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다. 그런데

추석연휴를 전후로 해서 우울 mood를 달리다가 좋아졌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우울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역시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좋아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뜬금없는 mood 전환에는 나를 너무나 즐겁게 했던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다시 우울해지기 전에 기억하기.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버스가 끈질기게도 안 온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에는 800원짜리, 1400원짜리 두 개 노선이 있고 1400원짜리를 타면 목적지에 좀더 가까운 정류장에 내릴 수 있다. 800원짜리를 타기 위해, 나름대로 끈질기게 기다리다가, 그냥 포기하고 1400원짜리를 탔다. 당시 mood는 우울이었기 땜시롱 혼자서 '사치야, 사치.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좀더 기다렸어야 해. 좀 걸으면 될 것을 피곤한 척 하고 있어. ...' 등등 일종의 자학 내지 자기반성을 하면서 다시금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정류장이 코 앞인데 신호등에 딱 걸렸다. 이 정류장은 중앙차로에 있는 거라 신호등이 바뀌어 버스에서 내린 다음에 다시 신호등을 한참 기다려야 길을 건널 수 있는 곳이었다. 몇 분 안되는 거라 별거 아닌데도, 역시 되는 일이 없네, 우울해우울해 중얼거리는데 기사 아저씨가 앞으로 나오라더니 횡단보도에 내려주셨다. 완전 감격하면서 나는 mood 전환을 예감했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서 승객을 하차시키면 기사에게 벌금 내지 그 비슷한 것들을 물리기 때문에 사정을 해도 대개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말도 안했는데 열어주다니. 푸후후하하.

 

두번째.

추석연휴 전에 풀무질에 혹시 있냐고 물어봤던 책이 있다. 다시 와서 살지는 모르겠어서 주문하지 않았었는데 혹시나 해서 연휴 끝나고 가봤다. 책이 들어왔더군. 풀무질 아저씨는 그냥 안 사도 된다며 꺼내서 보여주셨다. 사고 싶었으나 지갑을 들고 나오지 않은 터라 '외상으로 주실 수 있어요?' 하고 물었더니 추석선물로 주시겠다고 한다. 우왕. 또 완전 감격. 살림지식총서라는 문고판 시리즈라 받아도 될 것 같아서 받아왔다. 강유원의 '책과 세계'다. 흐흐흐.

 

세번째.

성대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노'라는 작은 레코드 가게가 있다. 7년 전쯤 이 가게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참 좋아하는 가게다. 항상 좋은 음악만 틀어주거든. 이 가게 앞을 걸어갈 때는 마치 꿈의 세계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다. 음악으로 만들어지는 다른 세계... 가게를 좋아해서 가게 주인인 이노 아저씨도 좋아한다. 이런 음악들을 틀어주는 사람이면 사람도 참 좋을 꺼야, 뭐 이런, 일종의 환상 비슷한 거. 요며칠전 'Miles & Coltrane'이라는 음반을 사러 갔다가 없어서 부탁해놓고 왔었는데 역시, 혹시나 해서 가봤다. 음반이 들어오려면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길래 돌아서서 나오는데 아저씨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또 완전 감격했다. 나의 안부를 묻다니. 음하하히히. (글로 쓰다보니 mood 전환이 아니라 좀 이상해진 것도 같다. 나 왜 감격했지? 역시나 공주병이다. )

 

그래서.

지금은 기분 좋다. 그냥, 어이없이 좋다. (근데 셋 다 아저씨라 좀 맘상하네... 버스 운전하는 언니나 작은 책방, 레코드 가게 하는, 아는 언니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

오늘까지 마쳐야 하는 글을 한달음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mood 가 전화되고도 글이 손에 안 잡힌다. 그래서 한글 창 하나, 진보넷 창 하나 열어놓고 왔다갔다 하고 있다. 다시 우울해지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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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04 17:03 2004/10/0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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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wa 2004/10/04 17:4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류도 이노 아저씨에게 호감을 갖고 있네 ㅋㅋ
    사랑방에는 팬을 자처하는 이들도 엄청 많어-_-;

  2. 미류 2004/10/05 15: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ㅋㅋ 나도 7년째 팬이라네. 팬? 음, 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