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섯 번째 이야기(5/9)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여섯 번째 이야기(5/9)

 

16. 시안 시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

아침에 일찍 눈을 떴다. 출근하는 날은 그리 안 떠지는 눈이 휴일과 놀러만 오면 새벽같이 떠지는 것을 아내는 마치 초등학생 같다고 놀리곤 한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우리는 새벽에 공항으로 가서 티베트로 가야되지만 이제(또는 아직은) 가보지 못한 티베트가 되어버렸다. 민박집 주인에게 어제 성도로 갈 수 있는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기에 앞으로 나흘 동안 천천히 시안시를 둘러볼 일만 남았다.

민박 주인도 깨지 않은 시간, 조심스럽게 거리로 나와 거닐었다. 아직 출근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파는 노점 몇 군데가 준비하고 있고 거리는 한산하다. 중국인들은 아침을 주로 간이식당에서 죽과 비슷한 음식과 소없는 찐빵으로 사먹는다고 한다. 민박집 앞도 많이 있지만 거리의 냄새는 비위 좋은 나도 부담스러워 결국 시안을 떠나는 동안 먹어보지 못했다.

뒤에 가본 청두 시는 거미줄과 같은 방사선형 도로형태이지만 시안 시는 격자형 도로로 형성되어 있다. 시 한가운데 있는 명대성벽의 동서남북 주요문과 그 사이를 잇는 간문을 이어 도로를 만들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머문 민박집은 시안시의 북쪽의 주거단지인데 근방에 외곽순환도로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나마 최근에 조성된 지역인 듯하고 그 외곽에는 여전히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건설 중이다. 돌아다녀보니 시안 시는 방위별로 도시계획 특성이 보였는데, 동쪽은 재래시장이 밀집되어 있는 상업단지, 남쪽과 서남쪽은 금융, 행정 등 업무단지로 조성하고 있는 듯하였다. 서쪽은 주로 공업단지인데 도로포장 상태도 나쁜 것이 새로이 조성될 듯하다.

도로와 도시 이야기가 갑자기 나왔지만 나온 김에 더 보자면 시안 시에는 많은 연구소가 있다. 비록 가볼 기회는 없었지만 군사관련 연구소는 중국내에서 제일 많다고 한다. 내륙도 한참 내륙도시인 시안에 잠수함개발 연구소가 있다니, 연구소간 협업 문제로 이해하려해도 의아하다. 아마 그 이유는 어쩌면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군사적 긴장관계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중국 공산당은 193410월부터 193610월까지 장제스의 포위망을 피해 중국 서남부의 장시성과 푸젠성의 근거지를 포기하고 시안이 있는 산시성으로 장정(長征)을 오른다. 장정은 단지 피난길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농촌지역에 뿌리내리는 기회이기도 하였고, 마오쩌뚱과 저우언라이의 정치적 복권 과정이기도 하였다. 그 도착지인 시안에 대한 감동은 우리의 상상이상일 것이다(물론 모든 역사에서처럼 신화를 만드는 측면도 있겠지만). 짐작하는 다른 이유는 군사적 문제이다. 연안과 가까운 도시보다는 군사첩보 방어나 유사시 안전하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최근 중국은 내륙에서도 미군의 주요 전력인 항공모함을 잡을 수 있는 지대함 미사일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과 티베트 문제, 중국식 표현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보면 인민해방군은 반제국주의 인민의 군대가 아닌 또 하나의 제국 군대가 되어버린지 오래인 듯싶다.

 

17. 명대(明代) 성벽, 고전과 현대의 경계

출근시간을 조금 넘어 민박집을 나선다. 오늘은 남문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남문에서 성벽을 올라 동문께로 걸어 나가려 하였다. 남문 버스정류장에서 남문 출입구로 가는 길은 횡단보도를 찾기 쉽지 않아 눈치껏 무단횡단을 해야 했다. 문 안쪽의 진은 버스주차장으로도 쓰이지만 아직 이른 시간이라 우리가 거의 첫 손님인 듯하다.

앞서 밝힌 대로 명대성벽은 전체 길이가 13.6km, 높이가 12m, 폭이 15m에 이른다.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 이 성벽도 당나라 장안성 성벽에 비하면 1/9도 안된다니 사극에서나 듣던 장안성이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오늘은 날씨가 흐렸다. 덕분에 더위는 피하였지만 걸어서 가기에는 멀게만 느껴졌다. 각자 자전거를 타면 좋으련만 아내는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8~9년 전에 나에게 배우겠다고 하다 여느 운전교습처럼 싸우고 끝낸 뒤 배울 기회가 없었다. 성벽 위에는 전기차도 운행하고 자전거 대여소도 있다. 2인승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해본다.

가만히 있지 말고, 페달 밟아.”

중심 잃지 않게 몸 흔들지 마.”

잔소리를 해대면서 출발한 자전거는 돌바닥을 구르면서 나아간다. 주행속도에 비례해서 맞는 바람이 더 시원하다. 아내는 자전거 방향을 조금만 돌려도 질겁하였지만 폭이 넓은 성벽의 안팎으로 고루 보자니 자연히 자전거는 지그재그로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주었다.

처음 밝힌 대로 시안시하면 떠오른 것이 만화 시마과장이 성벽에서 바라본 중국의 변화였기에 우리는 자주 멈춰 서서 도시를 내다보곤 하였다. 남문 안은 고문화거리가 있어서 옛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었고, 성벽 밖은 방송국과 신문사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안팎의 경계가 너무나 명확했다. 발전을 건축과 도시 확장이라는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국 서부는 발전하고 있다. 물론 빌딩 숲 너머 외곽과는 또 다른 경계를 이룰 터이지만.

한 시간여를 자전거로 성벽을 돌아본 우리는 이런 거는 절대 단체관광에서 경험하지 못할 거야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성벽을 내려왔다. 공식기념품점을 둘러보다 의외로 싼 가격에 사진첩을 하나 구매했다. 2.500원이다. 국내든 해외든 여행 기념품으로는 사진엽서를 주로 사는데, 내가 찍은 사진보다 더 그 곳의 감흥을 기억나게 해주기 때문이었다. 엽서 값에 사진첩을 구매하고 더 뿌듯한 마음에 고문화거리로 걸어갔다.

고문화거리는 우리의 인사동과 비슷하다. 문방사우를 팔던 상점가가 관광거리로 특화되었다. 거리 초입부터 우리의 관심은 오카리나와 비슷한 악기에 쏠려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라 불리는 악기는 도자기로 구워져서 입으로 부는 폐관악기이다. 우리를 위해 멋지게 한 곡 불러준 젊은 주인에게 미안하였지만 장식용은 소리가 안 좋고, 소리가 좋은 것은 값이 비싸니 몇 군데 흥정을 하다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고문화거리 끝에는 비림박물관이 있었다. 비석이 숲을 이룬다고 해서 비림인데 생각보다 많이 비싼 입장료와 배고픔으로 지나치기로 하였다. 동문 방향 주거지역으로 길을 틀어 걸었다. 만만한 동네 식당을 찾고 있던 중 손님이 한 무더기 빠져나가는 조그만 식당이 보여 들어섰다. 아는 메뉴명은 량피와 단단면, 건피면 뿐이니 비슷한 메뉴 명을 찍어서 주문을 한다. 아주머니가 직접 수타로 면을 뽑는 사이 아저씨는 말을 걸어오지만 서로 못 알아듣는 것은 당연하다. 국적확인하고, 나이 확인하니 나보다 너댓 살 많다. ‘따거라고 해주니 웃는다

 

18. 소안탑과 신발쇼핑

다시 버스를 타고 소안탑으로 향했다. 삼장법사 현장이 요청해서 건립한 대안탑보다 아기자기하다해서 먼저 들리기로 하였다. 소안탑 매표소에서 안내문을 보니 외국인도 여권소지자는 무료입장이라고 적혀 있다. 억울하게 4,500원을 입장료로 내야한다. 아내는 그냥 자기도 돈 주고 가겠다며 이상한 의리를 부린다. 간단히 박물관을 구경하고, 비오는 경내를 걷는 풍경도 고즈넉하고 좋았다. 소안탑 앞에 가니 무료 입장객은 내부에 들어갈 수 없고, 우리처럼 표를 구입한 이들만 입장이 가능하다. 13층을 올라가면 뭐하냐하면서도 악착같이 돈낸 값 받으려는 사람처럼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우리는 대안탑으로 이동하려는 중에 중국버스카드를 사기로 하였다. 시안시의 버스 값이 1~2위안이라 싸지만 카드를 쓰면 0.5~1위안으로 줄어드니 다른 도시에서도 이용되면 비용도 아끼고 기념품도 될 듯하다. 진즉 밝혔듯이 중국어가 안 되기 때문에 버스 충전을 해주는 곳에서 손발 짓을 해가며 물어보니 은행에 가란다. 은행에 가니 자기네 은행은 안 되고, 우리 한국은행 같은 중국은행으로 가란다. 국가은행이라 은행원들이 영어로 설명해준다. ‘카드 구입비가 비싸고, 시안 시에서만 사용가능하다.

대안탑 주변은 잘 꾸민 관광상품 거리였다. 소안탑부터 내리던 비는 더욱 거세져서 신발을 홀딱 적셨다. 결국 우리는 관광을 포기하고 내일 신발을 말릴 동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사기로 하였다. 시내 매장으로 나오니 소위 메이커 신발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 비쌌다. 아내의 신발은 지하도 매점에서, 내 신발은 중저가 의류 매장 한켠에서 쇼핑을 하였다. 싸게 구입했지만 그 신발들은 중국에서 돌아온 이후 한 번도 신발장 밖으로 나와 보지는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명대성벽 남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명대성벽 남문에서 바라본 고택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문화거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동네식당 따거와 함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안탑 경내>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안탑과 대안탑>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