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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오늘(9.20) 강화도 연안을 침범한 일본 전함 운요오호, 조선 수비대와 충돌

 

흑..한 번에 나흘치를 올린다--;;


1875년 9월 20일 강화도에서 개항과 측량, 식량 및 식수 제공 등등 말도 안 되는 요구안을 내걸며 집적거린 일본 전함 운요오호와 조선수비대의 충돌이 있었다. 일명 운요오호 사건. 이 사건은 미국의 페리제독이 단 한척의 전함으로(일명 흑선, 구로후네) 자신들을 무릎꿇려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 지 20여년 만에 그걸 그대로 똑같이 써먹은 것이다. 이 일은  중화 중심주의나 세계제국을 꿈꾸던 원나라와 다른 이른바 근대적, 서구적 제국주의가 아시아에 도입되어 실제로 첫 발을 내디딘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8월말 강화도 인근에 닻을 내리고 왔다리 갔다리 하던 운요오호는 아무런 사전 접촉없이 강화도 초지진 포대에 접근했다. 병인양요나 신미양요에서 나름대로 미제와 프랑스제국주의자들한테 한 깡을 보여준 조선 수비대는 냅다 포격을 가했으나 그것이 바로 일본이 바라던 바였던 것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음의 진수라고나 할까? 운요오호는 초지진에 맹렬한 함포사격을 퍼부었고(일본제국주의자들이 근대 무기 도입해놓고 써먹을데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태권도 몇 달 배워서 빨간 띠 쯤 따선 근질근질해져서 ‘만만한 놈 하나 걸려라~’ 하고 학교주위를 배회하던 성질 나쁜 넘들처럼 말야 ) 영종진에도 포격을 가했다. 뿐만 아니라 육전대까지 상륙시켜 살인, 약탈, 방화 ,강간 하여튼 온갖 나쁜 짓은 다하고 ‘니들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다’ 며 배상금을 요구하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근데 재밌는 것은 이 때의 불평등조약은 그 당시의 ‘글로벌 스탠더드’였단 것이다. 요즘 BIS 비율이 어쩌고 개도국의 시장개방이 어쩌고 월스트리트의 투명한 경영이 어쩌고 하며 전세계에 강요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말이지.19세기 후반에는 제국주의국가가 선택한 항구에 개항장의 건설, 개항장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속인주의 원칙의 적용등이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것이다--;; 영미는 일본에 그걸 강요했고 글로벌 스탠더드 잘 배운 일본은 조선에 그걸 강요하고...아 참 강화도 조약은 조선이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ㅠㅠ) 조약이라고 역사책에 나온다. 

근대, 제국주의가 강요한 과거의 글로벌 스탠더드들에 대해 오늘날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쌀관세화, 스크린 쿼터 철폐, 한일 FTA체결 같은 오늘의 글로벌 스탠더드들을 훗날 역사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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