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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아홉 번째 이야기(5/12)

20115월 중국 여행(가보지 못한 티베트)/아홉 번째 이야기(5/12)

 

25. 시안에서 마지막 낮

드디어 우리는 오늘 시안을 떠난다. 지난 5일에 입국해서 78일 만이다. 그제 민박집 사장님을 통해서 청두행 기차표를 구했다. 수수료 100위안을 더해서 490위안(8만원)이다.

이 도시에서 3박을 하려는 계획이 7박으로 늘어났지만 이제야 도시가 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떠나야 한다니 조금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쇼핑센터에 가기로 하였다. 그동안 동쪽으로는 성벽 밖에 살짝 나가보았지만 우리 동대문처럼 의류, 가방 등 패션타운이 밀집한 광복로 거리까지 나가보지는 못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엄청난 인파가 길을 메우고 있었고, 많은 짐꾼과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유명 브랜드숍부터 부자재 도매상까지 다양한 업종이 얼추 10여 개 빌딩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고, 도매를 떼러 온 이들이 한 짐 가득 나르는 것이 우리 동대문 쇼핑타운과 다를 바 없었다. 아내 동료 아이에게 줄 간단한 기념품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사고자 하는 것은 없었지만 괜스레 가격도 물어보고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옷의 품질은 나름 괜찮았다. 중국산하면 갖는 선입견은 싼 물건만을 들여오다 보니 생긴 일 아닌가 싶다. 결국, 청바지와 티셔츠 , 배낭을 구매하고 민박집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였다.

시안에서 여권을 잃어버려 결국 티베트를 못 갔지만 한 도시에서 천천히 일주일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여행지를 급히 돌아다니지 않고 돌아볼 수 있어 좋았고, 저녁이면 시장과 마트에 들러 그들이 먹는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이나마 도시의 구성과 흐름에 대해 느낄 수 있었고, 더 넓게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시안에서 융성했던 과거 문명과 그들의 표현대로 굴기하는 현재 문명을 느낄 수 있었고, 중국의 연안 중심 경제가 서부 내륙으로 뻗어가는 과정에서 중심과 변두리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26. 중국 여행의 또 다른 재미, 기차여행 (1)

짐을 챙겨 기차역 주변 맥도날드에서 커피로 시간을 보내다 기차역으로 갔다. 정말 엄청남 인파가 기차역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 기차표를 확인해서 입장을 시키다보니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대합실을 빼곡히 메운 사람들 틈새로 한편에 앉아 1시간여를 대기하였다. 드디어 승강장 출입문이 열리자 일제히 모든 사람들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전력질주를 한다. 지정석인데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따라서 발걸음이 빨라진다.

중국 기차 좌석은 롼워(軟臥), 잉워(硬臥), 롼쭤(軟座), 잉쭤(硬座)로 구분된다. 롼워(軟臥)2층 침대칸으로 41실로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안전한 대신에 요금이 항공권 수준이다. 잉워(硬臥)3층 침대칸으로 만약 꼭대기 층에 표를 구할 경우 조금 아찔하다. 롼쭤(軟座)와 잉쭤(硬座)는 좌석으로 푹신한 정도와 좌석 폭에 차이가 있다. 이번 여행까지 기차를 세 번 타보았는데 모두 3층 침대칸이었다. 1층 침대 사이에는 테이블이 있고 뜨거운 물이 담겨져 있는 보온병에는 승무원이 항상 물을 가득 채워준다. 통로에는 간이 좌석이 있어 음식을 먹거나 창밖을 쳐다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구한 표는 서로 다른 침대칸이었다. 탑승 후, 승무원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손짓발짓하면서 이야기하니 못 알아듣는다. 침대칸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이냐고 말을 걸어오면서 구경하고 있어 얼굴을 빨개지고 난감해졌다. 그 때, 젊은 여학생이 영어로 도움을 준다. 설명을 듣더니 다른 칸에 일행이 있는 사람을 찾아 표를 바꾸고, 다른 칸으로 가서 붙어있는 침대칸으로 표를 바꾸어서 건네준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마땅히 인사할만한 게 없어서 간식으로 가져간 양갱이 하나를 여러 차례 사양 끝에 전해주었다.

 

2005년도 중국을 처음 갔을 적, 하얼빈에서 그러했다. 연길과 백두산을 들렸다가 먼저 귀국하는 친구를 보내고 하얼빈, 심양, 단동을 거쳐 배를 타고 귀국하는 계획을 세웠다. 연길에서 하얼빈을 갈 때는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표를 구했기에 어려움을 몰랐는데, 하얼빈에 도착해서 매표소에 가는 순간 모든 계획을 바꿔야 했다. 여름 성수기가 시작되어서 표를 구할 수 없는 지경이다. 전광 안내판을 유심히 쳐다보니 기차 편과 요금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시간과 열차 종류, 베이징을 메모해서 20분 이상을 줄을 서서 창구에 다다랐다. 기차 값으로 200위안을 내놓자 매표원은 400위안이라고 써 보이며 뭐라 말한다. 되지도 않는 중국어로 저기에 200위안이라고 쓰여 있다라고 해도 팅부동이라며 다음 사람을 부른다.

부아가 났지만 뒷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어서 다시 줄을 서러 가는 순간,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젊은 철도공안이 나를 부른다. 어디를 가냐고 묻기에 밍티엔(明日) 베이징(北京)’이라고 하니 아까 구하고자 했던 기차보다 한 단계 아래로 표를 대신 사준다. 물론 가격도 전광판대로였다. 감사한 마음에 음료수 한 병을 건네고자 했지만 끝내 사양하였다.

이야기가 잠깐 샌 김에 좀 더 새보자!

이거 써도 될지 모르지만 작년 언젠가 못 보던 빨간 캐릭터 티셔츠가 보이기에 아내에게 물었다. 몇 달 전, 아침 근무 중에 대만인 여성이 게이트 앞에서 난감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인천공항으로 가야되는데, 교통카드를 다 쓴 줄 모르고 한국 돈을 모두 환전해버렸다는 것이다. 1년에 두어 차례 한국을 방문하는데 지금 아침 비행기이다 보니 은행 영업시간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개인 돈으로 공항까지 갈 수 있는 돈을 충전해 주었고, 별 기대 없이 소속과 이름을 메모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비번 때, 대만인이 찾아와 기념품과 빌린 돈을 맡기고 간 것이다. 낯선 곳에서 받은 도움에 대한 감사는 오래간다.

 

도움으로 자리 잡은 기차 칸에 가보니 1층에는 예닐곱 살 정도의 아이와 엄마, 40대 아저씨, 아줌마, 그리고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우리 자리는 1층과 3층이었다. 자리를 잡으면 승무원이 자리표와 승차권을 바꾸어준다. 이것은 승객이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게 확인해서 깨어주기 위해서이다. 이미 11시가 넘어서 침대칸은 소등되고, 시끄러운 대화는 잦아들면서 우리도 잠자리에 누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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