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
만화 [너는 펫]을 봤다.
일본 소설, 일본 드라마, 일본 만화, 일본 영화 등등....
일본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엮어낸다, 남자 캐릭터들이 여성화되어 있다 등등....
일본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밍밍하고 지루하다, 탈정치적이다, 쪼잔하다, 너무 가볍다 등등....
일본 드라마는 못 보겠고,
일본 영화는 어쩌다 가끔 보고,(대개 비주류 영화)
일본 소설은 한 때 유행이었던 거 같고,
일본 만화는 일상이다.
일본 만화의 우울함, 세기말적 자학, 인간 심리의 극단 뭐 이런 것들이 묘하게 끌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림이나 스토리가 기본 탄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조금씩 순정만화(로 분류되는)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 이전까지는
과정되게 큰 눈, 작은 컷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글자, 과도한 환타지, 사랑이야기에 대한 거부감,
무엇보다 남자라는 자의식...이런 것들 때문에 순정만화를 안 봤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요즘은 꽤나 재밌게 본다. 오히려 치고 받고 주먹질에 강호의 달인들과
거리의 복서만이 넘쳐흐르는 코믹스의 세계에 이별을 고한지 오래.
꽃보다 남자는 너무 짜증나서 다 못 읽겠고, 너는 펫 정도면 무난하다.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만화 속에 담긴 말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리 구체성을 획득한다.
너무 너무 재밌게 봤지만 가장 불편한 것은 주인공 스미레의 관계맺기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말과 행동이야 연애관계에서 어차피 도드라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품성이란 것이 더더욱 불편한 것이지만....
엘리트에 능력 있고 이쁘고 성깔도 있는 스미레가 유독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급소심증과 눈치보기로
일관할 때는 조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가장 식겁했던 대사는 하스미에게 작별을 고하는 스미레가 했던 말
"부탁입니다. 헤어져주세요."
이건 참....완전 난감이다. 자신의 결심으로 헤어지는데 헤어져달라는 건 뭔가?
과도하게 남에게 선택을 미루는 일본식 어법을 감안하더라도 고개를 90도 숙이며 저런 말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더라. 한 편으로는 짜증도 나더라. 헤어지는 것 마저도 남이 해줘야 하나?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또는 지나치게 의식하는 어법을 여성이 사용하니까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홧김에 직장 여성에게 거칠게 화풀이하는 하스미는 결국 남자. 시종일관 중성 매력을
남발하다 막판에 스미레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다케시도 남자. 그 남자들을 대할 때마다
급격히 여성화되는 스미레는 사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고...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자아발견이라는 식의 결말은
어쩐지 헛헛하다.
2.
비몽을 봤다. 오다기리 죠 말고는 전혀 남는 것이 없는 느낌.
에휴. 몽환적 분위기도 좋지만 이렇게 비유만 난무하고 당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설정도 이젠 지겹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도 좋지만 왜 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충분히 쉬운 해결책을 두고도 극단적인
결말로만 가는 것일까? 그걸 멋지게 포장하는 것도 이젠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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