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21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9/18
    날씨가 좋아요.
    burma
  2. 2007/09/18
    이주자의 외침
    burma
  3. 2007/09/18
    새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께!!
    burma
  4. 2007/09/18
    Malee와 Mi Nge이야기 (2)
    burma
  5. 2007/09/18
    Malee와 Mi Nge 이야기(1)
    burma
  6. 2007/09/18
    다채로운 연합(2)
    burma
  7. 2007/09/18
    다채로운 연합(1)
    burma
  8. 2007/09/18
    핌에게서 온 편지
    burma
  9. 2007/09/18
    2005년3월2일 후원금 송금내역
    burma
  10. 2007/09/18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burma

날씨가 좋아요.

Name  
   나윤  (2005-04-01 10:53:18, Hit : 280, Vote : 12)
Subject  
   날씨가 좋아요.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제가 일하는 사무실은 그늘진 곳에 있어서
4월이 시작되는 지금까지도,
아직 쌀쌀합니다.


바깥보다도 사무실이 더 추워서,
어제까지도 발치에 난로를 켜두었는데
오늘은 틀지 않아도 따뜻하네요.


며칠간
"대체 봄은 언제 오는 거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는데, 오늘은 봄인것 같네요.^-^


아침에 류은숙님이 올려두신  Chana Damnoen님의 글을 읽었어요.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듣고 싶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뭔가를 갈구한다.


그래서 소리칠 장소를 찾는다.
소리치는 동안만이라도 고향에 있다고 느낄 만한 곳 말이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으면 듣기 힘든' 언어들 속에 둘러쌓여 있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를, 그래서 '소리치고 싶은것'은 어떤 심정일까를, 잠시 생각해보았는데- 가슴이 좀 먹먹해지네요. 이 표현이 맞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입한 후로 게시판에 종종 들르긴 하지만, 흔적은 잘 남기지 않는데 저도 여기에 있어요.^-^ 모두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주자의 외침

Name  
   류은숙  (2005-03-29 15:21:22, Hit : 278, Vote : 28)
Subject  
   이주자의 외침
이주자의 외침(Migrants' Outing)

글쓴이: Chana Damnoen

외치고 싶다!
라디오, 텔레비전, 디비디, 이메일, 전화에는 대답이 없다.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간다.
누군가와 얘기 나누고 싶고
활기찬 활동들을 보고 싶지만
고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익숙하고 친근한 생활의 냄새를 갈구한다.
들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듣고 싶다.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뭔가를 갈구한다.

그래서 소리칠 장소를 찾는다.
소리치는 동안만이라도 고향에 있다고 느낄 만한 곳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새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께!!

Name  
   조대환  (2005-03-22 13:16:21, Hit : 289, Vote : 22)
Subject  
   새로 들어오시는 모든 분께!!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제 잎새가 나고 꽃피는 계절이 옵니다.
언제 한번 얼굴보러 모이는 자리한번 만들어야할까 보네요.

만원계! 만명까지 모아 볼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Malee와 Mi Nge이야기 (2)

Name  
   류은숙  (2005-03-25 14:16:19, Hit : 221, Vote : 26)
Subject  
   Malee와 Mi Nge이야기 (2)
Malee의 가족은 가난하고 땅이 전혀 없어요. 그녀 부모님은 허드렛일과 물고기 잡는 일을 해요. 그런데 큰 댐이 건설됐고 물고기가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Malee에게 학교를 관두게 했고 그녀를 파타야(타이의 관광지 중 하나)로 보내려 했어요. 그건 마치 돈을 빌리고 딸을 그 댓가로 일보내는 것과 같았죠. 저와 같은 경우예요. 운좋게도 누군가가 그 부모에게 집주인을 소개해서 돈을 빌릴 수 있게 됐고, 그래서 Malee가 이 집에 일하러 오게됐어요. 집 주인은 Malee를 학교에 보내줬지만, Malee의 어머니가 빚을 많이 져서 Malee는 그걸 갚기 위해 일해야 했어요. Malee는 늘상 가족 때문에 힘들어했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어요. 단지 Malee가 누워서 쉬도록 하고 얘기를 나누고 TV를 보면서 농담을 하는게 다였죠. 그녀는 나에게 친절했고 타이말을 가르쳐주었지만 내가 너무 못따라했어요. 내가 외출하고 싶을 때는 데리고 다녀줬죠.
타이 노동자들이 나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고, 신경쓰지도 않아요. 내 자신이 그런 문제를 겪어보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옆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사탕같은 것을 나눠먹어요. 하지만 경찰은 우리를 싫어해요. 그들은 우리를 체포하고 싶어만 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Malee와 Mi Nge 이야기(1)

Name  
   류은숙  (2005-03-18 17:09:51, Hit : 248, Vote : 18)
Subject  
  
Malee와 Mi Nge 이야기(1)
-----------------------
Malee; 24살. 타이의 북부지방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6학년을 마친 후 10년간 가정부로 일해왔다. 현재, 그녀는 Ratchabath 대학에서 파트타임으로 학사 취득을 하고, 전공을 살려 가르치는 일을 찾고 있다.
Mi Nge; 22살. 버마 Shan 주의 산촌에서 태어났다. 16살이 되기전에 그녀는 치앙마이(태국 북부도시)에 일자리를 주선 받아 왔으나 월급 없이 일해야 했다. 그래서 도망쳐서 식당과 옷공장에서 일했다. 현재 그녀는 결혼해서 Mae Sai지방에서 행상을 하고 있다.
--------------
Malee와 Mi Nge는 비슷한 또래의 여성입니다. 그들은 어떤 큰 집에서 함께 일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언론의 표제나 인터넷의 의견들은 버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을 어떤 편견과 경멸을 갖고 보게 합니다. 이주자의 삶을 언론을 통해 볼 때 그 배경이 되는 것은 민족주의 사관입니다. 여기에는 이미 그들 자신의 의견은 한마디도 없이 노동자들에 대한 선 또는 악(대개는 악으로)의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Malee와 Mi Nge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전혀 흥미진진한 것이 아니고 권선징악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단지 가정부로 일한 평범한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매일 매일 이들은 바닥을 쓸고, 설거지를 하고, 정원을 가꿉니다.


그녀의 고향은 매우 달라요. 실제로 그녀의 종족 사람들은 땅을 갖고 있었지만, 경작해낸 건 뭐든지 버마군인들에게 넘겨야했어요. 농작물을 넘기지 않으면, 군부는 그냥 땅을 몰수했을 테니까요. 세금 또한 아주 높았어요. 그리고 댓가를 못받고 군부를 위해 일해야 했어요. 나는 버마가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Mi Nge는 한번 팔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돈도 못받고 강제로 일해야 했지요.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 있기도 했어요. 그때 줄곧 울기만 했다고 Mi Nge가 말했어요. 그때 집주인이 그녀를 다시 데리러 왔대요. 그녀가 그 집에서 도망친 후에는 어떤 친구가 그녀를 똑같은 종류의 일하는 데로 데리고 갔대요. 곤란한 일이 많았대요.
공장에서 일할 때는 밤낮으로 일해야 했고, 말라리아에 걸렸을 때도 쉴 수 없었대요.

나는 신문에서 이주 노동자에 대한 나쁜 얘기를 많이 읽지만, 정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일자리를 뺐는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타이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을 싫어해요. 일부 집주인들이 돈을 잘 준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가정부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걸 더 좋아해요.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일이 너무 외롭고, 너무 자유가 없고, 고정된 노동시간도 없다고들 말해요. 이 지역의 가정부들은 대개 버마에서 왔어요. 그들은 너무 부지런해요. 일부 집주인들은 형편없는 음식에 고된 일로 함부로 대할 때가 있어요. 이주노동자에 대해 욕을 하는 그런 사람들은 Mi Nge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다른 사람을 해쳤나요 아니면 그녀가 해침을 당한 사람인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채로운 연합(2)

Name  
   류은숙  (2005-03-12 01:31:10, Hit : 677, Vote : 42)
Subject  
   다채로운 연합(2)
Shwe: 나는 이런식으로 얘기해보겠다. 버마에는 오직 두 개의 사회계층만이 있다. 군부냐 군부가 아니냐 뿐이다. 나는 정부 공무원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군인은 그 서열이 어떠하든 간에 아무 때든지 나에게 호통을 칠 수 있다. 나는 심지어 짐꾼으로 잡혀가기도 했다. 국경지대의 소수민족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어떤 사회계층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억압받고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할 뿐이다. 심지어 우리 모두가 난민이 되었음에도, 어떤 행사, 훈련, 세미나에 참여할 기회는 으레 좋은 교육을 받은 버마인들이 주로 운영하는 단체들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인권, 발전, 정치 등과 같은 주제를 배울 수 있는 우리 자신의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해야 한다.

Lwi: 그리고 그런 교육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다. 지식의 측면에서나 버마어의 측면에서나. 이제 우리는 버마 젊은이들과 동등하게 참여하거나 생각을 교환할 수 있다.

Shwe: Shan족과 Karenni 족 젊은이들이 4년전에 시작한 워크샵 시리즈 참여자들이 포럼을 조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젊은 소수민족간에 협력과 우정을 건설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올해 우리는 자연자원 운영과 구조분석에 대한 워크샵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의제를 토론하는 청년 교환 포럼이 준비되고 있다.
우리의 장기 목표는 젊은이들이 작은 공동체에서나 전국적 차원에서나 잘 준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화 이행은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전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Lwi: 우리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는 젊은이들간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공동의 기반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Shwe: 우리가 여기에 평화를 찾아 왔으며 어떤 문제도 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타이 친구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고향에는 인권침해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 머무르는 것이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많은 타이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여기 머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인이나 타이 젊은이들의 네트워크와 협력해야 하는데 나는 타이말을 할 줄 모른다. 어쨌든 노력중이다. 우리가 만들려 하는 소수민족 연합은 새로운 사회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는다. 나는 확신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다채로운 연합(1)

Name  
   류은숙  (2005-03-08 01:11:43, Hit : 307, Vote : 28)
Subject  
   다채로운 연합(1)
* 긴 글이라 우선 절반만 번역했습니다. 다음에 이어서 올릴께요.


다채로운 연합

독재권력은 국가의 '통합'을 강제하면서 선주민들을 억압해왔고 수백만명이 버마를 떠나도록 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이 Shan 주 출신의 Paluang 여성 Lwi와 Karenni 주 출신의 Kayan 남성인 Shwe이다. 오늘 나는 이 둘을 방문하여 차를 마치며, 젊은 인종적 소수민족간에 새로운 의미의 "통합"을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얘기 나눌 기회를 가졌다.

Lwi: 어렸을 때, 정부 학교에 다녔어요. 그 당시에는 버마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했죠. 하지만 동시에 나는 혼란스러웠어요. 문제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는 어쨌든 열등한 존재로 취급받았거든요. Paluang이 군사정권과 휴전협정을 맺은 후에, 버마 군인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머물렀고, 군인들은 마을에서 씻을 수 있는데 우리는 정글 속으로 씻으러 가야만 했어요. 마을에서 물을 조금 썼다고 내 친구와 나는 거의 죽을뻔했죠. 난 겨우 12살이었어요.

Shwe: 내 두눈으로 봤어요. 술취한 버마 군인이 Karenni 족 짐꾼의 입에 칼을 쑤셔넣었어요. 그는 단지 재미로 그런 것인데, 짐꾼의 목구멍 근처까지 칼을 휘저어댔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죠. 국경지대의 Karenni 저항그룹과 함께 살기 전까지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나서 분명해졌죠. 인간으로서, 그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 말이죠. 나는 무장투쟁의 원인과 민족 분쟁의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버마에서의 주요 문제가 민족 갈등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민족 갈등이 군부 독재 체제와 얽혀있어요. 유엔 결의안은 버마정권과 NLD(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소수민족 삼자간 대화를 지지하고 있어요. 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들 소수민족인가요? 수십여개의 정치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한 목소리로 합해져야 해요. 모두가 한 목소리로 같이 융화된다는 것이 이상한 생각은 아닐 거예요.

Lwi: 우리는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젊은이들을 한데 모으고 싶어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해야만 하는지를 알고 있어요. 버마인들과 적이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사회를 가질 권리가 있어요. 어떤 활동은 버마 젊은이들의 참여를 포함하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통합하고 있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핌에게서 온 편지

Name  
   류은숙  (2005-03-03 13:58:17, Hit : 297, Vote : 40)
Subject  
   핌에게서 온 편지
핌에게서 3월 3일 온 편지입니다.
---------



친구들에게

지난 몇 달 동안의 여러분의 지원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기는 여름이 오고 있고, 우리들은 매우 바쁩니다. 올해의 첫 두달 동안 정기적인 출판사업 외에도, 국경지대의 프로그램을 준비해왔습니다. 준비의 대부분은 협의를 말합니다.

지난달에 저는 Mae La 난민캠프에 있는 카렌여성단체의 친구들을 방문했습니다. 이 캠프는 타이에 있는 난민캠프중에 가장 큰 것으로 4만여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캠프는 21년 전에 세워졌고, 아주 크고 도시처럼 붐비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회문제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의 여성단체는 가정폭력과 여성과 아동 인신매매를 현재 주요 사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단체가 저를 초청하여 그 문제에 대처하는 일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캠프내의 난민들에게는 노동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담장 속에 살아야 하며 허가 없이는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은 탈출구를 찾으려 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타이에서 성장하는 동안, 인생의 대부분을 난민으로 살아왔고 캠프내의 학교에 다녔고,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는 모두가 다닐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는 훨씬 적습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절망감을 느낍니다. 매일 학교에 다니는 일에 익숙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일상 생활에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난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나오면, 불법 이주자이고, 타이말을 할 줄 모르고, 바깥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착취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녀와 여성들은 가정부나 성매매에 강제로 팔려갑니다. 타이 정부당국이 정보를 입수하여 그들을 구조한다할지라도, 그 여성들은 정부의 비상쉼터로 보내져 영원히 거기에 머물러야 합니다. 법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집으로 보내져야 하겠지만, 난민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있는 집조차 없습니다. 그들의 집은 버마군에 의해 불태워지고 파괴됐으니까요. 피해자들이 난민캠프로 돌아가는 일도 드뭅니다. 그들을 다루는 절차가 모든 관계 기관에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언제가 될지 모를 때까지 쉼터에 머물러야 합니다.

정책과 법규를 바꾸려고 노력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카렌여성단체와 우리가 함께 노력하는 것은 예방 프로그램입니다. 우리는 몇 달동안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해왔고, 이렇게 합의했습니다.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캠프 밖에 나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나가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고 캠프탈출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녀와 여성들은 바깥 상황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어야 하고, 일단 밖으로 나가게 되면 처하게 되는 사회적·법적 상황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다음달에 캠프를 다시 방문하여 관련자들과의 첫 워크샵을 어떻게 시작할지를 의논할 겁니다. 4월에 있을 워크샵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계획하는 첫 발걸음이 될 겁니다.

이 캠프에 이어 저는 또 난민들이 모여사는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의 학교에서 우리는 아동의 인권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학교 사람들은 한국의 친구들이 비용의 일부를 지원했다는 소식에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 워크샵은 7개 학교의 교사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교사들 스스로가 제안한 것으로서,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아동의 인권을 증진하는 교사들의 능력향상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들 교사들 대부분이 난민캠프 출신의 젊은이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과 민중에게 뭔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국경없는 친구들'에 속한 우리들이 좌절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느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난민 친구들과 말하거나 만날 때마다, 우리는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내적 힘을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내일의 태양, 또 그 다음 내일의 태양을 향해 우리는 단지 서로를 격려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매우 먼 곳에서 우리를 후원해주는 여러분 모두가 이러한 힘과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의 우정에 또 한번 감사드립니다.

Pim Koetsawan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년3월2일 후원금 송금내역

Name  
   류은숙  (2005-03-02 15:16:47, Hit : 241, Vote : 25)
Subject  
   2005년 3월 2일 후원금 송금내역
힘찬 3월이 시작됐습니다. 요즘 부는 바람은 '봄' 바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겨울바람과  다른 향기와 기운이 느껴집니다. 만원계 회원 여러분 모두 봄기운와 더불어 상승하는 한달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음과 같이 2월달에 모아진 후원금을 오늘 송금했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1월 잔액 45,835원
2월 1일 김태* 1만
2월 3일 조대* 1만
2월 17일 김재* 2만
2월 18일 유해* 1만
2월 21일 황수* 1만 5천
2월 25일 이민* 1만
2월 28일 이민* 1만
            구태* 1만
            류은* 1만
-----------------
계: 150,835원


송금액: 150 달러(156,909원)
잔액: - 6,074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Name  
   류은숙  (2005-02-23 21:37:56, Hit : 682, Vote : 22)
Subject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아픈 날

글쓴이 Shine Shan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행복한 순간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소중한 꿈이 땅바닥에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그건 당신 때문일 겁니다. 당신은 내가 무너질 때마다 항상 거기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공허함을 느끼는 날마다, 내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다리는 곳이 있다는 것을 당신은 상기시켜줬습니다. 그곳은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가 나를 사랑해주는 곳이고, 내가 아주 오랫동안 그들을 떠나 있었다할지라도 결코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곳입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아픕니다. 내 모든 신경이 타버렸고 갑자기 얼어붙었습니다. 마치 돌멩이와 모래가 가득찬 듯이 목구멍이 아픕니다. 피로감이 눈을 짓누르지만 들뜬 열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때, 나는 내가 다시 깨어날지 말 지에 개의치 않습니다. 단지 영원히 잠만 자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알거나 듣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는 국경에서 들려온 고통스런 뉴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소식이 단지 악몽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상 Karenni 민족이 사는 곳에 어떤 전투도 없고, 군인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가족들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그 뉴스는 사실입니다. 새해가 지나고 얼마되지 않아, 버마군대가  Karenni 민족진보당의 기지를 포격했고, 이곳은 2만명이 넘는 난민이 있는 Mae Hong Son과 Karenni 난민캠프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이 전투 때문에 나는 Anthony와 Sebasian을 생각합니다. 2년전에 그들을 만난 이후로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Anthony는 내가 처음으로 사귄 Karenni족 친구입니다. 오늘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그가 '버마 내'로 들어갔다는 것이고, 이것은 그가 난민 캠프를 떠나 Karenni 주로 갔다는 얘깁니다. 우리는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족이 너무 그립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난민캠프에서 성장한 사람이 되돌아가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버마군부는 전쟁에 이기려 하고 소수민족을 불신하기 때문에 끝없는 억압, 고문, 인권침해가 자행됩니다. Anthony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큰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에, 나는 Sebastian이 자원하여 전선에 나가지 않았을까 염려됩니다. 지금쯤 고등학교를 마쳤을 텐데, 졸업하고 나서 영어선생님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었는데...다른 한편, 그는 평화가 오지 않는 한, 총을 드는 일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가 지뢰밭과 전장의 잔인함에 생명을 걸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런 위험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깨고 잠들기를 반복하는 속에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나는 갑자기 종족간의 화합을 기뻐하는 갈채소리를 들었습니다. 전쟁으로 한번 찢겨졌던 땅에 평화가 정착하기로 했습니다. 난민들은 행복하게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친구들이 함게 살았던 옛시절을 재건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Anthony가 들판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Sebasian이 지역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걸 봅니다. 어떤 공포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나도 거기에 있습니다. 따뜻한 햇볕아래, Karenni 주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속에...

그때 나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영원히 잠들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병에서 벗어나서, 그런 아름다운 광경이 단지 내가 열에 들떠 꾸었던 꿈이 아닐 수 있도록 뭔가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나는 뭔가를 시작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오래 떨어져있던 집에 돌아가는 날이 되면, 나는 이 아름다운-꿈이 아닌 현실을-가족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여기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