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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3/26
    그랜 토리노(3)
    칸나일파
  2. 2009/03/23
    영리한 건가?(3)
    칸나일파
  3. 2009/03/17
    너는 펫, 비몽
    칸나일파
  4. 2009/03/13
    [3월] 꽃이 피나요?(4)
    칸나일파

그랜 토리노

얼마 전 씨네21에서 <그랜 토리노>에 대한 영화평을 보고 이 번 만큼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최근 <체인즐링>까지 그와 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않게 들려왔다. 남이 평가하면 덩달아 평가하고 싶어지는 심리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를 끝내 안봤던 것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로 표상되는 미국식 정의와 착한 마초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머니즘과 정의감으로 무장한 보수라해도 강자와 약자의 논리를 버릴 수 없는 한

그게 그거다. 개화한 마초와 여성의 관계 역시.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많이 힘들었다. 씨네21에서 보았던 영화평 때문에 처음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미국 보수주의가 지난 단점까지도 모두 떠안고 가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유언장을 미리 보는 것

같다는. 그 영화평 때문일까 나는 그를 평가할 수 없었고 그냥 한없이 서글퍼졌다.

왜일까? 경계심과 불만으로 가득한 눈, 이죽거리는 입, 세월에 무릎꿇은 수많은 주름, 과장되게 거친

말투, 지독한 도덕적 강박증, 모든 권위에 대한 반감, 일상처럼 달고 사는 외로움과 술, 그리고 영원히

지우지 못하는 전쟁의 상처.



그 모든 것 때문에...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장면에서, 아주 영화 극초반부터 나는 울기 시작했다. 옆집 사는 수가 말을

걸어올 때부터. 타오가 일을 거들기 시작할 때부터. 몽족 아줌마들이 쉴새없이 음식과 꽃을 날라줄

때부터. 자식들보다 망할 동양인들이 자기 마음을 훨씬 잘 안다고 투덜댈 때부터. 대사와 장면 하나

하나,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 하나 그게 너무 시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결론이 아름답지 않으리란 건 미리부터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가 원해서 강해진 것이 아니라 부서지지 않으려고 악으로 버티며 강해진 그 남자가

이유없는 폭력과 맞섰을 때 결론은 비겁하거나 비참하거나.

비참하지 않기를 바랬다. 비겁은 더더욱 아니기를 바랬다. 그러나 힘으로 이길 수 없으리란 것도

알았다. 그러나 힘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고, 어른이 아이를 보호하고, 강함이 약함을 이기고...

폭력의 고통과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상태로 악순환하고....

그걸 포기한 마지막 장면은 너무 큰 고통과 아픔이었다.

그 순간,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더 이상 영화 속 질문이 아니었다. 



왜 세상은 아무런 악의없이 살아가는 자들에게 이토록 가혹한 것일까?

외면할 수도 부딪칠 수도 없는 것 같은 세상에서  그가 끝내 멋진 복수를 선택했다면, 그냥 계속 꼰대로

남았다면, 인종주의자로 남았다면, 그래서 유산만 탐내는 가족들 틈에 둘러싸여 비참하게 죽었다면

조금은 동정할 수 있고 그 동정 못지 않은 냉소를 퍼부어줄 수 있었을텐데.



세상에 대한 단선적인 분석, 사람에 대한 이분법적 편가르기,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 이런 것들에 자신이 없고 그 만큼 이 영화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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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건가?

영리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비겁하게 살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리한건가? 비겁한건가?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야.

난 그냥 즐겁고 싶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재미있거나, 혹은 유익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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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펫, 비몽

1.

만화 [너는 펫]을 봤다.

일본 소설, 일본 드라마, 일본 만화, 일본 영화 등등....


일본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소소한 일상을 재미있게 엮어낸다, 남자 캐릭터들이 여성화되어 있다 등등....

일본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밍밍하고 지루하다, 탈정치적이다, 쪼잔하다, 너무 가볍다 등등....



일본 드라마는 못 보겠고,

일본 영화는 어쩌다 가끔 보고,(대개 비주류 영화)

일본 소설은 한 때 유행이었던 거 같고,

일본 만화는 일상이다.


일본 만화의 우울함, 세기말적 자학, 인간 심리의 극단 뭐 이런 것들이 묘하게 끌린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림이나 스토리가 기본 탄탄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러다 어느 때부턴가 조금씩 순정만화(로 분류되는)에 손이 가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 이전까지는

과정되게 큰 눈, 작은 컷들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글자, 과도한 환타지, 사랑이야기에 대한 거부감,

무엇보다 남자라는 자의식...이런 것들 때문에 순정만화를 안 봤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요즘은 꽤나 재밌게 본다. 오히려 치고 받고 주먹질에 강호의 달인들과

거리의 복서만이 넘쳐흐르는 코믹스의 세계에 이별을 고한지 오래.

꽃보다 남자는 너무 짜증나서 다 못 읽겠고, 너는 펫 정도면 무난하다.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지 만화 속에 담긴 말의 의미가 이전과는 달리 구체성을 획득한다.



너무 너무 재밌게 봤지만 가장 불편한 것은 주인공 스미레의 관계맺기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다.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말과 행동이야 연애관계에서 어차피 도드라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고 여성에게 강요되는 품성이란 것이 더더욱 불편한 것이지만....

엘리트에 능력 있고 이쁘고 성깔도 있는 스미레가 유독 연애 문제에 있어서는 급소심증과 눈치보기로

일관할 때는 조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가장 식겁했던 대사는 하스미에게 작별을 고하는 스미레가 했던 말

"부탁입니다. 헤어져주세요."

이건 참....완전 난감이다. 자신의 결심으로 헤어지는데 헤어져달라는 건 뭔가?

과도하게 남에게 선택을 미루는 일본식 어법을 감안하더라도 고개를 90도 숙이며 저런 말을 내뱉는

장면에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더라. 한 편으로는 짜증도 나더라. 헤어지는 것 마저도 남이 해줘야 하나?

남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또는 지나치게 의식하는 어법을 여성이 사용하니까 굉장히 불편하다.


...그리고 홧김에 직장 여성에게 거칠게 화풀이하는 하스미는 결국 남자. 시종일관 중성 매력을

남발하다 막판에 스미레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는 다케시도 남자. 그 남자들을 대할 때마다

급격히 여성화되는 스미레는 사랑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고...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자아발견이라는 식의 결말은

어쩐지 헛헛하다.





2.

비몽을 봤다. 오다기리 죠 말고는 전혀 남는 것이 없는 느낌.

에휴. 몽환적 분위기도 좋지만 이렇게 비유만 난무하고 당췌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설정도 이젠 지겹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것도 좋지만 왜 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충분히 쉬운 해결책을 두고도 극단적인

결말로만 가는 것일까? 그걸 멋지게 포장하는 것도 이젠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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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꽃이 피나요?

3월 13일


꽃이 피는 건가요? 난 지금 술이 살짝 취했고, 그냥 꽃이 피는 건거요? 그렇게 물어요.

꽃이 피겠죠?? 누구에게나...그게 봄이잖아요. 꽃이 피잖아요.




봉중근 열사까진 참겠는데 이치로 영어 못한다고 신나서 지랄하는 것들은....븅신들....

그렇게 자랑할 게 없어서...그런 걸로 우월질이냐?? 열등감쟁이들.




진보넷 블로그가 너무 사람이 없어서 고민이다. 이걸 옮겨야 하나??

난 자주 쓰지는 않지만 누군가 보길 바라면서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새로운 룸메가 들어왔다. 많이 힘들어한다. 또 그 사람 덕에 많이 즐겁다.

그녀에게도 봄이 온다. 봄은 온다. 그게 봄이 아니라면. 아니, 봄 너마저.



동네 만화방에 가서 20세기 소년 마지막권은 왜 없냐고 물었다.

마지막권은 아직 안 나왔다고 말한다. 그 만화방, 자격미달이다.

20세기 소년 마지막권은 제목이 [21세기 소년]이다.

결국 나는 만화책을 사고 말았다.

나는 25권으로 완결된 만화 가운데 마지막 2권만을 소장하고 있다.

어색하고, 이해하기 힘든 형태로 만화책 딱 2권을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칸나는 큰 활약을 못 한다.

내 블로그 칸나일파는 칸나에게 바치는 20대의 마지막 순정이었는데...

칸나....아~~ 어릴 적 듣던 칸나 앨범과는 다른 느낌. 훨씬 설레고 가슴저미는 이름이야. 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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