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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6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1)
    칸나일파
  2. 2009/02/22
    설악산에 다녀왔다. (5)
    칸나일파
  3. 2009/02/13
    조경란 [혀](6)
    칸나일파
  4. 2009/02/10
    - 기욤 뮈소 <구해줘>(1)
    칸나일파
  5. 2009/02/02
    [2월] 봄을 기다려.
    칸나일파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 당시엔 감독의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재밌게만 봤는데

 

나중에 철들고 다시 보니 곳곳에 역사적 장치들이 꽤나 많이 깔려 있더라.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다를 보기 전에는 그런 비슷한 느낌을 상상했다.

 

개인의 일대기가 좌~악 펼쳐지고, 숱한 역사적 사건들이 양념으로 들어가고,

 

그 이야기가 죽음으로 마무리 될 때는 어느 정도 달인의 경지에 이른 군상들의 면면을 볼 수

 

있을테다. 허탈함, 씁쓸함, 달관과 수용, 넉넉함, 이해와 용서, 축복, 고귀함, 반성...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죽음이란 그런 모습이다.

 

 

본 사람들 의견은 대체로 지루하다는 평이 많았다. '좋았는데...조금 기~~일더라.' 정도.

 

나는 지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중간에 살짝 졸긴했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한다. 성장영화 포함.

 

저 인생이 대체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저 순간에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생각하다보면 지루하지 않다.

 

 

포레스트 검프보다는 최대한 감독의 주관적 개입이 자제된 느낌을 받았다. 역시 중심에 사랑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까? 주변 이야기들은 절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사랑이 전개되는 방식도 조금은 맘에

 

들었다. 영원이란 없다는 벤자민의 현실적 사고, 그럼에도 한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모습.

 

최고의 발레리나로 명성을 얻다가 부상을 당한 후 방황하지만 멋있게 제 삶을 찾아나가는 데이지,

 

적극적이면서도 성숙한 모습. 무엇보다 그 배우 둘은 왜 그리 멋지고 아름다운지...브레드 피트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멋있고...케이트 블란쳇은 매력적이고 우아하다.

 

 

 

먼 길을 돌아 제나와 결합하는 포레스트 검프에서는 미국 보수주의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도덕적이고 올바른 결론에 이르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까 포레스트 검프는 너무 착해서 조금은 정치적이고 유치해 보인다.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모든 삶이 다 다큐멘터리다. )

 

반면 '벤자민~~'의 담담한 어조는 극적 재미가 크진 않지만(그래서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

 

나이듦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멋있게 늙는 것은 어떤 것일까? 세월을 대하는 여러 가지 태도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역할은 데이지였다. 아름다운 외모, 절정의 발레리나. 부상으로 발레를 접고

 

점점 어려지는 벤자민과 대조적으로 주름이 늘어가는 얼굴. 끝내 이별을 받아들이지만 한시도

 

마음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그 말 '굿나잇 벤자민'....

 

마지막 순간까지 애 늙은이 벤자민을 보살피는 장면이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세월을 대하는 벤자민의 태도도 성숙해보였다. 젊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무기로 쓸 수도 있었을텐데...

 

늘 미래를 대비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행동이 괜찮아보였다. 뭐랄까 가장 기쁜 순간에도 존재하는

 

숙명적 비관주의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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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다녀왔다.

친구들과 설악산에 다녀왔다. 

아래 지도를 보면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 코스를 선택했는데

산을 타는데는 1박 2일이 꼬박 걸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2박 3일로 일정을 잡아야 한다.

6시 30분쯤 강변역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에 도착. 대략 3시간. 여기서 시내버스를 타고 설악산 입구에

도착. 대략 30분. 10시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첫 날은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짧은 코스를 선택.

신흥사 -> 소공원 -> 비선대 -> 양폭 대피소 -> 희운각 -> 중청 대피소를 따라 이동.

중간에 점심 식사 1시간 잡고 저녁 7시쯤 도착했으니 조금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하루코스로 적당하


>> 설악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퍼왔음. 당일, 1박, 2박 등등 여러 가지 코스가 있더이다. 요즘은
국립공원 홈페이지가 잘 돼 있어 편리하다. 홈페이지로 대피소 미리 예약하는 건 필수.



>>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기 직전. 기념으로 셀카를 찍었다.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풍경. 겨울산을 타면 산행 초입에는 조금 풍경이 건조하지만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어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광경을 볼수 있다. 설악산은 다양한 종류의

바위가 많아 웅장하고 담대한 느낌을 준다. 지리산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중간 중간 너무 너무

멋진 풍경 때문에 육체 피로를 싹 잊어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울산의 매력은 고요함에 있다. 봄에는

꽃, 여름에는 계곡, 가을에는 단풍을 찾아 오는 사람들로 산이란 산은 죄다 인파로 북적대지만 겨울산에는

아주 적은 사람들이, 정말로 산을 좋아하는 매니아들만이 산을 찾는다. 그래서 적요로 둘러싸인 산과

하나가 되고 싶다면 겨울산행이 제격이다. 오직 내 발에 의지해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호흡은 거칠어지고

두툼한 등산복은 땀으로 흠뻑 젖는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거친 숨소리만이 온 산을 가득 메우고,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오르막을 치달아 올라 고개를 들었을 때 눈 앞에 펼쳐지는 그

놀라운 광경. 나도 모르게 '와아~~~' 탄성이 흘러 나온다.

와이드 샷으로도, 그 어떤 매체로도 기록할 수 없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 정상에서부터 중턱까지

절반쯤 눈에 덮인 산, 그 앞으로 뒤로 옆으로 사방으로 온통 산이 수묵 담채화처럼 조금씩 흐려지고.

그 사이 사이로 웅장한 바위들이 솟아 있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세상 모든 고민과 욕망이 다 사라진다. 그냥 산이 좋다. 그냥 이 순간이 좋다. 그냥 내가 좋다.

이 순간, 이 느낌, 이 만족감 아주 오래 오래 내 마음 속에 담아두고 새겨두고 그래서 카메라를 누르고 또

눌러도 부족하다. 너무 부족하다.



>> 산행 초입.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 계속 올라가면 이 계곡이 다 얼어 있다. 이렇게 시작된 산행.



>> 비선대에서 찍은 바위. 여기까지가 딱 수학여행 코스여서 오래 전 그 때 기억이 되살아났다.


>> 요즘은 통신 가능지역과 불가능지역까지 표시되어 있더라. 국립공원도 서비스 시대??



>> 와 저 하늘 좀 봐. 정말 날 제대로 잡았다.


>> 산과 산 사이로 또 다른 산이...


>> 슬슬 계곡이 얼어간다. 독특하게 생긴 바위나 암벽이 많다.


>>그러게...정말 신기하다.


>> 오르막에선 체력 소모가 심하다. 그래도 하늘을 오르는 기분이다.


>> 점심 먹고 오후...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 이제 산은 완연하게 겨울의 모습을 드러낸다.


>> 사위가 어두워진다. 해가 저물어간다. 밤이 다가온다. 밤에, 산은 포근하지 않고 무섭다.


>> 정말 재수좋게 목적지에 거의 다다라 일몰을 목격. 죽음이다. 뒤처진 친구들은 못봤다....이 멋진 걸.





중청대피소에서 1박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대청봉에 올랐다. 일출을 보기 위해.

중청대피소 -> 일출 -> 희운각 -> 공룡능선 -> 마등령->금강굴->비선대를 따라 이동.

첫날보다 이동거리가 길다. 일출에 취하고, 신나게 봅슬레이를 타며 내리막길을 무지 빠른 속도로

내려올 때까지... 이토록 길고 힘든 하루고 될 줄 몰랐다.

코스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미리 준비해 온 지도에 예상 시간이 적혀 있었지만 내리막이니 더 빨리

내려갈 수 있으리라 자신했지만. 공룡능선은 이름에 걸맞게 울퉁불퉁 거칠었다. 마등령은 오르막이

많아서 어찌나 속도가 나질 않는지 마등령이 마귀의 등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계속 생각했다.

시간은 계속 늦어지고 친구들도 지쳐갔다. 기어이 해는 지고, 친구 하나는 다리가 아작났다. 친구

배낭까지 배낭 두 개를 매고 내려오는데 오깨랑 허벅지가 미치게 아팠다. 그런데 너무 무섭고 신경이

곤두 서서 아픈건 느낄 새도 없이 미친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도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를

않는다. 뒤에 처진 친구들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미 다 뿔뿔이 흘어져서 천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만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마에 걸친 전등에 의지해서 가는 길. 내리막이 계속되어도 경사가

줄어들지 않고 가끔은 길이 혼동스러워서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너무 무서워서 다른 곳은

비출 엄두도 못 내고 딱 내 발만 비추며 걷는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고 발을 헛딛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끝내 10시 30분이 넘어 비선대까지 도착했지만 모두들 너무 지쳐 있었다.
(후유증이 장난 아니었다.)

그래도 다시 와야지...다음엔 준비를 좀 더 해서 말이야...



>> 일출...멋지다.


>> 해가 떠오른다.



>> 여기는 설악산 정상. 대청봉에서 ..


>> 해가 뜬 직후. 여전히 멀리 달리 떠 있다.



>> 내리막길. 봅슬레이. 어린애 마냥 즐겁다.



>> 산행 친구들. 슬슬 지쳐갔어...



>> 온 몸으로 바람을 맞아온 나무는, 마치 왁스를 떡칠한 머리처럼 한 쪽으로 심하게 쏠려 있다.


>> 바위 틈새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갔어. 마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문을 넘어선 기분이야.
왠지 이 길을 따라가면 홍길동이 살던 율도국이나 반지의 제왕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아.



>> 저 하늘 좀 봐.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그리고 그 하늘을 배경삼아 멋지게 서 있는 나무는 어떻고...



>> 그래도 꾸역구역 봄은 온다.


>> 설악산 바위들. 정말 멋지다.




>> 뉘엿뉘엿 해가 진다.



>> 비선대까지 불과 3.7km인데...줄지를 않는다. 이게 마지막 사진이 될 줄이야. 서편으로 지는
해가 낮게 깔리자 그림자가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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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혀]

1.

신인 소설가 주이란이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작품을 베꼈다가 주장하면서 한 동안 화제가 되었던 작품.

표절 논란이 없었다고 해도 이 소설, 즉 조경란의 [혀]를 읽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에다, 그 소재를 둘러싸고 벌어질 사태의 전개가 자못 궁금하기도 했고
(난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 즉 분석해야 하고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음식을 소재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분석할지 작가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야 할 책 목록에만 저장해 두었다가 조경란과 주이란의 [혀]를 동시에 사서 읽었다.



2.

미식가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시로 침이 고일 것이며, 때로는 식탐을 참지 못해

음식을 먹으면서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더러는 레시피를 따라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난 미식가가 아니다. 식탐은 있지만 불규칙적이다. 정서가 불안할 때마다 포만감을 느끼려고

폭식을 더러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음식의 질을 따지지는 않는다. 그냥 배가 부르면 된다. 그럼 생각이

조금 단순해진다. 먹고, 싸고, 자고, 뒹굴고...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진다.

그게 조금 아쉽다. 이 책은 레시피에 상당한 공을 들인데다 그 요리의 맛을 묘사하는 과정은

가히 감각의 만찬이라 불릴만해서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선 작품의 느낌을 100% 흡수할 수가 없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요리 과정을 설명하고 그 맛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오감에 정신분석까지 곁들인다.

한 편으로 이 소설은 요리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이라는 재미까지 더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거의 스치듯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아쉬움도 남는다. 소설은 엄청 빨리

읽었지만 작품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기분.



3.

그럼에도 엄청 재밌게 읽었다.

남자 친구가 바람난다. 요리사인 여자는 그 남자를 잊지 못한다.

더  이상 함께 요리를 즐길 수 없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폐인 모드로 돌입한다.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들었다면 그냥 보통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에서도 재밌다. 절망모드와 생존모드를 오고가는 여자의 심리상태 묘사가 뛰어나다.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감정의 극과 극을 수시로 오가는 상태를 키친과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오밀조밀하게 묘사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리고 그 감정이 누적되면 상태에 따라 다양한

요리가 결과물로 나오고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 즐기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가 오물조물 잘 버무려져

있다. 따라서 제목이 [혀]인 첫번째 이유. 혀로 맛을 보기 때문이다.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인 만큼 혀에

대한 묘사는 모자람이 없다. 어떤 때는 몸뚱이 전체가 거대한 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헤어진 남차친구는 물론이고 주인공인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음식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문주는 폭식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았고,

요리사로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주방장은 경쟁자인 동시에 종종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알콜중독자인 삼촌은 유일한 가족으로 나오는데, 삼촌의 아내는 거식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4.

혀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 자는 행위의 중심. 즉 성기로 묘사된다.

(여성이기에 더 그럴 것이라 생각한건데) 생김새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먹는 행위와 성관계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비교가 가능하다.

작가는 이 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상처받은 주인공의 방어심리와 공격성은 두 개의 입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어쩌면 사랑이란, 크게 이 두가지

태도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두 개의 입을 함께 포갤수 있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기 까지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입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절정의 관계를 나누고 있을 때 두 개의

입은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당연히 사랑이 깨진 후 두 개의 입을 매개로 공유했던 숱한 경험들은

지극한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추억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감각기관은 절망과 희망을 한데

모아놓은 모순의 집결지다. 따라서 그 두 개의 입이 때로는 지독한 방어 도구로, 때로는 극단적인

공격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제목이 [혀]인 두번째 이유.



5.

제목이 [혀]인 마지막 이유.

가장 자학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파멸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재생을 꿈꾸고,

재생을 위한 의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간절해지고

심장은 빨라지고 끝내는 허탈한 기운을 남기고 끝난다. 아주 섬세하게 묘사된 그와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음식의 맛을 모르는 나로서도 숨막히게 흥분됐다.

폭풍소요 고요. 정적 속의 살의. 가장 조용하고 폭력적인 복수.


그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러 제목의 상징적 의미가 도처에서 폭주한다.

마치 이 결말 하나만으로 보려고 달려왔던 듯.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추리소설을 읽고 난 기분이다.
 



p.s 1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아주 금새 읽었다. 혀를 매개로 모순적인 인간 행위와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그 불편함 이상으로 매혹적이란 점에서

두 소설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표절이라 보기는

어려울 거 같고, 모티브 자체를 따왔다면 그도 표절이라 해야할지..쩝...아무튼 조경란의 [혀]가 훨씬

섬세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압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묘사방식이 조금은 거칠고 덜 다듬어진 느낌이다.



p.s 2 '음식은 작품이고 미식가나 요리사는 예술가다. 입술은 최초의 에로스 기관이다. '

조경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엔...쩝...내공이 조금 딸리는 듯. 혹은 된장이 되어야 하는 건가?

소설 배경마자도 죄다 청담동, 압구정동이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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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욤 뮈소 <구해줘>

- 기욤 뮈소 <구해줘>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 사연을 보낸 게 당첨되었고 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과 이 책을 선물받았다.

그런데 정작 내가 올린 사연은 기억나질 않는다. 심지어 올렸는지 조차도...

아무튼 공짜인데 이 정도면 쏠쏠하다 싶어 다른 프로그램에도 사연을 올렸으나, 몇 번 소개는 됐는데

선물은 없었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동안 책장에서도 손이 닿지 않는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선물받은거 같아서 버리기는 뭐하고...책을 읽으면 남을 주는 스타일상  책장이 엄청 비좁은 관계로

슬슬 새책에 자리를 내줘야할텐데...

그렇게 밀려둔 숙제처럼 읽었다. 처음 1/3은 평범한 연애소설 같아서 읽히지 않다가 중반 이후로

스토리가 급반전.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한 순간에 어긋난 인연이 어디에 가 닿을지

독자에게 상상을 강요하는 듯한 소설 같기도 하고, 가끔은 <식스 센스>처름 죽은자가 나타나고

또 그 죽은자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서 미해결의 난제를 해결하는 소설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총격신과 자동차 격추신으로 뒤범벅된 헐리웃 영화같은 느낌도 든다.



후반부는 지루하지 않게 후다닥 읽었다. (성격상 추리를 많이 요구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언제나)

역시나 장정일이 [독서일기]에서 말한대로 후다닥 읽히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2/3만큼 괜찮은 소설이라 해두자.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역자후기를 보고 검색해봤으나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긴장감과 속도감 넘치는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라는 평이 대부분인 것에 비추어 대충 누가읽어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그런 소설.

재밌고, 잘 쓰고, 그런 만큼 딱 그 만큼인.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보다 색깔있는 목소리를 가진 말랑말랑한 가수들이 뜨는 것처럼.

소설도 그렇다. 그렇다고 그런 소설이 싫다는 건 아니고 분명 그 가운데도 본좌는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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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봄을 기다려.

10일

늦게 일어나서 늦은 점심을 먹고 현관문 앞에 놓여 있는 한겨레 신문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30분간의 자학과 냉소. 요즘 신문을 읽는 시간은 이렇게 규정할 수 있다.

그 만큼 신문이 보기 싫고, 신문이 보기 싫은 만큼 세상이 싫다.

그래서 신문을 봐야 한다. 그 답답한 세상을 향한 마지막 문 만큼은 닫지 않고 열어두기 위해.

열고 닫는 게 언제까지나 내 의지에 따른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 만큼은 남겨두기 위해.

 마지막 페이지는 대형 광고니까 볼 필요가 없고, 바로 그 앞 두 페이지.

그러니까 칼럼과 사설로 가득찬 그 두 페이지가 자학과 냉소의 알곡이다.

어떤 날은 너무 자세히 읽고 어떤 날은 아예 건너뛰는 그 두 페이지 상단에는 [여론]이라고 쓰여 있다.



10일자 신문,

왼편에는 김선주 칼럼 [말은 없고, 헛소리만....]

오른편에는 아침햇발 [진보가 답답하다]

제목만 읽어도 전해오는 그 가슴 답답함. 꽉 막힌 진흙 속에 쳐박힌 물고기처럼 코나 입이 아니라

아가미로 호흡해야만 하는데...숨을 쉬면 쉴수록 아가미로 진흙이 들어와 숨통이 막혀간다.

그래서 읽는다. 그 느낌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물론 이것은 현실에 등을 돌리지도 완전히 발을 담그지도 못하는 자기 연민이다.



김선주 칼럼에는 온통 자학과 절망으로 가득찬 글쟁이의 무기력감으로 가득하다.

'더 이상 말이 말이 아니고 글이 더 이상 글이 아닌 세상이다.'

맞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글을 써야 한다면, 글로 돈도 벌고 의견도 말하고 신문사도 굴려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밖엔 나올 수 없는 세상이다.

매일 엄청난 양의 뉴스를 본다. 용산 철거민 참사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본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유심히 본다. 종종 아는 사람들 얼굴도 보인다. 내가 지금 저기 같이 있어야 하는걸까?

그런데 그 곳이 무겁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말고 마음이 무겁다. 내 언어로, 내 말로, 내 열정으로

저기에 가 있어야 하는데...무언가를 아직 놓치고 있다. 아니 못 찾고 있다.



아침햇발은 최근 민주노총 사태를 중심으로 대중으로부터 괴리되어 가고 있는 대중조직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이다. 이쯤이면 좌청룡우백호 급이 아닌가? 글 두 편이 주는 무게감은 10년의 무게를

얹어놓은 듯 버겁기만하다. 그런데 아침햇발 글은 일면 공감이 가면서도 한 편으로 불편하다.

나처럼 대중조직도 대중도 신뢰하지 않는 입장이란...대체 어디쯤 있어야 할까?



그 대중이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 군중처럼만 보인다.

광우병 사태 때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다 어디가고??

백번 양보해서 철거민들의 저항이 너무 극단적이었다고 해도, 자기 먹는 소고기엔 그토록

흥분하면서 살 곳이 없다고 저항하다 죽어가는 사람들 앞에선 어찌도 그리 이성적이고 냉철하신지....

혹여 가슴 속에 꿈틀대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꿈이,

저 사람들도 결국 돈 때문에 저런 것이니 결국 나와 다를 게 없다는 자기 위안이,

심각한 소크라테스보다는 차라리 적당히 배부른 돼지가 되고 말리라는 타협 정신과

자신만은 고된 된장으로 살아갈 수는 있을거라는 부푼 환상이,

어느 쪽도 공정하지는 못하다는 자기 기만이.......

그런 나도 나가지 않는 이유는?? 아...짜증나고 머리 아프다. 화난다.

그런데 그 대중을 사로잡겠다는 발광하는 대중조직은 대중 못지않게 대중적으로 썩었고....






결국 문제는 대중도, 대중조직도 아니고 나 자신이다.

내 글과, 내 생각과, 내 행동과, 내 삶이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

올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루저의 인생을 끝마쳐야 한다. 아니 적어도 끝마치는 출발점은 되어야 한다.

이게 유일한 올해 소원이다.






2일

어른 혐오증이 있다. 더더욱 아저씨 혐오증이.

오늘도, 예의 말많은 지하철에서 진상 아저씨를 만나고 글을 쓰려 했으나...지친다.

쓰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지치는 이 기분. 천천히 쓰자.

....

하루가 지났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를 읽다가 문득 아톰의 스토리가 궁금해진 나머지

웹하드를 뒤졌는데 다행히 1982년판 TV판 astro boy를 찾았다. 다운 받아서 5편까지 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그게 11시. 아 오늘은 정말 행복한 잠에 푹 빠질 수 있겠구나 싶어 컴퓨터를 끄고

잠을 청했는데 마침 룸메이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그 순간 직감한다. 오늘도 일찍 잠들기는 글렀구나.

꼭 11시나 4시다.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잠들어야만 하는 운명처럼. 때론 이런 것도 너무

가혹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일반 직장인들이 잠드는 11시를 넘어서면 그 때부터는 심리적으로

쪼들린다. 다른 세계다. 너무 많은 기대와 후회가 버무려진 잡념, 또 그와는 대조적으로

너무 조용한 세계. 나는 공상의 바다를 표류한다. 인터넷이나 케이블 TV 속도 표류한다.

.....


다시 아저씨 혐오증으로 돌아가자.

그 시작은 아빠다. 특별히 아빠가 나쁜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냥 보통, 평범한 아빠였다.

가난하고, 힘없고, 그래서 조금은 비굴하고, 그래도 남자라고, 아니 그래서 더욱, 집안에서만

용감한 평범한 아빠였다.

무엇보다 아빠의 패배주의가 싫었다. 부모들은 왜 그렇게 늘 부정적으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한국 청소년들처럼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열심히 사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늘 부족하다. 모자르다. 게으르다. 배불렀다. 안 된다. 하지 마라. 그래서 늘 결론은 '되겠냐?'는

그 말. 뭘하든 안 될 것이라는 그 말. 그러면서도 자기가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는 꼭

알아달라는 그 짜증스런 자기연민.

그러면서 동시에 사기를 꺽는데는 세계 최강이다. 공부밖에 모르던 고등학교 때나, 운동밖에

모르던 대학교 때나, 먹고 사는 것밖에 모르는 지금이나 '니가 별 수 있는 줄 아냐?'는 그 말은

늘 나를 화나게 했다. 패배하고 사는 건 당신으로 충분하다고!!  그래서 내가 당신처럼 살라는

말이야?

여기에 덧붙여, 사소하지만 내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이유. 담배연기가 너무 싫었다.

아빠를 욕하면서도 아들은 아빠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외모 빼고는 아빠를 닮은 구석이 없다.

아빠가 하는 정반대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빠가 소심하다는 사실이다. 아빠가 골수 마초들처럼 용감하기까지 했으면

지금쯤은 이미 파국이다.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아저씨 혐오증의 씨앗은 비겁함에 있다. 조직과 권력(강자)에 약하고

가족과 여자(약자)에게 강한 아저씨. 여기에 병역거부 이후로는 한국 남성들이 대개 군인이거나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치명적으로 아저씨 혐오증을 강화시켰다. 그게 어느 정도는 이미지라해도

이미 덩치가 너무 커져버렸다.


한 번 가속이 붙자 혐오증은 급속도로 확산. 별 게 다 꼴보기 싫다. 가장 예민한 장소는 지하철.

어제도 진상이 하나 있었다. 은색 플라스틱 소재로 된 지하철 의자. 끝 쪽에 아저씨가 다리를 꼰 채

신문을 좌~악 펼치고  앉아 있다. 습관적으로 조중동이 아닌가 확인한다. 한국경제다. 아쉬비~~

극도의 증오를 맛볼 수 있었는데. 당연히 옆자리 하나는 비어 있다. 그런데 그 진상이 입으로 계속

뭔소리를 중얼거린다. "의자를 왜 이 따위로 만들었어 미끌어지게~"라고 연신 투덜투덜대며

동의를 바라는 듯 곁눈질로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빙신 쉐끼. 저 다리를 그냥 올미다의 예지원처럼

도끼로 날려버렸음 시원하겠는데...(휴~어렵게 수양해서 그나마 내면화된 10퍼센트의 평화주의적

심성마저 날아가는 순간.)

한 번은 밤 11시 넘어 신도림 역에서 까치산으로 향하는 곁다리 2호선을 타려고 기다리는데 한

할머니가 강남콩을 팔고 있었다. 엄마를 보는 거 같기도 하고(이거 살짝 진심이다.) 너무 밤 늦은

시각에 힘들어보여서 남은 콩을 죄다 사고 말았다.(아 충동구매...그래도 그 순간 강남콩으로 지은

밥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걸 지켜 본 할아버지가 까치산 도착할 때까지 같이 타고

가는거다. 아 완죤 짜증나는 상황이다. 타고 가면서 내내 칭찬을 하는데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고.

차악의 칭찬은 '요즘 젊은이들 중에도 아직 이렇게 착한 사람이 있구먼(있구만보다는 있구먼이

상황설정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고).' 이고 최악의 칭찬은 '그래도 아직은 한국의 미래가 밝어.'

할아버지의 므훗한 미소에 한 방 날려드리고 싶다. 난 하나도 안 착하고 할아버지같은 사람

별로 안 좋아하고 무엇보다 한국의 희망찬 미래 따윈 개코딱지만큼도 관심 없거든요.

(흠. 주제와 달리 할아버지 혐오증으로 흐르는건가?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군.)



이렇게 저렇게 자가 증식한 혐오증은 이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새로운 소재를 찾아 커나가고 있다.

등산복 입고 술마신 상태에서 얼굴 벌개가지고 술냄새, 발냄새, 땀냄새 풍풍 풍기며 지하철을 점령한

아저씨들, 그러고도 서넛만 모이면 시끌시끌 안하무인인 아저씨들, 대놓고 두 칸 걸쳐 앉아 가는

아저씨들, 남자는 원래 다리구조가 그렇다고 생각하는건지 옆에 이빠이 오므린 아줌마의 존재를

뻔히 알고 있는 쫙벌남들, 자기가 잘못해 놓고도 나이부터 따지는 아저씨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아저씨들....들들들....




어차피 터진 입으로 쏟아낸 말들을 주워담기도 힘든 지경까지 왔으니 평소 생각을 다 쏟아보자.

난 어른들이 '예의없는 것들'이라고 말하는 게 정말 듣기 싫다.
(어른에 대한 반감은 꼭 아저씨를 향해 있다기 보다는 어른 전체를 향해 있지만 똑같이 재수없는
짓을 해도 아저씨가 조금 더 싫은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볼 때 그들은 그들이 체화한 생존방식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 뿐이다.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짜증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내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앉을라고 떠밀면서 올라타고, 조금 사람이 많다 싶으면 밀어대고, 몸에

손대고, 줄 잘 안 서고, 새치기 하고, 그래도 싸우다 불리하면 나이로 다 해처먹으려고 한다.



또 으시대는건 좋아해서 뭐든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서 상대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들의 대화는 대체로 대화가 아니다. 들어주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줄줄줄.

구치소에 있을 때도 그래서 대화를 기피했다. 너 어디 나이트 가봤냐? 너 거기 몇 번 국도 따라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다. '왕년에 내가~'로 시작해서 '~침 좀 뱉어봤다.'로 끝나는 그 대화를

듣고 있자면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런 것도 자랑거리냐? 좀 멋있게 보이고 싶으면

노력이나 하던가...




1일


며칠째 계속 심난한 꿈을 꾼다.

어지럽고 복잡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가 되섞인 꿈을 꾼다.

그리고 당연히, 깬다. 꿈의 의미를 생각할 시간도 없이 집을 나선다. 내내 잊고 지내지만

마음 속에 계속 찝찝한 마음이 남아 있다. 대체 그 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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