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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다섯 번째 이야기(5/8)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 /다섯 번째 이야기(5/8)

 

13. 懸崖撤手丈夫兒(현애살수장부아)

화산을 가고 싶었던 것은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난 절대로 산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산과 자연이 주는 신선함과 경외감을 느낄 뿐이었다. 그럼에도 화산을 찾은 이유는 화산의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깍아오른 절벽과 같은 산과 그 산을 오르기 위해 낭떠러지와 경계하는 길은 무한한 경외감을 주었다.

2004년, 지하철 공동파업을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 집행부에서 조직과 대외협력을 맡고 있던 나는 파업 돌입의 최종 선택은 위원장에게 있지만, 파업을 전제로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위원장은 내가 무척 신뢰하는 동지였고, 이러저러한 내막이 있는지라 직책상 부서장중 쟁의부장과 나는 파업을 들어가면 같이 구속될 각오까지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이런저런 고민이 안들 수 없었다. 집에 있는 책과 자료들을 치우고, 부모님께 혼자 찾아가 안부를 여쭙고 돌아오는 길이 가뿐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떠올렸던 글귀가 懸崖撤手丈夫兒이었다.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을 때 손을 놓아야 진정한 장부다’라는 말처럼 장부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을 놓아야 한다면 편하게 손을 놓자라고 다짐하며 노동조합 사무실로 돌아왔었다.

나의 미련스런 걱정과는 달리 파업은 중도에 끝났고, 벼랑 끝에 손을 놓을 일은 없었지만, 화산 사진을 보면서 懸崖(현애)가 자꾸 떠올라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14. 화산 가는 길

화산은 시안시에서 120㎞에 떨어진 곳에 있다. 요 근래에는 화산역이 생겨서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가 가기로 한 날은 일요일이다보니 표를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중국인 여행사의 화산패키지를 이용하였다.

아침 일찍 민박집 앞에 대기하던 미니버스는 몇 군데 호텔을 돌며 중국인 여행객들을 모으더니 동문 근처에서 다시 여러 팀의 버스를 합쳐서 출발한다. 한 시간을 넘게 시안시만 빙빙 돌았던 것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젊은 중국인 가이드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유일한 외국인인 우리를 염려하며 눈길을 주곤 하였다. 여느 버스처럼 중간에 휴게소 겸 판매장에 멈춰서더니 승객들을 안내하지만, 우리도 가냐는 눈짓에 버스에 있으라고 몸짓을 해준다. 심심해서 혼자 따라 가봤더니 한약재를 파는 곳인지 하얀색 가운을 입은 중국인들이 영상물을 보여주며 설명을 한다.

버스는 다시 화산입구의 식당가로 가서 점심을 먹으라고 한다. 점심 값은 별도였다. 식당을 둘러본 우리는 그냥 미리 싸간 빵과 음료로 점심을 하기로 하고 간이 휴게장소에 앉아 쉬었다. 우리 옆에는 젊은 중국인 연인이 우리처럼 싸온 간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는데, 간단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하였다.

식당가 인근에서 화산 케이블 탑승장까지는 별도의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차량 출입을 최대한 통제하기 위해서 이다. 탑승장에서 가이드는 탑승권을 나누어주면서 5시까지 내려오라고 말한다. 케이블카는 6인이 타게 되어있어서 60대 노부부들과 함께 올라탔다. 짧지 않은 시간을 올라가다보니 간단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베이징(?)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15. 화산(華山)

해발 2,100미터인 화산은 중국 오악(五岳: 태산, 화산, 형산, 향산, 숭산)중 서악으로 불러지는 곳으로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화산파의 본산이다. 거대한 화강암 다섯 봉우리가 온 몸을 두드리는 이 위압적인 절경은 진시황제조차도 친히 올라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정도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화산 등반은 케이블카로 연결된 북봉에서 몇 개의 령을 지나 남봉까지 가는 것이 정석 등반코스이다. 그러나 이미 두시가 넘은 시간에 5시까지 저 많은 사람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려면 남봉은 커녕 동봉과 서봉도 못 볼 판이었다. 유명한 낭떠러지에 널빤지 길인 장공잔도(長空棧道)는 남봉가는 길에 있는데 하는 아쉬움은 컸다.

그러나 여유있게 산을 오르는 아내와 달리 헉헉거리며 돌계단을 오르는 나는 차라리 일찍 내려오라는 가이드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사진도 좋지만 이거 다 타다가는 내가 죽겠다하며 역시는 산 사진은 보는 것이 좋아하며 생각해본다.^^

굽어 오른 산등성이를 좁디좁은 돌계단을 따라 오르다보면 하얀 화강암 사이로 난 초록의 나무와 녹슨 철주를 따라 걸어놓은 붉은 색의 소원띠만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를 오를 때마다 불교와 도교사원, 기도암이 줄지어 있었고, 때때로 중국인들은 향을 올리며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짐작컨대 평균 60도의 경사로임에도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었다. 큰 소리로 일행을 부르는 사람도 한국인이었다. 중국인들은 운동화에 때로는 구두를 신고, 음료와 간식을 봉지에 들고 앞산 가듯이 편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도 그랬었다.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관악산을 올랐고 산을 즐겼다. 그러나 지금은 등산복 왼편 가슴의 브랜드 로고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화산의 반도 즐기지 못한 등반이었지만 바위를 뚫고 자라나는 소나무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화산의 짐꾼을 보면서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지는 못할지언정, 낭떠러지 앞까지 주저하지는 말아야하는데 하는 생각만 허허로이 머리에 남았다.

혹여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아침 일찍 산에 올라 머물거나 북봉의 여관에서 하루를 보내며 화산의 일출과 일몰을 보고 싶다. 그러다가 손놓는 것은 아니겠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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