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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간의 당 지도부 선거 무엇을 남겼나

민주노동당 선거 취재 후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미루다가 오늘 업로드 한 기사 의 풀버젼으로 갈음하련다. 

 

최근 여러 정당들에서 유령 당원, 당비대납, 당비무단인출 사실이 확인 됐고 심지어 어느 정당에서는 한 지역의 기간당원 6600여명 가운데 6000명이 가짜라는 의혹이 당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 어느 정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단 한 곳, 민주노동당만이 '차떼기당이나 차비떼먹기당이나 마찬가지'라며 공세를 펼쳤다. 그 비판을 듣는 쪽은 이에 꿀 먹은 벙어리 신세를 피할 길이 없었다.


***부러움의 대상, 때로는 신기하기까지 한 민노당과 당원 **


민노당에서도 간혹 당비대납사건이 터진 적이 있지만 '극성스럽기까지 한' 당원들의 그악스러운 문제제기와 철저한 후속조치가 덕택에 파문은 곧장 사그라들곤 했다. '진성당원'이란 말을 한국정치무대에 처음 등장시켜 '기간당원' '책임당원'이라는 아류작이 양산시켰을 정도로 민노당의 가장 큰 재산은 충성스럽고 역동적인 당원들이다.


한 달에 당비 2000원이나 걷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당들이나 그 당비가 아까우니 탈당처리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당원들이 보기에는 매달 만원이상 씩 당비를 꼬박꼬박 내는 민노당원이나 그 당비가 너무 작으니 월수입의 1%로 당비를 인상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는 민노당이 참으로 이상해 보일테다.


다른 정당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민노당 당원들이 20일부터 24일까지 인터넷과 지역위원회 투표를 통해 2기 지도부를 뽑게 된다.


***손색이 없는 당대표 후보들, 그러나…**


지난 4.15 총선에서 13%가 넘는 득표율로 10명의 당원을 국회에 입성시켰고 그 중 다수가'스타 의원'들로 떠올랐지만 민노당 1기 지도부는 당 내에서도 당 밖에서도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도 못하고 퇴진했다.


1기 지도부의 한계를 딛고 당을 책임지고 이끌겠다고 나선 당직 후보들은 지난 5일부터 19일까지 전국을 훑었다. 일반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당대표 후보들의 면면은 나름대로 화려했다.


진보정당 소속 첫 구청장을 지내며 행정경험을 쌓고 진보정치 1번지라 불리는 울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됐다가 석연치 않은 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전 의원, 학출(대학생 출신) 노동운동가의 대명사 격으로 30년을 현장에서 버티며 민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을 지낸 도당대표, 운동 동지들이 보수 정당으로 속속 뛰어들었을 때도 진보정당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헌신했고 결국 성공한 전 정책위의장까지 누구 하나라도 빠질 것 없는 후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당원들과 훌륭한 후보들이 판을 짠 선거는 그리 훌륭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다른 당들처럼 흑색선전이나 물량공세가 횡행한 이전투구가 벌어진 것은 아니고 깨끗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선거운동이 진행됐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선거가 차분함을 넘어서 조용했고 당원들의 큰 관심조차 끌지 못 했는 것이다. 


***물 밑으로만 치열한 재미없는 선거**


유령당원이다, 사학법 반대 장외투쟁이다 하며 국민들의 눈과 귀를 찡그리게 하는 소식만 정치권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상황에, 깨끗하면서도 멋진 선거를 펼치기만 하면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는 판국인데 민노당은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제대로 못 살렸을까?


물론 진보정당에 대한 무관심, 정치권의 싸움을 중계보도 하는데만 익숙한 언론 탓도 작지 않다. 하지만 민노당 당직자들도 심지어 후보들조차 '재미없는 선거'라고 인정하고 나섰다.


후보들을 인터뷰하고 토론회를 취재하고 각 선거운동 캠프와 일반 당원들을 만나면서 몇 가지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1기 지도부가 제대로 활동을 못한 이유가 민노당의 고질병인 '정파갈등' 때문이란 평가 탓인지 각 정파를 대표해 나온 후보자들 까지도 한 목소리로 '정파갈등 해소'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 때문일까? 구더기 무서워 하다가 장 못 담그는 격이라고 통합과 조정이 강조된 나머지 선거 운동 기간에도 "상대 후보도 다 훌륭하신 분" "우리 셋 중 누가 당을 이끌어도 잘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주례사 유세가 횡행했다.


후보간 차별성이 강조되고 각자의 대안이 치열하게 경쟁하기 보다는 두리뭉실한 이야기들만 오가는데 관심을 끌 리 만무하다. 물론 수면위에서 유유자적하는 백조의 발은 물밑에서 맹렬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정파갈등 해소'라는 공약과 별개로 물 밑에서 각 정파의 조직은 풀가동돼 지분을 확대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이런 선거를 바라보면서 '혹시 선거 분위기가 뜨지 않고 조직표 싸움으로 귀결되는 것 바라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하는 의구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공유하는 진보적 의제 확산에도 미온적**


물론 이념적 동질성이 그 어느 정당보다 강한 민노당의 후보로 나선 사람들 사이에 큰 차별성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후보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지만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지방선거 문제에 대해서는 대동소이한 답을 내놓았고 그 답들은 추상적이고 원론적이긴 했지만 민노당 뿐 아니라 한국 진보진영이 제출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직 선거 기간에 후보들은 자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진보적 의제들을 사회적으로 확장시키고자 노력했던가? 그에 대한 평가도 부정적이다.


사학법 반대 장외 집회에 나선 한나라당과 사학재단, 보수 언론들에 의해 전교조가 '우리 아이들을 망치는 빨갱이 집단'으로 몰리고 이에 정부 여당이 "사학법이 개정돼도 전교조 현직 교사가 이사회에 들어갈 확률은 1%에도 못 미친다"는 어이없는 답변으로 '국민들을 안심' 시킬 때 민노당 후보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었다.


울산북구 재보궐 선거에서 봤듯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이 극에 달해 민노당 후보에 대해서도 눈을 세모꼴로 뜨고 바라보는 판국이고 입 달린 사람들은 모두 비정규직, 양극화가 문제라고 되뇌이는 판국이다. 물론 민노당 후보들은 거의 모든 유세와 토론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원론적 대안만을 반복하기 보다는 목숨을 건 고공투쟁으로 따낸 노사정 협약까지 배신당한 현대 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사측 앞에 절망하고 있는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 노조 노동자들을 찾아가 "우리가 당신들 곁에 있노라"고 "우리가 당장 무엇을 바꾸지는 못할지 몰라도 당신들과 함께 비를 맞겠노라"고 어깨를 걸 수는 없었을까?


***몸 사리기로 일관한 의원단, 책임 피할 수 없어**


8만 당원의 지지와 음지에서 고생하는 당직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의원들의 책임도 작지 않다.


민노당은 당직공직겸직금지라는 독특하면서도 원칙적인 제도로 원내대표가 당연직으로 최고위원단에 참여할 뿐 의원은 당직을 갖게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무게감이 다른 의원들이 나서면 관심은 의원에 집중되고 선거는 대리전 양상으로 전락할 우려도 크다. 그렇다고 해서 의원들이 보인 무관심과 방관이 해명될 수 는 없다.


국회도 개점휴업 상황인데 당직 선거의 치어리더 역할을 해야 할 의원들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심상정 의원이 대표 후보 토론의 사회를 한 번 맡았을 뿐이었다. 당직과 공직을 분리한다는 것이 관심을 끊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수면 아래서 의원들이 자기 정파 후보들을 도왔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어떤 지도부가 서는지 본 다음에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신중파'도 있었을 것이다.


당직 후보자들과 의원들이 짜기라도 한 듯 무기력한 모습을 지속하는 한 지지율 반등은 난망할 것이고 지방선거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부여된 기대와 역사적 소임 자각해야**


2차 토론회에서 대표 후보 세 명은 입을 모아 "2012년 집권 전략은 사실상 무리"라고 토로했다. 총선 13% 득표 이후 호기롭게 내놓았던 그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04년 4월 당시에는 "이대로 가면 2012년 집권도 꿈은 아니다"는 장밋빛 희망은 민노당 내에선 황당한 소리로 들리진 않았다.


혹시 '현실적 목표수정'이 자꾸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후퇴하고 후퇴해 어느 당직자의 말대로 '진보 자민련'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운동 정파는 선거 때만 최고의 조직력과 최고의 역량을 발휘한다"는 비아냥 섞인 자조를 노동운동 진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선거 때만 최고의 조직력과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도 문제지만, 선거를 통해 역량을 키우고 심판 받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노동운동 뿐 아니라 일반 정당들도 선거 때 최고의 조직력과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민노당은 선거 때 조차 조직력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민노당은 스스로 몰락할 자유가 없다. 그러기에는 민노당이 짊어지고 있는 노동자 서민의 기대와 역사적 소임이 너무 크다.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노동유연성 확대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라는 모순된 목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내세우는 정부와 거대 야당에게만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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