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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달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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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2-27 16:58:36, Hit : 253, Vote :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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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달의 소원
오늘 우편으로 '국경없는 친구들'에서 달력이 하나 왔습니다.

달력 제목이 '12달의 소원'인데 아이들의 사진과 아이들의 소원을 담아 12달의 소원으로 만들었군요.

12달의 소원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월의 소원: 우리 친구들이 시민권을 획득할 때에요!
2월의 소원; 사랑의 달, 폭력없는 가정은 모든 아이들이 누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3월의 소원; 야생의 꽃이 피어나는 여름; 아이들에 대한 인신매매가 없어지길 바래요.
4월의 소원; 타이의 설날이 있는 4월; 모든 소수민족의 친구들이 자부심과 열린 눈으로 자기 문화를 누릴 수 있기를
5월의 소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아이들이 감기에 걸리는 5월; 우리 아이들 모두가 어른들에게 돌봄을 받을 수 있기를
6월의 소원;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수 있는 것; 우리는 생각하는 걸 배우고 꿈꾸고 싶어요
7월의 소원; 7월에는 바깥에서 놀기에는 너무 축축해요. 모든 아이들에게 미디어와 정보에 대한 권리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8월의 소원; 푸른 8월은 우리 부모님에게 선물이예요. 생계가 보장돼서 모든 아이들에게 음식을 줄 수 있기를
9월의 소원; 비와 땅의 노래에 귀기울여요. 우리의 의사표현에 항상 귀기울였으면
10월의 소원; 10월은 아이들의 노래와 함께 와요. 우리는 건강한 환경속에서 살기를 원해요.
11월의 소원; 11월은 금쪽같은 햇살로 인사해요. 세상을 밝게 만드는데 참여하는 모든 아이들을 환영해요.
12월의 소원; 전쟁없는 세상, 진정한 평화가 있는 삶이야말로 모든 아이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새해 선물이예요.

**달력 사진은 다음 기회에 파일로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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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2-18 20:33:21, Hit : 259, Vote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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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기능을 없앱니다
여러분도 보셔서 아시겠지만 댓글에 스팸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게시판을 조정하여 불량단어 등록도 해보고, 매일 지워보기도 했지만 더이상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어서 댓글 기능을 없애려 합니다. 즉 화면상 댓글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댓글 기능을 없애더라도 만원계 회원분이라면 언제든지 게시판에 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이 아닌 그냥 쓰기 기능으로요. 다른 만원계 활동상황도 그렇고 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이 게시판이 스팸이 난무하는 곳으로 변한게 안타깝네요. 그럴수록 더 자주 찾아주세요.

제가 요즘 밀린 일 때문에 글 자주 못 올리는 것 이해해 주시고요. 그나저나 그저께 눈내리는 것 보셨나요? 저는 아르바이트 하는 곳에 있었는데 숲이 우거진 곳이라 정말 눈내리는 것 예쁘게 보았답니다. 누가 배경으로 사진도 박아줘서 갖고 있습니다. 훈훈한 연말 보내시고요, 새해에는 정말 영화상영회 때 꼭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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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계의 마이너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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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환  (2006-12-11 10:06:53, Hit : 304, Vote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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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원계의 마이너스ㅜㅜ
이런 계모임이 마이너스란 어쩌란 말인가요?
이런 난감할때까 계주가 돈가지고 도망간 것도 아니고 아무래도 마이너스는 계주가 내는 것 같은데,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야할 것 같습니다.

재정흐름을 1년동안 보아 와서 예상되었지만, 올해가 가기전에 한번 모였어야 이런 파국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다른 계원님들의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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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an의 곤경에서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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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2-08 11:30:54, Hit : 244, Vote :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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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yan의 곤경에서 배우는 교훈
잡지 [국경없는 친구들]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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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an의 곤경에서 배우는 교훈
(Chupinit Kedmanee, Srinakarintarawiroj 대학 교육학과 교수, 소수민족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가)

온라인 신문인 Prachatai에 지난 7월 보도된 내용은 이렇다.  Mae Hong Son 주지사가 지자체 치안과 행정 당국에 명을 내렸는데, 긴 목을 가진 카렌족 사람들을 Ban naisoi와 Huay Sue Tao에서 이주시켜 다른 지역에 있는 보호구역에 합쳐 살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Mae Hong Son의 관광산업을 위해서였다. 이 명령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가까운 난민캠프로 보내거나 버마로 추방하겠다고 했다. 또한 주지사는 내무부에 요청하여 카렌족의 뉴질랜드 이주를 허용하지 말라고 했다. 뉴질랜드의 민간단체들이 ‘인간 동물원’(관광객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카렌족 보호구역을 말함)의 존재를 염려하여 카렌족의 재정착 방안을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 후에 취한 조처였다.

‘긴 목을 가진 카렌’으로 흔히 얘기되는 사람들은 카렌어족에 속하는 소수민족이다. 그들 스스로는 ‘Kayan'이라 부르며 ’Padong'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Kayan은 버마 내전에서 도망쳐 나와 타이에 난민으로 살고 있다. 그런지가 20년이 넘는다. Kayan의 현재 처지는 지역의 수입을 늘리려는 지자체 당국의 경제적 도구이다. Kayan에게는 어떤 형태의 법적 지위도 없다. 즉 이들은 20년이 넘도록 직업을 찾거나 농사를 짓기 위해 지역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 당국의 지도아래 관광객들에게 나오는 수입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계속되고 있다는 건 중앙정부나 지역정부나 인권 인식이나 인권에 대한 인정이 모자란다는 것을 드러낸다. 타이가 Kayan을 20년이 넘도록 다뤄온 방식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타이인의 무지를 보여준다. 불복종하는 사람들을 난민캠프로 보내거나 버마로 강제추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불교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

Kayan이 20년이 넘도록 지역 경제 성장에 보탬이 되었는데, 당국은 그 보상으로서 이들에게 시민권을 주지도 않았고 적어도 외국인으로서의 법적 지위도 보장하지 않았다.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고 지역에 계속 가둬두겠다는 것이다. 이런식의 개념과 태도가 지난 2십년 동안 모든 지역의 수장들에게 전해져왔다. 시민으로 간주될 기회를 얻기까지 한 인간이 타이에 얼마나 더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20년이란 세월은 국제적으로 채택된 기준보다 훨씬 긴 것이다. 모든 것을 소위 ‘당국의 고려’나 개인적 판단에 맡겨두기 보다는 뭔가 분명한 기준과 규범이 필요하다.

이러한 Kayan의 곤경은 인권에 대한 인식의 씨앗을 모든 수준의 국가 공무원에게 뿌릴 필요가 있음을 알려준다. 타이의 교육 체제는 너무 오랫동안 인권의 요소를 무시해왔다. 어떤 단계의 교육에서도 인권교육이란 없다. 그 결과, 우리의 교육체제는 국가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전문영역에서 완전한 인권 문맹자를 낳고 있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보다 인권을 침해를 기회를 더 흔히 갖는다. 소외된 사람들, 특히 난민과 이주자는 온갖 형태의 인권침해와 차별을 겪는다. 단지 그들이 타이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권이 국적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에 교육시키고 인식을 향상시키기 위해 손을 맞잡을 때이다. 타이사회가 인간다운 사회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모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인간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모든 사람에게 강력하게 심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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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후원금 송금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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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2-01 12:21:30, Hit : 249, Vote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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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1일 후원금 송금 내역]
12월입니다. 날씨 때문인지 12월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군요. 정리하려 하지 마시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12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달 후원금 송금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10월 잔액 -56,885원

11월 1일 이윤* 1만원
11월 10일 연상* 1만 5천원
11월 24일 구태* 1만원
11월 27일 이민* 2만원
11월 29일 황수* 1만5천원
11월 30일 류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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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모금액 8만원
12월 1일 송금액 150달러+수수료 5천원=145,185원
잔액 -122,07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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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선 투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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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1-29 01:06:19, Hit : 196, Vote :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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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경을 넘어선 투쟁(1)
앞서 소개한 Kyaw와 Soe의 이야기처럼 핌이 쓴 책 ‘햇살을 찾아’에 실린 글입니다.

요즘 제가 새로 단체 설립하고 개인정보에 관련된 송사도 있고 해서 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자주 못올리는데 만원계 게시판에 각종 스팸이 난무하는게 가슴이 아프네요. 여러분들 침묵을 그치시고 얘기좀 많이 남겨주세요. 그래야 스팸이 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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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선 투쟁(1)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버마 민중이 봉기한 이래, 그러니까 1988년 이래 버마의 땅은 피로 칠해졌다. ‘국가법과 질서 회복 위원회(SLORC)’의 잔인한 독재는 ‘국가 평화와 발전 위원회(SPDC)'로 이름을 바꿔서 이미지를 쇄신하려 했다. 풀뿌리 시민들은 희망의 징조가 없는 계속된 봉기에 직면했다.

1948년 독립후에 이어진 내전은 소수민족 지역을 황폐화시켰고, 현재의 정권은 전국을 파멸로 이끌었다. 버마의 현상은 이웃 국가들, 특히 타이에 넘쳐나는 수많은 난민들의 숫자에서 가장 분명하다. 이들은 국경지대의 난민 캠프를 찾을 뿐 아니라 타이 전역에 이주 노동자로 흩어져 있다. 난민, 난민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눈을 보면 사람은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사연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타이내의 백만이 넘는 버마난민의 존재는 캄보디아의 회원자격을 지연시키면서 버마의 회원자격을 인정해준 아세안(ASEAN)의 맹목을 확인시켜준다(동남아시아국가연합인 아세안은 타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네이, 베트남, 라오스, 버마로 구성돼있다). 아세안의 무지는 다음과 같은 한 지도자의 정당화 발언에 반영돼있다. “캄보디아에서는 뭔일이 벌어졌지만 버마에서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아, 압제, 종족전쟁에 직면하여 버마의 보통사람들은 고향 바깥에서 운을 찾아야만 했다. 착취와 불안으로 소스라치는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희망을 찾아 떠났고 브로커와 에이전트의 사기에 충동질 당했다. 잠을 자든 깨어있든간에 외국에서의 공포의 삶이 고향에서의 기아와 무기력함보다 나아보였다. 타이는 버마돈으로 고국에서의 자유를 살 수 있을 만한 상당액수를 저축할 수 있는 버마인에겐(희망사항이지만)  희망의 땅이 되었다.

이런 사람들에겐 “불법 이주 노동자”란 딱지가 붙었다. 이 낙인은 고립과 차별을 고무시킬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용어는 이 사람들이 단지 돈을 벌려는 경제적 이주자일 뿐이라는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는 버마에서온 난민 중에서 가장 적은 공감을 받는 이주자이다. 이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으로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로 인식된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할 뿐이다. 그러나 버마의 경우에, 인권침해와 현재의 내전이 악명높은 곳에서 ‘이주 노동자’, ‘난민 노동자’, ‘피난처를 구하는 사람’, ‘정치적 난민’은 분명하게 구분될 수 없다. 이들이 어떻게 분류되느냐에 상관없이, 이 모든 사람들이 정치적 폭력과 비인간적 조건에서 도망쳐나왔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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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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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1-27 15:56:50, Hit : 208, Vote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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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네요
이걸 가을비라 해야할지 겨울비라 해야할지 헷갈리네요. 계절이 뒤죽박죽이라...

아래 게시물들에 스팸댓글들이 잔뜩 달려서 지우느라 좀 손목이 아프네요.

다름 아니라 영화상영회 진행상황을 알려드리려고요.

원래 11월에 상영회를 가지려 했는데, 핌에게서 받은 DVD가 일부 손상된 것이라 다시 연락해서 받고 나니 11월 말이 되버렸습니다. 12월은 학생들 방학이라 성공회대에서 행사하기가 좀 그렇구요.

그래서 새로운 계획이 생겼습니다. 성공회대 인권평화센터에서 Peace Ride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 중에 영화상영회를 포함시키는 겁니다.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평화기행인데 한국에 와있는 동남아시아인들과 그들의 출신국에서 여러 인권문제와 관련된 인권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좌담, 영화상영 등 문화행사, 한국에서 인권과 평화 관련한 의미있는 곳을 선정하여 방문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될 것 같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마 내년 초가 되겠지요.

11월도 거의 다갔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겠지요. 그런 마음으로 11월을 떠나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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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6] Kyaw와 Soe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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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1-16 22:53:35, Hit : 177, Vote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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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6] Kyaw와 Soe 이야기
[햇살을 찾아 6] Kyaw와 Soe의 이야기

98년 2월, Soe가 Mon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걸 처음 볼 기회를 가졌다. 그는 우리를 Mon족의 날에 방콕 교외의 한 절로 우리를 초대했다. Soe는 아주 행복해보였고, 우리를 초대한 주인이 될 기회를 가진 걸 자랑스러워했다. Soe는 그전에 일했던 경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사장으로 옮겼고 Kyaw와 그 여동생 가족을 데려올 생각이었다. 나는 Soe가 Mon족 해방 운동을 진심으로 지원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그 운동을 위해 Halokani에 있는 조직에서 일하기도 했고, 같은 마을 출신의 친구이자 Mon족 해방운동의 지도자인 한 사람의 연락처를 갖고 있었다. Soe는 그 사람을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Soe가 거의 굶어죽을 지경일 때 소위 지도자는 어디 있었는지를 묻고 싶었으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기회가 없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Soe를 그의 일터로 데려다 주려 차를 돌려서 갔다. 그러나 거기 도착했을 때 그곳은 비어있었다. 경찰이 모든 이주 노동자를 체포하러 들이닥쳤던 것이다. Soe는 Hua Mark 경기장으로 되돌아갔고 거기서 여동생한테 들었다. 한 노동자가 살해됐고, 경찰이 Soe를 용의자로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Soe가 그곳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전화로 그런 얘기를 하는 Soe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고 있었다. 결국 그는 Kyaw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 불행히도 경찰은 그곳에도 불법 노동자를 체포하러 들이닥쳤다. 일자리를 찾으러 경기장으로 되돌아가는 것 말고는 모두에게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얼마 안돼서, 우리가 들은 소식은 Soe의 15살난 조카가 체포돼서 국경으로 추방됐다는 거였다. 모두가 그애에 대해 걱정했다. 왜냐하면 그 애는 정신적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을 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애는 버마말도 할 줄 몰랐다. 고통속에서도 Soe의 누이는 조용했고 강인함을 유지했다. 그녀의 다른 아이들은 튼튼하게 자랐고, 똑똑한 억양의 타이말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Kyaw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기 아들은 고향 버마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다는 거였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난 후 난 알았다. Kyaw와 그 가족들은 1살난 아들과 오직 타이말로만 대화하려고 애썼다.

***
“Thin Gyen(버마의 설날, 음력으로 지내는데 4월에 있다) 동안에 우리한테 놀러오세요. 전통 요리를 준비해서 대접할께요.” Kyaw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해 설날이 우리가 모두를 함께 본 마지막 날이었다. Kyaw는 경찰의 단속 위협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버마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가진 것 모두를 팔고 Soe와 함께 옮겼다.

“정말 보고 싶어요” Kyaw는 아들의 사진을 응시하며 말했다. “절망적이에요. 일거리를 찾지 못해 먹을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내가 뭘 어찌해야 할까요?”

마침내 Kyaw는 택시를 대절하여 그의 모든 친구들이 방콕 남쪽에 있는 이주자 마을인 Mahachai로 가도록 도왔다. 그리고 나서 그는 혼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생선 감미료 공장으로 Soe 일행을 만나러 가서 그들이 일당으로 단돈 80-130바트(약 2천4백원-3천9백원)를 받는걸 알았다. 하지만 그 일곱명은 여전히 강했고 버마군사정권 치하로 돌아가길 거부했다. 불행히도 Mon족 일행은 타이 노동자들과 다툼이 있었고 그 결과 옮겨야 했다. 고용주는 Soe의 매형을 때려서 그의 코를 부러뜨렸다. 10대인 Soe의 조카도 막대기로 맞아서 어깨와 목에 멍이 들었다. 98년 8월, Soe의 누이와 그 가족은 국경에 인근한 칸챠나부리 지역으로 되돌아갔다. Soe는 Mahachai 지역의 대대적인 단속 때문에 임시로 방콕에 몸을 숨겼다. 경찰은 생선 통조림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이곳은 이주노동자의 고용이 합법적으로 인정된 곳이다)를 포함하여 모두를 체포했다.

“난 괜찮아요.” Soe는 어느날 저녁 내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버마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알다시피 고향이 무척 그리워요. 하지만 거기에서 살수가 없어요.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에게는 어떤 곳도 허락되지 않나 봐요.”
그리고 나서 그는 고통스럽게 웃으며 전화를 마쳤다. "저기 그거 알아요? Kyaw가 곧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나는 그와 함께 쓰게 웃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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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5] Kyaw와 Soe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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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1-06 23:11:13, Hit : 212, Vote :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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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5] Kyaw와 Soe의 이야기
1997년 11월, 그 프로젝트 소유주도 마찬가지로 약속을 저버리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Kyaw와 아내는 Hue Mark 경기장에서 노동자를 모집하러 온 새로운 고용주를 따라가기로 결심했고, Soe와 그 가족들은 누군가가 그들 임금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거기 남기로 했다. 우리가 Kyaw를 알고 지냈던 기간 중에, 새로운 일터에서 보냈던 2달간이 아마도 그와 가족들에게 제일 형편이 나았던 유일한 기간일 것이다. 거기 노동자들 대부분은 타이 북동부 출신으로 Mon족에게 우호적이었고, 옷가지 등을 나눠주었다.

Kyaw가 타이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임금을 받았을 때, 그가 한 첫 번째 일은 현장 주임에게 부탁하여 아들에게 줄 목마를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Kyaw는 정말 슬펐다. 공사일이 거의 다 끝나갔기 때문에 고용주가 더 이상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아서 친구들을 그리로 데려올 수 없었다. 자기 형편은 좀 나아졌지만, Kyaw는 친구들과 같이 있고 싶었다.

그런데 Hua Mark 경기장 건설 계획은 상당기간 유예됐고,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 원래 프로젝트 소유주가 다른 회사로 프로젝트를 넘겼다. 모든 사람이 예상한대로 새 소유주는 이전 소유주가 지불하지 않은 임금에 대해 책임지기를 거절했다.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들은 격노했어요. 경기장을 태워버리겠다고 했지요. 타이 노동자들은 집회를 갖고 회사에게 항의하기로 결정했어요. 우리들 Mon족 출신과 라오스 출신 노동자들은 감히 어쩌지를 못해요. 우린 경찰이 두려워요. 우리들은 대개 경찰에게 매달 2백바트(약 6천원)을 내고 있었는데 지금 당장은 돈이 전혀 없거든요. 돈을 주지 않으면 경찰이 우릴 체포하러 올지도 몰라요.” Soe는 절망적으로 말했다.

“경찰이 정말 우릴 체포하러 올까요?” Kyaw는 절망적으로 물었다. Kyaw는 텔레비전 뉴스를 봤는데 타이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들을 추방하려 한다는 뉴스였다. “고용주가 우릴 책임질까요?” “경찰이 정말 당신들을 체포하고 추방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 작정이죠?” 나는 그렇게 묻는 것 말곤 달리 할 말을 찾지 못했다.  

“모르겠어요” Kyaw는 한숨지었다. “내가 들은 소문으로는 우릴 계속 고용하고 싶어하는 고용주가 있으면 당국에 요청해서 국경지대에서 우릴 데려갈 거라더군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어요. 결코 브로커에게 돈을 지불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처럼 경찰한테 도망치며 살고 싶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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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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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1-01 10:33:18, Hit : 253, Vote :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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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일 후원금 송금내역
11월이네요. 초겨울이어야 하는데 가을의 한복판에 있는 날씨고요. 모쪼록 겨울맞이에 몸도 마음도 넉넉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11월 1일 후원금 송금 내역

9월 잔액 19,931원
10월 2일 이윤* 1만
10월 2일 이민* 1만
10월 10일 연상* 1만5천
10월 31일 구태* 1만
10월 31일 황수* 1만5펀
10월 31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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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모금액 7만원
11월 1일 송금액 150달러+수수료 5천원=146,816원
잔액 -56,885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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