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윤김지영이라는 이가 쓴 글 <난민 문제에 대하여>를 보게 됐다.
글 읽으면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주거권 운동 하던 때 기억이 많이 났다. 좌우로 잠자리가 이어진 서울역 지하도를 혼자 지날 때, 행여 누군가 술에 취해 있는 듯 보일 때, 불안해지는 마음 같은 건, 나의 머리로 통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감정이 혐오와 차별의 고리에 있다는 걸 안들 내가 느끼는 공포나 두려움이 해소되지는 않았다. 여성 활동가인 내가 홈리스 인권 운동을 한다는 게 가능한 걸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여성주의적 문제의식과 담론 개입의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그래서 윤김지영 님 글 본 소감은 이렇다.

너무 맞는 말 괜히 어렵게 하다 보니, 너무 틀린 말 하게 되신 듯.

1) 예멘 난민의 편향적 성비에 관해 : 홈리스도 마찬가지로 젠더라는 변수가 강력하게 작동. 노숙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남성. 왜? 여성들은 홈리스가 되더라도 거리 노숙을 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덜 드러나고 그래서 덜 주목받는다. 마치 홈리스는 남성의 문제인 것처럼. 이것은 당연히 여성차별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래서? 여성주의적 비판은 남성 홈리스를 향해야 하는가? 여성억압이 구조화된 이 사회를 향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난민 문제를 여성주의적 비판의 대상으로 다루는 것이 고작 난민 중에는 남성이 많다는 것인가?

2) 난민에 대한 단순화에 관해 : 어떤 집단을 낭만화하는 태도가 그 집단 안의 위계를 은폐한다는 지적은 매우 중요하다. 홈리스 안에도 폭력의 위계 있다. 홈리스를 단순화할수록 내부의 위계와 폭력 감추어진다. 홈리스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기 위한 말들이 이런 작용을 강화하기도. 젠더 위계, 당연히 있다. 성착취와 보호가 사실상 구분되기 어려운 관계도 있다. 여성을 위해 홈리스 내부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 너무나 중요하다. 홈리스/난민 여성들에게 "보다 안전한 공간이 제공되고 있는지", "미성년인 여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어떻게 제대로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홈리스/난민 문제에 대한 입장과 관점이 필요한 것 아닌가? 홈리스/난민에 대한 정책 마련이 "성별 위계적 현실을 묵인, 방관"하는 것처럼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나이브한 태도" 아닌가?

3) 난민 수용에서 여성과 어린이 우선원칙에 관해 : 홈리스에서도 여성과 어린이 우선원칙은 중요하다. 집이 없는 조건이 같더라도 젠더나 나이에 따라 선택지도 달라지고 결과도 달라진다. 더욱 취약한 조건으로 내몰리기 쉬운 사람들에게 더욱 우선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권의 기본 관점 중 하나. 그런데, 그렇다고 여성 홈리스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 남성들이 난민 신청을 더 많이 하게 되는 상황이 성별 불평등하므로 여성들이 난민 신청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야? 그 정도를 거슬러갈 거라면, 난민 신청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야죠. 이거야말로 난민에 대한 낭만화 아닌가?

4) 남성 난민은 여성에게 약자이기만 한가에 관해 : 남성 홈리스가 혐오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하지만 그들 앞에서 내가 느껴야 하는 불안도 실제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점에서는 분명히 나보다 강자였다. 나의 두려움은 '약하고 착하고 핍박받는' 홈리스에 대한 이상화 작업으로, 당연히 해결될 수 없다. 몰라서 무섭나? 알아도 무섭다. 그런데 이 공포의 기원은 뭐지? 홈리스가 아니라 남성이다. 생물학적 남성 개개인들이 아니라, 여성의 안전을 여성의 문제로만 떠넘기는 남성중심적 사회가 공포를 만든다. 남성 간 폭행은 결투고 여성 간 폭행은 가십인데 남성이 여성을 폭행하면 일상인 사회.
그런데 이 대목에서 대안이 실질적 홈리스 정책 마련인가? 홈리스든, 난민이든, 또 어떤 정체성이든 남성 **이 여성에게 약자이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은, 가부장제 뒤집어서 풀어야 할 문제 아닌가?
홈리스 정책, 난민 정책은 비홈리스 여성, 비난민 여성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 아니다. 홈리스와 난민을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 홈리스와 여성 난민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이걸 헷갈리면, 마치 여성을 위한 것인 듯 홈리스와 난민 인권침해가 정당화되고, 결국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진짜 문제는 사라져버린다. 강남역에서 보셨잖아요. ㅡ,ㅡ;

그러니 아무거나 페미니즘에 섞어서 얼버무리기는 그만하시라. 윤김지영의 주장이야말로 여성에게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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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4 11:35 2018/06/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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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난민을 팔아먹는 논쟁 - 1

    ou_topia2018/06/27 21:40

    미류님의 [어쩌다가 <난민 문제에 대하여>를 보게 됐다] 에 관련된 글. 1. 윤김지영의 <난민에 대하여>을 보게 되었다. 이곳 미류 님이 언급해서 궁금 했다. 원문은 검색이 안된다. 다행히 원문을 친절하게 인용한 글이 있다. 2. 모르겠다. 학문/과학이란 게, 글쓰기란 게 이런 건지. 데이터베이스가 엄청 빈약한데 이런 글쓰기가 가능한 건지? 3. 2015년 이후 독일 망명 신청자의 성비 및 연령 구성을 소개해 본다. 가. 성...

  2. #난민_혐오_여성주의

    식물성의 저항2018/07/02 09:41

    미류님의 [어쩌다가 <난민 문제에 대하여>를 보게 됐다] 에 관련된 글. 6.30. 한겨레에 실린 글 "백인 남성들이었어도 '경보'는 울렸을 것이다"는 조금 당혹스러운 글이었다. 여성의 두려움이 평가절하당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요하고 타당했으나, 인종차별이 아니라는 걸 밝히기 위해 '백인 남성'과 비교하는 방식을 택한 것도, 여성의 공포가 난민 혐오에 동원되고 있는 현실의 맥락에 대한 고려가 삭제된 것도, 아슬아슬했다. 두려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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