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 민영화 저지 결의대회와 쌍차 범국민대회 사이에,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있었다. 민주노총가를 불렀다. 집회장에서 함께 불러본 게 오랜만이다. 문득 95년 민주노총 출범식이 스치면서 목이 메어왔다. 멋모르던 시절이지만 벅찬 감동이 있었던 그때. 지금의 민주노총은...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 건 민주노총 때문만은 아니다. 인권운동'도' 힘들어서, 가 아니다. 그냥, 운동이 너무 초라해보였다. 서로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서로의 가능성을 읽어주기 위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는 무거움이 덮쳐왔다. ...... 함께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

선동, 을 생각했다. 남을 부추겨 어떤 사상을 갖거나 행동을 하도록 조장하다.

난 선동이라는 말이 참 좋다. 설렘이 있다. 누군가 함께 움직이도록 만드는 힘.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에서 선동하는 힘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선동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계획을 발표하는 것도, 지침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선동하는 힘은 이론에서 나오는 것도 형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읽어낼 사상도 필요하고, 울림을 전할 형식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송경동이 '사소한 물음에 답함'이라는 시에서, 나는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정확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기운, 그것은 말 이상이다. 문화제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에는 선동의 바람이 있었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명랑한 유머로, 비통한 떨림으로, 듣는 자의 몫을 묻게 하는 선동이 있었다. 

 

#

광화문광장으로 가려다가 경찰에 가로막혀 한참을 싸웠다. 캡사이신 때문에 얼굴부터 머리 뒤까지 불이 붙은 것 같았다. 화, 났고 속, 상했다. 한참 후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데, 뜬금없이 '유능제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부드러움으로 능히 강함을 제압한다는. 유도를 배우고 싶었던 건 순전히 저 말 때문이었다. 상대가 힘으로 밀어붙일 때 그냥 버티는 것으로 상대가 메쳐지지는 않는다. 상대의 힘을 잘 읽으며 그 힘을 이용해야 한다. 시합할 때를 떠올려보니 나는 상대의 힘을 전혀 읽지 못했다. 상대의 힘을 읽을 만큼 내 몸을 던지지 못했다. 내가 무게중심을 잡는 방식은 그저 무게를 잡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무게는 힘이 되지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힘의 방향을 바꾸고 그 힘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촛불 때에도 유능제강을 실마리로 고민을 했더랬다.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무게중심은 무게 자체로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나는 상대의 힘을 읽는 능력은 부족하다. 하지만 내 몸은 조금 더 읽는 것 같다. 선수는 둘이지만 세상은 하나다. 내 몸을 잘 읽는 것에서 출발해도 힘을 읽을 수 있겠지. 조금씩 더 움직이다 보면 상대의 힘도 조금씩 더 읽게 되겠지. 순간순간 어떻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걸 모른다는 걸 자꾸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조금씩 던져보고 안 된다고 지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 더 읽게 되는 거다. 하지만 조금씩 던지면 조금씩만 알게 된다. 더욱 가볍게 움직이되, 상대를 메치려고 움직인다는 걸 잊지 말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3/08/25 13:47 2013/08/25 13:47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aumilieu/trackback/868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