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탈출

2008/05/26 22:57 생활감상문

5월 초에 몸이 또 감옥이 되어 간다고 썼다.

 

그리고 내내 감옥 생활이었다. 아팠고, 병원에 다녔고, 일에 눌렸다.

생활에 갖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못해 내는 기분이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만 아프고 싶었고, 운동도 하기 싫어졌고,

일할 때도 두 개의 자아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순간순간 멍해지는 나.

그러는 사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내 감옥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제, 그제 광화문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좀 열받기도 하고...v못 가서 멋쩍기도 했다.

M선배 블로그나 다른 블로그들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었다.

꽤 바빴는데도.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적어도 어제보다는 컨디션이 나아졌으니까...

오늘은 가야겠다.... 병원을 갔다가 갈까.. 뭐 그냥 갈까... 어쩔까 하다가...

찬물에 밥 말아먹고, 서울 가는 기차 타듯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가면 되겠다는 마음이 섰다.

 

촛불집회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면 뭐가 뻥 뚤릴 것도 같았다.

전에도 그랬듯이.... 뭔가 열심히 바라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전선이 명확할 때는 싸움을 하는 게 오히려 힘 받는 일이었으니까.

이기려고 하는 싸움이 아니라 살려고 하는 싸움 말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혼자 쭈볏쭈볏 나서면서...

인사동에 있다는 H양에게 전화를 했다. 구두를 신어서 오기가 힘들 것 같단다.

M선배한테... 혹시 오늘도 나오세요? 하고 문자 쳤더니.... 도무지 회의가 안 끝난단다.

Y군과 M군과 H군도 제각각 바쁜지.... 뒤늦게나 문자들.......

 

오늘은 같이 갈 사람이 있건 없건 일단 나서기로 한 거라....

지하철 타고 가서 청계광장으로 나갔다.

 

어색하면서도 뭔가 편안했다. 이래서 사람이 몸의 경험을 무시 못하는 거다.

집회 참여도 자전거 타기처럼.... 말문이 막혀 있을 줄 알았는데....

촛불 드는 것도, 구호를 외치는 것도...

심지어 남의 발언에 혼자 궁시렁궁시렁 추임새를 넣는 것도....

몸의 독기를 빼내는 것처럼 시원했다.

 

까짓, 될 때까지 우리가 하겠다는데... 지들이 어쩔 거야?

 

아.. 어쩌면 그간 내가 느낀 압박감은

정말 살기 힘들어질까 봐... 뭐 이런 두려움이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아무렇지 않게 광화문에 가서,

아무렇지 않게 몇 시간을 사람들과 보내고 오니...

 

속이 뻥~~ 뚤린 것까지는 아니지만

(어제그제 부상/연행 때문에 오늘은 좀 자제하는 분위기. 정말 큰 싸움을 앞두고 있으니까)...

좀 답답한 게 풀린 것도 같다.

 

그들은 현재를 지키기 위해 저리 악랄하게 굴지만...

우리는 미래를 걸고 꿈을 꾸고 웃으면서 싸우니까.

승산은 우리한테 있다.

 

초조해하지 않을 테다. 히딩크의 태극전사들처럼 끈질기게 악착같이 침착하게 물고 늘어질 테다.

내 감옥을 내가 부수면.... 더 큰 감옥도 부술 수 있겠지.

자, 이제 그럼 감옥 탈출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5/26 22:57 2008/05/26 22:57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bluejep/trackback/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