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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에서의 해방

 사회는 편견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안에선 첫 인상의 이미지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첫 인상 그 자체가 어쩌면 편견을 만들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동체라는 사회에서 한 개인은 평생 동안 첫 인상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낙인론적이긴 하지만 그게 사회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는 다른 환경의 만남이기 때문에 한 개인을 제대로 알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인간은 남의 첫 인상이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첫 인상을 계속 간직하려는 보수성은 폭력을 부른다. 그것이 편견의 폭력이다. 한국 사회는 보수성이 강해 권력의 폭력을 많이 본다. 첫 인상의 권력이라는 것이다. 첫 인상의 권력은 물론 세상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 첫 인상의 권력이 한 개인들에 의해 해체되기도 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편견을 버리도록 노력해야 진정하게 거듭날 수 있다고 하겠다. 그것이 바로 사회를 인간적이고 따뜻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따뜻함을 만들어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첫 인상들이 박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첫 인상, 권력화된 편견은 야만성을 드러내게 된다. 사회는 적자생존의 원칙이라는 것은 편견에서 나온 말인데,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게다가 사회복지제도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도 있다. 그렇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이기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P.A.크로포트킨(러시아 아나키스트)의 상호부조론을 보게 되면 동물 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서로 도우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나는 그전까지 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해서 인간만이 서로 돕는다고 알고 있었다. 그 편견이 깨져 버리자 혼란스러움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뭔가가 잘못 알았구나라고 생각했다.

 동성애, 병역거부, 아나키즘을 편견의 눈을 봤는데, 병역거부자의 글을 보고 그와 친구가 되고, 동성애에 대한 글을 보니 그것도 내 편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편견을 깨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다. 첫 인상에서 머무르는 게 인간의 보수적 욕망으로 받아들이긴 힘들다. 그래서 그 보수성을 간직하기 위해, 사회의 안정이란 명목으로 권력은 첫 인상을 소유하고 강요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다. 진실은 원래 괴로운 것이기에 인간의 본성을 외면하게 된다.

 지금 이 시간에도 편견의 폭력에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하고 있다. 심지어 사회의 안식처라고 하는 종교까지도 편견을 유지하고 보존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편견의 권력으로 세력을 확대해가며 싸우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을 깨려는 사람들을 신의 이름으로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죽이고 다치게 만들고 자기들은 썩어가고 있다.

 공동체란 것은 서로 돕는 따뜻함을 전제로 한다. 편견의 폭력은 사회를 차갑게 하고 있다. 편견의 사회화를 막고 인간 스스로 해방하려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인상이란 절대로 영원한 게 아니다. 환경에 따라 바뀐다. 유지되는 게 있다고 해도 완전히 유지하는 게 아니며 바뀌었다 해도 급격하게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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