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물론, 소식을 들은 지는 오래됐다. 모처럼 산바람, 바다바람을 쐬고 돌아오는, 아마도 버스 안에서 뉴스를 들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죽음. 방화셔터에 깔려 사람이 죽었다고?

 

#2.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연락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노숙은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임을 우리가 여태 몰랐던가. 올해만도 한 두 분이었던가. 그 중 한두 분의 죽음이라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가. 혹은 끝까지 싸울 수 있는가.

지금 뒤늦게 추모의 마음 하나 보태는 것이 또다른 자기위안은 아닐까.

 

#3.

뉴스를 듣자마자 주거인권학교를 함께 했던 노숙당사자모임 아저씨들이 궁금해졌다. 이 소식을 듣고, 어쩌면 공공역사의 텔레비전을 통해서 뉴스를 보고, 아저씨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뭐, 그렇지. 또 죽었군. 억울하겠구먼. 싸가지 없는 역무원들과 철도공안들을 이번 기회에 혼을 내줘야지. 이 빌어먹을 세상을 확 뒤집든 해야지... 여기 어디쯤엔가.

 

#4.

인간답게 살 권리. 먹고 자고 씻는 것은 최소한의 권리라기보다는 출발점일 뿐이다. 그러나 아저씨들에게는 그 자리가 최대한이거나 목적지이기도 했다.

노숙을 하다보면 잘 씻지 못하고 누가 먹던 음식인지도 모르지만 손이 갈 때가 있고 건물의 처마 밑이 '쪽팔려서' 잠이 안 오던 시절도 잠깐일 뿐이라고,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리던 아저씨들. 하지만 **역 ##교회 화장실에 가면 샤워시설도 돼있고 %시쯤 가면 편안하게 씻고 나올 수 있다고, $$에서 하는 결혼식 부페 같은 거 끝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장충동 @@ 족발집에 가면 아예 노숙인들 주려고 파전 싸놓기도 한다고, ~~에 가면 조용하게 자다가 나올 수 있다고, 어느새 떠들썩한 자랑이 시작되기도 했다.

부끄러움과 무용담의 경계에서 삶이, 인권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돌아가신 두 분에게, 방화셔터 아래 잠자리가 또다른 무용담이었던 것은 아닐까.

 

#5.

오늘 저녁 7시, 영등포역에서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비는 추모제가 열린다. 주최단위에는 노숙당사자모임과 영등포역 노숙동료들 이 물론 있다. 언제 한 번 얼굴 마주하고 이야기 나눈 적 있었을까. 그저 거리에서 살아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동료가 되고 동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를 버리지 않는다. 거리에 삶과 인간의 존엄을 세우기 위한 추모의 촛불을 드는 것이다.

 

* 오늘 발표한 성명

 

#6.

마침 '빈곤에 저항하는 온타리오연합'의 활동매뉴얼을 보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을 멈추고 파업을 해서 세상을 긴장시킬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노숙인,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그리고 또 많은,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손을 놓으면 세상은 기뻐할 뿐이라는, 쓰린 진실을 인정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없지는 않다는 것, 오히려 우리는 더욱 많은 행동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여성으로서, '나이많은 아저씨'는 일단 반갑지 않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져있으면 더욱 불안해지는 편견도 당장 버릴 수는 없고, 험악한 표정이라도 지으면 흠칫 움추러드는 게 사실이지만, 움추러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까지 포기하지는 말자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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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1 12:12 2006/10/11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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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류님의 [거리에, 인간의 존엄을 세우기 위한 촛불] 에 관련된... 빈곤사회연대에서 만든 추모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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