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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09
    진보적 청소년 운동
    바람돌이

진보적 청소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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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청소년운동 | 꿈틀대는 꿈 2006/07/29 12:11
http://blog.naver.com/emptyyoon/20026658638
블링크 : 두발자유 좋아해, 청소년인권 할래 | 공감 1공감하기
진보적_청소년운동-emptyyoon.hwp

소책자용- 일단 대충 완성인데

여기 뒤에 자료 별첨할 거랑 좀 더 모아봐야.


 

※ 이 글은 제가 약 1년 동안 아수나로[ASUNARO]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면서 듣고 읽고 경험하면서 배운 것을 짧게나마 정리한 것입니다. 이 글의 주요 요지는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활동을 했던 이민승 씨가 쓰신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등장과 몰락 - 2000~2001년 서울중고등학생연합을 중심으로」(통칭 학연소사)의 것을 많이 빌려왔습니다. 각주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도 학연소사의 내용을 받아온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속해 있는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의 청소년인권운동사 연구팀(고근예, 유윤종, 전누리)에서 수집한 자료들에도 많이 의존하고 있습니다.




목차

1.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란

2. 한국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사회적 배경

3.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의제
4.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방법론에 대해

5. 맺음말

 

 

1.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란


  청소년운동이란 기본적으로 중고등학생, 또는 탈학교 청소년들 등 ‘청소년’과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운동, 또는 청소년이 하는 사회운동을 의미한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이라는 개념 안에는 서로 다른 여러 흐름들이 뒤섞여 있다. 가장 흔히 통용되는 개념으로는 청소년들의 사회운동(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 청소년의 시민사회단체 활동 참여, 더 넓게는 금연캠페인이나 청소년선도 캠페인 등도 포함시킬 수 있다.)이 있고, 그 외 청소년선도운동 ― 즉 금연, 금주 교육이나 “유해환경(불량식품이나 유흥주점 등)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청소년들의 주체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변혁운동이 혼재해있는 것이다.

청소년선도와 대립되는 진보적 청소년운동

  우리는 이 중 마지막 것을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청소년선도가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청소년을 보호하고 훈육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이자 변혁의 주체로 바라본다. 또한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에 대한 사회 구조적 억압에 저항한다. 이 두 가지 점에서 이 운동은 진보적․변혁적 성격을 띠며 청소년을 선도하고 훈육하는 종류의 운동과는 대립된다. 예컨대 여성에게도 투표권이나 재산권이 주어진 것과 같이, 기본적 권리의 주체가 확장되고 사회가 다양한 존재를 관용하는 것, 소외되어 있던 집단의 주체화 정도가 증진되는 것을 사회 진보의 한 지표로 볼 때 기성세대의 보호․훈육․선도의 관점에서 벗어나 청소년도 권리의 주체임을 주장하는 운동은 충분히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진보적 청소년운동과 청소년선도의 두 가지 다른 관점이 한 단체 안에 혼재해 있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일부 지역의 YMCA 같은 곳에서는 청소년인권센터를 운영, 진보적 청소년운동을 지원하는 한편 청소년 금주․금연 운동과 같은 선도의 성격을 띤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이런 기묘한 결합은, 단체의 특성(YMCA의 경우 종교단체)이나 상황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1920년대 우민화교육․식민지교육을 철폐할 것을 주장한 학생들의 항일운동을 최초의 것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 이후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미군정에 대항한 학원민주화 운동이나 6월 민주화 항쟁,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 등과 결합하며 그 명맥을 이어 왔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다른 민주화 운동과 분리되어 독립적 영역이 된 것은 소위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이런 독립의 과정 속에서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정부와 학교당국의 탄압, 내신경쟁강화 등의 영향으로 80년대와 90년대 사이에 한 차례 단절을 겪게 되는데, 이 단절을 근거로 80년대나 그 이전의 것을 “중고등학생운동”으로, 90년대 이후 최우주 씨 사건과 학생복지회로부터 등장한 움직임을 “청소년운동”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칭 구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진보적 청소년운동과 ‘청소년의 사회운동’

  ‘청소년의 사회운동’은 청소년을 변혁의 주체로 보는 관점에 기초하므로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이자 변혁의 주체로 이해하는 진보적 청소년운동과도 일맥상통하며, 결국 둘은 닮은꼴이다. 하지만 앞에서 우리가 다룰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범위는 청소년들 자신과 관련된 문제를 의제로 설정하는 운동으로 제한하기로 하였다. 따라서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청소년의 사회운동’과 교집합을 이룬다. ‘청소년의 사회운동’이라는 개념은 고등학생들이 부정투표무효를 외치며 4.19 시위에 동참한 것이나, 청소년이 하는 중고등학교 학생회 운동 등을 모두 포괄한다. 그런데 4.19 시위와 같은 것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논할 진보적 청소년운동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비(非)청소년이 청소년과 관련된 운동을 지원하거나 돕는 것 등도 포함한다. ‘청소년의 사회운동’이 운동을 ‘누가 하는가?’에 기준을 둔 개념이라면,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누가?’보다는 어떤 주장을 갖고 어떤 운동을 하는가에 더 큰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일 어떤 형태의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사회 체제의 변화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사회 체제를 변화시켜야 청소년들이 온전한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고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다. 사실 궁극적으로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그 출발은 청소년 자신의 권리문제일지 몰라도 일정한 발전단계에서는 결국 청소년 이슈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 다른 사회변혁 운동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소년의 사회운동과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종종 함께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나 6월 항쟁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구별이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는 정부가 간혹 내세우는 “청소년 사회 참여 증진”과 같은 표어의 성격을 비판하거나 할 때 쓸모가 있을 것이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의제나 이슈에 관해서는 3장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질 것이나, 여기에서 그 범위를 대강 이야기하자면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이슈는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문제,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의 적용을 받는 청소년들의 문제로 한정된다. 초중고등학교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에는 아마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국 교육의 억압적인 구조, 경쟁적인 교육 환경 등은 청소년이 온전한 권리의 주체가 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심각하게 저해하며 이는 청소년 대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청소년보호법을 또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청소년보호법이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대표적인 법이며 그 안에는 청소년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몇몇 조항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노동문제 등을 다룰 때는 청소년보호법이라는 기준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으며, 교육 문제에 대해서도 초등학교의 포함 여부, 유치원의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는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필요하다.

 

 

 

2. 한국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사회적 배경


  현재 한국의 학교나 국가, 사회는 청소년에게 여러 억압을 가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교육체제는 학생들을 경쟁으로 내몰며, 경쟁에서 낙오한 학생들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으며, 체벌, 두발규제 등 다양한 폭력도 존속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당하는 여러 차별 또한 청소년을 체제에 동원하고, 체제에 순응하도록 훈육할 미성숙한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데 기인한다.


근대 공교육의 성격

  이런 현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적인 근대 공교육의 기원을 짚어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왜냐하면 청소년이나 아동이라는 개념이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이 바로 근대의 공교육 도입, 미성년자 보호 등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면, 청소년들을 잘 관리하고 잘 길러내야 기존 사회체제가 유지되고 국가가 잘 돌아간다. 그것이 사회가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이유이다.

  근대에 서유럽에서부터 시작된 국가 공교육은 본래 ‘국민’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으며, ‘민주주의’나 ‘인권’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민족주의, 국민들을 통합하기 위한 공통된 언어(표준국어),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초적인 교육, 규율을 잘 지키는 것 등을 교육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는 근대 국민국가가 국민의 국가에 대한 충성과 헌신,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었다. 자본주의가 심화 발전하면서 더 이상 자본가들은 자본주의 체제 외부(예 : 농촌)로부터 노동력을 공급받을 수 없었으며, 새로운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게 되었다. 후발 자본주의 국가의 경우에는 좀 더 생산성 높은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선발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훈련된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동 노동시간 제한, 여성보호와 같은 법과 함께 근대적 공교육이 도입되었다. 근대적 공교육은 시간관념이 명확하고 규율을 잘 지키며 상명하복하는 노동자를 양성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읽기쓰기, 산수 등을 가르쳤다. 기계 다루는 것과 지시 내용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런 능력들이 필요했다.(기계 돌리는 설명서라도 읽을 수 있어야 일 시켜먹지.) 물론 공교육의 확대에는 교육의 권리를 얻고자 했던 수많은 민중들의 요구와 저항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부르주아계급이나 국가의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며, 결국 공교육의 내용 편성에는 그런 이해관계가 반영되었다.

  따라서 학교는 그 출현부터 전적으로 학생들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내면화한 ‘주체적인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학교는 자본주의에 순응적이고 충량한 인간형을 만들어내려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학교에서 강조되는 규율과 규정의 준수, 시간표에 따르는 규칙적인 활동, 애국조례 등은 민주시민의 자질 이전에 근대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필요성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공교육은 경쟁과 같은 방식으로 청소년들을 자본주의로 편입시키고 체제를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며, 때로는 전근대적인 수단(예 : 체벌)을 차용하여 그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려 들기도 한다.

  근대적 공교육 안에 있는 이와 같은 전근대적 요소들은, 자본주의의 심화와 근대화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레 약화되기도 한다. 이는 학내에서의 성차별이나 체벌, 수직적 관계 등의 요소들이 자본주의의 학교에 필수적인 기제가 아니게 됨에 따라(혹은 사회 전반의 성숙에 따라) 쇠퇴하는 것으로, 교육현장과 사회의 괴리가 지나치게 커지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상황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은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대전 이후에 본격적인 근대화에 돌입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식민지 전쟁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부독재와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했다. 한국과 같은 식민지 후발 자본주의 국가는 식민지 경험에 의해 한층 강화된 민족주의와 근대화론이 만연하기 쉽다. 거기에 한국전쟁과 휴전상황이 더해지면서 사회 분위기는 더욱 군사적․권위적으로 변해갔다. 뿌리 깊은 유교사상도 한 몫 했음은 물론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청소년들이 받아야 했던 교육은 황국신민화교육이었다. 제복(교복), 두발규제와 더불어 “황국신민의 서사” 암송을 강요하는 등의 억압은 청소년들을 국가주의․군사제국주의 아래 복속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으며, 우민화 교육으로 제대로 된 주체적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일제의 여러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과 비판,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사람들은 전란에 휩싸였고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사회는 더욱 경직되어 갔다. 그 후 들어선 박정희 정권은 일제의 황국신민화 교육에 포함되어 있던 억압의 일부를 차용하거나 더욱 공고히 하여 교육을 군사문화와 국가주의로 물들였다. 계속된 두발규제, 국민교육헌장, 교련 등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일제시대에 이어 광복 후에도 말 잘 듣는 군인, 또는 순종적인 ‘근로자’를 만들기 위한 여러 억압들이 청소년들의 삶을 짓눌렀다.

  박정희 이후 들어선 전두환 정권의 경제정책은 기본적으로 자동차, 전기 전자 등 노동집약적이며 기술집약적인 산업을 육성하여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전두환 정권은 졸업정원제 등을 이용, 고급 노동력 시장을 구축하고자 했다. 결국 대학교육은 기술 이전의 교육장으로 변모했으며 생존의 방편을 위한 대학진학 욕구가 점점 확산되었다. 그렇게 1980년 이후 고등학생들은 이전보다 훨씬 심화된 극도의 성적경쟁을 강요받게 되었으며, 내신성적 제도는 고등학생으로 하여금 대학진학에 혼신의 힘을 다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의식성장의 길을 차단하는 데 기여하는 한편 청소년들을 심한 성적경쟁으로 내몰았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바로 한국 청소년들이 다른 근대화된 나라들에 비해 더 극단적이고 강한 억압을 겪는 원인이다. 그러나 한국 청소년들이 다소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더라도 그 근본 문제는 한국만의 것이 아니며 보편적인 것이다.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경쟁’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교육체제는 인간을 도구로 여기기 때문에 학벌과 같은 장치를 이용하여 청소년을 편의에 따라 줄 세운다. 이 안에서 청소년은 합당한 권리를 지닌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경쟁과 그에 대한 순응을 요구 당하며, 사회는 청소년을 교육을 선택하는 자기 삶의 주체가 아닌 훈육되고 선별되는 객체로 대우한다. 경쟁은 자본주의가 청소년들을 동원하고 체제에 순응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장치인 것이다. 사회구성원들은 ‘능력에 따른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만큼 불이익을 받는 것이, 승리한 사람들은 그만큼의 이익을 얻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해하게 된다. 경쟁 장치는 자본주의 계급재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며, 효과적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재생산해낸다. 다른 억압들은 체제에 청소년들을 더 직접적으로 순응시키고 통제하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동원되는 것이다.


  요컨대, 대한민국 학교는 자본주의 공교육의 일반적 성질과 대한민국의 역사적 특수성이 결합하여 비상식적인 수준의 억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무분별한 경쟁논리가 강화되고, 지역․학교에 따라 청소년들의 계급적 격차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문제, 가령 고교등급화나 자립형사립고와 같이 자본주의가 심화․발전되면서 체제의 이해와 직접 관련하여 생기는 문제는 교육의 근대적 억압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반면 두발규제, 너무나 성차별, 체벌, 각종 규제 등 학교 전반에 남아있는 전근대적 요소들은 교육의 전근대적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양 억압은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위 잘사는 집 청소년들, 성적 좋은 청소년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두발규제나 체벌, 학생들의 자치활동에 대한 제한이 약한 편인데, 그것은 근대적 억압이 전근대적 억압과 충돌하여 우위를 점한 결과다. 다수가 기득권층으로 편입될 그들에게 전근대적 억압은 필수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건전한’ 성장에 방해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많은 경우, 이 양 억압은 서로 결합하여 학생들을 억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목적으로 대우받기를 바라게 된다. 곧 학생들의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 자유에 대한 갈망, 사회적․공공적 보장에 대한 요청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촉발되는 사회적 배경이다.

 

 

 

3.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의제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설정해온 의제는 다양하다. 사회적 소수집단들이 대개 그렇듯 청소년이 직면하는 억압도 한두 가지로 말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주로 제기되어온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의제들은 교육과 인권 분야 걸쳐 있다. 그리고 2006년 5월말부터 벌어진 칠레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시위에서 나온 다양한 요구 중에 “대중교통 요금 무료화” 등이 있는 것을 보면,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더욱 성장하게 되면 훨씬 다양한 의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무엇을 문제로 삼고 무엇을 주장해왔는지 그 간략한 역사를 살펴본다.


1990년대 초반까지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의제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청소년들은 식민지우민화 노예교육 중지, 한국 학생들을 위한 교육 실시, 직원회에 학생대표 참가, 사회과학연구 활성화 등을 주장했다. 미군정 하에서는 민족자주교육 쟁취를 위한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의 연대투쟁이 있었다. 학생들이 내세운 주장은 “일제 잔재 척결”, “민족자주교육 쟁취”, “학원민주화”를 비롯하여 학내비리 척결 등도 포함하고 있었다. 사실 그땐 항일독립운동․민족자주운동․민주화운동과 교육운동이 분리되어 인식되지 않았기에 이후 중고등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면서 간간이 “학교민주화”나 학내비리 문제가 곁들여지는 방식으로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명맥은 이어져 왔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생겨난 청소년들의 조직과 행동은 비록 체계적이지는 못했지만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지속시켰다. 요컨대 당시 진보적 청소년운동이라 할 만한 운동의 의제는 주로 학교민주화, 민족자주교육, 학내비리 척결이었으며 이 또한 다른 거대사회담론과 뭉뚱그려져 있었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독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1980년대에 입시경쟁교육이 강화됨에 따라 강제야간자율학습, 강제보충수업 등이 일상적으로 시행되었다.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했으며 학교의 통제도 강해졌다. 이에 1980년대 초반부터 교사들과 중고등학생들의 저항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들은 두발자유화, 입시경쟁교육 철폐 등을 주장했다. 징계․삼청교육대 등 숱한 탄압에도 소모임 형태로 살아남았던 중고등학생 운동 세력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 조금 더 활발하게 학내비리 척결, 두발규제철폐, 강제보충수업철폐투쟁(보철투), 입시경쟁 반대 등으로 집단행동에 나섰다.

  중고등학생들은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을 겪으면서 “대통령부터 반장까지 직선제로!” 구호를 외치며 학생회 직선제에 좀 더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는 학생회를 통해 학생 대중조직을 이루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지역고등학생운동연합(서고련)이 명동성당에서 노태우 당선 반대 농성을 벌이는 등 청소년들은 민주화운동에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에도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노동해방”, “조국통일” 구호와 입시교육 철폐, 학교민주화 등의 구호가 뒤섞여 있는 등 1980년대의 민주화․노동운동에 대해 완전히 독립적이진 못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정치투쟁을 중시한 쪽과 교육문제에 집중한 쪽이 나뉘어 있었으며, 실제로도 두 세력의 활동 영역에는 약간의 차별화가 보인다.

  1989년부터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전교조와 함께 참교육 운동을 펼치는 형태를 띤다. 의제로는 살인적 입시경쟁교육 척결, 참교육 실현, 해직교사 복직, 징계철회와 사학비리, 학생자치 보장 등이 거론되었으며, 학생회 직선제 문제가 나오기도 했다. 학생들의 투쟁도 격렬했다. 투신과 점거농성, 수업거부, 시험거부, 방학거부 등이 광주, 서울, 나주, 부산 등지에서 계속되었다.

  참교육 운동 이후 1990년대 초반은, 참교육 운동을 수행했던 청소년들이 학교 밖에 지역기반 조직을 만드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주로 문화활동을 통해 청소년대중에게 접근했던 당시의 청소년단체들에는 “참배움일꾼청소년회”(참일청), “청소년회 샘”, “푸른 벗”, “희망” 등이 있는데, 이 단체들은 주로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1990년대 초반의 단체들은 문화분반 운영, 수련회 등으로 청소년들을 끌어들여 교육하고 운동을 벌이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운동을 지속해갔다. 그 이슈는 때로는 수입개방반대였고 때로는 보충수업, 자율학습 철폐나 사학비리 고발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도 강경대 열사, 김철수 열사 사건 등으로 10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집회에 모이기도 했는데 이 또한 참일청 등에서 조직한 것이었다. 이 운동은 1994년 공안정국에서 정부가 ‘샘 사건’을 터뜨리면서 크게 위축되고 약화되어갔다.


청소년인권운동

  한 차례 단절을 겪은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인권”의 언어로 “최우주 씨 사건”을 통해 부활했다. 춘천고등학교 최우주 씨는 학교의 강제자율학습, 강제보충수업에 대해 청와대, 교육부, 강원도교육청 등에 민원을 제출했다는 글을 하이텔 게시판에 올렸다. 본래 헌법소원을 내려다 절차상의 문제로 민원을 제기하게 되었다고 밝힌 최우주 씨는 ‘학교가 학생의 기본권을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습의 자유, 신체의 자유, 여가권 등이 이슈가 된 이 사건은 이후 두발자유화,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의 의제를 만들어낸 ‘학생복지회’와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

  2000년을 전후하여 분출된 다양한 청소년들의 목소리와 직접 행동은, 주로 인권의 언어를 통해 이슈를 제기했다. 두발자유, NEIS 반대, 강의석 씨에 의해 촉발된 미션스쿨 종교자유, 강제야자폐지, 청소년의 노동에서의 권리(아르바이트와 현장실습) 등은 모두 인권의 측면에서 주장되었다. 사학비리와 사학법개정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는 등, 모든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현재 인권운동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인권운동이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주요한 부분임은 분명하다.

  청소년인권운동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원칙에서 청소년도 결코 예외가 아니며, 청소년이 성인과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의 주체임을 주장한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기존의 민주화운동으로부터 갈라져 나오면서 인권운동의 형태를 취한 것은 자연스럽다. 이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인권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신사회운동들이 민주화운동으로부터 독립해가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방법론에 대해


4.1. 대중운동지향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수단적으로 대중운동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은 어느 정도 명확하다. 비단 진보적 청소년운동뿐 아니라 다른 종류의 진보적 운동들 대부분이 수단적인 면에서 궁극적으로 대중운동을 지향한다. 잘못된 사회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수 민중의 저항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전형적으로 수적으로는 소수가 아니지만 권력 관계상 소수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 연대하고 집단적 조직을 이루어 권력의 평형을 맞추려 해야 한다. 이는 마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권력의 평형을 맞추려 하며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청소년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일터로 집중되듯이 ‘학교’라는 공간으로 다수가 집중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방법론에서 노동운동의 방법론과 유사한 부분을 상당수 찾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유사점 때문이다.)

  지금부터는 역사 속에서의 몇몇 사례들을 통해 대중운동을 지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광주학생항일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단은 전차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조선인 여학생을 괴롭힌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그 이전부터 광주지역에서는 동맹휴학과 같은 형태로 식민지 우민화 차별 교육에 저항하는 운동이 계속 벌어져 왔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을 펼쳐나가도록 조직했던 것이 ‘독서회’였다. 독서회의 전신은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띤 비밀 지하조직인 ‘성진회’였다. 장재성 씨 등이 주도했던 성진회는 한 차례 해산하여 각 학교에서 조직 활동을 벌이다가 각 학교별 기반을 갖춘 뒤 독서회의 형태로 다시 통합했던 것이다. 모임의 회원들은 각 학교, 각 학년, 각 반별로 단위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소녀회’도 상당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조직적 기반과 투쟁 경험이 있었기에 광주의 활동가들은 1929년 11월 3일에 일본인 학생들과 조선인 학생들의 패싸움 형태로 터져 나온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2차시위를 각 학교별로 계획하고 이후의 백지동맹 등의 장기적인 행동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꾸준한 싸움 덕에 결국 광주학생항일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학생들의 운동을 촉발시킬 수 있었다.

  또한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주목할 점 중 하나는, 신간회를 비롯한 다른 항일단체들이 학생들의 운동에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다른 사회운동과 유리되어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참교육 운동

  1989년에는 전교조가 결성되면서 1년 동안 전국적으로 총 46만 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참교육 운동에 나서는 놀라운 운동이 일어난다. 1990년의 18세 미만 인구가 1400명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당시 중고등학생의 약 1/10 정도는 투쟁에 나섰다는 소리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참교육 운동이 거세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전교조 교사들의 양심적인 외침과 요구가 청소년들의 요구와 맞아 떨어졌기에 가능했다. 비인간적 교육 속에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릴 수 없었던 청소년들은 그런 현실을 바꾸고자 끊임없이 싸워왔으며, 그 싸움은 전교조 창립을 계기로 더욱 격렬해졌다. 전교조 교사와 학생들의 유대로 운동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갈 수 있었고, 학생들은 전교조 교사가 우리 이야기를 대신해주고 희생당한다는 생각에 참교육 운동에 한층 더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참교육 운동 때 보여준 학생들의 동원력과 조직력은 그동안 축적되어 왔던 운동의 조직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생들의 저항의 구심점은 1987년 6월 항쟁의 흐름 속에 조직되어 온 소모임, 동아리, 학생회 등이었다. 청소년들은 1987년을 전후하여 교육 문제에 저항하는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고, 특히 1987년 6월항쟁을 경험하면서 학내에 적극적으로 소모임과 조직 건설을 시도했다. 그들은 학내의 대중적 조직 기반이 필요함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동아리나 소모임 등에서 학생들은 사회비판적 의식을 키워가고 있었고, 또 그런 조직들의 자주적 학생회 투쟁으로 세워진 직선제 학생회에 적극적이고 의식 있는 학생들이 진출하면서 학생회 조직은 운동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모임들은 전교조 출범 등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자, 그동안 축적된 역량들을 모두 드러내가면서 유인물을 만들고, 다른 학우들을 조직하며 행동을 주도하는 등의 역할을 참교육 운동에서 해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학교와 정부의 탄압으로 학내에서의 이런 모임들이 많이 약화되자, 1989년의 참교육 운동을 경험했던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 청소년단체를 만들어서 청소년 대중 속으로 침투해가는 운동을 펼쳤다. ‘청소년회 샘’ 같은 경우는 1994년에 공안사건으로 파괴당하기 직전에는 거의 2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수련회나 문화 분반 활동 등을 통해 참여했다. 그 청소년들은 샘에서의 대화나 경험에서부터 사회 및 학교의 문제에 눈을 뜨고 유인물을 돌리는 등의 활동을 하여 학교 안에 문제를 일으켰다. 이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샘의 상근자들이 가서 학교와 담판을 지어서 징계를 철회시킨 적도 있었다. 이는 학내의 활동이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고 사라져 갈 때 어떤 식으로 활동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 한 방법을 보여준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중고등학생복지회’의 일부 멤버들이 대중조직 건설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제기하면서 2000년도에 만든 단체이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무엇보다 2000년의 두발자유운동(일명 노컷운동)으로 유명하다. 당시 노컷운동은 웹연대 with의 인터넷 서명운동을 통해 불붙었으나, 그 불을 더욱 번지게 한 것은 바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오프라인 활동 ― 거리선전․서명운동․집회․인권선언 등이었다. 이 두발자유운동은 2000년 여름부터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으며, 당시 ‘준비위원회’의 (준)을 붙이고 있던 전국중고등학생연합(준)도 광주, 목포, 부산 등 각 지역에 지부를 설립하며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다.

  그러나 두발자유화운동은 양적 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의 기만적인 ‘학교별 합의’ 지침에 일반 청소년들이 넘어가면서 그 불꽃이 꺼지게 된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을 비롯하여 다른 단체들도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2000년 두발자유운동은 각 학교에서 각개격파당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각 학교별 지회전이란 형태를 통해 대중조직을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초기 대중조직 전략은 ‘형식적 대중조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즉,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을 대중조직으로 먼저 설정한 뒤 학생회․동아리․단체의 규합을 유도한 것이다. 청소년들의 지지를 통해서 대중조직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 아닌, 대중조직이 먼저 설정된 후에 거기에의 결합을 요구하는 방식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학생회 조직에 집착한 것도 문제를 낳았다. 사실 학생회장단 모임은 상당수가 엘리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따라서 학생회 조직을 규합하려 한 시도도 실패로 돌아갔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학내 지지기반이 많이 부족했고, 또 여러 대중조직 전략의 오류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지부 및 지회에 대한 관리 소홀로 좌절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학내에서 싸울 힘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본격적인 지회 전술은 2001년 봄 활성화 되어 서울지역의 경우 최소 파악된 것만 10여 개 이상의 지회가 활동했다. 그러나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조직관리 능력 미숙으로 자신의 조직 규모에 대한 파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자생적으로 각 학교에서 생겨난 모임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그 모임들이 학교의 탄압으로 해체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중앙은 지회 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제대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학교의 탄압은 너무도 강했다. 활동을 원하는 회원들이 계속 가입하면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덩치는 빠르게 커졌지만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은 이 덩치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대중조직 건설에 실패했던 것이다.


  앞서의 사례들을 통해 살필 수 있는 것은, 간략하게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①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학교를 거점으로 하는 학내의 대중적 조직을 건설하여 지속시켜야 한다.(소모임활동, 혹은 지회전) 탈학교청소년의 경우도 일터나 청소년문화의 집 등의 거점이 가능할 것이다.

② 이러한 기반이 없을 때는 이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또 그 계기를 촉발시키는 것은 학교 밖에서의 활동(참일청, 샘, 그리고 전국중고등학생연합 등)이다.

③ 대중조직 건설은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한다. 거품만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리고 각 학교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저항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원하는 데 세심한 주의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여러 인프라 면에서 따져보면 이제 막 시작하는 걸음마 운동이다. 기존에 활동하던 청소년들이 성장해서 성인이 되면서 조직이 흔들리는 등의 청소년운동 특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재학 중일 때 아래 학년과 잘 접촉해서 조직에 끌어들이라는 것 외에는) 획기적인 답이 제시되지도 못하고 있으며, 또 정말로 대중조직 건설이란 것도 밑바닥에서부터 해나가는 길고 힘든 작업이다. 그러나 그런 긴 작업과 시행착오의 역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떠한 운동도 발전하지 못한다. 과거의 여러 사회운동들도 그런 시행착오와 패배의 역사를 겪으면서 발전해왔음을 주지하며 인내심을 갖고 대중운동 건설에 임해야 할 것이다.


4.2. 경계해야 할 방식

  현재의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경계해야 할 것에는 ① 피터팬주의 ② 비정치성이나 정치적 중립의 환상 ③ 온라인 만능주의 ④ 정부나 국가에 대한 의존 등이 있다.

  피터팬주의는 청소년이 아닌 비청소년들의 개입을 극도로 꺼리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진보적 청소년운동을 공격하는 데 국가나 보수적 세력들이 ‘성인들의 조종’이라는 식의 비난을 일삼아 온 데서도 비롯되며, 또 청소년들이 성인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 하는 과민한 반응에서도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은 안정적인 조직과 활동가의 부재를 낳았으며 운동의 발전을 막는 요인이 되었다. 활동가가 청소년에서 나이를 먹어 자연스레 비청소년이 되면, 설령 활동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청소년운동에서 소외되면서 운동의 경험이 축적되는 것을 가로막았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이 가장 중요한 주체가 되어야 함은 사실이나, 비청소년들도 거기에 얼마든지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장애인인권운동을 장애인만 하는 것이 아니듯이. 비청소년들이 청소년운동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지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고민해야 하며, 그들의 운동 경험들을 전달할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비정치성이나 정치적 중립의 환상은 기존의 정치나 기성운동에 대해 꺼리는 감정 등에서 비롯된다. 이는 다분히 청소년들을 기존의 운동으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오랜 책략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하다. 비정치성 주장은, 청소년운동이 기존의 어떤 이념이나 운동과 무관한 ‘순수한’ 운동이거나 또는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 운동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운동에 제약을 만들 뿐이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다른 운동들로부터 고립되는 것이 전략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도 있지만, 사실 비정치성을 내세우는 단체는 활동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단체는 어떤 활동에 정치적인 색깔이나 기존 단체, 정당, 이념 등이 관련되어 있으면 그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따라서 오히려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자신의 대의에 일치하는 것에는 거리낌 없이 동의해야 한다. 마치 ‘학생인권법안’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에게서 발의되었다고 해서 이를 지지하는 것을 꺼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학생인권법안을 발의했기에 다른 정당보다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 만능주의는 청소년들의 오프라인 조직이 필요 없으며, 편리한 온라인에서의 활동만으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활동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온라인 서명 1만 명과 교육부 앞에 피켓들고 진을 친 500명의 청소년 중에서 더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하고 실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후자이다. 중고등학생복지회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삼은 것은 억압적인 학교 현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회한 것에 불과했다. 온라인은 비록 자유로운 활동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지만, 그만큼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크지 못하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현재 온라인 만능주의는 현실세계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한 청소년들에게서 드문드문 엿보이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제 행동의 중요성을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직접 청소년들을 조직화하고 세력화해서 스스로 권리를 찾게 하지 않고 국가나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무엇을 해달라고 별다른 행동 없이 ‘청원’하는 형태의 운동을 의미한다. 이는 관변단체의 성격을 띤 곳에서 자주 보이는 것으로, 오히려 청소년들의 진보적인 요구를 달래서 체제 안으로 흡수하려고 한다. 이는 인권이 결국 자신이 쟁취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은폐하며, 국가의 요식적인 행정 또는 입법 활동에 의존하게 만들어 운동의 목표 달성을 더디게 만든다.

  이상과 같은 여러 문제들은 지금까지 진보적 청소년운동에서 나타난 몇 가지 문제들에 불과하다. 앞으로 계속 운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러한 문제점들이나 시행착오를 얼마나 빨리 인식하고 해결하느냐에 따라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발전이 좌우될 것이다.



5. 맺음말

  진보적 청소년운동은 앞으로 계속 발전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발전을 위해서 계속 이슈를 만들고 행동을 벌여야 한다. 질적 발전과 양적 발전이 병행되기 위해서, 연구 및 정리와 행동을 통한 선동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

  대중적 투쟁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기를 앉아서 기다렸다가는 낭패를 보게 된다. 활동가들은 결정적인 기회나 대중의 의식 전환이 이루어지는 계기를 만들고, 또 그때가 왔을 때 벌일 효과적인 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연대하고 저항하면서 운동 기반을 조금씩이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행동이 행동을 낳는다. 그리고 그런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길을 준비하는 일이다.

  주지할 것은,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학내에서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고, 학내의 인권침해 사례를 모으고 비판할 학내 모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학교는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이자 청소년들의 생활 대부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청소년인권문제의 많은 부분이 학교에 집중되어 있기도 하다. 따라서 탈학교 청소년들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학교의 중요도는 퇴색되지 않는다.

  학내 모임은 학교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당분간 다소는 비밀스럽게 행동할 필요도 있다. 학내에서 관심 있는 친구들을 유도하고, 동아리 등에 스며들어 그들의 주장(학교 측의 활동 제한이나 각종 검열)을 옹호하여야 한다. 각종 전단지나 간행물을 학생 사회에서 유포시키고, 자주 모임과 토론회를 열어 결속을 다져야 한다. 그리고 지회-모임의 지속을 위해서 학생회나 동아리에 적극 참여하여 선후배 사이의 교류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학생회에 진출해서 학생회를 진보적인 성격으로 만들어 학교에 저항하고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일 것이다.

  덧붙여서 학교 밖에는 이러한 학교별 모임을 지원하고, 구성할 지역별 조직, 전국적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다. 특히 이 단위에서 진보적 청소년운동의 목소리를 낼 간행물 발간이 매우 중요하며, 학교별 모임의 토론회에 발제자나 연사를 보내줄 필요도 있다. 또한 회원들의 학교별 모임 건설에 도움을 주고, 같은 학교 회원이나 주변 학교 회원 혹은 모임에 연결고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진보적 청소년운동이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학교와 사회의 탄압은 계속되고 있으며, 대중조직 건설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언제 달성될지 불분명하기만 하다. 두발자유운동도 7년째이지만 아직 두발자유를 이루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계속해서 길을 준비해갈 것이고, 끈기를 갖고 청소년의 인권이 보장되고 청소년들이 권리의 주체이자 사회 변혁의 주체로 나설 수 있을 때까지 운동은 계속될 것이다. 더 행복하고 가치있게 살 수 있는 사회, 인간이 수단인 동시에 목적으로도 대우받을 수 있는 사회를 인간이 소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억압이 있는 한 저항도 있을 수밖에 없다.  (기왕 저항하는 것, 조직적으로 꾸준히 해서 목적 달성 가능성도 높여줘야 할 일이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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