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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9월 수한이네와 함께 한 제주도 여행기 (2)

5. 천제연 폭포와 대포 주상절리

아침 6시 반, 설핏 깬 잠을 자고 있는데 은경씨의 기상 문자가 옵니다. 집에서는 매일 나를 깨우느라 고생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보통 제가 먼저 일어나는데 의외입니다.

서둘러 씻고, 아침잠이 많은 수한이를 깨워 천제연 폭포로 갔습니다. 제주의 자연 관광지는 대부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되기 때문에 일찍 혹은 늦게 갈 경우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11년 전, 신혼여행에서 천지연 폭포에 입장권 샀다가 30분 사이로 그냥 입장하는 것을 보고 꼭 해보리라 다짐했었죠.^^

천제연 폭포는 간단한 산책로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세 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나무데크를 따라 걸으면서 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태풍으로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많아 폭포 소리가 시원하게 들립니다. 두 번째 폭포에서는 물안개가 기분 좋게 뺨을 만져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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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1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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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제연 2폭포>

 

배고프다는 일행들의 아우성에 숙소로 돌아와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하고, 대포 주상절리로 택시로 이동하였습니다. 네명이 가니 버스비보다 적게 들더군요. 다만 입장료가 2,000원 있습니다. 제주도가 중국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서 중국인 관광객이 참 많았습니다

주상절리는 현무암질 용암류에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서 다각형(보통은 4∼6각형)이며, 두꺼운 용암(약 섭씨 1100도)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곳의 주상절리는 높이가 30~40m, 폭이 약 1km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규모면에서 최대라고 합니다.(제주도 관광 홈페이지 인용) 제주도에서는 지삿개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사실, 대포 주상절리는 하도 유명하고 어렴풋이 신혼여행 때 온 것 같아서 깻깍 주상절리를 가볼까 했습니다. 병풍처럼 늘어져 있고, 올레길과 연결되어 있어 가까이 가볼 수 있어 더 장엄한 멋을 보여줄 것이라 생각되었지만 강정으로 가는 발걸음에 반대 방향이라 대포 주상절리로 온 것입니다.

주상절리의 전망데크에 서면 검은 현무암으로 푸른 바다가 하얀 포말을 부딪치는 모습이 잘 보입니다. 마치 수 억년을 버티어 온 삶에 때로는 장난치는 것처럼, 때로는 꽃가루를 뿌려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찌 보면 한낱 돌덩어리이지만 다른 감상이 드는 것은 꿋꿋하지 못한 내 삶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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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포 주상절리>

 

6. 강정마을

우리가 강정마을에 도착한 것은 11시 반 정도 된 시간이었습니다. 평화센터에 미리 전화를 드렸지만 하루 일정으로 머문다고 말하는 게 너무 민망했습니다. 일정표에 보니 11시 천주교 미사, 15시 개신교 미사, 20시 촛불문화제 그리고 일인시위 계속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평화센터 안팎의 담벽은 연대의 메시지와 포스터, 미술작품으로 넘쳐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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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평화센터>

 

안내를 받은 우리는 우선 천주교 미사가 열리고 있는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으로 갔습니다. 마을과 채 100M도 안되는 곳입니다. 제주의 어느 성당에서 오신 성도님들과 사제들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고, 우리도 조용히 그 뒤에 서서 미사를 같이 보았습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젊은 사제를 도와 벽안의 노사제가 마이크를 들어주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대부분이 장년인 40여명의 평신도들이 무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천주교 미사가 비 신도들에게는 좀 길더군요. 중간 중간 문정현 신부님께서 말씀과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강정에 와서 수치스런 일도 많이 겪었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이 예수의 길이다’라시며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 구럼비야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시더군요. 아주 단순한 가사이지만 구럼비 바위로 상징되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자, 다짐의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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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주교 미사와 방송차량>

 

미사를 마치고 해군기지 공사장과 올레길이 맞닿아 있는 길거리 카페(?)에 들러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얻어 마시며 대략적인 상황을 전해 들었습니다. 길거리 카페는 올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강정마을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자연을 좋아하는 올레꾼들이 지나가는 길에 꼭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저희는 대만에서 온 평화활동가가 그렸다는 엽서를 기념으로 구입했습니다. 역시 엽서가 여행지에서의 최고의 기념품입니다.

올레 7코스가 해군기지 건설로 막히면서 감귤하우스 옆으로 낸 올레길을 따라가면 삼거리 식당이 나옵니다. 이곳은 강정마을에서 활동하는 평화활동가들을 위한 식당입니다. 강정주민과 전국에서 보내준 식자재로 운영하는데 강정마을 방문자들도 소정의 금액을 내고 식사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내일까지 두 번은 여기서 식사할 예정입니다.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식당은 간판은 없지만 ‘밥먹고 힘내자’는 글씨가 적힌 대형 보자기가 방문객들을 맞이합니다. 김치와 각종 무침이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겨있고, 아마 끼니마다 달라지는 제공식인 듯한 햄 부침이 한 쪽에 놓여있습니다. 국은 호박을 깍둑 썰어 넣은 된장국과 돼지고기를 육개장식으로 넣어 만든 김치찌개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식사시간이 지난 뒤라 맞이해주는 사람은 없어도 알아서 먹고, 알아서 씻어놓고, 알아서 돈을 내고 나오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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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거리식당>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해군기지 공사장 펜스를 따라 구럼비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걸었습니다. 태풍으로 날라간 펜스 사이로 공사장이 보이기에 다가섰더니 덩치좋은 청춘이 다가옵니다. 아마 알바로 경비용역을 하는 듯 합니다. 굳이 들어갈 생각없다고 했더니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더군요.

공사장 펜스가 끝나는 곳에는 강정포구가 있습니다. 지친 나머지들과 달리 어느새 수한이는 포구를 가로질러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가고 있습니다. 포구는 서너 척의 어선만 있을 뿐이고, 포구횟집은 아무 손님도 없었습니다. 등대까지 갔다 온 수한이는 바다에 배가 반 쪽난 것이 보여서 자세히 보려고 가보았답니다. 배는 아니고 무슨 구조물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태풍으로 침몰된 케이슨이었습니다. 케이슨은 방파제 건설을 위한 기초 구조물로 9,800톤이 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개당 70억원 가량 한답니다. 보통은 6개월 이상 건조해야 독성이 빠지는데 해군기지 공사단은 케이슨을 만들자마자 바다에 투하했습니다. 현재 투하된 7개 모두 파손되거나 침몰해서 공사단 측도 멘붕이 와서 모든 공사가 중단되어 있다더군요. 강정마을은 예부터 제주도에서도 해일이 심한 곳으로 유명하답니다. 그래서인지 마을이 바닷가를 피해 안쪽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웃 법환마을만 해도 바닷가에 면해 있는 것에 비교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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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공사장과 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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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보이는 구럼비 바위의 끝 자락과 강정포구>

 

다시 평화센터에 들려 오늘 묵을 마을숙소를 안내받았습니다. 평화센터에서는 세계자연보전총회에 쓸 피켓을 제작하고 계셨는데 어찌 그리 예쁘게도 만드시는지 피켓 하나하나가 그냥 예술작품입니다. 마을회관 4층에 활동가들이 머무르는 숙소가 있어서 자리가 있으면 방문객들도 머무를 수 있습니다. 근처에 민박도 많이 있지만 우리는 마을숙소에서 머물고 민박비 정도라도 연대기금으로 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짐을 풀고 1층 사무실에서 잠시 활동가들을 만나고 냇길이소를 찾아 나섰습니다. 냇길이소는 ‘나는 딴따라이다’에서만 공개된 알려지지 않은 강정의 명소라고 하더군요. 길거리 카페의 주인장은 찾기가 쉽지 않다며 약도를 그려주며 마을 분들에게 신성시되는 곳이니 발을 담그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참 마을과 비닐하우스를 지나가니 길 끝이 나왔습니다. 상수도보호구역이라는 푯말이 보이지만 강정천 상류만 보일 뿐 소(沼)는 보이지 않네요. 워낙 감쳐진 곳이라 안내판이 없나 싶고, 풍광도 좋은 것이 여기쯤이 냇길이소인가 싶어 머물다가 돌아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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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천의 투명한 물>

 

아까 들어온 길이 아닌 강정천 길을 따라 걷다가 그늘에 잠시 쉬는데 날쌘돌이 수한이는 또 어딘가를 부지런히 들어갔다 나오더니 여기가 냇길이소 같다고 합니다. 그제야 한 쪽에 있는 푯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가파른 길을 따라 걸어가니 아담하지만 예쁜 냇길이소가 우리를 맞이해주더군요. 드디어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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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냇길이소>

 

들뜬 기분으로 다시 해군기지 공사장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오후 4시를 훌쩍 넘었지만 미안한 마음에 낮부터 공사장 정문을 막고 있던 활동가들을 대신해서 피켓팅을 시작했습니다. 더위와 햇볕, 도로위의 차 소음은 아직도 여전해서 1시간 반의 피켓팅도 지치는데 하루종일 고생하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네요.

솔직하게 말하면 이 날은 경찰과 충돌이 없어서 다행이었습니다. 해군과 공사단 측도 케이슨 침몰 이후 공사가 잠시 소강상태이었는데 저희가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매일같이 해군과 경찰의 도발이 일어나 주민과 활동가들이 많이 다쳤더군요. 미리 수한이에게는 큰 충돌이 나도 조금만 몸조심하자고 말했지만 정작 상황이 벌어지면 저 스스로도 자동반응이라 여행일정을 망칠까 염려되었지요. 다행히(?) 6시에 활동가들이 피켓팅을 접자고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저녁식사 전에 강정천을 따라 하구로 내려갔습니다. 물이 귀한 제주도에서 강정은 물많은 마을이라더니 참 물이 맑고도 많습니다. 이후 다른 곳을 가니 강정마을의 물이 얼마나 풍부한지 더욱 알게 되더군요.

강정천에서는 휴가 나온 가족들이 은어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구의 바다와 맞닿는 곳에서 바라보는 해 저무는 바다의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고개를 돌려 바로 옆 해군기지 공사장을 쳐다보지만 않는다면요. 나중에 이 풍경이 그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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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천 풍경>

 

저녁식사는 ‘35년 전통의 양동치킨’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애초 가려는 물질식당이 낮 장사만 해서 돼지두루치기냐 치킨이냐로 잠시 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내일 저녁 메뉴가 돼지 바비큐이니 닭고기를 먹자’고 했고 수한이는 ‘나중에 회사가면 사람들이 뭐 먹었냐고 물을텐데 어제는 햄버거, 오늘은 치킨이면 할 말 없다’며 두루치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먹는 거에 불평하지 않는 수한이가 먹는 걸로 투덜된 최초의 사례일 것입니다. 결국 투표를 해서 3:1로 양동치킨으로 가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과 맥주를 시켰습니다. 맥주는 매우 시원했습니다. 노즐 관리를 잘 하는 듯 했습니다. 양동치킨이 뭐냐는 제 질문에 주인장은 광주 양동시장에서 시작된 프랜차이즈라고 하더군요. 치킨도 4명이 먹기에 부족하지 않데 많이 나왔습니다.

촛불문화제가 있어 먹고싶은 술을 조금만 하고 평화센터로 갔더니 이번 주는 자연보존총회 대응 준비 관계로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혹시 연대발언 시키면 수한이가 하기로 결정했는데요^^ 허탈해진 수한이를 데리고 편의점 맥주로 입맛을 다시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방에는 6명이 잘 수 있는데 영상 활동가 1명만이 숙소에 계셨습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배를 피우러 같이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침 마을주민회의가 끝나고 간단한 뒷풀이를 준비하시더군요. 룸메이트가 같이 가자길래 우리는 맥주와 치킨을 준비해서 자리에 합석했습니다. 강동균 마을회장과 편의점 앞에서 잠시 마주친 멋쟁이 부녀회장님이 반갑게 맞이해주십니다. ‘35년 전통의 양동치킨’을 보시더니 ‘35일 전통’이라고 웃으시면서 정정해주십니다. 성함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문성현 금속위원장을 많이 닮으신 신부님까지 마치 역전의 용사들이신데 한없는 부드러움과 강정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이 있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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