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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 4] Kyaw와 Soe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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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30 23:32:10, Hit : 145, Vote :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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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 4] Kyaw와 Soe 이야기
그 공장의 Mon족 출신 노동자의 도움으로 Soe와 Kyaw는 그들이 가진 돈의 나머지 전부인 천5백바트(약 4만5천원)에 트럭을 빌려서 Suphan Buri Province의 공사장으로 돌아갔다. 그 공사장의 인부는 Soe와 Kyaw 일행에게 방콕에 가서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하면서 그들을 위해 방콕에서 미터 택시를 불렀다. 11명을 태우기 위해서는 택시가 3번을 왔다갔다 해야 했고, 한 사람당 천5백바트의 요금이 들었다. 하지만 그 택시 운전사는 아직껏 요금을 받지 못했다. Soe와 Kyaw 일행이 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고 있고 거의 굶어죽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Mon족 출신인 Soe와 Kyaw 일행 11명이 방콕에 도착한 때는 타이의 경제위기가 터진 97년 초였다. 경제 위기 때문에 건설 일은 드물었고, 임금 지불도 자주 끊겼다. 고용주가 결국은 돈을 주리라고 믿으며, Kyaw와 Soe는 고된 일을 계속했다. 하지만, 또다른 근심거리만 생겼다. 그들의 노동 일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한 돈을 벌 수 없다는 거였다. 이동야채가게 주인은 맘이 좋아서 그들에게 외상을 주었지만, 그것만으론 전체 가족이 먹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들은 먹을 것을 찾아 공사장 인근의 연못가에서 풀도 뜯고 고기도 낚았다. 때때로 그들은 오이하고만 밥을 먹거나 볶은 쌀만을 먹어야 했다.

그들과 친해진 후에, 우리들은 신선한 음식을 가지고 그들을 방문하려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크리스챤 조직 출신의 카렌족 사람이 그들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다. 그의 주장은 타이인과 버마인(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이 자신들의 삶을 위협한다는 거였다. “버마와 거기 출신 사람들한테는 뭔가 수상한 게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진짜 피해자인 Kyaw가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려 했다. “때때로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들을 해요. 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믿지 않으려 해요.”

Soe가 말했다. “신경쓰지 마세요. 그들이 우릴 돕지 않겠다면 그러라고 하세요. 괜찮아요. 여기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Kyaw는 주장했다. “어쨌든, 난 내 돈을 받을 때까지 기다릴래요. 또 옮기고 싶지 않아요. 어딜 가도 똑같을 거예요. 하지만 경찰이 우릴 체포하려 한다면 떠날 수밖에 없겠죠.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난 떠나지 않을래요. 붙잡힐까 무서워요. 하지만 모든 일이 끝을 보게 될테니 붙잡히는게 나을지도 모르죠.”

Soe가 우리에게 물었다. “근데 공사장이 도망치면 어떡하죠? 그런 소문을 들었어요. 우린 어떻게 해야하죠?”

물론이었다. 공사장은 프로젝트 소유주에게 돈을 받은 후에 실제로 도망쳤다. 전체 노동자들이 최종 임금이라고 받은 것은 겨우 2백바트(약6천원)였다. 프로젝트 소유주는 그들 노동자 전부에게 일을 다시 하도록 재고용하겠다고 했지만 이전 공사장이 가져간 돈에 대해서는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Kyaw와 Soe 일행이 실제로 받았어야 할 돈은 만7천바트(약51만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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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 3] Kyaw와 Soe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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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27 22:29:12, Hit : 152, Vote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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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 3] Kyaw와 Soe의 이야기
브로커는 Kyaw와 Soe 일행을 왕초로 알려진 경찰관 집으로 데려갔다. 그의 부하인 타이 사람과 Mon족 사람은 일행을 사탕수수 농장으로 데려가 한 사람당 7천 바트(약 21만원)에 팔았다. 이 금액은 Kyaw와 Soe 일행에게 여행경비로 합의한 액수보다 훨씬 많은 것이었다.

Kyaw와 Soe 일행은 그 빚을 갚기 위해 3달 동안 그 농장에서 일해야 했고, 임금은 받지 못한 채 쌀과 야채, 칠리소스만을 제공받았다. 더욱이 Kyaw가 잘라낸 사탕수수의 양을 계산하고 거기서 빚을 빼보니, 고용주가 적어도 1천바트 정도를 Kyaw 부부에게 속여서 빼먹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찰관의 부하들은 비밀리에 또다른 직업을 제공하겠다고 다시 나타났다.
“브로커들은 우리를 다시는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지” Soe는 절망적인 상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웃었다. Soe는 두달 동안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후에야 자신의 이야기를 상세히 우리에게 털어놓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용주는 우리에게 임금을 주지 않으니 브로커들을 따라 갈수밖에...그곳은 Suphan Buri Province에 있는 건설 공사장이었다. 브로커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이미 빚을 갚았으니까 이번에는 진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쨌든 우리를 또한번 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가격을 높여서 한 사람당 8천바트(약24만원)에 팔았다. 공사장은 우리가 여전히 빚지고 있다고 말했고 임금을 주지 않으려 했다. 공사장은 식비라고 일주일에 25바트(약7백5십원)만 주었을 뿐이다. 난 거기서  두 달 일하고는 그 상황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Soe는 잠시 멈추더니 생각했다.

“그때 우리의 도주를 도와준 Mon족 출신 노동자가 있었다. 내 조카와 매부와 나는 그를 따라 Ratchaburi Province로 도망쳤다. 그때 생각으론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나머지 가족들을 데리려 오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어떤 좋은 일자리도 찾을 수 없었다. 대부분 고용주들은 우리에겐 임금 전부를 주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달 후에 그 왕초라는 경찰관 브로커가 Kyaw에게 나타나서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Kyaw는 우릴 속인 건 그 경찰관의 부하들이지 경찰관이 속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Kyaw는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Soe와 Kyaw는 곧 깨닫게 됐다. 그 경찰관이 데려간 공장은 나쁜 곳이었다. 노동자를 위한 숙박시설은 전혀 없고 아이들과 같이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새로운 고용주는 그 경찰관이 이미 2천 바트를 자기한테서 가져갔으니 그 돈은 당신들의 부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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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 2]Kyaw와 Soe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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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23 22:44:55, Hit : 575, Vote :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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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 2]Kyaw와 Soe의 이야기
햇살을 찾아 2

우린 Kyaw와 그 가족을 9달 동안 알고 지냈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기쁜 동시에 헤어짐이 슬펐다. Kyaw의 타이에서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잘 알기에 그리고 그가 얼마나 버마의 Mon주에 있는 고향의 푸른 하늘과 푸른 들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지를 잘 아는 우리는 기뻤다. 또한 슬프기도 했다. 우리가 또한 잘 알고 있는 사실은 버마의 Mon주에서의 생활이 타이에서보다 결코 쉽지 않으며, 더 억압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Kyaw와 Soe를 처음 만난것은 1997년 9월 초, 방콕의 Hua Mark 경기장 건설지에서였다. 이 경기장은 98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건설되고 있는 많은 경기장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에, 건설업주가 임금을 2달이 넘도록 지불하지 않고 있었고, 임금 주겠다는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좀 더 기다리라고 가끔씩 2백 바트에서 5백 바트(약 6천원-1만5천원)가 주어졌다. 일부 노동자들은 새 일자리를 구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버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온 불법 이주자여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굶주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선 기관에서 제공한 쌀과 조리용 기름만으로 버텨야 했다.

나는 물었다. “Kyaw, 정확히 받을 돈이 얼마예요?”

“모르겠어요. 그들이 먼저 일부터 하라고 했어요.” Kyaw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타이 농촌 사람들의 그것처럼 정직했다.

“이 일 하기 전에 다른 직업들은 어땠나요? 임금을 얼마나 받았어요?”

“역시 모르겠어요.” Soe는 순진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타이에 도착한 뒤로 임금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Kyaw와 Soe는 같은 지역출신이지만 마을은 달랐다. 둘은 운명적으로 11명의 무리에 섞이게 됐다. 둘은 타이에서 추방된 난민들을 위한 저임금 노동시장인 Halokani(Mon주 바로 안에 있는)에서 만났다. Kytaw의 가족 셋, Soe, 그리고 Soe의 누이의 가족 7명이 한 무리가 되어 타이의 칸차나부리 지역에서 직업을 구해준다는 조건으로 같은 브로커에게 4천5백바트를 지불하는데 동의했다. 그때, 이후로 이들 11명은 서로 헤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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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찾아 1]Kyaw와 Soe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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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14 02:20:44, Hit : 638, Vote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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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찾아 1]Kyaw와 Soe의 이야기
사무실 이삿짐을 싸다가 몇년간 찾아도 못찾았던 핌이 썼던 책을 발견했습니다. 버마출신 이주 노동자들을 인터뷰하여 핌이 쓴 책으로 제목은 '햇살을 찾아-타이에서 살아가는 버마 이주노동자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책을 소개하고 싶었도, 아무리 뒤져도 안나와서 안타까워했었는데, 이삿짐을 싸다보니 엉뚱한 서가에 꽂혀 있더군요. 앞으로 자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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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 전화걸고 있어요’ 친숙한 목소리가 전화선을 통해 들려왔다. ‘버마쪽에 있어요. 고향으로 가려해요.’

난 물었다. ‘우린 다시 못보겠네요. 그렇죠’

‘모르겠어요. 아내와 아들이 어쩌고 있는지 보러가야만 해요. 내가 여기 머물수 있다면, 다시 볼수있겠지만, 타이는 내가 여기 머무는걸 허용치 않으니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는 잠깐 멈칫거리다 말했다. ‘당신이 보고싶을 거예요.’

‘Kyaw, 돌아가서 뭘 할 작정이죠?’

‘모르겠어요...’ 침묵이 흘렀다. ‘내가 무서운건 버마군부가 철도일을 강제로 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내 가족은 굶주리게 돼요. 내가 가장 걱정되는 건 아내가 홀로 고향에 돌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고향에는 남자가 전혀 없기 때문에 군부가 대신에 아내를 끌고가 강제노동을 시킬 거예요.’

Kyaw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아마도 타이 국경쪽에 살러 올까 싶어요.’

1998년 6월, Kyaw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Mon족 출신으로 15살 나이에 자원하여 Mon족 저항운동에 가담했다. 그일이 있기 전에 그의 부모는 고생 끝에 죽었고, 가족의 땅은 군사정권에 몰수됐다. 4년이 지난 후 Kyaw는 전투지대를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후 그는 10여년을 난민이자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국경지대를 떠돌았다. 결혼 후에 Kyaw는 아내와 생후 4달된 아들을 데리고 타이로 왔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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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후원금 송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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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09 17:10:51, Hit : 716, Vote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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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후원금 송금액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내내 아르바이트하느라 연휴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책상에 앉는 시간이 없었기에 좀 다른 시간을 보냈다고나 할까요.

오늘 다들 피곤함을 느끼실텐데 빨리빨리 피곤 푸시고 10월을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우울한 얘기들로 가득찬 뉴스를 굽어보는 양 오늘은 하루종일 뿌옇네요.


지난달 잔액 100,513원

9월 1일 이윤* 1만
9월 1일 이민* 1만
9월 5일 황수* 1만 5천
9월 11일 연상* 1만 5천
9월 27일 구태* 1만
9월 30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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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모금액 7만원

10월 9일 송금액 150달러+수수료 5천원=150,582원
잔액 19,931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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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송금이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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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10-04 23:31:32, Hit : 653, Vote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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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송금이 늦어졌습니다
한가위 연휴 잘 보내고들 계신가요? 처지에 따라 괴로운 주간일수도 있고 쉴 수 있는 주간일 수도 있고 저마다 다른 명절일 것 같은데, 모쪼록 즐거운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연휴내내 아르바이트인지라 인터넷 뱅킹 시간을 맞출수가 없네요. 그래서 10월달 후원금 송금을 부득이하게 다음주로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핌에게는 메일로 사정을 얘기해 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무실 이전 문제로 요즘 좀 정신이 없습니다. 이번 연휴가 끝나는대로 영화상영회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텐데요.

그럼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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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줄거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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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9-22 20:59:51, Hit : 628, Vote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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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줄거리]2
영화를 안봐서 그런지 스크립터 만으로는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마 Muga라는 아줌마가 주인공이고, 그 집에 같이 사는 고아소년, 태국에서 학업중인 아가씨 한명이 있고, 방문객과 얘기를 나누는 것 같군요. 주로 난민 아동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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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The Sky

텅빈 학교 밖
Outside the vacant school

도망간다고? 좋아!  도망가면, 내가 쫓아갈테니
"Will you run?  OK!  You run, I'll chase you."

학교에서
In the school

너는 학교에 있어야돼.
"You should be here."
헤이, 이것 좀 봐
"Hey, look at this !... "
선생님 집이 아니고?
"Not at the teacher's house, is it?"
오! 우리는 그림 그리고 있어요.
"Oh!  We are drawing."

언덕에서
On the hill

엘도시의 노래: “저항이 시작되고...”
EDS "Begin to rebel against…."

무가의 집
Muga's house

MG: 타이에서 이상한건, 학교에서 아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MG: It's strange that in Thailand, the school won't accept your boy.

BL: 맞아요. 평지 사람들은 우리(고산지대 사람들)와는 생각이 달라요. 학교에 말하러 갔었는데 신분증이 없는 아이랑 고산지대인 신분증을 가진 아이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아요, 오직 타이 신분증을 가진 아이만 받아들여요.
BL: Right, Sis.  The lowland people think differently from us.  I went to talk with the school.  They don't accept kids that have no ID and no highlander's card.  They take only people with Thai ID.

MGL 엘도시! 이분은 Mae Wa의 아빠야. 오늘밤 우리랑 지낼거야.
MG: Eh Doh Shi!  This is Mae Wa's dad.  He's going to spend the night with us.

EDS: 안녕하세요. 아저씨.
EDS: Good afternoon, uncle.

MGL 당신 아들 Mae Wa와 엘도시는 같은 반이예요.
MG: Your son Mae Wa and Eh Doh Shi are in the same class.

BL: 당신 셋만 여기 사나요?
BL: Only three of you live here?

MG: 예. 우리 셋만요. 제 남편은 한참 전에 버마로 갔어요. 가끔씩 나오는데, 이제 2년 됐네요. Gloh에 대해 말하자면, 학교를 여기서 마친후에 돌아갈지 어떨지 전 모르겠어요.
MG: Yes, only three. My husband went inside a while ago. He comes out once in a while. Now it's been 2 years since he was back.  As for Gloh, I don't know if she'll go back there once she finishes her studies here.

BL: 저 얘는요?
BL: How about the boy?
MG: 저 애는 고아예요.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MG: He's an orphan. His parents are gone.


Night
BL: 우리들 각자는 일종의 문제를 겪어요.
BL: Each of us faces some kind of problem.

MG: 그렇죠. 하지만 당신들 태국 사람들은 그래도 나아요. 당신들은 우리처럼 도망쳐야 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MG: Yeah, but it should be better for you people in Thailand. You didn't have to run away like us

BL: 흠, 전투야 없죠. 하지만 산림부가 우리 땅을 빼앗았어요. 당국은 난민들을 그땅에 살게하고 그대신에 우리에게 쌀을 줘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공짜 쌀이 아니예요..
BL : Hmm.. There's no fighting.  But the forestry department took our land away. They let refugees stay there and gave us rice instead. But free rice isn't what we want.

BL: 물론 아니죠! 우리 난민들도 공짜 쌀을 먹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들도 우리 자신의 생계를 꾸리고 싶어요.
BL: Of course not! Even we refugees don't want to eat free rice.  We want to make our own living too.

MG: 당신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님을 구해보려 해요.
MG: I think I'm going to look for a teacher to go teach kids in your village.

BL: 고마워요. 마을 사람들이 선생님을 지원할 수 있어요. 그래야 자녀들이 멀리 공부하러 갈 필요가 없죠. 이봐, 조카! 내 아들 공부 잘하나?
BL: Thanks, Sis!  The villagers can support the teacher themselves so their kids don't have to go study far.
: Hey, Nephew!  Does my son study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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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쿠데타...핌에게서 온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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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9-20 14:42:04, Hit : 621, Vote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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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 쿠데타...핌에게서 온 메시지
한국의 친구들에게

군사 쿠데타에 대한 뉴스를 기다리면서 밤새도록 자지 못했다. 마지막 쿠데타는 15년전에 있었다.
너무 슬프다. 우리는 탁신 수상이 물러나기를 원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

지금 쿠데타 세력은 BBC, CNN 등 국제 뉴스 기관에 대한 연결을 끊었다. 우리는 오직 인터넷을 통해 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은 막 20분 전에 선포하기를 전국이 계엄령 하에 있다고 했다. 계엄령 하에서는 5인 이상이 모이는 어떤 집회도 허용되지 않는다. 과학기술부는 명령을 내렸는데 ‘개혁’을 ‘방해’하는 인터넷상의 어떤 뉴스나 의견도 제한하고 삭제할 것이라고 했다.

오직 쿠데타를 지지하는 인터뷰만이 TV에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은 탁신이 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모든 독립적인 기관들과 함께 헌법은 유예됐다. 선거위원회는 새로 선출됐고 헌법 재판소는 4월의 총선거가 비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오늘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검은 옷을 입었다.

핌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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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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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9-18 08:18:18, Hit : 820, Vote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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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줄거리]1
그동안 제가 좀 많이 바빴습니다. 그래서 영화 상영회를 제쳐두고 있었는데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영화 스크립터를 조금씩 번역하기로 했습니다. 나중에 고칠 것을 대비하여 영어를 지우지 않고 남겨두었으니, 혹 잘못된 번역이 있으면 지적 바랍니다.  아무래도 상영회는 추석 연휴 마친 후에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겠지요?

태풍 때문에 날씨가 무척 차갑고 거칩니다.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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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Doh Shi 의 노래

Caption
옛날에 국경이 그어졌고, 카렌 민족은 나뉘어졌다.
Once upon a time a border was drawn,
and the Karen people were divided.
오늘날 국경선의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버마와의 내전 속에 살고,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타이 왕국의 소수민족이 됐다.

Today those West of the line live with civil war in Burma,
while those on the Eastern side have become a minority
in the kingdom of Thailand.
처형과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해 카렌 민족은 버마에서 타이로 내몰렸다.  
Persecution and the effects of protracted war
push the Karen from Burma into Thailand.
1984년, 첫 번째 카렌민족 난민 캠프가 세워졌다.
In 1984, the first Karen refugee camp was built.
2006년 현재에는, 타이-버마 국경지대에 7개의 캠프가 있고
수십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Now in 2006, seven camps on the Thai-Burma border
are inhabited by over a hundred thousand people.

법의 눈으로 보면
일자리를 찾아 타이에 더 깊숙이 들어간 그들의 형제․ 자매들처럼 난민들은 귀환을 기다리는 불법 이주자이다.
In the eyes of the law,
the refugees are seen as illegal immigrants waiting to be returned,
just like their brothers and sisters who've gone further into the country looking for work,
그리고, 타이에 뿌리를 내린 선조를 가진 타이-카렌인 조차도 시민권을 여전히 갖고 있지 못하다.
and even the Thai-Karen, whose ancestors planted their roots in Thailand,
but still do not obtain the right to citizenship.

이 영화는 담장이 둘러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잊혀진 곳에 대한 이야기이고
세상으로 나오고 싶은 곳의 이야기이다.

This is a tale
the people who live in somewhere that is fenced,
and in somewhere that is forgotten
wish to pass on to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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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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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9-08 22:01:41, Hit : 214, Vote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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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모임은
무산됐습니다. 제가 촉박하게 공지했고, 만원계 여러분들의 각자 사정들이 있었을 겁니다. 아뭏든 국내 상영회는 계속 추진되니, 제가 계획을 마련하여 다시한번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스크립터가 도착해있는데, 이걸로 봐선 영화가 그리 길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제가 스크립터를 조금씩 번역하여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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