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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표를 붙여 내 가슴에?

  • 등록일
    2007/02/05 20:14
  • 수정일
    2007/02/05 20:14
초보좌파님의 [교복에서 이름표를 떼라] 에 관련된 글. 오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 한 무리를 봤는데, 모두들 왼쪽 가슴에 자기 이름이 너무너무 잘 보이게 써있는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먼가 생각이 나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포스팅을 할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더니 마침 초보좌파님께서 오늘 명찰과 관련된 글을 쓰셨네요. 느무느무 공감하면서 한마디를 더 얹는다는 심정으로, 글을 시작합니다.


명찰이 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본 순간, 내 머리속을 스치고 간 생각은... 나더러 저런 옷을 입으라고 하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할까? 명찰달린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에 내 실명이 있고, 혹은 이 사람이 ScanPlease라고 되어 있고, 그런 사진이 여기 블로그에도 그렇고, 내가 모르는 사이버 공간의 어느 구석에 있다면... 나는 괜찮을까? 문제는 기록이 남아 있느냐만이 아니다. 내가 보게 된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학생의 이름의 잔상이 계속 내 머리속에 남아있다면, (물론 당연히도 그걸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게 괜찮은 일일까? 명찰을 달지 않는 학생들은 익명성을 보호받고 있는 셈이다. 그 학생들이 명찰을 달게 된다면, 그건 그 학생들의 익명성이 깨지는 문제만이 아니다. 그 학생의 이름을 알아내려는, 기억하는 (기억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된 자신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는 익명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명찰을 달라고 강요하는 것은 학생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자신이 그 학생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을 노출하는) 정치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도, 학생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즉, 선생이 학생의 이름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관계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어차피, 선생이 이 학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확인할 수가 없다. 그 학생의 이름은 선생이라는 학생을 불러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부를때는 대체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하자. 명찰은 권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강제적인 아웃팅이란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서로의 교감이 빠져버리는 것이다.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그에게는 더이상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의 정체성을 알게 되더라도, 나의 익명성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를 모르는데, 나는 그를 알아. 그는 이름이 ○○래. 어떤 사람들은 내 이름을 몰라야 하는 것처럼, 내 몸이 어떤지, 내 생각이 어떤지 몰라야 하는 것처럼 학생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을 알고 싶다면,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름만 알고 있는 선생보다는, 그깟 이름을 몰라도 좋으니, 자신과 한가지라도 교감할 수 있는 선생을 바라고 있을 것이니까... p.s. : 부대에 있을 때, 나는 어떤 간부들에게는 이름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 공간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곳이었는지 다시한번 확인했다. 처음보는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욕을 하는, 먹다남긴 자장면 국물같은 부대의 간부들을 만나야 했다. 그때 내가 느낀 절망이, 명찰을 달고 있던 그 학생들에게만이라도 비슷하게 나타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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