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이청준.'

2008/01/29 23:51 베껴쓰기
내가 처음으로 이청준 선생님을 만난 것은 1977년 가을이었다. 그때 출판부의 태도을 총 지휘하고 있던 정병규 씨의 소개로 조선호텔 사무실에서 첫 만남을 갖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때까지 이청준 선생님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불어를 전공한 나는 대학 입학 이후에 한국 문학을 대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 이전에 접했던 한국 작가는 김동리, 황숭원, 이범선 등과 같은 원로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정병규 씨로부터 들었던 이청준 선생님은 한국 순수문학의 최정상급 작가라는 정보밖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시내에서 식사 겸 술을 한잔 한 뒤, 이 선생님 댁 부근에서 2차까지 끝마쳤을 때였다. 마침 술집 앞에는 작은 서점이 하나 있었다. 이 선생님은 나를 그 서점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자신의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를 한 권 구입했다. 물론 나로서는 처음 보는 책 제목이었다. 이 선생님은 그 책의 표지를 넘긴 후 하얀 속 면지에다 무엇인가를 적은 후 그 책을 나에게 주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차 안에서 <별을 보여 드립니다>의 표지를 넘겼을 때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미안합니다. 이청준."
나는 그동안 많은 책을 증정받아 보았지만, 그러나 그와 같은 증정사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미안합니다. 이청준."
다소 엉뚱해 보이는 이 짤막한 글은, 그러나 묘한 감동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 짧은 글이 실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이 사장, 보아하니 내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출판사 사장은 작품을 통하여 작가와 교감을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놓치는 출판사 사장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출판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출판사의 가장 큰 재산은 돈이 아니라 필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이 만남이 깊은 교제로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의 작품을 읽어보십시오. 바쁜 사람에게 이런 요구를 해서 미안합니다. 이청준.'
--이재철, <'믿음의 글들, 나의 고백-홍성사의 여기까지>에서
 

이만한 필자의 겸손함도 그것을 읽을 줄 아는 출판인의 마음도... 멋지다.

유명한 필자여서도, 한때를 풍미한 출판사 사장이어서도 아니다.

그 간결함이 내 마음에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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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9 23:51 2008/01/29 23:51

지병[持病]

2008/01/28 13:50 생활감상문
지병[持病]
[명사]오랫동안 잘 낫지 아니하는 병.

 

10대 후반 이후에는... 30분 이상 책을 보려 하면...(로맨스나 추리소설, 환타지소설 제외)

눈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프고 졸음이 왔다.

그런 채로... 공부는 대충대충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게다가 부모님 등골 빼먹으면서 대학원까지.

논문을 쓰다가는 알았다. 나는 난시였다. 진작에 안경을 써야 했던.

안경점에 안경 맞추러 갔는데, 안경을 썼으면 공부를 훨씬 잘했을 거란 말에...

수준은커녕 장수도 못 메꿔서 헤매던 논문학기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T T

난시는 나의 지병이었다.

 

그렇게 안경재비 생활을 5년쯤 하는 중에...

나의 또 다른 지병이었던 과체중을 억수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어느 정도 해결했다.

체중 문제가 해결되었다 싶자, 매년 초 결산하는 퇴직금을 들여 난시를 수술로 해결했다. 

이젠 길에서 버스 번호판도 잘 보고, 멀찍이 있는 간판의 전화번호까지 잘 읽는다.

 

그런데 난시 수술을 예정해 놓고... 경미한 교통사고에 걸렸다.

아니... 과로로 인해 피폐한 몸에 교통사고가 지나갔다고 해야 할까.

흔적은 희미했지만, 통증은 오래 갔다.

후유증을 빌미로 나는 회사를 휴직하고, 결국 퇴직했다.

작년 한 해... 라식 수술비를 제외하고도 병원비가 200만 원을 넘어...

의료공제를 총 450만 원어치나 신청했다.

(사고 직후 보험회사에서 처리해준 의료비가 얼마인지는 확인도 안 했다.)

 

연초까지 한약을 대놓고 먹었고, 빡센 마감을 하고 여기저기 몸이 곪았다는 느낌은 왔고....

블로그가 처음 시작될 무렵의 패닉 상태가 지나갔을 때도...

사고 부위는 대체로 멀쩡했다. '내게 필요한 건 약간의 잠뿐이야.'

하지만 오판이었다. 잠을 보충하고, 정신을 되찾고, 블로그질에 빠지고...

매주 이틀 저녁을 스피노자/벤야민 강좌에 바치고... 피곤하다고 요가 수업은 계속 빼먹고...

마침 한의원은 내부 수리에 들어갔다.

 

교정지 분량에 압박 받아서 다이어리에 교정을 열심히 보자고 계획을 세울 정도인지라

매일 출근과 동시에 그날 볼 분량의 교정지를 세놓고 하루를 시작했다.

(안 쉰 건 아니다.. 하다가 땡땡이 나면 또 블로그질하고 서핑하고....

계속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한 게 문제였다.)

그리고 열흘째, 엉치 부위의 근육이 뭉쳐서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내부 수리가 끝났다는 단체 문자가 왔다.

다음날 당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점심 시간에.

주말엔 빨래 한 번, 청소 한 번 하고.... 내처 누워 있었다.

누워서 자고, 누워서 TV 보고, 누워서 노트북으로 일드 보고....

(잠시 딴 길로 새자면... 타마키 히로시의 신작 <사슴 남자> 볼 만하다>.)

누워서 밤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오늘도 점심 시간에 병원에 갔더니.... 내일도 오란다.

가끔은.... 병원에서 날 안 놔준다는 생각도 들고....

인생 열심히 살려고 하면 늘 몸이 태클을 거는구나.

난 이렇게밖에 안 되는가.. 하는 패배주의도 빠지고...

(나보다 더 예민하고, 더 아픈 사람들도 뭔가를 이루며 잘만 살건만..)

그래도 몸이 하는 소리를 잘 들어야지.. 싶기도 하고.....

 

힘들다고 운동을 빼먹었더니.... 체중은 불고...

그래서 더 아픈 듯도 싶고.. 결국 당장의 컨디션보다는

좀더 깊숙한 데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다면 결국 내 지병이란.... 의지박약인가?

 

이러면 또 결론이 너무 계몽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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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8 13:50 2008/01/28 13:50

늦어진, 예정된, 계획하고 싶은.... 영화 및 전시 관람.

2008/01/25 00:00 생활감상문

벌써 몇 달째 대기시켜 둔, 설렘과 함께 기다린, 전에 보았지만 또 보고 싶은, 웬지 안 보면 후회할 듯싶은, 극장에서 보고 싶은, 위로가 필요해서, 환타지를 갖고 싶어서, 한번 볼 때는 졸았지만 그래도 뭔가 여운이 남아 또 한번 보고 싶은, 마지막으로 이런 이유 말고도 뭔가 내 꽈다 싶은...... 등의 이유로 보고 싶은 전시와 영화들.

 

오랜 경험의 결과 전시와 영화가 그나마 친숙하다.

연극이나 여행은 가면 좋은데, 굳이 찾게 되지는 않고.....

준비성 없는 내겐 이 정도면 충분할 듯.

무주도 가자는 팀이 두 팀이나 되고, 명절도 끼어 있고, 2월엔 마감도 있지만....

그래도 막간을 이용하여 놓치지 말고 봐주자. 리스트업을 해야 그나마 절반은 넘길 수 있다.

  

전시

반 고흐전 : 서울시립미술관, ~3월 16일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 예술의 전당, ~2월 27일

벽의 예찬, 근대인 정해창을 말하다 : 일민미술관, ~2월 3일

 

영화

안경めがね

굿나잇the good night

6년째 연애중
뜨거운 것이 좋아

라듸오 데이즈

붕대클럽The Bandage Club

빨간풍선Le Voyage du Ballon Rouge

카페 뤼미에르Cafe Lumiere

화양연화花樣年華(In The Mood For Love)

당신은 나의 베스트셀러Ambitious / Les Ambitieux

셀린느와 줄리 배타러 가다Celine et Julie vont en bateau /Celine and Julie Go Boa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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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5 00:00 2008/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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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두렵다.

2008/01/23 02:21 생활감상문

어젯밤에... 결심했었지. 내일 하루는 정말 열심히 충실히 살아야지. 밀린 일 따위는 만들지 말아야지.  그리고 오늘 하루 열심히 일했다. 써달라는 글쓰기도 땡땡이 안 치고 출근하자마자 마무리했고, 교정도 열심히 보았고, 책 제목회의 전에 아이디어도 냈고, 회의도 열심히 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병원을 갈까. 아님 야근을 할까. 아냐, 집에 가서 쉴까?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은 거절하면 안 되겠다 싶은 뭔가 급박한 목소리.

"오늘 나랑 만나줘."

 

그리고 술자리. 내 수다스러움이 도움이 되는 1, 2차...편하게 속 이야기를 할 만한 3차.

간만에 진탕 취해서 들어와.... 그러고도 바로 안 자고 왜 컴퓨터를 켰을까?

벌써 블로그 중독증?

 

내일 역시 열심히 충실히 밀린 일 없이 살아야 할 날인데.... 저녁엔 사내 강의도 있는데....

이 취기가 어떤 숙취로 나타날까. 내일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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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3 02:21 2008/01/2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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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2008/01/21 15:50 베껴쓰기

옛날 편지를 '서간'과 '척독', 두 종류로 구별할 수 있다 한다.

 

서간은 사실을 상세히 알리거나 상대를 설득할 목적으로 쓴 장황한 편지인 반면,  척독은 보낸 이의 심경과 감정의 토로를 특징으로 한다. 그런 형식상의 이유로 높은 예술성과 품격을 지녀 긴 여운을 느끼게 하는 척독이 적지 않다. 보낸 이의 정취를 잘 드러내는 척독을 옛 문집에서 우연히 발견해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안대회, <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샘의 쏠쏠한 재미를 몇 줄 빌어다가 필자에게 보내는 메일에 옮겨 적었다.

 

편지가 마침 도착하여 뜯어보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마음속에 그리던 사람이 이렇게 이르렀으니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창 모서리에 뜬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답장편지 속에 넣어 바로 보내고 싶습니다.

- 18세기, 조희룡이 임자도 유배 생활 중에 서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맛깔 난 번역 덕분인지 봄 별을 오이처럼 따다가... 할 때

글자 모양이 비슷해서인지, 봄볕의 따사로운 기운이 생동한다.

웬지 나도 까르르 웃고 싶어졌다. 이런 편지 한 장 적어 보낸 것이 언제이던가?

그만한 글재주는 없어 겨울 편지에 비슷한 때의 그림을 붙여 보냈다.

 

(전기, 매화초옥, 19세기,종이에 수묵담채,29×33cm)

 

여항화가 전기의 그림이다. 산에는 눈도 녹지 않았는데, 매화가 가득하다.

조희룡도 같은 주제의 그림을 명품으로 남겼지만, 나는 이 작품이 더 좋다.

벗을 찾아가는 이의 따스한 마음을 주홍색 옷을 입혀 표현한 것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런 데 눈을 뜬 후에는, 심미적 태도 없이 세상을 사는 이들의 무심함이 나를 상처 입히곤 한다. 티를 낼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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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1 15:50 2008/01/21 15:50

스피노자와 짐멜 그리고 벤야민, 게다가 레비나스

2008/01/19 11:05 생활감상문

          

유럽에 얼마나 많은 유태인이 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난 골수 시오니즘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에 반대한다만....

생각해 보니... 요새 내 철학적(?) 혹은 학문적(?) 삶의 배경....에 깔린

유럽 사상가는 유태인이더라...

그래서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하는 건 귀찮아서 안 하기로 하고.....

여하간....

 

한때는 하버마스 할아버지와 돌아가신 부르디외 선생을 추종하여....

오염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상황을 만드는 지식인이고자 잘난척하거나

장의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 내가 가진 상징자본이 뭔지 열라 활용하거나....

뭐 그런 짓도 했다만........

 

타고난 성격이 심약한지라... 나이가 들면서

덕이 어쩌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어쩌고... 또 그런데 물들어서.....

요새는 성찰이 어쩧고... 경험이 어쩌고........

그러다 보니...... 또 스피노자와 짐멜 그리고 벤야민, 게다가 레비나스....에 관해

읽은 책을 떠올리고, 또 그런 강의를 듣고 있더라.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착하거나/특이하거나/예민하거나/경계에 있는 인간이 될 듯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극한에 도달하는 경험을 한다거나

남이 뭐라건 나만의 스타일을 주장할 강인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은 아마 "스타일"을 가지고 나에게 타인을 초대하는 일이 아닐까?

누군가를 이용하기 위해서 그에게 잘 보이는 게 아니라.....

그와 링크하기 위해... 나를 매력있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단 그 매력이란 꾸밈이 아니라 정말 내 형상, 즉 내 생김새여야겠지.

 

요새 듣고 있는 벤야민 강의에서... 샘이 어느 스님한테 들은 말이라며 전하길....

"불가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과 얻지 못한 사람은 표면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요.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삶이 달라집니다. 전과 같이 살 수는 없지요."

 

다만 나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혹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한번 물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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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9 11:05 2008/01/19 11:05

음미되지 않은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2008/01/18 01:11 편집자–되기
“일과표대로 계획하고 논리학대로 말하고 윤리학대로 행동하며 견고한 질서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근엄한 부르주아의 삶의 끝에 무엇이 있는가. 검은 나비넥타이를 맨 채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얌전하게 서 있는 장의사 주인 말고 또 누가 있다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노동을 견디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노동을 소외시킨다. 우리가 삶을 견디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할 때 우리 스스로 삶에서 우리를 소외시키고 있지 않을까.

때는 황금돼지 해가 시작하던 1년 전. 그 전해인 쌍춘년 효과로, 남들은 결혼도 하고 쑥쑥 애들도 낳는데(IMF 세대가 30대 중반에야 생활의 안정을 찾아 결혼하고 출산을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만), 나는 불모의 기분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2006년의 마지막 토요일에 찾아간 탕약 전문 한의원에선 여기저기를 눌러보더니 “‘하고 싶은 일’은 안 하고 ‘해야 할 일’만 해서”(헉, 아니 선생님께서 그걸 어떻게~~~) 위장부터 시작해 내장이 다 딱딱하게 굳었다며 보약도 지어주겠지만 ‘자기 자신을 위한 일’도 좀 해보라 권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마다 월급 올라봐야 연초에 지어먹는 한약 값도 안 나온다고 투덜거리던 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다시 “생긴 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아니다. 결심이 아니라 역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운명에 순응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니 우선 쾌락주의자이던 나를 되찾는 일이 급박해졌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미뤄둔 『쾌락의 옹호』 읽기. 한 꼭지 평균 세 쪽, 전부 다해서 168쪽에 불과한 이 짧은 산문집에 농축된 에너지는 생각 이상이었다(작년 한 해 나의 설레발로 네 명의 독자가 이책을 샀다).


쾌락은 유죄인가. 저자 이왕주는 답 대신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한다. “가장 지혜로운 생의 목표는 진정한 쾌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 진정한 쾌락을 복잡하게 정의내리고 논리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쾌락 자체는 결코 복잡한 의미로 파악되는 그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핸드밀을 돌려 커피를 갈고, 커피 한 모금 한 모금을 깊숙이 음미하려 하고, 어떠한 순간에도 인간답게 숨을 쉬기 위해 숨쉬기 연습을 하고, 누군가의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하고, 아침마다 이용하는 출근길을 일곱 가지 경로로 개발하고, 아침마다 만년필로 또박또박 일기를 쓰는 등 자신의 감각망으로 포착할 수 있는 온갖 쾌락들을 건져 올리려 안간힘을 쓴다. 서문에서 밝히듯, 살과 뼈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동안 그것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들을 철저히 누리려 할 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음미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했다던가. 삶을 무슨 해치워야 할 과정이기나 하듯이 여기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부어넣거나 음미하며 마시거나 커피는 위장으로 내려가서는 성분에 따라서만 흡수 분해되는 것같이, 스쳐 지나듯 해치우듯 살아가거나 완상하고 음미하며 살아가거나 어차피 무덤 안에서 한 줌의 흙이 되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흙으로 되기도 전에 벌써 흙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소크라테스는 “살아 있는 모든 날을 기뻐하라”고 충고한다.

첫 문단에서 말한 한의원을 다녀오고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내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고, 쾌락을 음미할 육체를 되찾으려 깊은 산속에서, 여행지에서, 병원에서, 그리고 나만의 공간 안에서 충분히 쉬었다. 그리고 새로운 일터도 만났다.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나는 드디어 이런 일기를 썼다.

“인생은 설렘이다. 세상엔 보고 싶은 영화도, 읽고 싶은 책도, 오르고 싶은 산도, 가고 싶은 도시도… 보고 싶은 친구도… 사랑하고픈 남자도… 참 많기도 하다. 문득 인생 참 살 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은데… 역시 이승이 최고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족한 시간과 의지를 생각하니… 속이 탄다.”

속이 타는 만큼, 더없이 삶의 한 조각 한 조각을 음미하며 에너지를 얻는 것, 소비하는 쾌락이 아니라 삶을 사는 쾌락만이 나를 생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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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01:11 2008/01/18 01:11

각설탕

2008/01/18 00:54 베껴쓰기

14세기에 이미 유럽은 설탕을 소비하고 있었지만, 자수성가한 영국 산업가 헨리 테이트가 설탕을 잘라 작은 큐브로 만드는 방법을 특허출원한 것은 1872년이 되어서였다. 설탕의 인기는 18세기 전반에 걸쳐 이어졌고 설탕이 금값에 비견되던 17세기에 비해 달콤한 사탕수수 생산품에 대한 유럽인의 애호는 훨씬 더해졌다.

낭만적인 전설에 따르면 신대륙 작물에 속하던 설탕은 1493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북미에서 가져왔다. 콜럼버스는 원래 카나리아 제도 고메라에서 잠시 머물 생각이었으나 그 섬의 지배자인 베아트리체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연애는 한 달간 지속되었고 떠날 시간이 되었을 때 여인은 그에게 사탕수수 가지를 선물했다. 그는 그것을 신대륙에 가져가 재배했다. 사실 콜럼버스는 상품으로서 설탕의 가치를 이미 알고 있었다. 1487년 그가 마데이라에서 제노바로 사탕수수를 운송하는 데 관여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18세기에 설탕 가격이 떨어지며 잼, 캔디, 코코아와 더불어 설탕 가공 식품의 인가가 치솟았다. 당시의 조리법을 보면 닭고기와 쌀밥 등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도 설탕이 등장한다. 각설탕 시장의 가능성을 파악한 테이트는 간단하고 효율적인 가공 방식을 고안하여 정확한 타이밍에 과녁을 맞혔다.

신대륙에 얽힌 설탕의 어두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구대륙에서 테이트는 위대한 박애주의자로 기억되었다. 테이트의 예술 컬렉션을 전시하려고 1897년에 문을 연 런던 테이트 갤러리를 비록해 각설탕이 건설한 리버풀 대학 도서관을 생각하는 것은 설탕만큼 달콤하다.

-- 파올라 안토넬리, <디자인, 일상의 경이> 43쪽. '각설탕' 항목

 

한번쯤은 테이트 갤러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초아 양도, 승호 오라버님도.... 다들 너무 좋았다 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달력을 준다는 말에 낚여 구입한 이 책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딱 이 한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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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00:54 2008/01/18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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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능 중심

2008/01/18 00:14 생활감상문

언제는 내가 복잡한 개념과 체계의 소유자였냐만....

정리 정돈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점점 더 단순한 기능 쪽에 끌리는 듯싶다.

 

노트북을 산 지 2주, 이제야 세팅이 끝나가는 듯싶은데....

더 많은 프로그램을 깔고 기능을 늘리기보다는

당장 안 쓰는 프로그램(심지어 백신마저도)은 지워버리고

빠르고 단순한 기능 위주로(메모리 2기가짜리 듀얼코어를 쓰면서)

시스템을 정리했다.

 

노트북을 사면... 5만 원짜리 엠플레이어(미키마우스 모양 아이리버)를

만 원에 살 수 있는 이벤트 기간인지라.... 낼름 샀다.

사고 보니, 노래 제목은커녕 노래 듣는 순서마저 콘트롤할 수가 없다.

그냥 때려박고.... 거의 나오는 대로 듣거나, 건너뛰거나다.

라디오도 안 나온다.

그래도 뭐 좋다.

 

새것이라서도, 내 것이라서도 아니다.

약간은 장난감이 생긴 기분이기는 하지만,

도구를 손에 쥐니까.... 음악도 더 듣고 싶고, 글도 별 내용 없더라도 쓰게 되고...

그런 자극이라는 게지.

 

단.... 이제 밤잠을 줄여 새 기계와 노는 것은 오늘로 그만이다.

내일부터는 일찍 일어나 아침에 글 쓰고, 하루 계획을 세우고....

저녁 시간은 사람 만나고, 재미있는 드라마 보고, 운동하고....

릴랙스하는 시간으로 쓰고 싶다.

 

그런데 여기엔 장애가 하나 있다.

일과 수업이다. 리듬을 만들어가는 게 쉽지는 않겠지.

뭐... 그래도 해보는 거다.

삶을 음미할 시간은 스스로 만드는 거라니까.

그러려면 생활도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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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8 00:14 2008/01/18 00:14

20대 후반은 이제 그만.

2008/01/17 01:47 생활감상문

몇 년째 계속 20대 후반만 돌아보는 기분이다.

내 30대 초반은 어디로 갔는가?

30대 초반에는 글이란 안 쓰고, 생각이란 안 했는가?

왜 20대 후반에 했던 경험들과 생각들을 계속 곱씹는가?

더이상 유효하지도, 나를 규정하지도 않는데..

 

그때는 나를 규정하기 위해 꽤 오래 고민을 했고,

바꾸려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했다.

그것도 자기-동질화의 부질없는 시도라 하면 할 말은 없다.

 

내가 바랐던 것은 누군가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자기-충족성을 갖추는 일이었던 듯싶다.

그래서 나는 꽤 적극적인 성격으로 나 자신을 파악한 듯싶다.

 

지금은 그에 비하자면, 지금은 상당히 수동적인 듯.

내 타고난 성격에 순응하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오해를 수긍하고,

내 부족한 체력과 게으름을 긍정한다.

그럼에도 나는 즐겁게 살고 싶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즐겁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한다.

힘들어도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보라 한다.

 

아마 그 한 가지를 정하라 한다면....

누군가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 아닐까?

 

뒤라스는 말했다.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할 거에요."

십 년 전에 메모해 둔 말....

그러나 나는 그/그녀들을 애정/우정의 대상으로서

물리적으로 포기(시공간이라는 장벽)했을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포기했다.

그들은 더 이상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내게 의미를 가진다. 포기 혹은 획득의 문제는 이제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싶다는 욕망은 아직 내 안에 있다.

포기하지 않을 만큼 "조건을 갖춘" 사람이던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을 안 하던지.....

뭐 그런 식으로, 우회하는 게지.

 

다만 삶을 정의내리지 않은 채, 나답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정의 내리지 않고, 도망도 안 가고, 모호하지만 뭔가 느끼고...

나다운 것의 본질은 없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매일매일 혼란스럽게, 하지만 돌아보면 뭔가 덩어리가 있게....

그렇게 일상을 믿었었고, 그래서 관계들을 갈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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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17 01:47 2008/01/17 0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