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들리세요? (22회)

 

들리세요? (22회)

 

 

1

 

여기는 대한민국 서울의 어느 조그만 임대아파트 안방이고요

이거는 읽는 라디오 ‘들리세요?’의 스물두 번째 방송이고요

저는 1일 진행을 맡은 한지은입니다.

반갑습니다.

 

매번 들리던 성민이님의 목소리가 아닌

웬 여자 목소리에 혹시 당황하신 분들이 계신가요?

사전 예고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게 됐네요.

뜬금없이 제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은

성민이님이 요즘 혼자 진행하는 게 조금 힘들다면서

저한테 1일 진행을 제안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이 은근한 매력이 있어서 몇 번 사연을 보냈던 것이 전부인 저에게

성민이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별 고민 없이 수락했답니다.

사실, 라디오 DJ를 해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읽는라디오이지만 이런 경험도 흥미로울 것 같아서 한 번 도전해봅니다.

혹시 아나요? 이게 인연이 돼서 방송에 진출할런지... 하하하하.

 

많이 미숙하겠지만 색다른 경험으로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가 들려드릴 첫 곡은 분위기 있는 재즈음악인데요

골든 스윙밴드의 ‘I thought about you’입니다.

감미로운 재즈의 선율 속을 저와 함께 거닐어 보실래요?

 

 

I took a trip on the train

And I thought about you

I passed a shadowy lane

And I thought about you

 

Two or three cars parked under the stars

A winding stream

Moon shining down on some little town

And with each beam, same old dream

 

At every stop that we made

Oh, I thought about you

But when I pulled down the shade

Then I really felt blue

 

I peeked through the crack

And looked at the track

The one going back to you

And what did I do?

I thought about you

 

 

2

 

제가 사는 동네는 그저 그런 서울의 변두리 동네인데요

동네 한켠에 조그만 도서관이 있어서 자주 애용하고 있습니다.

동네가 후져서 도서관도 작다고 투덜대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아담한 도서관이 정감이 가서 좋더라고요.

 

도서관 옆에는 더 조그만 놀이터가 있습니다.

미끄럼틀과 그네와 시소가 전부이지만

동네 아이들은 거기서 신나게 뛰어놉니다.

그 주위로는 벤치 3개가 띄엄띄엄 놓여 있지요.

 

제가 특별할 것 없는 도서관과 놀이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도서관 옆 놀이터에 있는 벤치 얘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벤치는 어디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나무로 된 벤치입니다.

흔히 그렇지만 여기저기 페인트가 벗겨지고 곳곳에 작은 흉터들도 많았는데요

지난 가을에 구청에서 놀이터를 정비하면서 벤치도 새단장을 했습니다.

새단장이라는 게 화사하게 페인트만 새로 칠한 것이라면 제가 얘기를 꺼내질 않았겠죠?

 

세 개의 벤치에 각각 하얀색, 연녹색, 하늘색으로 화사한 옷을 입히고는

한쪽으로 앙증맞은 고양이, 강아지, 토끼가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려놓았습니다.

한쪽으로는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빈자리가 마련되어 있고요.

그 벤치를 보면 다가가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동물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물론 아이들도 엄청 좋아하지요.

 

벤치가 새단장을 한 후부터 벤치를 자주 찾게 됐습니다.

자판기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서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을 놀려 옆에 앉은 동물을 바라보며 눈을 마주치곤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 기분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낮잠’ 듣겠습니다.

 

 

그린 직사각형

속에 빨간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나

꿈을 꾸네

 

(크르릉~ 삐용~ 크르릉 삐용~)

 

그린 직사각형

속에 노란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너

꿈을 꾸네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피용)

 

꽃들이 말하네 `사랑해`라 하네

꽃들이 말하네 `사랑해`라 하네

모두다 손잡고 `사랑해`라 하네

별들도 달들도 `사랑해`라 하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린 직사각형

속에 빨간 의자

위에 편히 앉아

낮잠을 자는 우리

 

 

3

 

혹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커’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나요?

오래 전에 개봉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라서 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 이 영화를 봤습니다.

홋카이도의 설경이 포근하게 다가오고, 부담스럽지 않은 미모의 나카야마 미호의 연기도 편안하게 다가왔고, 유쾌하면서도 애잔함을 안겨주는 줄거리도 좋았습니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을 놓아버리기 위해 떠난 여행이 또 다른 여운으로 다가오는...

알싸하다는 느낌, 바로 그런 느낌의 영화였습니다.

 

알싸한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저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봤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tv에서 이 영화를 방영하길래 또 보고 말았습니다.

너무 익숙한 영화를 즐기면서 영화에 빠져들기보다는 영화와 봤던 저의 과거들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던 대학 1학년 때의 느낌과 그 시절의 가슴 부푼 추억들

친구 자취방에서 수다 떨면서 보다 술 취해 잠들었던 기억

한 때 불타올랐던 전 남친과 같이 봤던 세 번째의 느낌과 복잡한 감정들

휴학과 알바로 지쳐가던 시절 네 번째로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던 기억

스무 아홉 살 크리스마스에 집에서 혼자 다섯 번째로 보면서 나이 들어감을 생각했던 참참함

 

그렇게 여섯 번째로 이 영화를 보다가 지난 시절들을 하나씩 떠올리다보니 기분이 묘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혼자서 맥주 한 잔 해버렸습니다.

과거를 떠올린다는 것이 이 영화처럼 다시 만날 수 없는 시절들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나이 들어가는 징조일까요?

 

다음날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거울 보는데

거울 속에 미친 제 모습이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거울 속의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자꾸 뒤돌아보지 말자. 앞을 보자, 앞을!”

 

 

4

 

이제 방송을 마쳐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혼자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더 그랬습니다.

이렇게 방송을 해보니까 진행자이신 성민이님이 조금은 대단해 보이기도 합니다.

요즘 성민이님이 비염 때문에 고생을 하고 계신데

빨리 나으셔서 조금 더 상쾌한 기분으로 이 방송을 이어가셨으면 합니다.

1일 진행자 한지은이 진행했던 ‘들리세요’ 스물 두 번째 방송을 여기에서 마칩니다.

마지막 곡은 Frank Sinatra의 ‘my way’입니다.

안녕히 계세요.

 

 

And now, the end is near.

And so I face the final curtain.

My friend, I'll say it clear.

I'll state my case of which I'm certain.

 

I've lived a life that's full.

I've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Regrets, I've had a few

But then again, too few to mention.

I did what I had to do

And saw it through without exemption.

 

I planned each charted course.

Each careful step along the byway,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Yes, there were times,

I'm sure you knew

When I bit off more than I could chew.

But through it all, when there was doubt,

I ate it up and spit it out.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d it my way!

 

I've loved, I've laughed and cried.

I've had my fill my share of losing.

And now, as tears subside,

I find it all so amusing.

 

To think I did all that;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No, oh no, not me,

I did it my way"

 

For what is a man, what has he got?

If not himself, then he has naught.

To say the things he truly feels

And not the words of one who kneels.

 

The record shows I took the blows,

And did it my way!

Yes, it was my way...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