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9.29~30 이야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9.29~30 이야기

 

4. 시골버스 탑승기

결국 에어컨 바람에 4시쯤 잠이 깨었다. 다들 그래도 나처럼 누워서 가만히 있었을 터였는데 용감한 중국인 아저씨들의 수다 소리에 결국 여기저기서 짜증이 터져 나온다. 우쒸! 어제 괜히 몇 마디 중국말로 대화한 게 빌미가 되어 나보고 일행이냐고 묻는 애들도 생겼다. 난 억울하다. 그나저나 그 아저씨들 라오스어나 영어 한 마디 모르고도 아이폰 하나씩 들고 잘 다닌다.

팍세 북부터미널에 내려서 남부터미널까지 툭툭을 타고 이동하였다. 매표소에 가서 땃로 가는 살라반행 버스를 물으니 대충 뒤로 가보란다. 가보라니 가야지. 다행스럽게도 시골버스 같은 로컬버스 앞에서 할머니가 손짓을 하며 땃로, 땃로 외쳐준다. 버스에 올라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까지 만들어 주신다. 버스 안내원 역할을 하시는 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땃로가 작은 마을이라 이 분들이 알려주어야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두 시간을 달려갔다. 비엔티엔 시내에서 교통신호가 엉망이어도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가 없어서 참 좋았는데 오늘 버스 기사님은 자꾸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잠이 들다가 깨곤 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었다. 도로 위에 제 집 마냥 누워있는 소들과 개들 때문이기도 했고, 정류장이 따로 없는 마을을 지나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어느 마을 시장 어귀에 도착하니 버스 기사님도 볼 일을 보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아침도 굶은 우리는 아이들이 파는 도너츠를 사먹다가 기사님에게 땃로가 멀었냐고 물으니 라오말로 말하시며 손가락으로 여기라고 가르킨다. 안내원 할머니만 믿고 있었는데 멀리 갈 뻔 했다.

 

5. Tim’s Guest House

Tim’s G/H는 인터넷 여행정보에서 유명한 숙소이다. 땃로 마을의 한 쪽 거리에는 홈스테이와 방갈로가 지어져서 여행자들이 묵을 수 있다. 우리는 배낭 무게에 지쳐서 한 곳을 보고나서 Tim’s G/H로 찾아갔다. 남들 다 가는 곳은 안 가려다 결국 안전한 선택을 한 셈이다. 트리플 침대가 있는 방갈로가 하루에 5만 킵이다. 우리 돈으로 7,000. 점심으로는 볶음밥과 간단한 탕(Soup)을 주문했다. 15,000, 2,200원이다. 음식 값은 고급 식당을 제외하고, 여행자들이 가는 곳은 대체로 비슷하다. 여행자 거리의 식당은 팍취라 불리는, 한국인들이 좋아하지 않는 야채 고수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인장 Tim은 라오인으로 보기에는 50세가 넘어보였다. 오랜 기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경제적 여유도 있어보였지만 차분한 매너로 우리를 응대하였고, 주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Tim의 방갈로는 낡았지만 편하게 쉴 수 있었다.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우리는 어둑해지는 길을 따라 폭포를 보러 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땃 항땃 로가 있었다. 이 두 개의 폭포는 거대한 폭포가 아니어도 유유히 흐르는 황토빛의 메콩강의 위력을 보여준다. 할퀴며 삼킬 수도 있고, 온갖 허위로 감춘 바닥을 드러낼 수 있는 그 힘 앞에 무력함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스스로 경계함이 생기니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땃로 마을의 첫 폭포 땃항>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땃로 폭포>

 

6. 노련한, 두 명의 어린 가이드

사실, 오토바이를 빌려서 볼라벤 고원을 둘러보고 싶었다. 비록 내가 무면허일지라도 오토바이와 지게차는 몰아보았으니 안심하라는 나의 설득에 아내는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결국, 우리는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 가보기로 하였다.

아침에 볼라벤 커피를 맛보았다. 호주 출신 남편은 목공으로 라오스식 의자를 만들고 있었고 태국 출신 아내는 커피빈을 볶고 있었다. 커피는 10000, 1400원이다. 묵직한 쓴 맛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 우리가 가보려고 하는 소수민족 마을 반 나농(Ban은 마을이라는 뜻이다)은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다며 땃소웅 폭포 정도 다녀오라고 걱정한다.

땃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마을은 100여 가구와 초등학교만 있는 마을이다. 대부분 밭작물을 재배하는데 요사이 옥수수 수확기라 집집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관광은 비수기인지라 민박과 농사를 겸업하는 집들은 장사를 포기한 상태이다. 고개를 살짝 올라가니 건설공사를 하고 있었다. 아직 토목공사 중이지만 그 규모가 웬만한 리조트는 들어올 것 같은 기세이다.

조금 더 올라가면 폭포 수면과 같은 위치에 숙박 휴양시설이 있고, 코끼리를 탈 수 있는 곳이 있다. 길가에는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우리가 가까이가자 어디선가 개들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경계의 태도를 취한다. 한참을 우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따라오던 개들은 나오는 길에 다시 보았을 때에는 아는 체도 하지 않더라. !

코끼리를 나는 좋아한다. 큰 힘을 지니고도 성격이 온순하고, 큰 위협에 대해서 불같이 들고 일어나는 이 순박한 큰 눈을 지닌 이를 나는 좋아한다. 라오스에서는 코끼리를 사람과 같이 32개의 영혼을 지닌 동물이라며 특별히 대우한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에서 코끼리에 대한 특별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코끼리를 타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 같은 놈들 때문에 코끼리의 야성을 길들이기 위해서 갈고리로 찍히면서 사육을 당한 코끼리라면? 그래도 남들의 여행기에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말에 혹해서 타보고 싶었지만 너 혼자 타라는 아내의 말 한 마디에 양심(?)을 지켰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니 멀리 땃소웅이 보이고 폭포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도로 옆으로는 전력회사와 사택이 1에 걸쳐 늘어져 있다. 아스팔트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발전소를 지나니 다시 진흙길과 마을이 나타난다. 키앙 마을이다. 마을은 가운데 신성시하는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집들이 배열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는 850M를 더 가야 폭포를 볼 수 있다 써 있다. 앞의 땃로 폭포는 접근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있는데 마을 입구에서 놀던 아이들 중 남자 아이 두 명이 가이드를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선다. 가이드를 마치고나면 아이들이 돈을 요구할 것이고, 왠지 그 모습이 꺼림칙해서 괜히 마을을 구경하며 시간을 끌었지만 아이들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내가 졌다고 생각하며 아이들을 굳이 떼지 않았다.

간단한 영어를 하는 열 살의 아이는 뒤에 서고, 코에 콧물을 묻히고 있는 여덟 살 아이는 신나서 앞장을 선다. 그냥 길동무다 생각하고 같이 나섰지만 아이들은 한 여름을 지나면서 가려진 산길을 찾아 주었고, 지난 밤 비로 진흙 뻘이 된 길에 길라잡이를 해주었다. 아마도 이 노련한 가이드들이 없었다면 나는 땃소웅을 멀리서만 바라보고 돌아갔을 것이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될 무렵에 폭포의 하단이 나타났다. 작은 가이드는 혼자 벌써 물속으로 들어갔고, 큰 가이드는 신발을 벗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물속의 돌은 미끄러워 가이드가 밟은 돌을 따라 들어갔지만 그만 헛디뎌서 물속에 빠져버렸다. 그래도 폭포를 내 앞 한 가운데서 마주하는 느낌은 마치 태산을 앞에 두는듯한 두려움과 호기로움이었다. 최고의 순간이다.

물에서 빠져나온 우리들은 더 높이 올라가보자는 가이드들을 따라 산행을 하였다. 길이 없어 더 이상 갈수 없는 중턱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은 너무나 미끄러웠다. 결국 두 번의 엉덩방아를 찧었고, 나의 불쌍한 카메라 렌즈는 줌이 헛돌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사진은 17광각으로만 촬영할 수밖에 없다.

마을이 다가오자 4명의 웨스턴들과 마주쳤다.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이 친구들은 저녁 식사에 다시 만나게 된다. 아무튼 조용히 앞길을 가던 작은 가이드가 갑자가 수줍은 얼굴로 말을 한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마치 못할 말을 하는 것처럼 “Money”라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돈이나 과자, 학용품 따위를 주는 것은 대체로 옳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아이들처럼 자신의 수고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안전하게 다닌 수 있도록 해주었다면 그들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 아닌가. 영어를 하는 큰 가이드에게 금액을 물으니 2만킵 이란다. 마음은 더 주어도 아깝지 않은 훌륭한 가이드였지만 동심을 돈으로 물들일 수 없기에 흔쾌히 2만킵을 주는 것과 연필, 포옹, 기념사진으로 마무리하였다.

갑작스런 비로 어느 집의 처마에 잠시 몸을 피했다.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겨우 할 줄 아는 라오스어로 몇 살이니?’, ‘이름이 뭐니?’를 서로 묻고는 침묵으로 웃을 뿐이다.

오던 길을 돌아 나와 중고등학교가 보여서 잠시 입구에서 보았다. 나무로 엮은 초라한 학교였지만 청소년들은 청소년이었다. 시간이 점심식사 때인지라 밖에서 담배피고 오는 아이들, 쉬크한 표정의 오토바이 타는 여학생, 호기심 많은 여드름쟁이들이 교문 앞을 가득 채운다.

반 나농 마을로 가는 길은 바나나 나무와 옥수수 밭으로 가득 찼다. 옥수수 밭 오두막에는 비를 피해 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바이디하며 인사를 건네니 머라 하는 것이 마치 이리 와서 비를 피하라고 하는 것 같아 오두막으로 갔다. 어린 여자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10명 정도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청년이 있어서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가지고 있던 약과를 나눠 먹었다. 정을 나누는 데에는 먹을 것이 최고 아닌가?

폭포 마을에서부터 시간 반 쯤 지나 반 나농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어귀에 만나 어른은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까올리(Korea)’라고 하니 라오스 말로 뭐라 하시는 데 알아 들을 수 있는 말은 (3)’콘 까올리뿐이다. 처음에 한국 사람이 여기 산다는 말인가 하다가 다른 분의 여행기에 한국 교회가 봉사활동을 왔다는 걸 본 것이 기억났다. 한국 사람들이 세 번 왔다는 말인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Pencil’, ‘Book’을 외치는 경우가 많았다. 잠시 쉬려고 들른 마을의 유일한 점방 아줌마는 세븐업 한 캔과 싸구려 오렌지 가루음료를 만 오천 킵을 달라고 한다. 세븐업이 오천 킵인거 아는데 왜 그래하는 표정과 말로 물으니 지나가는 아저씨가 거들어준다, 가루음료는 천 킵이라고. 결국 세븐업은 반납하고 가루음료만 두 개 팔아주었다. 적당한 사기는 눈감아주려고 했는데 이건 좀 심하잖아요. 아주머니!

저녁식사는 마을 어귀에 새로 생긴 방갈로에서 먹기로 했다. ‘Cooking Together’라고 쓰여 있어서 요리교실인가 했더니 여러 명이 같이 모여서 먹자는 것이란다.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니 젊은 독일 남녀가 먼저 기다렸고, 우리 뒤에 땃쏘웅에서 만난 4명의 프랑스 여성들이 참석하였다. 메뉴는 스프링롤과 치킨 후라이드, 찰밥과 감자치킨커리였으며 맛 역시 매우 좋았다. 식사를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마련인데 짧은 영어 실력은 한 마디 하면 스무 마디를 듣게 만들었다. 물론 그 중에 열 마디는 못 알아듣고 눈치로 따라갔다.

우리는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 직업과 휴가, 개고기와 싸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보다 젊은 나이인 독일 여성은 독일 내에 일자리가 없어서 독일의 라오스 원조기구에 인턴쉽으로 6개월 참여하고 여행하는 길이라고 하였고, 서른 살 즈음으로 보이는 프랑스 여성들은 모두 의사들로 지금 베트남과 라오스를 넘나들며 여행 중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내가 2주 계획으로 라오스 여행 중이라고 하니 한국의 휴가에 대해 물어보았다. 보통 1년에 6일 정도라고 이야기하였더니 매우 놀란다. 나중에 아내는 3일뿐 못 쉬는 사람도 많다고 나에게 정정해준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프링롤 소스인 칠리소스가 맵다고 사람 좋게 생긴 프랑스인이 혀를 내민다. 프랑스에는 매운 요리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 고추장이 있는데 맛이라도 보겠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매우 곤혹스런 표정으로 손사래를 친다. 아내는 나에게 얘들, 한국에서 동대문 엽기떡복이라도 먹으면 난리 나겠군하며 웃는다. 식사 중에 개가 식탁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라오스 주인이 합석을 하면서 개고기가 대화 주제로 올랐다. 라오스에서도 개고기를 일부 사람들은 먹는다고 하였다. 당연히 질문은 나에게 돌아왔다. 그것도 프랑스 사람이 물어보았다. 머 꿀릴 것은 없잖은가? 나는 1년에 두 번 개고기를 먹고, 특히 목이 아프면 먹는다고 하였다. 그들의 질문 공세는 이어졌지만 다행인 것은 그들의 표정에 어떤 문화적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푸아그라에 대한 이야기를 안 꺼낼 수 없잖은가? 한 시간 반을 넘긴 식사 자리는 우리가 먼저 일어나는 것으로 파했다.

좋은 음식과 사람들의 대화로 땃로의 두 번째 밤이 깊어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땃소웅 폭포, 핸드폰으로 찍어 화질이 안 좋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귀여운 작은 가이드, 안보이지만 코 밑에는 콧물 자욱이 남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듬직한 큰 가이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땃로 마을의 까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쿠킹 투게더를 하는 방갈로, 다음에는 이 집에 머물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09.27~09.28 이야기

입으로 쓰는 라오스 여행기(2013.09.27.~10.11) / 09.27~09.28 이야기

 

1. 라오스에서 세 번째 밤

한가로운 라오스의 밤 나절이다. 우리는 점심 먹고 한 시간만 잔다는 낮잠을 세 시간이나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서 이제야 동네를 둘러보고 들어왔다. 그러면 어떠랴? 이곳은 느림이 아름다운 나라, 라오스(LAOS)이니 말이다.
지금 우리는 라오스 남부의 볼라벤 고원 한 켠에 있는 땃로(Tad Lo) 마을에 있다. 라오스어로 ‘땃(Tad)’은 폭포라는 뜻이다. 이곳 볼라벤 고원 주변에는 특히 폭포가 많아 커피 투어와 함께 폭포 투어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볼라벤’, 어째 많이 들어본 단어가 아닌가? 일찍이 나의 여행 일정을 기억하는 분들은 눈치 챘을 거라 믿는다. 바로 작년 8월 말의 나의 제주 여행을 무려 이틀이나 미루게 했던 그 태풍, 볼라벤이다! 라오스 남부의 고원, 볼라벤은 연중 서늘한 날씨로 커피와 차 농업이 발달된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늘과 내일 머물 예정이다.
어제 비엔티엔에서 슬리핑버스가 출발한 시간은 저녁 8시 무렵이었고, 우리는 오늘 아침 7시에 팍세에 도착하였다. 하지만 어제 밤 6시부터 우리는 썽태우(트럭을 개조한 버스)를 타고 슬리핑버스가 있는 곳까지 승객을 찾아 돌아 다녔고, 오늘 아침에도 팍세에서 내려 땃로까지 로컬 버스(우리 시골 버스)로 이동을 마친 시간이 10시 이니 물경 16시간을 버스를 5번 갈아타며 이동한 셈이었다. 피곤한 하루이긴 했다.


2. 내가 라오스로 온 이유

여행 일정을 확정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아내와 근무 반이 다르고, 겨우 3명이 한 개 조로 교대 근무를 하는 곳이다 보니 일정을 어찌 잡아야할지 고민스러웠다. 일단 같이 근무하는 분들에게는 2주간의 일정을 일찌감치 양해를 부탁드렸고, 다행히 흔쾌히 받아들여 주셨다. 아내는 인사이동을 예정하고 있어 어찌 될지는 몰라도 일단 일을 저질러 보기로 했다. 
이번 여행지를 라오스로 결정한 것은 어쩌면 진에어 덕분(?)이다. 진에어 직항이 작년부터 열렸다. 그래서 내가 편히 갈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한 이유와 그래서 한국사람 단체 관광객이 더 많이 올 것이므로 그 전에 빨리 오자는 이유가 치사하게 묶였다. 솔직히 치사하지만, ‘떼’로 무리 짓는 것만으로도 용감해지는 분들 덕택에 모른 체 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많다.
라오스를 처음 접한 것은 5년 전 이었다.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라는 제목의 책을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아직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그 표지 사진과 책 제목만으로도 나에게는 티베트와 더불어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재작년, 여권을 잃어버려 결국 티베트는 가보지 못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다음 여행지는 어디냐고 묻는 아내의 물음에 나는 라오스라고 바로 대답했었다.
여행 일정이 6주로 가까워오자 솔직히 안달이 났다. 일주일 단위로 카운트다운을 하다가 2주가 남자,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2주가 라오스에서의 2주하고 다를 리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 라오스에서의 만 이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3. 수도 비엔티엔(VIENTIEN), 혹은 위앙짠

라오스 고유명사를 영어로 표기할 때, ‘V’는 묵음으로 발음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앙짠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아직 입에 배지 않는다. 
비엔티엔은 한 나라의 수도로서 너무나 소박한 모습이다. 나는 왓타이 공항에서 택시로 숙소로 이동하면서 기사 아저씨의 수줍은 친절에서부터 벌써 라오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20달러로 예약한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인 ‘미싸이 파라다이스’의 나이 어린 스텝들도 영어를 못해 머쓱해할 뿐, 예쁜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도시인지라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친다고 웃지는 않는다.
소문난 비어라오를 숙소에 오자마자 한 병 비우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게스트하우스에서 제공하는 빵과 커피를 마시고 우리는 가까운 여행자거리를 먼저 돌아보았다. 환전도 하고, 팍세로 가는 슬리핑버스 표를 예매하기 위해서였다. 몇 군데 돌아보다가 표는 묵었던 숙소에서 예매하였다. 18시 반에는 돌아와서 픽업 차량을 기다리란다.
그 다음으로 국립박물관을 찾아갔다. 그래도 명색이 국립박물관인데 낡은 시골 분교 같은 모습은 안타까웠다. 옛 란쌍 왕국의 수도였던 루앙프라방의 일부만이 고고학적으로 발굴되고 보존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낡은 액자에 담긴 사진들로나마 라오스의 역사와 문화, 그들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순간이었다.
국립박물관을 빠져나와 물 꺼진 남푸 분수를 지나 아뉴봉 공원에서 라오스인들이 좋아하는 인물인 챤티뉴아봉 왕의 동상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라오스 왕국의 독립을 위해 태국과의 한판 전쟁을 이끈 왕이었다. 왕의 동상에는 라오스인들의 기도를 담은 향과 꽃이 둘려있었다. 먼 역사에서는 현재 태국인 샴 왕국과 베트남 후에 왕조, 버마 사이에서 잦은 침략을 당했고, 가까운 현대사에서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이어 미국에게 ‘조용한 전쟁’이라 불리는 미국의 베트남전 보급로 차단 명목의 폭격과 학살을 당했던 라오스였다. 도대체 주변의 침략에 대해 이겨본 적이 없는 나라인데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나 역시 왕에게 경의를 표한다. 
공원의 바로 앞에는 대통령 궁이 있다. 이 소박한 나라는 대통령궁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도 경비 병력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정문 앞에 교통경찰 한 명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 궁을 중심으로 정부 각 부처가 5~6층 정도 되는 라오스 양식의 건물 6개 동을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의 빌딩과 같은 (그것이 첨단의 빌딩일지라도) 건물은 내가 본 것은 세 개 정도였다. 그 중 하나는 현대차가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라오스식 건물이 정감이 가더라. 자꾸 맘에 드는 것만 보여서 큰일이다.^^.
본디 다른 이들의 여행기에는 비엔티엔 여행은 자전거를 타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자전거를 못타는 아내 덕택에 걷기를 선택하였다. 물론 점심 식사로 쌀국수를 잘하는 집을 찾아서 걸어갔다가 지쳐서 바로 툭툭(오토바이 개조 택시?)을 타주었다. 
우리는 시사켓 사원과 호파깨우 사원을 지나치고 탓루앙으로 향했다. 두 곳을 지나친 것에는 미니마트를 찾아 물과 얼음을 찾아 헤매다 오전 개장 시간을 놓친 까닭도 있다. 라오스는 모든 관람물을 점심시간에는 개방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일하는 사람에게도, 관람물에게도 점심시간을 허락하는 이 여유는 어찌 자유 무역되지 않는다 말인가? 탓루앙은 사방 30여 미터의 황금으로 칠해진 탑 사원이다. 탓루앙에서는 돈 많은 사모님이 스님들의 가사(승복)를 새로 준비하며 시주를 하는 행사가 잠시 열렸다. 아직 수련중인 듯 한 스님들이 참석하여 사모님 보살로부터 옷과 돈을 기부 받았고, 다른 스님들은 행사 진행과 사진 촬영을 하였다. 
어째 사원이 없으면 마을이 아니라는 소리를 할 정도로 불교와 사원, 승려에 대한 존경이 깊은 나라이다. 불심으로 오랜 역사의 고난도, 세상의 어려움도 고뇌도 이겨 왔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 이상 평가할 근거가 없다.
빠뚜싸이는 독립기념문이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진 광장인데 원조 받은 시멘트로 식민 지배국이었던 프랑스의 개선문을 본떠서 만들었다. 물론 겉 디자인만 그렇고, 내부의 부조는 철저히 불교의 그것이다.
예정시간 보다 일찍이 픽업차량이 왔다. 한 시간 반가량 시내를 돌며 사람을 태우다가 남부의 버스터미널로 데려간다. 같은 픽업 차량을 탄 7명 중 5명이 팍세 행 슬리핑버스를 동행하게 되었다. 슬리핑 버스는 2층 침대로 만들어 누울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내 키가 딱 맞을 정도이니 동양인 평균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어쨌든 초반에는 조용했던 버스는 중국인 아저씨들 4~5명이 타자마자 시장통처럼 바뀌었다. 
그래도 피곤이 우선이라 잠은 쏟아졌다. 꺼지지 않는 에어컨 덕에 벌벌 떨면서도 잠은 잘 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날 묵은 숙소 뒤의 흔한 사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뉴봉 왕>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탓루앙>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빠뚜사이(독립기념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슬리핑 버스, 2인용 자리. 양해구하고 촬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행복의 조건(인생성장보고서)’(조지 베일런트 지음)

‘행복의 조건(인생성장보고서)’(조지 베일런트 지음)

2013. 8.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소개의 글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실제적이기보다는 막연한, 아직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다. 지금의 신체적, 정신적 균형 상태가 무너지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경제적 준비 부족에 대해 걱정스럽기도 한다.

이렇듯 나뿐만이 아닌 많은 젊은이들은 노년을 쇠퇴와 결핍, 사그라짐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나 건강의 악화가 아니더라도 굳이 장수할 계획은 없다는 내 생각도 그러한 쇠퇴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노년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신체적 노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으며, 정신적 정점은 이미 지난 과거의 일이다. 아직 남은 것은 약간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 정서적 경험뿐일는지 모르겠다. 나는 늙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이것을 인정하자!

 

얼마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흔 살과 서른 살이 화제에 올랐다. 우리는 서른 살이 되던 날 자정에 신촌에서 술을 마시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불렀었다. 뭔가 알 수는 없지만 치기어린 이십 대를 지나 도전과 안정의 삼십 대로 간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이 진하게 우리를 감싼 듯 했다. 그러나 마흔의 감흥은 별 다르게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 대화의 요지였다.

왜 그랬을까? 삼십이립(三十而立), 사십이불혹(四十而不惑)이라 뜻을 세우는 삼십은 설렜고, 미혹됨이 없는 사십이라 별 흔들림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입행(立行)에 있어 좌절과 변화가 많아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모습은 끊임없이 자문할 과제이지만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든 에릭슨의 발달과업을 인용하든 내 나이에 맞는 인생의 숙제는 계속해서 풀어갈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현재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인 것은 확실한 듯하다. 지금은 때로는 아프고, 조바심이 나서 성급해지고, 부족한 모습이 부끄러울지라도 아직은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예전에는 인생의 황금기는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간, 50대까지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조바심이 나서 무엇인가를 조금 더 빨리 이루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천명(知天命)’의 자세로 ‘생산성의 과업’을 완수한다고 인생이 완성되는 것도, 내 삶의 기쁨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비록 몸과 정신, 지위가 달라진다 해도 인생의 ‘통합의 과업’을 끝내고, 나와 이웃과 공동체가 어우러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가도 법도에 어긋남이 하나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면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늙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조지 베일런트는 하버드대학교에서 1938년부터 이루어진 성인발달연구의 결과를 통해 긍정적인 나이 들어갊의 비결을 책 ‘행복의 조건’을 통해 밝히고 있다. 1939년에서 1942년에 하버드대 2학년 남학생 268명을 2000년대 초까지 60여 년에 걸친 성인발달연구는 인간의 전 생애를 동시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전향적 연구방법이었고, 그동안 알려진 그 어떤 횡단적, 회고적 연구 결과와 다른 결과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욱이 베일런트는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도심 빈민가 청소년에 관한 연구와 천재아 연구 중 여성 연구 대상자를 흡수하여 기존의 연구와 통합하여 30년 남짓 더 연구하였다.

무엇보다 베일런트의 책은 실증적인 자료보다는 인물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814명의 60년에서 80년에 이르는 세월을, 그리고 구체적인 서른 세 명의 인생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한권의 책을 통해 느껴지는 그 무게감은 세대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삶의 보편성에 관한 진지한 기록의 무게였고, 인생을 어찌 가꾸어 가야할 지에 대한 나침반의 진중함이었다.

 

책의 내용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베일런트가 말하는 긍정적 노화란 ‘사랑하고 일하며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을 말한다.

베일런트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일곱 가지 조건은 ①성숙한 방어기제(소소하게 불쾌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 없이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②비흡연 또는 45세 이전의 금연, ③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④알맞은 체중, ⑤안정적인 결혼생활, ⑥규칙적인 운동, ⑦고등 교육 또는 평생 교육이었다.

마지막으로 베일런트는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한 이들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그들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속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둘째, 그들은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할 줄 알았다.

셋째,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늘 자율적으로 해결했으며 매사에 주체적이었다.

넷째, 그들은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길 줄 알았다.

다섯째,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았고,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들을 소중한 재산으로 삼았다.

여섯째,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2. 책의 내용

들어가는 글 – 죠슈아 울프 셍크

1938년, 그랜트 연구, 268명의 하버드대 연구대상자, 대학 2학년생, 72년 연구(2010), 인간의 성장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폭넓고 오래된 연구. 행복한 인생과 비참한 인생을 살았던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

베일런트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많고 적은가’보다는 ‘그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방어기제 - 아주 기본적인 생물학적 과정에 대응하는 정신세계의 현상. 정신병적 방어기제, 미성숙한 ~, 신경증적 ~, 성숙한 ~. 방어기제는 시기에 따라 발현되고 사라진다. 50~75세에 이르면 이타주의나 유머가 빛을 발하고 모든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거의 사라져감.

행복의 7가지 조건 :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 50세에 5~6가지 충족시 80세에도 행복하고 건강한 상태에 이를 확률 50%, 3가지 미만 시 0%, 적당한 체형과 4가지 조건 충족시 3가지 보다 80세 생존 확률 3배 이상.

행복하고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지를 결정짓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나 계급이 아니라 사회적 인간관계이다.” 47세 즈음까지 형성된 인간간계가 성숙한 방어기제를 제외한 어느 변수보다 훨씬 더 이후의 인생을 예견하는 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1장 성인발달연구, 그 기나긴 여정

현대의학이 가져다 준 장수라는 선물은 인간에게 저주일까, 아니면 축복일까? ‘인간이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이상적인 모델을 찾아야 한다.

 

<성인발달연구로부터 찾아낸 주요 성과>

우리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노년은 우연히 만난 훌륭한 인물들 덕분에 보장되기도 한다.

인간관계의 회복은 감사하다는 자세와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이루어진다.

50세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80세에도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50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고 해서 80세에 반드시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알코올 중독은 (불행한 유년 시절과 관계 없이) 분명 실패한 노년으로 이어진다. 알코올 중독은 부분적으로 장차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즐겁고 창조적인 삶을 누려라. 그리고 오래된 친구를 잃더라도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한층 더 즐겁게 살 수 있다.

객관적으로 신체건강이 양호한 것보다 주관적으로 건강상태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성공적인 노화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자신이 병자라고 느끼지 않는 한 아프더라도 남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

 

<첫 번째 관문 : 긍정적인 노화의 정의>

긍정적 노화란 사랑하고 일하며 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

총 3개 집단, 총 814명의 연구 대상 : 1) 1920년대에 태어난 268명의 하버드대 졸업생, 2) 1930년대 태어난 이너시티 고교 중퇴자 456명, 3) 1910년대 태어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중산층 여성 90명

 

<하버드 졸업생(그랜트) 집단>

1938년 알리 복, 클라크 히스에 의해 시작. 건강한 성장에 관한 연구. 1939~42년 까지 2학년 남학생 268명 연구 대상 선정, 248명이 70년 간 연구 대상으로 유지. 2년마다 설문지, 5년마다 건강검진, 15년마다 면담. 백인 남성, 중산층 이상 특권층 출신 다수, 동년배에 비해 뛰어난 학력, 신체적, 정신적 요건. 75세 이전 사망자 비율은 동년배의 절반, 타 하버드생의 1/3.

 

<이너시티 집단>

1939년 시작된 글루엑 실험 계승(1975년), 대부분 이민자 가족, 평균 이하의 경제적 수준

 

<터먼 여성 집단>

터먼 연구 : 1922년, 아이큐 140이상 672명 연구. 80년간 진행, 이중 여성 90명 선정하여 1987년 면담 재개

 

<다르면서도 같은 그들 : 세 집단 비교>

각 집단의 평균적인 출생연도는 터먼여성이 1911년, 하버드 출신이 1921년, 이너시티 출신이 1931년이다. 그러나 신체적 노화수준으로 보면 하버드 출신과 이너시티 출신이 비슷하다. 사회적 환경, 교육기간, 부모의 교육수준은 각 집단 간 차이가 두드러진다.

 

<나, 조지 베일런트와 성인발달연구>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인물의 삶에 대한 평가를 실증자료에 우선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저자의 선입견과 편견이 개입될 수 있기에 개인사와 연구이력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1934년 뉴욕에서 태어났고, 열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열세 살에 온 하버드대의 ‘졸업 후 25년’이라는 보고서를 보고 매료되었다. 정치적으로 무소속이지만 민주당에만 투표를 던져왔다. 하버드 집단에 대한 연구는 1967년에 동참하였고, 1977년에 중간 정리 차원으로 ‘성공적 삶의 심리학’을 출간했다.

1974년 부터 이너시티 출신자들과 면담을 시작하였고, 1985년에 루이스 터먼의 천재 여성 집단에 대한 면담을 진행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흘러 75세에서 80세가 된 하버드 집단과 면담을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세 집단에게서 어던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향적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것>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연구하는 방식을 전향적 연구방식이라 한다. 종단연구에 있어 장기 추적연구는 기억력에 의존하는 반면 전향적 연구는 훨씬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특징 : 1) 노년을 성공적으로 맞이한 노인들과 조기 사망한 이들의 배경을 대비해 볼 수 있다. 2) 연구대상자들의 틀린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3) 전향적 연구를 통해서만 프로이트의 퇴행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 4) 잘못된 기억도 얼마드니 적용 가능하고 창조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5) 연구대상자들은 수치심을 극복할 시간 여유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6) 원인과 결과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향적 연구가 남기는 아쉬움>

재정적인 부담과 장기간 연구의 행운, 연구자와 연구 대상자의 인내심이 필요.

후광효과로 인한 편견의 가능성, 규모와 구성면에서의 보편성 획득의 어려움, 대표성의 문제

 

 

2장 사람은 안팎으로 어떻게 성장하는가?

에릭슨의 발달 이론과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이론에 입각해서 서술

 

<사회적 지평의 확장 : 발달과업의 완수>

에릭슨의 발달단계 : 기본적 신뢰 대 불신, 자율성 대 수치심, 주도성 대 죄책감, 근면 대 열등감(이상 유년기 발달과정), 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 친밀감 대 소외, 생산성 대 정체, 통합 대 절망(이상 성인 발달과정)

성인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발달과업 : 1)정체성-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 2)친밀감-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의 확대, 3)직업적 안정-사회적 정체성의 확립, 4)생산성-다음 세대를 헌신적으로 지도할만한 능력, 5)의미의 수호자-보편적인 인류의 문화와 제도를 보존, 6)통합-세상의 이치와 영적 통찰에 도달하는 경험.

발달과업은 고정된 법칙대로 진행되지 않으나 연구결과, 의미의 수호자가 되려면 반드시 생산성의 과업을 성취해야 한다.

50세에는 천명을 알고(知天命), 60세에는 귀가 순해지고(耳順), 70세에는 마음이 하고 싶은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從心).”

 

<욕망과 억압의 균형 잡기 : 방어기제의 성숙>

‘현명한 마부는 욕망과 복종이라는 두 마리의 말을 균형있게 다룰 줄 안다.’ 열정과 이성의 조화, 균형감은 삶의 과업을 이루어나가면서, 방어기제를 도입해 나가면서 성취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성숙한 방어기제로 발전. 성숙을 위해서는 정서의 발달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 뇌의 생물학적 발전이 필요. 승화와 성숙한 유머, 이타주의, 억제(금욕)은 미덕과도 관련된다.

방어행위들은 비록 부적응적 양상으로 나타나기는 하나, 궁극적으로는 적응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초석이다. 적응기제를 적용하는가, 아니면 부적응기제를 적용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계급이나 아이큐, 교육수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집단을 50세와 75세에 방어기제 성숙 정도를 평가해보니, 이타주의와 유머는 증가하고, 억압, 반동형성, 투사, 수동 공격성 같은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감소하였다. 노화가 아닌 질병이 방어기제의 성숙을 방해한다.

 

 

3장 어린 시절이 인생을 좌우하는가?

유년기가 노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 ①유년기의 경험을 통해 믿음과 자율성, 독창성을 키우며 이는 풍요로운 노년의 밑받침이 된다. ②수면자 효과처럼 유아기의 애착 경험은 비극적 사건을 거치고도 다실 살아나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 사람의 유년기를 바라보는 방법>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한 원칙 : ①유년기 환경 평가자는 청소년기 이후의 운명을 알지 못하도록 했다. ②복수의 평가위원의 평가와 아동정신과 의사의 타당성 검증, ③검토 자료는 각 연구 대상자와 그 부모와의 면담자료를 포함, ④평가 기시는 1970~74년 사이에 이루어짐.

평가 항목 : ①집안의 분위기는 화목하고 안정적인가? ②어머니와의 관계가 기본적인 신뢰, 자율성, 주도성, 자부심을 성취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③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④형제들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형제들끼리 서로 우애 있게 잘 지내는가? ⑤평가위원도 그런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가?

 

<유년기의 행복이 노년기에 끼치는 영향>

최근의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유년기와 노년기의 행복 사이에는 별 연관이 없다. 긍정적인 유년기는 중년의 신체 건강과 미래 소득을 예측하게 한다. 금전적 수입도 만족스러운 노년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이지만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더 중요하다. 유년기의 불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덜 중요해진다.

불행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은 ①정신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고, ②놀이나 인생을 즐기지 못하며, ③자기감정과 세상을 신뢰하지 않으며, ④오랜된 친구가 없을 수 있다.

 

<사실 또는 억측 : 우울증 때문에 병이 생길까?>

정신과 신체건강의 영향은 있겠지만 우울증 자체보다는 오히려 우울증이 동반하는 지나친 흡연과 자기 방치가 신체적 병을 유발하는 주범이다.

 

<과거와 인생의 재구성>

사람들은 현재의 삶을 좀 더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지나온 나날을 재구성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대개가 기억하는) 과거는 허구이므로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과거를 망각하고 산다면, 현재의 삶이 더 수월해지기도 하다.

 

<되찾은 사랑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인생의 후반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 중 하나는 인생 전반에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다시 찾아내어 그 사랑을 회복하는 일이다.

 

 

4장 생산성: 만족스런 인생의 열쇠

연구 결과, 에릭슨의 생산성 과업의 달성 여부가 노년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예측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생산성 과업은 다음 세대를 돌보는 것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때가 무르익기도 전에 생산성을 성취해 버린다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당신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배웠는가?>

에릭 에릭슨: ‘자녀들이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사실만 강조되다보니, 나이 든 세대들이 젊은 세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간과될 때가 많다.’

다음 세대로부터 배운 것이 많은 연구 대상자일수록 자기 자신을 책임질 줄 알았다. 잘 늙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을 꾸준히 익혀나가고 사람들과 교류를 계속해 나갈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희망과 용기를 내면화할 수 있는 자질, 그것이 바로 만족스러운 노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5장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의미의 수호자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개성이 뚜렷해져 자신의 확고한 인격을 발전시킨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성적인 차이는 줄어드나 통념과 달리 전향적 연구결과는 폐경기가 되었다고 여성들의 성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인의 역할은 남녀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다. 생산성 과업은 오직 성인만이 해낼 수 있다. 이 과업의 미덕이 특정한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데 있다면 의미의 수호자라는 과업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침이 없는 ‘정의’라는 덕목이 있다.

생산성 과업을 마치고 의미의 수호자가 되는 과정은 경험이 풍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체적으로 허약해진 탓도 있다. 그러나 심판이나 판사가 비난을 받듯이 대중의 환호를 원하는 사람은 의미의 수호자로 옮아가기가 어렵다.

친밀감과 직업적 안정이라는 과업이 나란히 발전되듯이 생산성과 의미의 수호자라는 과업도 일면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의미(전통)의 고수는 다음 세대와의 교류가 없이는 완고함으로 빠질 수 있다.

 

<의미의 수호자들은 모두 완고한 공화주의자인가?>

성공적 노년과 정치적 지향은 관련이 없다. 자유주의자들이 새로운 사고의 수용과 창조성이 높았고, 공화주의자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 소극적이었으나 노년에 이르러 이러한 차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6장 통합의 시간: 죽음이여, 으스대지 마라

성공적인 노화는 삶의 쇠퇴과정까지 훌륭하게 관리해 냄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이전의 과업은 통합 과업 성취에 도움을 주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긍정적인 노화를 위해서는 늘 변화와 질병, 불안정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저 신체적인 쇠퇴를 피한다고 해서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7장 두 번째 관문: 건강하게 나이 들기

노년에 이르렀다고 해서 죽음과 신체적 무능을 정상적인 성인 발달의 한 부분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에는 사회적, 정서적 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포함된다.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건강한 노화란 신체적 질병의 유무만이 아니라 삶에 만족하는 동시에 활력이 넘치는 상태를 말한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 불행하고 병약한 삶, 조기사망>

60~80세 사이에 건강하고 행복한지, 불행하고 병약한지를 구분하기 위한 건강상태 분류: ①신체 질환 유무에 따라 ②신체건강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따라 ③신체적 무능 상태의 지속 정도에 따라 ④객관적 정신건강에 따라 ⑤사회적 유대관계를 기준으로 ⑥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를 중심으로

마지막 10년을 기준으로 행복하고 건강한 삶 25%, 불행하고 병약한 삶 50% 대상 연구, 대조를 위해 중간층 25% 배제함. 하버드 80세 기준, 이너시티 70세 기준(평균 수명의 차이).

 

<건강한 삶의 세 갈래길>

행복하고 건강한 삶- (하버드)237명 중 62명, (이너시티)332명 중 96명 분류. 80세(이너시티는 70세) 이전에 신체적 무능을 경험한 적이 없고, 다른 연구 대상자와 비교하면 사회적 유대관계와 정신건강이 상위 1/4에 속하며 삶에 대한 만족도는 상위 1/3에 속함.

불행하고 병약한 삶- (하버드)237명 중 40명, (이너시티)332명 중 48명 분류. 5년 이상의 신체적 무능 상태, 정신사회적 차원 세 가지 중 한 가지 이상 불행 경험.

조기사망(하버드 75세, 이너시티 65세 이전 사망)- (하버드)237명 중 75명, (이너시티)332명 중 96명 분류.

 

<50세 이전의 삶으로 70대 이후의 삶을 예견하다>

전향적 연구 자료는 건강한 노년의 요인을 보여주며 이는 얼마든지 미리 통제 가능함을 나타낸다.

 

<건강한 삶과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여섯 가지 변수>

조상의 수명- 60세 이전 사망자는 조상의 수명이 짧으나 75세에 이르면 행복/건강 집단과 불행/병약 집단의 조상의 수명 차이는 거의 없음.

콜레스테롤- 50세를 기준으로 두 집단 및 조기사망 집단 간 수치 차이는 없음.

스트레스- 50세 이전의 스트레스 및 심신상관 질병은 75세의 신체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음.

부모의 특성- 부모의 사회적 신분, 안정적 환경, 아이큐 등이 70세 이후의 삶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음.

유년기의 성격- 10대, 20대에는 많은 영향을 미치나 70세 이후에 별 영향 없음.

사회적 유대관계- 일찍이 경험하는 정신사회적 경험과 건강한 노년은 관련이 없음.

 

<건강한 노년을 부르는 일곱 가지 요소>

  • 비흡연 또는 젊은 시절에 담배를 끊음- 건강한 집단과 조기사망 집단을 비교하면 담배를 하루 한 갑 이상 피워온 비율이 1:10 정도로 차이가 남. 그러나 20년 이상 피웠어도 45세 이전에 끊은 경우는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음.

  • 성숙한 방어기제- 소소하게 불쾌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심각한 상황으로 몰아가는 일 없이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 행복/건강 집단은 대부분 성숙한 방어기제를 지닌 반면 불행/병약 집단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듦. 50세 때의 사회활동의 폭(생산적 성취도)은 정서적 성숙을 촉진하며 노년에도 정신사회적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작용(6배)

  • 알코올 중독 경험 없음- 알코올 중독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며 자살, 암, 심장질환을 유발한다. 알코올 중독에 더해 지나친 흡연은 알코올 중독이나 흡연을 약간 하는 이보다 건강할 확률을 1/4로 떨어뜨림.

  • 알맞은 체중, ⑤안정적인 결혼생활, ⑥운동- 비만은 담배만큼 신체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행복한 결혼과 규칙적인 운동은 정신사회적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침.

  • 교육년수- 노년의 신체건강에 미치는 교육의 요소는 아이큐나 가정의 소득이 아니라 자기관리와 인내심이라는 점에서 상관관계를 가짐.

하버드 집단 중 여섯 가지를 갖춘 106명 중 절반은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렸으며. ‘불행하고 병약한 삶’에 이른 사람은 단 8명뿐이었다. 네 가지 미만을 갖춘 66명은 80세에 ‘행복하고 건강한 삶’에 해당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21명이 ‘불행하고 병약한 삶’에 이르렀다. 두 가지도 못 갖춘 이들은 모두 80세 이전에 사망했음.

 

<50세 이후, 운명은 스스로가 결정한다>

각각의 변수는 독립적 지표이므로 특정한 변수를 통제한다면 건강한 노화를 예견할 수 있다. 체중과 운동, 담배, 알코올을 조절할 수 있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부적절한 방어기제를 줄여나갈 수 있다.

 

<피할 수 없는 쇠퇴, 그리고 다행스러운 소식>

노화에 따른 신체의 퇴화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뇌세포 감소량은 일반적인 걱정과 달리 훨씬 적으며, 감소하더라도 적정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 뇌 활동은 젊은이에 비해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공간기억력이나 감정이 개입되지 않는 단순암기력은 떨어지나 감정이 오고간 사건은 상세히 기억할 수 있다.

 

<사회적 유대관계는 삶을 어떻게 바꿔주는가?>

좋은 사회적 유대관계와 건강한 노화의 관계는 상호 원인이자 결과이다.

연구 결과, 훌륭한 사회적 유대관계와 좋은 습관(50세 이전의 금연과 술을 절제하는 것)을 지닌 사람의 3/4은 75세에도 여전히 건강하다. 그러나 나쁜 습관과 낮은 유대관계를 지닌 사람의 대부분은 75세 이전에 사망하거나 신체적 무능상태에 빠진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 나쁜 습관을 가졌으나 현재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보다 과거에 좋은 습관을 가졌으나 현재 낮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의 건강이 더 좋다는 사실이다. 습관의 중요성이 유대관계보다 건강에 우선하였다.

 

 

8장 삶을 즐기는 놀이와 창조의 비밀

은퇴가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은 갑작스런 퇴직과 수입의 감소, 직장을 가정의 도피처로 삼은 경우, 건강의 악화로 퇴직한 경우 등이지만 이런 경우는 일부에 지나지 않음으로 은퇴가 심각한 삶의 문제로 과대평가되고 있다.(저자의 견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은퇴와 관련된 문제들은 점점 중요해진다. 65세 이후에 일에 종사하는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지만 조기 은퇴가 성공적인 노화와 연관되지는 않는다.

보람 있는 은퇴 생활을 만들어주는 활동은 ①직장 동료를 대신하는 새로운 사회적 만남, ②놀이 활동, ③창조성 발휘 활동, ④평생 공부 등이다.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라>

배우자와 가족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유대 관계와 직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을 형성해야 한다. 이타주의는 다른 사람을 돕는 동시에 자신의 욕구까지 창의적으로 펼칠 수 있다.

<놀이 활동을 즐겨라>

은퇴 후 두 번째 임무는 자만심은 버리고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노년에는 지칠 줄 모르고 노는 능력이 더 쓸모가 있다. 은퇴 이후의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만하게 사는 일이다.

 

<창조성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라>

놀이와 마찬가지로 창조성은 노년에 젊음을 주지만 창조성과 승화는 놀이보다 더 강한 열정과 기쁨을 선사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창조적 능력은 변화한다. 기억력 같은 유동성 지능은 70세 이후에 급속하게 떨어지지만 논리와 어휘력 같은 결정성 지능은 60세까지 꾸준히 발전한다.

중년에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은 노년에 이르러 정신사회적으로나 신체활력면에서 훌륭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좌절, 호르몬의 변화로 설명된다.

 

<평생토록 배워라>

배움을 통해 맛보는 즐거움은 노년의 심리적 건강에 중요하며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능력은 노년에 젊음을 선사한다.

 

 

9장 나이가 들수록 더 지혜로워지는가?

지혜는 다양한 측면을 지니고 있지만 성숙, 지식, 경험, 지적 정서적 이해력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오래 살수록 경험의 폭은 넓어지고, 편견은 줄어들어 지혜로워지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경험적 연구들은 이러한 믿음을 잘못된 것으로 결론지었다. 성인발달연구에서는 SCT검사 등을 시행했으나 이 결과가 방어기제의 성숙도와 성공적인 노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말과 글만으로 사람의 미래를 예견할 수 없다. 그 결과, 사람의 행동을 반영하는 방어기제의 성숙도로 지혜를 평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0장 영성과 종교, 그리고 노년

나이가 들수록 종교적인 믿음과 영성이 더 깊어지는가는 일반적인 판단과 다르게 논란의 여지가 여전히 많고, 성공적인 노화와의 연관성도 적다. 오히려 사랑과 희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성과 종교는 어떻게 다른가>

종교는 배타적 믿음과 교리문답을 지니고 대부분 도그마를 수반하며 수치심과 의무감, 심판의 단어로 표현된다. 반면 영성은 포괄적인 믿음과 언어를 초월하는 감정과 경험을 지니고 메타포를 내포하며 긍정과 감사, 용서의 단어로 표현된다.

다른 사람의 종교적, 영적 경험에 귀 기울일 줄 알게 되면 영성도 함께 발전한다. 영성은 다른 사람과의 동일시를 발전시키며 모든 종교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가치를 이해하고 경외할 수 있다.

노년과 영성의 연관성은 횡단연구의 인위적인 산물이며 잘못된 기억의 산물일 뿐이다. 영적, 종교적 믿음은 성공적 노년과 우울증 모두에 연관된다. 또한 사회적 유대관계 면에서 고독한 사람만이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 어린 시절 희망과 사랑을 가져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더 종교적 믿음과 영성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성은 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가?>

성인발달연구에서 종교적인 신앙, 새로운 생각에 대한 열린 태도, 편견없는 정치적 관점 등은 만족스러운 노년을 맞이하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성공적인 노화로 향하는 길은 세속적인 인간관계 속에 있다는 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동시에 영성은 두 사람 이상의 관계를 통해 자신보다 위대한 힘의 존재가 있음을 인식할 적에 생겨난다.

 

 

11장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변하는가?

여러 근거들을 살펴본 결과, 노화는 쇠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지평을 확장하고, 인내심을 강화하며, 무의식적 방어기제를 성숙시키는 과정이다. 성공적인 노화는 곧 성공적인 생존이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는 가설은 빗나간다. 인격만큼은 늘 일관성 있게 유지되었다. 연구 대상자들 중 다수의 노년시절 적응 양상은 대학 혹은 중학 시절 적응도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는가, C등급을 받았는가에 크게 좌우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설도 가능하다. 기질은 대체로 유전적인 성격이 강하고, 인격에 연속성을 부여하므로 변화가 거의 없는데 반해, 성격은 환경과 성숙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변화한다.

불행한 일을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역시 변화를 이끈다. 유전자와 환경은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치며, 회복탄력성은 시작되면 스스로 촉진되기도 한다. 삶은 변화한다.

인격은 유전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나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변화한다. 성공적인 노년의 변화를 위해서는 네 가지의 자질이 요구된다. 그것은 ①미래지향성, ②감사와 관용, ③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 ④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이다.

 

 

12장 또다시, 행복의 조건을 묻다

알코올중독방지회의 다음과 같은 슬로건은 노년과 정원을 가꾸는 일에 도움을 준다. 노년에는 정원을 통해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①신의 섭리를 받아들이라, ②가장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하라, ③소박하게 살라, ④현재를 즐기라, ⑤전화를 잘 이용하라.

 

<세 번째 관문 : 품위 있게 나이 드는 것>

  • , 품위 있는 노년을 맞이한 이들은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보살피고, 새로운 사고에 개방적이며, 신체건강의 한계 속에서도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했다.

  • , 그들은 노년의 초라함을 기쁘게 감내할 줄 알았다.

  • ,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늘 자율적으로 해결했으며 매사에 주체적이었다.

  • , 그들은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놀이를 통해 삶을 즐길 줄 알았다.

  • , 그들은 과거를 되돌아볼 줄 알았고, 과거에 이루었던 성과들을 소중한 재산으로 삼았다.

  • , 그들은 오래된 친구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김용택 외 19인 지음)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김용택 외 19인 지음)

2013. 9.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되돌아보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사소한 일조차 기억을 잘하는 편인데도 최근에는 어떤 일에 대해 봉인하듯 기억을 덮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게다. 그 일을.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남에게 더 끼친 그 상처를.

올해 들어 바싹 삶의 글들을 읽어 가다보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지만 묵혀 놓은 감정들이 하나 둘씩 비집고 올라온다. ‘너는 어땠는데?’ 계속 물어본다.

그나마 페이스북에 여행 이야기도 올리면서 최근에 얽인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가고 있었지만 좀 더 먼 일에 대해서는 가닥조차 잡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무엇을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인지? 나의 반성은 누구에 대한 것인지?, 그리고 무엇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지? 아! 나는 반성할 것을 찾지 못하는 것을 반성해야할 성싶다.

그래서 글쟁이들은 어떤 반성을 하는지 엿보고 싶었다. ‘반성(되돌아보고 나를 찾다)’이다.

 

 

2. 남의 반성에 기댄 나의 반성

○ 어머니의 문안 전화(서석화)

“얼떨결에 사랑한다는 말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은 날, 작가가 갑자기 고쳐 쓴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입에 붙지 않은 말을 어설프게 하면서도 가슴이 참 따뜻했다. 내 나이 쉰이 되도록 어머님에게 한 번도 못했던 말, 사랑해요!”

: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신 주검 앞에서 간신히 내뱉은 이 말, 왜 진즉 하지 못했을까. 침대에 누워 지긋이 바라보시던 그 미소가 그립다.

 

○ 예술가 아들의 삶(이순원)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털어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 살아온 길 고비고비마다 이슬털이를 해주셨다. 아마 그렇게 털어내 주신 이슬만 모아도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 사춘기 시절, 엄마는 오랫동안 병원에 계셨다. 불만에 찬 얼굴로 학교를 가는 길에 당신은 목발을 짚고 나와 나의 등굣길을 바라보셨다. 금세라도 울음이 터질듯 한 당신의 얼굴.

 

○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박완서)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오랫동안 지켜온 절약정신이 하나 있는데 그건 음식물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중략) 남은 음식은 지딱지딱 버리고 새로 사먹은 게 젊은 사람 마음에 드는 일도 되고 농사짓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 일도 된다는 걸 이제야 알았으니 내 자본주의 공부는 끝도 없어라.”

: 대학 1학년의 농촌활동은 밥공기의 밥은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남겼다. 그러나 밥은 남겨야 한다. 아니 애초에 덜 담으면 될 일이었다.

 

○ 집착과 울컥으로부터의 도피(이재무)

“사랑이란 서로 간에 거리를 필요로 한다. 거리가 무화된 사랑은 억압을 낳는다. 그러나 상대에 대한 지배욕이 거리의 결핍을 가져온다. 이렇게 해서 비극은 탄생되는 것이다.”

: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아닐 터이다. 좋아하는 것, 일생을 걸만한 과업을 바라보는 태도도 이러 할지다. 선한 욕심과 지배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 태환이 형, 진짜 미안해!(김용택)

“매일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깨어난 형은 찬란한 햇살 아래 드러난 자기 삶의 누추함과 초라함과 참담함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형은 아침부터 술을 마셨을 것이다. 아내와 아들들과 헤어져 견디는 외로움이 그를 술 마시게 했을 것이다.”

: 음주를 즐겨도 집에서 잘 마시지 않는 개인사가 있다. 몇 해 전, 집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 사들고 퇴근하는 어느 아저씨, 그 남루한 점퍼 아래 축 처진 어깨를 보며 세상 아비들의 무게를 생각한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하셨겠지.

 

○ 언제 한번 봐(이승우)

“사람이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기를 꺼려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신의 형상이 아니라 악마의 형상을 보는 일의 두려움. 그런 상황에서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형벌이고 지옥을 경험하는 일이고, 그래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이 지옥같이 굳어서 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때로 아귀같이 마지막 뼈다귀까지 핥아먹으려 덤비는 모습을 볼 적마다 나는 두렵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 아이(구효서)

“……음, 아무래도 이 아저씨가 잘못한 것 같구나. 아까 사과하고 싶었지만 솔직하지 못했어. 미안해. 그 아이한테도 이 아저씨가 정말 미안해하더라고 전해주련? 진심이야……”

: 때를 잃어 사과하지 못한 일이 많다. 미안한 마음을 몇 해 동안 담고 있지만 사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리 큰 실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아닌가?

 

○ 반성은 자기 돌아봄이다(장석주)

“어느 날 나는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왔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골목 어귀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검은 유령처럼 비를 맞으며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서른 몇 해 전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내가 쓴 환멸의 문장 / 빗속에 장화를 신고 서있는 문장 // 혀는 이미 굳고 퍼런 이끼가 돋아나기 시작한 문장 / 내가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 문장이 빗물 위에서 흩어져간다”

: 휴대폰이 없던 20여 년 전, 전화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 자식이 걱정되는 아버지는 어찌 알았을지 학생회실로 전화를 걸어 물어물어 아들의 안부를 확인하신다. 아들은 나도 성인이라고 되레 화를 내었다. 나는 참 어리석었구나.

 

○ 이까짓 풀 정도야(안도현)

“사람은 사람대로 사는 방식이 있고, 풀은 풀대로 사는 방식이 있다. (중략) 잎이 넓은 풀은 자기의 그늘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잎이 넓은 것이며, 그 끝이 날카로운 풀은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중략) 하찮은 풀잎 앞에서도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 노동운동을 한다고 술에 취해 밤늦게 돌아가는 길, 정류장과 편의점마다 대리운전 기사님들의 불빛이 너울거린다. 너는 그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는가?

 

○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서하진)

“아이는 그러니까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제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인지하면서도 차마 내게 그 말을 하지 못한 거였다. (중략) 잔소리하지 않는 엄마가, 화내지 않는 엄마가, 울고 소리치고 소란을 피우지 않는 엄마가, 그 교양이 아이의 입을 막았다는 걸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 ‘자판기 노조 간부’ 이렇게는 하지 않을 거야 결심했었다. 해방의 꿈은 노동조합의 권력 문제로 선거 문제로 변질되고, 대중성 있는 활동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바보 같은 일이었다. 자판기는 자판기일 뿐.

 

○ 내 기억 속의 음화(은미희)

“그 고단한 삶에, 가족을 위해 당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그 노고에 대해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말씀 한 번 드리지 못했고, 고마워해본 적이 없다. 뒤늦은 후회는 참으로 사람을 맥 풀리게 만드느니, 나는 내가 부끄럽다.”

: 엄마의 꿈은 뭐였지? 아버지의 희망은 무엇이었지? 알지 못한다. 당신들에게 그런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당신들도 꿈꾸던 10대, 빛나던 20대, 열정의 30대가 있었을 것을. 부끄럽다.

 

○ 세상을 바로 살기 위한 여섯 가지 반성(고운기)

다산 정약용이 열다섯 살 난 어린 제자 황상에게 문학과 역사를 공부하라 했더니 제자가 머뭇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는 병이 세 가지가 있어서요. 첫째는 둔하고, 둘째는 꽉 막혔고, 셋째는 미욱합니다.”

나름 겸손한 척 한다. 정약용은 이렇게 말해주었다.

“공부하는 자들은 큰 병을 세 가지나 가지고 있는데 너는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구나. 첫째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으로, 이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폐단을 낳고, 둘째는 글 짓는 재주가 좋은 것으로, 이는 허황한 데 흐르는 폐단을 낳으며, 셋째는 이해력이 빠른 것으로, 이는 거친 데 흐르는 폐단을 낳는단다.

둔하지만 공부에 파고드는 자는 식견이 넓어질 것이고, 막혔지만 잘 뚫는 자는 흐름이 거세질 것이며, 미욱하지만 잘 닦는 자는 빛이 날 것이다. 파고드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뚫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닦는 방법이 무엇이냐. 근면함이다. 그렇다면 근면함을 어떻게 지속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데 있단다.”

: 나의 스승께서 상담자의 조건을 말씀하셨다. 가장 큰 것은 ‘절실함’이라 하셨다. 아픔을 절실하게 느끼고, 돕기를 원하는 마음이 절실할 때에 공부할 수 있다고 하셨다. 더욱 절실해야 한다.

 

○ 엄마의 나쁜 딸(차현숙)

“화장터에서 뼛가루와 함께 삼각으로 된 철과 나사못, 대못 따위가 나왔다. 잿더미에서 헤쳐져 골라지는 그것들을 보며 몹시 가슴이 아파왔다. 아, 저건 내가 박은 못이야. 아, 얼마나 아팠을까.”

: 엄마는 쉰 살이 되던 해에 일을 하시다 다리가 부러지셨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뼈가 왜 그리 하얀지를 물어보니 의사는 골이 다 비어서 그렇다고 하였다. 형님과 누이들과 나는 울었다. 서러움과 미안한 마음을 달리 표현할 수 없었다.

 

○ 사소한 계란말이의 기억(김이은)

“절제와 의무, 철저한 자기 억제만으로 평생의 삶을 꾸려온 엄마로서는 자신을 위해 그 어떤 것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일뿐더러 어찌 생각해보면 최고의 자기 존중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 금가락지에 양장 옷, 어릴 적 내가 엄마에게 한 약속이었다. 정규직으로 부족함 없이 벌고 살면서도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었고, 오히려 당신의 하나 있던 가락지를 결혼반지 하라며 내주셨다. 엄마 가는 날, 핑크빛 수의 입혀드려 꽃마차에 실어 보내드렸지만 그 말 빚을 어찌 갚을꼬.

 

○ 너무나 안전했던 대구(우광훈)

“난 지금에야 비로소 이 안전한 도시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그 당시 그 공포에 휩싸였던 도시를 떠올려본다. (중략) 과연, 누가 내 마음의 광주를 불태워버릴 것인가?”

: 80년대 운동의 끝자락 세대이라 광주는 마음의 빚이고 빛이었다. 대구지하철 참사를 떠올린다. 쌍용차 진압과 24명의 사회적 타살을 기억한다. 군인의 총칼은 걷어졌지만 효율이라는 이름의 탐욕의 칼춤 앞에 안전한 곳은 어디인가?

 

○ 일곱 가지 새똥 같은 이야기(김규나)

“네가 옳았다면 누가 알아주고 아니고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니 넌 그 일을 빨리 잊어버려야 해. 넌 벌써 몇 분째 그 불쾌했던 기억을 이야기하는데 네 소중한 인생을 소모하고 있잖아.”

: 내가 나를 알아주면 괜찮다. 그만큼 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으면 됐다.

 

○ 오르한 파묵의 바늘(공애린)

“진정한 문학의 출발을 책들로 둘러싸인 방에 자신을 감금하는 일이라고 말한 오르한 파묵. 그는 바늘로 우물을 파는 일을 묵묵히 실천했고, 결과적으로 달콤한 물을 마셨다.”

: 소크라테스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그랬단다. 매일 한 번씩 팔을 쭉 내뻗는 동작을 하라고. 제자들은 그 쉬운 것을 왜 못하겠냐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 제자들에게 물어보니 네댓 명의 제자만이 매일 그리 했다. 일 년이 지나고 물어보니 오로지 한 명의 제자만이 매일같이 동작을 행했다. 소크라테스가 그랬다. ‘옳거니. 너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구나!’ 그 제자는 플라톤이었다.

 

○ 상수리나무[櫟]를 찾아서(고형렬)

“나에게 쓸모 있는 것이 없기를 오랫동안 갈구해왔다(여구무소가용구의予求無所可用久矣).”

“나는 중얼거린다. 인간은 반성하는 존재다. 그 반성 속에서 문장과 사람의 길이 열리고 그리고 조용히 사라질 것을 복습하고 반성한다.”

: 채워야 비울 수 있고, 존재해야 사라질 수 있다. 또한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사라지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만이 자연 이치이다. 이 변증법적 관계의 첨단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물의 흐름이지 않을까? 갖고 싶은 욕심이 언제나 버려질지…….

 

○ 욕먹고 나면 더 잘하게 돼(권태현)

“지금도 나는 욕을 먹고 싶지 않다. 글에서도 그렇고 사는 일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감추는 바람에 욕을 안 먹는 것하고, 더 노력해서 욕먹는 일을 안 만드는 것하고는 다르다.”

: 논쟁을 즐겨, 아니 두려워하지 않던 시절에는 얼굴에 노기가 넘쳤다. 시간이 지나 다툴 일이 없으니 얼굴은 편해졌다는 소리를 들어도 마음은 불편했다. 이전의 일이던, 새로운 일이든 더 다툴 일은 만들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세상사에 다툴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세상과 거짓과 다투어도 편안한 얼굴로 다툴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다투지 않는 길이다.

 

 

3. 겨우 하는 다짐

남의 문장을 따라만 가도 반성할 일이 차고 넘친다. 걷는 걸음마다 업의 도장을 찍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조차 하다. 어쩌면 겨우 고백하는 내 반성에 대해 네 업이 고작 그뿐인 줄 아냐고 지적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앞선다.

 

나의 스승은 ‘읽고, 묵상하고 실행하라’하셨다. 어찌 읽을 것이 책뿐이랴? 스스로 자기 흔적을 돌아보지 못하고 반성하지 못하면 어찌 행할 수 있으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노만 커진스 지음)

‘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노만 커진스 지음)

2013. 7.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들어가는 말 : 몸과 마음은 따로 있지 않다.

원제가 ‘Anatomy of an illness(질병의 해부)’인 책은 의학적 훈련을 받은 적은 없지만 UCLA의대 교수로 재직한 노만 커진스의 경험적 심리치료학 저서(1979년)이다.

커진스는 1964년, 교원질 파괴로 인한 강직성 척추염으로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 질병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 수도 없었고, 고작 0.2%만이 완치되는 질병이었다. 커진스는 자신에 대해 치유 의지와 적절한 생리적 기능의 향상을 위한 실행에 착수하였고, 그로부터 몸과 마음의 상호 작용을 통한 자연의 치유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분명 현대의학 발전은 인류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전해가고 있다. 그러나 200년 남짓한 현대의학의 역사는 그 공과(功過)를 판단하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석기시대의 유전자를 지닌 인간의 신체에 비해 현대 사회의 물리화학적, 생물학적 질병요인은 얼마나 많아졌던가? 더욱이 의학과 결합된 자본의 탐욕과 미디어 광고는 강한 효과(!)의 약물로 우리를 유혹하지 않던가?

커진스의 결론은 모든 사람은 자기 질병과 장애의 회복에 책임이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치료에 있어 핵심은 ‘좋은 의사-환자 관계’라고 말한다. 즉, 환자의 책임은 건강한 생활양식을 실천하는 것 이상, 가능하다면 치료의 선택과 적용에 관한 책임을 의사와 함께 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의사는 이러한 환자의 선택에 적절한 정보와 생존의지에 대한 격려를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된 이 책은 수많은 문헌적 연구에도 불구하고 단일사례 연구이다. 그러므로 읽는 이는 자칫 동굴로 빠지지 않도록 걸음을 조심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이 상식의 동굴에서 나올 수 있는 징검다리일지 모를 일이다.

 

2. 신비로운 마음과 몸의 치유력

1) 환자가 본 질병의 해부

커진스는 1964년, 모스크바 출장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온 몸이 굳어버리는 원인모를 질병에 걸린다. 입원한 그에게 병원은 적절한 치료와 휴식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자신의 질병에 대해 주의 깊은 고민을 하던 그는 질병의 원인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아드레날린 고갈 상태에서 모스크바의 오염된 환경에 노출된 것으로 파악한다.

이제 그가 할 일은 긍정적인 정서 신호를 통해 신체에 긍정적 화학물질이 분비될 수 있도록 유머 책을 보고, 코미디를 보면서 배꼽 빠지게 웃는 것이다. 물론 화학적 치료 약물을 중단하고 아스코르빈산(비타민 C)의 복용으로 대체하였으며, 병원에서 빠져나왔음은 물론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의 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살려는 의지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치료적 특성을 가진 생리적 실체라는 것이다. 둘째, 의사의 가장 큰 의무는 환자의 살려는 의지와 환자가 신체 및 마음의 모든 자연적인 자원들을 질병과 싸우는데 동원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주는 것이다. 나의 주치의가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2) 신비한 위약 효과

커진스의 경험에 대해 ‘웃음과 아스코스빈산의 효과가 아니라 위약(가짜 약) 효과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커진스는 이를 인정하며 덧붙인다. ‘치료의 역사는 오히려 위약 효과의 역사이다.’

커진스는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용되던 가짜 약이 실제 약물치료와 같은 치료 효과와 환자의 생화학적 변화를 만들어 낸 연구 결과들을 제시한다. 그는 이것으로부터 ‘위약은 약물이라기보다 일정의 과정이다. 이 과정은 의사에 대한 환자의 믿음으로 보터 시작되고, 자신의 면역체계와 치유체계가 충분히 기능을 함으로써 과정이 더욱 확장’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커진스는 위약은 이점 못지않게 진짜 약과 같이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위약의 사용이 ‘좋은 의사-환자 관계’와 모순된다는 점을 제기하고, 근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신비화가 윤리적인지를 자문한다.

그는 ‘어떤 약물이든 환자의 살려고 하는 의지가 없다면 효험은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위약의 최고 가치는 위약 자체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어렵고도 신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3) 창조성과 장수

인간의 영원한 관심인 장수에 대해 하버드 의대 리이프 박사는 ‘장수란 간소하지만 균형이 잘 잡힌 식사, 정력적이고 지속적인 신체 활동, 죽을 때까지 지역사회의 일들에 애정을 가지고 관영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말한다.

커진스는 ‘긍정적인 정서와 창조성, 삶에의 의지’가 장수와 건강한 삶의 심리적 조건이 된다며 두 사람을 이야기한다.

돈 파블로는 90세를 앞두고 있는 노인으로 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에는 스스로 옷을 입기조차 어려워보였다. 돈 파블로는 아침 식사 이전임에도 굳은 몸을 이끌고 피아노로 가서 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하고, 그는 더 이상 구부정한 노인이 아니었다. 적절한 산책과 방문자들과의 유머 넘치는 대화를 나누는 파블로의 태도는 ‘낙천적이며 동정심이 많았고, 방문자들의 관심사에 빠르게 몰두하되 차분하며 진실하고 충실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늘 어떤 일에도 가장 좋은 약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여기에 더해 훌륭한 유머 감각을 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90세가 넘도록 아프리카 의료 활동을 했던 그의 일과는 회진과 목공, 편지와 음악 등 목적과 창조성을 지닌 활동이었다. 특히 유머는 그에게나 그의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는 젊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4) 통증은 궁극적인 적이 아니다.

커진스는 일반의 불안과 다르게 통증의 약 90%는 자기소멸적 성질이며, ‘많은 형태의 통증들이 아무런 신체적 원인이 없으며,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단지 긴장, 스트레스, 적개심의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통증에 대한 그의 결론은 ‘자신의 신체의 통합성을 방어할 수 있게 하는 경고체계이자 방어기제’이므로 개인이 스스로 통증에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통증에 대한 무지는 진통제의 남용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제약회사의 마케팅 활동의 결합과 교육의 부재에 기인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커진스는 아스피린의 사용은 혈액의 손실과 세포 결합조직의 손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예로 제시한다.

커진스는 1947년부터 인도 벨로레에서 나병 환자를 돌본 폴 브랜드의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나병 환자에 대한 일반의 상식은 피부병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브랜드의 연구는 나병이 신경 말단부를 괴사하고 이로 인해 나병환자가 통증한계를 느끼지 못하여서 신체의 손상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일하던 작업장은 중량의 부품과 장비를 손으로 다루어야 하는 일이었다. 나 역시도 10년이 지나면서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동안 허리보호대가 지급되어 허리 통증이 있는 동료들은 이를 차고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허리의 통증한계를 늘려 장기적으로 허리를 손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계를 인지한다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다.

 

5) 전인적 건강과 치유

커진스는 전인적 건강 운동 중 일부가 의학의 과학적 발전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환자와 의사 사이의 장막을 거두고 질병의 치료만이 아닌 예방을 위한 협력과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에 의하면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자연치유력을 이해하고, 치료에 있어 전인적 접근을 시도한 최고의 의사였다.

약물의 놀라운 효력만큼이나 그 부작용은 사람들을 전인적 의학으로 이끌었고, 의료 행위 외에 영양과 좋은 의사-환자 관계, 정신(마음)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 왔다.

그러나 전형적인 현대 의학과 전인적 의학의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커진스의 주장이다. 환자의 전인적 요구가 의사의 과학적 접근을 불신해서도 안 되는 것이며, 의사의 전문적 지식이 환자 자신의 자기 질환에 대한 관심을 제한해서도 안 된다는 의미이다.

 

6) 삼천 명의 의사에게 얻은 교훈

커진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많은 의사들이 ‘의사와 환자의 동반자 관계’를 지지해주는 것에 대해 고무되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의사들이 ‘의사의 주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가 질병의 치료에서 환자의 마음과 몸을 움직여 환자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작동시키는데 있다’고 여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커진스는 건강한 치료를 위한 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그것은 약물이 아닌 영양적 균형, 환자와 의사의 따뜻한 관계, 긍정적인 정서이다. 그는 중환자실의 첨단 장비가 의료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환자 손에 얹는 의사의 확신에 찬 위로만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3. 맺는 말 : 건강한 관계가 내 몸과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

이 책을 다분히 건강심리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몸과 마음의 상관성이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연구와 성과의 축적도 의학적 범위에서 다루어져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커진스의 결론 세 가지, 영양과 좋은 의사-환자 관계 그리고 긍정적인 정서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의사-환자 관계가 많이 와 닿는다. 질병의 치료에 있어 환자 자신의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는 것은 의사의기 때문이다.

한양대학병원에 가면 류마티스 병원이 따로 있다. 그만큼 한양대병원에는 류마티스 환자들도 많고, 잘 고치는 명의라고 소문이 나있다. 이 병원에 진료를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꽤 오래 전에 나는 류마티스과에 근무하는 아는 간호사에게 무슨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 선배의 대답은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질환 특성상 노인들이 많이 오는데 담당 의사가 환자마다 그 신세 한탄이며, 아픈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 병원의 특별한 비법은 이것에 있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들어주고, 그들을 나을 수 있다고 확신에 찬 지지를 해주는 것이 그 비법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위독하실 때의 일이다.

1년에 예닐곱 번을 응급실로 달려갔었다. 거의 같은 병원 응급실이라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갈 적마다 느끼는 것은 차갑고 낯선 공기였다. 위중한 상태의 부모님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중환자실의 첨단 장비들로 둘러 싸여도 단 한번 30분의 면회만 허락되는 환경이 당신들에게는 편안함을 제공해주었을까?

“죽음은 삶의 궁극적인 비극이 아니다. 궁극적인 비극은 비인간화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정신적 위안으로부터 분리되고, 남은 삶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희망도 없이 소외된 불모의 땅에서 죽어가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