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작년 이맘때 <점거하라>를 본 후 뜬금없는 버릇이 생겼다. 길을 가다가 문득 빈집이 없나 둘러보는 게 그 버릇인데 아직까지 한번도 못 봤다. 그러다가 지난주 큰길가에 있는 빈집 하나를 발견했다. 빈집이 있다고 당장 점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빈집 점거가 한국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지는 따로 고민해볼 문제이겠지만 빈집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한 것은 뭔가. 흡. 섣부른 관념. 쨌든.


본건물을 파손하거나 무단침입시에는 고발조치하겠습니다

 

라는 경고장이 붙어있다. "강도로 간주"하겠다는 말도 있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다. 그 집은 누군가의 소유일 것이므로 낯선 이가 들어간다면 불쾌할 것이다. 그 불쾌감에는 자신의 재산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깔려있을 테고.

하지만 '집'은 재산 이전에 삶의 공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한편으로는 어색한 일이다. 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휴식을 위해 들어서는 집, 먼지를 털어내고 빨래를 널고 밥을 먹는 공간, 내가 읽은 책들을 쌓아두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 흐르는 곳이 왜 내 것이 아니지? 법적인 소유권이 나에게 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집'을 누군가 '소유'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거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는데 집이 없어 길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생기냐구.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쯤의 나이에 많은 사람들은 "내 집 하나 장만할 때"를 삶의 분기점으로 삼는다. 일단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 시기. 운이 좋은 누군가는 그 시기를 길게 거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평생 동안 분기점을 넘어보지 못한다. 삶의 공간인 집을 위해 삶을 저당잡혀야 하는 역설.

 

하지만 주거권은 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비를 피할 지붕에 붙들려 삶도 붙들리는 사람들. 가정폭력피해여성이나 시설의 생활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삶의 공간을 누릴 수 있어야 온전히 삶도 누릴 수 있는 것. 모두(모든 가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권리. 그리고 국가의 의무.

 

1970년대 초반 서베를린 대학가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운동에서 가장 격렬하게 요구했던 것이 학생들의 주거권이라고 한다. "독일법에 따르면 16세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은 부모의 동의 없이도 부모로부터 독립할 권리가 있는데, 이때 본인이 거주처를 요구할 경우 부모로부터 일정액의 임대료를 부담시키는 조건으로 주정부는 이 자녀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거주 공간을 제공할 책임이" 있었단다. 그런데 기숙사가 바닥났대나 어쨌대나 그래서 데모했다는... 부러운 이야기.

 

쨌든. 흠. 빈집을 점거하면 강도라는 거지? 음...

 

*** 최순영 의원이 임대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민주노동당인데... 귀농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땅이야 그렇다치더라도 자신이 살지도 않는 집을 소유한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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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1 13:02 2005/04/1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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