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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30
    엄마의 외출
    칸나일파
  2. 2006/04/25
    버스타기(1)
    칸나일파
  3. 2006/04/24
    일단 질러 보기로 했다.
    칸나일파
  4. 2006/04/12
    햇빛 찬란한 나날
    칸나일파

엄마의 외출

엄마는 중풍 6년차 1급 장애인이다.  조금씩 기력이 떨어지더니 이제는 거실도 잘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잘 나오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고 해야 하겠지만 의지의 문제도 무시할 순 없다.

 

"운동을 해야 좋아지지. 이렇게 안 움직이면 좋아지겠어?"

"내가 운동을 하기 싫어서 안하니? 아파서 일어설 수가 없어"

"엄마, 그럴수록 더 운동을 해야지. 나중에는 아예 일어서지도 못해"

"니가 내 심정을 알기나 해. 건강할 때 잘해주지 그랬어?"

"매일 그렇게 과거에 얽매여 살면 뭐가 달라져?"

"됐어. 듣기 싫어. 나가"

"...."

"...."

"그러지 말고 날도 따뜻해졌는데 한 번 나가자."

"알겠어...나중에..."

"...."

"...."

 

엄마랑 대화는 항상 이런 식으로 끝난다.

그런 엄마가 오늘,올해 들어 첫 외출을 감행했다.

종교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엄마는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리고 있는 성당 체육대회에 가보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가자고 결정을 내려도 실제로 나가기 까지는 엄청난 시간 동안 신경전이 벌어진다. 날이 춥고 꾸물꾸물하다. 엄마는 이내 맘을 바꿨다. 역시나 성질 급한 아빠는 또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아빠를 공격하며 엄마 편을 든다.

 

"(아빠)나가기 싫으면 말어. 누가 나가라고 그랬냐? 나는 아쉬울 거 없어"

"(엄마)....."

"(나)아빠는 나가자고 했으면 끝까지 상대 기분을 맞춰줘야지. 그 정도도 못하냐? 그리고 엄마는 상대가 자기 염려해주는 거 알면 좀 맞춰줄줄도 알아야지."

"(엄마)....알았어...나가자고..."

 

그렇게 엄마, 아빠, 나, 동생 넷은 휠체어를 들었다, 밀었다, 끌었다 해가며 운동장에 도착했다. 집이 3층이라 엄마 혼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겨운 일이다. 어느 정도는 혼자 움직이다 안되면 휠체어를 들어야 한다. 엄마에게는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 그래도 오랜만에 나오니까 기분이 좋은가보다. 노래도 부르고, 풍물 소리에 맞춰 춤도춘다. 휠체어에 앉아서 엄마가 춤을 춘다. 왼손은 얌전히 무릎 위에 얹혀 있고 오른손으로 휠체어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그렇게 동네 운동장 구경 한 번 하는데 한나절이 흘렀다.

엄마를 가두고 있는 마음의 감옥.

그러나, 그 이상으로 장애인을 옥죄는 현실의 감옥.

1년에 한 번 외출하기가 이렇게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다음에 한 번 더

엄마 마음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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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타기

학교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은 갈아타는 시간이 길 뿐만 아니라, 풍경이 건조해서 답답할 때가 많다. 그래도 아침에는 여유를 부리기가 힘들다. 언제나 지각을 아슬아슬하게 면할 정도로 자기 때문이다. 아침 출근 시간 버스에 거는 기대는, 이길 확률이 없는 사기도박에 거는 기대나 마찬가지다. 그걸 알면서 번번히 기대를 건다. 출근길 만원버스가 미쳐서 휭휭 날아가는 상상을 한다. 학교까지 가는 수많은 버스노선의 조합을 한 번 씩은 다 거쳐보고 나서야 포기한다. 버스를.

 

반면 집으로 돌아올 땐 언제나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짧게는 20분에서 길게는 50분까지 더 걸린다. 그래도 버스를 타면 기분이 좋다. 오늘처럼 햇살이 밝게 비추는 날에는 학교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도 즐겁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먼 길도 즐겁다. 살짝 졸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책도 읽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가끔씩 정체가 심할 때는 사람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종로 1가까지 와서 갈아타는데 자리가 없는 경우는 거의 없다. 종로1가에서 갈아탈 때는 버스 출발역이기 때문에 항상 여유롭게 좋아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5명이 앉을 수 있는 제일 뒷자석 바로 앞 2인석. 앞쪽에 앉으면 항상 버글버글대는 사람들 신경쓰느라 맘 편히 쉬기가 어렵다. 특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아서 신경이 쓰인다. 난 항상 자리를 양보하지만 그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이런 저런 신경을 쓰기가 싫기 때문이다. 가끔 잠에서 깼는데 앞에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서 있으면 괜히 뭔가 잘못한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어쩔 때는 한참 동안 책을 읽느라 정신이 없는데 잠깐 눈을 쉬게 해주려고 고개를 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바로 앞에 서 있는거다. 그것도 등이 굽으셔서. 뒷쪽에 앉으면 이런 상황을 접할 일이 거의 없다.

 

오늘 탄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특이하게 직접 마이크를 들고 다음 내릴 정류장 안내방송을 했다. 그러다 6시가 가까워오자 아저씨는 라디오 클로징 멘트처럼 다소 긴 방송을 했다.  '오늘하루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셔서 편하게 쉬십시오. 오늘 하루 쌓였던 스트레스는 잊고 조용한 저녁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버스 정차 후 손님이 내릴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드릴테니 서두르지 마시고 벨을 누른 후 버스가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 자리에 앉아계십시오. 그리고 천천히 내리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 항상 밝고 즐거운 나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아 배시시 웃었다. 이어폰을 빼고 아저씨 멘트를 끝까지 다 들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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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질러 보기로 했다.

어쩌다 변화가 필요할 때, 일단 질러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자전거 사고 여름에 유럽으로 뜨기로 했다.

 

걱정도 많이 된다. 자전거 왕초보인데다가 계절학기 포기하고 졸업도 미룬거다.

 

과외 다 중단될 거고 빚도 져야 된다. 그래도 왜 굳이 지르겠냐고 묻는다면

 

"똥먹을래? 질러볼래?"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땐 질러보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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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찬란한 나날

한겨레 기자, 씨네21 편집장을 거쳐 어느날 전업작가를 선언한 조선희의 두번째 소설집

 

 

대합 입학하고 어설프나마 문학 동아리에 들었을 때 김소진이란 작가가 있었다.

 

역시 한겨레 신문 기자 출신이었는데 요절했다.

 

리얼리즘을 고집하던 작가는 대개 자취를 감추거나, 껍질을 벗고 변태를 하던 때였다.

 

 

리얼리즘이던 아니던...

 

이제는 좀 희망을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제 구세대의 통찰력은 냉소와 절망을 말하는 데만 익숙하다. 그 좋은 머리가 아깝다.

 

어차피 이런 시대에도 뭔가 가꾸고 싸우는 사람들은 계속 있다. 잘 안 보일 뿐이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니 작가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

 

 

 

90년대 후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랬다.

 

작가들은 더 이상 선동을 하기엔 너무 촌스럽다고 말했다.

 

심지어 황지우는 먹고 사는 걱정이 사라지고 나니 권태가 도래했다고 했다.

 

 

그래도 조선희가 현실을 바라보는 눈마저 잃지는 않은 게 어디냐?

 

그건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나도 늙으면 저럴까 항상 신경쓰인다.

 

그러면서도 읽는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면서, 어느 정도는 반발하면서.

 

 

오는 길에 김민기의 '봉우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해졌다.

 

신파의 세라피, 냉소의 세라피도 가끔은 필요하나 늘, 대개는 희망과 긍정의

 

세라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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