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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4년 오늘(9.21) 고려 공민왕 피살.

 

미안하다. 또 늦었다. 그러나 정국이 정국이 아닌가 독자들이 이해해야지 어쩌겠냐--;;


1374년 9월 21일 고려공민왕이 신하 홍륜 일당에게 피살됐다. 공민왕은 충숙왕의 둘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 당시 다른 고려왕들처럼 원나라에서 성장했다. 공민왕의 몽골식 이름은 ‘빠이앤티무르’ 라고 한다.


그런데 공민왕은 그 당시 고려왕들하고는 좀 달랐다. 고종 당시 원의 침략 이후 고려왕은 몽골의 부마가 되었고 조나 종을 붙이지 못해고 칭호는 왕으로 바뀌었다. 그 밖에 폐하-> 전하 등등 바뀐게 아주 많다. 아 참 왕명에는 반드시 ‘충’자를 붙이게 되었다. 충목왕, 충혜왕, 충정왕, 충선왕, 충숙왕 등등 그런데 공민왕은 자기에게 ‘충’ 자를 붙이지 않았다.


고려가 이 정도로 원에게 꽉 잡혀 살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라는 주장들도 많이 전해진다. 일단 원에게 40여년  동안 개기며 버텨낸 나라가 고려를 제외하곤 없고(에..일본이 있네. 여몽연합군의 이차에 걸친 침략을 가미가제-신풍 덕택에 막아냈으니--;;) 고려왕은 몽고황족의 부마를 지냈으며 몽고 황실 내부의 다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단다.  그 밖에 ‘고려양’ 이라고 해서 원나라 대도(수도 이름)에서는 고려의 풍습이 최신 유행을 했다고 한다. 원나라 말기에는 공녀 출신의 고려 여인이 정식 황후 자리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니... 

하여튼 공민왕은 원에 대해 독립적이려고 노력했고 또 실제로 그런 정책들을 펼쳤다. 즉위하자마자 몽골 연호와 관제를 철폐했으며 정동행성을 혁파했다. 누나(원나라 기황후) 믿고 까불던  기철 일파를 척결했고 원명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쌍성총관부, 동녕부 등을 공격해 영토의 일부를 회복했다. (이 때 스타로 올라선 인물이 황금을 돌처럼 봤다는 최영과 신궁 이성계..사실 이성계의 아버지는 원나라 다루가치 출신인데 하여튼 이렇게 시대의 변화에 민감해서 변신을 잘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대내적으로는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했다. 한문을 보면 알겠지만 전민변정도감은 논밭과 노비에 관한 행정을 정비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기관이다. 무신정권 이후 권세가들이 토지를 마음대로 겸병하여 병작반수제(이런거 기억 나나? ㅋㅋ 고딩때 다들 국사시간에 배웠을텐데...기억을 더듬어보시길.)를 강요했다. 원나라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고려의 힘이 약해지면서 부터는 친원파들이나 원나라에 관련된 기관들(정동행성이라던지 제주도에 있던 말목장, 전국에 산재되어있던 다루갖치들)은 한 술 더 떠서 마음대로 토지를 수탈하고 양민을 노예로 삼았던 것이다. 당연하게 세금도 안 내고...


전민변정도감 판사 신돈은 탈법/불법적으로 점유된 토지와 노예에 대해 개경에서는 15일 지방에서는 40일의 기간동안 자진신고하게 하였다. 토지는 원주인에게 돌려줘서 국가의 수조권이 닿게 했고 에서는 노예는 자신들 마음대로 자신의 행보를 결정하게 했다. 이 조치는 민중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으나 당연히 기득권 세력과 마찰이 발생했다.


뿐만 아니라 신돈은 고려말 등장한 신흥무장세력(최영, 이성계、김방경등등)과의 갈등 뿐 아니라 유교를 바탕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신진사대부 계층과도 물과 기름처럼 지냈다. 공민왕과도 트러블이 발생하여 결국 1371년에 처형--;; 사랑해 마지 않았던 노국대장공주도 죽었고 신돈까지 스스로 숙청한 공민왕은 헤롱헤롱 거리기 시작했다. 귀족집안의 잘생긴 자제들로 고성된 ‘자제위’ 라는 기관을 설치했는데 사실 이게 묘하다. 딱히 하는 일도 정해지지 않은 이 친위집단 자제위가 공민왕의 동성애 상대 집단이었다는 말도 있는데...자제위 소속 젊은이들이 공민왕으로부터 지나칠 정도로 총애를 받은 것은 확실하다. 여러 계비들과 간통사건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전해질 정도로...그러다가 급기야 자제위 소속 홍륜이 익비를 임신시키는 사건이 발생하고 공민왕은 그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고자질한 최만생과 홍륜을 다 죽이려 하다가 거꾸로 침실에서 자기가 죽음을 당한다.ㅠㅠ


고려말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자주적 대외정책과 대내 개혁을 실시했던 공민왕은 이렇게 허망하게 갔다. 공민왕 사후 이십년도 안되서 고려는 멸망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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