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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26
    2007네팔(7)-안나푸르나 트레킹(2)
    랄라^^V
  2. 2007/08/25
    2007네팔(6)-안나푸르나 트레킹(1)
    랄라^^V
  3. 2007/03/01
    2007네팔(5)-포카라:sarangkot(1)
    랄라^^V
  4. 2007/03/01
    2007네팔(4)-포카라
    랄라^^V
  5. 2007/03/01
    2007네팔(3)-카트만두
    랄라^^V
  6. 2007/03/01
    2007네팔(2)
    랄라^^V
  7. 2007/02/17
    뭄바이 행 준비중
    랄라^^V
  8. 2007/02/08
    인도 우다이쁘루(5)
    랄라^^V
  9. 2007/01/24
    2007네팔(1)(1)
    랄라^^V
  10. 2005/01/08
    2003년 제주도 하이킹 2(1)
    랄라^^V

2007네팔(7)-안나푸르나 트레킹(2)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잘 걷는다. 두 다리가 유독 튼튼한 이유도 있다. 가이드 디카는 나에게 'strong leg'을 가졌다고 칭찬할 만큼 잘 걸어다녔다. 산 이라서 좋았고, 여유있게 이동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이것 저것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많아서 좋았다. 숨 틔임 이랄까.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사실 눈빨 날리는 곳에 가지 않고서는 뒷동네 등산하는 기분이다. 이정표가 뚜렷한 것도 아니고 한국의 등산로 처럼 아스팔트가 깔려 있는 것도아니고 .. 네팔 고산족이 사는 곳을 지나치며 이동하고, 코스가 어렵지도 않다. 상황에 따라 산 하나 전체가 증계이거나, s 라인으로 쭉 파진 길 때문에 바들바들 떨어야(고소공포증이 있는 경우) 하기도 하고, 간당간당한 줄 다리 건너는 스릴도 있지만 내가 간 코스까지는 그냥 뒷동산과 같은 동선이었다.

 

-> 산 밑에 있기에 일출을 볼 순 없지만 해가 떠오르면서 생기는 산 그림자는 볼 수 있다. 산..정말 좋다.

 

 

-> 산에 있는 로지나 고산족들의 생필품은 이 녀석들이 책임지고 있다. 목에는 종 달고, 일렬로 걸어다니는 당나귀들. 트레킹 하다 보면 하루에 두세번은 만난다. 이녀석들은 지구력은 있지만 속도가 늦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면 먼져 보내주거나 아예 앞질러 가야한다. 먼져 보내주면 당나귀 똥을 계속 밟으면서 가게 되는 단점이 있다.

 

나야풀에서 시작했지만 둘째날은 고레파니(Ggorepani)에서 묵었다. 고레파니 정도 올라오니 사실 공기가 달라짐이 느껴졌다. 사실 첫 날은 땀이 나서 반팔입고 올라왔는데 이제 부터는 긴팔입고 다녀야 할 만큼 더워도 일상의 공기가 차졌다.



고레파니에서 새벽에 일어나서 이동하면 푼힐(punhill) 전망대에서 멋진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왕복 5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아직은 낮은 수위였지만 일행중에 고산병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이 생겨서 느릿느릿한 이동은 더욱 속도를 늦췄다. 고산병은 해발 2500m 이상이 돼 산소가 부족해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하는데 어지럼증이나 구토나 소화불량 두통등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인덕'이가 고산병 소화불량과 어지러움의 고산병 증세를 나타내니 스님들이 평소 들고 다니는 침을 활용해 손을 따기 시작했다. 로지에서 난로에 옹기 종기 앉아서 10손가락에 10 발가락까지.. 구경하던 외국인 뭐하는거냐 물어 보고 .. 물론 나 같은 사람은 고산병 '고'짜의 증세도 없이 씩씩하게 잘 다녔다.

 

이동하던 중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같이 왔던 녀석들을 만났다. 푼힐까지만 짧고 굵게 갔다올 계획이라던 녀석들은 힘들어서 죽으려고 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 내 첫인사말은 "너네 살아있었구나" 였다. ㅋㅋ 이 녀석들은 심지어 인도 바라나시 길거리에서도 만난다.

 

 

 

-> 어딘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 로지를 배경으로 찍어본 사진.

 

고레파니 숙소에서는 가무의 판이 벌어졌다. 네팔 사람들 특히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음주가 없이도 가무를 즐기는 듯 했다. 호기심 쟁이 '진경' 스님이 벽에 걸린 악기를 건드렸다가 시작된 노래 공연. 네팔 노래도 처음 들었거니와 육성으로 듣기는 정말 처음이었고, 그 노래에 맞춰 다들 춤도 추고..

산에 올라오는 동안 흘리는 땀만큼이나 흥겨운 놀이다.

 

 

-> 같이 다닌 일행 중 한 명과 함께. 난 트레킹을 할 계획도 없었는데 배낭 여행을 준비하면서 등산복과 등산화를 챙겨왔다.. ㅋㅋ 선견지명이랄까...^^ 모자를 쓰고 있는 이유는 추워서가 아니라 햇볕이 너무 강했기 때문..

 

-> 동선 자체가 네팔 사람들이 사는 집을 지나갈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지나가다보면 아이들을 많이 만난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알아서들 V자를 그린다. 워낙 한국인 등산객들도 많고 사진을 같이 찍는 경우도 많아서 아이들이 매우 반응이 좋다. 나중에 만난 네팔 친구 '부릉'은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렛을 주지 말라는 말을 했다. 여행객들은 하나 둘 주는 거지만 여기 아이들이 치과를 가기 힘들거니와 양치도 꼬박꼬박 챙기기 어려워 이빨이 썩는다는 거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으니 주지 말라는 경고.

 

-> 이런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백지가 돼 버리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얼굴에 베어나와 버린다.

 

=>트레킹을 하면서 고지를 향해 올라갈 수록 모든 음식, 물값이 비싸진다. 손님이 일상적으로 있는게 아니기 떄문에 사실 점심 식사 한번을 하려 해도 한시간 이상이 걸린다. 그래서 보통 트레킹 하는 사람들은 식방에 쨈을 챙겨와서 점심은 짜이와 함께 간단히 먹고 이동하고 아침 저녁을 든든하게 먹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 일행들은 3끼 모두 천천히 밥 다 챙겨 먹었다. 난 아침과 저녁은 무조건 라이스로 먹고, 공갈빵 처럼 생긴 네팔빵을 점심으로 많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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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6)-안나푸르나 트레킹

다시 여행일지를 펴 들고 ^^;

가물가물한 기억의 끝을 정리해 볼까나..

이렇게 더운 날씨에 더욱 그리워 지는 네팔..

그립다..

지금 한 참 예쁠텐데..

 

네팔의 포카라에는 한국식당이 많다. 결국 현지에서 일행을 구하지 못했던 나는 혼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기로 결심했다. 가이드 겸 포터 한 명을 구하고, 두툼한 오리털 침낭을 빌리고, 모자와 장갑을 구입하고 내일의 트레킹을 위해 늦으막히 저녁을 먹으며 힘다지기를 하고 있었다.

 

네팔에서 천금같은 삼겹살을 먹는 것은 너무 호사이고..

그래도 보신을 해야 겠기에 '한국 사랑'이라는 한국음식 전용 식당에 가서 닭도리탕을 시켜먹었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손님도 없고 한적한 식당에서 혼자 열심히 닭다리 뜯으며 다음날 부터 시작한 트레킹을 상상했다. '혼자여도 괜찮아' 주문을 외우며 열심히 먹고 있던 찰라 '삼겹살을 먹자'며 한국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한국 사람들은 음.. 우르르 몰려 다닌다)

 

포카라에서 고기 먹는 사람들은 십중 팔구 산에 올라갈 계획이 있거나, 아님 오늘 산에서 내려 온 사람들이다. 그들 얘기에는 관심도 없거니와 난 먹는데 완전 몰입한 상태였다.

 

'한국사랑'에서 먹은 닭도리탕. 네팔에서 이런 음식을 만난다는 건 .. 정말.. ㅡㅜ

-> 정말 양호하지 않은가..네팔에서 먹는 닭도리탕.. 한국과 맛이 똑같았다.  

 

갑자기 일행중 한명이 내 옆 벽에 걸린 지도를 향해 걸어왔다.

"이렇게 가는 일정이라니까"라며 지도를 보고 일행들과 얘기를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한테 말을 시킨다..

 

"트레킹하셨나봐요.. 고기 드시게.. 어떠셨어요?"

"아..(먹던 고기가 걸려서..) .. 아뇨 .. 내일 가려구요.."

"설마.. 혼자가세요?"

"네 .. 그럴려구요..일행을 구하다가 못구했거든요..."

"아? 그래요.. 잘됐다.. 우리 일행 구하고 있었는데.. 일정 맞으면 저희랑 같이가요.."

 

무슨 드라마 처럼 혼자 몸보신하다가 일행들을 만나게 됐다.

졸라 기뻐하며 포터 예약 취소하고, 이들과 어울려 짐도 다시 챙기고 ..

날 버리고 애인찾아 떠난 친구한테 메일 보내고 그 밤이 너무 짧았다.

   

그렇게해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같이 하게 된 일행은 1년 동안 트레킹을 준비해 왔다는 나이 지긋한 선생님 한 분, 유학을 앞두고 추억여행을 하고 있는 커플 그리고 불교 성지들을 여행하고 있는 스님 2분.




일지를 보니 07년 1월 12일 부터 17일까지 안나푸르나(annapurna) 트레킹을 했다.

트레킹을 하려면 우선 공식적으로 네팔 정부로 부터 허가, 퍼밋(permit)을 받아야 한다.

절차나 요건이 까다롭지 않다. 중간 에이전시를 통하면 10~20Nrs의 수수료를 받지만 직접 가서 신청서 작성해서 제출하면 수수료는 들지 않는다. 사진과 퍼밋 요금 2,000Nrs를 신청서와 함께 작성해서 제출하면 10분만에 나온다.  난 출발당일 택시 타고 가서 받아서 출발했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트레킹 하는 입구에서는 마오이스트들이 트레킹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요금을 받는다. 이에 대한 관광객들의 반발이 적지 않는데,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마오이스트들과 정부가 합의해서 입장료를 걷을 수 있게 했다는 것과, 이 돈이 주요하게 마오이스트들의 활동 자금으로 쓰인다고 설명을.. 음.. 하루에 100Nrs로 책정해서 트레킹 일정 동안의 요금을 받는데 적당한 선에서 합의를 하기도 한다.

 

-> 큰 가망을 짊어진 사람이 우리 가이드 '디카' . 입장료 협상 중인 셈.  허술하게 보이지만 뒤에 앉은 사람들이 마오이스트들. 레닌과 마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일정을 짜기 나름인데 우리는 나야풀(nayapul)에서 시작해, 고레파니, 푼힐, 촘롱(chhomrong),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로 이동하는 동선으로 10일+알파의 일정으로 이동하는 동선이었다. 워낙 구성 멤버들이 무리하지 말자는 주의여서 일정이 빠뜻한 나 같은 사람만 조바심 나는 상황이었다.

 

12일 오전 9시 부터 트레킹을 히작하려 했지만, 늘어지고 늘어져 점심 때 쯤에나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는 버스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택시는 정액인데 음.. 가격이 잘 기억나지 않고, 난 할당된 200 Nrs를 냈던 기록만 남았다.

 

 

 

사랑곶 사전 탐방을 잘한 셈이다. 안나푸르나의 초입은 마오이스트들만 지나쳐 오면 화살표 하나 없이 그냥 산이다. 로지(lodge)들이 곳곳에 있다고 하지만, 나야풀 초입의 상가들을 지나쳐 오면 그 뒤로는 산과 들과 물만 있을 뿐 어디가 어딘지 전혀 알 수가 없게 돼 있다. 혼자 다니는 외국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가이드나 포터가 없이는 이동하기 쉽지 않게 돼 있다.

 

짜이 한잔을 마시고 시작한 트레킹. 첫날은 나야풀에서 시작해 비레탄티, 힐레를 넘어 티르케둥자와 울렐리(ulleri) 중간에서 일정을 마무리 했다. 늦게 시작했기도 하지만, 산이라 해가 일찍 지기 때문에 3시에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 했다. 거짓말 처럼 4시 부터는 해가 지기 시작하는데.. 정말 놀라울 뿐이었다.

 

밤은 일찍오고 할일은 없고..

모여서 오손 도손 통성명 하며 얘기도 들으며 ..

 

시트콤 같은 스님들의 불가 생활얘기와 왜 트레킹을 하게 됐는지.. 그 이전 여행 코스는 뭐 였는지.. 그들은 이미 서로를 알고 있었지만 제일 늦게 합류한 나에게는 그들의 정보가 없으니..마냥 들으면서 웃고 떠들고.. (이날 사람들은 나에게 반드시 '룸비니'를 가볼 것을 강권했다. 결국 막판에 난 팔랑귀가 돼 급 하산하게 된다 )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 난 트레킹 내내 스님들의 신념과 의지에 감동했다. 정말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낀 날이다.

 

밤이 되니 산의 추위가 느껴졌다.

말로만 듣던 그 추위.. 아직은 산 밑이라 경미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추위에 약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정도였다.  

보온 물병도, 보온통도 가져오지 않은 나는 hot water만 시켜 먹을 뿐이다.

 

다행이 내 얇은 침낭 1개와 빌려온 오리털 침낭 1개로 밤의 추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최후의 보루로 카트만두에서 나의 등산 욕구를 자극 시킨 녀석들이 준 쑥 보온 팩을 남겨 뒀다.  

'화상주의'라고 경고를 할 만큼 효과가 뛰어나다고 하니 정말 너무 추운 극적인 그 날 난 이 팩을 쓰리라 마음을 먹으며..

 

정말 일찍 잠이 들었다. 해가 뜨는대로 움직여야 하니..

 

=>트레킹 멤버는 6명이지만 스님들은 각자의 짐을 직접 들었다. 그러니 4명의 인원이 한명의 포터와 한명의 가이드와 동행한 셈이다. 가이드 '디카'는 포터로 자신의 부인 '머누'를 데리고 왔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맡고 있다고 말했다. 머누는 사탕과 초콜렛을 나눠 먹을 때는 아이들이 생각난다는 말을 영어로 하며 따로 챙기기도 했다.  여행 내내 이들의 가족, 결혼, 미래의 꿈 등 많은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 트레킹 할 때 꼭 챙겨야 할 것. 한국 사람들은 꼭 스틱 챙기는데,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안나푸르나 일정에 스틱은 필수품은 아닌거 같다. 북한산 등반보다 더 쉬운 코스여서.. 대신 꼭 필요한 것은 보온병이나 보온통. 추워지면 난로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목이 마를때는 찬 물보다 따뜻한 물이 더 좋다는..  그리고 물수건과 따뜻한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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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5)-포카라:sarangkot

본격적인 트레킹을 시작하기에 앞서 테스트에 들어갔다. 포카라에서 가장 가까운 전망대인 사랑곷(sarangkot) 전망대를 가기로 한 것. Prano Bazar 방면으로 가거나, 레이크 사이드 방면 두 길 모두 사랑곷으로 통한다. 난 레이크 사이드 방면에서 올라가기로 하고 오전 8시 길에 나섰다.

 

자전거를 빌리지 않았기 떄문에 숙소에서 부터 걸어서 나 선 것. 다행히 난 여행을 준비하며 등산화를 신고 출발을 했기 때문에 좀더 용이한 상황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폐와호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보고,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네팔 사람들도 만나고, 이미 자전거 타고 관광에 나선 외국인들도 만나고.. 그 무엇보다 호수의 풍경이 정말 최고 였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가이드 북에는 '레이크 사이드 방면'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만 나와 있을 뿐 그외 설명이 없었던 것.

 

우선 가보지 뭐..

 

이 무모한 시작이 이날 골반 뼈가 아플 만큼 걸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우선 레이크 사이드 방면에서 사랑곷으로 향하는 공식적은 입구를 못찾았던 것. 여기 저기 물어도 손가락만 가리킬 뿐 결국 올라가는 입구를 찾지 못하고 현지인들이 오고가는 능선을 타기 시작했다.

 

 



능선이라 함이 바로 이런 밭과 밭 사이를 이어 놓은 길. 그리고 전망대 이기 떄문에 45도 각도로 이어진 능선은 가히 공포스러운 수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 같은 경우 몸이 뒤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감과 계속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산에서 만난 아이들은 낯선이를 반가워 하면서도 거짓말로 길을 알려주거나, 엉뚱한 길을 알려주며 마구 웃기도 한다. 아이들이 반갑기도 하지만 정말 이런 상황에서는 괘씸하기 이를데 없다는..

 

 

결굴 길을 찾다가 마을로 들어가게 된 상황. 마을의 모습도 좋고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좋다. 가끔 쉬면서 보이는 풍경도 좋고 길만 제대로 찾을 수 있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더 즐거웠을 시간..

 

어찌나 헤멨는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기어갔다 뛰어갔다...심지어는 마을 아낙네들 목욕하는 곳까지 멋모르고 갔다가 서로 당혹해 하는 사건아닌 사건도..

 

공사중인 길을 넘어 기다시피해 올라란 곳에서 발견한 사랑곷 푯말이 그리 반가울 수 없다. 전망대 밑에는 음료수나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고, 이 곳에서 일출을 보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숙받도 가능하다. 계란볶음밥이 80Nrs 정도. 사랑곳 전망대에서도 입장료를 받는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30Nrs 정도 였던 거 같다.

 

 

전망대의 정상은 다소 황량하다. 무슨 군부대에 온 것 처럼 철조망이 설치되 있고, 벙커 같은 곳들도 있고, 군인들도 있다. 그렇지만 내려다 보는 경치는 죽여 준다는 거.. 한쪽으로는 폐와호수의 경치가 한 눈에 다 내려다 보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트레킹의 예정지인 산의 경치가 그대로 보인다. 다행이 날씨가 좋아서 .... 흘린 땅방울과 쏟아 버린 욕들에 비해 엄청 감동을 먹었다는 것.

 

-> 사랑곷에서 바라본 폐와호수 경치.. 사진기가 꼬져서 그렇지 정말 경치가.. 구름과 그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전경과..

 

 

특히 사랑곷 주변에서는 헹글라이더(맞나?)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보 훈련만 받으면 혼자서도 탈 수 있도록 해 준다고. 타봤다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한번 타는데 70Nrs(싼 편이라고)정도 드는데 바람도 많이 불고 경치도 좋아서 정말 좋은데, 헹글라이더 탈때는 반드시 귀마게 하라고..정말 귀가 시려워서 정신이 없다고 ..

 

전망대에서 헹글라이더 출발하는 사람들과 하늘에서 날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덩달아 덩실 덩실이다. 심지어는 근처의 새(난, 매로 추정하는데)가 이들과 같이 나는 모습이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사랑곷은 바람이 많이 불고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많이 즐긴다고. 한 번 쯤 시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여행사에서도 추천해 주고, 숙소에서도 쉽게 같이 하는 멤버들을 구할 수 있다. 혼자 타기 정 무서우면 가이드와 같이 탈 수도 있다고 한다.

 

 

사랑곷 한편에서는 히말라야의 정경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다. 가이드북의 사진에 참고해서 이름을 끼어 맞춰 보면 오른 쪽 맨 끝이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 옆 이 안나푸르너 1. 가운데 빼쪽한 산이 마차푸츠레,  옆의 둥근 산봉우리가 안나 푸르너 3 등등의 순이다. 정말 사진기가 거시기 해서 그런데 정말 한눈에 다 보인다.

 

 

그리고 올드마켓(Prano Bazar) 방면으로 쉽게 내려왔다. 이 길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돼 있어서 도로가 잘 나 있는데 이쪽 방면은 히말라야 풍경을 구경하면서 오를 수 있는 코스다. 400-500Nrs 주면 택시를 하루 대절해서 포카라에서 올드 마켓 방면으로 해서 사랑곷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레이크 사이드 방면에서 올라가는 것은 네팔 고산족들의 삶을 미리 보는, 견학하는 즐거움이 있고 올드 마켓 방면에는 히말라야 풍경을 계속 감상하며 오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포카라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의 다수는 올드마켓 방면에서 올랐다가 1박 하면서 일몰과 일출을 감상하고 레이크 사이드 방면으로 걸어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내가 이런 방법을 알았다면 나 엮시도 그 방법을 택했을 것이다.

 

레이크 사이드에서 멋모르고 사랑곷 올라가는 방법은 택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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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4)-포카라

사람 복을 타고 났다. 정말 기가 막히게 사람들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니..

카트만두에서 그랬다. 절박하게 찾아갔던 숙소에, 유일하게 남은 침대 한켠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과 추억을 만들고 ..그들이 그려준 지도와 설명서 그리고 가이드북을 손에 쥐고 혼자만의 여정을 시작했다.

 

카트만두->포카라

 

포카라는 호반의 도시다. 폐와호수를 중심으로 한적한 쉼터가 있다. 아침이면 물안개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호수를 둘러싼 산의 정경 또한 죽여준다.

 

 

 



특히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하는 방법은 보통 오전 7시에 출발하는 버스. 6-7시간 정도 소요되기 떄문에 포카라에는 오후에 도착하게 된다. 보통은 직접 스텐드에서 효부 처서 티켓을 살 수도 있다. 6시 30분 부터 tourist bus stand 에는 네팔 각지로 흩어지는 버스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스텐드에서 얼굴을 비추면 곳곳에서 차장 격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행선지를 묻는다. 거기서 직접 버스 티켓을 사도 된다. 나 같은 경우는 스텐드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 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300 Nrs)  

 

이동하는 버스는 무조건 다 채워서 출발하기 떄문에 운전석 옆좌석(좌측 1인석)에 앉게 될 경우 좋은 전망을 통째로 구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많은 네팔인들 틈에서 끼어서 가야할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대신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는 반드시 운전석 방향의 차창 쪽으로 앉기를 권한다. 어찌나 경치가 감동적인지..정말..정말..눈물이 날 정도로..졸다말고 깜짝 놀라서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찾을 정도다. 대신 버스는 아무리 tourist bus 라 해도 엉성한 쿠션의 직각 의자 이기 때문에 엉덩이와 허리에 상당한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도 ...

 

내가 출발할 당시 아직 파업(그들 표현대로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이 진행중이었기 때문에 거리에 한 시간 가량 차량이 멈춰 선 것을 빼면

-> 가는 길에 버스가 멈춰 섰다. 길 따라서 길게.. 누구하나 짜증내거나 화내는 사람이 없다. 오직 나만이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는 듯. 외국인들은 흥미 진진해 하고, 사람들은 구경 나서듯 버스에서 내려 이곳 저곳을 살피고 다닌다. 아는 사람도 만나고, 미처 못먹고 나온 아침을 챙겨 먹는 사람도 있고.. 주변 식당만 완전 노 난 상황. 1시간 가량 이렇게 시간을 보낸 후 모든 차량들이 출발을 알리는 경적을 울리고 서서히 움직이면 흩어졌던 사람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와 환한 얼굴로 버스에 올라탄다. 나름 인상적이었다..

 

포카라에서는 특별히 한 일이 없다. 카트만두에서 부탁받은 메세지들을 전하러 다니고, 안나푸르나 트레킹 참여를 위해 여행사를 통해 준비를 하고, 호수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티벹 아주머니들이 접근하며 잽싸게 피하고,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거나 책을을 읽거나 정도.. 어쨋든 포카라에서는 트래킹 준비가 핵심이었다.

 

-> 포카라 레이크 사이드의 지도. 버스에서 내린 후 그냥도 이동할 수 있지만 길을 모르는 관계로 택시 타고 이동. 레이크 사이드까지 80Nrs. 포카라의 경우 한국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포카라 짱' 게스트 하우스와 '엔젤 호텔'에 한국 사람들이 많이 머물고 있다. 포카라 짱에 머물 경우 레이크 사이드 입구에 있는 '푸마 에이전시'를 통해 트레킹 계획을 세우게 되고, 엔젤 호텔에 머물 경우 호텔 자체에서 사람을 구해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폐와 호수 주변에는 배를 타고 힌두 사원에 갈 수도 있고, 자전거를 빌려서 (하루 50Nrs) 호수 주변 및 동네를 구경 다녀도 좋다. 사실 전망대에 많은 사람들이 호수 구경 가지만, 티벹 아주머니들이 인생사를 풀면서 악세사리 구입을 강요하기 때문에 혼자 즐기기에는 만만치 않은 장소이다. 오히려 사랑kot 방면으로 좀더 들어가면 시골의 풍경과 호수가 어우러져 한적하게 쉬운 장소들이 많이 나온다. 그쪽 방면에는 '천지' 등 한국어로 간판이 써있는 찻집도 많다.

 

포카라는 특히 인터넷 가격이 비싸다. 카트만두에서 1시간에 30Nrs 음에도 불구하고 포카라는 모든 인터넷 가격이 담합된 듯 99Nrs로 통일 돼 있다. 그나마 한국사랑 식당 밑에 있는 '하나로 PC방' 그나마 속도도 젤 난 편이라고..

 

포카라에는 한국 식당이 꽤 많다. 그리고 맛도 정말 정말 지대로다. 우선은 가장 큰 규모와 한국인 아주머니가 직접 요리를 한다는 장점이 두드러진 서울 뚝배기. 현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레이크 사이드에서 전망대 반대 편으로 퍼밋 받는, 사무소 가는 길에 있다. 삼겹살 1인분에 300 Nrs로 눈물나는 가격이지만 소주에 삼겹살, 김치 를 고려한다면 비용이 아깝지 않을 만큼이다.(난 트레킹 마친 저녁에 눈물의 소주를 마셨다..ㅡㅡ;)

 

그리고 서울 뚝배기에서 전망대 쪽으로 오는 길에는 식당이 많은데 특히 '홍금보 식당'의 자장면이 지대. 그리고 서울 뚝배기와 홍금보 식당 중간길에 있는 '소비따네' 식당은 네팔 아주머니가 한국인에게 음식을 전수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 정말 맛있다. 여기서는 김치를 팔기도 하는데 같이 트레킹 한 사람이 산에 김치 싸 들고 와서 어찌나 고마웠던지..한국에서 김치나 고추장 소중한지 모르지만 외국나가면 한 젓가락에 눈물 콧물 다 뺄 지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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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3)-카트만두

카트만두의 여행자 지구인 타멜 지구의 의미는

 

T - to

H - homely

A - Atmosphere &

M - more

E - enjoyable

L - livibg

 

 

 

태국의 카오산 로드와 비교는 안되지만, 그에 준하게 여행자들을 위핸 공간들이 많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골목은 비좁고 상가들을 많고, 상인들의 인사도 하루 종일 계속된다. 저녁 8시 이후에는 모든 제과점의 빵들이 25%~50% 세일판매를 하고, 환전은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실용품을 살 수 있는 마켓을 비롯한 등산용품점과 여행사들이 집중돼 있다. 물론 모두 짝퉁임을 전제로...

 

그리고 환전도 표시된 환율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전상들과 거의 deal에 가까운 흥정을 하면서 환전을 할 수도 있다. 내 경우 푯말에는 69라고 돼 있었지만, 여행자 수표임에도 불구하고 70에 환전을 했다. 물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그러니 환전하는 곳을 여러곳 거친 후 적당한 곳에서 흥정하며 환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카트만두에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산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스와얌부나트 라고 네팔의 상징인 스투파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시내를 한 둔에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달발광장. 물론 두 곳 모두 타멜지구에서 가까워서 걸어서 이동이 가능하고, 두 곳 모두 입장료를 받지만, 입장료를 내지 않고 갈 수 있는 꼼수들도 있다.

 



 

몽키 템플이라는 예명 답게 원숭이 들이 굉장히 많다. 수 많은 층계를 올라가면 계단 끝 정면에 스투파가 보이고, 그 뒤로 많은 불상들과 원숭이 들이 있다. 먹을 것을 가지고 있으면 원숭이 들이 쫓아오는데, 공격을 하기도 한다니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다. 특히 안경 같은 경우도 뺏어가기 때문에 조심하라는 경고도 받았다.

 

몽키템플의 경우 수 많은 계단의 막판에서 외국인들에게 100Nrs의 입장료를 받는다. 인도인과 네팔인들의 경우는 5~10Nrs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그러나 몽키템플의 입구는 주변에 즐비하게 많기 떄문에 이 중앙 계단만 아닌 다른 곳으로, 다른 계단을 통해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내려오는 길에는 티켓을 확인하지 않으니..권장하는 바는 아니지만 주머니 사정이 궁하다면 어쩔 수 없을 것.

 

 

어쩃든 카트만두 시내 전경을 이렇게 다 볼 수 있는 곳은 몽키템플 밖에 없으니 올라가는 길이 힘들어도, 티켓값도 아깝지 않을 정도. 물론 안에도 수 많은 네팔사람들이 때문에 그들이 불경을 외는 모습이나, 원숭이들에게 먹거리를 나눠주거나, 작은 불상 및 탑들을 볼 수도 있다.

 

 태국과 네팔의 카트만두 모두가 불교 국가라는 공통점 때문인지, 불교지역과 문화제 그리고 생활 터전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특히 카트만두의 경우는 문화제와 생활 터전이 완전 뒤섞여 있는데.. 달발광장이 바로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세계문화 예산으로 지정된 곳이라 할 만큼 다양하고 넓은 곳이지만 시장과 바로 연결 돼 있어서 수 많은 길들이 광장으로 통한다(입장료의 경우도 마찬가지. 200Nrs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수 많은 길들이 광장과 연결되기 때문에 골목길이나 시장을 통해서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달발광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고, 조잡하리 만큼 세밀한 건출장식이 인상적이다.

 

 

 

달발 광장에서 유명한 곳은 쿠마리가 살고 있는 쿠마리 사원. 쿠마리는 네팔에서 신성한 여신의 존재로 추앙받는 존재로 현재는 9살 짜리 여자아이이다. 9월 인드라 축제 때는 주인공으로 네팔의 높은 사람들도 이 어린아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할 정도로 신성성을 인정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초경 이후에는 천민이 되는 비참한 삶은 살게 된다고 하니 내 눈에는 불쌍하게 보일 수밖에..매일 오후 4시경 10초에서 15초 정도 창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딱히 인사라 할 것은 아니고 창문을 내다보는 정도라 할까. 암튼 눈 화장이 인상적인 어린 아이라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카트만두에는 올드시티 등 다수의 볼거리가 더 있지만 난 이정도만 다녔다. 사실 타멜 지구를 중심으로 맛집을 찾아다니며 새로 만난 일행들과 정을 쌓아가는 기간이었고.. 당시 네팔 노동자들이 파업인 관계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타멜 지역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니며 지리 익히기를 했다.  

 

참.. 스크린쿼터 싸움때 만났던 배우 정진영씨가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됐다. 잠시 휴가차 여행 왔다고.. '나도 밖에 나와 있는데 저 사람도 저리 밖에 나와있네..'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 찰나, 같은 일행이 정진영씨 한테 싸인을 받아왔다. 각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그간 한 번도 받지 않은 싸인을 네팔에서 받으니 기분이 생소했다. 음..네팔의 경우 최근 트레킹을 하기 위해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증가하고 있고, 배우들도 쏠쏠히 온다고 한다.

 

다니면서 감동 스러웠던 맛집은..길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피크닉(한국말로 소풍이라고 간판이 있다) 식당은 한국음식을 그대로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이 비슷하다. 일본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 돈까스 같은 음식은 지대 깨끗하게 나오고 떡볶기와 김밥들도 정말 맛있다.

경복궁 타멜지구 중앙에 릭샤들이 많이 서 있는 갈라지는 길에서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음식이 한국과 똑같고, 한국 책들이 많이 비치돼 있어 시간 때우는 사람들도 많다.

에베레스트 스테이크 물어물어 찾아가면 절대 후회 안할 집. 스테이크가 싼값에 지대로 나온다. 모은 음식이 다 맛있고 심지어는 아이스크림에 빵까지..ㅡㅜ

small star (간판에는 '작은별'이라 씌여 있음.) 싼 네팔 음식점. 짱 게스트하우스 골목에서 나와 한국인이 운영하는 pc 방이 있는데 이 주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집. 가격의 감동이 밀려오지만, 우선 쥔장이 한국말을 나름 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 지대로 된 네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핑거칩스 간식으로 먹기 좋다. 짱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와 숙소를 등지고 왼쪽 방향으로 나와 첫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스낵가게. 감자 튀김도 예술이지만 특별 소스가 진미. 일행중이는 이 소스만 마시는 녀석도 있을 정도..

 

네팔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와 입맛이 비슷한 거 같다. 모모=만두, 툭바=수제비 는 완전 임맛에 지대로이고, 길거리 음식도 물론 가끔 물소 고기나 양고기가 맛이 빗나가기도 하지만 대충 입맛에 맞춰 먹을 수 있는 군것질 거리도 상당히 많다.

 

그때 만나게 된 일행들인데.. 이들이 들고 있는 통나무 통이 네팔의 전통주는 퉁바라는 것. 저 큰 통에 수수 같은 것을 넣어주고, 뜨거운 물로 3-4회 리필해서 빨대로 빨아 마시는 술이다. 맛은 막걸리 맛이 나는데 저 한통만 마셔도 배가 든든, 알딸딸 해짐. 락시(^^:)라고 해서 각 집에서 담그는 술도 있다고 하는데 이 것은 못 마셔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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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2)

-> 네팔 하면, 이 사진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듯. 사진은 카트만두에 있는 몽키템플(스와얌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절의 이름인  '스와얌부나트'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 도금된 사면체에 그려진 두눈과 제 3의 눈이 그려진 이 스투파는 '깨달은 자'를 의미한다고. 양미간에 그려진 제 3의 눈은 통찰력이 있음을 의미하고, 물음표 같은 그림은 '숫자 1'을 형상화 한 것으로 스투파는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결국 하나로, 스스로 꺠달음을 통해 가능한 것'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함. 이 스투파를 한 번 돌면 불경 1천번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주변을 돔.

 

역시 기억이 가물가물해 졌다. 에고고..

내가 네팔 여행을 한 기간은 1월 5일 부터 21일 까지. 태국에서 로얄네팔 항공을 타고 카트만두로 입국, 소나울리를 통해 인도로 나오는 일정이다.

 

<공항>

 

태국이야 워낙 배낭 여행족들이 많으니 시설이 편하기로는 두말할 필요가 없고.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공항가는 리무진 타면 1시간 안 걸려서 아직 공사가 덜 끝난거 같은 신 공항에 도착한다.



로얄네팔 항공표 예약할 경우 수차례 경고를 받는다. 하나는 72시간 전에 반드시 리컨펌할 것 그리고 비행기가 연착될 수 있다는 것. 리컨펌은 전화로 비행기 번호 불러주고, 날짜 확인/좌석확인하면 된다. 영어 잘 못해도 티켓들고 천천히 하면 되고 좀 거시기 하면 숙소 메니저 같은 사람한테 부탁해도 된다.

 

문제는 비행기 연착인데.. 인도도 마찬가지만 로얄네팔도 연착이 부지기 수라는 것. 우선 나 같은 경우는 거의 4시간 가까이 연착이 됐다. (도착했던 시간을 고려할 떄 내가 티켓팅을 하던 순간 비행기가 출발했다고 볼 수 있을 상황 ㅡㅡ;..심지어 gate도 안 나와 있었다.) 내가 공항에서 보딩패스 받으러 갔을 때 1시간 정도 연착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공항내 4개의 음식점에 한 해서 태국돈으로 200B 이하의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free 티켓을 같이 줬다.(이거 아니었으면 정말 화 많이 났을 텐데..)

 

티켓 중에 눈에 띄는 '버거왕(king)' 상표. 반색을 하며 검색대 통과해 gate 근처에서 버거왕을 찾아냈다. 음하하..한국에서도 주저주저 했던 버거왕을..그것도 195B의 와퍼세트 no.2를 먹고 배를 채운 후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적어줬던 시간보다 더 연착이 됐던 것. 미처 생각을 못하고 보안 검색대를 통해 gate로 들어왔으나, 정작 gate에서는 다른 비행기가 대기중이었고, 내 비행기에 대한 질문은 '딜레이~ 딜레이'  뿐이었다. 으..

 

1시 50분에 출발 예정 비행기 였기에 12시 이전에 공항에 왔던 나는 5시가 가까이 되서야 출발하는 것을 보며 네팔행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순진했던 난 비행기가 상시 연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지 못했기 떄문이다..물론 인도에 와서 다 깨졌지만..어쩃든 로얄네팔 항공의 연착은 상시 있는 일이라 하니 여유롭게 시간을 두길..

 

카드만두 공항은 생각보다 규모가 작기 떄문에 입국한 사람들이 나가는 출구가 하나 뿐이다. 나가는 길에는 출국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출구를 따라 쭉 오다 보면 'without visa'라는 푯말이 보이고, 비자가 없는 사람들을 입국장에서 즉시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발급 시간은 잘 모르겠으나 오후 8시 넘어서 도착한 내 경우에도 비자 받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줄줄이 서 있는 외국인들 뒤에 줄을 서고, 사진 1장과 현금 30 US 달러를 준비하고, 비행기에서 나눠즌 비자 양식을 다 채워서 넘겨주면 여권에 비자 스티커를 붙여준다.

 

-> 비자 유효기간은 2개월. 그리고 나중에 출국할 떄는 네팔 비자가 만료 됐다는 스티커를 붙여주고, 도장을 쾅 찍어 준다.

 

내 경우는 네팔 돈이 전혀 없었기 떄문에 공항에서(공항 환율이 별로 좋지 않으니 환전은 조금만 할 것) 약간의 돈을 환전한 뒤 공항문을 나섰다. 이제부터 택시 기사들의 호객이 되지만 약간 밀치고 앞으로 좀더 걸어나오다 보면 거리에 따라 선불지급하는 택시 부스가 있다. 다른 기사들과 흥정하지 말고 거리에 따라 정액 지불하는 택시 티켓을 끊자.

 

지금 가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당시에는 외국인이 나 혼자였던 관계로 나눠 탈 수가 없어서 '타멜(카트만두의 여행자 구역)'까지 혼자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문제는 택시 기사 외에 별도의 사람들이 따라 타는 경우가 있는데(내 경우ㅡㅜ) 이들의 경우는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및 여행사 소개와 자신들과 계약 된 호텔로 호객하기 위해서 동승한다. 정말 끈질기게 가자고 한다...ㅡㅡ; 아저씨의 끊질긴 호텔 유혹에도, 친구를 만날 예정이라 반드시 거기에 가야 한다고 박박 우기면서..이런 사람들은 비행기 시간을 꿰고 있기 때문에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가는 그날은 비행기가 없으니 거짓말 하지 말라는 답도 듣게 된다...

 

여행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친구와 헤어져 혼자 네팔에 들어온 나는 반드시 한국인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절박함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머무는 ''카트만두 짱 게스트 하우스' '으로 이동(도미토리 80Nrs) 이날 부터 네팔의 일정을 시작했다.

 

우선 네팔은 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숙소에서 빨래하는 금지하는 경우가 많고, (포카라 짱의 경우는 300Nrs 벌금을 명시해 놓음) 날씨가 상당히 추움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여락한 경우 hot 샤워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숙소를 잡을 때 사전에 반드시 24시간  핫 샤워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숙소를 잡아야 한다.

 

어쨋는 선택의 여지가 없던 내가 도착한 '짱게스트 하우스'에는 100% 한국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시설은 좀 여락했고, 방도 도미토리 침대 하나만 남아 있던 상황이었지만 절박하게 그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낯선이들에게 소심한 인사를 건냈다..

 

따뜻한 태국에서 추운 네팔로 이동해 온 관계로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를 위해 같은 방 친구들이 '핫샤워'를 먼져 할 수 있도록 배려 해 줬다. (1-2사람 샤워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물이 미지근하게 나오기 떄문에)그 맘음은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문제는 '가스'가 다 떨어진 관계로 난 'cold'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 전날 샤워만 했어도 그렇게 찬물로 샤워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텐데 그 전날도, 그 전날도 씻지 못한 상황이었기에...당시 네팔 카트만두의 기온은 침낭에 담뇨를 덥고 이불안에 들어가 있어도 추위를 느끼는 그런 날씨였다..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면서 부딪치고 입김이 성성한 샤워를 하면서 어찌나 따뜻한 태국이 그립던지ㅡㅜ. 아직 영어에 말문이 트이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 네팔에서의 호된 신고식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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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행 준비중

한국은 구정 연휴가 시작됐을 17일 오전 11시 29분(인도 현지시각)

인도 아우랑가바드에 있다.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아잔타와 1.6KM 도보만이 유일한 관광책인 엘로라를

땡볕에서 구경하고 밤 기차를 타기 위해 아우랑가바드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인들의 추천을 듣고 간신히 찾아낸 한국식당.

인도인이지만 한국에서 3년 살다왔다는 주인장은 구수한 한국말을 마구 쏟아내고 음식은 눈물나게 한국 것과 비슷하다.

여행 막바지에 내 가슴을 후벼판 짙은 향수병은 장미식당(한국 식당의 이름)의 참치김치찌게로 완전 사그러 들었다.

 

여행은 10일 남았다.

이제 남은 일정은 뭄바이(오늘 밤 밤기차로 뭄바이로 이동 예정), 더만, 찬디가르, 델리

여기서 하나 더 낀다면 암리차르 정도 더 갈까 생각중.

델리는 이미 갔다 왔지만 out 장소인 만큼 다시 돌아가야 하고.. 

뭄바이는 그냥 시내 구경하는 정도로만 돌고 나갈 계획이기 때문에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은 더만의 아직은 덜 알려진 해변과

찬디가르의 놀라운 계획도시에서 보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을 하러 왔다가 한국의 연휴 시작이라는 뉴스와

7차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 그리고  

내 책상을 다른 활동가가 쓰고 있다는 얘기를 접한다..

 

음..난 어디로 돌아갈 것이냐..

과연 나의 집은 제대로 남아 있기나 한 것인가..

 

우선은 모든 생각을 접고

한국에 갈때까지 인도행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 목표.

친구가 나보다 3일 먼져 인도를 뜨기 때문에

나혼자 남게 될 3일 난 또 어떤 사고와 헤프닝의 연속이 될지

생각만 해도 암담할 뿐이다...

 

나 처럼 흥정에 약한 사람과 영어가 짧은 사람

그리고 치근덕 거리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대인기피증이 있는 사람에게

인도는 정말 쉽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무사히..무사히.. 제발 .. 별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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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우다이쁘루

호반의 도시라는 우다이쁘루에는 밤마다 폭죽이 터진다.

심지어 새벽 4시에도 펑펑!!

해만지면 인도풍 축제의 결혼식이 수 십 건이다.

잠귀 어두운 나 같은 사람이 벌떡 일어날 만큼 수시로 폭죽이 터진다.

친구는 우다이쁘루를 '환락의 도시'로 명명했다. ^^

 

배낭여행 51일차.

한국행 19일 남은 상황.

어제 친구와 50일 기념 파티를 조촐히 하고

오늘은 인도르를 거쳐, 만두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만두가 상당한 깡촌이라는 주변인들의 조언에 따라.

우다이쁘루에서 사람들에게 줄 약간의 기념품들을 사러다녔다.

정말 배낭 여행이 끝나가는 느낌이다..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고, 무엇을 그들에게 전해줘야 내 긴 여정의 고민을 담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내 나름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들로 정한다.

 

잘자고, 잘먹고, 굉장히 건강해졌다.

잠시 다녀갔던 친구들은 다이어트와 관리가 필요함을 조언도 했다.

인도 음식이 개인적으로 너무 잘 맞는 관계로 한동안 그런 고민은 뒤로 하기로 했다.

 

물론 새롭게 출범한 3기 한국청년 견학단은 음식 조절에 들어가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자고 결의를 모았으나

메뉴판 앞에서는 여지 없이 작아지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

 

깡촌 만두행.

19일 후면 다시 한국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으로 장기 배낭 여행에 나선 이번 경험이 아쉽지 않게, 헛되지 않게

난 용기 백배 충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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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네팔(1)

시간이 되는대로 배낭 여행의 내용들을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우선 한 발을 내딛었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인도 바라나시.

 

2006년 12월 태국에서 시작해, 캄보디아에 갔다가, 다시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에 갔다가 네팔로 들어와 국경을 걸어 넘어 인도로 왔다. 단 1분만에 넘는 네팔과 인도의 국경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와 다름이 있다.

 

개인적으로 인도를 아직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네팔의 경험이 상당히 기억에 남는다. 태국에서의 경험은 뭐 그냥 쉬었다고나 할까. 캄보디아의 경험은 고 문화 답사와 더불어 인간의 가능성을 탐지한 기간이라 할 수 있을 거 같고..

그래서 네팔 여행기를 정리해 볼까한다.

 

우선 내가 다닌 코스는 별로 되지는 않는다.

태국 방콕에서 국제선, 로얄네팔 비행기 타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 카트만두 타멜(방콕의 카오산로드와 같은 관광객 거리)지역을 거점으로 몇몇의 세계문화 유산을 걸어다니며 관광하고, 이어서 포카라 라는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휴식처의 도시에 도착,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래킹을 시도했다가 눈때문에 중도 정리, 이어 부처의 탄생지기도 한 룸비니에서 한국템플에 기거하며 각국의 절을 섭렵(^^;)하며 일정을 지낸뒤 소나울리 국경을 통해 인도로 입성, 바라나시로 넘어왔다.

 

사람들에 따라 네팔에 있는 또다른 불교 성지들을 여행하며, 인도까지 포괄해서 아예 불교 문화 유산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는고, 나의 여행 코스와는 정반대로 인도에서 지친 심신을 달레기 위해 룸비니에 갔다가, 포카라에서 완전 쉬다가 트래킹하고, 카트만두에서 방콕 카오산으로 넘어가 유흥을 즐기다가 한국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코스를 원채 내가 짠게 아니었고, 만나는 사람들을 추천 코스에 팔랑귀가 되어 정한 일정이기 때문에 다소 즉흥적이었지만, 네팔에서의 경험을 절대 후회되지 않는 일정이었다.

 

네팔 여행의 대표는 사람들 만큼 만은 문화 유산과 안나푸르나와 같은 트래킹 내지는 라운딩(일정 코스로 산을 빙 등산하는), 진짜 전문적인 등산으로 나뉠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 여행단들의 경우 치트완 국립공원을 경유하기도 한다. 야생자연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하는데 야생동물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상당히 좋다고 한다.

 

현재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한국인 전용 여행사도 많고, 대행사도 많고, 포카라에서는 한국인 전용 가이드나 여행사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영어 후달려도 절대 불편하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다고. 

 

이것을 시작으로 네팔 여행기 한번 정리해볼 예정.

아직 인도도 진행중이지만, 차근히 그리고 하나씩 ..

네팔의 소중한 기억들을 잊기 전에..

 

덧붙임..특별히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아는 지인이 여행중에 네팔 백배즐기기 책은 선사하여 굉장히 행복하게 받았다. 그러나 내용은 거의 도움이 안된다는 거. 자세한 설명이 거의 없고, 현재의 상황도 다 반영이 되 있지 않아서 곤란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거. 혹시 책 사실분은 좀 신중히 생각해 보시길..

 

덧붙임2. 네팔의 상황은 현재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상황.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등 트래킹이나 라운딩때 퍼밋이라는 공식 입장료 외에 별도로 내던 반정권 활동을 한 마오이스트 비용이 있는데, 마오이스트들이 현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힘을 가세한 상황이기 때문에 내는 비용이 사라졌다는 것.(아직 인터넷 제대로 확인 않해서 사실확인이 필요한데 현지인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고) 나의 경우는 올라갈 때 1인당 500 네팔 루피(`1인당 1일 100네팔루피)를 냈는데 내려올때 보니 마오이스트들의 자리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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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주도 하이킹 2

9월 3일


다시 교회가서 씻고, 밥도 해 먹고, 짐 다시 챙겨서 큰엉해안경승지 ->정방폭포 -> 계속 이동하는데 너무 더운 거다. 정말 너무 더워서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온도가 얼마나 되나 기상센터에 물어봤더니 그날 제주도는 34도 란다..미쳤지 34도에 쉬지도 않고 그리 자전거를 달려 오니.. 사실 한 녀석은 이날 결국 탈진에서 트럭으로 먼져 이동했고, 남겨진 우린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더위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대장의 설득이 시작됐다. 코스에는 벗어나 있지만 주상절 리가 정말 멋진 곳이라는 설득이다. 대장이 정말 가자, 가자 라고 노래를 부르는 통인데.. 공동체의 규칙상 대장이 go!를 외치면 따르자는 사전 합의에 근거에 우리는 주상절리에 갔다.



그냥 짜집기 한 사진...

 

내려갈 때는 신났지.. 정말 신나게 내려가는 코스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주상절리 다음 코스 인데.. 신나게 내려갔으니 그만한 고개가 있는 거지..근데 그간 웬만한 경사로에서도 기어 조절을 통해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고 갔었는데 그 코스만은 정말 못 올라가겠는 거다.. 50도는 넘어 보이는 진짜로 엄청난 경사로 였다. 밀고 밀고 올라서 간신히 목적의 테디 베어에 도착했다. 물론 테디베어 뮤지엄에 들어가서 구경하는데 어찌나 사람들이 쳐다본다. 우리의 복장, 굉장히 여행자들 스러웠고 심지어 고온의 날씨에 자전거 굴리고 와서 냄새도 장난이 아니었던 게다. 뮤지엄에 있는 것이 민폐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우린 한인 혜택도 받아서 입장했다. 테디베어뮤지엄은 정말 무지무지 크고 예쁜 인형들이 사진 찍기 좋게 되어 있더라. 상당히 많은 민폐들을 끼치며 신나게 사진 찍고, 다시 나와서 마의 고지를 넘어 화순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그날 일정이 밀리고, 코스가 길어서 결국 해가 진 뒤에서도 우린 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개인적으로 약간의 야맹증이 있는 지라 겁도 많이 났는데, 심지어 자전거에 조명등 설치도 안해 놓은 상태에다 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이 공사중인 곳이어서 인도가 제대로 되어 있지도 않았고 장애물도 엄청나게 많았다. 앞에 가는 메티스가 '언니 돌!' ' 언니 구멍' ' 언니 장애물!' 이런 식으로 힌트를 주면서 가드를 했고 오르막길 이후에는 계속 내리 막길이어서 마구 달려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물론 이날도 야영할 계획이었으나 상태들이 너무 안좋았던 관계로 민박을 하기로 했다.
 
정말 신기하지만 아침에 눈 떠서 김밥 도시락을 준비하고, 하루 종일 내내 자전거 타고 (거의 쉼없이 사진 몇장만 찍고 달렸는데..), 또 끼니 되면 끼니 챙겨들 먹고, 샤워 하고, 빨래들 해서 널고, 심지어는 밤늦게 까지 소주 걸치며 뒷풀이 하지만..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기상시간에 맞춰들 일어난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녀석들이 없다. 졸리다고 찡얼 거리는 녀석도 없다.. 왕어른신들도 꿋꿋하다.. 물론 뒷풀이때도 조는 한이 있어도 같이 끝까지 있는다.. 참..정말 죽이는 팀웍, 팀원들이었다..

 

9월 4일

이제 하이킹 일정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정도 들고, 자전거에 익숙해 지려고 하니 마지막 날이 온다. 심날은 타입캡슐을 묻는 날이다. 제주사랑도 그날은 개인 일을 뒤로 하고 우리와 함께 한다. 쿠키 빵을 엎어 놓은 것 처럼 생긴 산방산 지나서 송악산으로 가서 타입캡슐을 묻고.. 난 타입캡슐에 나에게 쓰는 편지와 당시의 느낌을 적은 쪽지와 사탕 그리고 당시 신었다가 쟁여 놓았던 양말을 넣었다. 다들 나에게 항의 많이 했지만 썩던지 어쩌던지 3년 뒤에 열어 보면 재밌을 것 같아서 우겨서 넣었다. 그리고 우린 사진 한 장을 찍고 3년 뒤에 다시 모여서 다시 여행하자는 약속을 했다.

 

이후 코스는 널럴하다. 추사적거지를 지나 소인국테마파크에 가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려라~ 달려라~ 해서 오설록통과~ 분재예술원통과~금릉청소년수련장 통과~ 여섯시도 채 안된 시각에 우린 정말 쉽게 협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마에 고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던 제주사랑의 경고는 결국 뻥으로 드러났고, 우린 협재 해수욕장에서 그간 못 놀았던 물놀이를 하며 마지막 날의 뒷풀이를 세게 했다. 협재의 노을도 예뻣고, 함께 여행하면서 그을린 멤버들의 모습도 감동 적이었다. 하하.. 어디서 이런 괴물들이 모였을까 싶은..

 

그 날 저녁 우리는 하늘이 보이는 밖에서 고기를 한껏 구워 먹으며 이것 저것 많은 대화를 했다. 밤세.. 하하.. 밤세..그래도 아침은 온다...

 

9월 5일

다음날은 정말 코스대로 한림공원 ☞협재해수욕장 ☞애월전망대 ☞하귀 해단도로 ☞ 이호 해수욕장 ☞ 제주하이킹 랜드 로 왔다. 물론 중간에 애월 봉수대를 전망대로 착각하고 사진 찍고 놀고 했던 약간의 에피소드를 빼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 하이킹 랜드, 출발점이 보이자 정말 가슴이 뻐근하고 아쉬움이 밀려 왔다.. 물론 실감도 안났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자전거에서 실었던 짐 내리면서 반납하는데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다. 에이.. 기분이다. 다시 한번 타고 한바퀴 돌아보다가 반납했다.

 

물론 그날 우린 두 번째 공식 뒷풀이를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목욕탕도 다 같이 갔다. 어찌나 냄새나고 지저분하던지..우리가 떼거지로 움직이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처다 보는 상황이었다...노래방 알바스 소화기, 대장 실종 사건, 메티스의 술버리기 작전 등 제주도에서 잘나간다는 시내에서 술도 한잔하고..다들 뻗는 상황에서 알바스와 동동주가 술마시러 가자고 꼬득인다..음.. 갈까 말까 하다가.. .. 잘못 걸리면 녀석들에게 죽겠다 싶어서 방에 숨어서 결국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9월 6일

제주하이킹랜드에서 주최한 제 1회 제주국토대장정의 공식 일정은 5일로 마무리 됐다. 그렇지만 다들 시간의 여유가 있는지라 좀 더 제주도에서 놀기로 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온 나와 샐리 언니 그리고 강원도에서 온 알바스는 모든 일행과 갈수 있는 최대한 같이 가기로 하고,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것으로 결정. 6일을 그렇게 보내기로 했다. 

물론 한라산을 가고자 했으나 그 전날 과한 술로 인해 출입 시간을 놓쳤고, 우린 봉고차를 렌트해 제주도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못 가본 한라산도 차로 가고, 도깨비 길도 하고.. 뭐 .. 여기 저기 많이 다녔는데 기억이.. ^^;

 

팀웍이 빛을 발한 일이 있었다. 봉고차를 렌트해서 다니다가 운전을 하던 막걸리 녀석이 '어 사고 난 거 같은데요' 하는 거다. 다들 화들작 놀랐는데 아니나 다를까 앞서 고개를 넘어 오던 트럭이 단 몇초 차이로 우리 앞에서 길가의 돌에 부딪 힌 사고가 발생 한거다. 보조석에 있던 아주머니가 튕겨 나와 쓰러져 있고, 아저씨도 운전석에 끼어 있고 주변에는 트럭에 실었던 짐 때문에 난리가 나고.. 한 녀석이 나서서 다른 차량 소통을 돕고, 한 녀석은 보험사랑 119에 전화해서 견인차를 부르고, 의대생이었던 두 사람은 아저씨와 아줌마를 돌보고 착한 한 녀석은 그 둘을 보조하고, 나랑 메티스는 길거리에 쏟아진 짐들을 다시 트럭에 옮기는 일을 했다. 잠시 후 보험회사와 견인차 응급차가 왔고 상황은 마무리 됐다. 정말 놀라운 상황이었지만 긴급 사태를 신속하게 처리 한 이후 하이킹 멤버들 간의 멤버쉽은 더욱 강화 됐지.. 어찌나 뿌뜻하던지.. ^^.. 생각해 보면 당시 나만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참 계면쩍였는데.. 다들 멋지더라고..

 

돌아다니다 시간 늦어서 제주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간신히 부산 배시간에 맞췄다. 버스를 타고 배를 타러가면서도 계속 웃음이 난다. 제주도에 와서 단 한번도 여유롭게 이동해 본적이 없다. 간당간당 시간 맞춰 뛰고, 넘어지고, 팀을 나눠 역분하고 하면서도 그래도 어떻게든 이동했던 거고 그때 부산 가는 배도 마찬가지 였다.

 

공식 일정은 여기 까지..

사진 찾고, 제주도에서 부산가는 동안 밤새 내내 여행 얘기 하고 물론 또 뒷풀이 하고.. 마피아 게임도 하고 놀다가 .. 부산에 가서는 또 부산 토박이들이 이것 저것 구경 시켜 줘서 영도 대교도 친구 흉내내서 건너 보고, 부산 영화제 한다는 거리도 가보고, 생선 많이 파는 시장도 가보고.. 부산 출신들이 내는 회도 찐하게 먹어보고.. 간신히 또 기차 시간에 맞췄다. 사실 부산역 사물함에 짐을 놓고 놀러 다닌 상황이었는데 간당하게 지하철을 타게 된거다. 음.. 뛰고 뛰고 언니는 먼져 뛰어가서 기차 잡고, 난 사물함에 가서 짐 꺼내 가기로 역분하고 계속 뛰었다..기차역에 갔더니 출발하겠단다.. 에구 놓치나 보다 생각하면서 뛰면서 층계를 내려오는 데 샐리언니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문이 닫히고 있었다. 물론 극적으로 또 닫힌 문을 열고 기차 타고 올라 왔지..뭐.. 긴장의 연속이지라.. 올라오는 기차에서는 물론 시체가 됐고..

 

하이킹을 마치고..

 

하이킹을 통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배려 할 줄 알고, 배려할 생각을 하는 그런 가슴이 따뜻하고, 따뜻하게 살려고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각박하게 싸우고, 농성하고, 푸념하다가 만난 이 사람들이 정말 감동스럽게 다가왔다. 운동하는 사람의 헌신성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저런 정서로 열심히 사는 구나 하는 일반의 느낌, 고스란히 체험한 상황이었다. 음.. 여행 좋았다. 그리고 그 때 사람들도 정말 좋고.. 이제 이런 여행에서 난 왕고가 되겠지만.. 다시 이런 기회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여행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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