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은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거나, 마음을 울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들은 과학이 운동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거나, 진실을 알리면 사람들이 움직일 것이라는 오해를 겨냥한 것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피해자로 위치 지워야 할 때 우리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는 한치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뜻 동의할 수만은 없었다. 이 말들은 다시 쓰여야 한다. 관계의 감각을 생산해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감각은 평등에 대한 감각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평등에 대한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 아마도 변두리스토리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얻은 어떤 인상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그러나 누구도 평등할 수 없다, 는 말로부터 인권을 설명해야 하는 난감함 사이에서 실마리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평등에 대한 감각을 얻어가는 그/녀들의 모습 속에서 어떤 힌트를 얻었다. 말로 설명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어제 본 <왕자가 된 소녀들>이나 최근 이어지고 있는 택배기사들의 파업에서 그 힘들이 보인다. 

 

평등은 불평등을 통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근본적으로 동등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빼앗아가는 수많은 모순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말하기와 듣기, 그것이 연대의 시작이고 평등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래서 만나고 모여야 한다는 것. 우리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설명하거나 증명하는 방식으로 탄압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미 불평등에 저항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평등을 예감할 수 있지 않을까. 

 

강동균 마을회장이 끌려가는 사진과, 그가 무기한단식을 선언하며 쓴 글 앞에서 나는 인권활동가라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가 권리를 선언하는 순간, 인권활동가로서 말해왔던 권리들이 얼마나 무기력한지, 하지만 여전히 권리의 힘은 얼마나 강력한지 깨닫는다. 활동가라는 위치를 섣불리 넘어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혹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을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해. 

 

말할 수 없는, 대들 수 없는, 들리지 않는, 괴롭힘을 당하는, 혐오의 대상이 되는, 빼앗기는, 쫓겨나는, 아픈, 죽어가는 사람들이 말하는 불평등의 현실. 하지만 말하고, 싸우고, 들어주고, 일하고, 보살피고, 다독이고, 나누고, 지키고, 머물고, 긍정하고, 힘을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평등의 감각. 사람의 모습. 각자의 자리에서 체제에 맞서고 있는 그 힘들을 연결시키기.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털어내지 않기, 하지만 설렘을 잊지 않기. 무거운 것이 흔들릴 때 그 진동의 힘은 그만큼 커질 것임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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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2 15:46 2013/05/1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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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훈이네 2013/05/12 20: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말하기와 듣기, 그것이 연대의 시작이고 평등에 대한 감각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 그래서 만나고 모여야 한다는 것."

    만나고 모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