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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豆)을 생각함.

 콩을 가지고 일을 하기 시작한지 10개월이 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콩식품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팀을 꾸려 사람들을 동참시켰다. 그동안 두부도 만들고, 청국장도 만들고, 청국장을 말려서 분말가루도 만들어 팔았다. 그리고 요즘은 장(醬) 담그는 일을 준비하며 메주를 쑤고 있다. 모두 콩으로 하는 일들이다. 빼빼하게 작업에는 동참하지 않고 늘 성과만을 강요해오던 내가 그놈의 콩 때문에 요즘 팀원들에게 할말을 잃어버렸다.

 

 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작업의 결과물들 두부, 청국장, 메주의 평가만을 겁없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도시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나에게 콩이란 농작물은 생소한 것이었고,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밭에서 자라나는 콩을 제대로 볼 기회를 가질 정도였다. 그런 나를 믿고, 내가 세운 사업계획을 믿고 기꺼이 장 담그는 사업을 해보자고 동참해준 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것, 저것 장과 메주에 대한 책들을 참 많이도 읽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건 그것들의 원료가 되는 콩에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수확한 콩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작업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입하게된 콩이 말썽을 일으켰다. 작업현장에서 연락이 왔다. 충분히 불리고 넉넉하게 삶았는데도 콩이 무르지 않고 찰기가 없단다. 낭패다. 어떻게해야할지 막막하다.  책을 뒤지고 이곳저곳 자문을 구해봐도 방법을 모르겠다. 콩이 문제인 것 같은데.. 아무리 쳐다보고 뒤적여봐도 콩의 문제를 모르겠다. 결국 콩의 생산자와 함께 삶는 작업을 해보기로 했다. 그 콩 농사를 지었던 사람은 자기 콩에 대해서는 무조건 자신있단다.. 그런데 나는 우리 작업에 대해서 무조건 자신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는 방법이 맞는지에 대한 검증을 하지 못했기도 하지만 아직 콩을 씻어서 불리고 삶는 것이 나의 생활이나 삶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콩은 일년내내 땅의 기운을 빨아 깍지속에 열매를 맺고 영양분을 똘똘뭉쳐 알갱이로 만들어낸다. 다시 그 땅의 기운을 녹여서 식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콩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내내 지켜보고 이해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깊은 맛을 우려내는 장(醬)을 담그는 장인들은 그렇게 땅이 만들어서 뱉어내는 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영양분을 발효시켜 빠짐없이 녹여내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장을 담가서 파는 게 돈이 될 것이라는 전망만 가지고 겁없이 일을 시작하게 되다니.. 후회막심이다.

 

 이렇게 자연의 섭리를 섣불리 상품화 시키려는 발칙한 시도에 대해서 콩은 뭔가를 가르쳐주려는 것이 아닐까하는 만화적인 생각을 해본다. 내일은 콩을 불리고 삶는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할 것이다. 콩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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