통제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현실화된 치료 방법이다. 대표적으로 백혈병 치료로 사용되는 골수 이식이 바로 성체 줄기세포인 골수 세포를 이식하는 것이다. 골수 세포에서는 혈구 세로를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성체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는 기관으로 뇌, 골수, 말초혈액, 혈관, 근육, 피부와 간 등이 있다. 학자들은 성체줄기세포를 세포배양을 통해서 증식 시키고, 특정세포로 분화를 유도하여 우리 몸이 상처를 받거나 질병에 걸리면 사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인간인가 세포 덩어리인가? 


 가톨릭이나 반-낙태주의자들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즉시 한 영혼을 가진 생명주체인 태아로 간주한다. 체세포 복제의 경우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것이 아니지만 자궁 내에 착상시키면 인간으로 자라기 때문에 역시 예외일 수 없다고 한다. 영국의 반-낙태주의자 단체 Life는 배아세포 연구를 신종-학살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미국의 가족 연구위원회라는 보수주의 단체는 “나치는 일부 인간들을 ‘종속 인간’으로 분류해서 그들을 소모해도 된다고 했다. ... 사람들은 배아를 종속 인간으로 보고 있다.”라고 나치의 학살에 비유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수정란은 수정 후 두 배수씩 분열해 16개가 되면 딸기 모양의 세포가 되는데, 이때가 14일쯤 되는 시점이다. 이때부터 인체의 근본이 되는 척추와 신경 등 구체적인 신체기관으로 성장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14일 이전 단계의 세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세포 덩어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배아 세포 조작을 통해 치료에 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아를 인간이냐 세포덩어리냐의 논쟁을 인간중심(배아=세포덩어리) vs 생태중심(배아=인간)적 사고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큰 의미는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맑스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에 포함시키며, 인신론적 전환을 요구한다. 만약 생태 중심적 사고와 인간중심적 사고가 다르다면 생태계에는 이로우나 인간에게는 불리한 것들이나 생태계에는 불리하나 인간에게 이로운 것 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생태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또 배아의 구분을 인간-비인간으로 구별하지 말고, 새로운 지위를 설정해서 배아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김환석, 배아의 사회학, 한겨레신문) 이 주장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연구는 신중에 신중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어떤 경우라도 민주적 통제가 용의해야 하고 연구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 의미 있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배아를 둘러싼 논쟁에서 같이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낙태와 여성의 권리를 어떻게 볼 것이며, 불임부부를 위해 인공 수정 후 남은 대량의 잉여 배아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현재 불임시료를 위한 인공수정에서 과배란을 유도하고 있고, 배아를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이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적어도 10만에서 50만 이상의 잉여배아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잉여 배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폐기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렇게 버려지는 잉여 배아를 대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논쟁의 한가운데 기독교로 무장한 부시정권이 있고 그가 배아의 인권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전쟁의 주범인 부시 정권은 전쟁으로 인해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상당하고 있는 이라크를 위해 의료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그가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배아 복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배아줄기 세포의 경제학

 

치료 목적의 배아 복제 기술은 환자들에게 유전적으로 특별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장점은 일반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범용 치료제가 아니라는 뜻이므로 자본의 입장에서 큰 매력이 없다. 올해 황우석 교수팀은 배아 복제의 효율을 10배 증가시켰다. 작년에는 1개의 배아를 복제하기 위해 242개의 여성 난자를 필요로 했는데 이번에 기술을 더욱 정교화해서 올해는 10개 이하로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배아 줄기 세포를 통해 개발된 약이 모든 대중 약국의 선반에 진열될 정도의 상품으로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희박해 보인다.


특히 여성에게서 난자를 많이 얻기 위해서 과배란 처방을 해야 하는데, 한명의 환자 치료를 위해서 여성들에게 한번 혹은 두 번 정도 인공 수정시와 유사한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이 배아 복제 기술은 백만장자들을 위한 치료방법으로 전락할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배아복제 기술에 노다지가 보인다면 자본은 엄청난 투자를 감행할 것이다. 물론 그들의 관심에는 수백만 명의 고통 받는 환자들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주요 제약회사는 10년에서 20년 후에나 배아복제 기술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대기업들은 명확한 상품화 가능성이 보일 때 까지 공적자금을 이용하기하거나 중소 벤처기업들이 그러한 위험을 떠안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의 전략은 원천기술의 특허를 확보해 놓는 것이다. 원천기술만 확보 해놓으면, 혹시 모를 누군가가 치료약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EGE(European Group in Ethics in Science and New Technologies)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줄기세포 관련 출원이 2000건이 넘고, 그 중 1/4이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배아복제 실험을 거부하던 부시도 초기 배아줄기 세포에 투자한 자본가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미국 최대의 생명공학회사인 제론 (Geron)사 등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배아줄기 세포에 대해서만 연구를 허용했다.


문제는 여성의 보호와 상품화


이미 한국에서는 불임부부들에게 정자·난자를 판매하는 회사가 영업 중이며 법적으로 이들을 규제하는 법은 없다. 인간배아복제 기술이 성공해서 치료 기술로 이용된다고 해보자. 이 과정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것은 난자 기증자일 것이다. 어떤 경우든 배아복제 기술이 자본주의 상품에 가까워질수록 여성 몸의 상품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교수 연구에서도 여성 기증자에 대한 논란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황교수는 올해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 미국과 같은 수준의 윤리 기준을 준수했음을 밝히고 그때 사용된 [동의서]까지 실었다. 그런데 그의 연구를 조사한 두 명의 미국의 생명윤리학자들은 황 교수에서 D-의 성적, 그러니까 수우미양가로 따지만 ‘양‘의 점수를 주었다. 이들은 스탠포드 대학 생물학 윤리센터 소속의 데이비드 매그너스(소장)와 밀드레드-초인데, 보수적인 성향의 학자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에 대해 매우 높게 비판하고 있는데, 그 주요한 이유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위험성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않았고, [동의서]에서 환자들과 기증자를 구별하지 않았으며, 환자 자신의 난자를 실험에 기증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음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 기술이 환자 당사자의 치료약 개발로 단기간 내에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황 교수가 기증받은 난자 중에는 30이하의 여성으로부터도 기증받은 것도 있다. 30대의 여성으로부터 받은 난자의 경우 한 개의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30번의 처리를 해야 하는데 30대 이하의 여성으로부터 받은 난자는 평균 13번의 처리를 거치면 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선호한다. 이러한 사실은 작년 [네이처]지가 황 교수 팀에 제기한 연구실 대학원생의 난자를 사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배아 복제 연구는 보다 공개적이고 엄격한 통제의 필요성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시사한다.


배아 복제 기술 정말 안전한가?


2001년 초 미국에서 파킨슨병을 치료하기 위해 태아 뇌세포를 환자의 머릿속에 주입하는 실험이 있었다.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의 하나인 도파민(dopamine)의 결핍으로 인해 나타나는 병인데, 태아의 뇌세포가 도파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었다. 물론 이 실험은 배아 줄기세포와는 같은 실험은 아니지만 원리상 유사하다. 처음 1년 동안은 60세 이하의 환자들에게는 성공적인 것으로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그들 중 몇 사람은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고 통제가 불가능하게 되었고 심하게 몸을 뜨는 증세가 나타나는 등 치료 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줄기세포 연구 결과로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가능성과 세포치료의 현실과는 아직도 많은 기술적인 괴리가 있다. 줄기 세포에서 조직 세포로 어떻게 분화하는지를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또 통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작정 주입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성공적으로 착상된 복제배아들 가운데 출산 뒤까지 정상적으로 자란 동물은 2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유산(33%), 기형(12%), 급사증후군(22%), 거대체중증후군(8%)로 죽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복제된 배아의 줄기세포 치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한 영국의 유명한 줄기 세포 과학자는 영국 의학 논문지에 배아줄기 세포로 “치료에 성급한 이용은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질병 혹은 프리온 질병과 같이 뇌에 독성 단백질이 모여 발생하는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배아복제의 마지막 종착지; 인간복제


배아복제 기술에서 항상 나타나는 것은 인간 복제의 유령이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에서도 어떠한 인간 복제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명목으로 연구되고 있는 수많은 복제기술들이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인간 복제의 유령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실천윤리학 교수이면서, 의료윤리에 관한 유명 논문지에 영향력 있는 편집인이기도 한 사부레스쿠(J. Savulescu) 교수는 ‘복제 기술은 가장 위대한 과학 기술진보 중의 하나이다. 복제기술은 인간의 운명에 기회와 힘을 준다. 점차적으로 인공 번식이 자연 번식보다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회학자 이진경교수도 황우석 교수에게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인위적인 변이’가 가능해졌다면 이제 인간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이’의 가능성을 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회학자나 윤리학자뿐만 아니라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 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복제에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는..


대체적으로 배아복제연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더 나은 인공 수정기술 발전시키고, 치명적인 질병치료를 위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연구과정에서의 오용가능성이나 위험으로부터 배아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는 적극적 우생학으로의 길을 열 수 있으며, 출산과 가족의 가치를 경시하고, 낙태를 조장하는 심각한 윤리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부시정부가 배아 복제를 굳건하게 반대하고 그의 종교적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아직까지 배아복제 기술에서 돈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며, 또 자본가들에게 세금 감면 정책을 쓰고 있고 무엇보다도 이라크 전쟁으로 공적자금이 여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이나 기타 자본주의 국가에서 배아 줄기 연구는 정부 주도로 공적자금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연구 결과의 공공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하에서 공적 자금은 단지 자본가들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기능만 할 뿐이다. 투자 위험이 높거나 미래에 상품화가 불분명한 곳에 공적자금의 연구비가 투여된다. 또 자본주의 기술 혁신은 상품화를 전제로 한다. 아무리 공적 자금이 투여되었다고 하더라도 연구 방향은 자본이 소유하기 쉬운 고수익의 상품 개발로 향해져 있다. 즉 개발된 치료 방법은 특허로 소유하거나 비밀로 포장할 궁리만 하지 환자들의 고통과 그 기술의 사회적 이용에 대한 고민은 그들의 대차대조표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공적자금이 투여되어 배아복제 기술의 획기적인 돌파구를 찾을 즈음, 이미 이 기술은 상당부분 사적으로 소유된 고가의 상품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성 신체의 상품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배아 복제 기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고 일부는 새로운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대안사회에서 배아 복제 연구는 과학기술의 생산, 분배와 함께 내용까지 다를 것이다. 배아 복제 과정에서 모든 윤리적-철학적 문제는 투명한 토론할 것이며 어떤 내용, 어떤 방법으로 연구할 것인지를 합의해 나갈 것이다. 합의하기까지 시간이 길어져도 결코 비효율적이지 않다. 모든 연구는 공동으로 상호 협력 하에 진행되기 때문에 한번 시작된 연구는 매우 효율적이며 빠르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결과는 모든 통신수단을 통해 빠르게 공유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제약 산업과 바이오산업은 민주적으로 통제될 것이며, 이들은 주주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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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변증법 II

이 글은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web page http://www.plp.org/misc/dialofmath.html에 올라온 글이며, 지난호(108호) 수학의 변증법 I (1. 산술연산의 변증법)에 이어지는 글로 수학의 변증법 II (2. 기하학의 변증법과 3.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 4. 결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학의 변증법 II

                                                       현장에서 미래를 109호

2. 기하학의 변증법


자연의 형상


기하학(형상, 도형의 수학) 역시 인간 실천의 필요성에서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에서 기하학적 형태를 가져왔다. 보름달의 원, 초승달과 호수의 부드러운 곡선, 빛과 나무의 직선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형태들이었다. 그러나 자연에서 실제 직선이나 정교한 삼각형과 사각형과 같은 도형을 발견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점점 더 규칙적이고 정교한 물건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일상의 필요성 때문에 점차적으로 정교한 도형(figure)의 개념이 만들어 진 것이다.


사람들은 집을 짓고 돌을 자르고 땅을 나누어 울타리를 쳤고 활시위를 당기거나 흙으로 그릇과 같은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매일 그 도구로 노동을 했고 또 더 정교하게 만들어 왔다.


자연의 형상에서부터 추상적 형상으로


 점차적으로 활시위는 직선이지만 항아리는 곡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반화 시켰다. 사람들은 물질에 어떤 형태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후 나무, 점토, 돌과 같은 물질에 어떤 특징을 부여하고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을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형태 그 자체는 구체적인 물질에서 추상화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곧은자로 수천가지 물건을 만들고, 수천가닥의 실타래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서야, 그리고 땅위에 수많은 직선을 긋고 나서야 직선이라는 일반적인(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직선은 이러한 특별한 경험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성질이었다. 이와 같이 실천적 활동은 기하학에서 추상적 개념의 기초가 된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직선을 그린다.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곧은자로 재조된 물건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기하학의 법칙


같은 식으로 길이와 면적 그리고 체적 등 기학학적 양의 개념은 인간의 실천적 활동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눈으로 길이를 측정하고 거리를 결정하고 면적을 계산한다. 이것은 농부나 건축가들에게 매우 유용했는데, 이들은 실천적 활동을 통해 가장 단순한 일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들 들어 사각형의 면적은 두변의 길이의 곱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관계는 농부에게는 경작할 땅의 면적을 계산하여 다음해 수확 양을 예측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기하학 "땅을 측량하는 것"


기하학은 인간의 실질적인 활동의 필요에서 발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하학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토지를 측량해온 결과로 발견한 것이었다. 그들은 나일강에서 주기적으로 홍수가 범람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토지 측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기하학"이라는 단어도 "땅을 측량하다"는 그리스어에서부터 유래되었다)


BC 1700 시대의 이집트 문서에는 창고나 그릇의 용량을 계산하는 문제, 땅을 구획하는 문제 그리고 토목공사에서 길이를 계산하는 문제 등이 적혀 있다. 당시 이집트와 볼리비아인들은 가장 단순한 면적과 체적을 계산할 수 있었고 그들은 원의 지름과 원호의 길이의 비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처럼 초기 산술연산처럼 기하학도 경험에서 유추한 법칙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기하학이 전해 내려옴에 따라 새로운 사실들이 축적되었다. 이후 축적된 사실간 상호관계가 밝혀지면서, 여러 명제들을 논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기하학적 명제로 발전했다. 이렇게 해서 기하학적 이론과 증명의 개념이 발생하였고, 점차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유추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명제, 공리(axioms)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기하학은 점차적으로 수학 이론으로 발전해 갔다.


기하학적 기본단위(geometric body)의 정의


앞서 "수"에 대해 논의한 것과 같이 "기하학적 기본단위"도 정의할 수 있다. 가하학적인 기본단위는 밀도, 색 혹은 무게와 같이 다른 모든 구체적이 특성을 추상화해서 공간적인 형태만을 고려한 실재적인 단위(body)이다.


왜 기하학은 일상생활에 유용할까?


기하학이 넓은 응용분야를 갖는 이유는 산술연산과 같은 이유이다. 즉 기하학적 개념은 우리 주의 세계에서부터 추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점을 지나야 직선이 될 수 있다는 공리를 알기 이전에도 수없이 직선을 그려왔다. 그러한 원칙을 몰라도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유사한 것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종이위에 그려진 두 점, 들판에 박혀있는 두개의 말뚝, 도로 사이에 있는 두개의 전봇대 등에도 이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사람들은 구의 체적이 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여러 종류의 구형의 물체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 는 그리스 글자로 ‘파이’라고 읽는다. 이 파이는 원의 지름과 원 둘레의 비율이다. R은 원의 반지름으로 원의 중심에서 가장자리 표면까지의 거리이다) 이 공식은 물방울에도 우주의 별에도 베어링 과 야구공에도 적용할 수 있는 공식이다.

 

요약하면 산술연산과 같이 기하학도 실천적 경험과 추상적인 생각간의 연속적인 상호 침투(interplay)를 통해 나온 것이다. 산술연산과 기하학은 모든 수학에서 역사적이고 개념적인 두 개의 근원(뿌리)이다.

 

3.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 : 분수와 고차수학 


부엌 바닥 측정과 분수


김씨가 마루깔개를 깔기 위해 부엌의 면적을 측정한다고 하자. 김씨는 간단하게 발걸음으로 부엌 바닥의 길이가 얼마가 되는지를 잴 수 있다. ‘한발 두발 세발...‘ 방금 김씨는 산술연산과 기하학을 통일시켰다. 부엌바닥의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김씨는 적절한 길이 단위를 적용했고, 그것의 몇 배인지를 계산했다. 첫 번째 행동(응용)은 기하학을 적용한 것이고 두 번째 행동(계산)은 산술연산을 한 것이다. 김씨는 자신의 보폭으로 부엌 바닥의 길이를 계산하는데 이용했고 그리고 총 몇 걸음이나 되는지를 (수를 세면서) 계산했다.


김씨가 벽에 아주 가까이 와 벽까지 남은 거리가 자신의 보폭보다 작을 때는 어떻게 할까? 김씨는 보폭을 나누어서 훨씬 더 정교하게 부엌 바닥의 길이를 측정할 것이다. ‘부엌 바닥은 총 12걸음 반 정도군.’ 김씨는 보폭의 일부를 이용한 것이다. 이로써 김씨는 일반적인 숫자와 함께 분수까지 사용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분수는 앞서 김씨와 같은 측정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사람들은 (예를 들어 옷의) 길이를 측정하고 (들판의) 면적을 계산하고 (물의) 체적(2리터 물)을 측정을 한다. 이렇듯 기하학과 산술연산을 포함해서 무수하게 많은 계산을 해왔고 이 과정에서 분수를 발견한 것이다.- 그 과정은 김씨가 부엌 바닥의 길이를 측정할 때와 유사하다. 이렇게 인간의 실천적인 활동(노동)과 이전에 축적된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지식을 종합하여 새로운 개념인 분수가 탄생한 것이다. 


풀어서 익힌 계란의 철학 : 연속과 불연속


또 하나 변증법적 범주 중에 수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있다. 이것은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는 것인데,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 것이다.


 

다음의 재미있는 예를 통해 이 변증법적 범주를 살펴보자. 날달걀 3개를 2명이서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나눌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달걀을 풀고 휘저어 익혀 나누면 된다.


불연속적인(분리된, 개별적인) 것을 더 이상 나눌 수 없다고 말할 때는 그것을 한번만 더 나누면 이전에 가지고 있던 특성이 사라질 때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의 1/3이나 날달걀의 1/2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만약 살아 있는 사람을 자른 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연속적인 것은 기본적인 특성을 잃지 않고 쉽게 나눌 수 있고 다시 합칠 수도 있다. 그래서 개별적인 날달걀은 나눌 수 없지만 풀어서 익힌 달걀은 쉽게 나눌 수 있다.


연속과 불연속의 통일(과 투쟁)


 

불연속과 연속은 항상 통일되어 있다. 이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1. 절대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은 없다. 물리학자들은 한때 전자(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 중 하나)가 가장 기본적인 입자라고 했고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완전한 불연속적인 물질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자를 구성하는 더 작은 입자들이 발견되고 있다.


2. 완전하게 연속적인 물질은 없다. 풀어서 익힌 달걀을 한 조각씩 잘라서 점점 더 작게 나누어 보자. 점차적으로 작아져서 달걀의 특성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어떤 작은 입자(예를 들어 분자)까지 도달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실재로 모든 물질은 연속과 불연속적인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수학에서 불연속성을 추상적으로 반영한 것이 숫자이다. 이와 유사하게 연속성에 대한 추상적인 표현은 기하학적 도형(예를 들어 직선)들이다. 김씨가 부엌바닥을 측정한 과정은 수학에서 연속과 불연속의 통일 과정인 것이다. (연속적인) 길이는 (불연속적인) 단위(예를 들어  보폭)로 측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봤듯이 불연속적인 단위(보폭)도 나눌 수 있다. (그것은 불연속적인 단위가 연속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차원 추상과 "현실과 동떨어진(Far Out)" 수학


지금까지 어떻게 인간이 일상 경험들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해서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기본적인 개념에 도달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수학자들은 이 과정에서  "추상에서부터 다시 추상화하는" 훨씬 더 추상화하는 과정을 수행한다. 그들은 새로운 수학적인 개념을 직접적인 경험으로부터가 아니라 다른 수학적인 개념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개념 중에는 음수가 있다. 음수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15도는 "영하 0도" 아래의 온도이다.(매우 춥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추상에서 추상화된 음수의 개념도] 실제 물리적인 측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수의 제곱근은 또 어떤가? 어떤 수의 제곱근이라는 것도 수의 한 종류이며, 그 뜻은 제곱근을 두 번 곱할 때 원래 수로 돌아오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9의 제곱근은 3이고 3에다 자기 자신 3을 곱하면 다시 9가 된다. 그렇다면 -1의 제곱근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을 두 번 곱해서 -1이 되는 숫자일 것이다.


"상상의" 수(허수, imaginary number)는 새로운 진실을 밝혀낸다.


이 시점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면, 지극히 정상적이다. 당시 수학자들도 같은 심정이었다. 수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1의 제곱근은 존재한다고 하고 "상상"해서 만들어 버렸다. 수학자들은 그것을 "i"라고 불렀고 i에 i를 곱하면 -1이 되었다. i에 기초해서 "상상의" 수(허수)의 집합을 만들었다. 이것은 현대 수학에서 아주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허수는 실재적인 어떤 것과 대응하지 않는 관념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 말이 맞다 허수는 확실하게 다른 수에 비해서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 그것은 허수가 실재 물질과 직접적인 작용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추론을 통해-완전히 수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유도되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수는 순수하게 정신작용으로 만들어 졌지만 이후에 연구자들에 의해 교류 전기를 설명하고 유체의 운동을 설명하는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허수는 다른 수와 같이 단순하고 직감적으로 실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하게 실재와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허수는 우리가 바로 눈으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새로운 실재적인 면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추상화라는 정신 작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해 더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상상의" 기하학


이와 같은 과정은 기하학에서도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잘 알려진 기하학의 원리들을 많이 정립했다. 그의 원리 중에는 직선위에 있지 않은 한 점을 지나고 그 직선에 평행한 직선은 오직 하나만 있다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수학자들은 이 명제가 참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매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 원리를 만족하는 한 직선을 그리기는 매우 쉽다. 그러나 ‘오직 한 직선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19세기 수학자 로바체프스키(Lobachevsky)는 그 한 점을 통과하고 원래 직선과 평행한 직선을 적어도 두개이상 그릴 수 있는 기하학을 "상상"했다. 이러한 기하학은 단지 한 직선만을 그릴 수 있다는 "상식"에 반하고 있다. 그래서 로바체프스키는 그것을 "상상의(imaginary)" 기하학이라 불렀다. 또 한명의 19세기 수학자 리만(Reimann)은 다차원 공간의 개념을 개발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3차원 공간 속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다차원공간이란 명확하게 "상상의" 개념이다.


현대 물리학에서 새로운 기하학


이 상상의 기하학은 새로운 "비-유클리드"적인 공간 개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것은 일반 상대성이론을 포함해서 아인슈타인의 여러 연구에 수학적인 틀을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기하학적 개념은 추론을 통해 나왔지만 실재 세계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수학이론을 기초로 해서 현실 세계에 대해 올바른 예측을 하고 있다. 이들 이론은 사람들에게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변혁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그리고 물리학이 새로운 수학에 심오하게 영향을 받듯이 새로운 물리학은 더 고차원 수학을 통해 더 깊이 있게 발전을 거듭한다.


 


4. 결론 수학-변증법


수학은 물질세계에 대한 인간의 투쟁으로부터 나왔다. 물질세계는 변증법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수학이 변증법 개념의 풍부한 원천이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동시에 변증법적 유물론의 일반 원칙을 더 많이 이해하면 할수록 수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변증법은 기본 교육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은 기하학적 모양을 인식하고 수를 세는 과정에서 변증법적 개념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변증법적 유물론은 진실이므로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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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과 유한: 도대체 왜 닭은 길을 건널 수 없는가?


닭 한마리가 있다. 자 이놈이 어떻게 길을 건너는지 생각해 보자. (“왜 우리가 닭의 고민까지 해야 합니까? 이건 닭의 문제이지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라고 묻지 말기를..) 닭은 도로를 완전히 건너기 전에 도로의 절반을 지나가야 한다. 지금 도로 중간에 도착했다. 이제 절반만 건너면 된다. 나머지 절반을 건너기 전에 닭은 도로의 절반의 절반, 혹은 종착지에서 4분의1 지점에 도착할 것이다. 이제 남은 거리는 전체 도로 폭의 4분의 1만 남았다. 남아 있는 4분의 1을 지나기 전에 또 그 절반의 위치, 종착지에서 8분의 1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계속(무한히) 반복된다. 불쌍한 닭은 도로의 반대편에 결국 도착하지 못할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닭은 쉽게 도로를 지나간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에서 무엇이 틀렸을까? 우리가 여기서 헛갈리는 것은 유한과 무한사이의 모순관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닭을 따라가 보자.


 

수학적으로 이 닭이 도로를 건너는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도로의 절반, 그 다음에 4분의 1 그리고 그다음에 8분의 1씩 계속 지나갔다. 이것은 무한히 널어선 숫자들로 나타난다. 즉 1/2 + 1/4 + 1/8 + 1/16.... ('...'의 의미는 이 수열이 같은 형태로 계속된다는 의미이다. 이해하기 쉽게 닭이 같은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동한 거리는 시간에 비례한다. 절반을 건너가는데 필요한 시간을 1/2시간이라고 하면 또 그 절반을 건너는 데는 1/4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므로 총 시간은 1/2 + 1/4 + 1/8 + 1/16 ...가 된다.) 이것이 무한수열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숫자를 무한히 더하면 얼마가 될까?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아무리 작은 숫자라도 무한히 더하면 결국 어마어마하게 큰 숫자(무한대)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닭의 예에서 헛갈리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비변증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1/2 + 1/4 + 1/8 + 1/16...의 합이 무한대라고 하면 닭은 아무리 걸어도 영원히 도로를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닭의 운명은 도로를 건너기 전에 자동차에 치거나 뜨거운 태양 때문에 탈수현상으로 쓰러져 죽거나 사람들에 잡혀 통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수학자들은 무한수열 1/2 + 1/4 + 1/8 + 1/16....의 합이 무한대가 아니고 1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일렬로 무한히 널어선 숫자들(무한수열)을 무한히 더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값이 유한한 값 1이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닭은  무사히 도로 반대편 도착할 것이다.


무한과 유한은 수학에서 그리고 모든 물질적인 실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고 분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살아있는 것들은 유한하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 들어 죽는다. 죽은 후에 땅에 묻혀 썩어간다. 그러면 다시 박테리아의 일부가 되고 점차적으로 다른 식물과 동물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죽어버린 유한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유한이 되고 이 과정을 계속해서 무한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한한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이 닭 이야기는 유한과 무한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의 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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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변증법I-산술연산의 변증법

 

 (*)  현대의 과학기술은 수학에 많은 부분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기술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수학을 이해해야 한다. 특히 지금 연재중인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수학에 대해 쉽게 설명된 글이 있기에 번역하였다. 이 글은 미국의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web page http://www.plp.org/misc/dialofmath.html에 올라온 글이다. 이 글은 1편 산술연산의 변증법에 이어, 2편 기하학의 변증법 그리고 3편 산술연산과 기하학의 상호관계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서는 먼저 1편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 글은 [현장에서 미래를] 108호에 실려있다.

 

수학의 변증법 I


번역(*) 김영식

수학은 우리 생활의 한부분이다. 잔돈을 계산할 때도 도로 지도를 읽을 때도 책꽂이를 만들 때도 그리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때도 수학을 사용한다.


이 글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먼저 수학이 매우 변증법적이라는 점이다. 수, 도형, 공식 전반에 걸쳐 변증법적 유물론의 법칙과 범주는 작동한다. 수학을 이해하는 것은 변증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의존한다. 


두 번째는 수학적 생각이 실제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의 법칙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소수 천재들의 머릿속에서 마술처럼 생겨난 것도 아니다. 수학적인 생각은 인간의 실천의 필요에서 부터 나왔고 실제-삶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다.




 

1. 산술연산(Arithmetic)의 변증법


몇 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하고 있나?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핫도그 파티를 하고 있다. 몇 개의 핫도그를 요리해야할지 알아보려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핫도그 먹고 싶은 사람, 손들어!" 그러자 세 명의 아이가 손을 들었다. 한 아이는 금발에 스파이더 맨 옷을 입고 있고 또 한 아이는 검은 머리에 푸른 옷을 입고 있었다. 마지막 한 아이는 갈색 머리에 빨간 목욕신발을 신고 있었다. "음, 세 명! 핫도그 세 개를 요리하면 되겠군."


일상적인 판단이지만, 이러한 과정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른 것이다. 즉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같은 것’과 ‘다른 것’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자 하나씩 살펴보자. 아이들은 모두 달랐다. 한명은 금발이고 한 명은 검은 머리이며 나머지 한명은 갈색 머리였다. 또 한명은 스파이더맨 옷을, 또 한 명은 푸른 옷을 입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목욕신발을 신고 있었다. 김씨는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같은지에만 주목하였다. 즉, 아이들은 배가 고팠고 핫도그를 먹고 싶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몇 명인지를 세었다. "한넘, 두넘, 세넘" 김씨는 아이들이 가진 차이를 무시하고 단지 그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핵심 범주 : 구체(Concrete)와 추상(Abstract)


김씨는 수학의 핵심인 구체와 추상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구체"와 "추상"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범주중 하나인 철학적 개념이다.


"구체(Concrete)"는 라틴어로 "결합하다. 자라서 하나가되다"는 뜻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어떤 것의 구체적인 본질에 대해 이야기 하라고 하면 그 사물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면을 이야기 할 것이다. (건축 자재로 콘크리트(Concrete)를 생각해 보자. 콘크리트는 광물성 재료 모두를 한데 썩고 굳혀서 지하실 벽 재료로 사용된다.) 첫 번째 아이를 보고 금발에 스파이더맨 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이 구체적인 특징이 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추상적 개념을 이용 한다.


많은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엄청나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추상적인 생각은(사유는) 박사학위를 받은 "가방끈이 긴" 소수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추상(abstract)" 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떨어뜨리다. draw away"의 뜻에서 나왔다. 어떤 것을 마음속에서 추상적으로 다룰 때, 그 사물의 구체적인 면을 뒤로한다(즉 무시한다).


"추상"은 "실제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사물이나 과정에서 나타나는 추상적인 특성은 구체적인 특성만큼이나 실제적이다. 앞의 예에서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도 여러 아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추상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추상화시킨 개념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머리색이나 옷을 만큼이나 실질적이다. 게다가 모든 사물에는 구체적인 면만큼이나 많은 추상적인 면이 있다. 예를 들어, 김씨가 핫도그 요리를 하면서 뒤뜰에 있는 사람들과 한 쌍의 고양이와 나무들을 보았다고 하자. 만약 그가 본 사람들과 고양이 나무들의 특별한 면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그것들 모두 살아 있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특징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배고픈 아이들에 대해 또 다른 추상적인 면을 찾아보면, 그들은 (고양이와 같이) 네발로 걷지 않고 직립보행을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두 사물의 현상을 추상적으로 보는 것이다.


추상과 구체 : 배고픈 아이들이 몇 명인지 세는 것


앞에서 아이들을 셀 때 김씨는 그들의 구체적인 특징, 즉 그들의 머리색과 옷을 무시했다.(즉 추상화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이라는 추상적인 생각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명의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와 다른 한명의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는 같기 때문에, 그들이 몇 명인지를 셀 수 있었다. 이때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그들이 머리색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수를 샌다는 것은 추상화시키는 능력을 포함하는 것이다. 


더많은 배고픈 아이들,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


핫도그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더 있다. 두 명의 아이들이 더 달려와 핫도그를 요구했다. 그러면 김씨는 앞에서와 같은 과정을 밟을 것이다. 새로 달려온 아이들의 옷이나 머리 스타일을 무시하고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의 수를 세고, 두 명임을 확인할 것이다. 앞에서는 3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했고, 지금 2명이 더 왔다. “음 그러면 3+2=5. 모두 5명의 아이들이 핫도그를 원하고 있군” 


여기서 김씨는 더 높은 수준의 추상화 단계로 옮겨갔다. 더 이상 3과 2의 숫자가 "핫도그를 원하는 아이들"의 개념에 메이지 않는다. 김씨는 완전히 3과 2의 숫자를 아이들의 특징으로부터 분리해서 완전히 추상적인 숫자를 가지고 정신적인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3과 2의 숫자로 산술연산을 한 것이다. 그래서 불판위에 핫도그를 몇 개를 올려놓아야 할지를 확신을 가지고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인간은 숫자로 투쟁했다.


이제 김씨의 핫도그 파티를 떠나 2-3천 년 전 과거로 돌아가 보자. 인간의 초기 역사를 살펴본다면 김씨가 핫도그 파티에서 생각했던 것과 유사한 인식 발전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어떤 물건을 셀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수의 개념을 가지고 일을 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옛날 사람들은 숫자에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더미 들이 각각 얼마나 큰지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 사람들은 20개 통나무 한 묶음이 5개 통나무 한 묶음보다 크다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통나무의 개수는 모호하게나마 장작과는 분리할 수 없는 특성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 특성이 (20이나 5와 같은)특정한 수로는 이해되지는 않았다.

손가락, 발가락 그리고 수


인간발달의 다음 단계에서, 수는 여러 물건들의 특성과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는 아직까지 물건과 구별될 수 없었고, 숫자 자체도 물건과도 아직 구분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옛날 일부 사람들은 숫자 5를 대신해서 "손"이라는 단어를, 숫자 20을 대신해서 "사람 전체"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20"은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만큼을 의미했다. 숫자 5와 20은 손가락과 발가락과 분리된 추상적인 수로 이해되지 않았다.


거대한 진보 : 추상적인 숫자.

옛날 사람들은 물건의 개수를 비교할 필요가 있었다. 숫자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사람들은 어떤 물건들이 더 많은지 서로 비교하면서 구분할 수 있었다. 장작더미 혹은 소떼 들을 이런 식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이런 비교는 의식주를 위한 일상적인 활동에서 나온 것이다. 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수백만 번 이런 활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이러한 수많은 비교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추상적인 숫자"(한명의 소년과 같은 것을 ‘구체적인 수(명수)’라고 하고, 단지 하나, 둘과 같이 숫자만 때 놓은 것을 ‘추상적인 숫자(무명수)’라고 한다.)개념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통나무 5개나 20개가 아니라 그냥 "5"나 "20"이 되었다. 이 추상적인 숫자는 구체적인 통나무 묶음이나 소떼들에서부터 추상화된 개념인데 오랜 세월이 지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수는 수세기 동안 실제 사람들에 의한 육체적 노동(통나무, 바위, 동물들에 대한 노동)과 정신적인 노동(물건들의 수를 비교하는 것)의 결과인 것이지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마법사에 의해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이 아니다.


수의 정의


다음은 수학책에서 읽을 봤을 법한 수에 대한 "엄격한" 정의이다. 이 정의로 부터 숫자의 개념이 일상의 물건들에 대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적 육체적 투쟁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는 물건들을 여러 개 모아놓은 것의 특징이다. 그 물건들을 모아 놓은 것과 숫자는 서로 1대 1로 대응하는데, 그러한 모음들에 공통적이다. (핫도그 5개와 장난감 5개에서 5라는 숫자와 1대1로 대응하고 5개라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이 특징은 그런 대응이 불가능한 모음과는 다르다.“


함께 쌓아 올리는 것 : 산술연산(산수)의 기원


(추상적인) 숫자는 옛날 사람들이 물건더미들을 매일, 매년 비교하면서 나온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모아 놓은 물건들을 비교했을 뿐만 아니라 모아 놓은 물건들을 서로 연결시키기도 했다. 만약 5개의 통나무더미와 7개의 통나무더미를 각각 1개의 묶음으로 묶어 놓았다고 해보자. 만약 두 묶음을 합친다면 12개의 통나무 더미가 될 것이다. (통나무 더미처럼) 물건더미들을 반복해서 연산을 한 결과, 사람들은 수를 가지고 연산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이다. 숫자를 더하는 것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모음들을 함께 놓거나 합치는 것과 같다. 곱셈은 아마도 같은 수의 모음들을 셀 때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예들 들어 두개씩 묶어 놓은 물건이 4개가 있다면 모두 8개가 되고, 세 개씩 모아 놓은 물건이 2묶음 있다면 모두 6개가 된다. 빼기와 나누기 역시 같은 방식에서 나왔을 것이다. -즉, 물건들을 모아 놓은 더미를 다루는 실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나왔을 것이다.


수의 법칙

수를 세는 과정에서 옛날 사람들은 물건과 분리된 숫자들만의 관계를(특히 5와 7을 더하면 12가 된다)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법칙을 만들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매일 경험을 통해 옛날 사람들은 더하는 순서를 바꾸어도 같다는 결과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5개의 장작더미를 먼저 세거나 7개의 장작더미를 먼저 세어도 결과적으로 모두 12개의 장작더미를 갖게 된다. 5와 7을 더하면 12가 되고 7과 5를 더해도 역시 12가 된다(나중에 수학자들은 숫자에 대한 여러 가지 많은 법칙들을 발견했다. 이것이 숫자 이론의 기초가 되는 원칙이 되었다)


산술연산에서 핵심은 숫자들 사이의 관계이다. 그러나 이들 관계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것들 사이의 관계를 추상화한 이미지이다. 산술연산은 (많은 지도자급 “학자”들이 믿어 왔던 것과는 다르게) 순수한 사유(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반면에, 산술연산은 실질적인 노동 속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특징들 사이의 관계인 것이다. 그것은 많은 세대의 장구하고 실질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왔다.


수학 기호(심벌)는 수천가지 물건에 대해 가치가 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물건들의 수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수에 대한 개념이 생겼고 숫자에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 사회생활이 더 복잡해짐에 따라 점점 더 큰 가축 떼들 혹은 교환하기 위한 상품들의 개수를 셀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서로 그 숫자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것을 위해  숫자의 기호(심벌)와 이름을 더 편리하게 개선해야 했다. 


숫자에 기호(심벌)를 도입한 시기는 명백하게 인간이 글자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이후 기호(심벌)는 숫자들 사이의 연산으로, 예를 들어 덧셈에 대해서 + 기호(심벌)로 발전했다. 이러한 숫자와 수학적 연산에 대한 기호(심벌)는 산술연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계산하는 것 보다 “종이위에 계산 하는 것”이 더 쉽게 느꼈다. 수학적 기호는 머릿속(정신적인) 연산을 계산으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계산은 글씨로 적을 수 있었고 모든 계산 과정을 볼 수 있게 하여, 모든 것을 검토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계산은 정확한 규칙에 의해 지배받게 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줄에 있는 숫자를 다한다고 할 때, ‘첫 번째 줄을 먼저 더하고 그 다음에 10번째 줄로 가져와서 더해라“는 식의 연산이 가능하다.

기호(심벌)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큰 수를 쉽게 다룰 수 있었다. 만약 한 친구가 김씨에게 “일곱(칠)”이라고 말했다면 김씨는 일곱 개의 물건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기호 “7”을 생각할 것이다. 이 “7”은 추상적인 숫자 “일곱(칠)”에 대해 명백한 틀을 형성한다. 18759와 같은 큰 수에 대해서, 그것을 어떤 물건들이 이 숫자만큼 있다고 마음속에 그리면서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큰 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18759”와 같은 기호(심벌)가 필요하다. 이러한 기호의 발명은 숫자의 발견을 더 용이하게 하였다. 이 발견은 직접적인 관찰과 수를 세는 행위와는 관계없이 발생했을 것이지만, 큰 수에 대한 연산은 고대 사회에서 세금을 걷거나 무기를 만들거나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했을 것이다.


왜 산술연산은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유용할까?


왜 산술연산이 식료품가계나 경기장 등에서 이렇게 많이 도움이 될까?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 과정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산술연산의 결론과 개념은 수천 년의 세월과 경험에서부터 나왔다. 이러한 개념은 추상적인 형식 속에 사람들이 생활하는 실제 세계를 반영한다. 아이들은 방안에 있는 사람이나 장난감을 셀 수 있고 밤하늘에 별을 셀 수 있다. 산술연산은 이러한 것들의 일반적인 특성들로 부터, 즉 특별하고 구제적인 것에서 부터 추상적인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산술연산이 이렇게 생활에 유용한 이유는 산술연산이 많은 실제 상황에 대해 모두 적용할 수 있게 일반적인 특성(추상성)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산술연산의 바로 이 추성성은 그것을 아주 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추상성은 공허한 추상(빈-추상)도 아니며, 신비스러운 어떤 것도 아니다. 이 추상은 당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는 사람들, 당신의 조상들의 오랫동안 실천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다음호에는 기하학의 변증법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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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X 1

수학과 실제 세계에 대해서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순수수학에서 단순히 정신의 창조물과 상상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수와 도형의 개념은 현실세계에서 유래한 것이지 결코 다른 곳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사물의 개수를 세는데 있어 최초의 수단이며, 처음으로 산술계산을 가르쳐 준 것은 손가락 열 개다. 그러므로 산술연산은 ‘정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숫자를 세기위해서는 어떤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에서 개수 이외의 다른 모든 특성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은 오랜 역사를 통해 경험적으로 발전한 결과이다. 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도형의 개념도 전적으로 외적 세계에서 유래한 것이지 결코 머릿속의 순수한 사유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형체를 가진, 그리고 그 형체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사물이 있어야 우리는 도형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순수 수학은 현실세계에서 공간적 형태를 취하고 양적인 관계를 갖는 것-즉 매우 실제적인 소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재가 대단히 추상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소재가 외적 세계(실제 세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표면상으로 감추어져 버린다. 그리고 이것의 형태와 관계를 순수 그 자체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와 관계가 담고 있는 내용자체를 분리해서 무시해야 한다. 그래서 부피가 없는 점, 부피와 넓이가 없는 선, a와 b, x와 y 변수와 상수가 나오고 결국 처음으로 정신 자신의 자유스런 창조물과 상상물, 즉 상상적인 양에 도달한다. 


상호관계로부터 명백하게 유도된 수학적인 크기는 그것이 선험적인 기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합리적인 상호 연관성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직사각형의 한 변을 중심으로 회전시키면 원통이 된다는 생각은 사람들이 불완전한 형태로 나마 무수하게 현실적인 직사각형과 원통을 연구한 결과였을 것이다. 다른 모든 과학과 마찬가지로 수학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학은 토지 측량 및 내용물을 담을 그릇의 크기를 계산하기 위해 그리고 시간을 계산하고 (기계)역학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유적 분야에서와 같이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는 현실세계에서 추상된 법칙이 현실세계와 분리되어, 마치 현실세계 밖에서부터 유래되어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처럼 독립된 어떤 것으로 현실세계와 대립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와 국가에서도 일어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순수 수학도 바로 실제 세계에서 유래한 것이고 또 실제 세계의 구성형식의 일부분을 표현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이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세계에서 나왔기 때문에 적용 가능한 것이다.

-엥겔스, 반듀링론 page 46 (새길)

 

BOX 2.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추상의 중요성을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으로 전계되는 사유는 -만약 그것이 올바른 것이라고 할 때.............-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리에 가까이 접근한다. 물질이라는 추상, 자연법칙이라는 추상, 가치라는 추상 등등 한마디로 말해 모든 과학적인(올바른, 진지하게 생각하는, 무의미하지 않는) 추상들은 자연을 보다 깊게, 보다 정확하게 보다 완벽하게 반영한다. 생생한 직관에서 추상적인 사유로 그리고 이 추상적인 사유로부터 실천으로-이것이 진리인식의, 즉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는 변증법적인 길이다. (강조는 레닌)

-레닌, 철학 노트 page 120(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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