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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의 촬영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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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5-10 17:02:00, Hit : 228, Vote :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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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핌의 촬영일기
핌이 한참전에 보내온 글인데 제가 차일피일 하다가 오늘에서야 올립니다.

핌이 요즘 하고 있는 일은 난민들의 생활을 알리기 위한 비디오 제작입니다. 이 비디오에는 난민들이 스스로 기획과 배우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글은 핌이 영화를 찍으면서 적은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 제작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고전하고 있나 봅니다. 영화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한국에서 상영회를 한번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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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i!-Take(again)-나의 촬영 일기

“O-Bwo(침묵)”---나는 지시대로 입을 다물었다.
“카메라 준비, 테이프 준비...Ma-Di 5(장면 5)-비디오 슬레이터가 쳐졌다.
“Sa-Tauh! (시작!)---나는 Muga(아주머니)의 얼굴을 보며 그녀 옆에서 다섯을 셌다.

하나-둘-셋-넷-다섯.
Muga는 Mae Wa Pa를 향해 몸을 돌렸다.
“Pathee(아저씨)는 집에 자주 오지 않아요. 이번에는 2년정도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왔어요” 그녀의 눈에는 슬픔이 비췄다. “우리 셋만 여기 살아요. Gloh가 공부를 마치려면 멀지 않았는데, 그녀가 부모님과 같이 살러 버마로 돌아갈지 아닐지는 모르겠어요.”

Mae Wa Pa는 구석에서 조용히 기타를 치며 앉아있는 10대 소년을 향했다. 그 아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Eh Doh shi 요?” Muga는 Mae Wa Pa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 애 부모님은 더 이상 생존하지 않아요.”

“Ba-Lee(됐어요)”

나는 촬영하는 동안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촬영팀은 서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면 5가 끝났다. 박수를 쳤고, Muga는 낄낄 웃었고, Mae Wa Pa는 큰 미소를 지었다. 이제 조그만 더하면 우리는 쉴 수 있다.

편집팀이 나더러 카렌 친구들의 비디오 촬영팀을 수행하라고 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국내 유민과 난민 캠프에 사는 이 사람들은 오직 도시로부터 오는 정보와 얘기를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던 사람들인데 이들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고 얘기를 함께 전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영화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약간의 영화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장비에 익숙해지고 영화 촬영을 경험하면서 이들은 자신들의 얘기를 말하는‘영화’를 성취했다.

Muga는 다음 장면을 위한 옷을 접고 있었다. 그녀의 민속의상은 예전에 입었던 것과 똑같이 다채로왔다. “아저씨는 내가 이 영화에 출현한다는 걸 듣고 좋아해요”. Muga가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나이 들어서 이런 기회가 내게 왔네요” 그녀는 크게 웃었다. “어쨌든, 최선을 다할래요. 이 영화는 우리들 모두에게 유익한 거쟎아요.”

“아저씨가 보고 싶으세요?” 나는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Muga는 남편이 국경지대의 군인이라 말했었고 그들은 거의 서로 만나지 못했다.

“많이 보고 싶어요. 아저씨는 정기적으로 내게 편지를 보내요. 우리가 젊은 연인이었을 때부터 편지를 써왔어요” 그녀는 미소지었다. “난 이 편지들 모두를 간직하고 있어요. 나는 가끔 아저씨에게 우유를 보내요. 건강에 좋으라구요. 아저씨는 이미 늙었어요.”

그녀 눈에 눈물이 비쳤다. “아저씨는 내게 잘해요. 전혀 변치 않아요. 날 사랑해요. 지역사회를 위해 내가 무슨 일을 하건 그이는 날 지지해요. 언젠가 평화가 오면 우리는 다시 같이 살 수 있겠지요.”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나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여성들 중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 중 한명이다. 그들은 모두 지역사회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아직 제목을 정하지 않은)의 배우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다. 카메라와 몰려든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은 인물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그들 자신이 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

“커서 뭐가 되고 싶니, Eh Doh Shi?”
“군인이요”. “하지만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선생님들도 그랬구요. 나보고 학교를 먼저 마치라고 했어요.”
“몇 학년까지?” Eh Doh shi는 학교에 약간 늦게 들어갔다. 그애는 이제 3학년이다.
“10학년이요.” “내게 돈이 있다면요. 나하고 내 동생이 기숙학교에 다니려면 1년에 300은 필요해요.” 그건 고등교육을 끝까지 마치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나서 군인이 될거니?”
“학교를 다닌다면 아마 선생님이 되겠죠. 또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해요. 내 선생님들은 모두 좋아요. 아이들을 이해해줘요.” “난 또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기타를 더 잘 치고 싶어요. Thra Law처럼 키보드를 치고 싶고,  Thra Kaw Pi처럼 베이스 기타를 치고 싶고, Thra Kae처럼 노래하고 싶어요.”

....
이 높은 언덕에서, 전체 난민 캠프가 Eh Doh shi의 노래를 듣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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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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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대환  (2006-05-03 22:14:29, Hit : 270, Vote :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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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하게
평택상황이 긴급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원래 내일4일 정도 행정대집행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현재 외곽을 봉쇄하고 오늘 밤에 경찰의 침탈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일단 가능하신 분은 평택으로 모여주시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평택까지 못가는 분들은 낼 11시 국방부앞 집회 그리고 저녁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작은 실천이 평택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국경없는 친구들과 연대하는 것은 권력과 군대, 국가로부터 배제당하고 소외받는 자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평택이 바로 한국정부와 미군에 의해서 배제당하고 폭력에 의해서 시민사회 밖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연대와 실천 그리고 평택을 지키려는 마음이 어느때보다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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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후원금송금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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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5-03 17:17:43, Hit : 225, Vote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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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5월 후원금송금내역
제가 어디좀 다녀오느라고 3일에 송금했습니다.

다녀온 곳 중의 하나가 새만금 갯벌인데 이제 갯벌이 아니라 바짝 마른 땅이 됐고 죽어버린 조개들의 무덤이 줄서 있더군요. 수없이 송송뚫린 게 구멍의 주인들도 그 속에서 말라죽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안좋았습니다.

이제 5월입니다. '화창'함을 느껴볼 수 있는 5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달 잔액: 333,301원

4월 3일 이윤* 1만
4월 5일 조대* 1만
4월 10일 연상* 1만5천
4월 17일 황수* 1만5천
4월 24일 구태* 1만
4월 25일 김재* 1만
4월 30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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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8만원
2006년 5월 3일 송금 150달러+수수료 5천원=146,111원
잔액 267,1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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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경제 제재(민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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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26 18:40:20, Hit : 262, Vote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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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경제 제재(민중은?)
경제 제재(민중은?)
Saitarn Salween(1997년 이래 버마의 정치상황과 버마 인민의 상황을 파악해온 한 민간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국경없는 친구들’의 편집인이 던진 “미국이 버마에 가하는 경제제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여러날 머리가 아팠다. 대답하기에 무척 어려운 질문이라고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경제제재가 군사정권에 정말 영향을 끼치는가?” 어느 정도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군부는 버마의 천연자원을 파는 것으로 중국이나 인도 같은 국가들에 언제나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패와 버마민중에 대한 직접적인 수탈로써 정부는 경제제재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도 버틸 수 있다. 더욱이, 많은 대기업들이 경제제재 주변에서 방법을 찾아서 어쨌든 버마에 투자를 하고 있다.

다른 한편, 버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푼다면, 인민이 더나은 삶을 살게될까? 타이로 오는 이주 노동자들이 줄어들까? 다시한번,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버마의 경제문제는 경제제재에서 파생하는 것이 아니라 버마의 정치적 위기, 인민을 이롭게 하는 경제를 창출하지 못하는 행정, 버마 국민에 대한 폭력의 자행(천문학적인 세금, 토지 강탈, 소수민족에 대한 억압 등)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부패와 결합되어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의 결여와 생산활동에 접근할 수 없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타이로 이주해온 것이고, 이는 경제제재가 있기 전부터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찌뿌리며 이렇게 물을 것이다. 내 대답은 “나도 모르겠다(하하)”일 것이다. 하지만, 재빨리 살펴보면 우리는 문제가 원칙적으로 버마 정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버마 정부를 전복시켜야겠네” 일부 사람들은 쉽게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주요 문제이다. 하지만 정부가 전복된다 할지라도 경제가 개선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문제는 아주 오래된 것이고 그 문제를 지속시키는 체제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계속 쇠퇴하고 있는 경제를 살리려면 인민에 의한 자원 운용문제를 포함하여 다른 관점이 고려돼야 한다.

지금까지, 경제제재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집단들은 결코 보통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신들의 의견에 반영하지 않았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주요 원인이다. 인민들은 정보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경제 상황의 원인에 대해 결코 알 수가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 결정은 인민의 이름으로 이뤄진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인민들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것이고, 그들이 말하고 그들 자신의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타이 사회는 어떤가요? 타이인도 이 문제에 연루되나요? 타이인은 뭘 해야 하죠?” 내 대답은 당신이 싫건 좋건 우리 모두는 이 문제에 관련돼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경을 따라 엄청난 수의 이주 노동자와 난민들이 있다. 우리는 진정한 문제를 바라봐야 하고, 또한 영향받는 이웃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가장 쉬운 방법중의 하나는 이주의 원인이 경제적인 것이라는 수사학에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경제적인 것인가? 아마도 당신 집의 가정부에게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여기에 왔으며, 고향의 상황이 어떠하며, 왜 그렇게 가난하며, 왜 농사를 지을 수 없는지를 말이다. 아마도 대답은 사실상 우리 모두의 안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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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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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21 08:47:27, Hit : 183, Vote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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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군대 장교가 한 이야기

국경에서 버마쪽 반대편 지역은 휴전 지역이다. 그곳을 지배하는 4개의 상이한 세력이 있다. 카렌 평화군, 민주주의 카렌 불교군, 버마군은 동맹군이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KNU 또한 이들과 협상했다. 왜냐하면 문제는 휴전이나 청산이냐가 아니라 식량과 생존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쪽이 다 가난하다. 그들은 자원이 풍부하고 무역세와 쌀 세도 풍부하다. 세금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평등하다. 내 말 뜻을 이해하겠는가? 사람들이 버마에서 팔려고 타이에서 사가는 물건들은 값이 치솟는다. 4개 지배세력 모두에게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쪽편에서 저쪽편 농장으로 간다면 그 사람은 4번의 세금을 내야 한다.

자원은 어떠냐고? 내가 자원이라 말하는 것은 나무와 대나무이다. 이 지역에서는 어떤 종류의 허가도 필요없다. 배고플 때마다 그냥 나무를 베어내면 된다.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대나무이고, 대나무는 타이 당국에 팔 수 있다. 타이 당국은 그 대나무를 난민들에게 집수리를 하라고 보낸다. 물론, 군사세력, 난민, 타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파편들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다시피 정치 이데올로기는 때때로 단지 조크에 불과하다.  

2006년 2월 4일, 수상이 Mae La 난민 캠프에서의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두 주 전에 저와 함께 At Samat에 갔던 분들은 정부가 타이 농민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봤습니다. 난민들 문제를 다루는 것도 또한 빈곤해결에 대한 것이고, 나는 여러분이 오늘의 캠프 방문에서 통찰력을 얻으리라 희망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 정부의 중심 주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창조하는 것이고 난민 문제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난민들의 출신국의 능력을 강화하고 난민들에게 필수적인 기술을 배양하는 것이 이 오래된 문제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Mo Ja가 한 이야기
아, 바로 어제였어요. 수상이 연설을 하고 떠난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14살 소녀가 타이 보안대에게 강간을 당했어요. 여름이면 우리 난민들은 우기가 오기 전에 오두막을 수선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붕 수리를 위한 잎사귀를 모으러 캠프 밖으로 나갔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걸 엮어서 욋가지를 만들어서 팔아요. 많은 사람들이 집수리를 위해 이걸 사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일자리를 찾아야 해요. 기부물품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집을 따뜻하고 안전하게 할 만큼 충분하지 못해요. 우리가 일하는 것을 허용 받아서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일해서 그걸 살 수 있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그렇지가 못하죠.

앞서 말한 소녀는 Mae La 난민캠프 담장 밖으로 걸어 나갔어요. 그 보안대원의 임무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지만 그사람이 바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소녀를 강간한 보안대원은 그녀를 벌준 것이라 말했어요. 하지만 이건 처음있는 일이 아니고 항상 벌어지는 일이예요. 강간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우리를 희롱하거나 막 대해요. 하지만 우리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규칙을 지킨다고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해요. 그냥 앉아서 기부물품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야 한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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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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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14 15:47:09, Hit : 206, Vote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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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2)
<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Tha Ble Por의 얘기

저녁이었다. 헤어지는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난 머리에 뭔가를 이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사람들을 봤다. 소형 트럭 뒤에 농장 트럭이 줄섰고, 사람과 물건들을 태우고 국경문이 닫히는 저녁 6시 전에 국경을 넘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난 오렌지 주스의 경로를 추적해봤다. 타이 치앙마이 주변에서는 3바트(약 90원)이던 것이 버마의 Peung Kleung에서는 5바트(약 150원)가 되고, 버마 남부의 Jaido까지 가면 8바트(약 240원)로 가격이 치솟을 것이다. 동시에 쌀과 거대한 대나무 다발이 나를 지나쳐 타이 쪽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오늘날 Peung Keung 마을은 크고 번성해 보인다. 국경의 검문소까지 일련의 가게들로 꽉차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물들 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다소 지쳐있다. 카렌 민족 연합(KNU)이 국경의 버마쪽 지역에서 권력을 갖고 있을 동안에는 전쟁이 미치지 않았고, 이 국경 마을은 국경없는 사람들의 여행과 왕래로 살아움직였고 타이, 카렌, 몽, 파오, 버마 등 풍부하고 다양한 민족 문화가 풍부했다. 모든 주변 환경은 숲과 지속가능하게 회전되는 경작으로 풍부했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어느날, 주민들이 농사짓던 많은 경작지가 야생물 보존 지역으로 선포됐다. 그리고 국경의 버마쪽 권력은 KNU에서 정부군과 그 동맹세력으로 넘어갔다. 인구의 2/3에 달하는 무국적자들은 신분규제정책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여러 세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증거가 없거니와 이주해왔거나 약 20년간 이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오렌지 색깔의 “불법 입국자” 카드를 가질 수 있을 뿐이어서 이 신분카드로는 어떤 지위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이 국가 불안요소가 되버렸고, 마을 정미소에는 쌀이 없고, 보건소에는 해열제만 남았을 뿐이고, 돼지들에게 먹일 것이 없게 되자, 10대들은 도시에서 일용직을 구하기 위해 떠나기 시작했고, 많은 가정들이 먼 곳으로 재이주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먹을 걸 돈주고 사야 하거나 난민 캠프에서 무료 의료 서비스를 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것이 전쟁의 결과였다. 더 중요한 점은 버마쪽으로 더 들어가면 농사지을 땅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자신들은 1백만달러의 기금, 교육보조금, 또는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는 것을 발전 프로그램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오래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자연이 주는 음식을 먹고,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발전이고, 이런 것들은 돈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타이쪽을 뒤돌아봤다. 모든 것이 고요했다. 버림받은 시장 진열대들, 군인들이 있다. 아주 낡은 군복을 입고 있어서 어느쪽 군인인줄 모르겠다. 군인들은 기둥에 기대서 담배를 피우며 지루함에 누군가를 등칠 일을 기다리고 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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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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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13 14:34:58, Hit : 227, Vote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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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국경없는 친구들에서-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한가지 이야기, 다른 시각들

난민인 Mu La Htoo의 얘기

타이 수상이 외교관을 Mae La 난민 캠프에 보내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13살 소년이 이웃의 농장 주인이 쏜 총을 다리에 맞았다. 그 아이는 단지 친구를 기다리며 거기, 정원 바로 옆 길에 서있었을 뿐이었다. 그 아이의 가족은 아무런 항의도 못했다. 왜냐하면 난민캠프 지역을 벗어났다는 이유로 처벌받을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농장 주인은 예전에도 한 시각장애인인 노인을 체포한 일이 있었다. 그 노인이 가방에 썩은 포뮬로(왕귤나무류)를 지니고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 노인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나무가 목숨을 걸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난민캠프의 담장을 넘어 걸어다니는 일은 곧 타이 땅에 뭔가 나쁜일을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농장주는 예전에도 여러차례 난민들을 쏘았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농장주는 우리 난민들을 빌붙어사는 사람 내지 도둑으로밖에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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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에게서 온 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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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10 23:53:36, Hit : 281, Vote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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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핌에게서 온 연락
<국경없는 친구들>에 실린 글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밀린 일이 많아서 당장은 번역을 못하겠고 빠른 시간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의 정치상황이 무척 어려워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핌의 말에 따르면 여론에 굴복하여 탁신이 사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거기에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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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회원은 12명

Name  
   류은숙  (2006-04-06 13:16:32, Hit : 274, Vote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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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회원은 12명
3월말까지 회원 정리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일단 게시판에 등록하신 분들의 글쓰기 기능은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아뭏든 월 1만원의 회비납부의 의무를 지키고 계신 '국경없는 친구들과 연대하는 모임'의 회원분은 현재 12명입니다. '국경없는 친구들'의 활동가 한명의 생활을 책임지기에는 넘치지는 않지만 많이 모자라지도 않는 숫자입니다. 조용히 천천히 계속 함께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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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후원금 송금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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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은숙  (2006-04-06 13:07:48, Hit : 213, Vote :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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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4월 후원금 송금내역
제가 며칠 자리를 비우느라 오늘에야 송금했습니다. 송금내역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직도 날씨가 변덕스럽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월 잔액 262,313원

3월 2일 김예* 10만원
        이윤* 1만
        김태* 1만
        구태* 1만
3월 3일 조대* 1만
3월 9일 이민* 1만
3월 10일 연상* 1만5천
3월 20일 구태* 1만
3월 21일 황수* 1만5천
3월 24일 김재* 1만
3월 29일 이민* 1만
3월 30일 류은* 1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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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2만원
2006년 4월 6일 송금 150달러+수수료 5천원=149,012원
잔액: 333,301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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