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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23
    연애시대 마지막회 방금 끝났다.(4)
    칸나일파
  2. 2006/05/19
    연애시대...(2)
    칸나일파
  3. 2006/05/01
    구치소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
    칸나일파

연애시대 마지막회 방금 끝났다.

푸하하...완전 코메디가 따로 없다.

월간조선 볼 때만큼이나 많이 웃었다.

이것 참 고작 이 결론을 보자고 한 편도 안 빼놓고 다 봤단 말인가?

배신감 드는 거 나뿐인가?

 

 

왜 이러는거야... 왜 삶을 농락하는 거야... 드라마가 장난이냐...

15편까지는 뭐하러 찍었어...그냥 마지막회 하나만 찍어서 베스트 극장 같은 거 내보내지.

뭐하러 두달을 기다리게 만드냐고...

정말이지 두 달동안 이 드라마 갖고 온갖 추측 해가면서 수단 떤 게 우습게 느껴진다.

특히 마지막회 손예진 멘트는 정말이지, 그 동안 좋았던 멘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가볍고, 유치했다. 그 모든 멘트의 진실성을 완전히 코메디로 격하시켰다.

아후~~ 5년후란 멘트 뜨고 손예진, 감우성이 어린 딸과 공원에

앉아있는 장면은 뭐냐고...

아무리 해피엔딩을 좋아해도 정도가 있지... 해피엔딩으로 끝내놓고 끝까지

심각한 척 똥폼잡는 그 멘트는 또 뭐냐고... 해피엔딩도 예의가 있어야지...

상식이 역전되는 기분이야. 한국 드라마 좀 나아지나 했더니 이게 뭐야...

차라리 손예진 불치병 걸리게 하지. 아님 감우성이랑 손예진이 알고 보니 배다른 남매였다는

설정도 괜찮네..

 

재결합을 희망했던 동생도, 아름답고 성숙한 상처를 바랬던 나도, 가장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며 감우성의 재혼을 받아들이던 누나도 ... 오늘 엄청 웃/었/다.

근데 마음이 아팠다. 비틀린 썩소를 지었다.

 

 

 

그래서,

 

 

드라마에 열광하고 배신감 느끼는 내가 븅신이지...ㅋㅋㅋ

마지막회만 아니었으면 연애시대 정말 길이 남을 명작이 될 뻔 했는데...

옛끼...못된 피디...욕이나 실컷 먹고 철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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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여우비님의 [연애시대와 소울메이트] 에 관련된 글.

 

1.

 

언제부턴가 드라마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대리만족같은 것도 있고, 누나 동생이랑 수다 떠는 것도 좋고, 내 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본다. 처음 [네 멋대로 해라] 때문에 살짝 흥미를 갖게 된 이후로 최근에는 떨리는 가슴, 내 이름은 김삼순, 두번째 프로포즈 정도를 재밌게 본 거 같다.

 

요즘은 연애시대를 보고 있는데 비슷한 고민이 많아서인지 쉽게 몰입이 된다. 연애시대가 재미있는 이유는 매사 무사태평하고 상큼한 사랑이야기 보다는 고통스럽게 상처를 안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그럴 듯 해보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만남, 불타는 사랑, 갈등 극복,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랑이야기는 극적 요소를 제외하면 인생의 진실성이 부족해 보인다. 게다가 너무 럭셔리한 애들 얘기가 많다.

 

연애시대도 그런 면이 없는 건 아니다. 서른살 이혼남이 분당에 빌라를 소유하고 살고 있다는 설정, 게다가 안정적인 직장에 이미 직급도 꽤 높다. 손예진 역시 경제적인 고민거리는 전혀 없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둘은 모두 가정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종종 현실과 타협을 하는데 그게 좀 아쉬운 점으로 남지만, 사실 그런 타협들이 더 현실적인 면도 있다. 내가 그런 현실적인 타협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나서는 더 그렇다.

 

2.

 

현실적으로 감우성과 손예진이 재결합하는 게 맞는걸까? 아니 좋은걸까 생각을 많이 해본다.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 다시 결합해도 힘들고 떨어져 있어도 힘든 사람들. 대개 그렇듯 나도 감우성의 '애매모호한' 플레이와 우유부단한 행동이 짜증스럽다. 그런데 또 대개 그런 행동을 이해하는 사람도 다수. 아무튼 감우성이 결국 손예진에게 돌아가는 결말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을텐데, 감우성이 재결합을 선택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죽은 아이' 때문이니 가정적인 여자(궁중 요리사로 표현되는 지적이고 점잖은 스타일)와 재결합한다는 설정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사실 둘이 다시 결합하는 결말이 나오면 좀 짜증날 거 같았다.)

과연 그 날, 감우성은 어디에 갔을까? 이것이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가는 열쇠일텐데 누나는 '사건 당일'날 감우성이 출생신고를 하러 갔을거란 추측을 내놓았다.

 

'아~~~뜨시'

 

누나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절로 탄성이 나온다. 와, 우리 누나 머리 디게 좋다. 작가적 상상력!! 그래서 내가 생각해본 최악의 결말은 손예진이 그 사실을 알고 감우성을 이해하는거다. 그리고 1년후란 자막이 뜨면서 손예진이 새사람을 만나 결혼식을 올리는데 감우성이 와서 축하해주는 장면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최상의 결말이다.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기도 하지 않을까? 손예진 역시 가정적인 여자니까.(헤어진 사람과 다시 사랑하는데 어머니 같은 마음이면 충분하다는 충고도 깨름직하다)

 

아무튼 아이가 헤어짐의 매개가 된다는 설정, 또 상처를 극복하는 매개도 된다는 설정. 각자 새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설정... 모두 찝찝하다. 낭만은 짧고 생활은 길~~~다는 것인가? 한겨레21에서 연애시대를 분석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요점은 '결혼 없이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아쉽게도 결론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시들해지기 마련'이라는 식이었다. 근데 또 맞는 이야기같다.

 

끝내는 감우성이 아이에 대한 집착이 적었다면, 부부-아이로 구성되는 가정생활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면 아이를 잃고 상처입은 손예진을 감싸줄 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생각이 남아서 계속 찝찝하다.(아이는 또 가지면 되잖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아닌가?) 그러니까 결혼과 가족으로 이어지는 감우성의 욕망도 별로 긍정 못하겠다.

 

사람들은 왜 연애를 할까? 드라마는 끝내 결혼 말고 별 답을 주지 않은 듯 하지만, 또 그래서 현실적인 타협이 썩 맘에 들지 않지만, 둘이 고뇌하는 과정에서 이미 가능한 답은 다 나온 거 같다. 그래서 내가 뽑은 최고의 대사는 이거다.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진정한 사랑은 그런 조건들을 뛰어넘을 수 있지 않을까?

영원한 사랑같은 건 믿지 않지만, 성숙한 사랑은 있을 거 같다.

환상인 지도 모른다.

 

문제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 같다.

아무튼 사랑은 좋다. 연애도 좋다. 재밌게 살고 싶다. 계속 꿈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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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 업무가 돌아가는 방식

정말 오랜만에 수감기록을 쓴다. 수감생활이 끝난 지 한참 됐는데 꾸역꾸역 기억을 되새김질 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글의 의미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너무 흐르다 보니 신세타령으로 흐를 거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 생각한건데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의 편지를 꾸준히 소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거니 싶다. 아무래도 그들이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더 잘 해줄 거 같다. 아무튼 최근 들어 병역거부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소홀했다. 소식지도 잘 안 나오고 나 혼자 지친 것도 있고, 나는 맨날 듣는 소리라 별로 절실한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고. 정작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일단 시작은 지문날인으로 해보자. 이승규씨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지문날인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으니. 그리고 구치소에서는 지문날인을 둘러싼 헤프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아차, 이승규씨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이승규씨는 다산인권센터와 민주노동당 수원시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수감된 병역거부자다(궁금하신 분은 www.withoutwar.org에 들어가서 [병역거부자 만나기]를 클릭해보세요). 애초부터 지문날인을 거부해왔던 이승규씨는 수감시설 안에서도 계속 지문날인을 거부하고 있어 고생이 이만 저만 심한 게 아니다. 영치금도 못쓰고 영치품을 받지도 못하고 있다.

 

사실 난 지금도 지문날인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미 주민등록증은 만들었고 어지간해서 지문날인할 일이 없고 무엇보다 그 부분에 있어 절박감이 크지 않다. 될 수 있으면 더 이상 지문찍을 일이 없기만 바랄 뿐이다. 주민등록증도 아주 늦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의식적인 도전이라기 보다는 기나긴 수배생활로 인한 자연스러운 지연에 불과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도 인권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건 아니다. 구치소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살짝 보여주려는 게 이 글을 목적이다.

 

 구치소 안에서는 지문날인에 얽힌 사건들이 참 많았다. 수감시설마다 대응방법이 달라서, 가령 이승규씨가 수감되어 있는 김천교도소는 원칙적으로 지문날인을 고집하고 있지만 서울구치소는 사정이 달라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온갖 헤프닝이 벌어진다. 지문날인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이승규씨 같은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다. 대부분은 정확한 의미로 지문날인을 '기피한다'. 매일 인주밥을 먹은 엄지손가락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을 때가 많았고, 재수없게 보라색 스템프라도 찍으면 그 자국이 며칠씩 간다. 매번 지문을 찍을 때마다 기분이 아주 찝찝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손에 자국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으니까. 남에게 대신 찍으라 시키고(여기서도 위계질서는 꾸준히 작동한다), 새끼 손가락으로 찍고, 휴지대고 문지르고, 경우에 따라 눈치껏 싸인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의 정체성을 대신하기도 하고 발가락이 손가락을 대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교무과 감사 나온다고 하면 몇 달치 '자변도서 구입원장(수감자들이 자신의 영치금으로 직접 책을 주문할 수 있다. 영치금을 사용하는 모든 경우에는 지문날인을 요구한다)'을 죄다 꺼내서  비어있는 지문날인란에 일일이 지문을 찍어댄다. 교무과 출력수 몇 사람이 수십, 수백명의 지문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밥먹듯이 이루어지는 '문서조작'이고 '불필요한 문서 남발'이지만 이런 관행은 매번 반복된다. 어차피 그 수많은 지문을 판독할 시간도 없겠지만 그나마 판독이 가능할만큼 온전히 찍혀있는 지문이 거의 없다. 그만큼 지문날인은 이미 '규정만 남은' 불필요한 절차에 불과하다. 그러나 교도관들은 업무상 마찰이나 수용자들의 문제제기가 발생하면 유일하게 사실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지문날인 밖에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예산 부족으로 시스템이 낙후한 것도 문제지만, 교도관들의 무사안일도 큰 문제다. 나에게 문제만 터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변화를 거부하는 공무원 사회의 정서 때문에 구치소 운영시스템은 여전히 80년대 수준이다.  정치사범, 대형 경제사범같은 소위 '범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지문을 찍을 일이 없다. 사동청소부(사동 수감자들에게 식사나눠주고 청소하고 교도관 잡일 거드는 출력수들)가 대신 다 찍어주고, 사동청소부도 안 보이면 교도관들이 대신 싸인해주고 도장찍어주고 다 한다. 이미 다 보여주고 있는 거 아닌가? 교도관들이 신원확인을 하는 게 제일 확실한 본인확인 수단이다. 갇혀 있는 사람들은 항상 똑같고, 가슴에 수번까지 달고 있는데 그보다 더 확실한 본인확인 수단이 어딨나? 지문 대신 사인이나 도장써도 똑같은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싸인하라 그러면 돼지꼬리 그려넣는 사람에서 다른 사람 이름 써넣는 사람까지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다. 교도관들이 좀만 부지런하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그런데 안한다. 바쁘다고 하면서 하루 종일 잠자거나 범털들 불러서 노가리까고 신문 뒤적거리다 집에 가는 교도관들 많다. 하기사 교도관들의 노고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야근도 많고 사람들 인식도 좋지 않은데다, 공무원 중에서도 봉급이 가장 낮다는 예의 뼈에 사무치는 피해의식. 게다가 온갖 억지와 히스테리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비위 상하는 일도 많이 한다. 그래도 달라져야하는 건 달려져야지.

 

교무과에서 일하면서 정말 웃지못할 일이 있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국회의원 나리께서 과거에 자기 앞으로 들어왔던 책목록을 알고 싶다고 교무과에 정보공개신청을 했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졌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여전히 모든 문서가 전산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삼년 전 자료를 다 찾아내는 일이었다. 크허~~ 한 해에만 창고에 쌓이는 문서 박스가 창고로 하나 가득이다. 별 쓸데없는 온갖 종류의 서류들이 '법적 정보보존 기간'을 지키기 위해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다. 결국 교무과 직원들은 안절부절하며 각종 방안을 모색했으나, 전 국회의원 나리의 요구인 이상에야. 토요일 하루 종일 창고에 쳐박힌 수십 박스의 서류를 다 꺼내서 뒤졌다. 그 나리께서 삼년전 읽었던 책 제목을 알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크허~~ 삼년전 서류를 뒤지다가 내가 전에 수감되어 있을 때 자료를 찾아냈을 때는 정말 기분이 묘했다. '그래 그 때는 이 책을 읽었었군.' 하고 혼자 묘한 감상에 젖었다.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구색맞추기로 책 목록이 완성되었다.

 

하루는 천정배 장관이 방문한다는 이유로 토요일 대청소를 했는데 복도 전체를 물청소 하려니 이만 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청소를 하는 건 좋지만, 꼭 하필 장관이 오기 전날이냔 말이다. 괜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약간 항의를 했더니 교도관 왈, "야 원래 이런 날에 청소하니까 이 만큼이라도 청결이 유지되는 거잖아." 그렇다. 이거야말로 교도소가 운영되는 시스템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준 거 아닌가. 자연스레 대청소 날이 정해지는거다. 나름대로 합리적인 시스템인거다. 연대장 방문하면 길을 닦는다는 군대랑, 법무부 장관이 방문한다고 대청소하고 페인트칠 새로하는 감옥은 뭐가 다른가?

 

어느 사회나 관행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관행은 변화보다 더 손쉽고 달콤하다. 사람들은 복잡한 토론이나 민주주의 따위 보다는 손쉬운 명령과 복종관계로 유지되는 관행을 사랑한다.  관행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자못 진지한데 일이 전개되는 양상은 서글프다. 차마 웃지못할 서글픈 코메디. 자신이 그 코메디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어떡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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