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대한 민주주의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54일 동안 이어진 수청동 철거민들의 농성은 끝났다. 30명이 연행되었고 그중 24명이 구속되었다. 망루가 헐리워진 자리에는 스산한 바람만 불어댈 테고 흙바람 날리는 그 곳에 더이상 주거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윙윙거리는 소리가 주위를 떠돌다가 또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목소리가 되어 힘겨운 싸움을 열어가겠지.

 



철거된 건물들 사이에 섬처럼 남은 망루는 전기도 들지 않고 물도 없는 도시의 사막이 되고 용역을 앞세운 시공업자들은 건물을 철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쓸어낸다. 지켜보던 경찰은 때로는 스스로 작전을 세워 철거민들을 끌어낸다. 진압이라니, 그/녀들이 폭도라도 되는가. 침탈이고 철거일 뿐이다.

 

60년대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청계천을 따라 판자촌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70년대에 그 사람들을 이주시킨다고 보낸 곳이 신림동, 봉천동, 상계동과 같은 도시 외곽의 달동네. 80년대를 거치며 재개발을 둘러싼 투쟁이 치열했던 곳들이다. 달동네는 굳이 법적으로 따지면 무허가 정착지, 즉 불법 점유지였다. 그런데도 그 집들을 사고팔 수 있었고 주민등록도 가능했다고 한다. 그 주민들이 범법자가 된 것은 땅이 돈이 되는 순간부터다.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명목의 재개발. 그것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좀더 쾌적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개발이 아니라 상품가치가 높은 쾌적한 주택을 만들기 위한 개발일 뿐이었다. 오산 수청동 투쟁의 계기가 되었던 택지개발도 그렇다. 사람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택지개발사업에서 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려 싸워야만 하는가.

 

한편에는 이런 풍경도 있다. 안양이었던가. 녹지였던 땅을 택지로 개발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만 모여산다는 임대아파트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이기주의였을 수도 있고 도시의 호흡을 가능하게 할 푸른 땅을 개발할 수는 없다는 생태주의적 욕구였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들 역시 싸워야만 했다는 것이다.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집을 짓고 그 안에서 밥을 나누어 먹으며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른다. 책을 읽기도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하고 가만히 누워 하루를 돌아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씨를 뿌려 작물을 거두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미술관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할 테다. 누군가는 나무를 심고 벤치를 만들어 상큼한 휴식을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땅에 대한 권리를 갖는 것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곳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토지자본이다. 땅에서 뻗어나온 공간들이 재구성될 때 '어떻게'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자본이다.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가녀린 목소리라도 듣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히 싸워야 했던가. 

 

프랑스의 빈집점거운동을 이끌었던 아베 삐에르 신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쪽에는 빵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데 다른 쪽에는 빵을 못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빵을 훔치는 것이 도덕적인 것 아닌가, 라고. 땅을 동등하게 '소유'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필요한 사람들이 점유할 권리, 사용할 권리, 무엇보다도 통제할 권리를 보장하면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어느 곳에 공원이 들어서면 좋을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정비되어야 하는지, 왜 우리는 말할 수 없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삶 그 자체에서 발원하는 목소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건설교통부의주택정책에서 우리의 삶은 임대주택의 수로 평가되고 보건복지부는 '여의치 않으시면 시설로 오시죠'라고 말한다.

 

주거권은 단순히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을 얻을 권리가 아니라 주거의 공공성을 요구하는 권리, 땅에 대한, 공간에 대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권리다.

근거? 내가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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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1 10:55 2005/06/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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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reamer_ 2005/06/13 02: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와, 간만에 참 좋은 글을 봤단 느낌이네요.^-^

  2. 미류 2005/06/15 14: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마워요 ^-^ 어떻게 만들어갈 지, 그게 쉽지 않네요.

  3. 바울 2005/06/20 08: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수청동얘기를 보고 들으면서 나의 무지에 대해 정말 알고싶다는,
    그런 욕구가 엄청났었는데요..
    알지못함에 안타깝기도 했었구요.
    오늘 들렸다가면서 많이 알고 갑니다.
    글 잘 읽었어요.^^감사해요~

  4. 미류 2005/06/25 10:3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바울, 반가워요. 바울이 알고 싶은 거, 궁금한 게 어떤 것들인지 저도 궁금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