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관련된 글.
오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한 무리를 봤는데,
모두들 왼쪽 가슴에 자기 이름이 너무너무 잘 보이게 써있는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먼가 생각이 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포스팅을 할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더니
마침
님께서 오늘 명찰과 관련된 글을 쓰셨네요.
느무느무 공감하면서 한마디를 더 얹는다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명찰이 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본 순간, 내 머리속을 스치고 간 생각은...
나더러 저런 옷을 입으라고 하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할까?
명찰달린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에 내 실명이 있고,
혹은 이 사람이 ScanPlease라고 되어 있고,
그런 사진이 여기 블로그에도 그렇고,
내가 모르는 사이버 공간의 어느 구석에 있다면...
나는 괜찮을까?
문제는 기록이 남아 있느냐만이 아니다.
내가 보게 된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학생의 이름의 잔상이
계속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면,
(물론 당연히도 그걸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게 괜찮은 일일까?
명찰을 달지 않는 학생들은 익명성을 보호받고 있는 셈이다.
그 학생들이 명찰을 달게 된다면, 그건 그 학생들의 익명성이 깨지는 문제만이 아니다.
그 학생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기억하는 (기억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된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는 익명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명찰을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학생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자신이 그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을 노출하는)
정치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도, 학생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즉, 선생이 학생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관계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어차피, 선생이 이 학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 학생의 이름은 선생이라는 학생을 불러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때는 대체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자.
명찰은 권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적인 아웃팅이란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서로의 교감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그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더라도, 나의 익명성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르는데, 나는 그를 알아. 그는 이름이 ○○래.
어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몰라야 하는 것처럼,
내 몸이 어떤지, 내 생각이 어떤지 몰라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을 알고 싶다면,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름만 알고 있는 선생보다는, 그깟 이름을 몰라도 좋으니,
자신과 한가지라도 교감할 수 있는 선생을 바라고 있을 것이니까...
p.s. : 부대에 있을 때, 나는 어떤 간부들에게는 이름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 공간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곳이었는지 다시한번 확인했다. 처음보는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욕을 하는,
먹다남긴 자장면 국물같은 부대의 간부들을 만나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절망이, 명찰을 달고 있던 그 학생들에게만이라도 비슷하게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 목록
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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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노란바탕에 한자로 새겨진 명찰을 달고 다녔어요. 그때는 아웃팅이란 개념도 없었고 당시 '선도부'였던 저는-_- 그냥 교칙에 맞추어 달고 다녔지요.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하굣길에 지나가던 아저씨가 한자를 아는 체하며 '네가 루냐냐? 어이구 이름 이쁘네 어쩌고'했을 때에야 불쾌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어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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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냐 // 그랬군요. 사실 저는 중고등학교때 명찰을 달고 다닌 적은 없거든요. (고등학교는 무려 사복입는 학교였어요.) 물론 달고 다녔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저 역시 아웃팅이라는 개념은 없었을 거에요. ('아웃팅'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걸 명찰하고 연결시키지는 못했겠죠.)부가 정보
M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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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어요^^ 근데 처음에 제목만 보고는 픽 웃었어요. 현철의 "사랑의 이름표"란 노래가 "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로 시작하거든요^^;;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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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 // 잘 봤다니 감사하네요.^^ 그 노래를 생각해서 제목을 저렇게 지은 거 맞아요.ㅋ 확실한 사랑의 도장을 찍자고 하는 현철님의 노래가사는 독점적인 연애관계를 상징하는 것 아니겠어요?^^부가 정보
outwh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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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학교 다닐 때는 다들 교문 들어설 때 이름표를 달았던 기억이.. 깜박하고 이름표 뒤집는 걸 까먹는게 문제지... 고등학교 땐 교복만 보고도 학년을 알 수 있었는데(물론 이름표도..) 그게 어찌나 싫었는지 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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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밖 // 이름표 뒤집는 거 까먹으면 '복장불량'으로 욕먹었겠군요.-_-부가 정보
R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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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명찰을 달아야 하는 거였는데.. 선배들까지는 한자였다가 우리부터 한글이어서 선생님들이 좋아햇던 기억 ㅋㅋ 덤벙거리는 나는 늘 이름표를 잃어버려서 지나가다가 자주 맞았던 생각이 나는군요...흑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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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 이미 잃어버린 걸 어쩌라고 때린대요 -_- 학생들에게 잃어버리기 쉬운 것을 달도록 지시해 놓고서는 잃어버렸다고 때리다니... 정말 못된 사람들이네요.부가 정보
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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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한글 이름이라는...한자 이름표 다는 곳도 있었구나. =_=한자 모르는 선생은 정말 지적 하기 힘들었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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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 어차피 한자로 이름 달면, 이상하고 어려운 한자로 달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선생이 명찰을 보고도 학생 이름을 알 수 없도록.ㅋㅋ부가 정보
당신의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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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로리처럼 항상 이름표를 잃어버려서 안 달고 다니곤 했다는-_-;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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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 //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름표에 대한 기억을 많이들 가지고 있군요.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