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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빠도 아니다.

아들녀석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가 있었다.

아이들의 편식을 방지하고 몸에 좋은 김치를 많이 먹도록 유도한다는 교육적 내용의 뮤지컬 '김치가 좋아.'를 공연한다고 했다. 대충의 줄거리는 햄버거, 핏자, 콜라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병균맨이 쳐들어오자 김치맨이 등장해서 무찌른다는 이야기이다. 그 뮤지컬에는 배추, 고추, 마늘, 햄버거, 콜라, 핏자, 병균들이 등장하는데 아들녀석이 주인공격인 김치맨을 맡았다고 했다. 아이 엄마의 눈치가 아들녀석이 주인공을 맡은 것이 은근히 자랑스러운가 보다. 거의 한달 가까이 집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 연습을 하더니 실제 공연하는 날도 큰 실수 없이 잘해내었다.

무대 가운데 쫌 멋있게 서 있는 녀석이 아들녀석이다. 공연을 마치고 아내는 아들녀석의 멋진 공연에 감격해서 눈물이 날 뻔 했다며 나의 소감을 묻는데, 난 솔직하게 답하지 못하고 나도 그랬노라고만 말했다. 사실 난 아들 녀석이 주인공을 맡아서 다른 친구들에게 우쭐대는게 좀 못마땅하던 터이였다.

난 아빠도 아니다.

다른 부모들은 의례 자기 자식이 주목받고 주인공이 되면 좋아해야 할 터인데 난 그것보다 아들녀석이 행여나 겸손하지 못하고 자만하지 않을까 부터 걱정했다. 그리고 주목 받기 보다는 다른 친구들과 호흡을 맞추고 함께하는 것의 소중함을 먼저 알았으면 하는 것이 더 큰 바램이었다.

 

그래서 난 실제로 아들 녀석이 주인공인 뮤지컬 보다는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하는 두번째 춤 공연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이가 공연을 마치고 나왔을때 칭찬을 아끼지 않는 아내와는 다르게 나는 그저 어깨를 감싸주며 수고했다는 격려만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난 아빠도 아니다.

 

공연을 앞둔 주말 아이를 데리고 강변 공원에서 자전거를 신나게 탔다.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의 외출이 즐거웠는지 자기의 체력의 한계보다도 훨씬 먼 거리를 달렸다. 그날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린 거리는 무려 4KM 가 넘는다.

 

결국 이 날의 피로와 공연의 피로가 겹친 아이는 몸살이 심하게 걸려 또 병원 신세를 지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즐거워 하는 아이를 위해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언제나 자전거를 차에 싣고 나와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난 아빠도 아니다. 아이가 이렇게 즐거워 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내겐 얼마나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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