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 운동, 뒤죽박죽의 고민

#1.

엄마는 가끔 전화로, 돈을 벌어야 할 때라는 압박을 팍팍 준다. 지금도 적당히 벌면서 잘 살고 있지 않냐구 대답하면 바로 나오는 말이 "집은 어떻게 할 꺼냐". 여기까지 오면 사실 할 말이 없다. 엄마가 갑자기 전세금을 빼겠다고 하면 당장 살 길이 없다. 그런데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부당한' 기대로 심각한 고민을 미루고 있다.



청약저축에 가입해야 하나, 돈을 얼마나 어떻게 모아야 하나, 엄마한테 좀더 도와달라고 하면 안되나, 싼 동네로 가면 되지 않을까, 이 정도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맥락에서 주거를 고민한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을 때 아이스크림 살 돈을 어떻게 구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내 몫인 것처럼 내 집이든 전월세든 내가 살 집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역시 '내' 고민. 하지만 주거가 권리라는 말은 집은 아이스크림과 다르다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지 않나.

이럴 때 내가 어떻게 집에 대한 권리를 주장해야 할까를 잠시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이 정말 최근이다. 주거가 권리라고 말하면서도 그 권리를 어떻게 요구하고 쟁취할 수 있을지는 막연하고 내가 주거를 권리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2.

어쩌다보니(?) 작년부터 주거권을 고민하게 됐다. 사회권운동의 맥락에서 주거권이 지니는 특수한 성격이 있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유혹이 있었다. 지역적 접근이 가능한 주제이기도 하고 그리 활발히 논의되지 못해온 주제이기도 하고 재산권과 대립되는 경우가 많은 주제이기도 하다는, 그리고 이런 말들로는 설명되지 않는 유혹이 있었다.

그런데 만만치가 않다.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주거를 권리로 세워낼 수 있을 지, 홈리스(확장된 의미에서)들의 직접행동과 연대투쟁으로 운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 권리의식의 강화를 위한 인권교육 등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 

주거권운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끊이지 않는 철거투쟁은 한국 민중의 역사에서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주거에 대한 관심이 여기저기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주거권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아니 주거권운동이 무엇일지는 여전히 애매하다. 어디에서 나는 막혀있는 걸까. 다른 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3.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기적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궁핍을 생산한다. 그것은 궁전을 생산하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움막집을 생산한다.  ...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노동의 본질 내부의 소외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주거권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이 부분이 늘 머리속을 맴돈다. 물론 이 부분은 자본이 노동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주거와 관련해서도 현실에 너무나 들어맞는 설명이다.

집이 없어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노동현장은 건설현장이다. '노가다'들은 끊임없이 아파트를 지어올리지만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지하도로 들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집들을 꾸준히 만들어지지만 집없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이 맴도는 것은 현실에 대한 적절한 묘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주거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본의 역할이 무엇인지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대가 자본가들의 발목을 잡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토지소유자들과 다주택 소유자들이 자본가는 아니다. 생산관계에서 자본가의 역할을 맡은 사람일 수는 있겠지만 토지소유와 주택소유 자체가 자본가의 정체성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토지와 주택을 상품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이윤을 뽑아내는 자본가들이 분명히 있다. 건설자본이 그것이다. 공간을 끊임없이 점령하고 이윤의 원천으로 만들어내는 집단. 아마 금융자본과 토지 부동산의 관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부분이 많겠지. 

이런 부분이 빠진 채 주거권을 이야기할 때에 주거권운동은 국가에 주택정책의 개선을 요구하는 운동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왕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의 사람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정치인과 관료들이 일을 해결하기는커녕 망치기나 할 뿐인 집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주거가 권리일 때 그 의무주체는 일차적으로 국가이겠지만 누가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지를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 갇히지 않는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알 듯 모를 듯 무엇을 얘기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4.

나는 니가 도끼로 사람을 찔러죽었다 해도 니 편이야. ... 나 너 믿어.

나가도 갈 데도 없는데 뭐.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태희(배두나)가 유치장으로 지영(옥지영)을 찾아가서 말을 꺼낸다. 하지만 지영의 대답은 "나가도 갈 데도 없는데 뭐" 였다. 사람을 죽이고도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 집이라고, 옛어른들이 말했다고, 누가 그랬다. 이 대화는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보여준다. 집은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하려는 사람들의 관계를 물리적으로 보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지금은 집이라고 하면 가족을 생각할 뿐이지만 혈연과 무관하게 어떤 긴밀한 관계를 맺고 대안공동체를 꿈꿀 때 그것은 비가시적 영역으로 여겨지지만 현실적으로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무관하지 않다. 독립 혹은 자립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성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중요하다. 공간에 대한 권력을 누가 쥐는가 하는 문제.

그래서 주거권은 다만 모든 사람에게 집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권력을 평등하게 만들어가는 것 혹은 공간을 여성주의적으로 재편하는 것을 담아낼 수 있는 담론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주거권의 여성주의적 재구성 에 대한 고민들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5.

그러다가 다시... 이런 고민이 해결된다고 운동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끝내 눈 떼지 못하고 내가 지금 뭘해야 하나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계속 맴도는 요즘. 모르겠다. 으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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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3 17:19 2006/04/2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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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zrael 2006/04/25 18: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뭐 하나가 해결되어서 운동이 해결될거 같음..다 매달려서 그거하게요~ 주거권에 대한 문제..고민해서 좋은 의견 들려주삼!!

  2. 미류 2006/04/26 15: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러게요~ 좋은 의견이 나올 지는 모르지만 고민은 계속 해야죠~ ^^;

  3. canna 2006/05/02 15:3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ㅋㅋㅋ..집문제 땜시 나도 대가리 뽀개지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