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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9/18
    난민 어린이글 4
    burma
  2. 2007/09/18
    난민 어린이 글 3
    burma
  3. 2007/09/18
    난민 어린이글 2
    burma
  4. 2007/09/18
    난민 어린이글 1
    burma
  5. 2007/09/18
    숑 들어왔습니다
    burma
  6. 2007/09/18
    첫번째 후원과 송금내역
    burma

난민 어린이글 4

Name  
   류은숙  (2004-11-16 15:51:56, Hit : 793, Vote : 73)
Subject  
   난민어린이글 4
Saw Su Le (11살, 1학년)
빨간색 카렌족 셔츠를 입고,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학생들은 배울 수 없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읽는 것을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때문에 셈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을 읽고 쓸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를 밤낮으로 도와주신다. 전혀 불평하거나 소리를 치지 않으시고, 너무나 친절하게 너무나 인내심을 갖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다. 우리 카렌족 아이들은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노력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 친구들을 선생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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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동부의 무력분쟁 지역에서, 전체 가족 중 단지 11%만이 제대로 열려있는 학교에 갈 수 있다. 휴전지역에서조차 예산의 부족과 정부의 지원이 없기 때문에 학교가 정기적으로 열리지 않는다.

전쟁은 인간에게 큰 상실이지만, 재정적으로·정치적으로·군사적으로 강력한 사람들에게는 얻어지는 것이 있다. 세계의 자원에는 분명 아동을 위해 쓰여질 것이 있는 것인데, 그 자원이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넘겨져서 무기를 만들고, 군사 지도자를 살찌우는 반면에,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으며 배우고 놀고 평화로운 환경에서 자라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단순히 읽고 쓰는 것을 배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교육은 마음을 치유하는 마음의 양식이다. 쓰고, 그리고, 노래하는 활동과 뛰어 노는 활동은 아이들이 경험한 전쟁에서 비롯된 긴장을 이해하고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자 방출구이다.  그러나 무력분쟁지역에서의 인도주의적 원조는 이런 교육 활동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에서의 수업이 전쟁 지도자들의 승리를 부각시키는 역사인식을 통해 폭력을 오히려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어린 영혼들이 피와 총탄의 악순환에 끌려 들어가기 때문에 그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할 야생 나비들은 홀로 배회하고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글들은 Ler Per Her 마을 아이들의 것이다. 약 120여명의 아이들이 거기서 학교에 다니는데, 18세에서 27세사이의 젊은 선생님들이 많은 고아들의 '사실상'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여기서 교육은 아이들을 즐겁게 하고, 강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침에 선생님이 '사회 수학(social math)' 수업을 시작하셨다.
모래 한 더미에 다른 모래 한 더미를 더하면 얼마가 돼지? 둘이요.
맞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만약에 두 더미의 모래가 하나로 섞여지면 어떨까요? 마치 우리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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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어린이 글 3

Name  
   류은숙  (2004-11-11 12:12:02, Hit : 837, Vote : 85)
Subject  
   난민 어린이 글 3
Saw Mu(13살, 3학년)

우리 학교는 버마 쪽 Moei 강둑에 있다. 나는 학생이다. 매일 나는 빨간색으로 된 카렌족 전통 셔츠를 입고 학교에 걸어간다.

때때로, 나는 학교 근처에 서서 타이 쪽을 바라본다. 타이 쪽에 있는 학교는 근사하게 서있다. 아름답다. 거기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다. 때때로 나도 그 학교에 가고 싶다.

우리 학교건물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마른 잎으로 돼있다. 땅바닥 말고는 우리가 공부하는데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때때로 버마 군인들을 피해 숨어야 하고, 그럴 때는 학교 대신에 나무 밑에서 공부한다.

나는 이따금 이런 일 때문에 부모님에게 불평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작고 볼품 없는 학교지만, 좋은 선생님이 계시고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학교를 졸업하겠다고. 언젠가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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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독재정권과 다양한 소수민족 무장세력간의 전쟁으로 국경주변의 상당수 어린이가 납치되고, 다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장애인이 됐다. 많은 어린이가 가난하고 참혹한 생활형편에 내몰려 군인이 되거나, 짐꾼, 하인이 되거나 정부와 반군을 위한 스파이가 된다. 추정하기로는, 버마군대에는 18세미만의 아동군인이 5만에서 8만명 가량 있다. 소수민족 무장세력 쪽에는 얼마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Shan족, Karen족, Karenni족, Mon족이 사는 지역에 있는 피난민에 대한 조사에서 15세미만의 어린이나 피난민의 4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타이에 있는 Karen 난민캠프에서는 12세미만의 어린이나 십만명 인구중의 38%를 차지하고, Karenni 난민 캠프에서는 14세미만 어린이가 약 8천명으로 인구의 36%이다.

무력분쟁속에서 어린이들은 온갖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다. 이 어린이들은 더 이상 숲 속에서 나비들과 놀 수 없고, 죽거나 장애인이 된 부모를 대신하여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그 결과 인신매매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된다. 인신매매는 이 이 어린이들을 치앙마이, 방콕, 그리고 기타의 "문명화된" 도시의 어두운 뒷골목으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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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어린이글 2

류은숙  (2004-11-11 11:46:34, Hit : 679, Vote : 70)
Subject  
   난민어린이 글2
Naw Mu Jae (11살, 1학년)

나는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고향은 평화롭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불태워졌고 우리는 쫓겨났다. 그래서 여기 와있다. 내가 여기 왔을 때, 사람들이 쌀과 소금과 어묵과 옷을 가져다줬다. 나는 너무 좋았다.

여기 있으면서 나는 아주 행복하지만, 가끔은 아주 비참하기도 하다. 우리 학교와 마을은 연거푸 불태워 무너졌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정글에 숨었다. 나무 아래 땅바닥에서 모기와 벌레들에게 물리면서 자야했다. 공포와 걱정이 내 인생의 친구가 됐다.

이제 나는 학생이다. 아침에, 나는 학교친구들과 놀러간다. 학교가 문닫으면, 전혀 재밌는 일이 없을 거다. 집에만 있어야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나를 사랑해주신다.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이 돼서 우리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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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센 사람들이 일으킨 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90%는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이고, 이들 중 절반이 세계의 어린이다. 요즘에도, 적어도 50개 나라에서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무력 분쟁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세계적으로 적어도 6백만명의 어린이가 전쟁으로 인해 장애인이 됐고, 2백만명이 죽었고, 백만명이 넘는 어린이가 가족과 이별하거나 고아가 됐다.

매년, 8천명에서 1만명의 어린이가 대인지뢰에 희생되고 있다.

오늘, 우리 주변에는 3십만 명의 아동군인과, 1천3백만 명의 국내유민인 어린이와 1천만명의 난민 어린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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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어린이글 1


Name  
   류은숙  (2004-11-09 20:07:56, Hit : 741, Vote : 72)
Subject  
   난민 어린이 글 1
*다음 글은 '국경 없는 친구들'이 발간하는 잡지에 실린 난민 어린이의 글입니다.

Saw Tu Lu, 14살, 3학년

나는 Ker Lee HLu Kee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였다. 내겐 누나 한명과 형 세명이 있다. 나는 막내다.

내가 어렸을 때, 버마 군부가 강제로 마을사람들을 짐꾼으로 데려갔다. 내 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무거운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매를 맞으셨다. 아버지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향과 땅을 떠날 수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버마 군인들은 우리에게 고향을 떠나도록 떠밀었다.

우리는 Swe Koh 마을로 도망쳤다. 그 마을에는 학교와 병원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학교에 다녔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는 병이 드셨고 결국 우리를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가끔씩 버마 군인들과 DKBA(Democratic Karen Buddhist Army)가 와서 우리 마을을 또다시 부쉈다. 우리는 Moei 강을 건너서 타이로 도망쳤다. 거기에는 타이 군인들이 있었고, 그 군인들은 우리를 Bae Gloh 난민 캠프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무서워서 그들의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난민 캠프에서 사는 것을 무서워하셨다. 많은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가기로 했고, 해방구에 있는 Ler Per Her 마을에 모였다.

Ler Per Her 마을에서는 학교와 병원을 다시 갖게돼서 행복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 짧았다. 군인들이 쫓아왔고 우릴 공격했다. 또 한번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타이로 도망쳤다. 군인들이 가버리고 나서 우리는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우리 집과 학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불태워버렸다.

우리는 남쪽으로 좀더 내려갔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집과 학교와 병원을 다시 세울 때까지 나무 아래서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그곳을 New Ler Per Her 라고 불렀다. 형들과 누나는 결혼해서 나갔다.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어머니는 아주 나이가 많으셔서 나는 어머니가 음식 구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와 쥐를 잡으러 갔다. 어둑해질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 앞장섰고 나는 뒤따랐는데 나는 지뢰를 밟았다. 친구들이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마을 사람들은 타이에 있는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내가 회복되자 학교에 다시 보냈다. 하지만 내 다리는 더 이상 똑같지 않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 난 더 이상 부끄럽거나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다. 매일 밤, 숙제를 하고 나서 잠자기 전에, 나는 기도한다. 우리를 모든 해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처럼 피난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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숑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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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2004-11-09 18:35:25, Hit : 396, Vote : 68)
Subject  
   숑 들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사람들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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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후원과 송금내역

   류은숙  (2004-11-09 14:06:17, Hit : 635, Vote : 52)
Subject  
   첫번째 후원과 송금내역
이 모임이 만들어지기 전에 미리 후원금을 내주신 분이 계셔서 모임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1차 송금(400달러-456,708원, 잔액 43,292원)을 했습니다.

'국경없는 친구들'에서는 내 뜻대로 관둘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무슨일이 있어도 활동을 계속하겠다며 정말로 고맙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답변과 함께 보내온 상황관련기사는 곧 번역하여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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