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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세 번째 이야기(5/6)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세 번째 이야기(5/6)

 

8. 중국 경찰서 습격(?) 사건

어제의 소란을 뒤로하고 잠을 잘 잤다. 민박집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해주셨는데 국과 반찬이 다 한식으로 입맛에 딱 맞았다. 민박비는 일인당 70위안(11,900원)인데 아내는 숙박개념으로 두 명이 70위안인줄 알고 너무 싸다며 깜짝 놀란다.

어제 못 뵌 민박집의 바깥주인과 인사를 하고, 지역 경찰서로 이동을 하였다. 주인장은 경찰서가서 확인서 받아 출입국관리소에 내면 된다하며 우리를 안심시켜주면서도 티베트 여행일정은 맞추기 힘들 것 같다고 천당과 지옥을 번갈아 안내한다.

주인장이 경찰서에 들어가 물어보니, 분실한 버스의 관할 파출소(공안분소)로 가야된다고 하여 다시 우리는 버스 종점에 있는 공안분소로 찾아가서 중국 경찰과 맞담배피면서 한참을 기다려 확인서를 받았다. 그것을 들고 이제는 다 끝난 양 시안시의 서남부 신개발지역에 있는 출입국관리소에 들어가니 영어로 뭐라뭐라 말한다. 영어를 듣는 귀가 짧은 나는 한참을 되물어 뜻을 새겨야만 하였고, 결론은 같은 건물 18층에 있는 사무실에 가보라는 것 같아 무작정 E/V를 올라탔다.

그 건물은 시안시 경찰본부였고, 18층에 있는 사무실은 아무 곳도 명패가 없었다. 결국 이 사무실, 저 사무실 기웃거리며 "I lost passport." "我失去了护照(Wǒ shīqùle hùzhào)"를 번갈아 외치며 다녔더니 저기로 가라며 손짓을 한다. 사무실에 들어가 공안분소에서 받은 서류와 내 여권사본을 내미니 영어로 사유서를 쓰란다. 회화에 작문까지 오늘 영어공부, 중국어공부 실껏 하고 있다. 간신히 확인서를 받으니 12시가 다 되어간다. 영사관에 전화를 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요청드리고 이동하였다.

영사관 직원들은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으나 비자 발급시간(3박4일)이 단축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소에 요청해달라는 부탁에는 오히려 중국쪽이 ‘주권 침해’라며 여기어 역효과가 난다고 설명해주신다. 다시 출입국관리소로 오기까지는 점심시간이라 여유가 있어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몇 번을 마주쳐서 웃어줄 만도 한데, 출입국관리소의 직원은 여전히 엄한 표정으로 거주지 확인서가 빠졌다고 말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이곳은 시경이라 영어라도 되지만 지역 경찰서는 의사소통할 방법이 없었다. 민박집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지역 경찰서로 와달라고 요청하고, 찾아가니 이곳에서는 부서끼리 서로 일을 미룬다. 외국인 숙박지역이 아니다보니 이런 일이 거의 없어서 그렇다고 민박집 주인은 설명하신다.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을 끌다가 서류 한 장을 손에 들고 출입국관리소로 다시 갈 수 있었다. 접수를 마치니 비자는 목요일에야 나올 것이라 한다. 급행은 없냐는 질문에 또 단호한 표정으로 ‘NO'라고 하면서도 화요일쯤에 18층 사무실에 찾아가보라는 Tip을 알려준다.

 

9. 처음 먹어보는 중국 면 요리

어쨌든 비자 신청을 마친 우리는 “다시는 비자발급에 시간걸리는 나라에는 안온다.”며 이를 갈다가도 세상에 누가 여행와서 경찰서, 파출소, 시경까지 구경해보겠냐며 위안을 삼기로 하였다. 오후 4시가 다 된 시간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동네 식당을 기웃거렸다. 식당에 들어가보니 아마도 어머니는 주방을 보시고, 딸이 홀 서빙을 하는 듯 하였다. 물을 주더니 빠른 말로 주문을 받으려고 기다리다 외국인임을 알아채고 자리로 돌아가서 기다려준다.

여름 날, 시안에서는 량피라는 면요리를 즐긴다고 한다. 우리로 치면 매운 비빔국수같은 요리이다. 길에서 사발면만한 한 그릇에 3위안이면 즐길 수 있다. 시안시가 있는 산시성은 쓰챤성과 가까워 면요리가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도삭면, 단단면 등 각종 방식의 반죽과 요리법이 다 모여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단단면 량피, 건면 요리를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주문하였고, 맛있게 식사를 하였다. 단단면 량피는 닭고기를 찢어 넣어 쫄깃한 면발과 함께 비벼주었고, 건면은 뽀얀 닭국물에 닭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어주었다. 아마 식사를 하는 우리를 홀낏 쳐다보시는 것이 외국인이라 더 넣어준 듯 하였다. 식대는 다해서 16위안(약 2,700원)이었다. 식대를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서툰 중국어로 말하니 주방에 있는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지셨다.

식사 후, 우리는 시안성벽의 서문으로 들어가서 도심을 걸어다녔다. 시안성벽의 외곽은 공성전의 방어를 위해 넓은 도랑(호성하)이 파여 있고, 근자에는 환성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하고 있었다. 칠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장 한 분이 동료들과 손주에게 장도(長刀) 무술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모형같지는 않은 도를 노인은 가볍게 휘두르며 설명을 하고 계셨고, 우리는 기꺼이 박수라도 쳐드리고 싶었다.

시안성벽의 높이는 12m이다. 이 성벽을 올려 쳐다보다가 갑자기 우리의 흥인지문과 숭례문을 생각하니 우리의 성벽은 그냥 뛰어넘을 것 같아 안쓰러웠다. 잘은 몰라도 아마 내란보다는 외부의 침략 방어에 중점을 둔 한반도와 끊임없는 내란에 대비해야 하는 중국의 차이였을 것이라 여기기로 하였다.

이 날은 일찍이 들어와서 맥주를 마시면서 4일에서 8일로 늘어난 시안 여행계획을 새로 상의하고, 티베트 동행자들에게 양해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우리가 빠져서 늘어나는 여행비용을 반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양해가 되었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특별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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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안성벽 서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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