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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20
    영화와 춤극
    랄라^^V

영화와 춤극

 

내가 가진 정보가 어느 정도 사실일까...

남들이 사실이라고 하고, 사실이란 얘기를 듣고, 인터넷에서 보고, 가장 믿음직 스럽게 TV에서 까지 확인해버리면 여지 없이 100% 사실로 믿어버리는 얇은 귀를 가진 나 같은 사람.

때론 소문도 사실로 둔갑해 버린다.. 얇은 귀만 탓할 순 없겠지...


최근에 나의 역사적 지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내가 뭐 좀 알거 같은 느낌이 드는지, 소감도 물어보고, 그게 사실이냐고도 묻는데..글쎄 ..난 뭐 별로 할 말이 많지 않다. 가진 지식도 미천하거니와..

심지어 그냥 내 느낌을 너무 솔직히 얘기하면 상대방이 당황하기도 한다..

딱히 정리되지 않는 느낌만이 내게 남아있기 때문인 거 같다..

2007년의 하반기를 넘어가면서 왠지 나사 하나 빠진 듯, 시대적 감흥과 사명을 잃은 나의 좌표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다.

여전히 미숙한 나의 말투 때문일 수도 있고..

술독에 빠진 다음날 술 냄새 풀풀 풍기며 ‘화려한 휴가’를 봤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연락온 후배녀석의 배려로 ‘꽃은 피어 웃고 있고’를 봤다. ‘화려한 휴가’는 논쟁이 불붙은 영화이고,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춤극이다. 사실 난 춤극이 처음이었다.

 



‘화려한 휴가’는 워낙 유명하니까.

술기운에 감상적인 호르몬이 발동했는지 몰라도 영화 내내 그렇게 눈물을 닦아냈다. 사무실에서 ‘나 화려한 휴가 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가 ‘어떻게 그 영화를 보고 그럴 수 있냐’는 응답을 받기도 했다. 사실 그런 반응은 적지 않았다. 왠지 운동권은 그 영화를 보고 울면 안될 것 처럼..머슥하게..

그렇지만 난 정말 슬프게 그 영화를 봤다.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그랬나. 정말 덜 깬 술 탓인가..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않았기 때문에 난 그 자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봤던 거 같기도 하다.


그냥 가족을 잃은,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도청을 지켰을 그밤에 느꼈을 그들의 무서움과 답답함, 살아남은 아니 후대의 사람으로 그 원흉과 여전히 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짐. 그냥 영화 내내 모든 것이 서러웠다.


항쟁의 주체였던 ‘열사 윤상원’이 아니라 ‘퇴역 공수부대 대령’이 도청을 마지막까지 사수했고, 배신을 때린 것으로 알고 있는 시민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나오는, 천주교 신부가 마지막 도청 사수 하러 오는 모습을 보면서. 사실과 소설이 넘나드는 사이, 역사적 사실과 픽션의 영화가 뒤엉켜 버린다. 사실은 지워지고 픽션만 가슴에 담아서 난 그렇게 슬펐나 보다.


‘꽃은 피어 웃고 있고’는 일제 시대를 살아간 여성들, 일본군 위안부(이 표현도 적절치 않다고 하지만 달리 뭐라 적어야 할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다) 피해자들에 관한 춤극이다. 보러 가기 전에는 ‘춤’으로 뭐가 제대로 이해가 될까 싶었는데 보는 내내 그들 손짓 하나, 고개 떨림 하나 하나에  내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음향에 심장이 떨리고, '엄마'라는 외침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관객들은 공연자들의 지인도 많았지만, 관련 단체 활동가나 할머니들도 꽤나 많았다. 행사 소개서에 보면 ‘일제 36년 압제와 굴욕의 질곡 속에 희생양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풀기 위한 계기로, 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는 한국 춤을 통해 역사를 재인식하고 몸짓 속에서 민족의 뿌리의식을 되살리고자 마련되었다’는 요지의 소개가 있다.

글쎄 민족의 뿌리까지는 모르겠고...

안타깝게 보내는 조선 청년들의 머뭇거림도 모르겠고..

근데 그들의 몸부림을 보고 있자니 한 없이 마음이 꺼져 들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오셨습니까...

그런 세월 어떻게 살아 지금 그렇게 싸우고 있습니까.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리랑’이 수십번 나오고, 과거의 영상이 수도 없이 나오고, 피해자들의 육성과 영상, 부서지듯 이어지는 춤사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워낙 이런 것들에 취미가 없는지라. 즉자적인 감정 반응에 약한거 같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당황 해 더 눈을 크게 뜬다. 

 

'화려한 휴가‘를 보고난 누군가 내게 감상평을 묻는다. 


“정말 애국가가 울릴 때 총을 쐈단 말이야?”캬아.. "비극적인 세상이야.."

"음..  글쎄...”

"퇴역 공수부대 대장? 대령?이 정말 현장에 있었어?"

"음... "

‘꽃은 피어 웃고 있고’의 마지막 장면은 일본 천왕이 사과하는 장면이다.

“정말 사과했나?”

“글쎄....”

 

내 모든 답은 ‘글쎄’였다.

도대체 제대로 아는 사실이 하나도 없다.

알 수 없을 수도 있는데..뭔가를 뒤집어 까고 싶기도 하고, 명쾌하게 정리하고 싶기도 한데 뭔가의 끈적한 줄에 메여 있는 느낌이랄까.

 

내 뒤 통수를 잡는 건.

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무지함이 아니었다.

두 작품을 보고 난 내 느낌은 사실..

내가 그 시대에 살지 않아서 다행이다. 아니 설령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르겠지만 ..

지금의 내 삶의 스토리에 군대가 없고, 총을 들고 나서지 않아도 되고, 사막에서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니 ..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위안 뿐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나와 동떨어진 제 3자의 쑈 처럼 보였던 게다.

감정 이입하고, 몰입해서 눈물이나거나 슬프고 안타까운게 아니었던게다....

병에 걸린 거 같다..이건 아닌데.. 싶은 병..

요즘은 자판만 두드려서 그러나

나이 먹어서 그런가

눈으로 읽히는 그 비극의 대상에 내 얼굴이 끼어 있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드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나 또한 싸우고 있는데..

왠지 그게 꽤나 멀리 있는 거 같고..

난 제 3자의 관객이 돼 있는 느낌이다..

내가 작품을 보고 운 것은 작품에 대한 감동 때문이 아니라서 미안하기도 하고..

냉철한 평가도 못하고 ..

그저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내 모습이 땅 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창피하기도 하고...

기억해야 할 것도 많고 넘치는 것도 많다.

나 같은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은 그런 것들은

민중의 시각으로 기억하고 기록하는 역할일 거라고.... 

이제는 무게감을 짐작하고만 있을 뿐이지만..

마치 ‘화려한 휴가’에서 윤상원 열사를 과거의 책속에서 찾는다면, 

최근 세상을 달리한 고 윤한봉 선생을 기억해야 하는 것 처럼. 

어여 나사를 조여야 할 텐데..

스물스물 나를 물들이는 것들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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