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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혀]

1.

신인 소설가 주이란이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작품을 베꼈다가 주장하면서 한 동안 화제가 되었던 작품.

표절 논란이 없었다고 해도 이 소설, 즉 조경란의 [혀]를 읽었을 것이다.

자극적인 소재에다, 그 소재를 둘러싸고 벌어질 사태의 전개가 자못 궁금하기도 했고
(난 추리적인 요소가 강한 소설, 즉 분석해야 하고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음식을 소재로 인간의 심리를 어떻게 분석할지 작가의 관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읽어야 할 책 목록에만 저장해 두었다가 조경란과 주이란의 [혀]를 동시에 사서 읽었다.



2.

미식가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시로 침이 고일 것이며, 때로는 식탐을 참지 못해

음식을 먹으면서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다. 더러는 레시피를 따라 새로운 요리에 도전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난 미식가가 아니다. 식탐은 있지만 불규칙적이다. 정서가 불안할 때마다 포만감을 느끼려고

폭식을 더러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음식의 질을 따지지는 않는다. 그냥 배가 부르면 된다. 그럼 생각이

조금 단순해진다. 먹고, 싸고, 자고, 뒹굴고...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해진다.

그게 조금 아쉽다. 이 책은 레시피에 상당한 공을 들인데다 그 요리의 맛을 묘사하는 과정은

가히 감각의 만찬이라 불릴만해서 요리에 관심이 없는 나로선 작품의 느낌을 100% 흡수할 수가 없었다.


몇 페이지에 걸쳐 요리 과정을 설명하고 그 맛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오감에 정신분석까지 곁들인다.

한 편으로 이 소설은 요리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고찰이라는 재미까지 더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이

나올 때마다 거의 스치듯 훑고 지나갔기 때문에 아쉬움도 남는다. 소설은 엄청 빨리

읽었지만 작품의 맛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 기분.



3.

그럼에도 엄청 재밌게 읽었다.

남자 친구가 바람난다. 요리사인 여자는 그 남자를 잊지 못한다.

더  이상 함께 요리를 즐길 수 없다. 모든 꿈이 사라졌다. 폐인 모드로 돌입한다.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들었다면 그냥 보통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도 수준에서도 재밌다. 절망모드와 생존모드를 오고가는 여자의 심리상태 묘사가 뛰어나다.

극도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서, 감정의 극과 극을 수시로 오가는 상태를 키친과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오밀조밀하게 묘사해내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리고 그 감정이 누적되면 상태에 따라 다양한

요리가 결과물로 나오고

그 요리를 만드는 사람, 즐기는 사람, 평가하는 사람을 둘러싼 갖가지 에피소드가 오물조물 잘 버무려져

있다. 따라서 제목이 [혀]인 첫번째 이유. 혀로 맛을 보기 때문이다.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인 만큼 혀에

대한 묘사는 모자람이 없다. 어떤 때는 몸뚱이 전체가 거대한 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헤어진 남차친구는 물론이고 주인공인 맺는 모든 인간관계에는 음식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절친한 친구로 등장하는 문주는 폭식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신뢰를 쌓았고,

요리사로서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주방장은 경쟁자인 동시에 종종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알콜중독자인 삼촌은 유일한 가족으로 나오는데, 삼촌의 아내는 거식증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4.

혀는 먹는 행위를 넘어서 자는 행위의 중심. 즉 성기로 묘사된다.

(여성이기에 더 그럴 것이라 생각한건데) 생김새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먹는 행위와 성관계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하나라는 점에서 여러 가지 비교가 가능하다.

작가는 이 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상처받은 주인공의 방어심리와 공격성은 두 개의 입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어쩌면 사랑이란, 크게 이 두가지

태도 사이를 오고 가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두 개의 입을 함께 포갤수 있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기 까지는. 라고 말하는 것처럼.

두 개의 입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절정의 관계를 나누고 있을 때 두 개의

입은 사랑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당연히 사랑이 깨진 후 두 개의 입을 매개로 공유했던 숱한 경험들은

지극한 고통을 수반한다. 모든 추억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감각기관은 절망과 희망을 한데

모아놓은 모순의 집결지다. 따라서 그 두 개의 입이 때로는 지독한 방어 도구로, 때로는 극단적인

공격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제목이 [혀]인 두번째 이유.



5.

제목이 [혀]인 마지막 이유.

가장 자학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파멸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재생을 꿈꾸고,

재생을 위한 의식을 치루는 과정에서 [혀]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보고 싶은 마음은 점점 간절해지고

심장은 빨라지고 끝내는 허탈한 기운을 남기고 끝난다. 아주 섬세하게 묘사된 그와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음식의 맛을 모르는 나로서도 숨막히게 흥분됐다.

폭풍소요 고요. 정적 속의 살의. 가장 조용하고 폭력적인 복수.


그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러 제목의 상징적 의미가 도처에서 폭주한다.

마치 이 결말 하나만으로 보려고 달려왔던 듯. 전혀 새로운 종류의 추리소설을 읽고 난 기분이다.
 



p.s 1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아주 금새 읽었다. 혀를 매개로 모순적인 인간 행위와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불편하고 그 불편함 이상으로 매혹적이란 점에서

두 소설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많이 다르다. 표절이라 보기는

어려울 거 같고, 모티브 자체를 따왔다면 그도 표절이라 해야할지..쩝...아무튼 조경란의 [혀]가 훨씬

섬세하고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이란의 [혀]는 단편이라 압축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묘사방식이 조금은 거칠고 덜 다듬어진 느낌이다.



p.s 2 '음식은 작품이고 미식가나 요리사는 예술가다. 입술은 최초의 에로스 기관이다. '

조경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엔...쩝...내공이 조금 딸리는 듯. 혹은 된장이 되어야 하는 건가?

소설 배경마자도 죄다 청담동, 압구정동이 되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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