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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찬란한 나날

한겨레 기자, 씨네21 편집장을 거쳐 어느날 전업작가를 선언한 조선희의 두번째 소설집

 

 

대합 입학하고 어설프나마 문학 동아리에 들었을 때 김소진이란 작가가 있었다.

 

역시 한겨레 신문 기자 출신이었는데 요절했다.

 

리얼리즘을 고집하던 작가는 대개 자취를 감추거나, 껍질을 벗고 변태를 하던 때였다.

 

 

리얼리즘이던 아니던...

 

이제는 좀 희망을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 구세대의 통찰력은 냉소와 절망을 말하는 데만 익숙하다. 그 좋은 머리가 아깝다.

 

어차피 이런 시대에도 뭔가 가꾸고 싸우는 사람들은 계속 있다. 잘 안 보일 뿐이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니 작가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

 

 

 

90년대 후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랬다.

 

작가들은 더 이상 선동을 하기엔 너무 촌스럽다고 말했다.

 

심지어 황지우는 먹고 사는 걱정이 사라지고 나니 권태가 도래했다고 했다.

 

 

그래도 조선희가 현실을 바라보는 눈마저 잃지는 않은 게 어디냐?

 

그건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늙으면 저럴까 항상 신경쓰인다.

 

그러면서도 읽는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면서, 어느 정도는 반발하면서.

 

 

오는 길에 김민기의 '봉우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신파의 세라피, 냉소의 세라피도 가끔은 필요하나 늘, 대개는 희망과 긍정의

 

세라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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